<눈먼 시계공> <섬, 그리고 좀비>를 영화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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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동안 한국의 장르문학 신작을 내리 읽었다. 김탁환, 정재승의 <눈먼 시계공>, 일전에 한 번 기사로 다룬 적 있는 ‘ZA문학공모전’(‘좀비문학상’을 환영하며) 수상작을 모은 <섬, 그리고 좀비>, 배명훈의 단편집 <안녕! 인공존재>와 김보영의 단편집 <멀리 가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하나같이 화제를 모았던 작품들인 만큼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오늘은 <눈먼 시계공>과 <섬, 그리고 좀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안녕! 인공존재>와 <멀리 가는 이야기>를 제외한 건 배명훈 작가야 이 지면을 통해 여러 번 소개한 적이 있고 김보영 작가의 경우, 함께 출간된 또 하나의 단편집 <진화 신화>를 아직 읽지 못해 후에 따로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좀 더 첨언하자면, <눈먼 시계공>과 <섬, 그리고 좀비>와 같은 작품을 한국 극장가에서 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안녕! 인공존재><멀리 가는 이야기>와 비교해 <눈먼 시계공>과 <섬, 그리고 좀비>는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작품인 것이다. 배명훈의 작품이 언어의 가능성을 최대한 밀어붙이고, 김보영의 작품이 현대 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인간 가치의 미세한 분열의 결을 찾아 SF적 상상력으로 바라보는 까닭에 언어를 음미하는 맛이 강한 반면 <눈먼 시계공>과 <섬, 그리고 좀비>는 각각 SF소설과 좀비소설로서 장르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로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 것이다. 게다가 이 두 작품의 탄생 배경이 이채로운 점도 글을 쓰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였다. 

<눈먼 시계공>은 주로 역사소설을 집필해왔던 김탁환과 물리학자로 유명한 정재승의 공저라는 점에서 우선 관심이 동한다. 2049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뇌를 강탈당한 시체들이 연달아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미래의 서울 풍경을 담았다. <눈먼 시계공>의 전체적인 아이디어는 정재승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김탁환과 함께 소설로 옮겨 쓰면서 각자의 전공을 살리는 방식으로 구성이 이뤄졌다. 구체적인 사건 묘사가 이뤄지면 그 다음 장(章)에 바로 사건의 배경에 대한 과학적인 해설의 성격이 짙은 서술이 이뤄지는 식이다. 가령, 뇌 강탈 살해 사건과 함께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로봇 격투기 대회 ‘배틀원’에 대한 묘사가 이뤄지면 이것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투로 실제 2002년 2월 일본에서 벌어졌던 휴머노이드 로봇 격투기 대회 ‘로보원’에 대한 장을 덧붙이는 것이다.

이 같은 구성은 지은이 각자의 특기를 살린다는 점 외에 하나의 전제가 더 밑바탕이 된다. <눈먼 시계공>에서 묘사하는 미래 서울의 풍경이 허황된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 극중 ‘인간은 꿈을 통해 어제의 추억을 되뇌고, 오늘의 경험을 정리하며, 내일의 숙제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기억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해 두는 대뇌 활동이 아니라 매순간 변하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경험의 질료‘라는 것이다. 기억은 과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와 같은 지문은 이 작품이 뇌, 그중에서도 기억을 왜 중요하게 다루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눈먼 시계공>이 묘사하는 2049년의 서울 풍경은 지금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토대로 구성되었음을, 바투 다가온 미래를 대비하고, 닥쳐서는 안 될 미래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SF소설에서 공간의 묘사는 그래서 필수적이고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가 현재 욕망하고 있는 ‘어떤’ 모습이 상상일지언정 미래 배경을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눈먼 시계공>이 묘사하는 미래의 서울 역시 철저히 현재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의 집합으로 이뤄진 듯 보인다. 마천루가 즐비한 서울 풍경은 지금의 과시형의 도시 정책의 확장판으로 이해되고, 인간과 결합한 사이보그의 등장에 따른 정체성의 문제는 현재의 다인종 다문화 사회의 미래버전인 듯하며, 상암동 격투기 로봇 전용경기장에서 열리는 로봇 격투기 대회라는 설정은 인간 폭력성의 한계가 과연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무대 같은 인상을 준다. 이처럼 공간의 특성이 특정 욕망을 대표하고 대변한다는 점에서 <눈먼 시계공>은 시각적인 설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섬, 그리고 좀비>와 같은 좀비소설은 좀비 그 자체로 시각적인 장르다. 붉은 눈자하며 창백한 피부 위의 문신처럼 새겨진 붉은 생채기 자국들, 발을 질질 끌며 어슬렁어슬렁 이동하는 모습 등등. 다만 시각적인 피조물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받는 것은 태생적인 배경과 관계가 있다. 좀비는 당대의 현실 속에서 곪고 있는 각종 부정이나 부조리함이 터지면서 생겨난 사회악의 총체다. 그래서 좀비의 탄생 과정을 살피는 것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섬, 그리고 좀비>가 흥미로웠다.

ZA(Zombie Apocalypse)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인 <섬, 그리고 좀비>에는 당선작 <섬>과 가작 <잿빛 도시를 걷다> <도도 사피엔스> <어둠의 맛>, 그리고 심사위원 특별 추천작 <세상 끝 어느 고군분투의 기록>까지 모두 다섯 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은 <어둠의 맛>과 <도도 사피엔스>이었다. 대개의 좀비 소재 작품들이 좀비를 타자화하고 돌연변이로 삼는 것에 반해 <어둠의 맛>과 <도도 사피엔스>는 주체 삼는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둠의 맛>은 철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인공이 좀비가 되어 겪는 소수자의 박해를 다루었고 <도도 사피엔스>는 각종 개발 사업과 오염물질로 발생한 바이러스가 인간들을 어떻게 좀비로 변모시키는지 섬쩍지근한 과정을 해부학과 병리학을 동원해 사실적으로 접근했다.

두 작품은 좀비물 속에 침전한 사회적인 함의 외에도 이 장르가 어떻게 진화해 나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제 철거라든지 무분별한 건설 사업 등과 같은 현재 가장 첨예한 사회 문제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정통적이다. 그렇지만 좀비를 피해자의 위치에 세워 소수자의 입장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향을 가늠케 하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지금의 한국 영화계가 잃어버린 그 무엇이기도 하다. 웬일인지 올 여름 극장가에서 한국 공포영화를 찾기가 힘들다. (SF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이 개봉을 앞두고 있긴 하지만 철저히 전편의 흥행을 등에 업은 결과다. 그런 것과 관계없이 우리는 언제쯤이면 장르 본연의 재미를 삼은, 이에 더하여 적절한 사회비판과 색다른 시도까지 겸비한 공포영화, SF영화를 볼 수 있을까. 한국 영화계가 <눈먼 시계공>과 <섬, 그리고 좀비>에서 해답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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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11)

작가 배명훈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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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는 2010년 ‘젊은작가상’을 신설해 수상작 7편을 모은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올해 3월 선보였다. 문학동네 소개에 따르면, 젊은작가상은 ‘등단 십 년 이내 작가들의, 아직 집중적으로 조명되지 않은 개성에 깊이 간직되어 있는 한국 문학의 미래와 함께 하고자’ 신설했다. 또한 문학동네의 심사 경위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각종 지면을 통해 발표된 신작 중단편을 대상으로 젊은 평론가들로 구성된 선고위원회가 131명의 작가가 쓴 190편의 작품 중 후보작 18편을 추천해 최종적으로 7편을 선정했다. 그리고 7편의 작품 중에서 대상 수상작을 가리기 위해 투표를 거쳤고 김중혁의 <1F/B1>과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그리고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로 압축됐다. 최종적으로 김중혁의 <1F/B1>가 대상을 차지했지만, 무엇보다 배명훈은 문예지에 처음 발표한 작품으로 대상 후보에 오르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 지면(‘시대를 반영한 장르영화가 보고싶다’)을 통해 배명훈과 그의 작품을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연작소설 <타워>를 발표하며 장르소설 쪽에서는 꽤 유명세를 탔지만 문단에서는 생소한 작가였다. 배명훈은 대학 재학 시절이던 2004년 <테러리스트>로 ‘대학 문학상’을 받았고 <스마트D>로 ‘과학기술창작 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되면서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단편소설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장르문학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가 문단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안녕, 인공존재!>가 계간 <문학동네> 2009년 겨울호에 실리면서부터다. 소위 장르문학 작가로 인식되던 배명훈의 작품이 문예지에 실렸다는 사실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여전히 장르문학의 수준을 순문학 아래에 두는 국내 풍토에서 이는 일종의 사건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꾸준히 읽은 독자라면 문예지에 실린 것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사실 배명훈의 작품은 딱히 SF라고 규정하기 힘들 만큼 장르적 경계가 모호하다. 우주선이 등장하기도 하고(<우주로 날아간 마도로스>) 미래가 배경이기도 하며(<타워>) 시공을 초월하기도 하지만(<초록연필>) 장르적 규칙을 따르지도 않고 무엇보다 이미지로 환원할 수 없는 글쓰기를 지향하는 까닭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힘든 과학적인 설정을 소설의 주된 뼈대로 삼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순수하게 소설만의 미학을 추구한다. 배명훈 작품의 독특한 지점은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배명훈의 작품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구성은 이질적인 두 요소의 충돌에 따른 예상치 못한 연결점이다.

예컨대, <우주로 날아간 마도로스>는 인도 뭄바이의 현실이 우주여행과 연결이 되고 <초록연필>은 평범한 사무실의 일상이 스페인의 예언자를 매개로 하여 지구 멸망 이야기로 끝맺음되며 <안녕, 인공존재!>의 경우, 자살한 전 여자 친구가 남긴 최첨단(?) 과학 기계 ‘조약’(동그란 돌멩이)에 대한 의문을 품고 우주로 날아간 주인공이 장렬하게 존재 폭발한다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특히 배명훈의 소설은 짧게 줄거리를 요약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SF의 외피를 둘렀을지언정 오로지 글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그의 작품에는 소설 특유의 글쓰기 상상력이 빚은 순수한 경지의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다. 배명훈 그 자신이 표현하길,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 각광을 받는 것 같다. 나는 그걸 피한다. 영화에 종속되는 서사가 아니라 텍스트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미학을 끌어내보려고 한다. 영화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과 글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은 다르다. 영화를 염두에 둔 글쓰기를 하다보면 글의 미학이 점점 사라진다. 그러면 글의 맛을 모르는 세대가 나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를 우선한 작업을 해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배명훈의 글은 한편으로 순문학에 더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모든 장르문학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영화화를 염두에 둔 장르문학이 많아지면서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묘사가 추세인 것에 반해 배명훈은 과학적 지식을 일상적 상황으로 끌고 들어와 글로만 설명 가능한 서사를 지향한다. 하여 장르문학이 사건을 중심에 놓은 전개를 펼쳐 보인다면 배명훈의 작품은 사건보다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대적인 비교일 뿐 순문학 모두 이미지 연상 부재의 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배명훈에 대한 평가는 그의 작품이 가진 모호함 혹은 이중성, 궁극적으로는 경계 파괴에 대한 것이 많다.

2010년 젊은작가상의 심사평을 예로 들자면, 소설가 신경숙은 <안녕, 인공존재!>를 두고 ‘다른 별에서 써가지고 온 것 같은 작가의 전문가에 육박하는 지식과 문학 텍스트 안에서 흔히 접하지 못한 서사의 신선함’이라 평했고 소설가 윤대녕은 ‘장르소설이 갖는 진부함과 통속성을 가볍게 극복하면서 존재론적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존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사유가 결국 이 작품의 주제로 귀결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독창적이고 참신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문학평론가 신형철(<몰락의 에티카>)은 ‘우리 문단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최근 들어 조금씩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종류의 상상력으로 씌어진 기발한 소설이다. (중략) 우리 문학에서 지금 절실한 것은 한 편의 소설을 구성하는 ’발상체계‘ 자체의 확장이라고 보는 시각에서는 배명훈이라는 작가의 등장은 희소식이다.’라면서 ‘성급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한국의 테드 창이 되기를 기대 해봐도 좋을 것 같다.’고 극찬했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펼친 지 이제 고작 7년. 그동안 그는 쉽 없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지만 유독 장편소설만은 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더욱 ‘한국의 테드 창’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배명훈의 말에 따르면 올해 11월 정도면 그의 장편소설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난해 6월 배명훈과 가졌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장편소설에 대해 “15만년 뒤 어느 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긴데 다른 외계행성과 다른 점이라면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을 쓰는 곳이다. 거기에는 신이라고 알려진 행성이 궤도를 돌고 있는 스위치가 꺼져 있는 상태다. 그렇게 잠든 신에게 도달하려는 사람의 이야기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출간일까지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그 후로 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 전에 먼저 배명훈의 단편집을 만날 수 있다. 다가오는 6월, 2편의 미공개 단편과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안녕, 인공존재!>를 포함해 모두 6편으로 이뤄진 <안녕, 인공존재!> 표제의 단편집이 나올 예정이다. 이 작품들 역시 SF적인 설정에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글로써만 표현 가능한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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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5.24)

하야시 가이조로 보는 한일 탐정영화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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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는 ‘하야시 가이조와 탐정영화전’을 상영했다. 하야시 가이조 감독은 데뷔작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1986) 이후 줄곧 탐정영화 외길 인생을 걸어온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중 사립탐정 ‘하마 마이크’ 시리즈는 대중적으로 가장 크게 흥행한 작품으로 꼽힌다. <내 인생 최악의 시간>(1993), <아득히 먼 시대의 계단을>(1994), <덫>(1995) 모두 3편으로 구성된 시리즈는 주인공의 이름만 보면 ‘하드보일드 소설의 제왕’ 미키 스필레인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극중 하마 마이크(나가세 마사토시)는 미키 스필레인 소설의 대표적인 탐정 캐릭터 ‘마이크 해머’와 극중 배경인 ‘요코하마’를 혼합한 이름이다.  
 
스필레인의 영향력은 단순히 마이크 해머의 이름을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야시 가이조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는 필립 말로우와 같은 탐정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필립 말로우는 일본식 발음이라든가 이름으로 바꾸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반면 하마 마이크는 실제 존재하는 이름은 아니지만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왠지 있을 법한 느낌의 이름이기 때문에 차용을 했다.”는 것. 그래서 스필레인 원작의 마이크 해머가 폭력을 휘두르는데 거리낌이 없고 마초적인 것에 반해 하마 마이크는 여성적이고 섬세한데다가 굉장히 패셔너블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대개의 탐정소설이 나이 많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는 것에 반해 하야시 가이조는 하마 마이크를 탐정이 되기 직전 혹은 바로 직후의 나이대로 설정함으로써 이 시리즈를 성장물로 기능토록 한 까닭이다.

오히려 하마 마이크 시리즈의 계보는 스필레인의 해머가 아니라 스즈키 세이준의 <탐정 사무소 2-3 죽어라 악당들>(1963)의 주인공 에이스 조(시시도 조)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에이스 조가 하마 마이크의 스승으로 삼부작에 모두 등장하는데 하야시 가이조는 “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시시도 조가 나오는 영화사 닛카츠의 무국적 액션 시리즈를 의식해서 만든 부분이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시시도 조는 자국에서 하나의 장르라고 인식될 정도로 일본 액션물의 상징 같은 배우다. 그가 맡은 역할은 주로 멋진 악역에 쏠려 있었는데 시시도 조가 출연했던 작품 중에 거의 유일하게 탐정으로 나오는 영화가 바로 <탐정사무소 2-3 죽어라 악당들>이다. 하야시 가이조는 이 같은 설정을 살려서 그가 나이를 먹으면 하마 마이크의 스승이 되어있는 것으로 둘의 관계를 묘사했다고 전한다.

일본 탐정영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여기에 탐정물로는 접하기 힘들었던 청춘물을 접목한 까닭인지 하마 마이크 시리즈는 이후 탐정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 내 다른 감독들에 의해 TV 시리즈가 제작됐으며, 아오야마 신지(<유레카><새드 배케이션>)의 경우, 하마 마이크를 너무나 좋아해서 외전격인 <이름 없는 숲>을 만들기도 했을 정도다. <철남><동경의 주먹><총알발레> 등의 감독으로 유명한 츠카모토 신야는 <내 인생 최악의 시간>과 <아득히 먼 시대의 계단을>에 연이어 출연하며 영화의 꿈을 키운 경우다. 실제로 신야는 고등학교 때 하야시 가이조가 만든 프로모션 비디오를 보고 영화감독이 돼야겠다고 결심을 했단다. 이에 대해 하야시 가이조는 “하마 마이크 시리즈를 만들 때만 해도 감독의 재능보다는 배우의 재능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에서 만들어진 탐정물은 츠카모토 신야가 마츠다 류헤이를 캐스팅해 만든 <악몽탐정>(2006)이 유일하다. 그 정도로 하야시 가이조와 츠카모토 신야는 개인적인 친분뿐 아니라 일본 탐정영화 계보에서도 일종의 부자(父子) 관계를 점한다.

사실 ‘하야시 가이조와 탐정영화전’이 열리기 전까지 한국에서 하야시 가이조의 작품은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와 <20세기 소년 독본>(1989)만이 영화제 등을 통해 간간히 소개된 것이 전부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1990년대 이후 씨네필을 중심으로 주로 해외에서 직접 공수해온 비디오나 복제 비디오를 통해 왕성히 소비됐다.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종종 하야시 가이조 감독의 흔적이 눈에 띠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박대민 감독은 <그림자 살인>(2009)의 서커스 장면을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의 분위기에서 차용했고 <기담>의 정범식 감독 또한 하야시 가이조의 작품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개인적으로 하마 마이크 시리즈를 보며 떠올린 것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였다. 박찬욱의 영화에는 하마 마이크 시리즈의 인용이 눈에 띤다. (박찬욱의 영화는 복수의 대상 혹은 어떤 가치 등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점에서 탐정영화적 요소를 띠고 있다.)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의 하마 마이크가 왼쪽 손바닥에 부상을 입어 영화 내내 깁스를 하고 나오는 설정은 <친절한 금자씨>(2005)의 새끼손가락을 깁스한 금자씨와 겹치고, <아득히 먼 시대의 계단을>의 악당 보스 하얀 남자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에 등장하는 하얀맨의 원조인 듯 하며, <덫>의 말 못하는 동생과 공장에서 일하는 누이의 관계는 <복수는 나의 것>(2002)의 공장에서 일하는 남동생과 몸져누운 누이의 변주로 보인다. 이것이 우연인지, 의도적인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만큼 하야시 가이조가 한일 양국의 영화에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영화가 궁금한가? 조만간 극장에서 하야시 가이조 감독의 최근 영화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Tip! 100인의 탐정을 다룬 ‘탐정사무소5’ 시리즈

사용자 삽입 이미지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하야시 가이조 감독의 영화가 무엇이냐고? ‘탐정사무소5’ 시리즈는 일본에서 침체된 탐정영화의 붐을 일으키기 위해 하야시 가이조 감독이 기획한 시리즈다. 탐정사무소5에 근무하는 탐정 500부터 599까지 100명의 사연을 모두 100편에 걸쳐 소개하겠다며 야심차게 기획한 시리즈다. 지금까지 모두 극장판 3편과 인터넷 단편 51편이 제작됐다. 매 작품 주인공 탐정이 바뀌며 사건을 해결하는 동시에 우정과 사랑과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국내에 수입이 결정된 작품은 첫 번째 극장판 <카인과 아벨>(2007)과 세 번째 극장판인 <코드>(2009)다. <카인과 아벨>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코드>는 오손 웰스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을 오마주함으로써 탐정영화에 대한 전통을 일본의 오늘에 맞게 되살렸다. 올 여름쯤 국내 극장가에서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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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2010년 6월호

마쓰모토 세이초, 일본 대중소설의 빛나는 별

(장르의 사소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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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포커스>(2009) 개봉 소식을 듣고 처음엔 시큰둥했다. 이누도 잇신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영화가 원작 삼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동명소설이 국내에는 <제로의 초점>(이하 ‘<제로 포커스>’ 통일)으로 소개된 까닭에 관계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웬 마쓰모토 세이초 원작의 영화? 하실지 모르겠지만 2009년은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1909.12.21~1992.8.4) 탄생 백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해 일본에서는 <점과 선><야광의 계단>(이상 TV아사이), <역로>(후지TV), <검은 회랑>(니혼TV) 등 세이초의 대표작들이 새롭게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제로 포커스> 역시 그중 하나였다.

흔히 마쓰모토 세이초를 일러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부’라고 일컫는다. 사회파 미스터리는 사회구조가 개인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추리물로 구성한 작품을 말한다. 세이초는 다름 아닌 사회파 미스터리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제로 포커스>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다만 흥미롭게도 이누도 잇신이 원작의 이야기를 살짝 변용해 사회파 미스터리적인 면에 구두점을 찍었다면 세이초는 단 한 번도 사회파 작가라고 자처한 적 없이 평생 300여 편에 달하는 소설을 썼다는 점이다.

<제로 포커스>는 실종된 남편을 찾아 나선 부인의 사연이 주를 이룬다. 이것이 ‘미스터리’의 한축을 담당한다면 ‘사회파’적 의미는 이들 부부가 중매로 만나 결혼한 지 얼마 안됐다는 설정에서 발생한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1950년대 횡행하던 ‘중매결혼’이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전제하지 못했다는 점에 착안, 미스터리의 과정을 부인이 남편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사연으로 채웠다. 그에 반해 이누도 잇신은 원작의 시대적 배경이 전후 일본 부흥기였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팡팡걸’로 대변되는 미군 상대 양공주들의 희생이 지금의 일본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무난한 만듦새를 보였지만 세이초의 세계를 온전히 되살리는데 실패한 인상을 받았다. 뭐랄까,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사회파의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세이초는 영화에서처럼 거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가는 아니었다. 인물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사회파적인 면모가 드러났던 것뿐이지 그의 작품은 오히려 개인사(史)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누도 잇신은 개인의 사연을 사회적으로 확장, 의미 부여에 너무 힘을 쏟은 탓에 세이초 특유의 소소한 맛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2~3년 전부터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화차><모방범>)에게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녀’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개인의 일상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작풍이 세이초와 닮았기 때문인데 정작 미야베 미유키 본인은 완전히 수긍하지 않는 눈치다. “일본에서도 제 소설이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점에서 종종 마쓰모토 세이초와 비교되곤 해요. 하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는 작품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일본의 추리소설사(史)에 길이 남을 인물이면서 대표적인 논픽션 작가이고 일본 고대사 연구도 하셨죠. 마쓰모토 세이초가 큰 부분을 다루고 있다면 저는 그 중 아주 작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에요.”   

미야베 미유키의 말처럼 추리는 물론, 시대극에 역사소설, 그리고 고대사 연구까지, 세이초가 후대에 미친 영향은 단순히 사회파 미스터리에만 국한돼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데뷔작은 미스터리가 아니라 역사소설인 <사이고사쓰>이었다. 그런 세이초의 이력을 감안해 1994년에 제정된 ‘마쓰모토 세이초 상’은 (2005년부터 ‘장편 엔터테인먼트 소설’로 범위를 확대했지만) 장편 미스터리와 역사 시대 소설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니까, 마쓰모토 세이초를 사회파 미스터리에만 국한하는 건 일종의 편협한 시각이다. 대신 그의 세계를 하나의 단어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인간’, 더 정확히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세이초의 작품에서 전면에 나서는 주인공은 사회에서 소외받거나 비주류이고 웬만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인물이 대부분이다. 인간 본위의 화법을 추구하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출현은 이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그의 작품에서 사건 해결은 첨단의 과학수사나 주인공의 특출한 능력이 아닌 철저히 인간 행동에 대한 세심한 관찰에서 비롯된다. 가령,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에서는 지방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는 3류 작가가 처음으로 독자를 얻게 될 때 생기는 감정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고 <일 년 반만 기다려>의 경우, 악인의 시점에서 글을 서술함으로써 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이들의 행동마저도 이해하려고 든다. 그래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에는 절대 악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 복잡한 사회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간 모두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이다.

혹자는 세이초의 작품 성향을 두고 사회파 대신 ‘생활파’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장르에 연연하지 않고 인간을 묘사하는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더 없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는 “하늘을 보면 언제나 태양이며 달을 볼 수 있듯이 거기엔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군’이 있었습니다.”라고 표현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의 등장은 일부마니아만을 위한 ‘이단의 문학’이었던 추리소설이 ‘대중의 문학’으로 탈바꿈하는 현대 문학사 최대의 사건이었다.”는 평가는 마쓰모토 세이초를 단순히 추리작가의 범주에 머물게 하지 않는 것이다.



Tip! 한국에도 마쓰모토 세이초 백주년 기념 도서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9년 이전 국내에 소개된 세이초의 작품은 <점과 선> <모래 그릇> <바다에 남겨진 유언> 등 몇 편에 불과했다.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북스피어, 이하 ‘<세이초 컬렉션>’)이 출간되면서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2004년 일본에서 발표됐던 <세이초 컬렉션>이 세이초 탄생 백주년을 맞아 국내 출간된 것. 미야베 미유키가 직접 책임 편집을 맡아 작품을 엄선하고 해설까지 덧붙인 까닭에 세이초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같은 해 나온 <검은화집>(태동출판사) 역시 세이초의 단편집으로, 역사소설, 논픽션까지 아우른 <세이초 컬렉션>과 달리 추리소설과 사회파 미스터리 위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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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호

그래도 한국 장르문학은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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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소식부터 전하고 시작해야겠다. 나는 지난 번 ‘<판타스틱>이여, 영원하라!’ 기사를 통해 장르문학 월간지 <판타스틱>의 복간을 기뻐하며 척박한 국내 장르문학 시장에서 되도록 오래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전에 쓴 글이었는데 내용이 무색하게 <판타스틱>의 재휴간 소식이 들려왔다. <판타스틱> 편집부가 블로그(http://blog.fantastique.co.kr/)를 통해 휴간 공지를 띄운 것. ‘보다 근본적인 검토와 장기적인 방향을 재설정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월간 <판타스틱>을 휴간하게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문구를 보면서 국내 장르문화의 빈곤함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

개인적으로 ‘국내 장르문학 시장이 살아야 <판타스틱>이 살고 <판타스틱>이 살아야 국내 장르문학 시장이 사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판타스틱>에 거는 기대가 컸지만 예상치 못했던 휴간이 장르문학 시장의 절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믿고 싶다.) ‘장기적인 방향을 재설정하기 위해’ 이 말을 긍정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작은 규모나마 국내 장르문학 시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살 길 찾기에 대한 방안 마련이 가능하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이는 중견 규모의 장르문학 출판사들이라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일 텐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때론 어떤 트렌드를, 혹은 어떤 징후를 나타내기도 한다. 

현재 장르문학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화두는 ‘중편’이다. 이미 블로그나 트위터가 일상화된 지 오래인데 출판계 역시 짧은 글에 익숙한 독자들의 성향에 맞추기 위해 단편에 많은 공을 들인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따라 단편선 출간이 유행을 넘어 대세로 굳어진 이때 중편의 출현은 현재 장르문학 출판사의 관심사가 어디 있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대개의 장르출판사들이 중편에 대해 보이는 관심은 말 그대로 ‘관심’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지만 중편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서만큼은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야베 (미유키) 월드’ 시리즈로 유명한 출판사 ‘북스피어’가 로저 젤라즈니의 중편 <집행인의 귀향>을 선보이면서부터 하나둘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북스피어는 지난 1월 말 중편을 모은 문고 형식의 총서 ‘에스프레소 노벨라’(Espresso Novella)의 준비호에 해당하는 첫 번째 책(출판사에 따르면 0호)으로 <집행인의 귀향>을 출간했다. 이는 장편과 단편선 위주로 출간이 이뤄지고 독자의 관심이 모아지는 국내 장르문학 시장에서 획기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순문학에 비해 여전히 자리 잡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르문학 시장에서, 더군다나 중편의 가치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의 출간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목표지향점이 보인다. 장르문학의 출간은 대개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발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에스프레소 노벨라는 장르문학에 입문하고픈 예비 독자를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스피어의 발행편집인 김홍민은 ‘Espresso Novella 출간에 부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렇게 얘기했다. “왜 장르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인가. 이 세계는 단순하게 말하면, 기존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자명해서 구획이 분명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너무 커서 잘 모르겠을 뿐인 그런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계를 궁금해 하는 독자들은 예상외로 많다. … (중략) 중편 분량의 소설 전집은 어떨까. 입이 딱 벌어질 대작들과 도통 어디다 써먹어야 할지 모르겠는 값비싼 장정의 도서들이 엄청나게 쏟아지는 오늘, 일단 분량 면에서 만만해 보인다. 가령 젤라즈니의 중편을 내면서 뒤쪽에는 젤라즈니에 관한 다양하고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덧붙인다면. … (중략) 독자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 말하자면 이런 ‘콘셉트’의 전집인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중편에 관심을 쏟는 장르문학 출판사의 동향에 영화계는 겉으론 무심한 척 실제론 예의주시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뒤따라야 할 듯하다. ‘충무로의 장르탐험가’ 연재를 통해 영화계가 국내 장르문학에 보이는 관심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언급한 적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한국 영화계가 전반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다고는 해도 이건 이상한 일이다. 한두 편도 아니고 열편이 넘는 장르소설이 영화판권 계약을 맺은 건 잘 알려진 사실인데 제작 소식 하나 들려오지 않는 건 단순히 시장의 문제로만 넘기기엔 영화계 내부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시나리오 작가의 부재와 능력 부족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장르소설 팬의 입장에서 참 안타까운 노릇이다. 단편의 경우, 장편 영화 분량으로 늘이는 역량이 부족해서, 장편의 경우, 방대한 양을 2시간의 상영시간으로 압축하는데 애를 먹어서, 라는 게 영화계와 장르문학 출판사 관계자들이 전하는 장르소설 영화화의 지지부진한 이유다. 영화계가 중편 소설의 등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그래서다. 중편은 시나리오로 옮기는데 무엇보다 가장 적합한 분량을 갖추고 있는 까닭에 단편과 장편에 비해 각색 과정에서 생기는 영화적 상상력의 부재에 따른 위험요소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영화계의 생각이다.

이는 한국의 장르소설에 해당하는 경우일 텐데 안 그래도 이종호(<귀신전><분신사바>), 김종일(<손톱><몸>), 강지영(<심여사는 킬러><굿바이 파라다이스>) 등이 소속된 공포문학 창작 집단 매드클럽(http://themadclub.net)은 올 여름 ‘공포 문학 중편 컬렉션’(이하 ‘공포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중편소설 단행본 열권을 출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공포물을 대중영화의 주력 장르로 인식하고 있는 영화계가 눈독을 들일만한 콘텐츠임이 자명하다. 다만 사소한 오해라도 줄이기 위해 전제하자면, 공포 컬렉션은 영화화를 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프로젝트가 아니다. 공포 컬렉션은 오히려 국내 장르문학이 한 번에 열권 나오는 게 한국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공포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을 사건이라 할만하다.

이종호 작가는 지난여름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공포 컬렉션을 언급하며 이런 얘기를 했다. “단편을 쓰던 작가들에게 중편은 장편으로 넘어가기 위한 안정적인 징검다리 역할로 기능하게 된다. 워낙 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주목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공포와 스릴러를 비롯하여 국내 장르소설의 형태가 단편선을 통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획된 공포 컬렉션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단편에서 중편으로 공포문학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는 과정에 있음을 증거한다. 여기에 중편을 선호하는 영화계가 그들의 바람처럼 성공적인 영화화를 이룰 경우 이에 맞춰 한국의 공포문학이 갖게 될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요는, 우울한 소식으로 기사의 포문을 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문학 시장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장르 출판사의 새로운 시도는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는 중이다. 물론 워낙 척박한 시장이다 보니 <판타스틱>의 재휴간처럼 안타까운 결과가 초래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의 지점을 교훈삼아 리부팅은 여지없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이번에는 ‘중편‘이란 형태로 모양을 갖춰가고 있다. 국내 장르문학 시장에는 여전히 희망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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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4.5)

아르센 뤼팽, 이렇게 말 많은 캐릭터일 줄이야

(장르의 사소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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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그룹 카라의 신곡 ‘루팡’이 화제다. 개인적으론 노래보다 노래를 위해 치장한 패션에 더 눈이 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블랙 일색에, 일명 ‘루팡 모자’로 포인트를 준 그녀들의 패션은 루팡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섹시한 이미지를 적극 차용한 모양새다. 여기에 몸의 라인을 강조한 댄스까지 더해지면 나 같은 아저씨는 숨이 꼴까닥(?) 넘어갈 지경이다. 다만 장르소설의 팬 입장에서 다소 왜곡된 루팡의 이미지를 바로 잡고픈 마음도 간절해진다. 일찍이 일어 번역본이 중역된 까닭에 원작의 ‘뤼팽’이 국내 독자들 사이에서 ‘루팡’으로 불린 것처럼 쾌활한 건달 형(形)에 가까운 뤼팽이 한국에서는 유독 말없는 쾌걸 조로에 가까운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아르센 뤼팽(Arsene Lupin)은 프랑스 추리소설이 영국의 셜록 홈즈를 겨냥한 대항마였다. (뤼팽의 탄생과 관련한 비사는 아래의 Tip! 참조) 외모에서부터 성격까지, 뤼팽은 모든 면에서 홈즈와 정반대다. 홈즈의 수사방식이 과학에 기초한 정공법이라면 뤼팽은 대도(大盜)답게 변장과 필체 위조 등 술수에 능하다. 게다가 홈즈는 여가시간도 다가올 사건에 대비하는 외골수인 반면 뤼팽은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낭만파다. 그래서 홈즈가 사건의 막간 그 한가로운 정적을 견디다 못해 마약을 피우거나 황량한 음의 바이올린을 켜는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라면 뤼팽은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자살까지 기도하는 감상적인 인물에 가깝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두드러진 국가적 특징이 각각 홈즈와 뤼팽의 캐릭터에 투영된 결과다. 

영국은 음산한 기후를 가진 섬나라다. 비와 안개를 끼고 사는 영국인들은 대체로 성격이 차갑고 집착하는 면이 강하다. 섬이라는 특수한 지형 탓에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쟁을 자주 시도했는데 우수한 무기 확보는 자연스럽게 과학의 발달을 가져왔다. 과학은 증거를 필요로 하는 법. 홈즈가 연상된다. 그에 반해 프랑스는 기후가 온화하고 먹을 것이 풍부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철학적인 사고의 발달로 문화에 탐닉하게 되고 감상에 젖는 시간도 많아진다. 낭만적이다. 다만 낭만을 유지하기 위해선 나라가 평안해야 한다. 프랑스 민중들은 부패한 정권이 등장할 때면 봉기를 일으켜 사회의 안정을 꾀했다. 부르주아를 농락하는 낭만파 괴도 뤼팽은 그대로 프랑스인의 피와 뼈와 살이고, 무엇보다 정신이었다.

프랑스의 조상은 골족이라 불리는 골루와즈(Gauloises)다. 이들은 매우 수준 높은 문화를 자랑했을 뿐 아니라 기질 상 토론을 좋아하는 민족으로 유명하다. 크게 떠들고 수다를 떠는 골루와즈의 성격은 뤼팽에게서도 발견된다. 아무래도 한국 독자들에게 뤼팽은 어둠 속의 이미지로 깊이 인식된 까닭에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사실은 쾌활하고 낙천적인데다가 그렇게 말이 많은 캐릭터일 수가 없다. 셜록 홈즈 소설과 비교해도 확연한 것인데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아르센 뤼팽 소설은 대사 반, 지문 반일 정도로 ‘말이 많다.’ 홈즈가 수사 과정에서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느라 말을 아끼는 것과 달리 (그래서 홈즈 소설은 사건 설명을 위한 지문의 비중이 크다.) 뤼팽은 여자의 시선에 민감하고 ‘작업’에 능한 성격상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르센 뤼팽 전집‘의 번역가로 유명한 성귀수는 아르센 뤼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뤼팽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가브로슈 같은 인물이다. 건달이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는 건달. 쾌활하면서 농담도 잘하고 낙천적인 데다가 호통도 잘 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소설에 언급된 적은 없지만 내 생각에 뤼팽은 O형일 것 같다. (웃음) 근데 한국인이 알고 있는 뤼팽은 신출귀몰형의 조로 같은 인물로 깊게 인식된 것 같다. 번역을 하다보니까 그렇게 수다쟁이일 수가 없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뤼팽 영화를 보면 그런 이미지가 살아 있다. 국내 케이블 채널에서도 방영한 적이 있는데 이를 본 한국 사람들은 전부 실망하더라. 어떻게 뤼팽이 수다스럽고 까불거릴 수 있느냐고.”

지난 2004년은 아르센 뤼팽의 탄생 백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의 장 폴 살로메 감독(<벨파고>)은 <아르센 뤼팽>을 만들었다. 뤼팽 전집 중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저자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 시리즈 중 <기암성>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와 함께 이 작품을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뤼팽 역은 프랑스의 꽃미남 배우로 유명한 로맹 뒤리가 맡았다. 소설 속 뤼팽이 중간 정도의 신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 까닭에 감독은 아담한 체구를 가진 로맹 뒤리가 적역이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당시 로맹 뒤리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높았던 편이라 모 영화사가 <아르센 뤼팽>의 수입을 추진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성사되지 못했는데 한국인이 갖고 있는 뤼팽의 이미지와 다르기 때문에 국내 흥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뤼팽은 키가 훤칠하고 말 못할 사연을 지닌데다가 섹시한 이미지까지 겸비한 ‘루팡’인 것이다.


Tip!  뤼팽은 어떻게 홈즈에 필적할만한 캐릭터가 되었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프랑스 대중잡지 ‘주 세 투‘(ju sais tout)는 셜록 홈즈에 필적할만한 캐릭터가 필요했다. 영국의 ‘스트랜드 매거진’(Strand Magazine)을 통해 홈즈가 엄청난 인기를 얻은 것처럼 ‘프랑스의 홈즈’를 창조해 재미를 보고 싶었다. 주 세 투는 그들의 요구조건을 모두 받아들일 무명의 작가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선택된 작가가 바로 모리스 르블랑. 이에 르블랑은 <괴도 신사 뤼팽>이라는 단편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주 세 투의 제안과 달리 아르센 뤼팽은 홈즈와 같은 탐정이 아니라 도둑이었다.

기존의 추리소설은 철저히 선한 의지를 가진 주인공이 부르주아의 가치를 폄훼하는 악인을 응징하는 해피엔딩 구조 속에 이뤄졌다. 그런데 뤼팽은 범행대상을 부르주아로 겨냥한 도둑이었고 심지어 그를 추적하는 경찰과 탐정(그중에는 홈즈도 있었다!)을 보기 좋게 따돌렸다. 선인과 악인의 경계를 파괴한 혁명적인 캐릭터 설정에 주 세 투는 게재 여부를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었다. 대신 르블랑에게 뤼팽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몇 편을 더 만들어 보라고 제안하였다. 르블랑은 10편이 넘는 작품을 더 만들었고 그 후 어느 정도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한 주 세 투는 1904년부터 뤼팽 시리즈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년이 훌쩍 지난 지금 뤼팽은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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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호

SF는 좌우(左右)를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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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월 과천의 국립과천과학관에서 ‘2010 국제SF영화제’(이하 ‘SF영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수석프로그래머 겸 집행위원장 내정자인 박상준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어떤 영화제로 만들 계획인지, 어떤 영화를 상영할 예정인지, SF영화제 전반에 대해 물으러 간 자리였지만 결과적으로 ‘SF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 온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국내에서 SF만큼 장르에 대한 개념이 극단적으로 왜곡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대해 박상준은 사람들이 SF에 대해서 갖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관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 번째가 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것, 두 번째는 과학기술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장르, 세 번째는 SF팬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건데, 과학적인 묘사라든가, 그런 쪽의 아이디어가 뛰어나면 다른 부분은 떨어져도 용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이는 수용하는 측의 입장에서 오로지 두드러진 몇 개의 특징만 가지고 SF를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로봇이나 우주선이 등장하는 까닭에 유아적인 장르로 치부한다든가, Science-Fiction, 즉 과학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장르로 미리부터 손사래를 치는 것이 바로 그런 예라 할만하다. 거꾸로 보자면, SF에 대한 스펙트럼이 유아적 상상력부터 첨단의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그만큼 다양하고 넓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던 테드 창(<당신 인생의 이야기>)은 “SF는 반드시 변화하는 것을 다뤄야한다.”고 말했다. 아, 물론 변화가 진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테드 창이 말한 변화의 주체는 인간과 인간이 속한 사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SF는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안 그래도 미국이 국제적으로 점하는 독점적 지위가 각종 전쟁으로 흔들리고 있는 요 근래 우리가 스크린에서, 책에서 만났던 대표적인 SF 작품들은 주요하게 미국의 팽창주의를 배경 삼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영화에서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과 <스타트렉: 더 비기닝>이 남자들의 유년시절 판타지를 현실로 끌어내 전쟁을 미화했다. 또한 지난 한해 ‘웃기는 SF소설’로 화제를 모았던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은 주인공 노인이 젊은 육체를 받는 조건으로 군 입대 후 외계생물과의 전쟁을 통해 전쟁을 혐오하게 되고 인간의 가치를 더욱 그리워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렇듯 SF가 다루는 스펙트럼은 좌(左)에서부터 우(右)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실제로 베트남전 당시만 해도 아이작 아시모프(<아이, 로봇><파운데이션>)를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이 월남전 참전 반대 광고를 실으면 그 반대편에서 대표적인 우익 리버럴리스트인 로버트 하인라인(<스타쉽 트루퍼스:우주의 전사><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포함한 몇몇 작가들이 찬성 광고를 싣기도 했을 정도다. 모든 장르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SF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고 이에 반응하는 의견 역시 좌우를 가리지 않는 만큼 그 개념에 대해서는 가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하겠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 역시 SF팬덤에서 오랫동안 논쟁을 거듭하고 있는 사안인데) SF와 판타지의 비교 역시 무 자르듯 구별하는 것이 그리 옳지만은 않아 보인다. 테드 창의 표현을 빌리자면, “판타지는 모든 이야기에 적합한 장르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바통을 이어받아 박상준의 표현을 이어보자면, 그렇기 때문에 “상상문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SF와 판타지의 경계는 사실 굉장히 모호한 편이다.” 오히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SF와 판타지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작품이 트렌드처럼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는 까닭에 (영화로 치면 <이터널 선샤인>이나 <스트레인저 댄 픽션> 같은 작품이, 소설로 치면 배명훈의 <타워> 같은 작품이 이에 속한다.) 더욱더 장르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고수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박상준은 말한다.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SF가 또 한쪽 끝에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 나머지 모든 작품들은 그 선상 어딘가에 위치하는 거지. 모든 세상일들이 그렇듯이. (웃음) SF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준다. 나무를 논할 때 논하더라도 큰 숲을 보는 시야를 갖는 게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미래에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과학 기술의 발달 속도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세대교체 속도를 앞질러 버렸다.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숲을 보는 시야를 가져야‘만’ 한다. SF쪽에서는 이런 담론들을 굉장히 구체적이면서 진지하게, 깊이 있게 계속해서 탐구하고 있다. 내가 SF분야에서 일한 지 20년이 다 되가는데 초창기에는 나 역시도 작품 하나를 두고 SF냐, 아니냐를 따지는데 민감하기도 했고 집착도 했고 고집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 자체는 비본질적인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상준이 생각하는 올해의 SF영화제는 SF안에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다소 중립적인 행사로 기획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SF문화는 마니아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영화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SF를 알리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보다 중립으로 가는 것이 취지에 맞는다고 보는 것이다. 영화제의 이름을 내걸고 진행하는 행사이지만 영화뿐 아니라 소설과 만화, 전시 등을 아우르고 정통 SF뿐만 아니라 판타지 요소가 다분한 영화도 상영할 예정이며 시대의 변화를 담고 있는 이야기라면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 박상준이 이번 SF영화제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주제다.

한마디로 ‘SF에 대한 모든 것’이 될 이번 SF영화제는 SF와 관련한 모든 콘텐츠, 모든 사람들, 모든 경험들을 맛볼 수 있는 자리다. 결국 SF를 좋아하거나 과학 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SF문화를 다양하게 누리게 함으로써 탈골된 SF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을 기회가 될 전망이다. “그냥 SF를 즐기자, 작품을 즐기자. SF에 대한 개념은 필요할 때 고민하고 그저 재밌게 영화제를, 행사를 즐겼으면 좋겠다.” 박상준이 올해 SF영화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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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3.17)

필립 K.딕, 작가들이 더욱 사랑하는 작가

(장르의 사소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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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 미발표된 작품은 원제 그대로 표기하였습니다.

필립 K.딕의 <유빅> 국내 출간 소식을 듣고는 의아했다. 필립 K.딕이 국내 대중들 사이에서 그리 인기 있는 작가가 아닐뿐더러 그의 소설은 대개 원작영화의 개봉에 맞춰 출간된 것이 대부분이었던 까닭에 다소 뜬금없이 느꼈던 것이다. 그와 관계없이 장르문학을 다루는 출판사라면 필립 K.딕은 굳이 장삿속이 아니더라도 의무감처럼 반드시 다뤄보고픈 작가 중 하나다.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누구도 모방하기 힘든 세계를 창조한 독보적인 작가이기 때문이다.


대중과 비평 모두 외면하다

필립 K. 딕은 1952년 데뷔한 이래 1982년 <The Owl in Daylight>를 쓰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30년의 작가 생활 동안 단 한 편의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일례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이하 <전기양>)에 얽힌 일화는 그의 작가로써의 삶이 얼마나 기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 유명한 <전기양>은 K.딕의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다만 처음 발표됐던 1966년만 하더라도 그의 작품은 주류 비평가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작가 본인은 신경 쇠약 증세를 보이며 약물에 의존한 삶을 살기에 이른다. 오히려 필립 K.딕은 동료들이 먼저 알아봐준 작가 중의 작가였다. 영국의 SF작가 브라이언 올디스(<온실>)는 “현대 세계의 불안을 그려내는 대가급의 작가”라고 그를 추켜세웠고 <전기양>을 읽고 필립 K.딕의 세계에 푹 빠졌던 존 레논은 <유빅>의 영화 제작을 추진한 적도 있었다. 

<전기양>의 발표 당시 갓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로저 젤라즈니(<드림 마스터>)는 그중 가장 열렬한 독자였다. <전기양>을 읽고 난 후의 느낌에 대해 “강렬한 은유를 담은 시를 읽었을 때와 비슷하다.”고 극찬했고 1976년에는 그와 함께 <Deus Irae>을 함께 집필하기도 했으며 후에 <블레이드 러너>의 개봉과 함께 <전기양>이 재출간됐을 때는 직접 서문을 쓰기도 했을 정도다.

이처럼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손꼽히지만 필립 K.딕이 <전기양>으로 누린 재정적인 혜택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이야 걸작으로 평가받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1982년 6월 미국 개봉 당시만 해도 ‘올 여름 최대 실패작’이라는 멍에를 짊어지며 할리우드에 재앙을 안겨줬던 작품이었다. 필립 K.딕은 <블레이드 러너>가 완성되기 전 20분가량의 영상을 보고 꽤 흡족해했다. 하지만 시사회 직전, 병원에서 숨을 거두며 안타깝게도 그 후에 이뤄진 영화의 재평가로 얻게 될 작가적 성공을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후에야 인정받다

필립 K.딕은 오히려 사후에 더 유명세를 치룬 작가다. 영화의 참패에도 불구, <블레이드 러너>가 비디오 출시 이후 극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필립 K.딕의 작품 역시 재조명받게 됐다. 생전에 발표하지 못했던 미공개 소설들이 출간 붐을 이루었고 영화 판권 계약도 경쟁적으로 이뤄졌으며 1982년에는 ‘필립 K.딕 상’까지 제정될 만큼 그의 이름은 SF와 동일한 의미로 평가받는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한창 활동 중인 SF소설가들에게 ‘영향 받은 작가’를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반드시 필립 K.딕을 꼽는다. 개인적으로 2008년과 2009년 각각 베르나르 베르베르(<개미>)와 테드 창(<당신 인생의 이야기>)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필립 K.딕에게서 받은 영향을 숨기지 않았다.

<신>의 완간으로 국내를 찾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필립 K.딕을 꼽으면서 “필립 K.딕의 철학이 맘에 든다. 그는 독자들이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로봇의 감정 같은 것을 소재 삼아 문제를 제기했다.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가 제기한 문제들을 새롭게 해석해 보여주고 있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방문했던 테드 창은 국내 독자들에게 <Life Cycle of Software Object>을 낭독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작품을 두고 “필립 K.딕의 <전자 개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단편”이라 소개하기도 했다.

필립 K.딕에 대한 애정과시는 비단 SF작가에만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유명한데 리처드 링클레이터(<비포 선라이즈>)와 찰리 카우프먼도 그중 하나다. 특히 이 둘은 <스캐너 다클리>의 영화화를 두고 악연을 맺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연출을 맡은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원작의 주제가 찰리 카우프먼이 해온 그간의 시나리오 작업(<존 말코비치 되기><어댑테이션>)과 일맥상통하다는 점에서 각색을 맡겼지만 맘에 들지 않았던 것.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문제의 시나리오를 깡그리 무시한 채 직접 각색까지 맡아 영화를 완성했고 카우프먼은 이를 계기로 그간 꿈꿔왔던 연출에 대한 욕심을 더욱 굳건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첫 번째 결실이 바로 얼마 전 국내에 개봉했던 <시네도키, 뉴욕>이다.)


박찬욱, 필립 K.딕의 영화를 꿈꾸다

국내 영화인들 중에서 필립 K.딕에 대한 애정이 가장 높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박찬욱이다. SF광으로 소문난 박찬욱은 해외에서 만들고 싶은 영화 중 하나로 필립 K.딕의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다. <올드 보이> 개봉 당시 해외에서의 연출 의사를 타진해온 프랑스 제작자에게 “<전기양>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거 혹시 <블레이드 러너>의 리메이크 아니냐고. 설마, 그럴 리가.

“<블레이드 러너>를 원작에 가깝게 만드는 기획이었다. 원작소설은 액션영화 느낌이 덜한 대신에 데커드가 스스로 ‘레플리칸트가 아닐까?’하는 의문을 많이 담고 있다. 그 외에도 재미있는 소재가 굉장히 많다. TV에서 사이비종교 지도자가 진행하는 것 같은 프로그램도 나오고 흥미 있는 모티브가 참 많다.” 하지만 프랑스로부터 답변이 오지 않아 그 이상은 진행되지 못했다. “<매트릭스> 이후 SF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에 필립 K.딕 원작의 박찬욱 감독 연출의 작품은 그렇게 묻힌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SF를 좋아하는 팬으로써 국내 SF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유빅>의 출간 소식을 듣곤 뒤도 돌아볼 것 없이 대형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덥석 구입했더랬다. 어느 지인은 필립 K.딕이 그렇게 대단하냐며 나의 호들갑스러운 행동에 우스개처럼 핀잔을 주기도 했다. 웬만해선 신간을 바로 구입하는 편은 아니지만 필립 K.딕 만큼은 예외다. SF를 필두로 장르문학의 국내 독자층이 살얼음처럼 얇은 상황에서 필립 K.딕의 작품은 때를 놓치면 구입하기가 쉽지 않은 일종의 레어 아이템이다. 미국에서는 K.딕에 대한 비평서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여전히 찬밥 신세인 것이다.

‘장르의 아주 사소한 역사’는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라도 이끌어보기 위해 기획된 코너다. 이 기사를 통해 필립 K.딕도 그렇지만 조금이나마 장르문학에 관심을 갖는 독자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Tip!  필립 K.딕의 세계로 잠입한 맷 데이먼


사용자 삽입 이미지현재 할리우드에서 진행 중인 필립 K.딕의 영화화는 물경 10여 편에 이른다. 이미 촬영을 마친 동명 원작의 <Radio Free Albemuth>가 올해 개봉이 예정된 상태고 <Adjustment Team>을 원작으로 한 <The Adjustment Bureau>가 한창 후반 작업 중에 있다. 또한 리메이크가 결정된 <토탈 리콜>이 <이퀼리브리엄>의 연출가로 유명한 커트 위머를 각본가로 고용했으며 <King of the Elves> <Flow My Tears, the Policeman Said> <유빅> 등이 영화화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배우 폴 지아메티는 2006년부터 자신의 제작사에서 필립 K.딕의 전기 영화를 개발 중에 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The Adjustment Bureau>다. <오션스 트웰브>의 각본가 출신인 조지 놀피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등의 호화 캐스팅 덕택에 벌써부터 2011년의 기대작으로 손꼽힌다. 이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 조종된다는 이야기로, 원작의 미래 배경을 현대로 바꿔 맷 데이먼과 에밀리 블런트의 러브스토리로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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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2010년 3월호

<판타스틱>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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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의 장르탐험가를 연재하면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장르문학 월간지 <판타스틱>이었다. 지난해 6월 여름 호를 낸 이후 발행이 중단돼 독자들의 궁금증을 샀던 <판타스틱>이 시공사에 인수, 계간에서 월간으로 전환하며 올 1월에 복간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장르문학 독자들이 <판타스틱>의 복간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발행이 중단된 동안 <판타스틱>에 대한 소식을 듣기 위해 장르문학 출판사 관계자에게 ‘혹시 아는 얘기 없느냐‘며 옆구리(?) 찔러보고 해당 블로그(http://blog.fantastique.co.kr/)를 들락날락 거린 노력을 생각하면 감개가 무량할 정도다. 하지만 그것이 직접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감격에 비할쏘냐.

정성원 편집장은 2010년 1월호 데스크칼럼을 통해 복간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존망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험난했던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자니 감회가 깊어서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거창하고 웅장하지는 않을지라도 날이 갈수록 즐거움이 더해갈 월간 <판타스틱>의 앞날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벅차오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재발간사를 쓴 지 1년이 채 안되어 또다시 재발간사를 쓰는 희귀한 기록의 소유자가 되는 기쁨(?) 때문일까요. 조금은 비장하고 조금은 긴장되고 조금은 행복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치 연필로 연애편지를 처음 쓰던 때처럼 말이에요.”

정성원 편집장의 마지막 말을 나의 경우로 살짝 변형하자면, 2007년 5월 <판타스틱> 창간호 표지를 펼쳐볼 때의 기분은 마치 첫 번째 연애편지를 받고 봉투를 막 뜯는 설렘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는 (딴지일보의 편집장으로 유명했던) 최내현 발행인(현 번역가) 체제이던 시절인데 개인적인 친분으로 <판타스틱> 창간 소식을 누구보다 일찍 접할 수 있었더랬다. 그는 <판타스틱> 이전에도 <드라마틱>이라는 드라마 전문지를 발행하는 등 국내에선 일찍이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잡지 문화를 선도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비록 <드라마틱>은 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지만 흥미위주로 소비되는 드라마를 비평적 대상으로 다룸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런 전례처럼 <판타스틱> 역시 기대한 것 이상의 질적, 양적 콘텐츠로 또 하나의 잡지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국내 어느 매체에서도 시도한 적 없던 미야베 미유키의 인터뷰를 성사시켰고 (모 영화주간지에 근무하던 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미야베 미유키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복거일, 듀나 등 국내의 대표적인 장르작가부터 폴 윌슨(<다이디타운>), 루이스 캐럴 등 유명 해외 작가들까지 모두 아우른 작품을 소개했다. 무엇보다 ‘DO IMAGINE․BE FANTASTIQUE’를 표어로 내건 <판타스틱> 창간호의 특집 기획은 ‘영화인 17명의 ’꿈의 프로젝트‘’와 ‘한국사 최고의 상상 25’이었다. 이는 판타스틱의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기획이었다.

당시 발행인의 글에서 최내현은 “장르를 다룬다는 것만이 잡지의 정체성은 아닐 것”이라며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상상력을 주제로 한 잡지”라고 <판타스틱>의 성격을 규정했다. 상상력은 모든 예술의 원천이면서 특히 영화는 (소설과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상상의 산물이랄 수 있는데 그래서일까, <판타스틱> 창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건 다름 아닌 한국영화계였다. 당시는 한국영화의 장르를 향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던 시기로 <판타스틱>은 많은 국내 영화인들에게 일종의 이야기의 보물 상자 같은 의미로 다가갔다. 취재차 영화사를 찾아가면 대표와 감독의 책상에는 여지없이 그 달의 <판타스틱>이 놓여있었고 국내에 불어 닥친 장르 붐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판타스틱>의 창간을 언급했을 정도였다.

다만 <판타스틱> 창간호가 전량 판매를 기록하고 그 이후에도 기대를 웃도는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광고 매출이 판매량과 보조를 맞춘 것은 아니었다. 결국 <판타스틱>은 2년도 채우지 못하고 2008년 10월 1차 휴간에 들어갔다. (이후 2009년 계간지로 전환했지만 봄과 여름 호를 내고 2차 휴간에 들어갔다.) 이는 장르문화가 국내에서는 여전히 특정 계층, 즉 마니아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씁쓸한 사실이기도 했다. 예컨대, 영화 쪽에서 그렇게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판타스틱>에 실린 소설과 만화 중 영화 판권 계약을 맺은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었다. 몇몇 영화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판타스틱>에 실린 작품을 재밌게 읽었지만 영화로 만들기엔 대중적이지 못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의 게으름(비대중적인 소재도 대중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다!)을 면피하기 위한 편견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창간 이후 2번의 휴간과 2번의 복간에 이르기까지 <판타스틱>이 겪은 흥망성쇠는 그대로 장르문학 시장이 처한 현주소이기도 했다. <판타스틱> 창간 당시의 국내 장르문학계는 일본 미스터리물의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슬금슬금 국내 장르문학이 고개를 들던 때이기도 했다. <판타스틱>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시기는 장르소설의 활발한 출간이 이뤄지던 때였지만 독자의 반응은 그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일본 미스터리물의 인기가 잠잠해지면서 장르문학 시장에 이슈가 사라진 것이 좋은 예다.) 그렇다면 <판타스틱>의 2차 복간이 갖는 의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장르문학이 다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장르문학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을 찾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지금 장르문학 시장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꿈틀거리고 있다. 먼저 번역 작품의 경우, <나는 전설이다> <셜록 홈즈> 등의 영화화로 덩달아 원작소설이 관심을 모으면서 영화를 활용한 마케팅이 활기를 얻고 있고, (<셜록 홈즈> 개봉 후 황금가지의 <셜록 홈즈> 전집이 2주 만에 무려 10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국내 장르소설은 이종호, 김종일 등 굵직굵직한 작가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될 예정이라 이슈를 만들어낼 좋은 기회를 잡았다. <판타스틱>도 다르지 않다. 22호와 23호, 즉 2010년 1월호와 2월호를 모두 읽고 보니 그간의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생존 전략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국내 작가들의 장편 연재가 과거의 <판타스틱>에 비해 늘어난 것이 가장 눈에 띤다. 좌백, 김창규, 김종일 등은 작가의 이름값만으로도 판매량을 보장하는 작가다. <판타스틱>에서의 연재로 독자의 관심을 모은 후 장편소설로 출간하겠다는 전략이 두드러진 것이다. 이는 광고 매출로 수익의 상당액을 보전하려 했던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면모다. 시공사라는 든든한 배경 하에서 <판타스틱>은 새로운 생존 전략을 장착하고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였다. 문화 산업 안에서 잡지의 존재는 정보의 전달과 비평의 역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산업의 건강도를 드러내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산업의 침체로 현재 영화잡지 시장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판타스틱>은 국내 장르문학 시장의 현재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지표다. 국내 장르문학 시장이 살아야 <판타스틱>이 살고 <판타스틱>이 살아야 국내 장르문학 시장이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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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2.23)

아이패드는 장르문학 시장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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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장르문학 출판사 관계자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역시나(!) 이 자리에서도 지난달 27일 공개된 애플의 태블릿PC ‘아이패드’(iPad)는 단연 화제였다. 아이패드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에서부터 국내 출시 전망까지, 그중에서도 아이패드가 소설 시장의 미래, 좀 더 구체적으로는 국내 장르소설 시장의 활성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여부에 집중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패드가 출시되어봐야 알 수 있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에서 서둘러 수다(?)를 마무리 지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장점만 살린 혁명적인 제품’, ‘아이폰의 신화를 이어가기에는 역부족’ 등 아이패드를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자책(e-book)을 위한 가장 최적화된 기기라는 사실에는 별다른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듯하다. A4 용지 크기의 680그램짜리 아이패드는 휴대가 간편해 언제 어디서나 꺼내보기 용이하고, 흑백만 가능한 기존의 전자책과 달리 컬러가 지원돼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며, 아이폰보다 월등한 크기의 액정은 눈의 피로감을 덜어줘 장시간 화면을 응시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특히 입체형 가상 서가를 통해 책을 검색할 수 있고 애플 특유의 정전식 터치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등 실제 책을 소유한 듯한 느낌을 제공한다는 점은 가히 획기적이라 할만하다.

아이패드가 기존의 전자책 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머지않아 판도를 뒤흔들 것으로 전망된다. 아닌 게 아니라, 애플은 아이패드 출시와 함께 ‘아이북스토어’(iBookstore)라는 새로운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해 변화를 예고했다. 사용자들은 아이북스토어를 통해 책을 구매하거나 다운로드 할 수 있다. 이미 애플은 아이팟의 콘텐츠망인 ‘아이튠즈’(iTunes)로 음악 다운로드 시장의 유료화를 정착시키며 사양길로 접어들던 음반시장을 회생시키기도 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미국 내 주요 출판업체인 하퍼콜린스, 펭귄, 사이먼앤슈스터, 맥밀란, 하체트 북그룹 등이 아이북스토어에 참여해 전자책 시장에서의 선점효과를 노리고 있다. 또한 더 많은 전자책 콘텐츠 업체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 태세란다.

국내 출판계 또한 아이패드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내 출시가 힘들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서도 출시를 기정사실화하고 콘텐츠 마련에 분주한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에서처럼 아이패드가 국내 전자책 시장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각이 짙게 깔려있다. 안 그래도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을 중심으로 아이패드에 적합한 콘텐츠 개발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주로 젊은 층을 타깃 삼은 콘텐츠에 주력하고 있다는데 이들이 핸드폰을 통한 정보 습득을 생활화한 까닭에 아이패드를 이용한 전자책 소비에 거부감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따른 결과다. 처세술서와 경영서에 집중된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링크 기능 및 동영상 등 부가서비스를 강화하면 수지맞는 장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넘어야 할 벽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가격 경쟁력 획득은 필수적이다. 전자책은 일정 시간 동안 관람이 가능한 영화와 드라마 동영상 서비스와 달라서 파일 자체의 영구 소장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출판사는 (해당 작가나 수입 출판사에) 별도의 판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을 갖는다. 기존 전자책의 가격이 실제 책의 70%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훨씬 저렴해지지 않는 이상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데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처럼 자금력이 막강한 곳을 제외한 업체들이 아이패드의 출현과 그에 따른 시장의 변화가 예고됨에도 콘텐츠 개발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이 시장 진입을 망설이는 보다 더 큰 이유는 아이패드가 기존 전자책 시장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이미 애플이 앱스토어(App Store)로 프로슈머(Prosumer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개발하거나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이를 기업이 받아들이는 방식) 환경을 본격화한 상황에서 아이북스토어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사이버 시장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한다. 그렇게 될 경우, 작가가 글을 완성하면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곧바로 앱스토어에 등록해 독자와 만날 수 있다. 아이패드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지만 변화의 추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군소업체들은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것이다.

대신 작가들에게 아이패드의 출현은 높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특히 국내 장르 작가들에게 아이북스토어와 같은 앱스토어는 폭넓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신천지다. 순문학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한국에서 장르문학은 소위 소장 가치가 떨어지는 책이란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그래서 일찍이 국내 장르소설은 온라인상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장르문학의 활성화를 도모해왔다. 하지만 아이패드가 국내에 출시되고 아이북스토어가 상용화된다면 장르작가들의 등단의 무대는 온라인상에서 앱스토어로 옮겨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아이패드가 국내 장르소설의 보다 빠른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아이패드가 출판시장에서의 전자책이라는 디지털 환경 자체의 변화 뿐 아니라 오프라인 시장의 재편까지 포괄한다고 보는 쪽이다. 최근 국내 장르작가들의 데뷔 형태가 ‘매드클럽’, ‘환상문학 웹진 거울’ 등과 같은 장르문학 웹진을 발판삼아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아이패드의 출현은 이 같은 환경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온라인을 통해 기량을 갈고 닦은 작가는 때가 됐다싶으면 아이북스토어를 통해 독자들로부터 실력을 검증받을 수 있고 출판사는 앱에 올라온 목록을 검색하면서 될 성싶은 나무를 선별해 오프라인에서의 안정적인 작품 수급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개인적으로 추론해본 예상 시나리오일 뿐 결과를 미리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 아이패드가 언제 출시될지 알 수 없고, 처세술서와 화제작 위주로 전자책 판매가 호조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패드가 국내의 독서 인구, 특히 장르소설 독자를 비약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아이북스토어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장(章)으로 기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내가 장르문학 출판사 관계자와 아이패드에 대한 열띤 수다를 펼치고도 ‘출시되어봐야 알 수 있다.’고 꼬리를 내린 이유는, 그래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패드가 작가와 같은 생산자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이다.

문화비평가 이택광은 자신의 블로그(http://wallflower.egloos.com/)에서 아이패드의 가능성에 대해 ‘거대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문화생산자들이 자기 제품을 앱으로 만들어서 마음껏 팔 수 있는 사이버 시장이 열릴 수 있다. 콘텐트 제작자가 산지직송판매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는 셈이다.’라고 얘기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미 아이폰의 앱스토어를 통해 앱개발자가 대박을 쳤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지면과 대형 포털 사이트의 헤드를 장식하고 있다. 분명 이는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국내 장르작가들에게 희소식이다. 만약 누군가가 아이패드가 장르소설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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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