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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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박쥐>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일같이 포털사이트의 대문을 장식하고 있다. 그중 눈길을 끈 기사가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 <할리우드 리포트>와 나눈 인터뷰였는데, “좋은 시나리오만 있다면 할리우드로 날아갈 준비가 돼있다”고 답했던 것. 이 기사를 접하곤 <올드보이> 개봉 당시 <딴지일보>와 박찬욱 감독이 나눴던 인터뷰 중 한 대목이 생각났다. 그는 자신을 SF소설 광이라고 소개하며 해외에서 찍고 싶은 영화 중 하나로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꼽았다.

“<블레이드 러너>를 원작에 가깝게 만드는 기획이었어요. 원작소설은 액션영화 느낌이 덜한 대신에 데커드가 스스로 레플리칸트가 아닐까 의문을 많이 담고 있죠. 그 외에도 재미있는 소재가 굉장히 많아요. TV에서 사이비종교 지도자 같은 프로그램도 나오고 재미있는 모티브가 참 많죠.”

1993년 출판됐다 절판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가 최근 복간됐다.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필립 K. 딕의 작품은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리들리 스콧은 원작소설의 방대한 이야기를 데커드(해리슨 포드)와 레플리칸트(극중 ‘로이 베티’(룻거 하우어))의 추격전으로 축소하며 원작 팬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사기도 했다. 지금이야 <블레이드 러너>는 걸작으로 추앙받지만 1982년 6월 미국 개봉 당시만 해도 ‘올 여름 최대 실패작’이라는 멍에를 짊어지며 할리우드에 재앙을 안겨줬던 작품이었다.

<블레이드 러너>가 이후 팬들 사이에서 재조명 받으며 걸작의 반열에 오른 데에는 ‘데커드는 레플리칸트인가?’라는 의문이 중요하게 작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데커드가 레플리칸트, 즉 안드로이드인지 아닌지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인간뿐 아니라 안드로이드의 생명도 모두 소중하다고 역설한다.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묻는 원작소설의 테마는 영화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리들리 스콧은 ‘비인간화되는 인간, 인간화되는 레플리칸트’의 테마를 결말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내며 원작의 정수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K. 딕은 영화가 소설과는 내용이 상당히 다르지만 핵심정서를 충실히 재현했다며 <블레이드 러너>에 상당한 만족감을 표했다. (K. 딕은 <블레이드 러너>가 각광을 받으면서 거장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1982년 이미 사망한 뒤였다!)

개인적으로는 데커드와 베티의 대결을 통해 장황한 설교조로 주제를 늘어놓는 영화와 달리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데커드의 심리적 여정을 따라가는 소설이 더 맘에 들었다. 그러니까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가 보여주는 미래는 자아가 황폐한 심리적 공황의 시대다. 소설은 영화처럼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데커드의 마음 속 풍경을 주로 묘사하는 것이다.

데커드가 안드로이드의 정체를 숨기고 인간처럼 행세하는 현상금 사냥꾼과 짝을 이뤄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에피소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살상행위에 무감각한 자신과 달리 죄의식에 사로잡혀 잠바로 시체를 덮어주는 현상금 사냥꾼을 보면서 데커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혼란을 겪으며 인간성을 깨달아 간다. 이처럼 K. 딕은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대조적인 행동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즉, 인간성의 본질을 기계의 유무가 아닌 마음 그 자체에서 찾는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타인의 재능을 알아보는 눈썰미,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그리움 등 일상생활의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가 큰 의미를 갖는다.

데커드 부부가 안드로이드 두꺼비를 애완동물로 받아들이는 결말은 의미 불명의 제목이 지향하는 바를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통찰력 있게 풀어낸다. 이에 대해 로저 젤라즈니(<신들의 사회><별을 쫓는 자>)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필립 K. 딕의 책은 사실 생각해 보면 이야기 자체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강렬한 은유를 담은 시를 읽었을 때와 비슷하다.” 한마디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필립 K. 딕의 정수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과연 박찬욱 감독이 해외에 진출하게 된다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영화화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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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5.19)

<이런 사랑>(Enduring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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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영화 개봉명 <어톤먼트>)와 함께 이언 매큐언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런 사랑>은 도덕적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 상황에 놓인 인간 본성을 탐구한다. 과학저술가 조 로즈. 돌풍이 부는 봄날의 날씨만 제외하면 남부러울 게 없다. 7년간 사귄 여자친구, 감정의 콩알만 한 균열도 찾기 힘든 완전한 사랑, 이를 더욱 빛내주는 피크닉까지. 작가는 백지 같은 완벽한 상태를 참을 수 없었나 보다. 꼭 검은 선을 그어 불안을 조성하고 끝끝내 검은 칠을 해놓는다. 상황은 이렇다. 행복에 겨운 조에게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한 꼬마가 기구에 매달려 강풍에 휩싸였다. 조는 아이를 도와주러 달려간다. 네 명의 남자가 더 있다. 모두 기구에 매달린 줄을 잡고 버틴다. 하나가 줄을 놓는다. 조도 놓고 둘이 더 놓는다. 결국 한 사람만 줄에 매달려 공중으로 솟더니 결국 떨어져 죽고 만다. 혼란에 휩싸인 조. 이건 단순히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조가 50평생 지켜온 정신적 침몰을 의미한다. 죄책감은 기본이요, 7년간 지켜온 사랑이 파괴되고 삶 역시 의미가 없어진다. 여기에 낯선 남자와의 병적인 사랑까지 더하면. 산다는 건 무얼까. 죽음일까, 무(無)일까. 감정의 마지막 남은 골수까지 쪽 파먹는 작가의 기술. 이래서 이언 매큐언이 좋다니까.

<즐거운 살인>(Delightful murder)


폭력은 섹스와 더불어 이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말초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소재다. 동시에 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표현의 벽을 뛰어넘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사회가 이들 소재에 필요이상의 금기를 가해온 만큼의 강제성에 비례하여 흥미는 배가되었기 때문이고, 반발심에서 우러나온 도전정신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폭력 중에서도 살인은 여러 장르에서 애용되며 다수 대중의 감성에 어필하는 인기 있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그 표현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훨씬 잔인하게 진화해왔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그럴수록 살인의 표현이 현실세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를 들어 검열의 칼날을 들이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품을 규제해 온 사회가 대규모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는 살인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자! 여기 살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반영론적 관점에서 다루어준 책 한 권이 있다. 「즐거운 살인」. 즐거운 살인이라, 아무리 요즘의 인식체계를 뒤바꾸고 있는 제1 화두가 ‘재미’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살인을 장려해도 되는 것일까. 오해는 마시라! 추리소설을 몹시 즐겨 읽었다는 저자는 범죄소설이 불러 온 대중적 인기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역설적인 두 단어를 결합하는 재치를 보임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즐거운 살인」은 범죄소설의 변천사를 기술한 책이다. 하지만 저자인 에르네스트 만델(Ernest Mandel)은, ‘범죄소설의 사회사’라는 부제가 말하듯, 범죄소설의 역사를 문학사보다는 사회사로 간주하고 책을 구성한다. 그는 특히 자신의 전문 분야인 경제학자로서의 지위를 십분 활용, 범죄소설의 성공 이유에 대해 “무엇에서 기인하는지, 이런 상품이 충족시켜주는 욕구들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 지난 수세기에 걸쳐 범죄소설에 열광하는 욕구들은 어떻게 변해왔고, 부르주아 사회의 일반구조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고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 들어간다.


저자는 우선 범죄소설의 기원을 찾는 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에 의하면 16세기, 봉건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등장하던 시기의 ‘선한 악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 바로 현대추리소설의 유래다. 하지만 덧붙이길 이 시기의 ‘선한 악당’, 즉 과거의 영웅이 오늘날에는 악한이 되는가 하면 과거의 악한이 오늘날에는 영웅으로 변하였다고 진술한다. 이는 곧 사회의 변화에 따라 범죄소설도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후 범죄소설은, 대규모의 조직화된 범죄에 따라 조직 수사가 이루어진 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 시대와 국가와 범죄, 대기업 이 삼자간의 공모로 범죄와 정치와의 관계가 불분명해지는 세계 2차 대전 후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진화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자본주의의 등장에 따른 부르주아 계급의 존재에 대해 주목하고 범죄소설의 역사는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와 얽혀 있다고 단언한다.


「즐거운 살인」은 다루고 있는 내용과 저자의 사회적 위치로 인해 사회학자들과 문학 관련자들의 필독서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갱스터, 느와르, 첩보영화 등 범죄영화와 관련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점이 바로 「즐거운 살인」을 독자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필자의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영화 속의 범죄는 소설처럼 사회의 범죄양상을 시의 적절하게 반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자가 ‘선한 악당’이라고 지적한 16세기 범죄의 특징은 영화 <레미제라블>(52)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조직범죄를 그린 영화로는 <대부>(72), <스팅>(73),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84), <언터처블>(86) 등 일일이 나열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이처럼 영화는 범죄소설의 배경과 역사적인 궤를 함께 나누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게다가 저자의 범죄를 향한 문어발식(?) 지식의 범위와 옮긴이의 정보수집 능력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67)의 원형이 된 ‘딜린저 사건’에서부터 알프레드 히치콕의 마지막 수작 <프렌지>(72)의 소재가 된 넥타이 사건의 실제 모델인 ‘보스턴 스크랭글러 사건’, 그리고 최근작 <비독>(01)의 탐정으로 등장하는 비독의 개인적 이력에 이르기까지 영화 팬들에게 좀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발견의 재미까지 느끼게 해 준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범죄소설의 대중적 성공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폭력에 관하여 읽는다는 것은 아무런 해가 없는 형식으로 폭력을 목격하고 즐긴다는 것이다. 폭력을 대리 경험함으로써 실제로 행하는 폭력을 포기하게 됐다”와 같은 문장을 통해 지금 한창 영화가 폭력을 조장한다는 사실에 대항한 보기 좋은 반론을 내어놓는다. 그 뿐이 아니다. 범죄소설이 사회의 도덕적 가치에서 벗어남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서는 “범죄자에 대한 개인적인 폭력을 이상적으로 그린다는 것은 극도로 불길한 징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상상력의 산물들은 자경단이나 ‘자기 방어적’ 폭력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부합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한다. 이 부분은 현 국내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인 조폭 영화들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으로 활용될 만한 가치가 있다.


결국 「즐거운 살인」을 읽으면서 크게 느끼게 되는 사실은 책이나 영화 등 문화매체가 살인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중심의 건강하지 못한 사회 시스템이 살인을 저지르게끔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 “아마도 부르주아 사회가 범죄 사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독자의 동의를 구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한가지 아쉬운 사실은 「즐거운 살인」이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84년에 저술된 작품인 관계로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문명의 충돌’과 같은 폭력성에 대한 그의 견해를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의 풍부한 텍스트적 지식과 날카로운 분석력이 9.11 뉴욕 테러로 수면 위에 오른 문명간의 갈등에 대해 어떤 견해를 도출해 냈을지 사뭇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02. 2. 17. <무비클래식>)

<헐리웃 문화혁명>(Easy Riders, Raging Bulls)


1998년 「헐리웃 문화혁명」이 출판된다는 소식이 미국 내에 알려지자 이 책에 거명되었던 많은 감독들이 웬일로 인터뷰를 자청, 한바탕 해명소동을 벌였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경우는 집필 중이던 자신의 공식 전기를 「헐리웃 문화혁명」의 출판에 앞서 서둘러 출간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고 한다. 왜? 섹스와 마약에 절은 추악한 성공담의 뒷얘기들이 「헐리웃 문화혁명」에 가감 없이 파헤쳐져 있기 때문이다.


「헐리웃 문화혁명」은, 미국의 저명한 영화잡지 ‘프리미어’와 ‘아메리칸 필름’의 전 편집장이었던 피터 비스킨드(Peter Biskind)가 저술한 일종의 폭로서다.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67)로 폭발하여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천국의 문>(78)에 이르러 조로해버린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흥망성쇠를 낱낱이 파헤친 것.

저자는 이 시기의 헐리웃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를 갈망해왔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변으로 이 책의 당위성을 대신한다. 그리고「헐리웃 문화혁명」을 저술하기 위해 당시 이들 감독들과 함께 작업을 한 스태프들 외에도 그들의 친인척, 하룻밤 상대였던 여자친구, 이웃까지 찾아내어 풍부한 사례로 철저히 고증, 장장 600쪽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을 통해 성공의 이면에 담긴 무절제하고 위선적인 ‘꿈의 공장’ 헐리웃을 까발린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흥미위주의 가십 거리들로 꾸며져 있는데, 사실 이것들이「헐리웃 문화혁명」에서는 가장 소중한 재료라 할 수 있다. 지난 2002년 베를린 영화제는 <야전병원 매쉬>(70), <내쉬빌>(75), <숏컷>(93), <프레리 홈 컴패니언>(06) 등 의미 있는 문제작을 꾸준히 연출해온 고(故)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업적을 기려 평생 공로상으로 존경을 표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 포함되어 있는 로버트 알트먼의 타락한 카메라 뒤편의 생활을 접하게 되면, 그에 대한 존경이 이내 경멸로 바뀔 것임은 자명하다.

그뿐인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윌리엄 프리드킨, 피터 보그다노비치, 마틴 스콜세지,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워렌 비티, 데니스 호퍼 등 우리가 존경해 마지않던 감독과 배우들이 사실은 얼마나 지저분한 삶을 살았는지 「헐리웃 문화혁명」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정이 있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와 동침하기가 일쑤이며, 돈 몇 푼으로 인해 절친했던 친구와 한 순간에 적이 되어버리는 관계, 동료를 노예처럼 대하듯 일상대화에 난무하는 욕설과 음담패설 등에 이르면 그 타락의 정도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게다가 이 책에는 헐리웃의 부당한 거래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작가가 되기 위한 병적인 집착, 즉 크레딧을 따내기 위해 벌이는 뻔뻔한 행동들 – 데니스 호퍼와 피터 폰다, 로버트 타우니와 워렌 비티, 코폴라와 제작자 에반스 등 – 은 과연 지금의 작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치열한 고뇌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른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마저 낳게 한다.

그러나 「헐리웃 문화혁명」은 연예 신문정도의 가벼운 읽을거리로 치부해 버릴 만큼 그렇고 그런 책이 절대 아니다. 헐리웃의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기도 했던 ‘뉴 헐리웃 시네마’가 스튜디오에서 벗어나지 못 하던 ‘올드 헐리웃’의 관습을 어떻게 일순간에 타파하고 새로운 영화혁명을 이끌게 되었는지를 조목조목 상세하게 기술한다. 그렇게 당시 헐리웃의 표면을 훑은 후 이 혁명적인 미국 영화사가 어떻게 권불십년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입체적으로 접근, 충격적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평생을 저널리즘에 몸담았던 저자는 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극적으로 구성, 신기루에 다름 아닌 헐리웃 무대 뒷편의 파장을 더욱 높이는데 주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 비스킨드는 「헐리웃 문화혁명」에 다루어진 내용을 두고 ‘해괴하고 소름 끼칠 만한 내용이 표면을 살짝 긁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밝힘으로써 헐리웃의 ‘진실’이 과연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한탄을 금치 못한다.


헐리웃은 허구지만 「헐리웃 문화혁명」은 진실이다.


(2002. 3. 25. <무비클래식>)

넌 영화를 극장에서 보니? – 한국영화 스토리북


이제는 영화를 책으로 본다. 영화가 스크린을 뛰어넘어 언어로 관객과 조우하고 있다. <형사>와 <비열한 거리> 등 이전에도 영화의 시나리오를 소설화하여 책을 출판한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처럼 활발하게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 현재 서점에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 해도 <각설탕> <괴물> <한반도> <왕의 남자>까지 무려 네 종류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답게 책의 구성도 천차만별이다. 임수정 주연의 <각설탕>(예림당)은 개봉 전에 소설로 먼저 나왔다. 인지도를 널리 알리겠다는 전략이다. 동물과 인간의 따뜻한 우정을 그린 영화답게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유명 동화작가 이미애가 이정학과 이환경 감독의 시나리오를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다시 썼다. 그런 만큼 판형도 일반 소설에 비해 크고 사진도 매 페이지에 삽입되어 있는 등 동화책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괴물>(홍익)은 책만 따로 놓고 본다면 일반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 흔한 감독의 말 하나 없이 300페이지가 이야기 일색이다. 더군다나 봉준호 감독의 시나리오에 더해 소설에서만 구현 가능한 디테일한 부분을 판타지 작가 홍정훈이 상상력을 보탠 결과, 독립적인 콘텐츠로서 소장 가치가 꽤 높은 편이다. 그런 까닭에 영화를 본 후 책을 읽든, 책을 읽은 후 영화를 감상하든 순서가 문제될 것은 없다.

그에 반해 <한반도>(랜덤하우스)는 ‘영상 시나리오 북’이다. 김희재 작가가 집필한 시나리오는 기본이고 팩션에 대한 정의부터 영화화 과정 중에 발생한 에피소드 및 캐스팅에 얽힌 이야기까지 <한반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대중성을 최선으로 삼는 강우석 감독의 평소 지론처럼 책 역시 최대한의 대중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시나리오에 대한 챕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전문가들만이 알 수 있는 50여 개에 달하는 시나리오 용어를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사전식으로 편집해 놓은 것이 좋은 예이다.

‘무비 스토리 북’으로 명명된 <왕의 남자>(예담)의 경우, 한국 최고 흥행영화답게 손이 많이 간 흔적이 돋보인다. 날개 형태로 이뤄진 커버에 원색의 색감을 최대한 살린 이미지 컷, 그리고 손 닿으면 스르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듯 부드러운 종이의 질 등이 그렇다. 외관뿐만이 아니다. <씨네21>의 취재기자 김현정이 맡은 글은 시나리오상에서는 무미건조했을 지문들에 산소를 불어넣어 생명력 있게 재탄생하였다. 시나리오에는 있으나 스크린에 미처 구현되지 못했던 비공개 이야기까지 담겨 있어 영화의 감동을 한 뼘 정도 더 늘리기 원하는 독자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이처럼 영화는 영화 한 편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를 소스로 한 다양한 변주상품이 영화의 감동을 다시금 갈무리한다. 이미 열쇠고리, 캐릭터 인형과 같은 팬시상품들이 이 시장을 주도한 바가 있다. 국내영화의 활성화에 맞춰 이 시장에도 변화가 불어오기 시작했다.

영화의 ‘원 소스 멀티 유즈’에 대한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요즘, 그 선두는 책이다!


(2006. 8. 4. <스크린>)

<유방의 역사>(A History of the Breast)


영화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흥행성이라고 한다면. 잘 생긴 외모에 쫙 빠진 몸매를 갖춘 젊은 배우와 10년 묵은 체증을 한 번에 날려버릴 만큼 화려한 볼거리 이렇게 두 요소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럼 이것은 어떨까. 국내 최고 인기 여배우 고소영과 전지현이 한 영화에 동시에 출연하여 벗은 몸을 공개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는 개봉과 함께 ‘대박’이라는 돈다발은 물론이고 온 나라가 두 여배우의 육체로 인해 몇 달간은 시끌벅적 할 것이다.


너무 과장된 표현이 아니냐고? 실제로 헐리웃은 한창 잘 나가는 여배우 할리 베리(Halle Berry)의 젖가슴을 영화 <스워드 피쉬 Swordfish>에 노출하는 조건으로 한쪽 가슴 당 25만 달러씩 우리 돈으로 약 6억원의 가욋돈을 지불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A급 여배우의 특정신체부분 노출이 영화의 흥행에 미치는 영향력을 노골적으로 이용한 것.  

비단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헐리웃은 영화사 초기부터 여배우들의 봉곳 솟은 가슴의 일부분을 화면에 노출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50년대의 영화 캐스팅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여배우는 오로지 가슴이 큰 여성이었다. 남성의 성(性) 본능을 자극하여 돈푼 좀 건져 보겠다는 스튜디오의 알량한 전략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여성관객에게 미친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남성들이 여성의 육체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만큼 여성도 자신이외의 여성의 몸에 큰 관심을 가졌던 까닭이다.

「코스모폴리탄」지의 편집자였던 헬런 걸리 브라운(Helen Gurley Brown)은 이러한 당시의 경향에 대해 ‘여성들은 그들이 보고 싶은 만큼 벌거벗은 여성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라고 지적한다. 여성들도 영화를 통해 타 여성의 육체를 보며 자신의 몸과 비교한 것이다. 이는 여성의 육체가, 특히 유방이 생명의 원천으로 신성시된 측면과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에로틱한 면에 집중된 까닭에 감추어지고 은폐된 역사를 보냈기 때문이다.


잠깐! 위의 글이 필자의 날카로운 분석이라고 오해 마시길. 스탠포드 대학 ‘여성과 성별 연구소’의 원로학자인 매릴린 옐롬(Marilyn Yalom)의 저서 「유방의 역사 A History of the Breast」에 나오는 일부 내용을 약간의 기사 첨부와 함께 재구성해 본 것이다.

지금 소개할 「유방의 역사」는 독자에게 자칫 튀는 제목이 주는 선정성으로 인해 말초적인 읽을 거리로 오해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450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이 책의 두께를 감지하는 순간부터 남성의 손에 놀아났던(?) 유방의 갖가지 기구한 사연들이 결코 ‘재미’를 담보로 한 가벼운 목적의 글이 아님을 목격할 수 있다.

저자는 우선 여성의 가슴이 남성의 성적인 장식품이 된 배경에 대해, “대부분 그것을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감추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여성의 유방이 과연 누구의 소유물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하고 이를 9개의 시대별 담론에 담아 고찰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남성과 제도가 전 역사를 통하여 여성의 유방을 제멋대로 전유(專有)하기 위해 기울였던 다양한 노력의 면면들”을 신성한 유방, 에로틱한 유방, 가정적인 유방, 정치적인 유방, 심리학에서 본 유방, 상업화 된 유방, 의학에서 본 유방에 담아 고발한다. 이는 모두 남성소유의 가슴을 원 소유주에게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해방된 유방을 향한 전초이며 새롭게 시작되는 유방의 역사를 통해 주인 된 권리를 주장하는 역설적인 항변이다.

혹 이 서평을 읽는 독자 중에서, 모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신체 기관 중의 하나인 가슴을 두고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줄 안다. 그렇다면 이는 십중팔구 남성 독자들의 목소리일터. 그만큼 여성의 가슴은 어머니의 의무를 강조한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도덕의 가치에 떠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이는 ‘남근사상’의 힘없는 노예가 되어 수난과 수치의 역사를 보냈음을 의미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남성들의 경직된 사상을 겨냥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방의 역사」가 오로지 남성의 계몽만을 목적으로 저술되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미용을 위한 유방의 성형”에만 신경 쓰는 지금의 여성들에게도 “삶과 죽음의 문제인 수유와 질병(특히 유방암)”에 신경 써야 할 것임을 이 책은 강조하며 마무리 짓는다.


이처럼「유방의 역사」가 남성과 여성 두 마리의 토끼를 겨냥하여 만든 것처럼 저자인 매릴린 옐롬은 유방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여러 차원에서 요모조모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재미’만으로 이 책에 접근하는 이들의 가벼움을 경계하고 있으며 풍부한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자칫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갈 수 있는 독자의 관심을 자연스레 본론으로 끌어들인다. 무엇보다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과 힘이 넘치는 필치는 이 책의 가치가 녹록치 않음을 과시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2001. 11. 22. <무비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