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알트만 특별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로버트 알트만이 우리 곁을 떠나 영화의 우주에서 별로 반짝인 지가 올해로 벌써 5년째입니다. ‘할리우드의 반골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2006년 11월 20일 80세의 나이로 타계해 전 세계의 영화팬들을 슬픔에 빠뜨렸습니다. 임은 갔어도 영화는 남아 이렇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로버트 알트만 특별전’을 진행할 수 있는 것처럼 로버트 알트만이 세계영화계에 미친 영향은 너르고 깊다 할 것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나름의 개성을 갖는 주요인물이 대규모로 등장해 그들 각자의 에피소드를 교차시키는 구조를 알트만에게서 배웠다”고 고백했고 존 카메론 미첼은 <숏버스>를 만들면서 “촬영 중 세트 위에서 즉흥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을 참고했다”고 밝혔으며 2002년 베를린 영화제와 2006년 아카데미 영화제는 그런 알트만의 공로를 기려 평생공로상을 수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로버트 알트만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할리우드의 주류 시스템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면서도 미국영화의 중심에서 인디영화의 정신을 주입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초기작 <매쉬>(1970)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 군의 지휘 체계를 유린하는 외과 전문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미국이 주도한 전쟁을 조롱하며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또한 <플레이어>(1992)와 <패션쇼>(1995)를 통해 미국 대중문화의 선봉에서 화려함을 뽐내는 패션계와 할리우드의 허상을 통렬하게 비판했으며 <숏컷>(1993)에서는 아홉 쌍의 부부를 등장시켜 미국 중산층의 허약한 내면을 날카롭게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특유의 반골기질을 증명이라도 하듯 알트만은 생전에 다섯 번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고도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하는 명예 아닌 명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미국 사회의 치부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로버트 알트만을 통해 ‘아메리칸 뉴 시네마’라는 새로운 영화 사조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 발흥하여 권불십년으로 마감한 아메리칸 뉴 시네마였지만 이후에도 로버트 알트만의 경력의 창끝은 날카롭게 날을 벼르고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해 미국영화의 찬란한 유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처럼 데뷔작 <범죄자들>(1957)에서부터 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2006)까지 옆길로 새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고 유지해온 감독은 ‘사회파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시드니 루멧을 제외하고는 그가 유일할 것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준비한 ‘로버트 알트만 특별전’ 프로그램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의 5주년 기일을 기념해 기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여섯 편을 추린  목록이지만 로버트 알트만과 그의 작품을 기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다시 로버트 알트만과 그의 영화를 생각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Robert Altman Special
(2011.11.22-12.4)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근 한국영화계의 두드러진 경향 중 하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2011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쿠바의 연인> <오월愛> <트루맛쇼> <종로의 기적> 등과 같은 작품들이 작은 돌풍을 몰고 오며 다큐멘터리에 대한 저간의 편견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동안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불편한 진실을 소재 삼아 계몽적인 접근을 통해 소수의 팬들만이 공유하는 문화로 존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최근의 다큐멘터리들 역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진실의 카메라를 밀착하고 고발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소재의 변화는 큰 폭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를 바라보는 관객의 인식이 변화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겠군요. 그것은 급속도로 폐쇄적으로 흘러가는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가져온 결과일 것입니다. 사회비리에 대한 감시 역할을 수행하던 TV시사고발 프로그램의 기능이 불순 세력에 의해 현저하게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욕구는 커져만 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좀 더 자유로운 창작 환경과 소재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이 가능한 극장용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입니다. 이에 더해,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재미를 높인 점 역시 최근 다큐멘터리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9월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은 이상에서 언급한 특징을 보여주는 최근 한국의 다큐멘터리를 모은 특별전입니다. <청계천 메들리> <트루맛쇼> <종로의 기적> <보라> <하얀 정글> <용산> <꿈의 공장> <당신과 나의 전쟁>까지 모두 8작품입니다. 이미 개봉되어 관객의 호응을 얻은 작품도 있지만 대다수의 상영작들은 여전히 미지의 영화들로 남아있습니다. 다만 이들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이슈가 될 만큼 논쟁적인 소재로 익숙하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겉으로 들어난 사회적 현상의 이면을 들추는 이들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를 작동하는 시스템의 실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최근의 다큐멘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진실은 물론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주소를 함께 확인해보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
(2011.9.1~9.8)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루세 미키오는 40년 가까운 연출자 생활 동안 모두 89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중 12편이 상영되는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에는 <아내여 장미처럼>(1935) <오누이>(1953) <산의 소리>(1954) <부운>(1955)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 <흐트러지다>(1964)와 같은 잘 알려진 걸작을 비롯해 해외에서 더 좋은 평을 받은 <엄마>(1952), 가족들 각자가 마음을 숨긴 채 소바를 먹는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번개>(1952), 인생의 씁쓸함이 짙게 표현된 <만국>(1954),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출연해 게이샤의 애환을 담은 <흐르다>(1956), 나루세 미키오의 페르소나 다카미네 히데코의 절정의 연기를 볼 수 있는 <방랑기>(1962), 그리고 유작 <흐트러진 구름>(1967)까지, 모두 12편이 상영됩니다.

나루세 미키오는 ‘가족의 스펙터클’, 즉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가족 구성원의 속마음을 일상의 풍경으로 끄집어낸 연출로 유명합니다. 나루세 미키오 영화 속 인물들은 갈등이 극에 달한 가족도, 열렬한 사랑을 나누는 남녀도 웬만해선 말이 없습니다. 격렬한 몸짓도 사치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은 겉에서 보면 잔잔하게 일렁이는 수면 같지만 그 아래에는 엇갈리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진흙탕을 이루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나루세 미키오가 다루는 사건은 정적인 형태를 취하지만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일상적인 인간관계에 침전한 미묘한 의미가 뚜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루는 소재 자체가 가족(<아내여 장미처럼> <오누이> <산의 소리> <흐트러지다> 등)이나 남녀의 사랑(<부운>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흐트러진 구름> 등)과 같은 극히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풀숏으로 보게 되면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나루세 미키오는 여기에 클로즈업과 같은 시선의 연출로 관계의 이면에서 꿈틀거리는 극세사 같은 감정을 영화화합니다.

그러다보니 나루세 미키오가 보여주는 감정의 스펙터클에는 결코 해피엔딩과 같은 완결된 형태의 마무리라는 게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생긴 보험금으로 갈등을 겪는 <번개>의 가족들은 본심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식사를 마쳐야 하고, 전쟁 중에 만난 <부운>의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은 2차 대전 직후 일본의 절망적인 시대상 속에서 비극적으로 끝맺음될 수밖에 없으며, 남편을 잃은 후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의 그녀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홀로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루세 미키오가 보건데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결코 관계의 보호막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인생을 살아가는데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뿐입니다. 하여 가족도, 남녀 간의 사랑도 모두 쓸쓸하고 애잔한 존재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풍경을 품은 인물은 바로 다카미네 히데코입니다. 모두 15편을 함께 작업했던 다카미네 히데코는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여성상을 대표한 배우로 유명합니다. 그녀에게는 감정의 진폭이 아닌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확실히 나루세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어떤 역경과 갈등에도 굴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나루세 영화 속 여인들 특유의 강한 생명력이 다카미네 히데코에게서 좀 더 두드러지는 것입니다. 아마 이 점이 가족 이야기를 공유해온 오즈 야스지로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일 겁니다. 오즈 야스지로가 주로 노부부의 회한을 통해 당대 가족의 삶을 보여줬다면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의 인내를 스크린에 새겨 넣은 것이지요. 안 그래도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영화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만큼 여자의 감정을 포착하는데 남다른 연출력을 보여줬습니다. 다만 오즈 야스지로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쇼치쿠의 가마타 스튜디오 소장 기도시로는 “우리에게 두 명의 오즈는 필요 없다”라는 얘기를 했다죠.) 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그 가치를 인정받은 감독입니다. 이번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역시 그 가치를 확인할 시간이 될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2011.7.15~7.24)

마리오 바바 특별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리오 바바 특별전은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오래 전부터 기획해 왔던 프로그램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난관에 부딪히다 이제야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공개하는 작품은 모두 12편입니다. (하지만 특별전 며칠을 앞두고 마리오 바바 측에서 <블레이드 스톰>과 <하우스 오브 엑소시즘> 프린트를 보내줄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촬영 감독으로 활약하다 4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연출자 데뷔해 25편의 영화를 만든 것을 감안하면 그의 작품을 기다려왔을 국내 팬들의 성에 차지 않는 편 수일지도 모릅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데, 장편 데뷔작 <사탄의 가면>(1960)을 비롯해 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너무 많이 아는 여자>(1963) <킬, 베이비… 킬!>(1966) <블러드 베이>(1971)가 모두 포함된 이번 특별전은 마리오 바바의 진가를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목록이라고 자신합니다.  


흔히 마리오 바바를 일러 ‘이탈리아의 히치콕’이라고 부릅니다. 히치콕이 현대 스릴러 영화의 문법을 확립한 것처럼 바바는 현대 공포 영화의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살인을 다룬 1960년대 이후의 이탈리아 영화를 통칭하는 장르명이 된 ‘지알로’는 <너무 많이 아는 여자>가 출발점입니다. ‘노랑’을 뜻하는 지알로는 1920년대 중반 이탈리아의 한 출판사가 노란색을 표지로 한 저가의 장르 소설을 발표하고 이것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싸구려 가판 소설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소설을 좋아했던 바바는 이를 영화로 만들길 즐겼고 지알로는 이후 람베르토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 등에 의해 계승되며 이탈리아 영화의 빛나는 업적이 되었습니다.

아니, 세계 영화사의 유산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겠군요. 쿠엔틴 타란티노는 틈만 나면 그 자신의 영화의 뿌리를 일러 지알로라고 말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역시나 가판 소설을 의미하는 <펄프 픽션>은 미국의 지알로인 셈이고 이 영화를 통해 타란티노는 전 세계적인 감독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블러드 베이> 의 경우, 미국으로 넘어가 슬래셔의 원전이 되었습니다. <13일의 금요일> <나이트 메어> 같은 난도질 종류의 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한 것도 바로 마리오 바바의 영화이었던 것입니다. 한 핏줄 영화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마틴 스콜세지, 존 카펜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브라이언 드 팔마 등 거장으로 칭송되는 감독들이 그들 각자의 방식을 통해 마리오 바바에 오마주를 바친 것은 유명합니다.

다소 과장해 말하자면, 마리오 바바의 출현 이후 전 세계의 영화는 마리오 바바에 영향 받은 영화와 영향 받지 않은 영화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마리오 바바 영화에 열광했던 감독 중 한 명이었던 페데리코 펠리니는 이런 얘기를 했다죠.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공포 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었다. 내 작업이라고 밝히지 않고 지인들에게 보여줬더니 하나 같이 마리오 바바가 쓴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들은 최고의 찬사였다.” 세계 최고의 감독들이 그 자신들보다 더 최고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감독, 공포 영화 팬들 사이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감독이지만 마리오 바바는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소수의 팬을 제외하면 여전히 미지의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마리오 바바 단독의 이름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프로그램입니다. 특히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은 바바의 영화가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새롭게 편집된 미국판으로 상영될 예정입니다. 지알로와 슬래셔뿐 아니라 스파게티웨스턴과 섹스코미디물 등 장르를 총망라한 마리오 바바 특별전을 주목해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Mario Bava Special
(2011.6.21~7.3)

로만 폴란스키 초기 걸작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6월 10일부터 6월 19일까지 2개의 특별전을 준비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초기 걸작선과 시네마테크 필름라이브러리 컬렉션이 그것으로, 모두 9편을 상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로만 폴란스키 초기 걸작선’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물속의 칼>(1962) <혐오>(1965) <궁지>(1966)입니다. 지금 로만 폴란스키는 존경받는 연출자와 성적으로 타락한 난봉꾼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인물로 전락한 처지입니다. 하지만 데뷔작 <물속의 칼>부터 최근작 <유령 작가>(2010)까지, 소재불문, 장르불문하고 수작을 양산해온 영화계의 거장 감독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나는 이야기의 힘에 매혹된다. 이야기만이 나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인다.”는 그의 영화적 철학은 초기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하였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연약한 감정의 틈 속에 똬리 튼 강박증의 사연에 관심을 집중하며 필모그래프를 쌓아왔습니다. 영화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차고 넘치던 시절의 작품 세계가 궁금하시다면 로만 폴란스키 초기 걸작선을 통해 진면목을 확인해보세요.

시네마테크 필름라이브러리 컬렉션은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보유하고 있는 필름 중 현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들로 평가받는 마테오 가로네, 고레에다 히로카즈, 필립 그랑드리외, 브루노 뒤몽의 작품들로 구성하였습니다. 우선 마테오 가로네의 작품으로는 올해 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소개한 <박제사>(2002) <첫사랑>(2005) <고모라>(2008)를 상영합니다. 가로네는 나폴리의 범죄조직 ‘카모라’의 악행을 고발한 <고모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1996년 장편 데뷔작 <이민자들의 땅>을 발표하며 20년 가까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견감독입니다. 필모그래프 초기만 해도 그는 이탈리아 민초들의 실제 삶에 주목한 세미다큐멘터리를 통해 ‘1990년대에 되살아난 네오리얼리즘’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극영화로 완전히 돌아선 <박제사> <첫사랑> <고모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작품처럼 보이지만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한 가로네의 영화인 것입니다.

이와 함께 상영하는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1995)과 필립 그랑드리외의 <솜브르>(1998), 그리고 브루노 뒤몽의 <휴머니티>(1999)입니다. 이미 10년도 더 전의 작품이지만 지금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감독들의 대표작임을 상기하면 중요하게 언급해야할 영화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기간 중에는 로만 폴란스키와 마테오 가로네의 영화에 대해 토론을 갖는 시네토크 시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한창호 영화평론가와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가 참여해 그들의 작품 세계를 심도 깊게 살펴볼 예정입니다. 1960년대의 로만 폴란스키 작품부터 1990년대를 대표하는 3인의 시네아스트 대표작, 그리고 마테오 가로네의 2000년대 영화까지,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로만 폴란스키 초기 걸작선과 시네마테크 필름라이브러리 컬렉션을 주목해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아트시네마
(2011.6.5)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9주년 기념 영화제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2년 개관한 서울아트시네마가 2011년 5월에 개관 9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동안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대와 유행에 상관없이 영화 팬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영화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적절한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한 현대영화를 꾸준히 소개해 오며 시네필들의 장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작영화가 쏟아지고 마음막 먹으면 손쉽게 영화를 다운 받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영화사의 고전과 현대의 예술영화를 극장에서 감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온전한 영화 보기의 즐거움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21세기의 가장 새롭고 중요한 영화들을 감상할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개관 10주년을 한 해 앞둔 올해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9주년 기념 영화제’에서는 상업성이 적다는 이유로 국내에 수입되지 못한 최신작을 소개합니다. 바벳 슈로더의 무시무시한 다큐멘터리 <공포의 변호사>(2007), 젊은 작가 스티브 맥퀸의 정치 영화 <헝거>(2008), 이탈리아 영화의 부흥을 알린 파올로 소렌티노의 <일 디보>(2008), 여전한 정치 의식과 노작가의 따뜻한 감성이 돋보이는 코스타 가브라스의 <낙원은 서쪽이다>(2009), 2009년 ‘카이에 뒤 시네마’ 선정 베스트 영화 10위에 오른 브루노 뒤몽의 <하데비치>(2009), 엄격한 형식미가 돋보이는 페트로 코스타의 <아무 것도 바꾸지 마라>(2009), 아이들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스파이크 존즈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2009), 그리고 100세가 넘은 지금도 왕성한 창작욕을 뽐내고 있는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2010)가 바로 그것. 이번 특별전은 21세기에 문을 연 서울아트시네마와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영화들을 소개하는 행사이자, 왜 동시대의 영화들이 극장을 통해 안정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가를 생각해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한편 이 기간 중에는 4월 9일 세상을 떠난 시드니 루멧 감독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특별 상영이 마련됩니다. 배우이자 작가인 아버지, 댄서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시드니 루멧이 처음 관심을 보인 영역은 연기였습니다. 군 제대 후 연기 공부를 하던 그는 연출이 적성에 더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송국에 입사해 TV드라마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도 원래는 TV용으로 제작됐지만 헨리 폰다가 출연하게 되면서 영화 데뷔작이 된 경우입니다. 시드니 루멧은 작가로서 자의식을 드러내는 대신 대중이 좋아할만한 영화를 만드는데 주력한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다만 사회성 짙은 드라마를 좋아했던 그는 <전당포>(1964) <형사 서피코>(1973) <뜨거운 오후>(1975) <네트워크>(1976) 등의 영화를 통해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영화를 발표했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작품은 <폴 뉴먼의 심판>(1982)과 <허공에의 질주>(1988)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유작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2007)는 87세의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통찰력 있는 시선과 인상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호평을 얻기도 했습니다.

데뷔작 <12인의 성난 사람들>부터 유작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까지, 50년 동안 43편의 장편 극영화를 연출한 시드니 루멧 감독은 떠났지만 그의 대표작은 여전히 남아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비록 이번 특별전에서는 <뱀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1959)와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2편만 상영이 되지만 미국 사회의 병폐를 주제로 삼되 대중적인 화법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시드니 루멧의 진가를 확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영화를 보존하고 상영하는 시네마테크는 그래서 중요한 공간입니다. 시드니 루멧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네마테크를 아끼고 사랑하는 여러분들,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9주년을 축하해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9주년 기념영화제
(2011.5.10~5.22)

B영화의 위대한 거장 3인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B영화는 1930~40년대 당시 관객 감소를 우려한 미국의 스튜디오들이 한 번에 두 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동시상영을 기획하면서 나온 용어입니다. 메이저에서 잘 나가는 감독과 배우를 고용해 만든 A영화와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고 한물간 스타나 신인배우를 기용해 만든 마이너한 영화를 하나로 묶으면서 B영화는 졸속 제작한 작품이라는 인식을 관객들에게 심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한 독점금지법과 컬러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선호로 인해 전통적인 개념의 B영화는 오래지 않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로저 코먼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B영화라고 소개하는 매스컴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리처드 플레이셔와 로저 코먼, 테렌스 피셔는 B영화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아버지가 애니메이터였던 리처드 플레이셔는 어려서부터 영화와 가까운 삶을 보냈습니다. 경력 역시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시작했는데 실사영화 데뷔는 1942년 RKO스튜디오에서 이뤄졌습니다. 단편과 다큐멘터리 위주로 작업하던 플레이셔는 1946년 필름느와르 <보디가드>로 첫 번째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습니다. 1954년 디즈니에서 <해저 2만리>를 연출하며 대작영화에 능한 감독으로 알려졌고 <바디 캡슐>(1966) <코난2-디스트로이어>(1984)처럼 특수효과가 필요한 영화에서 장기를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의 진면목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은 <강박충동>(1959) <보스턴 교살자>(1968) 등과 같은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다큐멘터리 경력을 살린 연출은 서구 사회의 도덕적 불안과 공포의 그늘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입니다.

20세기 폭스사의 문서배달사원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로저 코먼은 스토리 분석가를 거쳐 직접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상의 마지막 여인>(1960) <흡혈식물대소동>(1960) <X-레이맨>(1963) 등 당시 싸구려 취급을 받던 SF나 공포물을 만들면서 ‘B영화의 제왕’이라는 호칭을 얻었습니다. 극도의 저예산과 1~2주에 불과한 제작기간의 한계를 즉흥의 아이디어로 극복한 것이 특징. 이는 마틴 스콜세지, 피터 보그다노비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몬티 헬먼 등의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50편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고 250편에 가까운 영화를 제작했으며 그중 280편 넘게 수익을 남겼습니다. 조너선 드미는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위대한 독립제작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평가했고 그의 말처럼 로저 코먼은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15살부터 선원생활을 시작한 테렌스 피셔는 바다에 인생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그동안 영화에 재미를 느낀 그는 스물여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셰퍼드스튜디오의 편집조수로 취직, 20년 가까이 편집기사로 근무했습니다. 연출 데뷔는 1947년, 마흔 셋의 나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코미디물이었던 <보기 대령>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고 이후 다양한 B급영화를 만들다 해머필름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저주>(1957)를 발표하며 비로소 재능을 꽃피웠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웠던 폭력 묘사, 특히 원색이 강조된 세트의 강렬함이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해머의 대표감독, 아니 공포물의 거장으로 떠올랐습니다.

리처드 플레이셔와 로저 코먼과 테렌스 피셔는 영화 역사상 가장 오락적이면서 가장 막나가는 영화를 만든 감독들로 유명합니다. 저예산 졸속의 B급이 아닌 메이저에서 허용하지 않는 지구상에 단 하나뿐인 상상력과 자유로운 제작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영화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영화팬들의 열띤 환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각자의 개성도 뚜렷합니다. B영화라는 범주로 공통점을 가질 뿐 작품의 성격은 전혀 다른 지점을 향하는 것입니다. 리처드 플레이셔는 특수효과가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다 뒤로 갈수록 서구사회의 이면을 건드린 테마로 주목받았다면 로저 코먼은 메이저에서 독립한 영화가 가져야 할 창조적인 연출과 흥행에서 손해 보지 않는 제작방식을 확립했습니다. 또한 테렌스 피셔는 익숙한 괴수물을 가져와 자극적인 소재와 충격적인 연출을 가해 독특한 영화적 기운을 창조하며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후대에 미친 영향도 막대해서 <닥터 두리틀>(1967) <레드 소냐>(1985) 등 리처드 플레이셔의 많은 작품이 현대에 리메이크되어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로저 코먼의 경우, 그를 통해 영화를 배웠던 마틴 스콜세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잭 니콜슨 등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미술과 세트가 돋보이는 테렌스 피셔 영화의 특징은 현대 공포물에서 공통적으로 두드러진 요소이기도 합니다.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4월 프로그램으로 ‘B영화의 위대한 거장 3인전: 리처드 플레이셔, 로저 코먼, 테렌스 피셔’를 상영합니다. 4월 9일부터 5월 8일까지 한 달간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주류 할리우드와는 다른 불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소위 B영화의 진가를 확인할 좋은 기회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B영화의 위대한 거장 3인전
(2011.4.9~5.8)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탈리아 밀라노의 손꼽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루키노 비스콘티는 어려서부터 손쉽게 예술을 접하며 심미안을 키워왔습니다. 특히 음악가인 어머니 덕택에 일찍이 유명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자로 손꼽히는 소설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등을 만나면서 음악과 오페라, 연극과 문학 등 각종 예술장르에 눈을 떴습니다. 그중 영화와 오페라에 두드러진 창작 능력을 발휘한 비스콘티는 예술세계에만 함몰되는 대신 탈골된 이탈리아 사회에 대한 저항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며 파시즘에 저항했고 그 자신의 동성애 성향도 당당하게 밝히며 경직된 사회에 파란을 몰고 오기도 했습니다. (<저주받은 자들>에 출연했던 헬무트 그리엠이 마지막 연인이고 프랑코 제피렐리도 한때 비스콘티와 사랑을 나눴습니다.)

네오리얼리즘부터 탐미주의까지, 파장이 넓은 관심사를 펼쳐 보인 비스콘티의 영화적 주제는 다름 아닌 그의 인생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공산주의자로 청년 시절을 보내고 파시즘에 적극적으로 투쟁하면서도 오페라, 연극, 드라마, 음악, 문학 등 예술에 대한 왕성한 흡수력을 보였던 그의 인생 자체가 바로 영화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하여 비스콘티의 영화에는 그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고전예술 장르의 미가 스크린 속에서 빛을 발한 흔치 않은 경우라 할 만합니다. 비스콘티는 종합예술매체로써 영화를 구현한 말 그대로의 거장이었습니다.

비스콘티의 영화 경력은 장 르누아르의 <토니>(1935)와 <시골에서의 하루>(1936)의 조감독 활동으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로베르토 로셀리니, 페데리코 펠리니 등과 교류를 하게 되었고, 1942년 제임스 M.케인의 소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원작으로 한 <강박관념>을 데뷔작으로 발표하며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또한 두 번째 영화 <흔들리는 대지>(1947)를 통해 고기잡이의 노동과 착취를 사실적으로 그려 네오리얼리즘의 중심에 서게 됐습니다. 

오페라에도 관심이 많았던 비스콘티는 1946년부터 1960년까지, 영화 작업 한편에서 오페라감독으로도 활약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네오리얼리즘의 우산에서 벗어나는 분기점이 되는 영화 <센소>(1954)는 오페라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작품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점령기를 배경으로, 한 여인이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멜로드라마의 형식에 담아낸 <센소>는 의상, 무대, 카메라 움직임, 구도, 색채 등 유달리 화려한 바로크 시대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또한 <흔들리는 대지>(1948)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과 함께 ‘시칠리아 삼부작’을 형성하는 <레오파드>(1963)는 앞선 두 작품과 달리 귀족계급의 위상이 날로 떨어지는 시대의 초상을 웅장하고 우아한 오페라처럼 묘사함으로써 네오리얼리즘과는 안녕을 고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노골적으로 귀족주의적인 탐미성향에 빠져든 비스콘티는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 <루드비히>(1973)를 통해 너무나 아름다워 퇴폐적이라고 해도 좋을 극단적인 유미주의의 성향을 드러냈습니다. <가족의 초상>(1974)에서도 이 같은 경향을 이어간 비스콘티는 <순수한 사람들>(1976)을 완성한 후 공개를 앞두고 1976년 3월 17일 로마에서 의문의 자동차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2011.3.10~3.20)에서는 네오리얼리즘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벨리시마>(1951)부터 그의 탐미주의가 극에 달한 <베니스에서의 죽음>까지 상영할 계획입니다. 안나 마냐니의 극성스런 모성 연기가 빛을 발한 <벨리시마>, 시칠리아에서 밀라노로 이주한 가족의 생생한 삶을 가감 없이 묘사한 <로코와 그의 형제들>, 이탈리아를 벗어나 나치 독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저주받은 자들>, 그의 예술관이 가장 완벽한 형태로 구현된 걸작 <베니스에서의 죽음>, 루드비히 2세의 비극적인 삶을 4시간에 걸쳐 추적하는 대작 <루드비히>, 그리고 비스콘티의 유작 <순수한 사람들> 등 대표작 6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아트시네마
(2011.3.10)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은 주류 바깥에서 감지됩니다. 특히 2010년과 2011년은 저예산 장편 데뷔작들이 돋보였던 해라고 할 만합니다. 주류 영화계가 흥행에 성공한 장르와 소재의 재활용, 무엇보다 규모의 경제학에 함몰된 사이, 창의적인 영화문법과 사회현실에 밀착한 소재, 그리고 자신만의 제작방식으로 무장한 신진작가들의 작품이 새로운 영화 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런 한국영화의 최근의 경향을 반영해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프로그램을 선보입니다. 3월 22일부터 4월 7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마녀의 관> <빗자루, 금붕어 되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이웃집 좀비> <쿠바의 연인> <회오리 바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불청객> <레인보우> <이파네마 소년> <조금만 더 가까이> <파수꾼> <짐승의 끝> <혜화, 동> 14편의 작품이 소개됩니다. 모두 2010년과 2011년에 개봉한 작품들로, 비슷한 구석 하나 없이 그들 각자의 장르와 이야기, 그리고 서술법을 택하고 있어 흥미로움을 더합니다.

<빗자루, 금붕어 되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혜화, 동>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렇기에 외면하는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는가 하면, <이웃집 좀비>와 <불청객>은 각각 흥행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무시 당해온 좀비와 SF를 과감하게 차용해 근사한 결과물을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회오리 바람>과 <이파네마 소년>, <조금만 더 가까이> 역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청춘을 소재삼아 지금 세대의 사랑과 방황의 흔적을 스크린에 새겨 넣습니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과 <쿠바의 연인>의 경우, 개인의 감정과 사연을 극에 적극적으로 도입해 색다른 다큐멘터리의 재미를 선사하고 <파수꾼>과 <짐승의 끝>은 기존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화용론과 영화문법으로 젊은 영화의 면모를 과시합니다. 그리고 <마녀의 관>과 <레인보우>는 소위 클리셰(Cliché)라고 부르는 익숙한 장면이나 기승전결의 서술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이야기의 자유로움을 획득한 경우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작품을 한 데 모으면 2010년과 2011년의 한국영화 장편 데뷔작들이 도달한 새로운 경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 영화에게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수사를 붙여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최근의 장편 데뷔작들이 보여주는 지금의 이 시작을 꾸준한 무엇으로 지속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14편의 영화를 상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작품을 연출한 감독들 모두가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마련한 건 이 같은 의도에서 비롯됐습니다.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간 중 두 차례 열리는 포럼 동안 한국영화계 기저에서 활발히 모색되고 있는 변화의 바람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과거와는 다른 한국영화의 신(新)풍경을 목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아트시네마
2011.3.4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로 입사한 지 오늘로 3주차가 됩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생소한 일이다보니 실수하지 않으려고 매일 긴장한 채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처럼 영화를 고르고 글을 쓰는 건 맞지만 이곳에서는 필름도 직접 수급해야 하고 당직도 하면서 표도 받아야 하고 여러 가지로 일들이 많네요. 그래도 마감하느라 밤새는 게 예사인 잡지 일에 비하면 출퇴근 시간이 고정적이라 시간 활용하기가 좋아 한편으로 맘은 편합니다. 사무실이 상영관 바로 옆이라 고민 없이 바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도 좋고요. 그래서 처음 성과물을 내는 것이 바로 12월 14일부터 시작하는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 Hommage Claude Chabrol’입니다.

제가 들어가기 전부터 기획된 것인데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니, 클로드 샤브롤 사망(2010년 9월 12일) 후 추모 영화제를 하는 곳이 많을 것 같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요. 오퍼만큼은 넣어보자는 생각에 프랑스 쪽에 의뢰를 해보니 올해까지 필름 대여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클로드 샤브롤 이 양반이 평생에 50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저작권 관리가 여러 군데로 흩어져 있다 보니 필름 수급에 한계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는 모두 8편입니다. 목록은 <미남 세르쥬>(1958) <사촌들>(1959) 초기 두 작품과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할아버지가 코믹한 TV쇼 사회자로 등장하는 <마스크>(1987)를 제외하면 <지옥>(1994) <의식>(1995) <거짓말의 한가운데>(1999) <초콜릿 고마워>(2000) <악의 꽃>(2002)까지, 1990년대 이후의 작품이 주를 이룹니다. 샤브롤의 전성기라고 할만한 1960년대의 영화들, 가령 <도살자>(1969) <야수를 죽여야 한다>(1969) <부정한 여인>(1969)과 같은 작품을 상영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아쉽네요.

개인적으로는 <둘로 잘린 소녀>(2007)를 봤으면 했는데 이 또한 수급하는데 실패했습니다. 한국에는 잘 안 알려진 작품입니다. 한국의 영화 전문가들이 주로 1960년대 작품과 <의식>을 전후한 1990년 중반 몇몇 작품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둘로 잘린 소녀>를 중심으로 샤브롤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한창이라고 하네요. 대신 제가 이번 영화제를 통해 가장 기대하는 작품은 <지옥>입니다. <지옥>은 원래 앙리 조르주 클루조가 1964년에 시도했던 프로젝트입니다. 클루조 영화 경력에서 가장 큰 예산이 투입된 것은 물론이고 그의 야심이 가장 크게 반영됐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클루조의 <지옥>은 영화 역사상 가장 저주받은 미완의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투자사와의 마찰로 촬영에 들어가자마자 주인공 여배우가 교체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촬영 3주 후 클루조가 심근경색을 일으키면서 끝내 촬영이 중단되고 말았죠. 그리고 30년이 지나서야 클루조의 미망인이 저작권을 넘기면서 샤브롤의 <지옥>이 탄생하게 되었던 겁니다.

전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앙리-조르주 클루조의 지옥>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히치콕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정도로 미스터리 연출에 일가견을 보였던 클루조답게 의처증에 시달리는 부인의 심리를 인공적인 배경과 다양한 색채의 조명으로 대담하게 표현한 것이 인상 깊었더랬습니다. 과연 클루조가 이루려던 <지옥>을 샤브롤이 어떤 버전으로 완성했을지 궁금하네요. 프랑스 제작사로부터 스크리닝 DVD로 받기는 했지만 아직은 보지 않았고요.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가 열리면 볼 생각입니다. 극장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덴데 굳이 작은 화면으로 볼 생각은 안 드네요. 이번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를 통해 샤브롤의 진가를 모두 확인할 수 없지만 그의 죽음 이후 찾아온 허기를 다소나마 달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을 기약해야죠. 보다 큰 규모로 샤브롤 영화제를 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영화뿐만 아니라 그가 쓴 연구서도 함께 볼 수 있으면 해요.

사실 샤브롤은 소르본대학에서 약리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파리의 시네클럽을 통해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과 어울리면서 이후 <카이에 뒤 시네마>를 통해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유명합니다. <미남 세르쥬>를 발표하기 전까지 활발한 평론 활동을 펼쳤던 그는 에릭 로메르와 공저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누명 쓴 사나이>(1956)를 분석한 연구서 <히치콕>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샤브롤도 그렇고 클루조도 모두 히치콕을 대입해야 흥미로운 설명이 이뤄지네요.) 저는 샤브롤이 쓴 글을 전혀 읽어본 적이 없어서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만 그 때문에 샤브롤의 영화가 과소평가됐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샤브롤은 ‘히치콕주의자’로 유명합니다. 히치콕 영화의 자장 안에서 샤브롤의 영화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다수라 그의 연출의 면모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는 거죠. 샤브롤의 영화를 본 분들이면 잘 아시겠지만, 히치콕의 영화를 단순 모방한 것은 아닙니다. 누벨바그(Nouvelle Vague)에 대해서도 “뉴웨이브(누벨바그의 영어식 표현)는 없다. 영화의 바다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영화 세계의 창조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감독이 바로 샤브롤이었습니다. 히치콕이 그랬듯 살인의 이면에 감춰진 죄의식과 강박증 같은 인간의 말라비틀어진 감정에 주목하되 프랑스적이라고 해도 좋을 배경과 감성을 섞어 샤브롤만의 미스터리 스릴러 문법을 완성했던 것입니다. 이래도 안 보실 겁니까. (반 협박 ㅋㅋ) 12월 14일부터 시작입니다. 개막작은 <사촌들>이고요. 그럼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에서 뵙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
(2010.12.14~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