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 박정범 감독

지난 5월 23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산다>의 GV를 진행하였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박정범 감독님은 물론 <스물>의 이병헌 감독님도 응원차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날의 대화 내용이 인디스페이스 블로그에 올라와 있더라고요. 이를 여기에 옮깁니다.

허남웅 평론가(이하 ‘허’) 이병헌 감독님은 <산다> 어떻게 보셨나요?
이병헌 감독(이하 ‘이’) 이번에 2번째 보는 거고요. 시사회 때 보고 지금 또 봤습니다. <산다>라는 제목 자체가 <무산일기> 영화에 갖다 붙여도 무관할 것 같아요. 살아낸다는 것에 대해서 치열한 감정을 느꼈고 영화를 보고 나서 온 몸에 상처가 난 듯한 느낌이었어요. 보기만 해도 춥잖아요.

 <산다>라는 제목이 참 간략하지만 관객 분들은 앞뒤에 뭔가 덧붙이고 싶을 거예요. 처음부터 <산다>라는 제목을 생각하신 건지, 그리고 이 시나리오가 50고까지 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길게 갈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박정범 감독(이하 ‘박’)  같이 사는 배우 친구가 자살을 하고 나서 그 친구를 어떻게 떠나 보내야 하는지 생각했어요. 그 때 공황장애가 와서, 왜 그렇게 된 건지 스스로 찾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해서 만든 거예요. 원래 이야기는 자살하려고 하는 형을 말리는 동생의 이야기였습니다. 쓰다 보니 계속 바뀌는 거죠. ‘산다는 게 뭐지’라는 생각으로 가서 <산다>가 됐고요. 정확하게 50고는 아닌데 50번 정도 고쳤어요. 제목도 바뀌고. 그런데 주제는 비슷했어요. ‘산다’는 게 뭔지 생각해보는.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서 이렇게 길어진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지난 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는 3시간 15분이었잖아요, 지금은 줄어든 버전이죠. 물리적 시간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게, ‘산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나왔듯이 고통의 시간이 아닐까 하거든요. 감독님 입장에서는 상영 시간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화를 찍기 전에 이미 쓴 시나리오가 너무 긴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이게 만들어지는 게 가능할까 생각했어요. 몇 년간 기다린 이유는 투자사가 없어서고요. 다행히 전주 영화제에서 만들 수 있게 해주었어요. 그 기간 동안 계속 고친 거죠. 그렇다고 시간을 줄여서 고치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왜냐면 앞으로 이렇게 영화를 찍을 기회가 없다는 걸 저 역시 알고 있었어요. 원 영화는 5시간 정도 나오는데 그 정도 길이 영화를 평생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년간 고치면서 인물이 각자 살아남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거죠. 이 욕심이 사실 잘못된 거였어요. 아, 이게 과유불급이구나, 10년 후 감독판 DVD로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이병헌 감독님은 연출자 입장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나요?
 박정범 감독님 영화에는 워낙 그런 장면들이 많으니까요. 저는 가볍게 엔딩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어요. 두 가지 설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로등하고 문을 마지막에 달아두는 부분이요. 저는 가로등에서 감독님이 어떤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지 대충은 알겠는데 문은 자기 돈 받았으니까 영화적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하신 건지, 그 지점이 궁금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가로등에서 끝내지 왜 또 에필로그를 달아줬냐는 얘기를 꽤 하셨어요. 문을 다는 것을 앞으로 보내는 편집을 얘기하기도 하셨고요. 3시간 버전에서의 앞뒤 구조는 누군가의 문을 떼서 자기의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만 남의 행복을 빼앗아서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이 남자의 며칠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했고 그 사이에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가로등은 사람을 위해 다는 거잖아요. 빛을 달아 길이 보이게 하는 것이 저에겐 은유적인 느낌이었고, 그 길에 빛을 비추고 나서 깨달은 거죠. 내가 하나를 지켜주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다 보니 반성을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가 문을 뗀 기억이 난 거죠. ‘그 친구는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서 문을 달아주게 되는 거죠. 저는 그런 순간이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잘못을 반성하는 것. 그 지점이 아주 중요하고 이 영화의 에필로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가 주인공이 정철이지만 명훈이나 수연이라든지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아 보이는데요, 어떤 부분에서 눈물이 났고 어떤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됐는지 이병헌 감독님께 궁금하네요.
 저는 익숙한 감정이 하나에게 있었어요. 아빠라고 잘못 알고 찾아가는 지점에서 정철이와 하나의 뒷모습. 그리고 ‘삼촌 가자’ 했을 때의 목소리가 연기가 아닌 것 같았고 저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딸이 있어서 그런지 영화를 두 번 보면서 그 장면에서 다 울었어요.

 그리고 하나에게 귀를 막으라고 계속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철이 욕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것 같은데, 현장에서는 하나를 연기한 배우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궁금합니다.
 대본에는 귀 막으라는 대사가 없었는데, 촬영하면서 이 친구가 이 영화를 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아이가 연기를 하지만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을까봐. 그래서 영화 내용은 설명 안하고, ‘지금 너의 아버지가 아프다고 생각해봐’ 하면서 다른 내용으로 장면을 연기하게 시켰어요. 폭력적인 장면에서도 귀를 막으라고 하는 게 툭 튀어나온 말이었어요. 귀 막으라는 건 제가 조카가 다섯 있는데 안 좋은 것은 안 보여주고 싶잖아요. 그런 감정이었죠.

 <산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눈에 익지 않은 반면 상대적으로 박희본 배우는 익숙한 배우에요. 튄다는 느낌인데 어떤 목적으로 박희본 배우님을 캐스팅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박희본 배우하고 이은우 배우는 많은 연기 경험이 있는 분이죠. 외에 배우 분들도 독립영화에 많이 출연했던 분들입니다. 오디션을 안 보고 뽑는 분들은 그 분들의 작품을 다 봤기 때문인 거죠. ‘이 영화에 맞겠다’해서 뽑았어요. 그리고 희본 씨가 사실은 시트콤 류의 연기들을 많이 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이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희본 씨의 이미지는 차가움이었어요. 차가움과 발랄함의 이중성이 이 영화에 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현장에서도 편안하게 연기하셔서 NG가 안 난 배우들 중 한 분이었어요.

 NG는 주로 어느 부분에서 나나요?
 감독의 욕심이죠. 제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이 있잖아요. 현장 가면 그 그림대로 나오는 경우는 없고 그 갭을 줄여나가는데 어느 선에서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근접한 것이 이건가 하고 테이크를 많이 가게 돼요. 사실 그렇게 한 20-30테이크 정도 가다 보면 모두가 쓰러질 것 같은 순간이 와요. 그것을 극복하면 이상한 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거기까지 갔던 컷들이 몇 개 있어요. 진심으로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끝나고 생각을 해보니 이런 분들을 다시 못 만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감독님들이 영화를 찍고 나서 드는 감정인 것 같아요. 이병헌 감독님이 보기에 박정범 감독님의 연기는 어떤가요?
 저는 배우로서도 감독님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곡괭이질과 도끼질을 너무 잘하시잖아요. 뭐죠? (웃음) 밝혀주세요.
 단편 영화를 혼자 찍을 때, 아시겠지만 독립영화는 혼자 다해야 하잖아요. 적으면 1-2달, 길면 3-4달 막노동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 기술이 없으니까 닥치는 대로 가서 하는 거예요.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청소만 하고 짐만 나르고 이러면서 배우는 거죠. 문짝 들고 가는 건 자신 있는 게 주상복합 아파트들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갖다가 끼우는 거거든요. 그 일을 꽤 했었어요. 그래서 지고 걷는 것을 잘 할 줄 압니다. (웃음)
 그런 것들에 있어서 영화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직접 경험해 보시고 찍어서 영화의 깊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은 직접 연기를 하면서 본인이 출연한 매 장면을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현장에서 객관화할 수 있는 과정이 있었나요?
  제가 ‘OK’를 말로 하긴 하지만 이미 현장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직관적으로 그 장면이 찍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OK가 나오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암묵적 동의가 계속 이뤄지는 거죠. 제가 연기하면서 OK가 아닌데 너무 힘들어서 OK를 주고 넘어간 게 몇 개 있어요. 부화기 던지고 알을 깨는 장면 있잖아요. 보시면 제가 대사를 잘못해요. 버벅거리면서 말을 돌리는데 다시 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때릴 때는 진짜 때리잖아요. 연기를 하고 나면 컷하고 나서 심장이 막 뛰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 장면이랑 누나를 방에 가두는 장면. 이 두 장면들이 테이크를 3-4번 밖에 못 갔어요. 다른 장면들은 20번 정도 갔거든요. 이미 ‘컷’하고 촬영감독을 봤는데 정직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으면 다시 가라는 얘깁니다. (웃음) 그리고 씩 웃고 있으면 정말 좋구나, 그런 거죠. 스태프들도 알아요. 배우들도 자기가 모자라면 다시 가자고 하고, 그런 가족적인 분위기의 현장이었습니다.

관객 강사장 캐릭터를 실제 아버님께서 연기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여기 나오는 캐릭터들이 다들 복합적인 감정을 가졌는데 강사장도 마찬가지로 비전문배우가 연기하기엔 어려운 감정들을 표현해야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를 캐스팅할 때 어떤 계기로 캐스팅하셨고 디렉팅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제 단편영화 때부터 같이 하셨어요. <무산일기> 때도요. 저희 아버지가 강원도 된장공장에서 혼자 일을 해요. 전문 배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외모가 영화적으로 맞겠다고 생각해서 같이했습니다. <산다>에서는 의도적으로 분량이 많은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왜냐면 현장에 아버지가 있으면 여러모로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거든요. 그리고 아버지랑 같이 영화를 만드는 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도 짧은 연기라도 같이 연기하는 장면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병헌 감독님은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연기와 이미지 중에 어떤 점을 더 우선에 두시나요? <스물>이나 <힘내세요 병헌씨>에서는 어땠나요?
 <힘내세요 병헌씨>와 <스물>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힘내세요 병헌씨> 때는 제가 뭘 몰라서 다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자신감 때문에, 연기 말고 이미지만 봤던 것 같아요. ‘되게 개성 있다, 저 인물을 모셔다가 내가 원하는 연기 톤은 내가 입히면 되니까’ 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접근을 했다가 고생한 기억이 있어요. (웃음) <스물> 때는 완전히 연기 쪽으로 오디션을 많이 봤어요. 정치적으로 엮인 것도 있긴 있었지만. (웃음) 변해가는 것 같아요, 작품 할 때마다.

 이병헌 감독님, 본인의 영화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이야기를 함께 하셨는데 이 시간 어떠셨나요?
 저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관객의 역할이었어요. (웃음) 그 뒤에 한 시간 반짜리 영화가 속편으로 개봉하면 어떨까,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영화 많이 봐주시면 빨리 개봉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영화 관련해서 GV, 인터뷰 등으로 바쁘게 보내고 계신데 촬영 당시보다 3kg 찌셨대요. 지금이 영화 찍을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할 수 있는, 그렇지만 예민한 시기인 것도 같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글 쓰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고요. 매년 새로운 영화로 찾아 뵀으면 좋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있습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4-5년 걸리더라고요. (웃음) 저는 우울한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게 직업이니까 꾸준히 열심히 잘 찍겠습니다.

<산다> GV
(2015.5.23)

<파울볼> 조정래, 김보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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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원더스는 한국야구 최초의 독립야구단이자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구단이다. 프로야구 리그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로 일궈낸 통산 90승 25무 61패라는 놀라운 성적, 이를 바탕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선수들이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하게 된 신화 같은 이야기. 그리고 공식 출범 3년 만에 맞이한 갑작스러운 해체 소식. 하지만 고양 원더스가 남긴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 번 실수가 실패와 동일시되고 패배자라는 굴레 속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이 일상화된 한국. 그와 같은 현실에서 고양 원더스는 다시 시작할 기회라는 가치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줬다. <파울불>은 바로 기적과 같은 새 출발의 이야기로 울림을 주는 영화다. 고양 원더스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던 조정래, 김보경 감독과 김성근 감독에 대한,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프로야구 시범 경기가 한창이던 3월 26일에 이뤄졌다.    

<파울볼>을 기획하게 된 계기부터 설명해주세요.
조정래(이하 ‘조’) : 정원찬 프로듀서님께서 고양 원더스 창단 소식을 접하고 영화화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해주셨어요. 원더스가 창단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2011년 말부터 전주에서 첫 번째 훈련이 있었어요. 이를 시작으로 해외 캠프에서 연습하고 국내로 돌아와 시즌을 치르는 걸 전부 다 찍었고요. 그걸 바탕으로 편집했어요. 그리고 간간이 2기 멤버들 훈련하는 것도 찍고요. 김보경 감독님께서는 3기 멤버 촬영부터 해서 김성근 감독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야구 언론 종사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김성근 감독님과 인터뷰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고요?
조 : 엄격한 이미지가 있으시잖아요. 김성근 감독님께 가까이 다가가 인터뷰를 많이 시도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한계를 느꼈다고 할까요. 전 야구를 좋아하고 사회인 야구도 했지만, 김보경 감독님은 야구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접근을 해주셨어요. 그게 잘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김성근 감독님 인터뷰까지 이어졌어요.

어떻게 김성근 감독님을 녹이셨나요? (웃음)
김보경(이하 ‘김’) : 전 야구를 잘 모르지만, 왜 인터뷰하고 싶은지 김성근 감독님께 먼저 손편지를 썼어요. 개인적으로도 영화감독으로 다시 시작하려는 상황이었는데 감독님께도 원더스에 오셔서 다시 시작하는 거 아니냐, 그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나누고 싶다는 요지의 글을 3장짜리 편지에 써서 드렸죠. 감독님께서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누구야, 궁금해하셨어요. 이를 계기로 인터뷰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죠. 카메라를 앞에 뒤고 이야기하는 거에 귀찮아하셨어요. 감독실에 들어가거나 연습하는 중에 붙어서 얘기를 나누는 경우는 없다고 조정래 감독님께 들었어요. 근데 저는 야구 잘 모르니까 ‘생까야지’ 들이댔죠. (웃음)

두 분 감독님의 역할은 각각 ‘야구’와 ‘사람’으로 분담이 됐군요?
조 : 김성근 감독님(1942년생)이 나이 드셨다고 해도 완전 청년이시거든요. 야구에 있어서만큼은 본인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세요. 자신에게도 그렇고 선수들에게도 룰을 철저히 지키세요. 저희는 프런트에 있는 홍보팀처럼, 몸속의 장기처럼 딱 붙어 있었죠. 김보경 감독님이 합류하기 전까지 저희 팀은 그라운드 안에서 훈련 과정을 기록하고 적절하게 인터뷰를 가미했어요. 김보경 감독님이 합류하면서 ‘사람’에 더 접근해 마음의 문을 계속 열었던 것 같아요.

김 : 처음에는 불안했어요. 걱정하면서 찍었어요. 조정래 감독님이 진행하실 때는 정석 같은 다큐멘터리 방식과 정갈한 카메라 워크 등이 있었는데 제가 초반에 찍은 소스는 완전 개판이었어요. (웃음) 저도 그렇고, 저와 함께 한 스태프들도 상업영화만 해 온 케이스이다 보니까 다큐멘터리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어요. 대신 저 나름대로는 고양 원더스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어요. 사람을 콘셉트로 찍자고 공유를 했어요. 우리가 궁금하면 관객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기존의 고양 원더스를 다룬 TV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지점을 찾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감독님도 그렇고 선수들과 스킨십을 하는데 치중을 했죠.

드디어 김성근 감독의 마음을, 선수들의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김 : 퓨처스리그 경기 중 더그아웃에 들어가서 촬영한 적이 있어요. 김성근 감독님께는 촬영 전 설명드렸죠. 시큰둥하면서 모른 척해주셨거든요. 근데 심판한테 경고를 들었어요. 심판이 나중에 매니저를 통해서 경기 중에, 특히 원정 경기에서 더그아웃에 카메라가 왔다 갔다 하는 건 안 된다. 그때부터 요령이 생겼어요. 홈경기 때만 심판에게 미리 양해를 드리고 방해를 하지 않는 선에서 촬영할 수 있었죠. 김성근 감독님 자리 앞에 GoPro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찍다 보니까 못 보던 컷들을 얻게 됐어요. 처음에 불안했던 요소들이 조금씩 사라졌던 거죠.

언론으로 접하던 김성근 감독님을 직접 대면해 보니 어떻게 다르던가요?
조 : 야구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적장일 때는 굉장히 미워했죠. SK 와이번스 감독님일 때 공공의 적이셨잖아요. (웃음) 야구에 대해서 해박하시고 19연승을 이끌기도 하셨잖아요. 김성근이라는 인물 자체가 궁금했어요. 직접 촬영을 하게 되니까 신기했죠. 현장에서 감독님이 이렇게 가르치시는구나. 어떤 지도자도 감독님이 직접 그라운드에 아침부터 나와서 밤낮으로 함께 하는 경우가 없대요. 선수들도 처음 경험하는 거래요. 인간적으로 존경하게 됐죠.  

<파울볼>은 김성근 감독님을 비롯해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에게도 주목하는 작품이에요. 워낙 사연이 많은 선수들이잖아요. 하지만 김성근 감독님이 너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까 영화 안에서 선수들과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했겠죠?
조 : 그렇죠. 김성근 감독님이 주인공으로 비치지만, 이 작품은 야구 경기를 하는 ‘사람’에 방점이 찍힌 작품이잖아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되니까요. 원더스 선수들이 조연이 아니라 함께 하는 주연으로 보이는 게 중요한 포인트였죠.  

김 : 야구를 몰랐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님이 ‘야신’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었어요. 저는 이 영화가 한 명의 성공 신화로 그려지는 걸 바라지 않았어요. 김성근 감독님께서 워낙 주옥같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편집 과정에서 감독님 분량과 들어갈 자리를 정해놓고 선수들 이야기를 넣었다, 뺐다 균형을 잡아갔어요.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기 전 방출 당하기도 했었고 모두가 새롭게 출발하는 선수들이었는데 그 안에서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 해체 소식을 듣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느꼈을 절망 등의 이야기를 넣었죠.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절망적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했어요.  

스킨십을 중요한 접근 방법으로 삼았던 만큼 인간적으로도 코칭스태프와 선수들과 아주 친해지셨죠. 그래서 갑작스러운 고양 원더스의 해체 소식에 누구보다 당황하셨을 것 같아요.
조 : 생각도 못 했죠. 지옥 훈련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서 좋은 성적을 냈고 많은 선수가 프로팀에 진출했잖아요. 김성근 감독님이 맡았던 팀이, 선수들이 왜 잘할 수밖에 없는지를 목격했던 거죠. 단순히 선수들을 ‘굴려서’ 됐다는 게 아니에요. 감독님의 훈련법은 아이컨택에 가까워요. 그게 정말 다른 거죠. 그런 모습을 통해서 인간 승리라는 드라마를 그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예상한 대로 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김 : 그때 조정래 감독님은 오사카에 계셨어요. 3기 촬영 때부터는 빠지셨거든요. 해체 소식을 듣고 전화를 드렸는데 통화가 안됐어요. 그래서 저희 팀만 가서 촬영했어요. 코치님들도 당일에 선수들 알기 5분 전에 해체 소식을 아실 정도였으니까요. 편집에는 빠졌지만, 감독님이 출근하시고 단장님이랑 얘기한 후에 코치님들을 감독실에 부르셨어요. 다음 시즌 준비하러 온 첫날에 해체 소식을 들었으니 모두 ‘멘붕’이었던 거죠. 저는 충격이라기보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정신이 없었어요. 저희도 많이 울었어요. 어떻게 선수들과 얘기를 하고 촬영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상황에서건 카메라를 돌려야 하는 게 감독님의 의무라는 게 그날만큼 힘든 적이 없었겠네요?
김 : 그걸 기록해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다는 생각에 정말 독하게 다 찍었어요. 분량만 해도 엄청나요. 카메라 4대를 돌렸거든요. 이들에게 오늘을 꼭 기억시켜주고 싶다, 당시만 해도 이 영화가 개봉하게 되면 이 장면을 쓸 수 있을지 몰랐어요. 다만 그걸 담아주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프로 구단에서 받아주지 않고 버려진 선수들이 다시 절망을 맛본 순간인데요. 영화는 여기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보며 끝을 맺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김 : 해체는 팩트죠. 끝이고 절망이었죠. 그래도 아주 작은 씨앗 같은 희망을 말하고 싶었어요. 해체 당일 청각장애를 가진 박병우 선수와 인터뷰를 했어요.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말을 못하겠대요. 그러다가 할 말이 생각났다고 왔어요. 끝까지 해서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감독이나 코치가 돼서 자기 같이 장애가 있는 선수들을 키우고 싶다는 얘기를 해줬어요. 해체가 힘들었을 텐데 그 이후에도 선수들은 새벽같이 계속 훈련에 나왔어요. 그때 느꼈죠. 해체를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그게 저는 아주 예뻤어요.  

<파울볼>을 만들고 나서 프로야구 개막을 지켜보는 기분은 남다르겠죠?
조 : 햇수로 4년, 기간으로는 3년의 기록인데 김보경 감독님과 저는 영화가 개봉할 수 있을지도 몰랐어요. 여러 가지 부침 속에서 이렇게 개봉을 하게 되니 감개가 무량해요. <두레소리>(2011)도, 오랫동안 준비한 위안부 소녀 이야기도 혹자들은 저에게 마이너하고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로 헤맨다는 얘기를 해요. 김성근 감독님께서 “끝까지 연습하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덤덤하게 말씀하셨어요. 저에게 울림이 컸어요. <파울볼>을 작업하면서 감독님의 말씀처럼 끊임없이 노력하고 생각하면 성공이든, 실패든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참 감사해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 그들 모두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어요. 요즘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더 힘든데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NEXT plus
(2015.4.8)

<그라운드의 이방인> 김명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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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가 있기 전 야구팬들은 전국의 고등학교 야구팀이 총출동한 봉황대기에 열광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을 기념해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봉황대기 결승전은 ‘역전의 명수’로 유명한 군산상고와 일본에 적을 두고 있는 재일동포 팀이 맞붙었다. 한국인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 군산상고가 우승했고 재일동포 팀은 환영받지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30년을 훌쩍 넘긴 지금 당시 재일동포 팀의 멤버들은 어떻게 지낼까? 김명준 감독(사진 가운데)은 당시의 멤버를 찾아 잠실야구장 마운드에서 시구를 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우리가 그동안 외면했던 이들과 누락된 역사를 한국의 마운드에 되살리기 위한 화해의 손길이었던 셈이다. 그 과정을 다룬 것이 바로 <그라운드의 이방인>이다. 재일조선인학교를 다룬 <우리 학교>(2006) 이후 9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에 대한 우여곡절(?)의 사연을 김명준 감독에게서 들었다.
 
이 영화를 처음 기획한 건 조은성 프로듀서였다고요?
재일동포 야구단의 숨겨진 얘기를 다룬 블로그가 있어요. 그중 일본에서 20년 동안 야구팀을 지도한 재일동포 감독의 이야기를 읽고 조은성 프로듀서가 감동하여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어요. 인디스토리 대표님과 의기투합해서 프로젝트 얘기를 하다가 ‘재일동포’의 사연이라는 점에서 <우리 학교>를 찍었던 저를 불렀던 거죠. 제게 상담을 부탁한 건데 연출 이야기까지 나왔어요.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제가 야구를 잘 몰라요.

<그라운드의 이방인>이 야구를 매개로 하지만, 결국 재일동포 이야기잖아요. 야구를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우리 학교>는 총련계 동포 이야기란 말예요. 근데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민단 쪽이잖아요. 민단 쪽의 분위기를 알고 있거든요. 우리말이 잘 안되고 일본 사회에서도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아요. 총련 쪽보다는 네트워크가 깊게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어려운 작업이 될 거라고 지레짐작한 거죠.

결국 ‘총대’를 메셨어요? (웃음)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두려움이 앞섰지만, 재일동포 사회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아는 세계는 재일동포 사회 안에서도 일부이니까 좀 더 알아볼 수 있겠다, 배우겠다는 각오로 시작했죠.

하지만 애초 조은성 프로듀서가 기획했던 이야기와는 많이 달라졌죠?
20년 동안 감독하셨던 분의 개인사를 통해서 좀 더 넓은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촬영을 고사하신 거예요. 나이도 지긋하시고 살날도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일본 사회에 재일동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식과 손자들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영화를 찍던 중간에 지금의 이야기로 전환하게 됐어요.  

1982년 봉황대기 결승전에 출전했던 재일동포 멤버들이 중심에 놓이지만, 굴곡 많았던 한국의 현대사가 함축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한국의 주류 스포츠는 축구와 야구로 양분되어 있잖아요. 원로 재일동포 야구인들이 얘기하기를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야구는 남한, 축구는 북한이라는 인식이 강했대요. 축구는 일제 강점기부터 국민 스포츠이긴 했지만, 북한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던 만큼 큰 성적을 거뒀으니까요. 그래서 재일동포 사회 내에서 총련계는 축구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대신 당시 북한에서 야구는 불모지였으니까 야구를 하고 싶은 동포들은 조국으로 와야 한다면 남한이었죠. 1956년부터 재일동포 야구단이 한국의 고교야구 대회에 참가한 이후부터 이들이 알게 모르게 많이 왔던 거죠. 당시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심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안고 들어가야 하는 숙명 같은 게 있었던 거죠.  

영화는 ‘Batter box-1st Base-2nd Base-3rd Base-Batter Box’로 구성되었어요. 관련해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배수찬 씨의 사연을 ‘3rd Base’에 배치한 의도는 무엇인가요?
다큐멘터리도 하나의 스토리가 있는 건데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은 뒤에 배치한 거죠. 배수찬 씨는 순수하게 야구를 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역사에 희생되고 말았죠.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바람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고 판단했어요.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1982년 봉황대기 결승전 참가 멤버들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구성으로 야구의 루 개념에 맞춰서 진행되잖아요. 배수찬 씨는 한국에서 프로야구단 코치로도 활동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돌아오지 못했잖아요. 저 먼 아르헨티나 타국에서 돌아가셨으니까 마음은 고향에 오지 못한 거죠. 그래서 홈 베이스에 들어오기 직전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배수찬 씨의 사연을 ‘3rd Base’에서 다뤘죠.

1968년 당시 북한 무장공비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청와대에 침투하려던 ‘1.21 사태’가 발생하면서 한국에서 야구를 하고 있던 배수찬 씨가 총련계라는 이유로 모진 고초를 당했죠. 그렇게 극단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그라운드의 이방인>에는 재일동포 야구팀이 한국에 와서 차별당한 부분도 언급돼요. 봉황대기 대회에서 재일동포 야구팀이 실수라도 하게 되면 한국 관중들이 엄청나게 환호를 했죠.
제가 일본인도, 재일동포도 아니어서 본격적으로 드러내기에는 한계가 있었죠. 다만 한국인 입장에서 재일동포를 어떻게 봤으면 좋을지 넣고 싶었어요. 중요한 건 1982년 멤버들이 한국에 대해 느꼈던 감정, 이 사람들이 고향에 왔는데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가를 탐구했던 거죠. 사실 우리가 이들에게 전하는 인상이 있잖아요. 그런 게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고 낯설고 움츠리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어요. 실제로 이 영화를 보신 후에 어떤 분이 재일동포 야구단이 한국에서 야구 경기를 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욕도 하고 그랬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되게 미안하더라, 라는 얘기를 하셨어요. <그라운드의 이방인>을 통해서 우리의 치부를 꺼내놓고 해법을 모색하고 싶었죠.

1982년 재일동포 야구팀 멤버들이 2013년 4월 두산 베어스의 개막 3연전 마지막 날 시구를 했죠. 이들이 시구를 마치고 원정팀 벤치 쪽으로 들어올 때 그전에는 별 반응이 없던 선수들이 손뼉을 치더라고요. 이를 변화라고 봐도 될까요?  
저는 다르게 느꼈어요. 프로 선수들이 1982년 재일동포 멤버들을 몰랐을 수 있겠죠. 보통 연예인이 와서 하는 똑같은 시구였던 거죠. 다만 한국의 야구 역사를 이야기할 때 재일동포 선수들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다뤘다면 기립하지 않았을까요. 한국의 원로 야구인들이나 레전드들이 시구를 한다고 했을 때 젊은 선수들이 앉아서 손뼉 치겠어요? 물론 선수들이 몰랐기 때문에 잘못한 건 아니에요. 야구팬들 중 적어도 한 명이라도 이 장면을 보고 그 의미를 알아 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두산 베어스의 개막식 잠실 마운드를 섭외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독립영화 하는 사람이 시구에 대해 부탁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겠죠. 진행하면서 우리 힘만으로는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야구인 중에 임호균 전(前)삼미 슈퍼스타즈 선수와 조은성 프로듀서가 친해요. 임호균 선생님의 부인이 재일동포세요. 이해가 우리 일반 야구인들보다 깊은 거죠. 임호균 선생님이 활약하던 1980년대 당시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재일동포 선수들이 많았잖아요. 그 가치를 알거든요. 그래서 임호균 선생님이 두산 프런트에 얘기를 잘해준 거죠. 두산 베어스팀에 감사해요.
 
임호균 전 선수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재일동포 야구단 일원 중 한 명이었던 현(現)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이나 1982년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재일동포 팀과 상대했던 군산상고의 당시 선발 투수였던 조계현 현 기아 타이거즈 코치도 인터뷰 영상으로는 볼 수 없었어요.
제가 좀 더 노력했다면 야구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유명 선수들을 섭외해서 인터뷰할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고민했던 부분은 그런 유명인들이 많이 나오면 잘 팔릴 수는 있겠지만, 제가 의도한 영화의 방향성에서는 엇나갈 것 같았어요. 민초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1982년 재일동포 봉황대기 멤버들은 유명세를 타지 못했고 역사에서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등장한 멤버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양시철 씨(사진 오른쪽)는 처음 우리가 접근했을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 했어요. 한국의 잠실야구장에서 시구를 위해 마운드에 오르기까지 자신에게 온 이 상황에 대해서 의심을 했어요. 그런 고백을 듣고는 제가 정말 미안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봉황대기 출전을 위해 한국에서 와서 어떤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졌을지 조금은 상상이 되더라고요. 양시철 씨가 재일동포 사회 안에서도 처지가 안 좋았어요. 고등학교 때 잘만 했으면 한국 프로야구팀에서 투수로 활약할 수도 있었는데 잘 안됐죠. 지난해 <그라운드의 이방인>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사비를 들여 부산에 오셨어요. 결혼하셨더라고요. 제가 유추하기로 한국에 와서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 게 아닌가,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하게 변해간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 영화가 양시철 씨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해서 고마웠죠.  
 

NEXT plus
(2015.3.11)

<슬기로운 해법> 태준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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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쓰레기들, 즉 ‘기레기’들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요즘이다. 공공의 선은 내평개친 지 오래, 자신들의 이권에 맞춰 기사를 선별하며 팩트를 조작하는 등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민낯을 만 천하에 드러냈다. 마침 태준식 감독은 <슬기로운 해법>을 통해 우리의 언론, 아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이익 집단이 왜 언론을 사유화하는지, 어떻게 기사를 조작하는지, 이의 백그라운드에 있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팩트’로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태준식 감독은 한 사회의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언론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집단을 개혁하기 위해 ‘슬기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슬기로운 해법>은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이죠?
2012년 8월 부터 시작을 했어요. 당시에는 대선 전에 내는 게 목표였는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 속에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어요. 1차 완성본은 2013년 가을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최종본은 서울독립영화제 때 나온 거라고 보면 됩니다. 서독제 상영본과는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기술적으로 색보정을 다시 했다든가 믹싱을 손 본 그 정도죠.  

공교롭게도 <슬기로운 해법>의 개봉에 즈음해 세월호 참사로 ‘기레기’가 부각되고 있어요.
개봉 일정과 관련해서는 배급사에서 선택한 부분이기 때문에 저는 별로 신경을 안 쓴 입장이에요. 다만 원래 개봉은 5월 15일보다 먼저였는데 세월호 참사 때문에 영화가 아예 묻힐 가능성이 있어서 연기를 했죠.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하나 ‘웃프다’? 작품의 측면에서 이번 기회에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대해서 환기하게 된 건 좋아요. 하지만 언론의 문제가 아주 저열하게 드러난 상황이기 때문에 관객 여러분께서 작품을 객관적으로 못 보시는 것 같아요. 사실 기자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언론사의 지형 문제인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기자들에게 분노하는 상황이죠. 작품으로 보건데 약간 손해 본 것 같기도 해요.  

영화의 태도라고 해야 할까요, 분노를 일으키기보다는 차분하게 언론의 문제를 지적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팩트 fact’ 자체가 주는 데이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야 이 작품이 ‘슬기롭게’ 이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분노와 같은 나의 감정을 드러내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어요.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2010)이 롤모델이었어요. 표현 방식이나 만든 사람의 위치 등을 참조했는데 그런 태도가 맞는다고 봤어요. ‘조중동’ 나쁜 거 아는 상황에서 조롱만 하고 안 좋은 면만 부각하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슬기로운 해법>은 김성재 작가의 <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이 원작이에요. 다큐멘터리가 원작을 갖고 만들어지는 경우는 드문데 말이죠.  
<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은 참여정부 시절의 고(故)노무현 전(前)대통령과 언론사 간의 관계들, 특히나 서거 직전에 몇 달 동안에 보수 언론들이 어떻게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갔는가에 초점을 맞췄어요. 사례를 중심으로 분노에 차서 쓴 글이죠. 쓰신 분이 이 영화의 기획자입니다. 제 입장에서 이 책을 당연히 참고 안 할 수 없었죠. 사실 저는 참여 정부는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비판하는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다만 언론과 언론 문제에 관한한 정치인으로서 문제의식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서 이를 바꾸기 위해 실질적으로 행동에 나섰던 사람은 노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생각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라든지 참여 정부 시절의 언론간의 관계, 부동산에서의 종부세 문제 등으로 영화의 축을 잡았던 거고요. 오히려 원작을 확대 발전시켜야 했는데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더욱 강화해서 서거와 관련한 부분은 차분하게 가고 팩트를 이끌어내서 작업했어요. 원작이 중요한 시발점이었지만 참고자료였던 거죠.

그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팩트를 중요시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화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있죠. 그 때문에 이걸 더 잘 해야 하겠다는 고민이 있었죠. 언론과 관련되어 있는 그 정도 수준에서 멈추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왔던 일들, 그 의미를 정리하는 걸로만 하고 다른 얘기를 하지 말자, 그런 차원에서 작업을 했어요. 물론 감정적으로 참여정부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내가 바라보는 언론에 관한한 더 냉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맞아요,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이러저러한 얘기를 많이 듣고 있어요. 네가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수 있느냐, 하는 반응. 오히려 아직까지도 노무현 정권에 대해 분노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그런 감정은 지금까지 가질 필요는 없는 거고, 지난 정권의 역사적인 평가는 별개로 지금에 와서 새롭게 바라보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다뤘어요.  

원작과 마찬가지로 5장 형태로 되어 있어요. 하지만 내용은 달라요.
원작의 구성과 영화와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언론사들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그 팩트를 가지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고 봤죠. 언론이 어떻게 사적인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적인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펜을 사용하게 됐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근데 조중동이 위기 상황인데 이를 어떻게 돌파했을까, 어떻게 정치권력과 결탁해서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었나, 그래서 종편이 위험하다는 영화 속 구성이 들어가게 됐고요. 그러면 이 앞에 모든 이야기를 관장하는 백그라운드에는 지금 현재 누가 있을까, 의문을 갖다 보니까 삼성이 나오게 됐죠. 그런 식의 논리적인 흐름을 가져가려 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슬기로워야 한다는 식의 에필로그가 들어가게 됐죠.

<슬기로운 해법>이라는 제목은 중앙일보의 연재 기획 기사에서 가져왔어요.
처음에는 <야만의 언론>이었어요. 저는 작업을 시작할 때 제목을 정해놓지 않으면 못 들어가요. 근데 제목으로 <야만의 언론>은 아무리 봐도 아닌 거예요. (웃음) 취재 시작하고 나서 한 달 후에 <슬기로운 해법>을 정해졌어요.

정연주, 주진우, 홍세화 등 많은 언론인들이 인터뷰이로 나와 주세요. 하지만 조중동 쪽 관련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아요.
영화적으로도 그렇고 넣어봐야겠다, 제작 과정에서 생각했어요. 실제로 컨택을 한 명했어요. 조갑제 씨. 되게 완곡하게 친절한 어법으로 못나오겠다며 팩스로 회신을 보냈어요. 굳이 바짓가랑이 잡으면서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안 들어가게 됐고요. 종편에서 생난리를 치는 사람들을 인터뷰 해볼까 하다가 구성을 잡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들의 말을 넣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어떻게 보면 저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입장일수도 있어요.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저쪽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 보통 그런 얘기하잖아요. 저는 옛날부터 배운 게 우리 쪽 사람 얘기 듣는 것도 바빠, 저 사람들은 TV에서 얘기하는데 내 영화 위해서 따로 들을 필요가 있나.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어요.

영화도 개봉했고 최근 공영방송의 자정 분위기도 목격되고 있는데요. 감독님은 이 ‘야만의 언론’이 개선될 거라고 보시나요?
당장 보이지는 않겠죠. 이 작품에 대해서는 바램이 있죠. 하지만 독립영화가 극장에서 차지하는 상황이 조건상 미약하고 배급사도 힘들고 그래서 크게 기대를 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다만 작품 속에서도 ‘미디어스’의 한윤형 씨도 얘기를 했듯이 조중동이 담당하고 있는 활자화된 담론이 이쪽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게토화 되었죠. 그러면서 조중동의 폐해가 더 심화 확대 발전되게 초래한 건 우리 쪽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이 부분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또 다른 언론 운동, 개혁을 하기 위한 시작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사진 공주은      

맥스무비
(2014.5.28)

<한공주> 이수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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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주>의 씨네토크를 5월 22일과 23일 각각 인디스페이스와 아트나인에서 가졌습니다. 인디스페이스에서는 <한공주>를 연출하신 이수진 감독님, 극 중 ‘선생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출연하시는 이영란 배우님과, 아트나인에서는 이수진 감독님과 함께 했습니다. 인디스페이스에서 가졌던 씨네토크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인디플러스 관객 기자단 인디즈 1기 전유진 기자님께서 정리해주셨습니다. 인디스페이스 블로그에 올라와있는 을 여기에 옮김니다. 이수진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는 위의 사진은 아트나인 관계자 분께서 찍어주셨습니다.  

허남웅(이하 ‘허’): 먼저 감독님께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이수진 감독(이하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봤던 건 아니었고요. 긴 시간 동안 성폭행, 중고등생의 자살 ,왕따 이런것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었고 그 기억들이 이 영화를 만들게 했던 시작이었습니다.

: 사건도 사건이지만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요. 한공주와 조여사, 선생님 등 주변인물이 많은데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캐릭터를 잡아갔는지도 궁금합니다.
: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공주는 강한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과거의 아픔이 있지만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캐릭터이길 바랐고 조여사같은 경우에는 우리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사실 조여사라고 얘기하지만 ‘선생님 어머니’라는 호칭이 관객분들한테는 더 인상깊을것 같은데요. 선생님 어머니라는 호칭, 한공주라는 이름도 그렇고 여러가지 많은 면에서 해석할수있고 생각해볼수있을텐데 호칭과 이름은 어떤 의도이고 어디에 초점을 맞췄는지 궁금합니다.
: ‘선생님 어머니’라는 단어에 큰 의도가 있었던건 아니고요. 실질적으로 공주가 호칭을 부르기가 참 어렵죠. 또 공주에게 중요한 공간을 제공해주는 인물이기 때문에 일종의 잘 보여야 할 대상이죠. 17세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호칭으로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 공주라는 이름 자체가 어디로 숨을래도 숨을 수 없는 이름이기도하고, 영화 <오아시스>에서 문소리 배우미님의 극중 이름이 ‘공주’이기도 한데요. 감독님이 처음 공주라는 이름을 지을때 혹시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예전부터 극 중 인물의 이름이 영화의 제목이 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이 이야기를 쓰면서 이 친구의 이름이 영화의 제목이 되겠구나 싶었어요. 어렸을 때는 애칭으로 공주라는 이름을 많이 써서 누나 이름이 공주인줄 알았어요. 그만큼 공주라는 이름의 느낌은 사랑받을 존재인데 극중에서는 오히려 외면당하는 아이러니함이 이 이름을 짓게 만들었습니다.

: ‘선생님 어머니’가 공주를 처음 만날 때 첫 행동이 임신했는지 배를 만지잖아요. 굉장히 자연스럽게 느껴지는데  감독님의 지시가 있었나요? 그런 식의 애드립이 몇 개 보이는데 어떻게 나온 장면인지 궁금합니다.
이영란 배우(이하 ‘란’): 시나리오에 있었던 장면이이에요. 배 만지는 장면은 많이 싸웠어요.(웃음) ‘임신한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배도 안 나오고 만져봤자 전혀 감도 안잡히는데 손을 대는 건 말도 안된다’ 했는데, 감독님은 ‘그래도 대라’ 하셔서 나온 장면이었죠. 자연스럽게 보인다면 다행입니다 사실 촬영하면서도 ‘선생님 어머니’ 캐릭터가 그렇게 부각 되리라곤 생각 안 했습니다 .열심히 해보려고 애썼을뿐인데 예상 외로 ‘선생님 어머’니 캐릭터를 많이 생각해주시니 다 캐릭터를 재밌게 만들어주신 감독님 덕분입니다.
 
: 배우들에게 대사 전달에 대한 지시사항이 따로 있었나요?
: 이영란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사무실에서 시나리오 보시고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는데, 오히려 제가 오디션을 보는 듯 했어요. ‘왜 저를 선택하신거죠?’부터 시작해서.. (웃음)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선생님이 제한된 시간 안에서 대본에 있는 감정을 잘 살려주시고 많이 보여주려고 애쓰셨기 때문에 지금 이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합니다.
: 감독님이 어떻게  60대 여성을 그렇게 잘 알고있는지 60대 여성의 속내, 감성, 욕망, 판타지 등이 이 캐릭터에 전부 다 깔려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어느 시나리오에서도 볼 수없는 전형적이지 않은 60대 여자인거에요. 그러면서 ‘어떻게 이런 설정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함에 꼬치꼬치 묻느라고 오디션을 좀 했습니다 (웃음)
60대 여성이어도 여자잖아요, 분명 여자로서의 욕구가 있죠. 이 여자는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너무나도 당당하고 또 자기가 돈 있다고 해서 돈없는 사람은 사람 취급도 안하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생님 어머니’가 밉지 않아요.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때문이죠. 젊은 남자의 시선에서 60대 여성을 한 여인이면서 하나의 주체로 굉장히 당당하고 톡톡 튀게 그려준 것이 고마웠어요.

: ’60대 여성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까’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배우님이 그렇게 느끼셨던 구체적인 장면이 있었나요?
: 예를 들어 이런 대사는 굉장히 신세대적인 감각이죠. “결혼하자는데 그만 만날까?” 전형적이고 순정적인 사랑, 진부한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쿨하게 애정 관계도 정리할 수 있는 의지요. 그리고 이사람의 언행이 경쾌해요. 그것 자체가 이 여성의 정서나 에너지를 보여주는 거죠.

: 배우님은 어떤 연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 저는 개인적으로 파출소 소장 부인과 그 친구들에게 얻어맞은 상처에 공주가 약을 발라주는 장면이 제가 봐도 연기가 편안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감독님께 칭찬 받았거든요. (웃음)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마지막에 한공주가 가방을 끌고 다리에 가기 전 보여지는 나무에서 한공주 내면의 스산함을 느꼈어요. 그 나뭇가지의 움직임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공주가 고개를 내밀고 헤엄 치다가 그림자로 이어지는 그 이미지가 굉장히 좋습니다. 한공주가 물에 뛰어들었지만 살고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한공주는 끊임없이 살아서 흘러간다는 또다른 차원의 삶의 비법을 깨우친게 아닐까’하는 점에서 그 장면들이 좋습니다.

: 배우님께서는 영화에 출연하실 때 어떤 것들을 고려하나요?
: 저는 배우의 존재감에 대해서 고민해요. ‘이 사람 이 영화에 왜 필요한가’ 혹은 ‘어떻게 고민하나’ 그런 것들이 분명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는지요.
: 사실 조여사라는 캐릭터를 배우로 캐스팅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왜냐하면 이 영화의 조여사라는 캐릭터에 집단린치신이 있고 베드신, 목욕신까지 있잖아요. 선생님께서 ‘내가 지금까지 연기를 하면서 한번도 하지 않은 세가지를 이 영화에서 다 하고 있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단 한번도 싫은 말씀을 안 하셨어요. 아마도 신인감독에 대한 배려를 해주신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 <한공주>라는 영화에서 천우희라는 배우가 어떤 점이 공주와 잘 맞다고 생각하셨는지, 천우희라는 배우를 캐스팅 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 처음 만났을 때 천우희 배우가 슬럼프를 겪고있던 시기였어요. 굉장히 영리한 친구인데, 어쩌면 저를 만나면서 계속 공주의 느낌을 주려고 했는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오디션이 끝나고 배웅을 하는데, 함께 가면서도 걸음걸이, 표정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 공주의 느낌을 주려는 것을 느꼈고 그런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 배우님께는 어떠세요? 천우희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부분에 있어서 특별한 대화를 나눈 적 있나요? 둘이서 대체모녀관계의 모습도 보이는데, 연기를 하면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합니다.
: 거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게 곁에 있었어요. 굉장히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연기가 되었어요.
제가 관객의 입장에서 물리력을 행사하면서 약한 아이들을 가해하는 모습을 볼 때 제속에서 살의가 올라오는 것을 느껴요. 정당화 될 수 없는 폭력성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그러한 모습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결말에서 보여지는 카메라워크가 우리 사회에서 한공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버스 안에 있던 카메라가 밖에 있는 한공주를 끝까지 잡을 수 없고, 공주가 물에 빠졌을 때는 카메라가 다리 난간에서 아래로 바라보기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졌거든요. 우리사회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 거리감을 다른 장면에서 어떻게 보여주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 말씀 주신게 맞아요. 유리벽, 문 등에 막혀있는 장면이라든지 공주가 항상 바라보는 시선으로 공주의 내면을 보여줬습니다.

: 사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하기 전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였는데, 혹시 해외 관객들은 한국 관객들과  다르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나요?
: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미국같은 경우엔 법제도에 대해 분노 했었고,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에서는 굉장히 깊이 공감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해외 감독들은 오히려 한국관객들 반응에 대해 역으로 궁금해하더라고요.

: 한공주와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과 차기작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다음달에 영화제로 뉴욕과 LA에 갈 예정이고요, 차기작은 <한공주>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준비를 할 것 같습니다.     

<마이보이> 전규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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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보이> 전규환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습니다. 4월 11일 금요일에 인디플러스에서 영화 상영 후 약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당시의 대화 내용을 프리스톤 님께서 인디플러스의 블로그에 올려두었더라고요. 그 내용을 공개합니다.

허남웅(이하 허) : 전규환 감독 최초의 12세관람가 영화다. (웃음) 어떻게 구상하시게 되었나.
전규환(이하 전) : 마음 속에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했던 작품은 아니고 지자체에서 의뢰가 들어와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화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나오다보니 벗길 수 없지 않나(웃음)
 
: 전작을 보신 분들은 물론 알겠지만 전감독님 작품은 인물을 벗겨서 인상적이라기보다 다른독특한 감성들이 있어서 인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의 드럼도 마찬가지였고, 특히 마지막 작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구상하실 때 혹시 저 장면을 먼저 생각해놓고 다른 이야기들을 만드신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 엄마와 아이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그 다음 어떻게 다가갈까를 고민했다. 내가 아주 위대한 예술, 철학적 영화를 찍는 사람도 아니고… 다른 고민들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마지막에 임팩트를 주고 싶긴 했다.
 
: 늘 다양한 영화적 시도를 하시는 느낌인데, 이런 영화 역시 어떠한 시도와 변화라는 점에서역시 감독님 답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히 ‘가족영화’라는 점 때문에 이전과 다르게 접근한 부분이 있나?
: ‘타운 시리즈’를 끝내고 <불륜의 시대>, <무게> 그리고 이번 <마이보이>까지 매번 장르의 변주를 나름대로 실험하고 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족드라마 역시 기존 관습대로의 영화는 다른 분들이 충분히 훌륭하게 만들고 있으니 나까지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맨날 신라면만 먹을 수 없지 않나. 다양한 음식들이 있는 것 처럼 다양한 영화적 문법을 보여주고 싶었다.
 
: 이번 작품의 경우는 설정 자체가 신파처럼 될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철저하게 거리를 두면서 가족들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스스로 먼저 정해놓은 게 있었나.
: 그렇다. 주인공 캐릭터가 슬프고 우울한데 보통의 가족영화처럼 슬픈 표정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제 영화의 본 모습을 흐릴 수 있고, 전체적인 이야기가 한장면 한장면에 묻힐 수 있어서 그건 내가 원하는 철학은 아니다. 관객한테 강요하는 울음이나 슬픔은 배제하고 싶었고, 물론 그런 장면들이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 실제로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 주변의 캐릭터들도 깊숙히 들어가 있진 않다. 관객 역시 철저히 관객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형태로 풀고 싶었다. 슬픔 안에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건 너무 뻔하게 생각된다.
 
: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더 인상적인 것도 같다. 연기자를 활용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 분씩 얘기 듣고 싶다. 드럼 치는 이석철 배우, 서두에 지자체 제작지원 말씀하셨는데 그게 아마 이천이었던 것 같다. 캐릭터 이름이 이천인 걸 보면. 그 배우를 캐스팅 할 때 조건이 있었을 것 같다.
: 드럼 치는 아이를 찾기 우해 전국을 뒤졌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스탭들이나 영화 하는 사람들은 아역 탤런트 같은 이쁜 친구들을 추천 했는데, 그거보단 좀 더 이 아이의 모습에 가까운, 투박하게 생기고 촌스럽기도 하고 한 아이를 찾았다. <댄스타운>의 아이처럼 못생기고 뚱뚱하고. (웃음) 이태란, 차인표씨의 경우는 제일 중요한 건, 제가 같이 작업했던 모든 배우들, 조재현씨가 됐든 누구든, 기존의 기성 배우들이 해왔던 연기, 그들이 갖고 있는 연기의 화법이나 문법 그런걸 해체하는 것도 저에겐 의미가 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하는 것. 연기자가 매번 똑같이 하는 건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하는 거고 관객에게도 민폐다. 그들도 그런 걸 잘 알고 있다. 제일 안타까운 건 충무로 젊은 감독들이 배우의 쓰임을 획일화 시키는 것 같을 때다. 이런 캐릭터엔 이 배우, 저런 캐릭터엔 저 배우… 그런 방식은 배우와 영화 모두에게 도움이 안된다.
 
: 이태란씨는 TV 연기 쪽으로 특화된 배우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어떤 걸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 같다.
: 마찬가지로 이태란도 TV에서 숙련된 드라마적인 화법이 있다. 습관화된 걸 빼내는 작업이 중요했다. 도저히 안되면 여러 테이크 중에 그 같지 않은 걸 쓰게 되고. 차인표 역시 눈 에서 레이저가 나온다거나(웃음) 그런걸 빼는 작업을 많이 했다. 제일 선한 눈빛의 테이크를 쓴다든지…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 영화를 만드는 시간이 정말 빠른 편이다. <마이보이>는 사건보다 감정에 치중하는 작품이고, 그러면서 연기자들의 연기 패턴 같은 것을 버려야 하고, 감정을 살리게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했을 거다. 전작에 비해 촬영 기간은 얼마나 되었나.
: 촬영기간은 거의 비슷했다. 18회? 20회차 안 쪽에서 끝났다. 밤을 새운 적도 없다. 실내장면 같은 건 몰아서 찍고. 물론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베스트 상태가 되도록 기다려준다. 서로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작업했다.
 
: 18회차 정도면 다른 영화와 비교하면 굉장히 짧은데 그 안에서 최선의 것을 뽑아내는 데는 노하우가 필요할 것 같다.
: 모르겠다. 보통의 상업영화들이 짧게는 40, 50회차 길게는 70, 80회차 찍는다는데 저는 제가 필요하면 회차를 늘리기도 하지만, 짧게는 보통 10~15회 찍는데, 제가 원하는 영화는 그 안에서 다 나오는 것 같다. 예산의 압박도 있다. 철저하게 갖고 있는 예산 안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찍고, 버리는 컷 없이 한다.
 
: 연기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나중에 엄마가 유천이를 안고 있는데 유천이가 미동도 없다. 조왕별이란 배우로 알고 있는데, 어린 배우가 그런 연기를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 주문도 하고, 부탁도 하고 그런다. (웃음) 어린 배우에게. 니가 잘해야 모두가 살 수 있다고.
 
: 첫 장면에 이천이가 머리 깎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엄마가 아이 군대 보내듯이, 이제 유천에게 집중해야 하므로 이천에게 해줄 수 있는게 그런 거밖에 없는 것이라는 느낌도 들었고…  첫 장면이 중요할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어떤 의미를 담았나.
: 두 명의 중요한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들의 사연 속에 관객들이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감정 이입하는 시간을 준다는 느낌? 중요한 두 캐릭터를 롱테이크로 잡는데 이 둘이 갖고 있는 사연들과 이야기를 지금부터 펼칠 건데 준비가 됐습니까 하는 의미를 주고 싶었다.
 
: 이천이에게 집중하지만 어른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차인표씨도 이천이를 돌봐주고, 휠체어 훔치는 아이들이 등장할 때도 도와주는 어른이 등장하고, 조기축구회 회원도 그렇고,  어른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고, 어른들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같았다.
: 제가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환타지 영화인 <무게> 때도 그렇고 사실에 입각해서 사실적으로 접근하는 걸 좋아한다. 진실된 사건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갔음 좋겠다. 예를 들어 어떤 시나리오 작가가 처음 제 시나리오를 보고 너무 착하지 않냐고 하더라. 길에서 아이들이 나쁜 사람도 만나고 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데 그 사람들 역시 너무 관습화 되어있는 문법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제가 봐왔던 어른들의 혹은 아이들의 모습은 거기서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그 정도 인 것 같다. 길에서 나쁜 사람 만나고 거기서 애가 또 헤쳐 나와서 희망을 가지고 성장하고… 재미없다. 저까지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제가 겪은 것, 제 영화의 출발은 다 거기서 나오는 것 같다.
 
: 감독님 영화는 빨리 찍는 데도 불구하고 치밀함이 느껴지는데, 이천이 방에 야구글러브 두 개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형제의 친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둘의 전사를 보여주는 느낌? 사고 전에는 꽤 화목한 가정이었을 것 같고. 미장센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아 보였다. 아이들 놀이, 오락 카드에 대한 조사도 모두 했나.
: 시나리오는 다 직접 썼다. 모니터를 구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카드가 나오고 피씨방도 나오고 제가 흔히 볼 수 있는 또래의 아이들이 그런 생할을 하므로 그냥 자연스럽게 넣은 거다. 게임 이름 같은 거 정도 찾아보고. 또 부모 역시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딱 고정도까지 야단치고 그러는 거 같다. 미장센 말씀하셨는데 저하고 같이 작업하고 싶어하는 상업영화 스탭도 많다. 맡겨주면 너무 장르 영화 속에 보여지는 뻔한 셋트, 저는 그런 게 맘에 안 든다. 내가 아는 미술은 그런게 아니고 <애니멀 타운>의 성범죄자도 그냥 그 정도의 모습인데 자꾸 뭘 채워 넣으려고 하고, 범죄자면 무얼 수집하고. 뭐 변태적인 걸 모으고… 너무 많이 관객들을 오염시키고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 같은 게 안타깝다.
 
: 현장에서 많이 촬영했다. <무게>와 비교하자면 더욱더 그래보인다. 현장이므로 미술에 대한 신경을 덜 쓴 것 같기도 한데 어땠나.
: 다른 거다. <무게>는 환타지 영화니까 거기에 맞는 미술을 보여준 거고. 그저 손이 많이 갈 뿐이다. 전체가 셋트장이니까. 마찬가지로 로케 촬영할 때는 손은 덜 가지만 그와 비슷한 에너지 집중은 필요하다. 쓰임이 다를 뿐이지, 에너지는 똑같다.
 
: 제목이 <마이 보이>.  이천이도 내 아이고, 또 이천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텐데.
: 처음엔 <두 소년> 이었다. 그런데 그 의미보단 모두의 아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 아이의 슬픔은 극중 엄마, 도공 혹은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 그 간의 영화는 어둡다는 느낌이 많은데 실제로 만들고 싶어하는 건 <행오버> 같은 코미디 영화라고 들었다. 왜 미뤄지나?
: 내가 어느 날 그런 걸 들고 나오면 2천명 남짓한 관객들마저 날 버릴까봐 겁난다.(웃음) 하지만 무척 만들고 싶다. 그런 대책없는 코미디 영화들. 실제로 시나리오도 많이 써놨다. 다른 문법의 액션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걸 해보고 싶다.
 
: 그렇다면 영화를 구상할 때 처음 영감을 주는 건 이야기인가 문법인가.
: 이야기다. 그 다음이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가족영화가 있다.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은 알겠다. 알지만 제 방법대로 영화를 찍고 싶을 뿐이다.
 

<마이보이> 관객과의 대화
(2014.04.11)

[2014 친구들] <호수의 이방인> 크리스토퍼 파오우



알랭 기로디 감독의 영화라면 예상할 수 있듯 <호수의 이방인>에도 동성애가 전면에 나선다. 근데 이번에는 수위가 세다. 섹스 장면에서 사정하는 순간이 그대로 노출될 정도이고 배우들은 상영 시간 내내 전라로 등장할 만큼 과감한 연기를 펼친다. 크리스토퍼 파오우는 <호수의 이방인>에서 사랑에 적극적이지만 또한 사랑을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순간의 욕망에 충실한 미셸 역할을 맡았다. 분명 쉽지 않아 보이는 연기지만 크리스토퍼 파오우는 (살인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이 나누는 사랑과 별 반 다르지 않다며 그렇기에 좀 더 현실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지 않나?
그렇다, 프랭크를 찾으러 왔다. (기자 주_ 미셸이 도망간 프랭크를 쫓으며 열린 결말로 영화가 끝난 것을 빗대어 던진 농담) 그런데 아직 못 찾았다. (웃음)

개인적으로 <호수의 이방인>을 팜므 파탈이 옴므 파탈로, 어두운 술집의 뒷골목이 대낮의 호수로 바뀐 필름 느와르의 변주로 봤다. 필름 느와르는 결국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래서 영화는 보여주지는 않지만 미셸과 프랭크 중 한 명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 쪽이다. 극 중 프랭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순간 프랭크가 미셸을 부를 때 그 장면에서 나는 사랑이 느껴졌다. 오히려 프랭크가 이전보다 더 귀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서로 사랑해 결혼해서 2년 뒤라면 그때는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미셸은 뛰어난 외모를 가졌지만 살인도 저지르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다. 배우로서 욕심이 나는 배역이지만 적나라한 섹스 장면 때문에 출연이 망설여지지는 않아나?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는 욕망, 즉 사랑이나 섹스나 외로움이나 죽음을 일본의 ‘하이쿠’처럼 시적으로 표현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물론 시나리오 상에 묘사된 섹스 장면의 수위가 굉장히 높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알랭 기로디 감독의 전작을 보면서 출연을 결심했다.

알랭 기로디 감독과는 처음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어떤 경험이었나?
그와의 작업은 배우인 내게 큰 재산이 되었다. 알랭 기로디 감독은 진심으로 배우를 대할 정도로 인간적인 사람이다. 감독과 배우로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캐릭터에 대해 연구하고 영화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니 미셸을 더 잘 연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알랭 기로디 감독은 열정을 크게 과시하는 대신 디테일하고 세심하게 자신의 비전을 드러내는 편이다. 오히려 그런 성격이 내게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그것이 있는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알랭 기로디 감독의 고유한 연출 스타일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렇게 감독의 비전을 공유하게 되니 미셸이라는 캐릭터에 접근하는 것이 더 수월해지더라.

미셸과 같은 캐릭터는 감독이 요구하거나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그대로 연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과의 대화가 중요했을 텐데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일단 알랭 기로디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기 전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다. (웃음) 그 과정에서 미셸에게 반영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연기를 하면서도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을 때가 있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사실 알랭 기로디 감독은 미셸을 비롯해 극 중 인물들의 연기에 대해 무엇을 원하는지가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바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배우와 함께 연구를 해나가는 방식으로 캐릭터와 연기를 조율했다.

미셸과 프랭크의 섹스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하니 만큼 다른 장면보다 대화가 더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섹스 장면에 대해서 알랭 기로디 감독은 우리들에게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이 장면이 주는 투명함과 신비로움이 관객에게 전달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는데 이를 연기가 아닌 대화를 통해 너무 많이 알게 되면 연기하는데 방해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알랭 기로디 감독은 내게 미셸에 대한 확고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답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방식으로 연기가 이뤄졌다.

감독이 원한 바대로의 섹스 장면이라면 오히려 프랭크 역의 피에르 데 라돈샴과는 사전에 준비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현장에서 사실감을 살리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촬영에 들어가기 딱 일주일 동안만 리허설을 했다. 섹스 장면에 대해서도 연습을 했지만 이 순간에 손이 어디로 간다, 하는 식의 구체적인 접근은 피했다. 대신 느낌만 습득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 장면을 준비했다. 피에르 데 라돈샴과는 처음부터 교감이 잘 맞는 편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만나자마자 서로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피에르와 내가 그랬다.

알랭 기로디 감독의 <도주왕>을 보면 <호수의 이방인>에서처럼 남자들이 성행위를 하는 장소로 풀숲이 등장한다. 그래서 알랭 기로디의 영화는 일관성이 느껴지는데 이는 한편으로 동성애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보통의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섹스를 묘사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그럴 정도로 특별해진 묘사이지만 실은 굉장히 현실적인 모습이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또 그러면서 섹스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더욱 <호수의 이방인>에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동성애가 마이너리티인 까닭에 이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미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미장센 중 하나가 하얀 운동화다. 극 중반, 호수에서 누군가가 살인을 저지르는데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운동화를 신는 걸 보면 누구나 미셸이라고 인지한다.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가져온 장치라기보다는 어쩌다보니 나오게 된 우연한 미장센이다. (웃음) 처음 촬영할 때는 신발이 없었다. 근데 신발 없이 돌이 많은 호수 주변을 걷다보니 걸음걸이가 이상하더라. 너무 우스꽝스럽게 비치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발이 아팠다. (다른 배우들의 경우, 맨발로 등장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누워있거나 서 있어도 별로 움직임이 없는 경우라서 나와 다르게 굳이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됐다.

돌이 많아 걷기 불편했을지 모르겠지만 관객 입장에서 영화로 보는 극 중 호수는 정말 절경이더라.
니스 근처에 있는 호수였는데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확실히 지문 속 장소가 실제로 와 닿으면서 캐릭터가 내게로 들어왔다. 첫 촬영이 수영을 하는 장면이었다. 더 추워지기 전인 10월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섹스 장면처럼 감정이 중요한 영화는 시나리오의 신 별로 촬영하면 좋지만 비용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10월 한 달 동안 촬영했는데 낮 장면의 경우, 조명을 따로 쓰지 않고 해가 떠 있는 시간에만 촬영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도 가을이라 그런지 호수와 주변 숲이 선사하는 풍광이 정말 굉장했다. 이는 연기를 하는 나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촬영장이 자연친화적인 곳에서는 생각을 정리하기 좋다. 매일 같이 호수 주변을 산책하며 미셸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미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렵거나 고민되는 부분은 없었나?
미셸 역할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알랭 기로디 감독이나 나는 이 영화의 결말 때문에 고민을 했다. 처음에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열린 결말이야 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두 가지 버전의 결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첫 번째 버전의 결말은 프랭크가 미셸을 부르면서 끝을 맺는다. 하지만 두 번째 버전은 프랭크가 미셸을 부르면 숲속의 나무 뒤에 숨었다가 서로가 다시 만나 예쁘게 키스를 하고 끝을 맺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버전으로 지금의 결말을 취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열린 결말로 끝낸 지금의 버전이 보다 위협적인 느낌을 제공하기 때문에 영화를 더 살리는 것 같았다. 물론 결정하기 어려웠다. 두 번째 버전의 결말에서 미셸과 프랭크가 다시 만나지만 키스를 하다가도 미셸이 돌변해 프랭크를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랭크가 미셸을 불러도 돌아오지 않게 되면 관객은 이들이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있지 않나. 두 번째 버전은 결말은 형태가 명확해 관객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 최종적으로 지금의 버전을 선택했다.

열린 결말은 해석의 여지가 넓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배우에게도 연기할 수 있는 가능성의 폭을 넓혀주기도 하나?
대개 배우들은 해당 장면의 목적을 알고 연기를 한다. 내 입장에서는 지금의 결말처럼 모르고 연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았다. 물론 열린 결말이라고 해서 특별히 연기의 자유가 더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추격전은 현기증이 날 수밖에 없는데 미셸이 프랭크를 쫓는 장면에서는 현실적인 느낌이 나도록 연기했다. 열린 결말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상상할 수 있어서 현기증이 나는 그 느낌을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배우로서 내가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

부산영화제
REVIEW DAILY
NO. 3

<열한시> 김현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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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SF를 좋아한다. 소설도 읽고 영화도 찾아보며 책으로, DVD로 소장도 하고 있지만 대개는 영미권이거나 일본의 작품이 대다수다. <열한시>가 반가웠던 건 <설국열차>와 더불어 국내에서 오랜만에 보게 된 한국의 SF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거품이 잔뜩 꼈던 2000년대 초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내츄럴 시티>(2003) 등과 같은 100억대 제작비에 가까운 SF 블록버스터의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결과는? 하나 같이 쫄딱 망하면서 한동안 영화사들의 제작 목록에서 SF는 거의 삭제된 장르나 다름없었다.

김현석 감독의 <열한시>는 그와 같은 한계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SF다. 새로운 소재보다는 지금 한창 각광받는 ‘시간여행’을 주요한 설정을 가져오며 제작비 또한 중급 규모(약 30~40억 원대)로 책정해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렇더라도 블랙홀 내 웜홀을 통해 시공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이론에 근거, 타임머신을 등장시킨 설정은, 그것이 한국영화라는 사실과 결합해 기대감을 높인 것이 사실이다. 24시간 후인 내일로 가 15분만 머물 수 있다는 조건에 따라 우리의 주인공들은 시간여행을 감행한다. 러시아의 투자 기업으로부터 시간 이동 프로젝트의 중단을 통보받고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테스트 이동을 한 것이었는데 시간여행에는 성공했지만 연구원들은 모두 사라지고 기지는 폐허가 되어있음을 목격한다.

이에 영화는 주인공들이 오늘로 돌아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열한시>는 관객들에게 왜 제목이 ‘열한시’인지, 왜 타임머신의 이름은 ‘트로츠키’인지, 왜 비극적 운명을 목격하고도 가장 위험한 인물을 격리시키지 않았는지 등 많은 의문점을 남기는데 이번 인터뷰는 그와 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마련한 자리가 아니었다.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등 로맨틱코미디를 주로 만들어왔던 김현석 감독이 어떤 심경의 변화로 한국에서 만들기도 어렵고 인정받기는 더 힘들다는 SF에 도전했는지가 궁금했다. 이를 통해 한국 내에서의 SF의 현주소를 알아보는 것이 이번 인터뷰의 목적이었다.

김현석 감독과의 인터뷰는 <열한시>의 개봉 당일이었던 11월 28일 오후 광화문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아담한 카페에서 약 40분 동안 이뤄졌다. 예매율 1위의 소식이 전해졌지만  김현석 감독은 그와 같은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개봉을 맞이한 감독들이 대개 그렇듯 영화에 대한 평가에 민감해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오늘 개봉했다. 예매율도 1위고 관객 반응도 좋은 편이다.
잘 모르겠다. 객관화해서 보기가 힘들다. 호오가 좀 갈리는 편이더라. 이 영화에 대해서 대체로 비판하는 부분은 초반 20분 장면이다. 아예 대놓고 “오글거리던데요”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 뭐, 눈높이 차이가 있잖나. 영화가 좀 부족하지만 이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반면에 내 대학친구들은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인데 어려워하더라.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SF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생소한 쪽이다 보니 <열한시>는 최대한 어렵지 않게 연출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초반의 프리젠테이젼 장면은 나름대로 타임머신의 논리를 설명하려고 넣은 거다. 그 부분에서 아예 영화를 놔버리는 관객도 있더라. 정말 아주 간결하게 설명한 건데 영화평론가 듀나 외에는 아주 혹평은 없다. (웃음)

SF를 만든다는 것

본인이 직접 쓴 이야기로 작업해 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받아서 연출했다.
나는 각색을 했다. 지금까지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만 만들어왔다. 그래서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이하 ‘<시라노>’)이 시나리오 재고떨이 영화였다. 이후 써놓은 시나리오가 없었는데 CJ엔터테인먼트(이하 ‘CJ’)와 연출 계약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써서 할 수도 있었지만 CJ에는 여기저기서 개발된 좋은 시나리오가 있었다. 여러 개를 봤는데 처음에는 CJ측에서 내가 코미디를 많이 했으니까 그쪽을 하길 바라더라. 그게 무난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없는 선택이었다. 그 후에 내가 안 해본 스릴러나 좀비물 같은 장르 시나리오들을 보여줬다. <열한시>가 가장 재밌었다. CJ에서는 굉장히 의외의 선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막상 영화를 직접 연출하면서 그 어려움은 예상을 못했다.  

원래 SF 장르를 좋아했나?
관객으로서는 좋아했다. 근데 만드는 입장에서는 반대더라. 지금 말한 초반 20분이 이 영화의 본질은 아니잖나. 근데 후~ (한숨을 쉬며) 내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내가 너무 순진해서 SF를 만들게 된 것 같다. 공개되고 나서 내가 ‘와~ 최고의 CG입니다’ 한 건 아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어쩌면 차선일수도 있었는데 거기에 대고 ‘오글거리는 CG 좋아요’ 그렇게 비아냥대면 속상하다.

그런 부정적인 반응들이 많나?
물론 이와 같은 반응들은 처음부터 감수한 건데 영화를 좀 본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컨대, <그래비티>(2013)와 눈높이를 맞추면 안되잖나. <열한시>가 비주얼로 승부를 보는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그게 이야기를 보는 데까지 삐딱하게 시선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죄송하지만 영화 초반의 비주얼은 잊고 이야기에 집중해주세요, 하고 싶지만 영화라서 이게 참 내 맘 같지가 않다.

<열한시>는 스케일이나 이야기의 성격 상 <그래비티>가 아니라 <더 문>(2009)과 같은 저예산 SF와 비교해야 맞는다고 본다.
<더 문>도 참조를 했다. 근데 <더 문>도 할리우드 기준으로 볼 때 천만 불(우리 돈 약 100억 원)은 넘었을 거다. 하면서 뭘 느꼈냐면, <더 문>이 100억을 가지고 만들었다면 미술에 쓰인 돈이 최소 우리가 쓴 거에 다섯 배 이상은 될 거다.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 탁자를 만들어야 한다, 이 돈이 똑같이 든 거다. 우리의 입장에서 그 비용의 5분의 1안에서 탁자를 만들어야 하니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와 같은 제작비의 문제를 절감했나?
이를테면, 영화 속 배경이 2150년 이러면 우리 영화로는 구현할 수도 없다. 아주 간단한 소품들 있잖나. 프로토 타입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비싸다. 그래서 소품을 일부러 아날로그 식으로 중화를 시켰다. 가끔 기자님들로부터 “<열한시>를 다시 만들면 어떻게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고는 한다. 제작비를 30억 정도 더 준다고 해도 관객의 눈높이를 맞출 수가 없다. 300억은 돼야한다. 나는 오히려 키치적으로 만들고 싶다. 이런 의도였구나 하는 반응들이 차리라 낫지 니들 이거 흉내 내려고 했구나, 이렇게 되면 안될 것 같다. <열한시>의 이야기 규모로 백억 이상의 투자를 받을 수는 없고 그런 점에서 내가 순진했던 것 같다.

제작비 부분도 그렇지만 사실성 부여에 있어서도 고민이 있지 않았나? 물론 <열한시>는 하드 SF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겠지만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영화이니만큼 어느 선까지는 과학적인 근거에 충실해야 했을 거다.
대한민국 유일 블랙홀 전문가 박석재 박사님에게 실제로 자문을 구했다. 그 분이 그랬다. 블랙홀에 대해서는 내가 국내에서 1인자다. 내가 괜찮다는데, 맘대로 해도 된다. 딴죽 거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막아주겠다. 그게 도움이 됐다. 왜냐면, 물리학이라는 게 시간여행에 관해서는 모든 게 이론이다. 테스트해본 사람도 없고 블랙홀을 직접 본 사람도 없다고 하더라. 웜홀을 본 사람은 또 어디 있겠나.

극 중 프로젝트 연구원인 우석(정재영)과 영은(김옥빈)은 시간여행을 온 자신과 대면한다. 평행우주와 관련해서는 어떤가?
평행우주로 가면 복잡해진다. 타임패러독스로 가면 내가 나를 만나면 안 된다, 라는 게 있다. 만나려고 해도 직전에 바나나껍질을 밟게 될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순간 이 세계가 흐트러지니까, 그런 식으로 말이다.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이 또한 경험한 사람이 없잖나. 무엇보다 우리 영화의 핵심이 내가 나를 만나는 거다. 그래서 시간여행물의 기존 컨벤션과는 다르게 우리는 내가 나를 만나게 했다.  

‘김현석’표 멜로와 결합한다는 것
 
원 시나리오와 각색된 시나리오 사이에서 가장 변한 부분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많이 각색한 부분은 당연히 멜로다. 각색을 하면서 가장 먼저 캐롤 킹의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를 떠올렸다. 애초에 <열한시>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장르의 컨벤션을 그대로 따르고 싶지 않았다. 미드가 인기를 끌고 많이 제작되면서 갈수록 개성은 사라지잖나. 물론 <열한시>도 미드처럼 무조건 카메라 흔들고 빠른 속도의 이야기 진행을 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색깔을 남겨야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었다.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같은 경우만 해도, 팝송이라 우리 영화처럼 없는 예산에서는 지불해야 하는 저작료가 엄청 셌다. 제작자분들이 그 노래 꼭 넣어야 하나, 저것만 빼면 미술에 더 사용할 수 있을 텐데 그랬다. <열한시> 중간에 보일러실 나오잖나. 나도 뭐 거기서 찍고 싶었겠나. 돈이 없어서. (웃음) 그때 아주 잠깐 고민을 했다. “감독님 그 노래를 포기하시면…….” 근데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처럼 멜로적인 부분에서 나의 각색이 많이 들어갔다. 처음 받았던 시나리오는 꽤 잔인했다. 목 부러져서 죽고 그랬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수위의 표현을 싫어한다. 무엇보다 내가 각색을 맡으면서 극 중 남자 팀원들이 한심해졌다. 근데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특히 박철민 배우가 연기한 엔지니어 박영식 부분에 대한 불만들이 많다. 그의 코믹함이 장르의 분위기를 흐트러뜨린다는 지적이다.
그렇긴 한데 그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박)철민이 형은 <YMCA 야구단>(2002)을 빼고는 내 영화에 모두 출연했다. 코믹배우이지만 내 영화에서는 톤 조절이 됐다고 생각한다. 철민이 형은 마당극처럼 혼자 다 하는 스타일인데 <시라노>에서는 그렇게 까불지는 않았다. 나랑 할 때는 늘 자제하는 편이다. 철민이 형이 술 취해가지고 어떤 평을 보더니, “야 <7광구>가 뭔 죄가 있어” <7광구>(2011)에 철민이 형이 나오잖나. 그러니까, 이게 <열한시>가 <7광구> 같다는 게 아니라 장르영화로서 <7광구>에 나왔던 철민이 형의 캐릭터가 나쁜 예가 된 거다. 오히려 나는 그래서 좋았다. 그 난리 통 와중에 심각한 표정의 배우만 나올 줄 알았지? 박철민 같은 경우도 있다. 그처럼 공들인 또 하나의 캐릭터는 ‘순돌이’ 이건주였다. 과거에 방영됐던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1986)의 순돌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순돌이가 사람을 죽이네, 그 때문에 놀랐을 것 같다.  

박철민과 <스카우트>(2007)의 이건주, 그리고 <시라노>의 최다니엘까지,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과 인연을 길게 가져가는 편이다.
그냥 그분들과 함께 하면 내가 맘이 편하다. 근데 철민이 형 같은 경우의 얘기가 나오면 나까지 속상한 거다.  

<열한시>를 전작의 로맨스코미디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를 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SF이다보니 특유의 분위기가 깨지기 때문에 그런 불만들이 나오는 것 같다.
내 모든 영화들이 그런데 <열한시>의 남자 캐릭터들은 다 멍청하다. 영은이가 제일 똑똑해. 그게 다 전작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내가 제일 잘 다룰 줄 아는 거면서 그런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른 감독님들도 그렇겠지만 완벽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재미가 없다. 다만 나는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수준 이상의 불완전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 영화는 결함 많은 남자의 성찰을 다룬다.

그래서 <열한시>는 노골적으로 운명은 바뀔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전작들에서는 체험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런 게 <열한시>에도 녹아있다. 이 영화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나는 우석이 심해의 기지에서 탈출 못 하는 걸 알았을 거라고 본다. 근데 그걸 인정하는 순간 이 연구도, 존재의 의의도 사라지니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던 거다. 그렇지만 운명은 바꿀 수 있다는 뉘앙스로 간 거는 이 영화의 대중적인 선택을 위해서 이게 맞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열한시>의 초고를 받고 좋았던 거는 주인공이 그냥 죽고 끝난다. 그게 새롭더라. 할리우드였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거다. 우스갯소리로, <열한시>가 대중영화인데 살아남은 영은과 지완(최다니엘)이 우석이를 데리러 다시 타임머신 타고 가자 이러면서 끝나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근데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나마 뉘앙스를 넣은 게 지금의 결말이다.

또 다른 형태의 결말은 없었나?
영화에서는 잘렸지만 그 뒤에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영은의 극 중 아버지인 오광록 선배가 살아서 돌아온다. 나중에 DVD에 들어갈 텐데, 영은과 지완이 우리 둘이 어떻게 탈출했지? 우석이 형이 운명을 바꾼 건가? 그렇게 둘이 놀라하고 있을 때 개가 짖어서 보면 오광록 선배가 백발이 된 채 영은 앞에 나타난다. 놀라는 영은을 향해 오광록 선배가 특유의 목소리로 “1년 뒤로 가려고 했는데 15년 뒤로 왔네” (웃음) 근데 모니터 시사를 해보니까 많이들 헛갈려 하시더라. 그래서 편집에서 뺐다. 지금은 무슨 <아마겟돈>의 분위기처럼 끝나지만 극 중 오광록 선배가 다시 돌아왔으니까 영은과 지완이 우석이형 살리러 다시 과거로 갈까, 이에 맞춰 배경이 크리스마스라 눈이 내리면서 따뜻한 느낌으로 끝난다.

<열한시>의 결말이 차갑게 느껴졌던 건 우석과 영은과 지완이 서로 친한 사이였지만 극 중 사건의 아비규환 속에서 서로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삼각관계 구도라 더욱 그런 것 같았는데 안 그래도 영화 속에 삼각형 형태의 세트가 종종 등장하더라. 삼각구도는 멜로물에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설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영향이 <열한시>에 짙게 배어있다.  
와~ 그런 생각은 못 했었는데 다음 인터뷰부터는 그렇게 이야기해야겠다. (웃음) 우리가 세트와 관련한 콘셉트를 위해 자료조사를 했는데 시간이동 관련한 책을 보면 에셔의 그림과 함께 ‘펜로즈의 삼각형’이 많이 나온다. 원래는 미술감독의 제안으로 뫼비우스의 띠를 생각해서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같은 형태로 가려했지만 예산 문제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삼각형구도를 가져가게 된 거다. 우석과 영은, 지완의 관계에 대해서는 영은이 우석을 좋아하지만 이성으로써가 아니라 유사 부녀 같은 느낌이다. 극 중 오광록 선배가 사라지고 나서 제자인 우석이 영은을 아버지처럼 보살폈을 테니까. 넓은 의미에서 엘렉트라 콤플렉스인 거다. 내가 처음에 고쳤던 각색에는 세 사람이 치정관계였다. 그때도 극 중 우석의 부인이 자살을 한다. 다만 지금 버전과 다르게 우석과 영은의 관계 때문에 그런 거였다. 그 때문에 지완이 우석을 죽이려고 하는 건데 주인공이 이렇게 비도덕적이어도 되냐는 반응이 있었다. (웃음)  

SF를 연출하면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루고 있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 될까?
내가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한다. 다시 멜로다. (웃음) <열한시>를 통해 멜로 외의 다른 장르를 해보니까 이런 장점이 있더라. 이 작업도 즐거웠지만 마흔이 넘었는데도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삶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웃음) 그렇게 하기 싫었던 멜로를 다시 좋아하게 됐으니까.  

그렇다면 <열한시>는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의 영화인가?
영화감독으로서 목표는 55세까지 10편을 만드는 거다. 그런 점에서 <열한시>는 다섯 번째 작품이니까 이 영화의 전과 후로 나의 영화인생이 나뉠 것 같다. 영화 인생의 경계선 같은 느낌이랄까. 내용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영화에 임하는 자세는 바뀔 거다. 말하자면, 난 더 이상 순진하지 않아. (웃음)

한국의 순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SF라 반가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신청했지만 김현석 감독은 SF에 대한 애정보다는 감독으로서 변화가 필요해 이 장르를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열한시>는 한국의 대중들이 SF에 갖고 있는 선입견을 의식해 스릴러로 홍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지금 한국에서 SF가 처한 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열한시>가 갖는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김현석 감독은 “한국에서 만든 SF의 사례 정도로 언급되지 않을까”라는 말로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러니까, 이전의 SF영화들이 단순히 상상력에 기대 문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작품을 생산했다면 <열한시>는 시간 이동에 대한 탐구와 과학적 검증으로 최대한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게 조금씩 전진해가는 것이다.

올해 한국영화계는 <열한시>와 <설국열차>라는 두 편의 SF를 생산했다. 앞으로 더 많은 SF영화를 보기를 기대해본다.    

딴지일보
(2013.12.3)      

‘레인보우 팩토리’ 김승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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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대표는 김조광수 감독과의 세기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그는 결혼식 이전부터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 특히 한국 최초의 퀴어 영화 전문 수입사 ‘레인보우 팩토리’를 설립해 운영 중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이번에 수입한 영화는 <로빈슨 주교의 두 번째 사랑>이다.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로빈슨 주교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를 수입한 이유를 빌미삼아 지금 한창 달콤한 신혼에 빠져있을 김승환 대표를 인터뷰 자리로 불러냈다.  

깨가 쏟아진다는 신혼 생활이 어떤가? (웃음)
행복한 거 같다. (웃음) 김조광수 감독님은 가능한 좋은 모습 보이고 싶어 하는데 나는 솔직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안 쌓인다. 워낙 감독님이 활동을 많이 해서 나와 다르게 결혼식 이후에도 후유증이 별로 없다. 나는 무대에 서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결혼식이 딱 끝나니까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나를 뒤돌아보면서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했지, 하는 생각도 든다.  

결혼식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일로 바쁘다.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이하 ‘<로빈슨 주교>’)을 수입했다. 대표로 있는 ‘레인보우 팩토리’는 어떤 회사인가? 
2011년 9월에 청년필름 자회사로 설립한 퀴어 영화 전문 수입사다. 처음 수입한 작품이 <라잇 온 미>(2012)였다. 베를린영화제에서 퀴어 영화상에 해당하는 테디베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김조광수 감독님의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2012, 이하 ‘<두결한장>’)을 공동 제공했다. 돈이 될 줄 알고 투자를 한 건데 손해를 봤다. (웃음)  
레인보우 팩토리가 수입하는 작품의 기준은 무엇인가?
단순히 퀴어를 다뤘다고 해서 수입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또 반(反)퀴어적이면 안 된다. <라잇 온 미>처럼 동성과 이성을 떠나서 사랑의 본질은 같다, 또는 <로빈슨 주교>처럼 종교의 본질은 사랑이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 와 같은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약간은 계몽적이지만 대놓고 직접적이지 않은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고르고 있다. 레인보우 팩토리 외에도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서울LGBT영화제의 영화 선정 부분과도 맞닿아 있다.

동성애는 사랑의 형태 중 하나이지만 여전히 선입견들이 많다. <라잇 온 미>나 <로빈슨 주교>를 수입하고 배급하는 과정에서 그런 선입견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없나?
극장의 젊은 프로그래머들은 좋아하는데 위에 계신 분들이 자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퀴어 영화의 성격 상 상영관을 잡기가 쉽지 않다. 특히 <로빈슨 주교>는 더 안 좋았다. 종교까지 있어서 영화는 좋은데 부담스럽다고 하는 거다. 그게 늘 배급 과정에서 겪는 퀴어 영화의 문제점이다. 사실 <두결한장>은 배급에 실패한 거다. 배급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초반에 보지 못하면서 극장 점유율이 떨어졌다.

그에 대한 방안으로 생각해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김조광수 감독님과 내가 생각한 방안은 직접적인 퀴어는 아닌데 퀴어로 해석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 그리고 상업적 성공을 거둬서 많은 대중이 보는 자리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직접적인 소수자의 영화는 꾸준히 하되 <엑스맨>과 같은 대중적인 영화를 통해 퀴어를 우회하는 영화를 만드는 거다. <엑스맨>으로 유명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게이다. <엑스맨>은 슈퍼히어로에 대한 영화이면서 소수자를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그처럼 대중적인 영화이지만 해석하기에 따라 소수자의 영화일 수도 있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로빈슨 주교>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수입을 결정했나?
지난 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이 됐었다. 그 전에 보긴 했는데 사실 영화를 뺏긴 거다. (웃음) 그런데 DMZ영화제에서는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자체가 전문인 영화제이다보니 <로빈슨 주교>에 관심을 가질만한 관객이 가지 않은 거다. 다행히 이 영화에 대한 기사는 나왔지만 화제가 되지 않았다. 올해 LGBT영화제에서 틀었는데 의외로 성직자분들이 많이 오셨다. 반응이 너무 좋았다. 어느 목사님은 성경이 2000년 전에 쓰인 건데 그 이후에 다시 쓰이지 않은 게 문제라고 하셨다. 성경이라는 게 시대에 맞게 새롭게 쓰여야 하는데 2000년 전의 율법에 너무 얽매여 있다는 거다. 더군다나 그 율법을 다 지키지도 않으면서 성소수자에게만 너무 엄격하게 대하려 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 때문에 종교가 보수적이 되어가면서 소수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너무 변화를 하지 않았던 거다. 구약과 신약을 옮기는 선지자들이 있었지 않나. 근데 그런 게 이후에 이어지지 않고 있는 거다. 서울LGBT영화제에서 <로빈슨 주교>의 상영이 있던 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참여했던 성직자분들의 대다수가 과거의 율법에 얽매이지 않아야 성소수자 신도들이 상처받지 않는다고, 그런 점에서 <로빈슨 주교>를 너무 틀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수입을 한 거다. 사실은 공동체 상영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성직자 분께서 교회 안에서 상영하는 건 부담스럽다, 극장에서 하면 보러가겠다, 하시더라. 그럼 우리가 주말이나 예배 시간 이후에 볼 수 있도록 극장을 잡아보겠다 하게 된 거다.

흔히 동성애를 다루는 작품의 주요한 등장인물들은 젊은 분들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로빈슨 주교는 성직자이면서 나이가 많은 분이다.  
로빈슨 주교가 나이가 많다는 점도 이 영화를 수입하는 데 고려가 됐다. 주교님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다보니 올해 성직자 생활에서 은퇴를 했다. 그런데 로빈슨 주교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변했다. 특히 젊은 세대보다 더 격렬하게 반대하던 윗세대가 로빈슨 주교 때문에 변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로빈슨 주교>를 공동체 상영할 때 연세가 많은 분들이 로빈슨 주교의 나이가 많다는 점 때문에 동성애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는 얘기를 하시더라. 자신들보다 윗세대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지지를 떠나서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다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 예전 같으면 무작정 거부했는데 지금은 듣거나 볼 정도는 되었다는 거다.

흔히 우리 같은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의 생각과 말에 대해서 변화할 여지가 거의 없다며 선을 그어 넣고 일부러 무시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깨달은 바가 크겠다.
나보다 나이 많은 세대에 대해서 어차피 당신들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 배격했던 것 같다. 특히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윗세대들에게 노력을 안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최소한 노력은 하고 실망을 하는 게 맞는 거였는데 너무 쉽게 단정 짓고 배격했다. 그래서 <로빈슨 주교>를 가져오면서 보람이 있었다. 돈은 안 될 것 같은데 (웃음) 이 영화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 나중에 세월이 지났을 때 <로빈슨 주교>를 내가 한국에 소개했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제는 <Love Free or Die>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 정도로 해석이 될 것 같은데 ‘로빈슨 주교의 두 번째 사랑’으로 의역했다.
원제대로 하면 너무 공격적인 것 같았다.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로빈슨 주교의 극 중 사랑이 두 가지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25년을 함께한 배우자에 대한 사랑. 이 두 개가 상충이 되니까 괴로웠을 텐데 결국은 상충하는 게 아니라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종교인 중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신앙과 사랑이 충돌하는 것 때문에 되게 힘들어 한다. 그렇게 해서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건데 그럼으로써 교회를 떠나게 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제목을 지었다.

<로빈슨 주교>처럼 결혼을 포함해서 대표님 부부의 활동들을 다큐멘터리로 다뤄도 될 것 같다. (웃음)
이미 다 찍었다. 제목은 <늦장가>다. (웃음) 감독님은 결혼을 너무 늦게 하셨지만 나는 결혼 적령기에 한 거다. 저희가 5월 15일에 결혼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이전 며칠 전부터 결혼식 이후 두세 달 정도까지 찍은 분량이다. 내년 부산영화제에 공개하는 게 목표다. 그리고 내년 가을에 개봉하고 싶다.

레인보우 팩토리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단편 퀴어 영화를 묶어 내년 봄 쯤 개봉할 예정이다. 김조광수 감독님의 <하룻밤>을 포함해 <밤벌레>와 <T.N.T>까지 세 편이다. <밤벌레>는 연출이 굉장히 좋다. <T.N.T>는  톱앤톱(top&top)의 약자다. 게이나 레즈비언의 성생활에 있어서 톱과 바텀(bottom)의 구분이 없지만 선호도는 있다. 그게 다르면 괜찮은데 둘 다 탑일 수 있고 반대로 바텀일 경우도 있다. 그 때문에 성생활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를 빗댄 작품이다. 잘 나와서 같이 묶기로 했다.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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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97

<화이> 장준환 감독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영화의 감상을 방해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가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화이를 연기한 여진구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여진구가 가진 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선 이미지를 최대치로 끌어낸 공로자는 다름 아닌 장준환 감독이다. <지구를 지켜라!>(2003) 이후 10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지만 겉에 보이는 이야기 뒤에 숨은 이면의 메시지를 끌어내는 데 있어 장준환 감독은 여전히 뛰어난 면모를 과시한다. 약자를 억압하고 괴롭히는 지주를 외계인에 비유했던 <지구를 지켜라!>처럼 <화이>에서는 살부(殺父), 즉 아버지라는 운명을 뛰어넘어야 하는 아들 세대의 이야기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반영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상징적으로) 죽이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이 아버지(들)을 막 죽여요. 전 그게 통쾌하더라고요. (웃음) 정말로 아버지를 죽여서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넘어서야 할 일종의 운명 같은 존재잖아요. 그런데 한국영화에서는 늘 운명에 순응하고 좌절하는 젊은 세대들만 보여줬어요. 전 그게 불만이었는데 <화이>는 그런 점에서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매료됐기다보다는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굉장히 걱정되는 부분이었어요. 작품 안에서 이야기로서의 완성도와 진심이 없으면 굉장히 위험한 얘기가 될 거라고 봤어요. 화이(여진구)가 교복을 입고 나와서 아빠들을 죽이는 ‘쎈’ 이야기를 단순히 이야깃거리로 삼아서는 안 되는 거였죠. 그래서 제가 각색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이 <화이>가 이야기로서 완전히 설 수 있게 만드는 거였어요. 석태(김윤석)는 화이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라는 부분에 많이 매달렸어요.

진심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화이의 다섯 아버지들은 감독님 나이 대와 비슷한 386세대예요.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투사들이었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안위와 보신을 위해 그들의 아버지 격인 ‘개발의 아버지들’과 손을 잡았죠. 말하자면 괴물’에’ 삼킨 아이들인 셈이죠. 하지만 화이는 그런 386세대 아버지의 비극을 답습하지 않아요.
인간은 누구나 차마 밖으로 꺼내놓기 어려운 괴물을 마음속에 한 마리씩 키우면서 산다고 생각해요. <화이>는 그런 괴물을 직접 대면하고 들여다보자, 라는 얘기예요. 저는 이 영화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부분을 건드리면서도 굉장히 지역적이길 원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아버지가 된 한국의 386세대들이 파주의 시골 화훼단지에서 신화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게 저는 되게 재밌는 포인트라고 봤어요. 그 때문에 굉장히 양가적인 욕심이 많이 들었죠. 일단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액션 스릴러 성장영화로 다가가는 게 중요했고요. 관객들에게 뭔가를 억지로 구겨 넣으려 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하고 바랐어요. 가벼우면서도 동시에 깊고 넓은, 이런 식으로 양가적인 것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 욕심을 냈어요.  
 
그 양가성의 핵심은 순수한 소년이 아버지를 죽인다, 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화이>는 잔인한 묘사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최대한 줄인 거예요. 소년이 괴물이 되기를 강요받고 결국 괴물로 성장하는 이야기인데 2단 짜리 뜀틀을 뛰어넘는 수준의 장면을 보여주고서 나 괴물 됐어요, 이러면 진짜 웃기잖아요. (웃음) 가시덤불을 넘고 살이 찢기면서 피를 흘리는 정도의 통과의례가 이야기상 필요했던 거죠. 무섭게 잔인하게 보이더라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야 관객들이 화이의 성장과정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영화 잔인하고 피 튀기니까 멋있지, 그런 자극적인 작품이 되지 않기를 바랐어요. 감히 말하자면, 저는 이 영화가 완전해지기를 원했죠.

저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게 그와 같은 ‘독한 의지’라고 봤어요. 극 중 화이처럼 아버지를 넘어서라는 차원에서 말이죠. 지금 젊은 세대들이 입시와 취업 문제로 고통 받는 원인 중 하나는 그들의 아버지와 그 윗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발버둥친 결과잖아요. 그런데 화이는 아버지들이 만들어놓은 폭력적인 양육의 틀을 넘어서려 하고 결국엔 이겨내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위로하기보다 상처를 입을지언정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고 봤어요.  
저도 그렇지만 화이의 아버지 세대들은 한참 성공신화가 등장하던 개발 신화의 끝에서 주위를 밟고 올라서면 너도 훌륭하게 될 수 있어, 자식한테 내가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자식이 그렇게 크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던 시대를 산 사람들예요. 질문이 의도한 것처럼 그런 식의 느낌이 은연중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모든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나를 넘어서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잖아요. 석태도 그런 감정인 것 같아요. 내가 내 안의 괴물을 끄집어내서 괴물이 된 것처럼 화이 너도 네 안의 괴물을 부수고 나와라 하는 감정 말이죠. 다만 석태 마음의 밑바닥을 바라보면 화이를 향해 천사도, 괴물도 아닌 신비한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놓여있지 않았을까 해요.    

화이가 석태를 향해 총을 쏘는 마지막 순간에서의 석태의 마음이 그랬겠죠. ‘네가 감히 나한테 총을 쏴’ 그러는 동시에 ‘이제야 네가 나를 넘어서는구나’ 하는 양가적 감정 말이죠.  
그전에 석태가 화이를 향해 나를 죽이라고 소리 지르잖아요. 그건 한국의 아버지들하고 많이 통하는 거 같아요. 나를 밟고 넘어서, 그리고 어떻게 됐든 나보다 더 나은 존재야 돼야해. 다만 석태의 입장에서 아이러니한 건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화이가 자신을 넘어서는 걸 본 순간 헤어져야 한다는 거죠. 행복하면서 슬프고, 무엇보다 앞으로 화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감정상으로 굉장히 복잡했을 거예요.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장면이에요.
그렇죠. 화이와 석태가 농원의 집 장면에서 얼굴을 맞대는 마지막 순간의 촬영은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어요. 개인적으로 그 순간이 굉장히 보고 싶었어요. 시나리오에 묘사되기를, 석태가 총을 겨누다 내리고 씨익 웃는다, 그러면 화이의 입에도 미소가 번진다. 둘의 모습이 왠지 닮아있다. 제가 각색하면서 만든 장면인데 이 두터운 감정을, 영화적인 한 순간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죠.

감독님도 성장과정에서 아버지를 넘어서야겠다는 감정을 가진 적이 있겠죠?
없지 않았죠.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엄마와 더 친했어요. 굳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아버지를 적대시하는 감정이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권위적이거나 그런 분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부드러운 분이셨죠. 주위에서든, 제 친구들을 통해서든 무섭고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들은 많이 봤어요. 심정적으로든 어떤 식으로든 사춘기 때 많이 겪지만 아버지를 넘어서야 하는 그런 통과의례의 단계가 생기는 것 같아요.

화이에게는 좀 빨리 온 편이죠?
강요당한 거죠. 중요한 건 석태를 포함해서 화이의 아버지들은 그 시기가 오리라는 걸 다 예감하고 있었어요. 특히 진성 같은 경우는 석태와 화이의 관계가 갈수록 불안해지니까 해외로 보내려 하잖아요. 석태를 향한 극 중 대사 중에 이런 게 나오지만 “나이 먹어서 맛탱이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예전의 석태와는 약간씩 달라지는 느낌. 물론 본인도 그걸 느끼는 거겠죠. 나는 늙어 가는데 아이는 커가고,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온 거죠.

근데 저는 석태 같은 사람이 아버지면, 제가 나이를 먹어도, 아버지가 점점 늙어가도 계속해서 무섭고 두려울 것만 같아요. (웃음) 극 중에서 석태를 묘사하는 장면 중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그건 사람의 눈이 아니야”  
석태 역할에 제일 먼저 생각난 배우는 김윤석 선배였어요. 리더의 느낌, 무엇보다 아버지라는 타이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천하장사 마돈나>(2006)의 마초적인 아버지 캐릭터 때문에 그런가. 한국의 아버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김윤석 선배에게 제일 먼저 갔어요. 근데 너무 힘들 것 같다면서 약간 빼시더라고. 근데 저는 하실 줄 알았어요. (웃음)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이런 식의 캐릭터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 같아요. 파워풀하면서 복합적이고, 또 다층적이면서 자기 안에 화두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악의 끝 같은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를 얼마나 자주 만나겠어요.

그만큼 석태는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인데 서로 어떻게 잡아갔나요?
그리스 비극에 흔히 나오는 부자(父子) 관계의 비극성. 그리고 일본 소설, 제목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였어요. 아버지의 원수가 있어요. 근데 그 사람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요. 대신 그 사람에게 굴복해서 그 밑으로 들어가는데 나중에 비겁하게 등에서 칼을 꽂죠. 그때 죽어가던 원수가 주인공에게 “나를 그렇게 죽일 걸 후회하면 안 된다”고 얘기해요. 그 얘길 듣고 주인공은 미쳐가는 거죠. 이와 같은 묘사는 석태가 임형택(이경영)과의 사이에서 어떤 문제적 인간이 되는 순간에 관한 것 같아요. 그렇게 김윤석 선배와 저는 석태와 그 주변과의 관계에 대한 베이스가 잘 통했어요. 근데 막상 어떻게, 어느 정도로 표현할까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었죠. 사람의 눈이 아닌 인물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미친놈처럼 보여준다고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주는 건 아니니까요.

여진구 배우 같은 경우는 어땠나요, 시나리오를 보고는 선뜻 화이 역할을 맡겠다고 하던가요?
굉장히 하고 싶어 했어요.

보기보다 당차네요. 아무리 본인과 동갑인 17살의 인물을 연기한다지만 화이와 같은 복합적인 성격과 복잡한 사연을 가진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죠.
영화들어가기 전에 화이가 어떤 아이일까를 유추하고 느껴보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같이 일기도 쓰고 그랬는데 예를 들면, 영주 엄마 발가락은 왜 잘려 있을까, 그날 화이가 보지 않았을까, 같이 상상해보자. 버스 첫 차가 다니는 새벽 시간에 엄마와 화이가 아버지들로부터 도망을 가요. 차가 떠나려는 걸 겨우 막아서 간신히 버스에 타게 되죠. 그때 석태 차가 버스 앞에 확 끼어들어요. 그렇게 차를 멈춘 후 석태가 버스에 올라타서는 “여보 왜 그래? 말로 해” 이에 엄마는 “이 사람 우리 남편 아니에요” 그러면 석태가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는 버스에서 강제로 끌어내리죠. 그걸 보면서 화이는 버스기사에게 “아저씨 살려주세요” 호소를 해요. 이에 아랑곳없이 버스를 떠나보낸 석태는 엄마의 발가락을 자르면서 이렇게 얘기하죠. “화이야 잘 봐. 네가 여기서 도망가려고 하면 이렇게 된다” 그런 식으로 (여)진구 군이 화이를 체화하도록 했어요. 그렇게 화이 캐릭터를 만들어 갔어요.

가진 사연도 다르고 성격도 같지 않지만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신하균)나 화이는 한국영화사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캐릭터예요. 불경하게(?) 자신의 상관이나 아버지와 기성세대에게 도전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요.
<지구를 지켜라!>는 콘티북하고 촬영본이 거의 똑같았거든요. 근데 <화이>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배우들이 처한 그 순간의 눈빛 호흡을 담아내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살부 의식을 담고 있으니까 끔찍하잖아요. 그래서 바스트 숏을 기본으로 했는데 선택의 의도는 카메라가 제일 잘 담을 수 있는 거를 찾아보겠다 이거거든요. 캐릭터가 가진 고유한 성격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연출법은 <지구를 지켜라!> 때와 달라진 거 같아요.    

그렇긴 해도 장르적인 접근으로 관객의 이해를 돕는 연출은 변하지 않았어요.  
근데 <지구를 지켜라!>는 장르적인 접근이 많았죠. 장르를 비틀고 뛰어넘어 다니고 장난기가 많았다고 할까요. 전 영화적인 놀이로 생각하고 만들면서 관객들도 그런 태도로 즐겨주길 바랐었죠. 장르적인 얘기를 한 건 장르적으로 충실하다 그런 의미예요. 저는 <화이>를 만들면서 고전, 클래식, 정공법, 신화 등과 같은 단어와 느낌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저에게 <화이>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온전하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걸 이상한 수를 써서 현란하게 보이려고 한다면 이 영화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가 가지는 무서움이 있기 때문에 돈 좀 벌어보겠다고 자극적으로 제시하는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 진짜 괴물스러운 영화가 될 거라고 봤어요. <화이> 언론 시사회 후에 반응을 보면 <지구를 지켜라!>나 다른 내 단편에서 보이는 영화적인 놀이 혹은 엉뚱함 이런 게 잘 안 보여서 불만이다, 만듦새가 촌스럽다는 평가가 있더라고요. 저는 클래식한 스타일을 찾아가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서 자동차 추격전을 보여주더라도 화려한 대신 정통으로 정확하게 찍는데 더 공을 들였거든요. 그게 <화이>이 갖는 영화의 성격 상 더 맞았기 때문이에요. 근데 그에 대해서 촌스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안타깝지만 저는 더 촌스럽게 느껴지는데요. (웃음)

맥스무비
2013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