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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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01)에 단역 출연도 했고, 단편영화 <신도시인>(02)에도 출연했지만 비중으로 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중천>은 김태희 씨에게 본격적인 첫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영화를 고르는데 고민이 많았죠?
예, 신중했죠.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영화를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제가 맡은 소화라는 캐릭터에서는 닮은 부분을 많이 발견하면서 딱 맞는 역할이다 내가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첫 영화로 <중천>을 선택하셨는데 의외였습니다.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04)와 같은 드라마에서의 그 느낌을 그대로 이어서 멜로물에 출연하는 것이 가장 쉬운 선택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중천>은 현장도 중국이고, 액션도 많고 나름대로 큰 모험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선택이 두렵지는 않았나요?
제가 <구미호외전>(04)을 한 적도 있었고, <천국의 계단>(03)도 사실 저한테는 도전이었어요. 제가 새로운 것에 대해 재미있게 임하는 스타일인데 <중천> 역시도 중국에서 촬영을 하고 액션이 있지만 그런 조건 때문에 망설여지는 부분은 없었어요.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져서 출연을 결심했거든요. 소화는 처음 시나리오 상에서는 덜렁대고 어리바리해서 길도 못 찾는 그런 캐릭터였어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김태희는 굉장히 차분하고 여성스러운데 그런 점에서 소화는 김태희답지 않고 어색하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사실은 그 모습이 제 원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아서 내 역할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실제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많이 편집이 됐어요. 그래서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실수투성이고 그런 캐릭터가 돋보이는 장면이 영화 속에는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기본적으로 소화를 그렇게 순수한 어린 아이 같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끝까지 밀고 갔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런 점들을 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장면이 잘려서 많이 아쉬우시군요?
아쉽긴 한데 영화를 위해서 그렇게 편집이 돼야 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중천의 운명을 짊어지고 가는 무거운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그리고 소화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대사도 사극체고 너무 진지해요. 그에 반해서 저는 혼자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현대말투로 대사를 했거든요. 그래서 튈 가능성이 있어서 영화 전체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그런 불필요한 부분들은 없어져야죠.


무협판타지라고 하면 보면 남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게 보통인데 <중천>의 시나리오를 보면서 오히려 소화가 이곽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느꼈어요. 
아니에요. 소화는 능력이 너무나 부족해서 이곽이 많이 보호해주는 캐릭터에요. 내가 좀 더 강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자괴감에 빠지기도 과중한 업무를 부여받고 힘들어하면서 조금씩 강해져요.


약해보이면서도 서서히 강해지는 소화의 그런 면에 끌렸나보네요?
예. <중천>을 시작하기 1년 전에 그 시점에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세속적이 되고, 때가 묻으면 못할 것 같았어요. (웃음)


소화의 연기를 위해 다른 작품을 참조하기도 했나요?
액션을 보려고 장이모 감독의 <연인> 같은 작품 봤고요. 중국에서 촬영한다고 해서 정우성 선배님이 예전에 중국에서 찍었던 <무사>도 봤어요. 그리고 영화사 대표님이 책을 하나 소개를 해주셨어요. 사후세계에 관한 소설인데 죽은 후 몇 번 교실로 나눠져 들어가서 몇 번 부르면 나가는 그런 시스템이 등장해요. <중천>과는 굉장히 다른 이야기일수도 있는 사후세계에 관한 그런 상상력을 좀 더 익힐 수 있었어요.


<중천>이 현실에는 없는 세계고 그곳에는 또 나름대로의 시스템이 있잖아요. 공부를 해야 이해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처음엔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따로 공부를 하셨나요?
시나리오만 봐서는 전혀 이해 못했죠. (웃음) 그래서 각주를 달아달라고 요구를 했어요. 어려운 용어들은 미리 한 번 읽어보니까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그 세계에서의 법칙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제가 쉽게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저는 솔직히 관객 분들도 이해를 못하실 거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얘기를 했더니, 아니라고 다 안다고 영화 속에서 그림을 보여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웃음)


영화 현장은 거의 처음이라 현장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생활해야 되나 이런 거에 대한 낯설음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근데 TV를 보면 해외 로케이션을 몇 번 한 것 같은 그런 익숙한 분위기가 나더라고요.
난방도 잘 안되고, 물도 시원하게 잘 안 나오고, 벌레 나오고 이런 것들을 불편하고 짜증난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그렇겠지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별 것 아닌 게 되는 거 같아요.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여배우가 그런 환경에 처하면 굉장히 힘들어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렇게 까탈스러운 성격은 아니에요. 게다가 워낙 사람들이 다 좋아가지고 현장 분위기가 항상 화기애애했어요. 사실 저는 첫 영화라서 잘해야 될 텐데,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을 많이 했는데 스태프 분들이 굉장히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저를 어려워하고 공주대접하고 그러면 불편해질 텐데 거친 농담을 스스럼없이 하는 게 오히려 절 편안하게 만들어 준 거 같아요. 


시나리오를 보고 이야기를 감독님께 좀 더 이렇게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한 적도 있나요? 아니면 대본과 달리 이렇게 하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애드리브를 하기도 했나요?
감독님이 항상 많은 과제를 주셨어요. 이 부분에서 너의 감정은 어떨 거 같냐, 너라면 더 나을 것 같은 대사는 무엇이냐, 이 씬의 전체 대사를 니가 다시 한 번 써봐라. 그런 것들은 감독님이 믿고 맡겨보시는 건데 물론 제가 쓴 대사가 채택이 되거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웃음) 그냥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장면을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장에서 애드리브가 많이 요구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감독님 머릿속에 워낙 정확하게 그림이 짜여 있었기 때문에 저는 감독님 믿고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데 있어서 편했거든요.


CF와 드라마는 사실 다른 매체잖아요. CF를 하다가 2002년, 2003년 이때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하셨는데 내가 화면 속에서 살아있구나, 정말 연기를 하고 있고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던 작품들이 있나요?
<스크린>(03)할 때 솔직히 정말 정신없이 찍었어요. 그 다음에 이제 <흥부네 박 터졌네>(03) 6개월 하면서 그 중간에 2개월 정도 겹치는 시기에 <천국의 계단>을 했는데 처음에는 유리라는 캐릭터가 되게 낯설고 얘가 하는 말과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저도 샘이 많은 성격이라서 나름대로 합리화를 시켜서 연기를 하고 그러면서 힘겨워했어요. 거의 마지막 씬에 유리가 교도소에서 (웃음)

<중천>에 출연하시기 전에 소화 역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또 말씀하시기를 연기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남 앞에 서는 것도 안 좋아하시고 표현하는 것도 서툴고 쑥스럽다고 하셨어요. 어디서 갑자기 그런 자신감이 나왔나요? (웃음)
그러니까요. (웃음) 워낙에 자신감이 없는데 그래도 <중천>의 소화 역은 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잡아야지 하는 그런 욕심이 들었거든요.

어떤 부분에서 그런 욕심이 생겼나요?
저는 아직까지는 저한테 없는 부분을 만들어내서 연기할 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 저하고 어울리고, 원래 제 성격과 닮은 그런 모습들을 연기했을 때 좀 더 자연스럽게 진심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소화는 제가 진심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연기가 아주 능수능란해서 나한테 아주 안 어울리는 역할도 남들이 봤을 때 어색하지 않게 그렇게 하기에는 아직 멀었고요. 특히 영화라는 큰 스크린에서 보이는 모습은 정말 티가 날 거 아니에요.


영화는 여전히 후반작업이 진행 중인 걸로 아는데 보셨나요?
1차 편집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음악 없이 한 번 본적이 있어요. 그리고 <중천>은 후시녹음이 한 씬 빼고 백퍼센트거든요. 그래서 그거하면서 중간 중간에 봤고. 엊그제도 믹싱실 구경 가서 한 삼분의 일정도 음악이랑 같이 봤어요. 확실히 음악이 들어가니까 템포가 빨라서 지루하다는 느낌은 안 들더라고요. 물론 저는 제 얼굴, 제 대사 보고 듣느라 바빴는데 믹싱실의 그 화면이 색감도 누리끼리하고 되게 안 예쁜 거예요.


색 보정을 하기 전에 보셨군요.
그런가 봐요. 그래서 실망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지금 이거는 사운드만을 위한 거기 때문에 색 보정을 하면 예쁘게 잘 나올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드라마 연기와 영화 연기는 큰 차이가 있지요?  
사실 드라마 카메라와 영화 카메라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영화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연기하는 게 어떻게 보일까 이런 걱정은 별로 안하면서 그냥 똑같이 했어요. 근데 드라마는 스케줄이 너무 바쁘니까 정신없이 찍기 바쁘고 근데 일단 찍고 나면 바로 완성이 돼버리고 다음 날 바로 방송을 타니까 다시 생각해봤자 엎질러진 물 별 도움이 안 되잖아요, 그냥 다음 방송에 열중하는 게 낫지. 그렇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뿐이지 정신적으로 고민을 한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었어요.

근데 영화는 이게 바르게 하는 것인가, 계속 찝찝한 거예요. 만약 정말 아니다싶으면 감독님한테 재촬영을 요구 하면 다시 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재촬영을 한다고 해서 내가 과연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또 고민스럽기도 하고. (웃음) 그런 여러 가지 생각들 때문에 촬영 마치고 호텔에 와서도 계속 이 생각만 하면서 지내는 거예요.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게 저는 머리가 좀 복잡하면 잠이 와요, 그래서 그냥 자요. (웃음) 그리고 일어나면 까맣게 잊어버려요.


그래서 재촬영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도 했나요? (웃음)
아니요, 조심스럽게 감독님한테 부탁을 드렸는데, 됐다고 단칼에 무시하시더라고요. (웃음)

모니터를 보시면서도 혼란스러웠겠네요?
그렇죠. 그리고 모니터가 또 조그마하잖아요. 그래서 감이 잘 안 잡히더라고요.


내가 이게 잘 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혼동될 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그런 상황에서 촬영을 할 수는 없잖아요. 뭔가 내가 붙잡고 가야 된다는 그런 것들, 그게 상대배우일 수도 있고 시나리오 처음 읽었을 때 느낌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때 잡고 갔던 게 무엇이었나요?
모르겠어요. 어떤 씬에서 그런 게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냥 초반에 굉장히 많이 헤맸는데 주변에서 용기를 많이 북돋아주셨어요. 영화사 대표님들도 오셔서 격려를 굉장히 많이 해주시고 그래서 내가 잘하고 있고나 그런 착각 속에서 (웃음) 맘 편하게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셨어요.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인 거 같아요?
예, 굉장히 낙천적이에요. 낙천적인데 그러면서도 또 쓸데없이 고민을 많이 하기도 하고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변덕스럽고 빨리빨리 잊어버리고 그래요.  

드라마에서의 주연과 영화에서의 주연으로 느끼는 책임감은 다르지 않나요? 예전에 어떤 인터뷰를 보니까 드라마를 찍으면서 시청률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답한 걸 본적이 있거든요. 영화 흥행에 대해서도 그렇게 담담하신가요?
영화는 좀 달라요. 드라마는 솔직히 내가 잘한다고 해서 시청률이 올라간다거나, 내가 못한다고 해서 못나올 거라는 생각 안 했거든요. 근데 영화에서는 어떤 배우의 연기가 보고 싶고, 어떤 배우의 연기를 보고 싶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요. 그런 점에 있어서 상당히 부담이 되죠.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을 하는 데 있어서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도 들고, 또 영화의 완성도에 기여를 했으면 좋겠고. 그리고 이 영화는, 제가 고생한 거는 고생 축에도 못 들 정도로 정말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공을 들였기 때문에 그만큼의 대가는 받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한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 개봉을 한 건 아니지만 소화라는 캐릭터의 연기를 끝내고 나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근데 저는 닥치지 않으면 잘 실감을 못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주변에서는 시사회 날 우황청심환을 준비하라고 하는데 저는 주변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막상 그날이 닥치면 굉장히 떨릴 것 같아요. 집에서 드라마 모니터 할 때도 제 연기 보고 있으면 너무 힘이 들어요. 그거 보고 있는 자체가 너무너무 힘이 든데 영화는 어떻겠어요.


영화는 드라마와 다르게 홍보기간이라는 게 있잖아요. 다음 준가요 전국투어도 있고. 그러면서 여러 기자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화보를 위한 사진도 찍고 또 앞으로 관객들도 만나 뵐 것이고. 그런 경험들이 처음일 텐데 기분이 어떠세요?
저는 사실 처음 해보는 걸 재미있어 하는 스타일이에요. 새로운 게 항상 저를 흥분시키는 것 같고. 그래서 이렇게 인터뷰하고 그런 것도 재미있어요. 그래서 홍보팀한테 나 영화 홍보 한 번도 안 해봐서 많이 할 거라고, 재미있게 할 거라고 얘기했어요. 물론 기자 분들 중에는 제가 얘기하는 걸 순수하게 받아들이시는 분들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얼굴을 봤을 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런 게 보이잖아요.

저희는 순수해요. (웃음)
저는 마음속에 있는 게 얼굴에 너무 잘 드러나는 편이라서 이 사람이 내가 말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꼬아서 생각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말문이 막혀요. 그럴 때는 힘들어요.


<중천> 대사 중에 보면 인간이 괴로워하는 건 기억 때문이라고 한 게 있는데 김태희 씨 본인은 어떠세요. 그런 기분 나쁜 일이 있거나 왜곡돼서 나오는 기사들이 있으면 계속 기억을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기억에서 빨리 지우는 편인가요?
빨리 지우는 편인 거 같아요.

소화랑 정말 닮았네요. (웃음)
네, 소화와 정말 닮았어요. (웃음)

그런데 인터뷰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보면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소화의 덜렁거리는 면을 사실 느끼지 못했거든요.
초고 보셨어요?

아니요. 최종본 봤어요.
그러면 없을 거예요. 초고를 보면 소화가 나뭇가지에 걸려서 넘어지고 마을이 어디더라 막 길도 헤매고 자신은 정말 진지한데 남들이 봤을 때는 엉뚱한 그런 만화 같은 캐릭터에요. 영화 속에 저희 가족과 저를 너무 잘 아는, 저와 살아본 친구들만 아는 그런 저의 모습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모습들이 제 원래의 모습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편하게 연기를 했는데 연기를 완벽하게 못했는지 (웃음) 아니면 영화 전체를 위해서 그랬는지 그렇게 됐죠.   


처음에 이 영화를 고른 동기 중의 하나가 소화가 김태희 씨 본인과 많이 닮았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그런 장면들이 다 없어졌다면 그 때문에 실망이 컸겠네요?
예, 처음에는 이 부분이 정말 나다운 그런 모습이야 이렇게 생각했던 그 장면이 없어지니까 되게 서운했어요.

그래도 영화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나요?
아니요, 기대는 없어요. 그냥 걱정이에요.

기대가 없다고 그렇게 말하면 감독님이 화내실 텐데. (웃음)
기본적으로 제가 욕심이 많다 보니까 최대한 기대치를 줄여야지 좀 더 만족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표현을 한 거고요. 영화는 잘 찍으셨으니까 잘 나올 거예요. 근데 내가 이만큼의 고생을 했으니까 이만큼의 성과를 돌려받겠지 그런 기대는 전혀 없어요. 물론 잘 됐으면 좋겠어요. (웃음)


스스로 욕심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런 점에서도 자신의 성격과 비슷한 역할로만은 만족을 못하실 거 같아요. 연기자로써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많기는 한데요 일단은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제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그런 역할부터 할 거에요. 안 해본 게 일단 너무 많고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직 다 못 보여드렸어요. 그래서 저한테 어울리는 캐릭터를 다음 작품에는 선택하게 될 것 같아요.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그중에서 어떤 걸 고르는 게 지금 이 상태에서 가장 좋은 과정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확신은 안 들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기로 마음이 조금씩 정해지고 있어요. 


저는 시나리오 보면서 이곽보다는 소화가 극을 끌고 가는 역할이라고 생각한 게 영화 속 중천에서 소화는 이곽의 연인이기도 하지만 그를 안내하는 안내자의 역할이잖아요. 오히려 말씀하시는 것보다 소화는 적극적인 캐릭터 같은데요? 
그렇죠, 이곽이 저를 따라다니죠. (웃음) 그리고 이곽은 한결같이 저를, 과거의 연인을 바라보는 애틋한 심정으로 바라보죠. 처음에 저는 백지상태의 영혼이었다가 인간의 마음이 몰까 그걸 궁금해 하고 조금씩 알아가고 그런 변화가 있는 캐릭터이긴 하죠.


다음 작품은 영화인가요? 아니면 드라마인가요?
기사에는 드라마를 하는 것처럼 나왔는데 아직 확신한 건 없어요.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영화를 홍보하다 보면 그 고민할 시간이 없어가지고 잘 모르겠는데 이번 달 안에는 결정이 될 것 같아요.

정말로 저는 장르는 상관이 없어요. 전부터 영화를 해보고 싶다 그런 동경심은 있었지만 영화가 좋으니까 앞으로 영화만 할 거야 그건 없어요. 물론 욕심은 나죠. 이제 영화 한 번 했는데 영화의 시스템에 대해서 알듯 말듯 한데 결과적으로 잘 모르겠어, 이 상태에서 끝났거든요. 그래서 다시 한 번 해보면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 것 잘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당분간은 배가 고픈 상황이 이어지겠군요. (웃음)
네, 그럴 거 같아요. (웃음)


(2006. 12. 6. <스크린>)

<삼거리 극장> 전계수 감독


<삼거리 극장>이 화제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본 후 “<지구를 지켜라>를 봤을 때 느꼈던 놀라움을 오랜만에 느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확실히 <삼거리 극장>의 독특함은 한국영화사에서 거의 처음 목격하는 종류의 것이다. 뮤지컬, B급, 소머리 인간 미노수 등등. 이와 같은 아이디어와 취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전계수 감독과의 인터뷰는 그런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십분 정도 늦은 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화장실 좀… (5분 후) 유통기한이 지난 만두를 먹어서 속이…

개봉이 계속 늦춰져서 신경 쓰여서 그러 건 아니죠? (웃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결과에 대해서는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고요, 다음 작품에 들어갈 시나리오 생각하며 주로 몸을 만들었죠. (웃음)

그런데 식중독에 걸리시고 말이죠. (웃음)
그러게 말이에요. (웃음) 사실 별로 한 게 없어요. 시나리오도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못했고, 신경만 쓰고 있고 가끔씩 컴퓨터로 관객들 반응을 보고 이렇게 생각들을 하시는구나.

반응들이 어떻던가요?
관객들 평가가 좀 극단적인 거 같아요. 영화가 초반에 지루하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예상한 반응과 예상치 못한 반응은 무엇인가요?
제가 노린 건 영화가 너무 산만해서 영화를 두 번 이상 봐야한다, 역시 이해가 안돼서 한 번 더 봐야겠다는 관객이 있더라고요. (웃음) 그리고 재미를 발견하는 부분이 다 틀리더라고요. 기자들은 소머리 인간 미노수 나오는 부분을 좋아하는데 관객들 중에는 2/3 이상이 소머리 인간 나오기 전까지만 좋아하더라고요. 그 부분을 제일 재미있어 할 줄 알았는데. 

소머리 인간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셨나요?
그리스 신화의 미노타우로스에서죠. 거기에 프랑켄슈타인이랑. 원래 소머리 인간 미노수가 시나리오 초고에는 없었어요. 소단(김꽃비)하고 혼령들하고 함께 어울려서 막가는 난장판을 벌이다 끝나는 걸 구상했어요. 근데 거침없이 쭉 밀고 가는 힘은 있는데 입체적이지가 못 하더라고요. 사장이 자살 하려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안 되고. 그래서 엽기적인 극장의 사장이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것 역시 엽기적이고 희비극적인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죠.

감독이었으니까 영화와 관련된 것이었을 텐데 그게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괴수영화 전통이 거의 없잖아요. 그런 선구적인 생각을 장난스럽게 표현하긴 했지만 이와 같은 생각을 조선시대에 했을 감독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 게다가 당시 일본 강점기에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 같은 것도 투영이 되고 하면 웃기면서도 동시에 암울하고 비극적인 면도 있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삼거리 극장>은 처음부터 뮤지컬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나요?
예, 처음부터요. 뮤지컬 영화를 하려고 했던 이유는 2002년에 ‘데빌 돌(Devil Doll)’이라고 영감을 받은 음악이 있어요. 그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서, 장르가 약간 애매한데 고딕아트록, 록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노래도 한 곡에 60분짜리도 있고. 또 노래에 서사가 있어요. 그게 뮤지컬 적으로 들리고. 그래서 그 음악의 느낌을 영화로 하면 좋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뮤지컬 영화가 된 거죠.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뮤지컬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점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요?
한국에 뮤지컬 영화가 없어서 해 보려고 했던 건 아니고 데빌 돌 그 음악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시나리오를 쓸 때는 이게 상업영화의 틀로 만들어질 거라 생각을 못했어요. 뮤지컬에 대한 양식적인 고민을 진지하게 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LJ필름과 작업을 하게 되면서 약간 그런 부담감이 생기긴 했어요.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취향을 많이 타는 영화기 때문에 제작 단계에서 퇴짜를 많이 맞았을 것 같아요.  
수많은 거절과 박대를 당했어요. LJ필름이 충무로 제작사 거의 마지막이었어요. <삼거리 극장>은 오랜만에 부활한 본격 뮤지컬 영화라는 무게감은 있는데 시장에 대한 지표는 없는 상태고 잘 만들어야하지만 돈은 많이 쓸 수 없는 딜레마가 있었죠. 이해하겠더라고요. 그러다가 LJ필름이 마지막이 된 거죠. 연락이 바로 와서 가자, 왜 일찍 안 왔냐. (웃음)  

영화화되면서 자신이 의도한대로 시나리오 수정 없이 나온 건가요, 아니면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었나요?        
이승재 대표님하고 딱 1번 시나리오 회의를 했어요.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상업영화의 틀로 가져갈지 난감해 하셨어요. 대표님은 주로 제 이야기를 듣는 쪽에서 회의를 했고 그 다음부터는 제가 신경을 썼죠. 회사나 그쪽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치장을 신경 쓰지 않은 나만의 걸로 하기엔 투자도 받았고, 제가 스스로 검열을 했어요.

감독님의 색깔이 굉장히 강하게 느껴지는데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그 감성을 잘 이해하던가요?
혼령으로 나오는 배우들은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함께 했던 분이라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다만 그 사람들이 힘들어한 건 몸이 피곤해서였죠. 사실 노래 한곡이 3~4분 정도 되면 그 안에는 수많은 컷들이 들어가잖아요. 또 그 컷 하나를 찍기 위해서는 수많은 컷들을 가야하고. 그래서 노래 한곡을 완성하려면 굉장히 많은 테이크 동안 똑같은 노래를 하면서 연기하기도 힘든데 느낌도 내고 캐릭터도 살려야 되니 배우들이 정말 힘들어했죠. 근데 배우들이 그 점을 못 느끼게 저를 많이 배려를 해줬죠.  

김동기 음악감독님의 경우 감독님과 같은 과(서강대 철학과) 출신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1년 선배입니다.

시나리오 초기 단계부터 함께 하기로 얘기가 된 거였나요?
시나리오 초고부터 음악감독님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동시에 음악이 작곡이 됐어요. 스토리에 대한 부분도 음악감독님하고 많이 상의를 했고요. 저보다 훨씬 더 마니아 취향이 강해서 지금 이렇게 완성된 걸 아쉬워해요. 오히려 초고가 더 좋았다고. 

음악은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했나요?
데빌 돌에 초점을 맞추고 작업했어요. 영화에 들어가 있는 아홉 곡이 모두 데빌 돌 콘셉트라고 할 수 있지만 아홉 곡이 장르가 다 다르거든요. 그렇긴 해도 데빌 돌의 정수라고 느낄 수 있는 곡은 천호진 선배님이 불렀던 ‘야만의 환영’ 그 한곡밖에는 없어요.

초고 때 9곡이 나와 있었는데 ‘야만의 환영’같은 곡들 일색이었어요. 원래는 스무 곡이 있었거든요. 근데 다 사용했다가는 안 될 것 같아서 반만 넣은 거죠. 다 어두운 것만은 아니고 장난스럽게 어두운 곡도 있고 그런 식이에요.

사실 뮤지컬 영화라고 부르긴 하지만 영화 속에는 호러도 있고, 코미디도 있고, 무대극이나 그림자극도 있고 굉장히 많은 장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처럼 감독님 이력도 굉장히 다채로워요. 영화하기 전에 연극, 춤, 뮤지컬 심지어 평론까지 하셨어요. 원래 하나에 만족 못하는 성격인가 봐요. (웃음)
맞아요. 제가 되게 산만해요. (웃음) 그래서 앞으로도 인물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서 한 인간에 대한 정책을 세우는 그런 영화는 못 만들 것 같아요.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영화에 많은 장르적 요소들이 들어가 있는데 그걸 영화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쇼잖아요. 쇼가 주는 무대화된 스테이지라는 특성을 버릴 수가 없어요. 어떤 방식으로 가든 연극적인 느낌을 줄 수밖에 없고. 그리고 <삼거리 극장> 자체가 연극적인 상황이잖아요. 이질적인 상황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럴 거면 상황 자체를 무대화시켜서 가는 게 판타지란 내용에 걸맞은 형식이란 생각이 들어요. 일상이 판타지가 아니라 정말 판타지 월드에 들어가는 방식이 맞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삼거리 극장>을 준비하면서 참조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스태프들하고 콘셉트를 나눴던 영화는 <델리카트슨 사람들>. 저는 매체가 음악이 됐든, 영화가 됐든 입체적인 하나의 세계관으로 보이거든요.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경우도 그 비주얼 안에 장 피에로 주네가 담으려고 했던 세계관을 가져오려고 했어요. 역설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데 살기위해서 지속적인 죽음이 필요하잖아요. 그게 <삼거리 극장>의 세계관과 닿아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 거죠.

그리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록키 호러 픽쳐 쇼>나 팀 버튼 감독 영화들의 느낌, 너무 적나라해서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런 영화들이 주는 활기나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느낌들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공통점이 없을 수도 있는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음악으로는 가장 좋아해요. 거기에서 유다나 예수가 불렀던 노래의 절묘한 느낌을 천호진 선배가 <삼거리 극장>에서 노래 불렀을 때 가져오려고 했던 게 있었죠.

천호진 씨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참여했었잖아요?
빌라도 역으로 나왔죠.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을 하신 거군요?
아니요, 몰랐어요. 영화 때문에 처음 뵌 날 굉장히 쑥스러워 하시면서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웃음)

천호진 씨가 맡은 우기남 그 배역이 칼리가리 박사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예. 그리고 우기남 감독의 롤 모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름은 남기남 감독에서 빌려왔어요. 극중에서 소머리 인간 미노수가 굉장히 우기는 영화잖아요.

이걸 그렇게 우기남? (웃음)
그렇죠. 심하게 우기죠. (웃음) 원래 우기남 감독은 데빌 돌의 리더인 미스터 닥터라는 사람에서 출발을 했어요. 보컬 스타일도 제가 천호진 선배님 들려드려서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을 텐데 선배님이 그런 힘든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고 소화를 하시더라고요.

소단 역에는 김꽃비 씨를 캐스팅했습니다. 주연으로는 굉장히 새로운 얼굴인데요?
회사에서는 려원 씨를 추천했는데 저는 나이가 어린 배우였으면 했어요. 압구정 스타일이면 안 됐고요. 꽃비는 노래는 좀 못했지만 (웃음) 제가 생각하는 외모적인 느낌에 맞았어요. 키도 작고 동글동글하지만 단단하게 보여야하고 당돌해 보이고 얼굴은 귀엽지만 자기 또래보다 자기가 성숙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애 있잖아요. 거기에 가장 근접한 게 꽃비였어요.

<삼거리 극장>에는 만족을 하나요? 아니면 아직도 아쉬운 점이 많이 느껴지나요?
두 가지 점에서 그런데, 하나는 오프닝 시퀀스 곡을 만들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요. 사람들이 뮤지컬 영화라고 하는데 노래는 언제 나와 그래요. 첫 노래가 영화 시작하고 20분이 지나서 나오거든요. 물론 뮤지컬 영화기 때문에 오프닝 곡이 있어야한다는 건 아니지만 소단을 극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느낌이 조금 더 판타스틱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시나리오 상으로는 있었는데 예산 때문에 찍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엔딩인데 풀이 우거진 로비에서 춤을 추는 거잖아요. 그게 아니고 마지막에는 소단과 혼령들을 극장의 옥상으로 내보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세트를 지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포기하고 대신 그 안에서 해결했죠. 그 안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그런 식의 엔딩이 된 거죠.


(2006. 11. 6. <스크린> Photo by 임아원)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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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다들 아시겠지만 본 공사 웬만해선 소위 잘 나가거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영화인은 잘 만나지 않음이다. 본 공사가 그렇게 콧대가 높아서? 그것도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음이다. 본 공사와의 이념과도 잘 안 맞을뿐더러 무슨 영화만 개봉했다 하면 재래식 언론들이 백미터 경주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이너뷰를 해대는 까닭에 본 공사까정 나서서 호들갑 떨지 않더라도 얼마간의 궁금증을 풀어줬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살인의 추억>. 올해의 기대작답게 개봉하자마자 무더기로 관객을 불러 모았고 지금 추세로라면 머지않아 <쉬리><공동경비구역 JSA><친구>의 관객 수를 넘어설 만큼의 폭발력을 보이고 있음이다. 그래서 그 인기에 무임승차해 한 몫 잡아볼 겸 봉준호 감독을 만났느냐? 당근 아니다. 당 영화가 위에 열거한 대박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관람 후 관객들의 반응이 재밌다, 씨바 돈 날렸다와 같은 단순 의견 피력이 아니라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어느 것이 실제고 허구인지 등 스토리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의견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나 이와 같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할 언론들이 그것을 풀어주겠다며 던진 질문들의 수준은 과연 어떠했단 말인가? 맨털리티에 대한 모자이크 같다는 둥, 인물과 사건이 구체적인 질감을 읽게 된다는 둥 현학적인 질문을 남발할 뿐 아니라 이너뷰 재료의 답변보다 2.5839배는 더 긴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게 과연 이너뷰를 하자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지식을 뽐내려는 건지 알 수 없는, 독자 개무시의 이너뷰를 보면서 본 공사 화르르 불 타오르는 똥꼬를 부여잡고 전면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음이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4월 29일 서울 모처의 한 카페로 비밀리에 꼬셔 불러내었고 <살인의 추억>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관객의 입장에 서서 가장 궁금한 질문들만을 추려 그에게 냅따 던져 보았음이다.

다음은 본 공사와 봉준호 감독 간에  2시간 여에 걸친 접선 내용이다.



첫 질문이니까 간단하면서도 디피컬트하고 난해하면서도 심플한 질문부터 던져보도록 하겠다. 딴지일보는 자주 보나?
그럼요, 되게 좋아하는 매체고 맨날 보죠. 그리고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 쓸 때도 딴지일보 기사에서 도움받은 것도 꽤 있었는데…


본지 기사가 도움을 많이 주긴 한다. 흠흠.. 근데 어느 기사에서 도움을 받았나?
80년대 짜가 마크에 대한 소고, 그 기사. 프로스포츠, 나이스… 영화에 나오잖아요. “나이키가 아니구 나이스구만” 그거. 저도 짝퉁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있거든요. 근데 그 기사를 보니까 딱 총정리가 되더라구요.


아주 난리다. 속된말로 터졌다. 이번 주 흥행 순위 보니까 1등이던데. 영화 쫄딱 말아먹은 감독에서 대박 감독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 기분이 어떤가?
별로 실감이 안 나요. 집에 그런 돈이 없는데 우리 와이프가 몇 억 어치 표를 샀나… (웃음) 제가 흥행을 경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플란다스의 개>도 쫄딱 망했고, 그리고 제가 연출부나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영화들도 흥행했던 적이 별로 없어요. <모텔 선인장> 경우도 서울 이만 몇 천 그랬거든요. 그래서인지 별로 실감도 안 나고, 저번에 회사 갔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메가박스 앞을 지나는데 매진매진매진매진 돼 있더라구요. 그래서 옆에 가봤지. (웃음) 일렬로 늘어져있는 거 그거 바라보면서 좋아 가지구 ‘헤~’ 이러구 전철 타고 집에 갔지. 되게 신기하더라구요.


그럼 언제쯤 되야 실감할 거 같나?
지금은 실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주위에서 축하전화가 오니까 실감을 하려고 애쓰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내가 당장 모 변할 것도 없고…


회사에서 돈 나올꺼 아닌가?
이거 다 계산하구 하려면 한참 걸려요. 정산해서 저한테까지 오려면 오래 걸려요. 그걸 가지고 실감하려면 올 연말쯤이나 되야 되지 않을까… (웃음)


<살인의 추억>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재래식 언론들하고 한 이너뷰처럼 각 잡지말고 걍 친구에게 썰 풀 듯 편안하게 한 번 얘기해봐라.
범죄영화가 찍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혹시나 딴지에서 그런 거 한 번 판매 해 줬으면 좋겠는데, 옛날 동서추리문고 판매 같은 거.


그런가? 알았다. 당 영화가 잭 더 리퍼 사건을 참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 영감을 많이 받았지요. 근데 100년 전의 영국 얘기니까 세부내용과 시추에이션은 워낙 달라요. 잭 더 리퍼라는 이름도 그냥 경찰서에 보낸 편지에 적혀있는 이름이었지. 그것도 범인 안 잡혔잖아요, 영구미제잖아요. 영구미제사건에 어떻게 접근해야 되나 그런 거에 힌트를 많이 얻었지요.

되게 재밌구 그 시대에 대한 느낌이 화~악! 나요. 런던에서 이 때 사람들이 이런 꼬라지로 살았구나, 이 때 귀족들이 이랬고 이 때 사회상이 이랬고 사건만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냄새가 물씬 나거든요. 우리영화도 시대적인 공기나 분위기가 많이 스며들어 있잖아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도 그 시대에 대한 흔적을 부각 안 시키고 은근히 보여주려 열라 노력하더라.
그런 거 일부러 생색내면 민망하잖아요. 그리고 그런 훌륭한 영화들이 이미 앞에 많이 있었구요. 사실 우리 영화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형사들이 범인 못 잡는 영화잖아요. 형사들이 실패하는 그 점이 특이한건데, 왜 실패했는지 따져보다 보니까 그것이 시대상하고 맞물린 거였거든요. 되게 무능하고 어둡고 한마디로 조까튼 시대였기 때문에 범인도 못 잡고 우리는 이렇게 엿같이 패배하지 않았느냐, 라는 주제가 있었기 때문에 시대상이나 분위기 같은 게 자연스럽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원론적인 질문은 요기까정. 사실 이 영화 만든 목적이 먼가요, 무엇을 참조 했나요와 같은 질문은 본지가 아니더라도 재래식 언론이라든가 주간영화 찌라시덜에서 많이들 했다. 그러니 이런 원론적인 사항이 궁금하면 얘네들 꺼 보시덩가 하시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본 이너뷰의 목적은 이런 게 아니지 않나. 썰이 길었다. 그럼 본 이너뷰의
하이라이트 들어간다.)


양복 쫙 차려입은 송재호 아저씨가 등장할 때 기차 길에 서서 후까 잡으며 담배에 불 붙이는 씬 나온다. 그거 <영웅본색>에 대한 오마쥬 아닌가?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그렇게 등장하잖나.
으하하하하! 기찻길… 상상력 기막히시다. 할튼 <영웅본색>까지는 아닌데 우리 영화가 원체 꿀꿀하다보니까 멋있는 사람도 없고, 간만에 한 번 약간 폼을 잡아보자는 의도에서…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함)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그렇고, 귀 재료가 만든 영화엔 항상 뽀일라실이 나온다.
네, 당신 영화엔 왜 항상 보일러실이 나오냐고 사람들이 또 그러더라구요. 어릴 때 보일러실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냐, 근데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의도한 건 아닌데. 실제 그 당시 경찰서를 보면요 미국영화에 나오는 멋있는 이중거울 돼있고 안에서 취조하는 거 밖에서 막 들리구 이런 거 전혀 없었어요. 창고, 보일러실 심지어는 경찰관 옆에 있는 여관있지요, 여관방에 들어가서 방구들에 앉아 가지고 취조하고 이랬어요. 여인숙 같은데 끌고가서 때리고 그 당시에는 다 야매였어요, 야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더 리얼하게 그런 썰렁한 파이프들 있는 지하실에서 취조하는 장면을 연출했어요.


뽀일라실과 관련하여 당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가 취조할 때 뽀일라 수리공의 등장시간에 대한 것이다. 그 넘을 장시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항간엔 뽀일라 수리공이 범인이다, 사건 해결의 열쇠다, 이거 단서다, 이런 의견덜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에 대한 해명 바란다.
그러니까요. 저로서는 의외의 반응인데… 너무나 허접한 취조 분위기 있잖아요, 취조하고 있는데 막 왔다갔다하고, 신경 안 쓰고, 옆에선 빤스 입고 취조하고 있고. 너무나 부조리하고 뻘쭘한 그 상황을 보여주려고 한건데 영화가 워낙 사건이 강렬하다보니까 관객들이 예민하게 단서로 받아들여서 미안하더라고.

난 그냥 뻘쭘하고 조악한 느낌을 살릴려고 한 거였는데. 또 이강산 기사님이 연기가 서투르시다 보니까 느릿느릿 걷잖아요. 웬지 더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거야. 그런데 그 시퀀스가 그럴 수 있는 시퀀스 같아요. 거기가 드라마의 어떤 핵심적인 몬가를 차지하는 시퀀스가 아니라 박해일이 등장하는 중간 과정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찍을 여유가 있었고 관객들도 드라마, 내러티브 상으로 그 단락에서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서 눈이 가게 되고 예를 들어 더 긴박하고 아수라장 상황에서는 그런 인물이 심어져 있어도 눈에 띄지도 않죠. 드라마 흐름 탓도 있는 거 같아요.


박현규에 대한 부분도 몹시 궁금하다. 영화를 보면 박현규가 범인 인 것처럼 몰고 가는데 실제에도 그런 넘이 있었나?
사실 실제 사건에서도 유전자 조사를 받고 그런 사람이 있긴 있었어요. 언론 상에 거의 범인처럼 발표가 되긴 했었고. 하지만 유전자 결과가 아닌 걸로 드러났지요. 근데 그 인물에 대해서는 실제적으로 언급이 되면 피해가 될 거 같아서 피하고 싶고, 그리고 범인이 아닌 걸로 명확히 판명이 났으니까.


그럼에도 당 영화를 보고 나면 박현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박현규는 투수 마운드에 투수가 올라가는 것처럼 그 인물의 위치,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그니까 박해일 배우가 등장하기 전에 우리는 그를 밑그림으로 해서 계속 생각하잖아요. <우울한 편지>를 계속 보내는 놈이 있다, 그가 범인이라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잖아요. 이미 그는 범인 또는 범인 같은 것이고 앞에 나왔던 용의자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라는 느낌이 생성 돼가고 있잖아요.

근데 투수마운드에 투수가 올라가듯이 그 자리에 해일이가 싹 들어가게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미 캐릭터 자체보다 그 캐릭터의 포지션 자체가 드라마 상에 이미 있었어요. 그 인물은 사실 형사나 관객들이 범인을 잡고 싶은 욕구가 되게 강하게 몰고 가는 드라마니까 형사나 관객들의 입장에선 걔가 범인이고 싶어요.

그 욕구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는데 가장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 감식이 아니라고 나오니까 그게 인제 거의 불덩이와 얼음이 충돌하듯이 그 접점에서 뜨거운 경계선이 생기는 거죠. 어떻게 보면 박현규라는 것은 실질적인 사건의 인물, 캐릭터라기 보다는 하나의 어떤 형사나 관객의 욕망이 하나로 집결되는 어떤 포지션인 거 같아요.


본 우원도 박현규가 범인이 아니라는 FBI의 서류장면을 보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따. 그래서 FBI 이 넘들도 조사를 날림으로 했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가 범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죠. 그리고 그만큼 김상경의 심정에 동화 돼 버린 거죠. 영화를 보면 얘는 범인이다, 로 몰고 가고 있잖아요. 그니까 <우울한 편지>를 계속 신청한다, 그리고 또 얘가 버스 타고 사라졌을 때 여중생이 죽는다, 손이 부드럽다, 이 모든 것이 강한 심증일 뿐이지 이게 다 정확한 물증은 아니니까. 그 지점에서 형사들이 미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실제 사건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실제 사건을 보면서 내가 비극적이라고 느꼈던 게 사건이 5년에 걸쳐서 일어났잖아요, 초창기 일수록 더 개판이예요. 현장보존도 안 되고. 근데 그 5년 동안 과학수사도 발전을 하더라고.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실제 사건에서도 여중생이 죽었을 때 거의 클라이막스나 마찬가지였거든요. 그 땐 정말 형사들이 과학수사를 했어요. 실제 사건에서는 유전자를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 보냈어요. 형사들도 정말 승부수를 제대로 던진거지. 그동안은 두들겨 패고 풀려나고 그걸 반복하고 억지 수사만 하다가 이번엔 정말 승부수를 던졌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에서는 범인이 아니라고 온 거야. 그거 자체가 너무 아이러니칼하고 웃기기도 하고 비극적으로 느껴졌었어요.

영화에도 그게 고스란히 반영이 돼 있어요. 특히 관객들이 영화 안에서 김상경의 시점이나 심정을 따라가게 돼 있는데 맨날 “서류는 절대 거짓말을 안 하거든” 그랬다가 정작 서류가 얘를 배신하게 되잖아요. 대사도 “이건 다 거짓말이야” 이러는데 실제 사건에서도 그렇고, 그 비극성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마침내 과학수사라는 게 본 궤도에 오르고 승부를 던졌는데 거기서는 정작 아닌 걸로 나오니까 얼마나 허망했겠어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도 실제로 있었던 걸 차용한 건가?
그건 실제가 아니라 픽션인데 원작 연극 <날 보러와요>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장치예요. 연극 원작에서 가져온 가장 중요한 장치 중의 하나가 FM 라디오 신청하는 그거랑 무모증 에피소드 그런 건데 연극에 고스란히 있어요.

사실 박현규 캐릭터랑 잘 맞을 거 같기도 했어요. 뽀얀 피부를 한 애가 앉아서 그 음악을 듣고 있는 그런 장면을 생각해 보면 섬세한 그런 느낌과 잘 맞을 거 같기도 했고, 또 유재하가 죽은 가수잖아요. 그 때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사람. 그래서 더 끌리기도 했고, 그래서 <우울한 편지>를 하게 됐죠.


마지막 기차 터널 장면에서의 긴장감은 심장이 쪼리뽕 될 정도로 정말 벌렁벌렁하더라. 그 장소는 시나리오 쓸 때부터 미리 염두에 두고 있던 곳인가? 아니면 현장 헌팅하다가 발견하고 넣은 장면인가?
처음 시나리오에는 기차 클라이막스가 원래 터널이 아니었어요. 그냥 뻥 트인 공간이었는데 그게 항상 답답했었거든요. 뭔가 아쉽고 클라이막스에서 이런 식으로 풀어 가지고는 과연 비쥬얼한 이펙트가 있을까… 근데 헌팅하다가 터널을 몇 개 발견했는데 그 터널 덕분에 그동안 여러 가지 매듭이 안 풀렸던 생각들이 쫙 정리되면서 참 좋았었어요.


어떤 매듭?
일단 빛과 어둠이 있고 그 터널이 반대쪽은 안 보이잖아요. 박현규가 어둠 속으로 쫙 사라져서 퇴장하는 그 느낌도 너무 좋았고,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 있는 그 느낌. 대부분 관객들이 잘 모르는데 자세히 보면 송강호가 해일이한테 “밥은 먹고 다니냐” 대사 치는 이 부분에서 두 사람이 그 터널 경계선에 서 있는데 송강호는 비를 막 맞고 있고 박해일은 말짱하게 비를 안 맞고 있어요. 그게 해일이 쪽 표정연기에도 도움을 줬고 일부러 그렇게 설정을 했는데 그 서로 다른 경계선에 있는 느낌이 좋았어요.

근데 그건 영화 보면서 느끼기는 힘들어요. 빗소리 사운드가 계속 나기 때문에 별로 인식하기 어려운데 예를 들면 그런 설정이라든가 그리고 터널이니까 기차가 나올 꺼 아니예요. 형사와 박해일을 서로 갈라놓는, 운명적으로 완전히 끝나 버린 느낌 있잖아요, 그리고 FBI 서류를 찢어 놓고. 그니까 터널로 인한 일타사피의 효과라고나 할까 모든 매듭을 다 풀어줬어요.

그 시각적인 느낌하며 터널 그 자체의 느낌도 좋았고 그 이끼가 잔뜩 낀 질감이라든가 어두컴컴한 느낌. 좀 으슥한 공간이 필요했을 뿐더러 터널 때문에 비로소 모든 장면들을 구성할 수 있었고 클라이맥스에 대한 고민이 풀렸어요.

사실 클라이막스 부분은 콘티를 안 해놓은 상태였거든요. 대부분의 씬들이 클랭크 인 할 때 콘티북이 통째로 책이 한 권 있을 정도로 미리 정교하게 짜 놨었는데 클라이막스는 비워 놓은 상태였어요. 계속 고민을 하다가 그 터널로 컨셉을 잡게 되면서 모든 매듭이 다 풀렸지요.


“밥은 잘 먹고 다니냐” 그게 귀 재료가 범인에게 하는 소리라는데?
그거 애드립이예요, 내가 계속 강요한 애드립이지. 장소는 사천의 한 피자집, 때는 늦은 밤. 그거 찍기 며칠 전부터 강호 선배 불렀어요. “잘 모르겠다”와 “아, 씨발 모르겠다” 그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에 있는 건데 내가 강호 형 거기 모가 또 하나 있을 꺼 같아요, 뭔가 하나 더 나와야 한다, 그동안 박두만 역할을 몇 달 동안 해 오셨으니까 박두만 만이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걸 나보다 더 아실 꺼 같다, 모 좀 하나 해 주세요, 내가 강요를 했거든, 괴롭혔어요. 근데 막 고민하면서 죽을려구 그러더라구.

그런 얘기도 했었어요, 예를 들어 <복수는 나의 것> 보면은 마지막에 신하균이랑 강물에 들어가 갔고 “내가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면서 다리 확 짤라 버리잖아, 그게 얼마나 웃겨.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착하다면서 왜 또 짤라 짜르기는. 그 점이 되게 강렬하잖아요. 그 예를 들면서 내가 막 그런 모시기가 있어야 되요, 그랬더니만 괴로워하더라고.

그랬더니 강호 선배가 그 대사를 딱 생각 해 오신 모양이야. 현장에서 딱 한거지. 처음에 스탭들은 대체 뭔 소리야 저게, 멀뚱했던 모양인데 두고두고 볼수록 좋았어요. 그렇게 ‘밥을 먹고 다니냐’ 한 버전도 있고 안 한 버전도 있어요. 결과적으로 ‘밥은 먹고 다니냐’를 편집에서 하게 됐지.


그럼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의 주제는 몬가?
주제? 아! 씨바, 이게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플란다스의 개>는 특히 말하기 복잡한데요, <살인의 추억> 같은 경우는 정말 말 그대로 살인의 추억이죠.

<살인의 추억>은 제목 그대론 거 같아요. 사실은 살인의 악몽이죠. 역설적으로 살인은 추억이 될 수 없다 그런 건데, 작게 보면 형사들이 실패하는 아픈 기억, 피해자 가족들한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픔, 그 시대의 살았던 우리 모두의 씁쓸한 아픔 같은 거, 그게 주제죠.

한마디로 쉽게 말해서 우리가 씨바 이렇게 살았었구나. 저렇게 엿 같은 시대에서 나름대로 낄낄거리면서 살았었구나. 어떻게 보면 되게 부조리 하자나요, 한 편의 코미디처럼 보이잖아. 한복 여고생들이 태극기 들고 뛰어가고 그 때는 그게 리얼한 거였잖아, 지금 와서 보니까 그게 부조리 한 거지. 불과 십 몇 년 전인데, 사건 자체도 강렬하고 전대미문의 사건이긴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저런 꼬라지로 저런 범인도 하나 못 잡고 여자애 죽는 거 하나 못 막고, 그렇게 살았었구나, 슬프다 씨바,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지, 그게 주제죠 사실.

임상수 감독님이 처음 제 시나리오를 보고 그런 반응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오래 전 일도 아닌데 우리가 이 꼬라지로 살았었구나, 라는 반응을 해주셨는데 저는 그 반응이 가장 기뻣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했고, 그거 같아요.


(사실 당 영화의 주제에 대한 질문을 날렸을 때 봉준호 감독은 웃으면서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본 우원에게 ‘어렵다’는 의미는 아픈 기억을 설명해야 하는 가슴 쓰라림 이런 카인드의 맥락으로 들려왔다. 고로 이 지점에서 이 사건을 영화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이 느꼈을 감정에 대해 물어봐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귀 재료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던 시기 몇 살이었나?
고2때부터 방위병 때까지 걸쳐진, 그니까 대학교 2, 3학년 때까지.

그럼 귀 재료는 당시에도 이 사건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나?
일반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의 기억이나 관심은 있었죠. 근데 저도 이 영화 다시 시작하고 있기 전까지 다 잊고 있었어요. 영화 작업 들어갈 때부터 그 당시 신문이나 자료 찾고 조사해 나가기 시작하다가 ‘아~ 이 정도까지 끔찍했었나’, ‘이렇게 많이 죽었었나’ 하는 감정을 느끼게 됐죠.

그렇다면 귀 재료 역시 당 영화를 찍으면서 반성의 기분이랄까, 느꼈겠다?
클라이막스에서 소녀가 죽을 때 민방위 사이렌 등화관제 하면서 불 꺼지잖아요. 마치 그 여자아이는 끔찍하게 죽는데 세상 사람들은 다 외면하는 거 같은 느낌. 실제 사건에서 그 소녀가 죽은 날이 1990년 11월 15일 이었어요. 우리 매달 15일은 민방위 날이었잖아요. 그래서 시나리오에 제가 처음 영감, 아이디어를 받았던 게 그 신문기사의 날짜를 보고 그 여자아이가 그렇게 죽어 가는데 만약에 온 천지에서 민방위 훈련 내지 등화관제 훈련을 하고 있는걸 상상만 해도 너무 슬프고 열이 받는 거예요. 등화관제를 지금은 안 하지만 80년대에만 했던 거잖아요. 그게 영화적인 모티브예요. 어둠을 만드니까. 그래서 영화 속에 등화관제가 등장하게 된 거였고, 모두가 셔터문 닫고 커튼 내리고 불 끄고 이러잖아요, 저도 그랬을 꺼란 생각이 막 들었거든요.

그 여자아이 죽었을 때 90년 11월이면 저는 방위병 생활 할 때였고. 웬지 내가 범인이 아님에도 느껴지는 일말의 죄책감 같은 거 있잖아요, 우리는 몰랐었고 우리는 다 그냥 모든 걸 방조했고, 우리는 먹고살기 바빴고, 이런 느낌들. 개인적인 반성이라든가 돌이켜 보는 질문 하셨는데 이 영화는 저의 개인적인 느낌하고도 관련이 있어요. 그 시대를 추상적으로 ‘어둠의 시대’, ‘독재정권의 시대’로 설정 해 가지고 꼭 그렇게만 접근한 건 아니예요. 저의 개인적인 기억들, 영화 보면 여고생들 태극기 흔들고 그러는 장면 나오잖아요. 저도 그런 거 동원 많이 됐었거든요. 남학생이지만 전국체전 행사에 동원 됐었고, 그 당시에 학교 다녔던 사람들은 그런 경험 많을 꺼예요, 그렇죠?

그렇다. 본 우원 같은 경우도 올림픽 때 관중 없다고 별루 잼없는 육상경기에 불려나갔던 적이 있다. 닝기리.
괜히 새벽에 나오라고 해서 학교 앞에 청소시키고, 우리가 왜 그런 걸 하냔 말이야. 지금 생각하면 열 받는데 그런 것들이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난 거 같아요. 시대상이 영화 속에 반영되지만 그게 일제시대나 그게 아니라 우리가 나 자신도 그 시대를 관통하면서 직접 살았던 시대니까.

실제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은 당근 만나보고 이너뷰 해 보았겠다?
경인일보라고 있는데 가장 가까이서 빨리 취재하고 정보량도 많고 화성사건은 그 신문이 가장 뛰어났어요. 거기 유일하게 6년 간 다 취재했던 박 모 기자라고 있었는데 그 분한테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그 당시 그 지역에 실제 있었던 형사 조 아무개 씨라고 있는데 지금은 전라도에서 여관하고 계세요. 이 양반 인터뷰나 그런 것도 도움이 많이 됐었고. 오고 가며 주민들도 만났었고, 시나리오 쓸 때 그 쪽 동네 자주 갔었어요, 사진도 많이 찍었고.


박두만은 그럼 조 아무개 씨를 모델로 한 건가?
딱 정해진 모델은 아니고 이런 저런 인물들에서 뒤섞었어요. 우리 영화가 연극원작도 있잖아요, 연극원작에서 빌려온 에피소드도 있고. 실제 내가 만났던 형사들, 제가 한 상상력 막 뒤섞여 있어요.


당 영화에 대한 화성주민의 반응은 어떤가? 압박이 들어오고 있나?
직접적인 압박은 못 느껴요. 사실 영화에서는 지명이 전혀 안 나오거든요. 그리고 화성이란 특정지역의 묘사 같은 건 하나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고. 왜냐하면 이게 특정시대에 포카스를 맞춘 거지 지역성에 맞춘 영화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는 화성주민들을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그 동네 가면 괜히 으시시하다, 끔찍하다 그러는데 그건 편견이 있어서 그런 거지 사실 거기 가보면 평범한 농촌이에요. 다른 지역하고 별 차이가 없어요. 근데 정말 재수 없게, 운 나쁘게 그런 사건에 휘말리면서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그런 것을 겪었던 것일 뿐이죠. 그래서 영화에서도 시대에 초점이 맞춰있지 그 지역이 특이하다거나 그 동네 풍토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런 접근은 전혀 없잖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 사건 자체에 대해 그거를 스릴러적인 장치로 엽기적인 묘사로써 즐기고 있다거나 이러지 않고 사건 자체에 저의 분노나 슬픔 같은 게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떳떳한데 그래도 좀 죄송한 마음은 있어요. 주민들 입장에서는 민감하고 잊고 싶고 그럴텐데 본의 아니게 내가 영화에서 그 지명을 거론 안 해도 다른 매체들에서는 무조건 화성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이래 버리니까 그 거를 우리가 일일이 통제할 수도 없고, 결과적으로 그런 면에선 죄송하긴 한데, 저는 오히려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는 입장이니까 주민들께서 직접 영화를 보신다면 아픈 기억이긴 해도 그래도 어떤 카타르시스나 위로를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쉽게 그냥 잊는다고 먹고살기 바쁘니까 잊어버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 기억할 건 기억하자라는 입장이니까 떳떳하지요. 근데 모 심정적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화성살인 사건 수사하면서 잡혀온 용의자 중에 조사를 받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기사도 보았다.
황경일 씨. 심지어 죽은 사람도 있었어요. 명노열 씨라고 그 때 열아홉 살로 걔는 성당에서 헌금한 돈 훔치다 걸렸어요. 그러니까 좀도둑이지. 그 당시에는 무슨 사건이든 경찰서에 오면 일단 한 번 화성사건 쪽으로 물어보고 그러는 거야. 또 여자를 약간 성추행해서 들어왔다 그러면 당연히 물어보고 그 쪽 조사를 하는 거야 옆에서. 근데 명노열 씨는 헌금통에서 돈을 훔치다가 그 과정에서 구타를 당하고 그랬는데 죽어 버렸어요. 그래가지고 서장 모가지 날라 가고 그 밑에도 파면되고 그랬었죠.


송강호에게 그렇게 애드립을 많이 요구했다는데, 그의 애드립엔 만족하는 편인가?
강호 씨의 최대 강점이 절정 초식이라고 해야할까, 우리 영화에서 송강호씨의 연기를 보면 애드립과 애드립 아닌 거에 경계선이 없어요. 하수급 배우들을 보면 써준 대사 다하고 그 다음에 애드립 탁하면 저거 애드립이구나 표나고 그래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보신 우리 영화에서 강호 씨의 대사 중에 저게 애드립이다 싶은 게 사실 내가 콘티에 써 준 대사가 있고 반대로 그냥 차분하고 평범한 듯한 대사라서 저건 당연히 시나리오에 있었겠지 생각하는데 애드립인 게 있어요. 그니까 애드립이 애드립처럼 돌출 되지 않아요, 그 경계가 없어. 모든 게 다 캐릭터와 리얼한 품안에 쏴아~ 들어가요. 그게 제일 훌륭한 점인 거 같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예를 들어 강간의 왕국 같은 건 애드립이 아니에요. 콘티에 내가 적어 준 거거든요. 그런데 그걸 애드립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건 그만큼 생동감 있게 라이브 하게 한다는 거 아니에요. 반대로 상경이 하고 책상에 누워있는 거 있지, 백광호 얘기 다시 하면서 그 때 보면은 상경이가 “두들겨 패야 해” 그러면 “너 많이 변했다” 차분하게 말하는데 그게 또 애드립이에요. 그 대산 시나리오에 없던 거야. 되게 차분하고 드라마의 정곡을 찌르는 대산데 오히려 그런 건 애드립이거든요. 관객들이 보면서 느끼는 “이건 애드립일 꺼야”, “이건 시나리올 꺼야”라는 그게 사실은 되게 많이 달라요.

그 작업하는 게 서로 재밌었어요. 내가 써 주면 거기에 몰 덧붙여서 그 양반이 더 하고, 또 그 얘길 듣고 재밌어서 내가 하나 거기에 만들면 서로 토스하듯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나리오 만드는 게 재밌었어요. 또 중요한 거는 내가 쓴 것이건 자기가 애드립으로 만들어 낸 것이건 그게 다 박두만 캐릭터 품안에 돌출 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거지. 그게 과연 역시 괴물 배우 송강호의 절정내공이 아닐까.


강간의 왕국 씬에서 송강호가 김상경을 날라 차기 할 때 그게 서로 약속이 돼있던 게 아니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맞은 김상경이 송강호 한테 열라 삐져서 서로 사이가 안 좋았다는 얘기가 있던데.
촬영 첫 날 첫 캇트였어요. 근데 영화에서도 둘이 사이가 안 좋잖아요. 배우들도 오히려 그 상태로 대립하는 가운데 서로 신경전을 하면서 갔어요. 근데 뒤에 가선 서로 친해졌어요. 그니까 영화의 흐름과 되게 비슷했어요. 이 장면에서 요구하는 게 액션영화도 아니고 합을 맞춰 가지고 딱 하면 딱 피하고 그런 느낌은 너무 깰 거 같았어요. 그래서 배우들한텐 참 미안하지만 싸워보자 이러면서 무술감독 없다, 안정장비 없다, 그냥 좀 해달라, 했어요.

다행히 한 번에 오케이가 났고 그걸 다시 반복해서 하거나 리허설을 해서 하면은 생동감이나 리얼리티가 살수가 없는데 강호 선배가 노련하게 리드를 잘 해줘서 상경이는 진짜로 맞고 머리 쥐어 잡히고 되게 고생했죠. 근데 아닌게 아니라 좀 삐졌을꺼야. (웃음) 그 때 나랑 강호형이 가서 막 달래주고, 되게 고생했죠. 이단옆차기도 예상했던 게 아니라 지형 자체가 경사지다 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구. 사실 그 장면에서 정말 감사 드리고 싶은 것은 물론 강호형도 고맙고 상경이도 고맙지만…


박현규라는 캐릭터에 박해일은 염두에 두고 있었던가?
예, 원래부터 염두에 뒀어요. 그 친구가 99년도에 <청춘예찬>이란 연극할 때 처음 보고 만났는데 너무 좋아서 내가 팬이었는데 시나리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나랑 모좀 하자, 재밌는 거다, 했어요. 초창기에 시나리오에는 그 인물의 캐릭터 이름 자체가 그냥 박해일이었어요. 근데 계속 준비해 오던 1~2년 동안 박해일 선수가 점점 유명해져 가지고 배우 이름을 극중에 그냥 쓰기가 부담스럽더라구. 그래서 박현규로 바꾼 거예요.


귀 재료는 코미디를 유발하는데 있어 슬로비디오를 많이 이용하는 거 같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개 찾았을 때 이성재가 기뻐하는 장면도 그랬고 <살인의 추억>에서는 현장 검증할 때랑 채석장에서랑.
맞아, <살인의 추억>에 슬로 모션이 딱 두 번 나왔을 꺼야. 현장검증 때 아수라장 되는 거는 아수라장의 생생한 현장을 오히려 좀 시간이 정지 된 듯이 이렇게 세세하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 전까지는 커트 되는 게 빠르잖아요. 뛰어가면서 막 소리지르고. 아수라장 자체를 아수라장처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아수라장 자체를 고요하게 보여주는 거죠. 물론 사운드는 시끄럽지만 슬로모션이 딱 걸리면서 그 엄청 뒤엉킨 기자, 형사, 백광호, 그 뒤의 주민들 다 철저히 볼 수가 있잖아. 그 순간 아수라장의 현장에 빠져들었다가 갑자기 거리가 확 생기면서 물끄러미 하나하나를 보게되는 느낌, 그런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그게 정속도로 찍은 버전도 있었어요. 그 진흙창에서 배우들 굴려놓고, “자 슬로우 모션 하니까 한번 더 갈께요” 하니까 그 배우들의 표정이란 정말 너무 미안하드라구. 그렇지만 모르는 척 했지 찍어야 되니까.(웃음) 그러고 보니 슬로모션은 혼잡스러울 때만 썼네. 채석장에서도 그 수 백 명의 공사장 인물들이 모여있는데 송강호의 얼굴로 카메라 쫘악 들어가면서 모든 주변의 그 것들이 확 지워지잖아요. 뭔가 아수라장이었다가 그 아수라장으로부터 확 떨어져 나올 때, 그럴 때 쓴 거 같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근데 귀 재료의 코미디는 독특한 게 이거 웃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 때리게 만드는 성격이 짙다. 네, 은근하고 뻘쭘한 유머가 많죠. 성격이 그래서 그런가? 근데 그게 저한테는 자연스럽거든요. 코미디 영화에서 웃긴다 그러면 기를 쓰잖아요. 여기서 한번 웃겨주고, 폭소 한 번 이런 게 많은데 저는 그렇게는 못하고 성격상도 그렇고 또 그렇게 하다보면 너무 오바하게 되는 거 같고.

이 영화에서 나오는 웃음은 사실 형사들이 하는 여러 가지 짓거리 때문에 웃게 되잖아요. 무덤가에서 절 한다거나 목욕탕에서 무모증 환자 찾는 거처럼. 그런데 실제 에피소드에서도 그랬고 저는 그 모든 걸 그냥 공포이건 웃음이건 모두가 사실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호러영화에서처럼 여기선 겁 한번 주고, 여기서는 폭소, 여기서는 슬픔, 뭐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건 되게 싫어하거든요. 모든 게 인물들의 리얼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원래 인간들이 항상 희로애락 겪으면서 사니까. 형사들의 캐릭터를 따라가다 보니까 그 모든 감정들을 만나게 된 것 같아요.

당 영화에 대한 기사가 모두 호평 일색이다. 단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본 우원의 작지만 날카로운 눈은 피해 갈 수 없음이다. 당 영화에서 단점을 찾아냈다. 그것도 결정적인 단점을. 베드신이 너무 짧다.
으하하하! 짧을 뿐더러 제대로 하고 있지도 않지. “빠진 거 같은데?” 이게 다잖아. (계속 웃음)

그러니까 말이다. 보여주려면 좀 더 화끈하게 보여주지 왜 그랬나, 토끼 빠굴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에로틱한 거 보여주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이런 말하면 강호형이 신경질 내려나? 사실 강호 선배 데리고 에로틱한게 되지도 않지. 근데 하여튼 둘의 관계를 보여준 장면이 나른하고 일상적인 느낌이잖아요, 대낮이지 또 여관에서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둘이 동거하는 집이 아니고 여관이란 말인가?
여관이에요. 에로틱한 뭔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냥 뻘쭘한 얘기하면서 시골 형사의 일상을 보여주는 느낌이었어요. 명랑 빠굴 사회를 앞당기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누워있잖아요, 그러다가 금방 또 백광호에 대한 정보를 듣고. 원래 시골 형사들이 동네 미장원이나 목욕탕 집 아저씨 등 거점을 확보하면 정보가 금방 들어오거든요. 어쩌면 둘의 관계도, 나중엔 애까지 낳고 살지만 아마 그렇게 출발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직접 형사들을 인터뷰 하다가 들은 얘긴데 살 섞어서 나온 정보가 진짜 캡 정보다, 그런 말이 있어. 그냥 어디서 주어들은 정보랑은 완전 질이 다른 정보다 그거죠. 예전에 그런 사건 있었어. 신창원이 레지들이랑 동거하다가 도망가고 그랬쟈나요. 근데 한번 뉴스에 잠깐 나왔던 사건이 있는데, 신창원을 추격하던 형사 하나가 신창원과 동거했던 다방 아가씨를 성추행 비스므리하게 해서 고소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나랑 인터뷰하던 형사는 그 얘기를 하면서, “물론 그게 안 좋은 거지만 그게 다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수산데, 노하우야, 그 자식이 성추행하고 그런 건 실수지만 그 심정은 이해가 갔어. 신창원의 여자와 살을 섞으면 그건 정말 바짝 다가가는 거거든. 성공했으면 정말 많은 정보가 나왔을 꺼야” 이러시드라. 나는 수긍하는 척하면서 들었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저건 심하다, 했는데 그런 맥락이 있드라구요. 그러니까 송강호와 전미선의 캐릭터들의 역사를 상상해보면 아마도 그렇게 시작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귀 파면서 백광호 얘기 해 주자나요.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이 중요했지.

송강호가 목욕탕에 수사 나갔다 온 후에 전미선과 나란히 눕잖나. 근데 전미선 가슴을 무심하게 만져주 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드라. 그게 감독 생각인지 배우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무심하게 만져주는, 그거 말이 너무 우낀다. (웃음) 그렇죠. 그게 콘티에 딱 있어요. 부라자 위에 손을 올리는 게 콘티에 있고 저도 결혼생활을 7년 넘게 하다보니까 남녀가 같이 누워있는 분위기는 잘 알죠. 유일한 현장에서의 고민은 브래지어 속으로 손을 넣을 것인가, 겉으로 만질 것인가인데 나나 강호씨나 베드신 경험이 없고 모질지가 못해서 미선씨 눈치를 딱 보다가 강호선배가 미선씨 죄송합니다 하면서 위로만 했어요…



이렇게 끝났다.


뜬금없나, 그래도 할 수 없음이다. 2시간이나 계속된 질문과 대답으로 봉준호 감독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고 아직 물어볼 꺼리가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아쉽게도 그와의 이너뷰는 베드신에 대한 대답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니덜이 좀 이해해 주시라. 요즘 봉 감독 좀 바쁘겠냐?


아닌게 아니라 그 날 봉준호 감독은 본지와의 접선을 포함하여 약속이 4건이나 더 있었고 개봉을 전후하여 <살인의 추억>과 관련해서 반복되는 이너뷰에 거의 미칠 지경이라는 표현까정 썼드랬다.


그럼에도 당 이너뷰는 매우 즐겁고 유익한 것이었다. 봉 감독 자체가 본 공사에 몹시 호의적인 인물인지라 친구들끼리 노가리 까듯 반말도 섞어가며 거의 허물없는 분위기 속에서 이너뷰가 진행됐고 영화가 한창 상영 중임에도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에 얽힌 많은 궁금증들을 속 시원하게 까 밝혀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인의 추억>을 이미 보신 독자라도 당 이너뷰를 열람한 후 다시 영화를 보게되면 그 느낌이 처음 볼 때와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 영화가 갖는 주제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세부적인 사항들이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역시 본지가 봉준호 감독을 만나 장시간에 걸쳐 이너뷰를 하게된 이유였음이다.


궁금증은 풀리셨는가? 그럼 봉준호 감독과의 이너뷰를 여기서 마친다. 졸라~


(2003. 4. 29. <딴지일보> 사진 편재민)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 한국을 찾은 유덕화


유덕화가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은 영화 홍보 때문이 아니다. 제11회 부산 국제영화제의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신인감독과 연기자 발굴에 힘써온 그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한 것. 그래서 이번엔 배우가 아닌 제작자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에게서 현재 홍콩영화가 처한 문제점을 돌파하기 위한 ‘제작자’ 유덕화에 대해서 들었다.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을 수상한 것을 축하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것이 너무너무 기쁘다. 무엇보다 부산 국제영화제가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이라는 부문을 만든 것에 대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새로운 영화인들을 발굴하지 않는다면 영화 전체에 대한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금껏 많은 신인감독과 배우들을 발굴해 키워왔고 앞으로도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메이드 인 홍콩>도 그렇고 11회 부산 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된 <크레이지 스톤>까지 제작자 유덕화는 아시아 독립영화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딱히 갈라서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장르의 영화든지 그것을 보는 사람들을 위해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어떤 감독들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무시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고집해서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에 영화계의 상황이 좋다면 그런 작품들이 운 좋게 계속해서 만들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경우는 영화시장이 축소되었을 때 그런 작품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관객 위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영화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안 그래도 오래전부터 홍콩 영화계는 침체기다. 이런 상황이 제작자로 나서게 된 계기였나?
특별히 홍콩 영화가 침체되어 있어 다시 살리고자 하는 마음에 제작자로 나선 것은 아니다. 영화산업은 부침이 잦아서 잘 될 때도 있고 좀 안 될 때도 있고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노력은 잘 될 때던지 상황이 좋지 않을 때든 언제든지 누군가는 꼭 해야 되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인들 자신이 미래를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지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문제없이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방문은 제작자로 온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 <삼국지-용의 부활>을 찍고 있다. 그 지치지 않는 열정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어렸을 때부터 세계 각국의 영화를 찾아서 많이 봤을 정도로 천성적으로 너무너무 사랑한다. 게다가 운이 좋아서 내가 사랑하는 영화가 일이 되었다는 게 그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나에게 힘을 주는 게 있다면 변함없는 관객들의 사랑, 이것이 지금껏 20년 동안 이 길을 걸어오게 한 큰 힘이 돼주었다.


맞다. 부산 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팬들, 특히 젊은 팬들이 많다.
사실 나도 궁금하다. 그런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나를 알고 나를 좋아할까, 정말로 내 영화를 보고 나를 좋아하는 걸까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한 현상이다. 실례지만 기자 나이가 몇 살인가? 내 영화를 본 적이 있나?

서른 세 살이다. 당신이 데뷔한 <지존무상>부터 <아비정전>, <천장지구> 최근 가장 히트를 한 <무간도>까지 많은 작품을 보았다. 그런데 지금 아주 젊은 사람들이 배우 유덕화를 좋아하는 건 <무간도>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지금 젊은 팬과 기자가 학생일 때 같은 점이 있다면 <아비정전>도 양조위, 유덕화 주연,  <무간도>도 양조위, 유덕화 주연이라는 거다. 이걸 다른 측면에서 보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십년이 다시 지나 나를 사랑해준다면 그것처럼 고마운 것도 없지만 다시 보면 새로운 스타가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을 육성하는 일에 더 힘을 쏟는 거다. 


사실 요즘에 홍콩의 새로운 감독을 보는 것도 힘들어졌다.
맞다. <아비정전>이랑 <무간도>를 비교해 보았을 때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무간도>의 연출을 맡았던 유위강 감독이 <아비정전>의 두가풍 촬영감독의 촬영보조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의 홍콩 영화계의 상황에서는 이 계보를 이어갈 감독과 배우들의 출연이 많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서 홍콩영화계가 처한 절실함이 느껴진다.
홍콩영화계의 문제점 중 하나가 또 뭐냐 하면,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신인으로 시작해서 유명한 배우가 될 때까지 유지를 해나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시장이 작기 때문에 흥행을 고려하게 될 때 매번 나나 양조위, 주성치, 장학우 등 검증된 배우들만 찾는 경우가 빈번하다. 내가 신인감독들을 길러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신인감독들의 작품을 통해서 신인배우들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2006. 10. 13. <스크린> Photo by 임아원)

<천하장사 마돈나> 이해영.이해준 감독


<천하장사 마돈나>는 두 상반되는 조합의 ‘따로 또 같이’에 관한 영화다. 그런 작품의 성격을 반영하듯 감독도 두 명이다. 이해영과 이해준. 이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보고 형제로 착각한다. 그들은 형제가 아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함께 써오며 10년 이상 호흡을 맞춘 형제 같은 사이다. 천하장사와 마돈나처럼 그들도 또 하나의 ‘따로 또 같이’다. 감독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에 대해 물었다.


영화는 생각한 만큼 만족스럽게 나왔나?
이해영(이하 영) : 만족한다. 내가 생각할 땐 이 이야기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내가 찍을 수 있는 영화인 거 같다.
이해준(이하 준) : 다르게 해봤어야 하는데, 이렇게 바꿨어야 하는데 계속 고치고 싶다. 고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어느 순간 그걸 중단하게 된다. 

여자가 되고 싶은 남학생이 씨름을 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영 : 둘이 오후 한 3시쯤에 아침밥을 먹으면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여자 씨름부 얘기가 나왔다.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면서 씨름부 얘기는 어떨까, 거기에 여자가 되는 남자라면 어떨까, 그렇게 의견을 얘기하면서 구체적인 모습이 만들어지게 됐다.

아이디어는 항상 그렇게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나?
준 : <천하장사 마돈나>가 최초였다. 그날 TV를 보면서 수다를 떨다가 순식간에 얘기가 됐다. 밥을 먹고 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노트북을 꺼냈고 두어 시간 정도 시놉을 정리하고 점점 발전시켜 나가게 된 거다. 


영화의 배경이 인천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영 : 동구가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편견하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위해서는 영화적으로 뭔가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으면 좋지 않나. 그런데 단순히 몇몇 사람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으로 좀 더 열리기를 바랐다. 얘가 진짜 투쟁해야 될 대상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천은 서울의 변두리면서 나름의 중심지이기도 해서 어딘가로 열려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바다가 있어도 항구로 막혀있고 공항이 있지만 그 하늘은 늘 비행기가 떠다니고 결국에는 닫혀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인천의 이중적인 이미지가 동구의 성향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준 : 간단히 얘기하자면 아버지의 도시 속에서 아버지가 원치 않았던 여성성을 키워나간다는 이미지를 준 거다. 


높은 빌딩에서 내려다보이는 수영장 속의 씨름장도 그런 공간적인 맥락 속에 구성된 건가? 
영 : 그렇다. 씨름장이 있던 그 학교가 부산이었는데 폐교였다. 운동장에다가 수영장을 판 거다.
준 : 그 수영장도 사실 수영장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다. 수영장이라면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재미난 이미지의 장소인데 외려 황무지 같고 썰렁한 느낌을 주면 괜찮을 거라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수영장이 있을 법하지 않은 주변의 건물들이 주는 느낌이 수영장안의 씨름장을 생각하게 했다. 미술적으로 재미나고 싶기를 원하긴 했지만 그게 굉장히 편안하거나 예쁜 공간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조건들과 굉장히 잘 맞아 떨어진 곳이었다.


공간이 협소해서 촬영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준 : 난감했다. 씨름 연습장이라는 곳을 여러 군데 돌아다녀 봤는데 정말 천막 하나 있는 게 다였다. 씨름 연습장이라는 곳이 천막과 샅바, 모래가 다다. 그거 보면서 정말 절망했다. 이걸 어떻게 영화적인 공간으로 꾸며낼 것인가. 그렇게 만들어 놓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결국 다 비어보일 텐데. 그렇다고 또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은 아니라고 봤다. 채워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비어보이지 않는 방법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수영장이라는 곳을 떠올리게 됐다.


화면을 보면 가운데의 이야기는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그 주변은 멈춰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씨름장의 비어보이는 그런 부분들과 맞추기 위한 구도인가?
영 :  비우는 게 이 영화의 정서인 것 같다. <천하장사 마돈나>가 발랄한 영화이긴 한데 무작정 발랄하게 만들면 그것만한 가식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구는 기본적으로 늘 존재론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정서는 쓸쓸한데 이야기적으로 이걸 쓸쓸하게 만들 수는 없고 그럼 이야기는 활발하게 가되 전체적으로 공간들이나 주변의 것들은 쓸쓸함을 담보해야 했다.


호흡이 한 박자 느린 유머도 결국 그런 맥락에서 이해를 하면 되는 건가?
준 : 그렇다. 그게 다 하나의 맥락에서 구성된 거다.


결말부 동구와 아버지가 씨름장에서 만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아버지는 결승전을 준비하는 동구에게 “나 너 더 이상 안 본다” 하고는 손을 잡는다. 그런데 동구는 그 손을 놓아버린다. 그런 걸 보면서 감독님들이 가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했다. 
준 : 우리는 동구와 그의 아버지가 좀 더 좋은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핏줄로 섞여 있기 때문에 가족이다 이런 논리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져서 사람 대 사람이 지켜야 할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자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영 : 나는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났다고 생각을 한다. 그게 넓은 의미에서 보면 행복하게 사는 길이고 그것이 가족이 곧 추구해야할 유토피아가 아닌가 한다. 사실 나는 기본적으로 가부장제가 세습되어 가고 있고 그것에 의해서 굉장히 많은 희생을 요구 당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쾌함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와의 실제 관계는 어떤가?
영 : 어제 아버지가 시사회에 오셨다. 아버지가 어떻게 반응을 할지 걱정을 했다. 사이가 안 좋았는데 이제 노인이 되셨고 나도 이제 30대 중반이 되니까 더 이상 싸우거나 이러지는 않지만 그냥 아무도 화해하지 않으려고 평행으로 가고 있다. 이걸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금처럼 평행으로 지내는 게 서로에게 있어 굉장히 평화롭다는 생각을 한다. 성장기 동안 아버지와 충돌을 하는 게 평행이어야만 했는데 접점을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까 마찰이 생겼던 거다.  


그런 실제적인 경험이 영화 속 동구와 아버지의 관계에 반영이 된 건가?
영 : 동구와 동구 아버지의 관계에 반영이 돼 있다. 그런데 어제는 너무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거 같아서 아버지한테 조금 찔렸는데 영화 잘 보셨다고 하고 돌아가셨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당신 자식이 감독이 되었다는 게 더 중요한 거니까. 엔딩 롤 뜰 때 보니까 일어나서 혼자 박수 치고 계시더라. (웃음)


본인이 아버지라면 영화 속 동구와 동구 아버지의 관계가 바뀌었을까?
영 : 아버지 역할을 한 윤석 선배가 그런 관계를 못 받아들였다. 실제 아버지다보니까 아버지는 이럴 수 없다, 너는 아버지가 안 되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버지다. 그래서 동구 아버지 캐릭터가 약간 더 아버지 같아졌는데 원래는 밑도 끝도 없는 개자식이었다. 윤석 선배 덕분에 아버지 캐릭터가 더 풍부해졌어요. 


또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동구가 아버지에게 얻어터지다가 뒤집기로 날려 버린다. 영화의 터닝 포인튼데 사실 현실에서라면 제도 때문에 그게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런 동구의 행동을 보며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영 :  아버지가 동구를 두드려 팰 때는 굉장히 현실적으로 가다가 동구가 아버지를 집어던지면서 판타지로 간다. 이 부분에 대해서 생뚱맞았다 하는 말을 들었다. 그건 나나 해준이가 모두 가지고 있던 판타지였다.
준 : 굉장히 멀리, 아주 멀리.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멀리 날려 라고 들어도 상관없이 아무튼 멀리 날려. (웃음) <천하장사 마돈나>가 어떤 방점이 있다면 그것은 씨름에서 우승하는 것도 아니고 단 하나 동구가 아버지를 집어 던지는 그 장면 이길 바랐다. 아버지를 집어 던지고 여자가 된다, 라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거다.


거기서 이미 동구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봐도 되나?
준 : 사실은 거기서 이미 영화가 끝났다고 봐도 된다.   

시나리오를 써오다가 연출까지 하게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영 : 그냥 <천하장사 마돈나>가 계기였고, <천하장사 마돈나>가 목표였고 그냥 그것뿐이었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든 사람이라는 생각만 있지 내가 감독이라는 자의식이나 마음가짐은 별로 없다.
준 :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그래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또 시나리오 작가의 불만으로 인해서 감독이 된 것도 아니다. 두 사람 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그것이 구체적인 감독이 되고 싶다는 이유라면 이유다.


감독이 두 명이라 현장 지휘도 특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 : 사사건건 다 충돌했다.
준 : 술술 풀려나간 적이 없다.


어떤 식으로 합의를 보았나?
영 : 시나리오 쓸 때도 늘 싸워왔기 때문에 의견 충돌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연출에 있어서도 사실 비슷한 패턴이었고 비슷한 정도로 싸웠다. 차이가 있다면 시나리오 작업에서는  대놓고 상욕을 하면서 싸우는데 현장에는 스태프들이 있으니까 분열된 모습을 보이면 불안해 할까봐 복화술로 싸우는 방법을 터득했다. (웃음)


시나리오를 쓸 때와 연출할 때의 가장 큰 차이는 그럼 복화술?
준 : 난 촬영 전에 수화를 좀 배웠다. (웃음)
영 : 난 입을 움직이지 않으면서 빠르게 욕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체득했다. (웃음)
준 : 실제로 콘티 북이나 이런 데 메모로 얘기하기도 했다. (글 쓰는 시늉을 하며) 야 이 자식아 (웃음)
영 : 해준이가 이런 거 어때 이러면, 저리 치워 병신아, 이렇게 쓰면서 (웃음)


처음에 생각했던 현장과 직접 맞부딪친 현장은 차이가 있었을 텐데?
준 : 우리가 현장 출신이 아니고 현장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감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 현장에 가기 전에는 되게 긴장을 많이 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믿고 갔다. 현장에서 우리가 해결하기 힘든 난관이 생길 때마다 해답은 시나리오에 있었고 의견 충돌이 생길 때도 시나리오를 보면 답이 나왔다.
영 : 예습을 많이 해야 돌발 상황이 적어질 것 같아서 콘티작업을 나름대로 꼼꼼하게 했다. 영화도 콘티대로 찍었다. 그것 외에 융통성을 발휘할 재주가 우리에겐 없었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은 가지고 있나?
준 : 아무 계획이 없다.
영 : 지금 내가 한 가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건 옛날보다 시나리오를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이제 시나리오를 쓸 줄도 알고 영화도 만들게 됐다. 이 정도인 것 같다.


(2006. 8. 16. <스크린> Photo by 임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