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 극장>이 화제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본 후 “<지구를 지켜라>를 봤을 때 느꼈던 놀라움을 오랜만에 느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확실히 <삼거리 극장>의 독특함은 한국영화사에서 거의 처음 목격하는 종류의 것이다. 뮤지컬, B급, 소머리 인간 미노수 등등. 이와 같은 아이디어와 취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전계수 감독과의 인터뷰는 그런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십분 정도 늦은 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화장실 좀… (5분 후) 유통기한이 지난 만두를 먹어서 속이…
개봉이 계속 늦춰져서 신경 쓰여서 그러 건 아니죠? (웃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결과에 대해서는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고요, 다음 작품에 들어갈 시나리오 생각하며 주로 몸을 만들었죠. (웃음)
그런데 식중독에 걸리시고 말이죠. (웃음)
그러게 말이에요. (웃음) 사실 별로 한 게 없어요. 시나리오도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못했고, 신경만 쓰고 있고 가끔씩 컴퓨터로 관객들 반응을 보고 이렇게 생각들을 하시는구나.
반응들이 어떻던가요?
관객들 평가가 좀 극단적인 거 같아요. 영화가 초반에 지루하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예상한 반응과 예상치 못한 반응은 무엇인가요?
제가 노린 건 영화가 너무 산만해서 영화를 두 번 이상 봐야한다, 역시 이해가 안돼서 한 번 더 봐야겠다는 관객이 있더라고요. (웃음) 그리고 재미를 발견하는 부분이 다 틀리더라고요. 기자들은 소머리 인간 미노수 나오는 부분을 좋아하는데 관객들 중에는 2/3 이상이 소머리 인간 나오기 전까지만 좋아하더라고요. 그 부분을 제일 재미있어 할 줄 알았는데.
소머리 인간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셨나요?
그리스 신화의 미노타우로스에서죠. 거기에 프랑켄슈타인이랑. 원래 소머리 인간 미노수가 시나리오 초고에는 없었어요. 소단(김꽃비)하고 혼령들하고 함께 어울려서 막가는 난장판을 벌이다 끝나는 걸 구상했어요. 근데 거침없이 쭉 밀고 가는 힘은 있는데 입체적이지가 못 하더라고요. 사장이 자살 하려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안 되고. 그래서 엽기적인 극장의 사장이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것 역시 엽기적이고 희비극적인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죠.
감독이었으니까 영화와 관련된 것이었을 텐데 그게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괴수영화 전통이 거의 없잖아요. 그런 선구적인 생각을 장난스럽게 표현하긴 했지만 이와 같은 생각을 조선시대에 했을 감독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 게다가 당시 일본 강점기에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 같은 것도 투영이 되고 하면 웃기면서도 동시에 암울하고 비극적인 면도 있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삼거리 극장>은 처음부터 뮤지컬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나요?
예, 처음부터요. 뮤지컬 영화를 하려고 했던 이유는 2002년에 ‘데빌 돌(Devil Doll)’이라고 영감을 받은 음악이 있어요. 그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서, 장르가 약간 애매한데 고딕아트록, 록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노래도 한 곡에 60분짜리도 있고. 또 노래에 서사가 있어요. 그게 뮤지컬 적으로 들리고. 그래서 그 음악의 느낌을 영화로 하면 좋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뮤지컬 영화가 된 거죠.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뮤지컬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점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요?
한국에 뮤지컬 영화가 없어서 해 보려고 했던 건 아니고 데빌 돌 그 음악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시나리오를 쓸 때는 이게 상업영화의 틀로 만들어질 거라 생각을 못했어요. 뮤지컬에 대한 양식적인 고민을 진지하게 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LJ필름과 작업을 하게 되면서 약간 그런 부담감이 생기긴 했어요.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취향을 많이 타는 영화기 때문에 제작 단계에서 퇴짜를 많이 맞았을 것 같아요.
수많은 거절과 박대를 당했어요. LJ필름이 충무로 제작사 거의 마지막이었어요. <삼거리 극장>은 오랜만에 부활한 본격 뮤지컬 영화라는 무게감은 있는데 시장에 대한 지표는 없는 상태고 잘 만들어야하지만 돈은 많이 쓸 수 없는 딜레마가 있었죠. 이해하겠더라고요. 그러다가 LJ필름이 마지막이 된 거죠. 연락이 바로 와서 가자, 왜 일찍 안 왔냐. (웃음)
영화화되면서 자신이 의도한대로 시나리오 수정 없이 나온 건가요, 아니면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었나요?
이승재 대표님하고 딱 1번 시나리오 회의를 했어요.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상업영화의 틀로 가져갈지 난감해 하셨어요. 대표님은 주로 제 이야기를 듣는 쪽에서 회의를 했고 그 다음부터는 제가 신경을 썼죠. 회사나 그쪽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치장을 신경 쓰지 않은 나만의 걸로 하기엔 투자도 받았고, 제가 스스로 검열을 했어요.
감독님의 색깔이 굉장히 강하게 느껴지는데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그 감성을 잘 이해하던가요?
혼령으로 나오는 배우들은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함께 했던 분이라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다만 그 사람들이 힘들어한 건 몸이 피곤해서였죠. 사실 노래 한곡이 3~4분 정도 되면 그 안에는 수많은 컷들이 들어가잖아요. 또 그 컷 하나를 찍기 위해서는 수많은 컷들을 가야하고. 그래서 노래 한곡을 완성하려면 굉장히 많은 테이크 동안 똑같은 노래를 하면서 연기하기도 힘든데 느낌도 내고 캐릭터도 살려야 되니 배우들이 정말 힘들어했죠. 근데 배우들이 그 점을 못 느끼게 저를 많이 배려를 해줬죠.
김동기 음악감독님의 경우 감독님과 같은 과(서강대 철학과) 출신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1년 선배입니다.
시나리오 초기 단계부터 함께 하기로 얘기가 된 거였나요?
시나리오 초고부터 음악감독님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동시에 음악이 작곡이 됐어요. 스토리에 대한 부분도 음악감독님하고 많이 상의를 했고요. 저보다 훨씬 더 마니아 취향이 강해서 지금 이렇게 완성된 걸 아쉬워해요. 오히려 초고가 더 좋았다고.
음악은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했나요?
데빌 돌에 초점을 맞추고 작업했어요. 영화에 들어가 있는 아홉 곡이 모두 데빌 돌 콘셉트라고 할 수 있지만 아홉 곡이 장르가 다 다르거든요. 그렇긴 해도 데빌 돌의 정수라고 느낄 수 있는 곡은 천호진 선배님이 불렀던 ‘야만의 환영’ 그 한곡밖에는 없어요.
초고 때 9곡이 나와 있었는데 ‘야만의 환영’같은 곡들 일색이었어요. 원래는 스무 곡이 있었거든요. 근데 다 사용했다가는 안 될 것 같아서 반만 넣은 거죠. 다 어두운 것만은 아니고 장난스럽게 어두운 곡도 있고 그런 식이에요.
사실 뮤지컬 영화라고 부르긴 하지만 영화 속에는 호러도 있고, 코미디도 있고, 무대극이나 그림자극도 있고 굉장히 많은 장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처럼 감독님 이력도 굉장히 다채로워요. 영화하기 전에 연극, 춤, 뮤지컬 심지어 평론까지 하셨어요. 원래 하나에 만족 못하는 성격인가 봐요. (웃음)
맞아요. 제가 되게 산만해요. (웃음) 그래서 앞으로도 인물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서 한 인간에 대한 정책을 세우는 그런 영화는 못 만들 것 같아요.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영화에 많은 장르적 요소들이 들어가 있는데 그걸 영화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쇼잖아요. 쇼가 주는 무대화된 스테이지라는 특성을 버릴 수가 없어요. 어떤 방식으로 가든 연극적인 느낌을 줄 수밖에 없고. 그리고 <삼거리 극장> 자체가 연극적인 상황이잖아요. 이질적인 상황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럴 거면 상황 자체를 무대화시켜서 가는 게 판타지란 내용에 걸맞은 형식이란 생각이 들어요. 일상이 판타지가 아니라 정말 판타지 월드에 들어가는 방식이 맞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삼거리 극장>을 준비하면서 참조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스태프들하고 콘셉트를 나눴던 영화는 <델리카트슨 사람들>. 저는 매체가 음악이 됐든, 영화가 됐든 입체적인 하나의 세계관으로 보이거든요.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경우도 그 비주얼 안에 장 피에로 주네가 담으려고 했던 세계관을 가져오려고 했어요. 역설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데 살기위해서 지속적인 죽음이 필요하잖아요. 그게 <삼거리 극장>의 세계관과 닿아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 거죠.
그리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록키 호러 픽쳐 쇼>나 팀 버튼 감독 영화들의 느낌, 너무 적나라해서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런 영화들이 주는 활기나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느낌들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공통점이 없을 수도 있는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음악으로는 가장 좋아해요. 거기에서 유다나 예수가 불렀던 노래의 절묘한 느낌을 천호진 선배가 <삼거리 극장>에서 노래 불렀을 때 가져오려고 했던 게 있었죠.
천호진 씨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참여했었잖아요?
빌라도 역으로 나왔죠.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을 하신 거군요?
아니요, 몰랐어요. 영화 때문에 처음 뵌 날 굉장히 쑥스러워 하시면서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웃음)
천호진 씨가 맡은 우기남 그 배역이 칼리가리 박사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예. 그리고 우기남 감독의 롤 모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름은 남기남 감독에서 빌려왔어요. 극중에서 소머리 인간 미노수가 굉장히 우기는 영화잖아요.
이걸 그렇게 우기남? (웃음)
그렇죠. 심하게 우기죠. (웃음) 원래 우기남 감독은 데빌 돌의 리더인 미스터 닥터라는 사람에서 출발을 했어요. 보컬 스타일도 제가 천호진 선배님 들려드려서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을 텐데 선배님이 그런 힘든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고 소화를 하시더라고요.
소단 역에는 김꽃비 씨를 캐스팅했습니다. 주연으로는 굉장히 새로운 얼굴인데요?
회사에서는 려원 씨를 추천했는데 저는 나이가 어린 배우였으면 했어요. 압구정 스타일이면 안 됐고요. 꽃비는 노래는 좀 못했지만 (웃음) 제가 생각하는 외모적인 느낌에 맞았어요. 키도 작고 동글동글하지만 단단하게 보여야하고 당돌해 보이고 얼굴은 귀엽지만 자기 또래보다 자기가 성숙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애 있잖아요. 거기에 가장 근접한 게 꽃비였어요.
<삼거리 극장>에는 만족을 하나요? 아니면 아직도 아쉬운 점이 많이 느껴지나요?
두 가지 점에서 그런데, 하나는 오프닝 시퀀스 곡을 만들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요. 사람들이 뮤지컬 영화라고 하는데 노래는 언제 나와 그래요. 첫 노래가 영화 시작하고 20분이 지나서 나오거든요. 물론 뮤지컬 영화기 때문에 오프닝 곡이 있어야한다는 건 아니지만 소단을 극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느낌이 조금 더 판타스틱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시나리오 상으로는 있었는데 예산 때문에 찍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엔딩인데 풀이 우거진 로비에서 춤을 추는 거잖아요. 그게 아니고 마지막에는 소단과 혼령들을 극장의 옥상으로 내보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세트를 지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포기하고 대신 그 안에서 해결했죠. 그 안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그런 식의 엔딩이 된 거죠.
(2006. 11. 6. <스크린> Photo by 임아원)
카테고리: Interview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 한국을 찾은 유덕화
유덕화가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은 영화 홍보 때문이 아니다. 제11회 부산 국제영화제의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신인감독과 연기자 발굴에 힘써온 그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한 것. 그래서 이번엔 배우가 아닌 제작자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에게서 현재 홍콩영화가 처한 문제점을 돌파하기 위한 ‘제작자’ 유덕화에 대해서 들었다.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을 수상한 것을 축하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것이 너무너무 기쁘다. 무엇보다 부산 국제영화제가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이라는 부문을 만든 것에 대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새로운 영화인들을 발굴하지 않는다면 영화 전체에 대한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금껏 많은 신인감독과 배우들을 발굴해 키워왔고 앞으로도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메이드 인 홍콩>도 그렇고 11회 부산 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된 <크레이지 스톤>까지 제작자 유덕화는 아시아 독립영화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딱히 갈라서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장르의 영화든지 그것을 보는 사람들을 위해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어떤 감독들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무시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고집해서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에 영화계의 상황이 좋다면 그런 작품들이 운 좋게 계속해서 만들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경우는 영화시장이 축소되었을 때 그런 작품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관객 위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영화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안 그래도 오래전부터 홍콩 영화계는 침체기다. 이런 상황이 제작자로 나서게 된 계기였나?
특별히 홍콩 영화가 침체되어 있어 다시 살리고자 하는 마음에 제작자로 나선 것은 아니다. 영화산업은 부침이 잦아서 잘 될 때도 있고 좀 안 될 때도 있고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노력은 잘 될 때던지 상황이 좋지 않을 때든 언제든지 누군가는 꼭 해야 되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인들 자신이 미래를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지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문제없이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방문은 제작자로 온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 <삼국지-용의 부활>을 찍고 있다. 그 지치지 않는 열정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어렸을 때부터 세계 각국의 영화를 찾아서 많이 봤을 정도로 천성적으로 너무너무 사랑한다. 게다가 운이 좋아서 내가 사랑하는 영화가 일이 되었다는 게 그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나에게 힘을 주는 게 있다면 변함없는 관객들의 사랑, 이것이 지금껏 20년 동안 이 길을 걸어오게 한 큰 힘이 돼주었다.
맞다. 부산 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팬들, 특히 젊은 팬들이 많다.
사실 나도 궁금하다. 그런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나를 알고 나를 좋아할까, 정말로 내 영화를 보고 나를 좋아하는 걸까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한 현상이다. 실례지만 기자 나이가 몇 살인가? 내 영화를 본 적이 있나?
서른 세 살이다. 당신이 데뷔한 <지존무상>부터 <아비정전>, <천장지구> 최근 가장 히트를 한 <무간도>까지 많은 작품을 보았다. 그런데 지금 아주 젊은 사람들이 배우 유덕화를 좋아하는 건 <무간도>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지금 젊은 팬과 기자가 학생일 때 같은 점이 있다면 <아비정전>도 양조위, 유덕화 주연, <무간도>도 양조위, 유덕화 주연이라는 거다. 이걸 다른 측면에서 보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십년이 다시 지나 나를 사랑해준다면 그것처럼 고마운 것도 없지만 다시 보면 새로운 스타가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을 육성하는 일에 더 힘을 쏟는 거다.
사실 요즘에 홍콩의 새로운 감독을 보는 것도 힘들어졌다.
맞다. <아비정전>이랑 <무간도>를 비교해 보았을 때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무간도>의 연출을 맡았던 유위강 감독이 <아비정전>의 두가풍 촬영감독의 촬영보조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의 홍콩 영화계의 상황에서는 이 계보를 이어갈 감독과 배우들의 출연이 많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서 홍콩영화계가 처한 절실함이 느껴진다.
홍콩영화계의 문제점 중 하나가 또 뭐냐 하면,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신인으로 시작해서 유명한 배우가 될 때까지 유지를 해나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시장이 작기 때문에 흥행을 고려하게 될 때 매번 나나 양조위, 주성치, 장학우 등 검증된 배우들만 찾는 경우가 빈번하다. 내가 신인감독들을 길러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신인감독들의 작품을 통해서 신인배우들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2006. 10. 13. <스크린> Photo by 임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