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감독

니시카와 미와는 영화감독이면서 소설가다. 그에게 영화와 소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영화를 만든 후 부족한 이야기는 소설을 통해 보충하고 반대로 소설을 쓰다 이미지의 한계에 부딪히는 묘사는 영화로 풀어내는 식이다. <아주 긴 변명>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먼저 소설로 쓴 후 각색해 영화로 만들었다.

소설가로 이름을 날리는 사치오(모토키 마사히로)는 아내 나츠코(후카츠 에리)가 여행 간 사이 젊은 편집자를 집에 불러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다. 이때 텔레비전 뉴스로 들려오는 아내의 사망 소식. 결혼 관계는 유지했지만, 감정적으로는 메말랐던 두 사람의 관계. 사치오는 나츠코의 충격적인 사망 소식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 젊은 편집자와 좀 더 육체적인 관계를 이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아내의 죽음에 무감각한 날을 보내던 사치오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죽은 친구의 남편을 만난다. 그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다. 바쁜 일상 탓에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자 사치오가 선뜻 나선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아주 긴 변명>에 대한 아이디어를 동일본 3.11 대지진에서 얻었다고 밝힌다. 3.11 대지진은 직접 관련된 이들이나 그렇지 않은 이들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일본의 창작자들에게 이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사건이었다. 이를 두고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뺏긴 일상’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남은 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주 긴 변명>의 한국 개봉(2월 16일)에 앞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내한했다. 개봉에 맞춰 동명 소설 또한 출간(2월 15일)이 예정되어 있어 여러모로 할 말이 많은 인터뷰였다. 인터뷰는 <아주 긴 변명>의 언론시사회가 있던 2월 1일 저녁 시간에 이뤄졌다.

 

<아주 긴 변명>은 일본에서 영화 이전 먼저 소설로 대중에 선을 보였습니다.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게 되셨나요?
3.11 동일본 대지진이 터졌던 2011년 연말쯤이었어요. 많은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뺏기게 된 사건이었죠.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인데 굉장히 나쁜 시기에 이별을 하게 되는 사람들. 그럼 남은 사람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유레루>(2006)를 동명의 소설로 직접 각색하셨죠. <우리 의사 선생님>(2009)에서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 다섯 편을 엮은<어제의 신>이라는 단편집을 내기도 하셨어요. 영화에 못 담은 에피소드를 소설에 반영하신 건데요. <아주 긴 변명>은 소설부터 쓰셨어요.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어제의 신> 당시에는 영화를 만들고 나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소설을 다뤘죠. 반대로 소설을 먼저 쓴 다음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작업을 해야 하죠. 2시간 전후의 상영시간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작업이었어요. 시간의 제약을 두고 써야 할 뿐 아니라 예산까지도 생각해야 했죠. 그러면 쓰고 싶은 것은 많은데 영화를 위해 넣을 수 없는 것들이 생겨요. 그것이 제게는 큰 스트레스이자 딜레마였어요. <아주 긴 변명>은 그에 대한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다하자, 이를 읽는 독자들이 등장인물들 전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 하면서 소설부터 쓰게 된 거죠.

긴 분량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각색 작업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당연히 너무 힘들었죠. (웃음) 실은 소설로 쓸 때부터 영화화가 전제됐기 때문에 오히려 소설을 쓰면서 이거는 영화화할 수 있겠구나 이 장면은 못 찍겠구나, 50% 정도는 예상했어요. 그런 진행 속에 영화로 절대 만들지 못할 설정이나 사연은 소설에서 더욱 깊이 표현했죠. 글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은 영화로 옮겼을 때 과연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습니다.

영화에는 반영하지 않은 소설 속 이야기나 설정 몇 가지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영화와 소설의 시작이 달라요. 소설은 사치오가 대학 때 사귀었던 연인과의 추억부터 이야기가 시작해요. 과거 부분이라 영화에서는 쓸데없는 정보라고 판단했어요. 영화에 나온 첫 시퀀스, 머리를 깎을 때 사치오와 나츠코가 말다툼을 한 후 안 좋은 채 헤어질 때까지 나누는 대화는 소설과 거의 같아요. 영화에 조금 나오는 부분인데요. 아내의 죽음 이후 사치오의 사연을 다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죠. 조감독 같은 어린 여성이 있어요. 그 스태프의 시선으로 사치오를 바라보는 서술 부분이 소설에 있어요. 그 인물이 영화에는 스크린 구석에 있어 눈에 띄지 않는데 소설에서는 그의 눈에 비친 사치오를 소개함으로써 사람이 변해가고 있구나, 서술하고 있죠.

뺏긴 일상이라고 표현하셨어요. 나츠코의 버스 사고 장면을 직접 묘사하지 않습니다. 사고의 흔적만 보여줄 뿐입니다. 3.11 대지진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고 장면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건 아무래도 부담이 되죠?
단순해요. 예산 때문에 그랬습니다. (웃음) 덧붙이자면, 사고 장면 자체의 비참함과 같은 것은 이 영화의 테마가 아니었어요. <아주 긴 변명>은 어떤 사고를 계기로 해서 남겨진 사람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버스 사고와 같은 직접적인 이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감독님 말씀처럼 <아주 긴 변명>은 아내(들)의 죽음 이후 남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생활력이 떨어지는 남자와 아이들이 바로 그들인데요. 그중에서 특히 남편에 주목합니다. 굉장히 공감 갔던 설정인 게 많은 한국 남자는 주변에 여자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거든요. (웃음)
우연히 남자가 주인공일 뿐이지 여자도 이런 상황이면 생활하기 힘들어요. (웃음) 이게 나라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한국과 일본은 남녀 가사 분담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죠. 전통으로 내려온 문화라 여자가 잘못되면 남편이 힘들어하는 식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 담겨 있죠. 아시아라고 해도 한국과 일본과 다르게 대만과 홍콩은 여자가 가사를 하지 않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아주 긴 변명>을 인식하는 접근이 달라요. 홍콩에 프로모션을 갔었어요. 그때 나온 질문 중 하나가 왜 남자를 주인공으로 했냐는 거였어요. 부인이 잘못되면 남자가 비참해지고 그래서 이야기가 드라마틱해진다고 답변을 했죠. 그러자 질문하신 분이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을 짓더라고요. (웃음)

<유레루> <우리 의사 선생님> 등 감독님은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드세요. 특히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남자가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감정선을 구축합니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남자를 충돌시키는 건 유의미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효과적이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요?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말씀하시니까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도 <아주 긴 변명>은 다른 면이 있어요. 말씀하신 충돌이 목적은 아니죠.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정반대되는 사람이 만나서 어떻게 하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 그 과정을 주목하고 싶었어요. 제가 나이가 든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뺏긴 일상으로 삶이 무너져내린다면 어떻게 삶을 이어갈 것인지, 이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관계는 감정을 교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래서 감독님의 영화는 배우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걸 중요시하고 있죠. 배우들에게 그와 같은 미묘한 연기는 어떻게 주문하시나요?
경우에 따라 너무 달라요. 지문이 한 줄인데도 이를 풍성하게 표현해주는 배우가 있어요. 나츠코를 연기한 후카츠 에리가 그래요. 영화의 첫 장면에서처럼 남편과 그렇게 말다툼을 하고 떠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죠. 이후 장면을 보면 나츠코가 야간 버스를 타고 친구와 여행을 가는데 아침이 밝아올 때쯤 혼자 눈을 뜨고 창문 밖을 바라봐요. 시나리오에서 이 장면을 표현한 지문을 딱 한 줄이었어요. ‘창문 밖의 흰 눈을 바라보는 옆모습의 나츠코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지문 하나로는 절대 표현되지 않는데 나츠코가 과연 어떤 마음속 갈등을 가지고 있을까 관객들이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하고 싶었어요. 이에 대해 후카츠 에리와 따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고요. 저는 다만 물리적으로 5초 지난 후에 눈 떠세요, 시선을 저쪽으로 향해주세요, 정도만 요청했어요.

사치오를 연기한 모토키 마사히로는 어떤가요?
반면 사치오를 연기한 모토키 마사히로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다시 말해달라고 하고 미세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설명해주기를 원해요. 물론 누가 더 낫다의 문제는 아닙니다. 잘 이해가 안 된다고, 어렵다고 하면 아주 철저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애기를 합니다. 어떤 표현이 어울릴까 대화를 하며 같이 찾아가는 거죠. <아주 긴 변명>의 마지막에 머리 깎는 장면이 한 번 더 나오죠. 머리 깎는 묘사는 모토키 마사히로 배우가 제안했던 거예요. 소설을 보면 부인이 살아있을 때 미용실 가는 게 싫어 사치오가 아내에게 꿍얼거리는 사연이 있어요. 사치오에게는 세상과 연결된 사람이 부인이었는데 부인이 죽음으로써 세상과의 끈이 떨어진 사람이 되는데요. 그러다가 성장을 하면서 결국에는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머리카락을 자르도록 자신의 머리를 맡긴다는 건 세상과의 관계가 다시 연결된다는 의미인 거죠.

머리 깎는 행위는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인데요. 감독님 말씀 외에도 꽤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고통이란 머리가 자라서 깎는 것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도 들어요. 또한, 남자들이 부인이 없으니까 자기 관리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요. 무엇보다 머리는 혼자서 깎기는 힘든 편인데 그래서 결국 관계가 필요하다는 주제와 이어진다는 인상이죠. 머리 깎는 행위에 특별히 어떤 인상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어떻게 보면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아주 긴 변명>의 소설을 쓰기 전 극 중 인물의 직업 설정을 할 때 남편은 소설가로 잡았죠. 소설가라는 직업은 일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잖아요. 그에 비해 사람의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건 너무 확실하게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고요. 그런 직업적 성격의 반대되는 면을 통해 사치오와 나츠코의 대립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설가 사치오는 아내의 죽음 이후 역시나 함께 목숨을 잃은 아내 친구의 아이들을 돌보게 되죠. 처음엔 소설가로서 일종의 자료 조사 차원에서 맡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이를 통해 소설까지 완성하게 되는데요. 어떠세요, 창작자의 평상시 생활 태도가 곧 작품의 내용과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창작하는 사람이잖아요. 제 안에는 딜레마가 많아요. 이것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이 영화는 제 안에 있는 부끄러움을 보이는 작품이기도 해요. 사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다시 태어난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는 면에 공감하면서 글을 썼어요. 이 작업을 하면서 내가 쓰는 글이, 만드는 영화가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그런 의심에 일이 잘 안 풀릴 때가 있어요. 쓰고 싶은 걸, 만들고 싶은 걸 찾았을 때, 그리고 완성했을 때 살아서 다행이다, 하는 감정을 느껴요. <아주 긴 변명>은 저에게 스스로 고백하듯 쓴 글이에요.

제목이 ‘아주 긴 변명‘입니다. 20년을 함께 산 부인과 관계가 소원해진 남편이 부인의 죽음 후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는 영화인데요. 제목에 ‘변명‘을 넣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거든요. 일본어로는 좀 다른가요?
일본에서도 ‘변명’은 썩 좋은 의미는 아니에요. 심지어 긴 변명이네요. 얼마나 한심해요. (웃음) 다만, 저에게는 이렇게 뭔가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게 살아가는 이유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쓰고 만든 거예요. 제가 사는 것에 대한 이유 차원에서 변명의 의미를 제목에 담은 거죠.

차기 작품은 영화와 소설을 어떤 순서로 진행할지 궁금한데요.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건 한 번 했으니까 이번 같은 방법은 안 할 거예요. 차기작은 영화로 만들 생각인데요.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고 싶어요. 관련해 취재를 하고 있어요.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문서로 만들어 작업한 후에 여기에서 하고 싶은 몇 가지 소재를 영화로 만들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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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22)

<걷기왕> 백승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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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화 감독이 연출한 <걷기왕>은 <족구왕>(2013)의 속편이 아니다. 세계관은 비슷한 면이 있다. 우리가 흔히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재능을 보이는 청춘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걷기왕>의 주인공은 만복(심은경). 어릴 때부터 멀미가 심한 까닭에 각종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가 없어 걷는 데에는 도가 튼 학생이다. 꿈과 열정으로 학생을 지도하는 담임 선생(김새벽)은 만복의 걷기 재능을 살려 경보를 할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평상시 걷는 것과 경쟁으로 걷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만복이 쉬이 경보에 적응하지 못하며 낙오하는 일이 잦아진다. 이는 꿈과 열정이 부족한 만복의 문제인 걸까? 만복 본인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거 아닌가.

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백승화 감독은 <걷기왕>을 만들었다.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기성세대의 자기자랑 격의 충고에 대한 백승화 감독 나름의 응답이다. 이 영화가 품은 메시지처럼 백승화 감독은 의무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연출자가 아니다. 애니메이션을 전공(2006년 계원조형예술대학 졸업)했고 다큐멘터리로 장편 데뷔한 그에게 <걷기왕>은 처음 만드는 극영화다.

느릿하게 걷는 모양새를 닮은 백승화 감독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의 말투와 다르게 영화의 촬영 현장은 꽤 복잡하게 돌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신고식이었던 셈인데 자기만의 ‘걸음걸이’로 무사히 통과한 듯한 인상이었다.

극영화는 단편(<지각생들>(2012) <화목한 수레>(2014))을 제외하면 처음이시죠. 어떻게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인가요?
2013년쯤이었어요. 특별한 계기는 아니었는데 장편 하나를 쓰고 싶었어요. 저예산으로 생각하고 시놉시스를 썼죠. 그후 지금의 제작사(인디 스토리)와 얘기를 했어요. 못 미더워하는 눈치더라고요. (웃음) 처음부터 ‘걷기왕’이라는 제목은 아니었어요. 쓸모없는 것을 잘하는 주인공이 경쟁 세계로 들어와서 펼치는 이야기였어요.

원래는 볼링을 소재로 준비했어요. 그러다 든 생각이 볼링보다 더 쓸데없는 것이면 좋겠더라고요. 다시 생각한 게 오목이었는데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보다 더 쓸모없는 것이 뭐가 있을까. 숨쉬기나 걷기가 있구나. 특히 걷기는 경보가 있으니까 영화로 만들기 괜찮겠더라고요. 제목까지 <걷기왕>으로 정해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기존의 ‘~왕’ 시리즈로 <족구왕>이 있었죠. 그 때문에 <걷기왕> 제목이 부담스럽지는 않던가요?
원래 ‘왕’ 자가 들어가면 임팩트가 있는데 ‘걷기를 정말 잘한다’라고 해서 <걷기왕>이라고 지었어요. 쓸모없는 재능을 생각하다가 숨쉬기도 생각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숨쉬기왕’은 조금 이상하고 ‘걷기왕’이 좋더라고요. 발랄하고 영화의 톤과도 잘 맞고.

<걷기왕>은 경쟁에 매몰되기보다는 뒤처지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그런 주제 의식은 록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다룬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반드시 크게 들을 것>(2010)에서 엿보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나리오 쓸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단편을 찍을 때는 이런 게 재밌을 것 같아서 했어요. <걷기왕>은 좋아하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반드시 크게 들을 것> 만들 때도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좋아하는 걸 많이 넣어서 완성했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걷기왕>과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비슷해요.

이를테면 인물이 그래요. <걷기왕>의 만복이도 그렇지만, <반드시 크게 들을 것>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조금 모자란 느낌이 있죠. 그런 부족함을 기반으로 어떤 계기를 통해 노력하고 각성해서 뭔가를 얻어내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작은 성장을 이뤄내는 이야기로 나아가죠. 그런 면이 닿아 있어요.

세계관은 닿아 있지만, 극 영화인 <걷기왕>과 다큐멘터리인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아무래도 촬영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다큐멘터리를 작업한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더 리얼함을 담아내기 위해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극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이야기를 꾸미기도 하고 장치를 사용하기도 해요. <걷기왕>의 경우에는 내레이션을 활용하는 등 다큐멘터리의 요소를 넣고 싶었어요. 장르의 특성상 다큐멘터리는 여유를 가지고 촬영과 편집을 할 수 있지만, 극영화는 철저한 계산 하에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정리가 돼서 나왔을 때 만족감이 더 크더라고요. 물론 급하게 촬영하고 그런 것들은 힘들었어요.

다큐멘터리도 그렇고 감독님께서는 애니메이션 작업(단편 <잘 자, 좋은 꿈꿔!>(2006))도 하셨는데요. 두 장르는 극영화보다 개인적인 성격이 더 짙어요. 극영화는 집단 작업이다 보니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
개인적으로 혼자 하는 걸 좋아해요. 사전에 준비를 많이 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제일 힘든 건 커뮤니케이션이었죠. 다큐멘터리 작업은 소규모이기 때문에 거리를 둘 수 있어요. 그와 달리 <걷기왕>과 같은 극영화는 배우와 스태프 등 수많은 사람과 소통을 하고 제가 원하는 바를 이해시키고 의견을 듣고 하는 등 주변을 아우르는 부분에서 고민이 있었죠.

그 때문에 극 중 만복이처럼 멀미를 하거나 그러신 건 아니죠? (웃음) 농담이고요. ‘선천성 멀미 증후군’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하신 건가요?
어디든 걸어서 다녀야 하는 주인공이 차를 탈 수 없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선천적 멀미 증후군을 만들었어요.

심은경 배우를 만복이 역에 캐스팅하였습니다. 심은경 배우가 캐릭터를 잘 가지고 논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심) 은경 씨와 아는 사이는 아니었어요. 상업영화에서 인정받은 배우가 이렇게 작은 영화에 왜 참여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어요. 처음 미팅 때 그 이유에 관해서 물어봤어요. 가장 큰 이유는 은경 씨가 자신의 모습과 비슷해서 하고 싶다는 판단을 했더라고요. 편하게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걷기왕> 시나리오를 보게 된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의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았어요.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때라 은경 씨가 어떤 사람일까 관찰을 했죠. 은경 씨에게 만복이를 이렇게 연기해주십사 요구하기보다는 은경 씨의 모습으로 만복이를 연기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싱크를 맞춰가며 작업을 했어요. 좋더라고요. 극 중 만복의 걷는 모습은 은경 씨의 걸음걸이인데 어머님이 촬영장에 오시면 “등 좀 펴고 다녀라.” 그러셨어요. (웃음)

말씀처럼 연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감독님께서 배우의 애드리브를 많이 열어두셨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딱 잘라 말하기 모호한 부분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배우들에게 정확하게 연기를 요구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코믹함을 유발하는 장면은 정서나 호흡이 중요하거든요.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얘기해야 하죠. 다만, 은경 씨 부분의 연기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열어놨어요. 저 나름의 뭔가를 더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어떤 역할에 대해서는 제한을 했죠.

배우들에 따라서는 불편해하는 예도 있었어요. 육상부 코치를 연기한 허정도 배우는 제가 짜인 연기를 부탁드리니까 불편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후에는 애드리브도 할 수 있게끔 열어주려고 했어요. 결과적으로 훨씬 캐릭터가 살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통해 극영화를 처음 연출하면서 공부를 하게 됐어요. 배우가 느낌 감정에 맞게 가는 게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맞더라고요. 그런 감정들을 영화의 콘셉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될 수 있는 대로 지켜주려고 했어요.

그런데도 연출자로서 지켜나가야 할 영화의 ‘톤 앤드 매너’가 있으셨죠?
전체적으로 영화가 동화 같았으면 했어요. 소의 내레이션(안재홍 목소리 출연)을 등장시킨 것도 ‘옛날에 만복이가 살았는데’ 이런 식으로 누군가 읽어주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였어요. 그에 맞춰 연기도 연기지만, 그래픽과 미술과 촬영에서 과장되거나 과감히 생략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보통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저는 거기서 벗어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어요. 후반 작업할 때도 리얼리티에 크게 얽매이거나 하지 않았어요.

우선적으로 심은경 배우가 관객들에게 인지도가 가장 높은 배우이지만, 독립영화를 꾸준히 보아온 이들이라면 수지 역의 박주희(<거인>(2014) <마녀>(2013) 등)와 만복이 담임 선생님 역할의 김새벽(<한여름의 판타지아>(2015) <줄탁동시>(2011) 등) 배우가 굉장히 반가울 듯해요.
수지 역할에 누구를 캐스팅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박) 주희 씨 같은 경우, 무섭고 냉소적인 역할로 많이 나왔었죠. 제가 처음 봤을 때는 윤성호 감독의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2)에서였어요. 제가 메이킹을 찍었는데요. 그 작품에서 주희 씨는 노란머리를 한 고등학생 역할로 꽤 코믹했어요. ‘츤데레’ 같은 성격이랄까, 코믹한 연기도 능청스럽게 잘 하기 때문에 수지 역할에 적역이었어요.

김새벽 배우의 코믹한 연기도 처음 보는 거라 신선했어요.
(김) 새벽 씨는 극 중 역할과 갭이 커서 본인이 엄청 부담스러워 했어요. “왜 저를 캐스팅하셨어요?” 하고 나서는 되게 좋아했거든요. 영화 촬영 후에 “더 B급 영화도 해보고 싶어요.” 그러셨어요. (웃음) 새벽 씨는 만나 보니까 재밌는 분이었고 본인도 다행히 맡은 역할을 재밌어 했어요. 은경 씨를 비롯해 주희 씨, 새벽 씨 등 저는 개인적으로 <걷기왕>의 캐스팅이 굉장히 만족스러운데요. 독립영화를 애정하는 사람으로서 메이저와 인디를 아우르는, 물론 효길 역을 맡은 보이그룹 FT아일랜드의 이재진 배우도 출연하지만, 독립영화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감독님께서는 <걷기왕> 연출의 변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셨죠. “특별한 꿈이 없거나 하고 싶은 게 없는 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꿈은 중요하죠.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이를 이뤄가는 것도 중요하고요.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저도 어렸을 때 그랬지만, 지금은 그에 대한 압박이 더 심한 것 같아요. 너 앞으로 뭐할 거니? 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 하지 않니? 그런 말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를 무능하게 느끼게 하고 자책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생각인데요. 기성세대가 흔하게 ‘노력하면 된다’고 하는 말은 무책임하게 들려요. 그런 생각이 <걷기왕>을 시작하는데 작용하지 않았나 하고요.

그렇다고 해서 막살라는 의미는 아니죠.
뭔가를 하더라도 천천히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꿈을 이루기 위해 고민도 하고 지금 해결이 안 되면 더 생각하고 말이죠. (스포일러 주의!!) 만복이도 경보 시합을 하던 중 마지막에는 걷는 걸 그만두잖아요. 그렇다고 만복이가 인생의 패배자로 끝나는 건 아니죠. 경보가 아니더라도 친구와 도보여행도 하고 그러면서 하고 싶은 걸 하게 되는 건데요. 그래서 제가 만복이 이 친구가 앞으로 어떻게 된다는 걸 결정해주고 싶지 않았어요. 다시 경보로 돌아가 엄청 대단한 선수가 될 수도 있고, 그대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백수가 될 수도 있는 건데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자신이 만족한다면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또한 감독님의 연출자로서의 태도와도 연결될 것 같은데요. 앞으로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극영화를 구별하지 않고 영화를 연출하실 계획인가요?
딱히 생각은 안 해봤어요. <걷기왕> 만들면서 앞으로 영화 못 해먹겠다, 이런 얘기도 했는데요. (웃음) 영화 완성하고 나니까 엄청 뿌듯하더라고요.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반드시 크게 들을 것> 3편을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는데 10년 지나서 기회가 되면 찍고 싶은 생각이고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해요. 일단 지금은 <걷기왕>에 대한 생각만 하려고요.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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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7)

<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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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여왕>은 <1999, 면회>(2013) <족구왕>(2014)에 이은 광화문 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이다. 광화문 시네마는 현재의 청춘들이 맞닥뜨린 현실의 문제를 코믹하게 접근하면서 울림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재능을 보이는 독립영화 창작 집단이다.

<범죄의 여왕>은 그런 제작사의 정체성에 걸맞게 오락물이면서 소외된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견지한다. 그것이 가능한 건 고시원이라는 배경에 엄마라는 캐릭터를 접목한 까닭이다. 아들의 수도요금 120만 원 때문에 서울 신림동 고시원에 상경한 ‘엄마’ 미경(박지영)은 사건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외롭게 ‘열공’ 중인 고시생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그들의 사연을 묻고 관심을 드러낸다. 합격에 대한 욕망은 넘치지만, 이를 분출하지 못한 이들의 어둡고 암울한 기운이 지배하는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엄마의 출현에 분위기가 점점 개선되기 시작한다.

한국영화에서 엄마는 대개 주인공의 가족에 불과한(?) 주변 인물이었고 고시촌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외면받은 공간이었다. 이요섭 감독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엄마 캐릭터와 고시원 배경을 전면에 내새워 <범죄의 여왕>이라는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개성의 산실 ‘광화문 시네마’를 찾아 이요섭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광화문 시네마라고 해서 사무실이 광화문인 줄 알았는데 북촌에 있네요. (웃음)
전고운 대표(<범죄의 여왕>의 쿠키 영상에 등장한 <소공녀>의 연출을 맡았다!) 집이 광화문이어서 처음에는 ‘광화문 시네마’였어요. 그 후에 이쪽으로 오게 됐죠.

<족구왕>으로 좋은 흥행 성적을 거뒀어요. 형편이 나아지셔서 이쪽으로 옮긴 건가요?
<족구왕>은 최소 제작비로 만들어 약간의 수익을 냈어요. 여기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가 수익을 1/N 로 나눴어요. 이 사무실도 1/N 중 하나였기 때문에 월세로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에요.

<범죄의 여왕>에 대해 얘기하려면 <족구왕>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범죄의 여왕> 쿠키 영상을 언급 안 할 수 없죠. 어떻게 장편으로 발전시킨 거죠?
시나리오가 먼저였는지, 쿠키 영상이 먼저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러프한 형태의 시나리오 같지 않은 트리트먼트가 있었어요. 쿠키 영상의 예고편은 그 초안을 바탕으로 <족구왕> 마스터링 들어갈 즈음에 바쁘게 만들었어요. 처음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가 있어요. 어머니가 제 수도요금 50만 원을 해결해주신 적이 있어요. 조폭이 관리하는 오래된 주상복합 건물에서 자취하고 있을 때였어요.

감독님의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이군요?
어머니가 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협의를 하는 과정들이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탐정처럼 얘기하시더라고요. “5분만 있다 들어와. 소리 질러도 놀라지 말고” (웃음) 저로서는 어안이 벙벙했죠. 5분 후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관리소장이랑 커피를 마시면서 되게 차분하고 얌전하게 이야기 중이셨어요. 관리소장 왈, 이 문제가 뭔지 알아보겠다. 이 얘기를 듣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어머니가 “저 사람 관리소장 아니야, 저 뒤에 컴퓨터 하고 있는 애 있지, 걔가 관리자야”

영화 속 관리사무소에서 아랫사람들에게 일 맡기고 등 돌린 채 컴퓨터 하고 있는 관리소장의 모습이 여기서 나온 거군요?
원래 시나리오는 더 장르적이었어요. 지금 영화에서 ‘십시’(고시 2차 시험을 10번 떨어진 고시생을 십시일반 도와야 한다는 뜻)로 나오는 고시생 캐릭터는 원래 시체 처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었어요. 다만 배경이 고시촌이다 보니 극 중 살인을 관객들이 이해할 법한 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십시로 바뀌었죠.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는데 김태곤 감독님(<1999, 면회> 연출)이 초고를 보시고는 엄마와 아들 관계가 중심에 놓이는 이야기니까 엄마가 상경하는 설정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 최초의 기획을 해준 거죠.

특별히 고시촌을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그 당시에 고시촌과 관련한 사건들 얘기가 많았어요. 고시촌에 불을 피워놓고 놀란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면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도 있었어요. 그와 같은 사건들을 계기로 고시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고시촌에 들어갔죠. 지금은 생계유지의 최소한의 것이 갖춰진 공간이 되었어요. 그전에는 고시 합격이라는 꿈을 안고 올라온 사람들이 많았죠.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고시촌을 선택하는 사람들로 바뀌고 있어요.

고시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캐릭터는 대부분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죠, 사법고시 준비하는 아들과 이를 뒷바라지하는 엄마라는 설정은 익숙하죠. 사실 한국에서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사법고시를 보는 건 아니죠. 다만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을 가지고 개천에서 용 났다 식으로 크게 뒤틀어 보여줄 수 있는 게 사법고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를 집대성한 공간이 바로 고시촌이죠. 영화의 배경으로 잡으면 흥미롭겠더라고요.

확실히 현실에서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고시촌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이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합격, 성공에 대한 욕망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요. 실제로는 그렇지 못해 부러 억누르고 있어 답답하고 어두운 느낌이랄까요?
영화 속 공간의 전체적인 룩 자체는 하드보일드를 흉내 냈으면 했어요. 시험공부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공간이잖아요. 그 사람들의 의식이 공간 안에 비주얼적으로 반영이 됐으면 했죠. 물론 영화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고시원은 없어요. 지금 고시원들은 잘 만든 모텔 같아요. 되게 깔끔해요. 영화에서는 하드보일드의 틀에 맞춰 암울하고 원색이 강한 느낌이죠. 저도 그렇고, 영화의 스태프들도 고시생이라고 했을 때 처음 갖는 느낌이 우울함이었어요. 근데 노량진이나 신림동에 가서 직접 조사를 해보니 이미지가 전혀 달랐던 거죠. 오히려 영화 찍는 사람들이 옷차림도 어둡고 고시생 같아요. (웃음) 실제대로 표현해서는 제가 원하는 비주얼을 얻을 수 없었던 거죠.

심정적으로 이해하는 접근을 하신 거군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부모님 마음은 대개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상황일 거예요. 사시와 관련한 전문용어는 잘 몰랐는데 취재를 통해 접하면서 이해할 수 있었어요. 1년 넘게 범죄물 시나리오만 쓴 적이 있어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등을 질 수밖에 없었어요. 1년 뒤에 시나리오를 완성하기로 했는데 작업 중에 집에 누가 아프다고 해도 신경을 쓸 수가 없거든요.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더 다치게 돼요. 그러니까, 너무 맹목적이 되는 거죠. 외롭고 미쳐버릴 것만 같지만,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얻으면 잡고 싶은 걸 못 잡을 것만 같은 심정이 고시생들과 통하는 게 있었어요.

고시촌이 배경이지만, 주인공은 고시생이 아닙니다. 고시생의 엄마, 즉 미경이에요. 감독님의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이걸 영화로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이잖아요.
어떻게 관객들이 공감할 인물을 뽑아낼까, 고민하던 차에 김태곤 감독님이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엄마는 뭘 하고 다녀도 엄마다,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엄마만큼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어디 있냐, 모자 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엄마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놀면 되지 않느냐. 그 얘기에 많이 공감됐어요. 많은 변형을 가해도 캐릭터가 유지될 수 있는 견고한 성 같은 존재인 엄마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예요.

감독님이 각본까지 쓰셨어요. 아무래도 아들의 관점에서 엄마를 바라볼 수밖에 없잖아요. 거기서 오는 한계를 느끼지는 않으셨나요?
미경이 미움받으면 안돼, 미운 아줌마로 보이게 할 수 없어,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포장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고 잘 안 풀렸어요. 시나리오 1고가 나온 후 전고운 대표님이 각색 작업을 하면서 미경 캐릭터가 디테일하게 바뀌었어요. 영화 속에서 미경이 어느 여자에게 이년, 저년 하면서 “말년에 다 외로워지고” 하는 대화가 있어요. 전고운 대표님이 양념을 친 거예요. 엄마이자 여자로 동시에 보이는 역할을 한 거죠. 미경을 연기한 (박)지영 선배가 워낙 귀여운 구석이 많은 여자예요. (웃음) “나 오늘은 더는 힘들어서 못 할 것 같아. 그래도 니가 시키니까 해야지” 하고 열심히 연기한 후에 널브러지면서 이렇게 얘기하세요. “나 오늘 괜찮았어?” 제가 지영 선배를 미경으로 대하는 태도가 편해지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엄마 이미지와 부합했어요.

그런 성격을 알고 처음부터 미경 역에 박지영 배우님을 염두에 두신 건가요?
마음에 두고 있던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돌렸어요. 그중에 지영 선배가 있었죠. 지영 선배는 시나리오 받은 지 하루 만에 연락을 주셨어요. ‘너희 나 좀 보자’ 이런 느낌이었어요. (웃음) 그래서 갔죠. 얼굴에 손을 괴고 앉아 계셨어요. 예전에 <장녹수> 같은 TV 드라마에서 봤던 이미지 때문인지, 어우~ 너무 떨리는 거예요. 보자마자 “나 이거 재밌게 봤어. 근데 감독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그렇게 말씀하는 방식이 미경 같은 거예요. 그날 지영 선배랑 저랑 PD님이랑 셋이 밥도 안 먹고 다섯 시간이나 얘기를 나눴어요.

미경 역에 따로 모델이 있었을 거라는 심증이 드는 게 미경이 입고 있는 옷의 패턴이 <친절한 금자씨>(2005)의 금자(이영애)를 떠올리게 해요.
미경의 캐릭터를 어떻게 맞출까, 엄마인데 너무 여성스럽게 가도 괜찮을까. 전 겁이 나더라고요. 그때 의상을 맡았던 지지연 실장님(<피에타>(2012))이 영화적으로 접근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저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귀향>(2006)에서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기한 엄마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했어요. 고시원의 캐릭터 구성이 진숙(이솜)을 제외하면 모두 남자잖아요. 그래서 미경에게 모종의 성적 긴장감이 드러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붉은 계열에 어깨 정도 노출하는 옷으로 꾸몄죠.

그 때문에 미경 캐릭터가 눈에 띄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 고시생들의 외양이 대부분 비슷해 보여요.
전체 밸런스를 잡을 때 익수(김대현)와 하준(허정도)의 콘셉트가 비슷했어요. 저는 누가 살인범이고 아니고는 인간의 악함이 아니라 상황이 만든다고 생각해요. 익수의 방이 노멀하다면 하준의 방은 노멀에서 시험을 수십 번 떨어진 형태로 반영한 거죠. 하준이 여자였다면 진숙의 방이 되는 거고요. 그래서 익수와 하준의 의상은 거의 비슷해요. 다만 둘 사이의 차이는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었죠. 익수에게는 엄마라는 소통의 창구가 있는 데 반해 그렇지 않은 하준은 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캐릭터 배치는 그렇게 잡아갔어요.

좋은 장르물은 캐릭터와 공간이 조응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잖아요. <범죄의 여왕>이 그런데요. 감독님께서 연출자 이전에 장르 팬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영화라는 생각도 드네요.
장르물을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장르물을 만들되 좋은 게임이 될 수 있으면 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에요. 크든, 작든 확실한 성격을 가진 공간을 배경으로 좋은 장르물을 쓰고 싶어요. 하드보일드 작품을 보게 되면 담배 연기와 금발 머리와 여자와 선글라스와 빨간 립스틱 그런 것들이 등장하죠. 옛것 같은 느낌이 너무 좋아요. 제가 기억하는 영화의 풍광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다만 <범죄의 여왕>의 미경처럼 고시촌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에 마음이 가요. 그럼으로써 공간에 부여하는 엇박자의 느낌으로 접근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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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25)

<본 투 비 블루> 로베르 뷔드로 감독, 데이비드 브레이드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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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 동안 한국 극장가는 음악영화가 강세다. 별의별 음악영화가 다 쏟아지고 있다. <본 투 비 블루>도 음악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감미로운 사랑이 등장하고 그에 맞춰 음악이 화려한 포장지 역할을 하는 소위 아트버스터 계열의 음악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본 투 비 블루>는 트럼펫으로 유명한 재즈 뮤지션 쳇 베이커를 다뤘다. 쳇 베이커의 전기영화이지만, 그의 평생을 두루 살피는 것이 아니다.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통하며 명성을 날렸다가 마약으로 몰락한 1960년대를 중심에 두고 그때 만난 연인 일레인(카르멘 에조고)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재기를 모색하는지 주목한다.

‘비포’ 시리즈를 제외하면 그동안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었던 에단 호크는 <본 투 비 블루>에서 쳇 베이커 역할을 맡아 인생 연기를 펼친다. 직접 트럼펫을 연주하고 무엇보다 쳇 베이커의 대표곡 중 하나인 ‘My Funny Valentain’을 부르기도 하는데 우와~ 목소리와 분위기가 시쳇말로 죽여준다.

그러니까, <본 투 비 블루>는 음악을 이해하고 재즈에 정통한 이들이 아니면 도달하기 힘든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를 연출한 이는 캐나다 출신의 로베르 뷔드로 감독이다. 그리고 음악을 감독한 이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데이비드 브레이드이다. 이들은 <본 투 비 블루>가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한국을 찾았다.

로베르 뷔드로와 데이비드 브레이드가 함께 한 인터뷰 자리는 조화가 중요한 재즈 연주처럼 부드러우면서 잘 정돈된 느낌으로 진행됐다. 질문을 던지면 누구랄 것 없이 먼저 각자의 답변을 듣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더하는 식이었다. <본 투 비 블루>가 이뤄낸 성취는 상당 부분 로베르 뷔드로와 데이비드 브레이드의 협업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쳇 베이커의 죽음을 다룬 단편 <쳇 베이커의 죽음들 The Deaths of Chet Baker>을 2009년에 연출하셨죠. 특별히 쳇 베이커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로베르 뷔드로) 예전부터 쳇 베이커의 음악과 재즈의 팬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모순된 삶이 매력적이었어요. 오클라호마 농장 출신이었는데 나중에 LA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 되었죠. 쳇 베이커의 수수께끼 같은 매력과 성공과 실패를 오가면서도 재기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자아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로베르 뷔드로 감독님과 데이빗 브레이드 음악감독님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로베르 뷔드로) <드림 레코딩 Dream Recording>(2004)은 내가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찍은 단편입니다. 1950년대 재즈 신을 다룬 흑백영화인데요. 여기에 참여할 대중 뮤지션을 찾다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데이비드 브레이드를 만났어요. 데이비드 브레이드는 당시에 음악 학교를 졸업하고 밴드와 함께 첫 공연을 시작하던 중이었어요. 캐나다의 ‘글로벌 메일’이라는 신문에서 데이비드 브레이드의 공연 소식을 접하고 찾아갔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관련한 얘기를 나눴죠.

(데이비드 브레이드) 로베르 뷔드로 감독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재즈에 관한 관심이 깊었어요. 무엇보다 진실하더군요. 직감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드림 레코딩>에 참여할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고 오래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서 승낙했어요.

(로베르 뷔드로) <드림 레코딩>을 마치고 나서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함께 일하자고 말을 해둔 상태였죠. <본 투 블루>는 영화의 성격상 뮤지션의 힘이 필요한 작품이었어요. 적절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안을 했고 데이비드 브레이드는 이번에도 오래 생각하지 않고 참여해줬죠. (웃음) 역시 호흡이 잘 맞더군요.

쳇 베이커 음악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였나요? 

(로베르 뷔드로) 쳇 베이커는 1988년에 사망했어요. 저는 그 이후에 접했어요. 원래는 밥 딜런을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관심이 재즈로 옮겨가면서 쳇 베이커를 알게 됐죠.

(데이비드 브레이드) 제가 처음 산 CD가 쳇 베이커 앨범이었어요. 쳇 베이커가 흰 셔츠를 입고 있는 커버가 너무 멋진 앨범이었죠. 수소문해서 흰 셔츠를 구해 입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어요. 앨범의 첫 트랙이 ‘오버 더 레인보우’인데요. <본 투 비 블루>에도 등장을 하죠. 저에게 <본 투 비 블루>는 너무 특별한 영화입니다. 쳇 베이커의 리드미컬하고 한편으로 멜랑콜리한 정서는 제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저에게 쳇 베이커는 한마디로 재즈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음악감독으로서 <본 투 비 블루>에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데이비드 브레이드) 영화음악은 이야기를 전개할 때 활용되는 중요한 수단이죠. 곡이 가지고 있는 무드나 가사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비언어적인 도구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본 투 비 블루>에 사용한 음악을 선곡하고 나서 이걸 어떻게 다듬고 바꿔서 감독님이 가지고 있는 비전에 맞출지 고민했어요. 공연 실황에서 느낄 수 있는 라이브함보다는 이야기를 끌고 갈 때 도움이 되는 운반책의 역할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에단 호크는 <본 투 비 블루>에 출연하기 이전에 ‘비포’ 시리즈를 연출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쳇 베이커 영화를 준비했다죠. 그와 같은 배경을 고려해서 에단 호크를 쳇 베이커 역할에 캐스팅했나요?

(로베르 뷔드로) 시나리오 쓸 때부터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에단 호크를 쳇 베이커 역할로 생각했어요. 제안하자마자 응해줘서 기뻤습니다.

극 중 에단 호크는 실제로 노래도 부르고 트렘펫 연주도 해요.

(로베르 뷔드로) 노래는 뉴욕에서 보컬 코치에게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에단 호크가 워낙 특색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게 정말 좋았어요.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의 영화지만, 쳇 베이커의 연주와 노래를 재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오리지널 하기를 바랐어요. 쳇 베이커의 음색과 상관없이 에단 호크의 특징을 잡아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요청했어요. 흉내가 아니라 에단 호크의 것으로 하되 쳇 베이커가 연상될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드) 에단 호크는 촬영 전부터 8개월 동안 개인지도를 받았어요. 연주의 기본을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본 투 비 블루>의 OST에 실제 연주자로 부분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트렘펫은 굉장히 어려운 악기에요. 20년 정도 연습해야 겨우 들어줄 수 있는 수준인데요. 영화 속 대부분의 연주 장면은 전문 연주자의 것이고 에단 호크의 입 모양을 맞추는 방식으로 연출했습니다. 다만, 극 중 목욕탕에서 트렘펫을 연주하는 부분은 에단 호크가 직접 했어요. 이상적인 재즈 연주는 오리지널에, 이를 연주하는 뮤지션의 색깔을 덧입히는 것인데요. 그걸 에단 호크가 해냈습니다.

우리가 재즈라고 할 때 먼저 떠올리는 건 오리지널에 얽매이지 않는 ‘즉흥성’인데요. 재즈와 다르게 영화는 규모가 크다 보니 사전에 미리 계획하는 게 중요하죠. 그 때문에 재즈의 즉흥성을 영화적으로 살리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로베르 뷔드로) <본 투 비 블루>가 재즈의 톤을 가지고 있기를 바랐어요. 시나리오 집필 단계부터 <본 투 비 블루>를 전형적인 전기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특정한 전기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프리프러덕션 단계에서 이미 음악 작업을 끝내놓은 상태였어요. 그에 맞춰 촬영을 진행했기 때문에 제가 원했던 톤을 음악을 통해 잡을 수 있었어요. 편집 단계에서도 특정한 무드에 맞추기 위해 녹음해놓은 음악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했어요.

질문 주신 즉흥성 부분은 이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에단 호크와 이 영화에 대해 상의를 많이 했어요. 그가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서 추가했어요. 그래서 영화에는 약간의 오버 밸런스의 느낌이 있는데 그것이 재즈의 즉흥성과 맞아 보였어요. 촬영의 경우, 특정한 숏보다는 핸드헬드로 자연스럽게 인물들을 따라가 달라고 요청했어요.

(데이비드 브레이드) <드림 레코딩> 당시 먼저 로베르 뷔드로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면 제가 거기에 맞춰 음악 작업을 했어요. <본 투 비 블루>는 촬영 전에 미리 음악을 선곡하고 녹음을 끝냈지만, 그 전에 감독님이 길이는 어떻고 포인트는 어디에 줘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의견을 주셨어요. 완전히 자유로운 상황에서 작업을 한 건 아니었지만, 감독님이 원하는 바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어요. 오히려 그런 작업 방식이 <본 투 비 블루>를 더욱 진짜 같은 분위기의 음악영화로 만들었어요.

영화의 도입부가 인상적이더군요. 쳇 베이커가 이탈리아 루카의 감옥에 있는 1960년대 장면을 컬러로, 쳇 베이커가 일레인과 사랑을 나누는 1950년대를 흑백영화로 촬영했어요. 쳇 베이커의 현재와 과거가 마치 꿈인지 현실인지,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사실적인지 몽환적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더군요. 그와 같은 방식이 오히려 해석의 여지를 열어놔서 감독과 관객이 함께 재즈를 연주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 것 같았요. 

(로베르 뷔드로) 쳇 베이커가 이탈리아에 있던 1960년대 당시 이탈리아의 영화 관계자가 그에게 영화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그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실제로 찍었다면 어땠을까 상정해서 찰리 카우프먼(<아노말리사> <시네도키, 뉴욕> 연출 및 각본, <이터널 선샤인> <존 말코비치 되기> 기획 및 각본 등) 영화와 같은 느낌으로 <본 투 블루>에 집어넣었어요. 그와 같은 부분이 재즈의 즉흥성에 부합하는 것 같아요.

마틴 스콜세지의 <분노의 주먹 Raging Bull>(1980)은 제일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에단 호크와 이 영화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 사람의 전기영화이지만, 전형성을 탈피한 것으로 유명하잖아요. <분노의 주먹>에서 제이크 라모타(로버트 드 니로)는 젊은 여인 비키를 두고 동생인 조이(조 페시)와 일종의 삼각 관계를 형성합니다. 이에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본 투 비 블루>에서 쳇 베이커를 일레인과 그녀를 닮은 전 부인 제인(일레인을 연기한 카르멘 에조고의 1인 2역) 사이에 두고 삼각 구도를 만들어 이야기를 구성했죠.

1950년대를 흑백으로 가져간 건 사진작가 윌리엄 클라크슨의 흑백 사진을 참조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의 사진은 1950년대 재즈 신의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포착하고 있죠. 또한, 쳇 베이커는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쿨한 인물이었어요. 그와 같은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과거는 흑백으로, 현재는 컬러로 가져가 스타일리쉬하게 만드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하는 판단이었죠.

로베르 뷔드로 감독님은 현재 데니스 루헤인 원작의 <Consumers>를 준비 중이시라고요?

(로베르 뷔드로) 몇 가지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Consumers>는 데니스 루헤인의 단편이고 범죄소설이에요. 1940년대 배경의 스파이 스릴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게 <본 투 비 블루>와는 연관이 있어 보이네요. 샬럿 베이더라고 카바레에서 노래하는 싱어인데 이중첩자입니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은행강도 이야기도 제안을 받았어요. 무엇이 먼저 들어갈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드 음악감독님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데요. 영화음악 작업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데이비드 브레이드) <본 투 비 블루>를 하기 전까지 재즈는 언더그라운드 세계이고 그들만의 리그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이 영화가 재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줬어요. 앞으로 음악 활동을 계속해나갈 건데 재즈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단순화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대개 대중화라고 하면 단순화하는 것을 연상하는데 로베르 뷔드로 감독님이 <본 투 비 블루>를 통해 성취한 것처럼 재즈의 특징을 완벽하게 살리면서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을 하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NEXT plus
(2016.5.30)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

insiderdirector

대담일시: 2016년 1월 22일(금)
대담: 우민호 감독, 영화평론가 허남웅
기록 및 정리: 민병현, 김홍윤

* <내부자들> 및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허남웅(이하 “허”)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하 “디 오리지널”)>이 오늘(1월 22일)로 관객 190만 명을 넘었다. <내부자들>은 9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렇게 많이 관객이 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권력층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관객들은 이 영화로 하여금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우민호(이하 “우”)  권력층의 비리나 치부를 드러내는 영화는 이전에도 많이 나왔다. <추적자> 같은 드라마도 있었고. 뉴스만 봐도 늘 나오는 이야기지 않나. 단순한 사회고발성 영화였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관객들이 봤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주연배우였던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의 힘이 컸다고 본다. 모두 느와르 장르에 잘 어울리는 배우들인데, 그래서인지 범죄영화로 보신 관객분들이 꽤 많더라.
윤태호 작가의 원작은 한 깡패의 복수같이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현실 정치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원작을 영화화하면서 그런 사회적인 문제보다는 개인의 욕망에 초점을 맞춘 느와르물로 만들고 싶었다. 욕망이 가득한 개인들의 치열한 경쟁이랄까. 관객분들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욕망을 자신에게 투영시켜 보는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누구는 안상구(이병헌)에게, 누구는 우장훈(조승우)에게, 누구는 이강희(백윤식)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서 보는 재미 말이다.

  <디 오리지널>을 개봉하는 것은 감독의 의도였나
우  배급사(쇼박스)가 제안했다. 사실 <내부자들> 개봉 이후 많은 부분이 편집되어 나도 그렇고 배우들도 아쉬워했다. 그래서 블루레이로 출시하면서 디렉터스컷을 충실히 담아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감사하게도 쇼박스가 먼저 제안을 해줘서 한을 풀었다.(웃음)

허  <내부자들>에 비해 러닝타임이 50분 길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 오리지널>에 담지 못한 아쉬운 부분이 있나?
우  신체가 절단되는 부분을 공들여 촬영했는데 <디 오리지널>에서도 편집되었다. 그 장면이 포함되었다면 제한상영가가 나왔을 것이다.(일동 웃음)

허  <내부자들>에 빠진, 안상구가 언론과 인터뷰하는 <디 오리지널>의 첫 씬을 보면 안상구는 영화광이다. <내부자들>은 결국 한 개인이 권력을 상대로 반전을 설계하는 내용인데, 그래서 안상구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설정이 설득력을 얻는다.
우  <디 오리지널>에서 가장 좋아하는 씬이 첫 씬과 마지막 씬이다. 두 씬은 합쳐서 8분 가량 되는데, 일란성 쌍둥이 같은 장면이다. 카메라 워킹과 조명, 등장하는 장면도 비슷하다. 하지만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러닝타임을 맞추면서 두 씬 모두 드러냈다. 마지막까지 살리고 싶어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이것 때문에 역류성 식도염까지 걸렸다.(웃음) 사실 상업영화에서 8분이면 긴 분량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앞선 두 작품이 상업적으로 성공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내부자들>은 철저히 상업적으로 가야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내부자들>이 많은 사랑을 받아서 <디 오리지널>로 이 두 씬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웃음) 이 두 씬은 이병헌, 백윤식도 좋아하는 씬이었다. 백윤식 배우도 마지막 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을텐데 본편에서 편집되었으니 얼마나 섭섭하셨겠나.

허  안상구가 영화광이라는 설정은 각색까지 담당했던 감독이 영화광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독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영화를 <내부자들>에 어떻게 녹여냈다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예컨대, 안상구의 헤어스타일은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 나오는 로버트 드니로를 떠올리게 한다.
우  맞다. 평소 좋아하는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을 숨기지 않았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좋아해서 안상구의 올백 헤어스타일은 <케이프 피어>(1992)에서 착안했다. 배우가 연기할 때 인물의 성격과 대사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의 눈에 보이는 의상과 헤어스타일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인지 이병헌도 처음엔 당혹스러워 하더라. “아니 이렇게까지?”하면서.(웃음) 하지만 (손목이 잘린 후)나이트클럽 조끼를 입고 올백의 헤어스타일을 한 후 이병헌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자기화했다.
이병헌은 <달콤한 인생>(김지운, 2005)에서도 건달을 맡았었는데 굉장히 진지하게 연기했다. 그것이 서정적인 느와르물에 잘 맞았지만, 나는 <내부자들>의 안상구는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 등장하는 건달의 모습이길 바랬다.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 나오는 건달들은 항상 턱을 들고 말한다. 상대를 깔보고 무시하듯이. 이병헌은 워낙 얼굴 각이 좋아서 그게 잘 어울렸다.(웃음) 본인도 그런 모습에 만족했던 것 같다.

허  첫 작품 <파괴된 사나이>(2010)를 보면 감독님이 상당한 영화광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기차씬을 보면서 <천국과 지옥>(구로사와 아키라, 1963)이 떠오르고. (우: 맞다.) 그런 감독의 취향이나 영화적 방법론을 한국적으로 변형했을 때 잘 맞아떨어진 것이 <내부자들>이 아닐까 한다.
우  솔직히 고백하면, 앞선 두 작품(<파괴된 사나이>, <간첩>(2012))은 내가 봐도 후지다.(일동 웃음) 두 편 이후 영화를 만드는 태도가 달라졌다. 첫 작품은 신인이라 시나리오대로 찍는데 급급했다. 막상 완성하니 시나리오만큼 나오지도 않았고. <간첩>은 2012년 추석에 개봉했는데,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처참히 깨졌다. 이병헌에게 한이 맺혀서 <내부자들>에 캐스팅했다. 망해도 같이 망하려고.(일동 웃음) 농담이고, 이병헌이라는 배우와는 꼭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내부자들>의 경우, 투자사와 제작사에서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제공해주었다. 우선 배우 섭외가 잘 되었다. 배우 캐스팅이 잘 되면 감독에게 힘이 실리기 마련이다. 감독을 믿어준다는 뜻이니까. 충무로는 보통 감독에게 세 번의 기회를 준다는 정설이 있다. 세 번째 작품마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면 기회가 또 오지 않는다. 그래서 죽기살기로 찍었고, 예산이 초과되더라도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찍고 싶은 것들을 다 찍었다. <내부자들>은 국내 최고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참여했는데, 이런 분들과 영화를 만들어서 흥행하지 못한다면 정말 영화계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늘 ‘후지게 찍지 말자’고 강조했다.

허  두 작품의 실패가 아무래도 큰 상처로 남았을 것 같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 원작에는 없는 우장훈 검사의 캐릭터를 만든 것도 그런 상처에서 비롯되었다. 우 검사에 나 자신을 투영했다고 할까. 영화에서 우 검사를 움직이는 힘은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이다. 나 역시 이 작품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 검사에 애정을 많이 쏟았다. 조승우씨가 영화출연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가 “왜 우장훈의 성이 ‘우’씨인지 아느냐. 나를 믿고 같이 가자.”고 설득했다.(웃음)
허  성은 감독의 성에서 가져왔고.. ‘장훈’은 어떻게 만들었나?
 장훈 감독의 장훈이다.(웃음) 장훈 감독과 친한데, 사석에서 젠틀하고 멋진 분이시다. 이름을 뭐로 할까 고민하던 중 ‘장훈’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힘이 느껴져서 결정했다. 장훈 감독에게 말한 적은 없고, 여기서 처음 밝히는 것이다.(일동 웃음)

허  영화광적인 면모도 그렇지만, <내부자들>에서는 감독이 좋아하는 장르적 취향도 많이 들어간 듯하다.
  스릴러 소설가 존 르 카레를 정말 좋아한다. 특히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 얇은 소설인데 구성이 무척 치밀하다. 주인공이 초반에 겪는 상황이 마지막에 이어지는 수미쌍관식 엔딩을 <내부자들>에 대입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토마스 알프레드, 2011)도 ‘존 르 카레’의 소설 원작인데, MI6의 회의 장면이 아우라가 너무 멋있어서 조국일보 편집회의 씬에 가져왔다. 실제 신문사 편집회의는 그러지 않을텐데, 과장과 비약을 통해 언론사의 편집회의가 마치 보안이 철저한 정보부의 회의처럼 음습한 느낌을 주자고 했다. 분량 때문에 본편에서는 빠져 그 씬에 참여한 배우분들게 죄송스러웠는데, <디 오리지널>로 관객분들게 보여드릴 기회가 있어 다행이었다.

  <내부자들>은 읽을 수 있는 지평이 무척 다양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 측면을 흥미롭게 봤는데 웹툰 원작, 색상, 배우들의 대사다. 먼저 원작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부자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웹툰 원작의 힘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원작은 결론이 나지 않는데, 이것이 영화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궁금하다. 
우  원작의 구성이 탄탄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앞서 밝혔듯이, 나는 등장인물들의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그것이 누아르, 로드무비, 그 어떤 형식과 장르라고 해도 원작 자체가 현재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그럴싸하게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작의 결론이 없다는 것은, 연출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원작 웹툰이 만약 대형 포털에서 연재되었다면 <내부자들>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배우 캐스팅이 안맞네, 왜 니가 감독을 하냐… (일동 웃음) 다행인 것은 웹툰이 찾기 어려운 곳에서 연재되었다는 것이다. 보라는 건지, 보지 말라는 건지.(일동 웃음) 윤태호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었고, 미완결이었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다.

허  색감 역시 흥미롭다. 개인들의 엄청난 욕망이 충동하는 이야기다 보니 색감이 중요했을 것이라 본다. 특히 이강희와 안상구가 다투는 씬에서 건물 밖에서 배우 얼굴에 빛이 번뜩거리는 장면은 <현기증>(알프레드 히치콕, 1958)이 연상됐다.
 촬영감독 아이디어였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것이 사람들의 울렁이는 욕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백윤식과 이병헌, 두 배우가 그런 강렬한 빛을 버텨줬기 때문에 과하지 않고, 어색하지 않게 표현될 수 있었다.
허  안상구의 의상도 눈에 띤다.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건달은 정형화된 ‘깡페룩’(일동 웃음), 블랙이나 그레이톤의 양복이 아닌 무척 칼라풀한 옷들을 즐겨 입는다.
 조상경 의상감독에게 의상을 화려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조 감독은 자칫하면 의상이 튀어서 영화가 뜰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 걱정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던게,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그 자체가 미장센이다. 무슨 옷을 입든 어떤 장소에 있든, 배우가 중심을 잡아주니 어색하거나 의상이 겉돌지 않을 수 있었다.

 <내부자들>은 등장인물의 대사가 잘 살아 있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 하자.”, “대중은 개돼지다.” 주옥같은 명대사들이 많다.(일동 웃음) 특별히 조사한 부분인가?
 대부분 내가 직접 쓴 것들이다. 이 영화는 말로 죽이고 살리는 이른바 ‘구강액션’이기 때문에 대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물론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도 있고 각색한 것도 있다. 윤태호 작가의 대사는 함의가 있고 깊이가 있는데, 웹툰이라는 매체는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스크롤 올려서 보면 되지만 영화는 한번 지나가면 끝이다. 그래서 “대중은 개돼지다”라는 대사와 “울고 싶으면 울 거리를, 씹고 싶으면 씹을 거리를, 화내고 싶으면 화낼 거리를 던져주면 된다”라는 이강희의 대사 역시 쉽게 풀은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는 가이드로만 참고하고 자유롭게 즉흥연기도 많이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오는대로 하자고 말이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하자”는 대사와 안상구와 우장훈의 모텔 화장실 씬 애드리브도 그렇게 나온 것이다.(웃음)

 안상구가 이강희 손을 자르면서 “이제 글 쓰지 말고, 남은 손 똥 닦는데나 쓰라”는 대사도 인상 깊었다.
우  돌이켜보니 영화에서 똥 얘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일동 웃음) 하지만 <광해, 왕이 된 남자>나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느낀 것이 있다. 이병헌이 극중 똥을 싸면 영화가 성공하는 것 같다.(일동 웃음)
관객분들이 안상구와 우장훈의 모텔 씬을 좋아하시는데, 그 씬은 “후레쉬한 소주 사오라”는 대사까지만 시나리오에 있고 나머지는 전부 애드리브였다. 원래는 모텔방에서 얼굴만 약간 보이는 화장실이었는데, 이병헌이 기왕 하는 것 제대로 하자는 제안을 해서 급하게 전신이 반투명으로 보이는 모텔을 다시 섭외해 촬영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톱스타인데 자기를 철저히 내려놓는 모습, 어떻게 하면 관객들의 반응이 좋을지를 아는 정말 영리한 배우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허  즉흥연기라는 것은 배우 자신의 개인기는 물론이지만, 결국 상대방과의 ‘케미’가 중요한 것인데 그런 점에서 이병헌과 조승우의 호흡이 무척 좋았다. 사실 두 배우의 필모를 비교해보면 전혀 다른 성격,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내부자들>에서 비슷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맞다. 영화를 기획할 때 우장훈과 안상구에게서 배다른 형제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둘다 시골 출신이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하고. 워낙 연기가 좋은 배우이기도 하고,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이해했을 뿐 아니라 연기에 대한 몰입도도 좋아서 조승우와 이병헌의 ‘케미’가 시나리오 이상으로 드러날 수 있었다.
허  안상구와 우장훈이 배다른 형제라면, 안상구와 이강희는 왠지 부자관계를 연상시킨다. 예컨대 사우나 씬에서 이강희가 안상구에게 “전문대학은 나오라”는 조언을 한다. 이강희와 우장훈, 안상구가 일종의 가족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우나 씬의 경우, 안상구는 이강희를 믿고 따르는데, 이강희는 안상구를 철저히 자신의 ‘개’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강희의 흰 피부와 안상구의 구릿빛 피부를 대비시켰다. 이 장면 역시 <내부자들>에선 편집되었다. 이병헌의 경우 그 씬을 위해 6시간 동안 문신을 그렸는데.. 편집하면서 너무 미안했다.

허  인터뷰 초반에 언급한 백윤식의 편집 부분도 그렇고 여러 모로 감독은 미안한 일이 참 많은 자리인 것 같다.
 감독의 운명인 것 같다.(웃음) 하지만 흥행이 잘 되면 미안한 마음이 수그러든다. 배우와 감독 모두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직업이다보니 결과가 좋으면 힘든 과정들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다. 보통 개봉 첫 주 관객수로 영화의 흥행여부를 점칠 수 있다. 첫 상영을 하고 주말에 배우들과 함께 관객 인사를 하는데, 첫 주에 기대만큼 흥행이 되지 않으면, 그 자리가 정말 불편하다. 처음 두 영화로 충분히 그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일동 웃음) 이후로 그런 자리는 다시 갖고 싶지 않았는데, <내부자들>은 첫 주에 2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서 뿌듯했다. ‘관객인사가 이렇게 화기애애한 것이구나.’를 처음 느꼈다.(일동 웃음)

허  흥행의 비결 중 하나로 이 영화가 현실과 다르게 해피엔딩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는 분석도 있다. <내부자들> 마지막에 우장훈이 변호사 사무소를 차리고 간통을 한 고객과 전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뒷 배경으로 한강 넘어로 국회가 보이는데, 결국 우장훈이 권력의 ‘내부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해피엔딩이라고 봐야하나
우  관객들이 판단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들은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는 그 순간만 정의로운 사람으로 각인되지 제대로 평가받고 성공하는 사람이 없다. 우장훈 역시 방법은 틀렸지만 결국 검사로서 신의를 지킨 것이다. 그렇게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직을 나왔을 것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상상해보자면, 우장훈도 장필우(이경영)처럼 정계 입문에 대한 러브콜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필우처럼 될까봐 포기한 것이다.

허  민감한 내용을 다루면서 사회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았나
우  인터넷에서 관객의 반응을 많이 읽어보는 편이다. <간첩>의 경우 욕을 엄청나게 많이 먹었다.(웃음) 그리고 정치적 이슈로 엮어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내부자들>은 <간첩>보다 훨씬 예민한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데, 이상하게도 정치적인 해석은 거의 없더라. 오히려 작품 자체가 여성관객들이 보시기에 불편한 장면이 많은데, 권력을 가진 자들의 추악한 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허  이례적으로 정치인들의 영화감상평이 화제가 되었다. 좋게 평가한 분들도 계시고, 정치를 너무 어둡게만 그렸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분도 계시다.
 어떤 반응이든 감사하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봐주셨지 않나. 그런 감상평이 결과적으로 홍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웃음) 영화는 결국 영화다. 그리고 과장이다. 영화는 우리 사회를 보는 볼록렌즈라는 말도 있는데, 각자가 가진 생각과 취향만큼 보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에 대한 느낌은 모두 다를 수 있다.
사실 나도 언론사 논설위원이 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권력과 결탁해 무시무시한 일을 꾸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지 않고 오히려 손을 잡았을 때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그렸을 뿐이다. 한 일간지 칼럼에서는 ‘영화의 내용은 과장 되어 있으니 다소 억울한 부분은 있다, 하지만 대중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나한테 당신이 언론인으로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 날선 감시를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즉답을 피할 것이다’라고 하더라. 그 정도로만 영화를 봐주시면 너무 감사하다.
영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 영화를 가지고 놀기를 바랬다. 극장에서 나와서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로 말이다.

 

영화천국
2016년 3,4월호

<감독 미카엘 하네케> 이브 몽마외르 감독

yvesmontmayeur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의 작업 방식에 대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궁금해한다. 하네케는 극 중 인물의 처지를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뜨리며 관객의 감정을 얼어붙게 하는 재주(?)를 가진 감독이다. 속된 말로, 영화가 ‘쎄’다. 그래서 배우를 가축 취급하듯 심하게 몰아붙여 자신이 의도한 바를 100% 이뤄내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솟구친다. 그뿐인가, 아이의 악마성을 건드리는 영화의 촬영 현장에서 아역 배우들과는 어떻게 소통할지도 궁금하다. 조그만 심기를 건드리면 역정부터 내는 고약한 할아버지 같은 타입일까?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를 보면서 나처럼 선입견을 품었다면 <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꽤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다. 프랑스 출신의 이브 몽마외르 감독이 연출한 <감독 미카엘 하네케>에는 <베니의 비디오>(1992)부터 <아무르>(2012)까지,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현장이 꼼꼼히 담겨 있다. 장-루이 트린티냥, 줄리엣 비노쉬, 베아트리체 달, 이자벨 위페르 등 그와 작업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감독으로나 인간적으로도 최고라고 입에 침이 튀도록 칭찬한다. <하얀 리본> 현장에서 촬영 막간 동안 아역 배우의 재롱에 할아버지 미소를 짓는 미카엘 하네케의 면모를 보고 있으면 배우들의 칭찬이 그저 말치레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브 몽마외르 감독은 프랑스 영화 잡지와 TV 프로그램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다 다큐멘터리스트가 되었다. 아시아 영화문화에 특히 관심이 많아 <조니 토 총을 잡다>(2010) <야쿠자 에이가>(2008) <한국영화의 성난 얼굴>(2007) <크리스토퍼 도일의 화양연화>(2006)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들은 부산영화제와 부천영화제 등에서 소개되었지만,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하는 건 <감독 미카엘 하네케>가 처음이다. 이브 몽마외르 감독과 서면으로 나눈 인터뷰를 공개한다.

영화 속 이브 몽마외르 감독님께서 미카엘 하네케 감독님에게 <하얀 리본>(2009)에 대해 이렇게 물어보셨죠. “처음 역사영화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네케 감독님은 “별로 질문이 좋지 않다”고 타박을 줍니다. 제 질문도 별로 좋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웃음) 먼저 미카엘 하네케 감독님과의 인연을 소개해주세요. 두 분은 서로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특별하게 애정 하는 작품은 <피아니스트>(2001)입니다. 완벽한 작품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작품은 완벽합니다. 제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을 처음으로 직접 만난 것은 1992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미카엘 하네케의 <베니의 비디오>를 미처 보지 못해 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였어요. 프랑스 리네의 작은 영화제에서 이 영화의 상영 소식을 듣고 곧장 리네로 향했습니다. 이 작품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때 혼자 있던 하네케 감독을 발견했습니다. 운 좋게도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안 그래도 <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베니의 비디오>에서 십 대 소년이 친구를 죽이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특별히 이 장면을 오프닝으로 배치한 이유가 있나요?
하네케 감독과 나의 인연을 이 작품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삽입했습니다.

<베니의 비디오>를 보고 난 후에 미카엘 하네케 감독에 대한 편견이 생기지 않던가요? 저는 그의 영화만 본 입장에서 다가가기 힘들 것 같은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는데요. 직접 만나보니 어떻던가요?
과격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 또한 과격할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람들은 대개 그와의 대화를 두려워합니다. 하네케 또한 그러한 점들을 즐기는 듯, 제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검정 양복에 매우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후 파리에서 다시 만나 친분을 이어갔습니다.

하네케 감독님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나요?
지난 몇 년간 사적으로, 공적으로 미카엘 하네케와 수많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로 인해 하네케 감독의 신뢰를 얻게 됐죠. 나는 하네케의 세계관이 그의 감독관에 위험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바로 그런 하네케의 복합적인 면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나는 거의 모든 하네케 감독의 작품에 참여해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었어요. 그러는 동안, 어쩌면 당연하게도 하네케 감독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생겼어요. 촬영현장에서 빛나는 그의 창조성을 그려보고 싶었고 또한 하네케의 작품 속에서 그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하네케 감독님께서는 자신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하자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조건이 있었습니다. 하네케 개인에 대한 것과 가족에 관한 것은 절대 금지였습니다.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었어요. 나 또한 하네케 감독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첫 장면에 배치한 <베니의 비디오> 이후에 <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아무르> <하얀 리본> <히든>(2005, <감독 미카엘 하네케>에는 <은신처>로 번역) <늑대의 시간>(2003) <피아니스트> 등 하네케 감독의 연출작을 시간 역순으로 훑어 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금 <아무르>로 돌아오는 방식을 택하셨어요. 이와 같은 방식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요?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나는 ‘작은 하네케’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아무르>와 하네케 감독의 첫 번째 작품인 <7번째 대륙>(1989)은 서로 닮아있어요. 둘 다 극 중 캐릭터의 멸망을 그렸죠. 하지만 <7번째 대륙>은 주인공 자신들에 의하여, <아무르>는 질병에 의한 것이라는 게 다르죠. 무엇보다 <아무르>가 두 번째 기회를 부여하고 희망을 전한다는 점에서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형식을 떠올렸습니다. <아무르>와 <7번째 대륙>은 시작과 마지막으로써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고 본 거죠. 질문하신 것처럼 역순환의 방식을 통하여 하네케 감독 작품의 진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감독 미카엘 하네케>에 삽입된 하네케 영화의 클립들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신 건가요?
특별한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더 많은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진행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되는 클립을 찾았을 뿐입니다.

하네케 영화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장면도 많이 삽입되어 있어요. 감독님께서 <감독 미카엘 하네케>를 연출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찾아간 건 무슨 영화부터였나요?
1999년이었어요. <미지의 코드>라는 작품의 현장에서였죠.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한마디로 긴장감과 느긋함의 공존이었습니다.

<감독 미카엘 하네케>에서 하네케 감독님은 자신의 연출론에 대해 “인위적인 연출을 배제하고 과장 없는 장면을 만드는 데 신경을 쓴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합니다. <감독 미카엘 하네케>를 연출하는 데 있어 이브 몽마외르 감독님 역시 하네케 감독님의 연출론을 반영하셨는지 궁금한데요.
영화에서 어떻게 현실만을 고집할 수 있겠어요.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에 현실은 무너집니다. 다른 감독들도 그러하듯이 하네케 감독 역시 필름 프레임 속에서 진실은 무뎌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이크업 (make up)으로 덧칠되어가기 마련인 작품 속에서도 그는 관객을 기만하기보다는 현실과 진실에 포커스를 맞추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관객들도 그의 작품 속에서 객관성을 가진 또 다른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관객은 수동적이어선 안되며 작품과 함께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하여 관객도 작품 속에서 또 다른 하나의 캐릭터로 동화되어 가며 그들만의 진실을 작품 속에서 발견합니다. 나 역시 이러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작품 속의 캐릭터에 대해 나의 개인적인 성향을 부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사용하지 않았고 작품 속에 나를 등장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한 인터뷰는 활용하지 않았고요. 이유는 단 하나! 객관성을 저하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미카엘 감독님은 인터뷰이로서 꽤 까다로운 거로 보이는데요.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라 인터뷰어로서 인터뷰이와의 사이를 좁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나요?
하네케 감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본인은 작품 속의 유머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의 유머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요. 그의 유머는 어쩌면 오스트리아 유머를 이해할 수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웃음)

미카엘 하네케 외에 또 다뤄보고 싶은 감독님이 있으신가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폴 버호벤(<로보캅>(1987) <토탈리콜>(1990) <원초적 본능>(1992) 등)을 다뤄보고 싶었어요. 아쉽게도 누군가가 이미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촬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는 이전까지의 작품보다는 편안하게 작업했습니다. 영화, 만화, 음악, 춤 그리고 무예(Martial Arts) 등 아시안 팝 문화에서 여성들의 존재감을 살펴보는 다큐멘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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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25)

<갓즈 포켓> 존 슬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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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슬래터리는 배우로 유명하다. <앤트맨>(2015)과 <아이언맨 2>(2010)에 하워드 스타크, 그러니까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로 분했고 최근에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아카데미 6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스포트라이트>(2015)에 출연했다.

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중 만든 영화가 있다. 연출 데뷔작 <갓즈 포켓>(2014)이다. <갓즈 포켓>은 이제는 고인이 된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이 타이틀 롤을 맡아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출연한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서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은 재혼한 부인의 아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으면서 장례 비용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키 역을 맡았다.

<갓즈 포켓>은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을 비롯하여 존 터투로, 리처드 젠킨스, 에디 마샨 등 베테랑 배우들이 빚은 연기의 하모니가 빛을 발한다. 이들은 모두 ‘갓즈 포켓 God’s Pocket’’이라는 가난한 동네에서 삶에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어떻게든 볕 들 구멍을 모색해 전진하는 인물들을 연기했다. 존 슬래터리 ‘감독’은 배우 출신의 경력답게 베테랑 배우들의 지원 속에 모든 캐릭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끔 애정을 듬뿍 담은 연출력을 선보인다.

‘갓즈 포켓’은 필라델피아에 실제로 존재하는 마을 ‘데블스 포켓 Devil’s Pocket’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동네의 못된 아이들이 ‘악마의 호주머니’에 있는 동전까지도 탈탈 털어갈 것 같은 분위기여서 붙은 이름이다. 영화의 원작소설가는 이를 갓즈 포켓으로 바꿔 극 중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인물들을 ‘신의 호주머니’ 속에 넣어 지켜주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이야기를 구성했다.

존 슬래터리가 배우로 출연했던 블록버스터에 비하면 <갓즈 포켓>은 호주머니 규모 수준의 영화이지만, 원작자의 의도를 그대로 살린 연출은 그 작은 호주머니 속에 넣어 간직하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그런 존 슬래터리가 인터뷰를 자청했다.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공개한다.

안녕하세요. 감독님은 TV 시리즈 <매드 맨>에서 다섯 편의 에피소드를 연출한 적이 있지만, 영화는 <갓즈 포켓>이 처음입니다. 원래부터 연출에 뜻이 있었나요?
현장에서 감독들이 연출하는 것을 몇 년간 지켜봤습니다. 연출할 기회가 내게 생긴다면 난 뭔가 다르게 할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스스로 기회를 줘보자고 생각하고 시작했습니다. 영화와 TV 드라마의 연출은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특히 영화 연출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TV 드라마보다 훨씬 컸습니다.

감독님을 비롯하여 할리우드에서는 배우들의 연출 데뷔가 굉장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 연기 경력이 오래된 배우들은 나와 비슷한 호기심에서 연출을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누구나 한 분야에 오래 있다 보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지니까요.

<갓즈 포켓>은 피트 덱스터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어떤 부분에 매료되었나요?
피트 덱스터는 <갓즈 포켓>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특징 강한 세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분위기나 생각이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원작 속 세상이 영화처럼 매우 생생하게 그림으로 그려졌습니다.

연출뿐 아니라 각색까지 맡았습니다. 각색은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췄나요?
피트 덱스터가 쓴 책 속의 인물들은 매우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순간 진지하고 진실한 듯하다 다음 순간에는 비아냥거리는 식입니다. 어쩐지 그들의 폭력적인 면모는 무섭기보다 친근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갓즈 포켓>은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래서 감독님께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과의 작업은 남다른 기억일 것 같습니다.
그는 매우 좋은 배우였습니다. 함께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서 매우 슬픕니다. 원래는 리처드 젠킨스가 연기한 저널리스트 ‘리처드 쉘번’ 역할에 캐스팅하려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키를 연기하고 싶다고 답을 줬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순수한 의도에서 무언가를 애써 하려고 하는, 진정한 휴머니티를 가진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고 나중에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존 터투로와 리처드 젠킨스 역시 할리우드에서 연기로 잔뼈가 굵은 배우들입니다. 미키의 아내 지니 역할을 맡은 크리스티나 헨드릭스는 <매드 맨>에서 함께 했던 배우이기도 합니다. 이들과의 작업도 특별했겠죠?
나는 일을 할 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걸 좋아합니다. 특별한 계획 없이 진행될 때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건 콜라보레이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약 배우로 <갓즈 포켓>에 출연했다면 연기하고 싶었던 캐릭터는 리처드 쉘번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출에만 집중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리차드 젠킨스가 이 역할을 원했습니다.

크리스티나 헨드릭스는 영화 속 지니처럼 매우 매력적입니다. <매드 맨>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였기 때문에 어떻게 연기하는지 익숙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갓즈 포켓>을 위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작업하며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 ‘갓즈 포켓’은 극 중 동네의 이름입니다.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마을을 떠올릴 만큼 익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피트 덱스터는 원작에서 필라델피아의 남쪽 마을을 세밀하게 담아냈습니다. 나는 영화를 위해 그 현장을 직접 찾아가 봤지만, 현재는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원래는 노동자 계층이 살던 마을이었어요. 이제는 그렇게 보이지 않더군요.

다만 어느 곳이든 텃세를 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은 마을들이 특히 그렇죠. 갓즈 포켓은 실제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고도, 안 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미키는 이 마을에서 살아가지만, 그의 주변 인물들은 한결같이 이 마을 출신이 아닌 이방인(outsider)으로 그를 대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키는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미키가 갓즈 포켓에 대해 가지는 감정처럼 감독님에게도 애증을 느끼는 공간이 있나요?
나는 매사추세츠의 뉴튼이라는 곳에서 자랐습니다. 많은 이웃이 함께했던 곳이고 영화 속에 묘사된 갓즈 포켓과 일면 유사하기도 합니다. 분위기나 느낌 등이 때로는 닮아 있는 것 같네요. 그래서 원작소설의 정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갓즈 포켓>은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가 아닌 바깥에서 만들어진 독립영화입니다. 감독님께서는 앞으로도 독립적인 방식의 연출 작업에 전념 하실 건지요? 아니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처럼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출하실 기회가 온다면 받아들이실 생각인가요?
감독의 위치에 있게 되면 연기를 할 때 알 수 없던 것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말이죠. 그래서 이 질문에는 이렇게 답변하고 싶네요. 나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감독으로, 또는 배우로 계획하고 있는 차기 작품은 무엇인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제가 준비한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인터뷰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한국에서 제 영화가 1월 28일에 개봉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많은 분이 극장에서 <갓즈 포켓>을 보셨으면 해요. 여러분들이 좋아하실만한 여러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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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8)

<인 허 플레이스> 알버트 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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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신 감독은 캐나다 교포 2세다. 장편 연출 데뷔작 <포인트 트라버스>를 비롯해 줄곧 캐나다에서 감독 생활을 했던 그가 두 번째 연출작 <인 허 플레이스>를 한국에서 찍었다. <인 허 플레이스>는 임신을 한 10대 소녀와 그녀의 엄마, 그리고 부유한 도시에서 온 여인과의 모종의 거래를 다룬 작품이다.

한국 영화 시스템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알버트 신 감독은 혈혈단신 한국에 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인 허 플레이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국내 개봉 전 이미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작품상까지 받을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국내 개봉(12월 17일)을 앞두고 한국에서 기자시사회를 비롯한 각종 인터뷰와 GV 참석으로 바쁜 그에게 결코 쉽지 않았을 영화의 제작 과정에 대해 물었다.

한국의 레스토랑에서 옆 테이블의 한 가족이 하는 얘기를 들은 것이 <인 허 플레이스>의 발단이었다고요?
그 전에 이미 촬영지는 삼촌의 목장으로 정해 놓았어요. 어릴 적 한국에 올 때면 항상 지냈던 곳이에요. 7년 전인가, 삼촌이 목장을 그만두고 안양으로 가셨어요. 꼭 이 목장에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삼촌을 만나러 안양에 갔다가 칼국수 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옆 테이블에서 1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더라고요. 가족 중 한 여자가 임신을 했나 봐요. 근데 누군가가 거짓말이다, 추석 때도 얼굴 안 보이는 게 숨어 있는 것 같다, 는 요지로 시끄럽게 말싸움하고 있었어요.

한국말에 익숙하지 않으신데 굉장히 인상에 남는 싸움이었나 봐요. (웃음)
그런 내용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웃음) 처음 들어본 건 아니었어요. 캐나다 토론토의 한국 커뮤니티 안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갈등이 있어요. 한국인들은 가족 간의 피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 허 플레이스>의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뭔가 더 있을 거다, 조사를 했죠.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영화적 공간으로 목장을 떠올리셨군요?
처음부터 목장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어요. 무조건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캐나다는 살기 좋은 나라이지만, 사람들이 순하고 재미가 없어요. 저는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적인 환경에서 자랐어요. 한국은, 한국사람은 에너지가 넘쳐요. 특히 캐나다에서 살면서 한국을 보면 그런 부분들이 더 강하게 다가와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는데 여성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이상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고민이 많이 됐어요. 아예 안 하려고까지 했어요. 그런데 여자 캐릭터가 제 마음속에서 떠나지를 않더라고요. 조사 기간을 거치고 이야기를 만들고 목장을 공간으로 삼고 스텝 바이 스텝으로 진행했어요.

<인 허 플레이스>의 모녀와 그들을 찾아온 도시 여자는 실제 모델이 있나요?
마음 안에서 만든 캐릭터예요. 한국에 와서 몇 개월 동안 조사도 했어요. 아무래도 예민한 문제인 데다가 한국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편하게 얘기하는 게 아니다 보니 인터넷도 살펴보았어요. 이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갔어요.

극 중 인물들에게 따로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어요. 어떤 의도였나요?
영화는 시선이 중요하잖아요. 제목이 <인 허 플레이스>인 이유이기도 한데요. 한국 사람의 사연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잖아요. 외국 관객이라도 ‘인 허 플레이스 in her place’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어서 이름을 굳이 특정한 누구로 한정하지 않았어요.

또 하나, 재밌는 게 영어 영화였으면, 이름을 안 쓸 수가 없었을 거예요.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름을 잘 안 쓰잖아요. 엄마는 저를 아들이라고 부르고 저도 엄마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으니까요. 시나리오 쓸 때부터 이름을 쓰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누구나 자기의 심정을 대입할 수 있는 은유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름을 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우의 입장에서는 캐릭터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여지가 컸겠는데요?
저는 영화를 만들 때 배우에게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대로 시키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즉흥 연기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둬요. <인 허 플레이스>를 작업할 때도 세 여자 캐릭터에 대한 정보가 제 머릿속에 있었지만, 배우들에게 맡은 캐릭터는 어떤 사람인지 배경에 관해 토론을 많이 하면서 만들어 갔어요.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촬영할 때 배우들에게 각자 캐릭터에 대한 책임을 많이 부여했어요. <인 허 플레이스>에서는 그와 같은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극 중 인물들이 특별하게 비췄으면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배우들이 캐릭터에 깊이를 부여하기를 바랐어요.

배우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한국말도 그렇지만, 한국영화 시스템도 잘 모르고  배우는 물론 스태프도 모두 처음 경험하는 분들이라 어려움이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고생은 하겠지만, 어떻게든 열심히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한국에 온 거예요. 처음의 걱정과 다르게 배우와 스태프분들과 너무 잘 맞아서 좋았어요. 우스개처럼 캐나다에서 영화를 만들 때는 <인 허 플레이스>보다 예산도 크고 영어로 소통도 가능한데 왜 이만큼 안됐을까, 생각도 했어요. 오히려 현장에서 너무 사이가 좋아서 영화가 잘 안 나오면 그때는 어쩌지 그런 걱정을 했죠. (웃음)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만 가지고 오신 건데요.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셨나요?
한국에 프로듀서 친구가 있었어요. 제가 한국 영화계에 아무런 정보도 없는 걸 알고 우선 조감독을 찾아줬어요. 건국대학교를 바로 졸업하고 처음으로 저와 영화를 하게 된 거예요. 조감독이 정말 많이 고생했죠. 보통 감독들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배우 캐스팅을 어느 정도 구상해 놓는데 저는 그조차도 없었어요. 조감독이 한국 독립영화를 많이 보여줬어요. 함께 보면서 이 배우 좋다, 누구냐, 캐스팅할 수 있느냐, 그렇게 접근해 갔어요.

촬영감독은 캐나다에서 함께 하던 친구가 있는데 스케줄이 맞지 않아 못 오게 됐어요. 조감독이 건대뿐 아니라 한국영화아카데미 KAFA에도 아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들이 만든 단편을 보면서 촬영감독을 찾았어요. 그리고 촬영감독이 조명감독을 소개해주면서 한 명이 두 명으로, 두 명이 네 명으로 늘어나는 식으로 배우와 스태프 진들을 꾸렸어요.

한국과 캐나다의 촬영현장에서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던가요?
영화를 찍는다는 자체는 같아요. 만드는 방식의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어, 캐나다 현장에는 촬영감독은 있지만, 조명감독은 없어요. 대신 조명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지식을 갖춘 ‘게퍼 Gaffer’가 있죠. 이에 익숙해지려고 촬영감독은 물론 조명감독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현장편집도 한국에만 있는 방식이더라고요. 처음엔 필요 없을 것 같았는데 찍고 나서 어떻게 나왔나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좋더군요.

제가 감독이라고 해서 캐나다에서 했던 방식을 한국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고집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기회가 생길 텐데 이 기회에 한국의 시스템에 대해 많이 배워두는 게 중요했어요. 반대로 배우와 스태프들이 저에게 궁금해하는 것도 많았어요. 한국과 캐나다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조율됐어요.

감독님과 배우, 스태프 간의 믿음이 확인된 순간이 있었나요?
엄마와 임신한 딸이 기저귀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요. 이 장면이 터닝포인트였다는 생각이에요. 그전까지 배우도, 스태프도 저를 믿고 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단 한 번에 오케이가 난 장면이었어요. 정말 마법 같은 순간이었던 게 리허설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시나리오에 대사는 있었지만, 따라가지 않고 그 상황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기해달라고 요구를 한 것이었어요.

이 씬에서 감정을 끌어내지 못하면 영화의 끝 부분에 힘을 줄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배우들도 그렇고 저도 중요한 장면이라고 본 거죠. 영화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엄마와 소녀가 둘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사이잖아요. 소녀가 임신하는 사고를 쳤지만, 그래서 농장에서 마치 숨어있듯 살고 있지만, 엄마와 딸이 서로 힘을 합쳐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걸 이 장면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관객들은 이 장면을 보고 둘의 사이에 안심하지만, 후에 벌어지는 예상 밖의 상황에 놀랄 수밖에 없는 거죠.
엄마가 딸의 임신을 서울에서 온 여자와 거래를 한 것 때문에 무정하다고 보지 않아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엄마는 나름의 최선의 살아갈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겠죠. 엄마 입장에서는 이번만 잘 넘기면 앞으로는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본 건데 딸의 입장은 달랐던 거죠. 사실 딸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참아 넘기려고 한 건데 배도 점점 부르고 몸도 이상하게 되고 위안이 되어줘야 할 남자 친구는 연락도 없고 어린 마음에 심경이 복잡했을 거예요. 참으려고 노력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던 거죠.

극 중 딸에게는 그 나이의 소녀에게 어울릴 만한 상황이 있겠죠. 엄마와 아웅다웅하기도 하고 남자 친구와 데이트도 하면서 즐겁게 보내야 하는 시간 말이죠. 근데 엄마가, 남자 친구가, 서울에서 온 여자가 그녀가 있어야 할 공간과 시간을 모두 앗아갔다는 점에서 ‘인 허 플레이스’라는 제목이 와 닿더라고요.
이 제목은 맨 마지막에 나왔어요. D.I.(일종의 색보정 작업)을 할 때까지 제목이 없었어요 ‘우먼, 걸 마더 Women, Girl, Mother’를 가제로 했어요.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다가 편집을 하는 순간에 갑자기 ‘인 허 플레이스’가 떠올랐어요. 영화 속 이야기를 은유하는 제목으로 딱 맞은 거예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는 제목이라 더 좋았어요.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던 영화였는데 완성 후 평가들이 좋았죠?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했는데 이슈가 잘 됐어요. 올해 캐나다스크린영화제에서는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해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크로넨버그의 <맵 투 더 스타>, 자비에 돌란의 <마미>와 경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인 허 플레이스>를 완성하고 나서는 영화제에서만 소개되고 말겠지, 하는 생각이었어요. 지금은 이 영화 덕분에 기회가 많이 생겼어요.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인 허 플레이스>는 너무 행복하게 만든 영화였어요. 함께 했던 배우, 스태프분들과 어떻게든 한국에서 다시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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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3)

<필름시대사랑> 장률 감독

janglu

장률 감독의 <필름시대사랑>은 4개의 장(章)으로 이뤄졌다. 1장 ‘사랑’은 손녀(한예리)가 병문안을 간 병원에서 할아버지(안성기)와 청소부(문소리) 간에 소동이 벌어진다.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라 영화 촬영 내용이었다. 하지만 촬영이 끝난 후 조명 퍼스트(박해일)가 감독을 향해 이렇게 영화를 찍으면 안 된다고 일갈하고는 현장을 떠난다.

2장 ‘필름’에서는 배우와 스태프가 모두 떠난 ‘사랑’의 빈 공간을 비롯해 그 주변을 카메라에 담는다. 3장 ‘그들’은 ‘사랑’에 출연했던 배우들 각자의 대표작과 장면을 대사 없이 무성으로 이어 붙여 새로운 영화로 콜라주 한다. 그리고 4장 ‘또, 사랑’에서는 ‘사랑’에 나왔던 공간을 배우 없이 이야기 전개 순서로 다시 비추되 그 위에 내레이션으로 1장과는 변주된 대사를 덧붙인다.

<필름시대사랑>은 제8회 서울노인영화제 개막작으로 제작된 <동행>에서 파생됐다. 장률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동행>을 만든 후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더란다. 그 결과가 바로 <필름시대사랑>이다. <동행>을 마친 후 영화 속 정신병원 배경으로 등장했던 해당 공간에 대한 이야기에 배가 고팠다는 장률 감독을 만나 그 이유에 관해 물었다.


<동행>과 <필름시대사랑>의 연관성은 어떻게 되나요?
<동행>은 단편, <필름시대사랑>은 장편입니다. 작년에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올해 개막작으로 단편 하나를 만들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걸로 시작했습니다. 배우들도 그것 때문에 왔고요. 3일을 함께 찍었어요. 재밌게 끝내고 다 돌아갔어요. 그런데 나는 며칠 동안 잠을 잘 못 잤어요. 끝나지 않은 찝찝함이 있었어요. 좋은 배우들과 단편으로 찍었는데 다시 부를 수는 없잖아요. 스태프 몇 명에게 연락해 이틀 동안 그 공간에 가서 다시 촬영하자. 3일간 배우들과 함께했던 병원으로 가서 빈 공간을 찍었어요. 그렇게 완성된 게 <필름시대사랑>입니다.

‘끝나지 않은 찝찝함’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걸까요?
극 중에서는 정신병원이었는데 실제로는 폐업한 병원이었어요. 그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공간에 아직 남은 정서들이 있지 않으냐. 작품을 만들 때 그 현장은, 그 공간은 해당 영화를 위해 많이 착취당하지 않습니까. 촬영을 마친 후 가고 나면 그만인데 영화 찍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남은 공간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왕왕했습니다.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범죄자의 심리였군요? (웃음)
범죄를 저지른 자가 범죄 현장에 다시 가본다. (웃음) 영화는 과연 촬영하고 나면 그 공간과의 관계가 끝인 건가, 그에 대해서 어떤 정서가 남아 있는가. 그래서 다시 가서 지하를 제외한 그 공간의 지상층을 모두 찍었어요. 지하는 유해물질이 있다고 해서 찍지 않았어요. 대신 병원 옆에 운동장 지하에서 촬영했습니다. 그러다가 많은 사람이 모였다가 경기가 끝나면 모두 사라지는 그 공간은 또 무엇인가. 그런 생각들을 확장하면서 찍었던 거죠.

<필름시대사랑>의 제목으로 유추해 보건대 필름은 이제 사라져 가는, 영화 역사에서 지나간 무엇인데 바로 거기서 착안한 거였군요?
이 영화에 등장했던 배우들이 다 필름 시대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잖아요. 그 시대에 활동했던 이들의 연기나 젊었을 적 얼굴이 필름에 남아 있지 않습니까. 디지털 시대인 지금도 연기를 하고 있죠. 그럼 디지털 시대에 그 배우들의 연기와 얼굴과 표정은 무엇인가, 우리 영화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게 3장 ‘그들’의 출발점이었어요.

세대를 대표하는 배우들로 진용이 이뤄져 있어요. 안성기 배우가 할아버지, 한예리 배우가 손녀로 등장하죠. 중간에 박해일, 문소리 배우가 있습니다.
안성기 배우는 사람이 아주 좋고 너무 단정해, 그런 인상을 받았어요. 본인도 조금 흩어지고 싶지 않겠는가. 질병을 좀 넣자. (웃음) 그래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로 설정했어요. 현장에서 용케 좋아해 주시던데요.

박해일 배우는 <경주>(2014)에서 함께 한 인연이 있었어요. 실제 현장을 보면 감독이 모든 걸 결정하잖습니까. 스태프들이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에요. 마음속에 다 자기 생각이 있어요. 영화에 대한 태도가 있는데 그 시스템, 권리 구조에서 말해도 없어지고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실제 현장에는 우리 영화에서처럼 감독에게 사랑이 무어냐고, 잘못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는 조명 퍼스트는 없을 거예요.

대신 마음속에는 다 있을 거예요. 그 사람들의 좋은 생각, 지혜들이 지금 시스템에서는 다 사라지는데 과연 사라진 걸까, 다른 영화 현장에서의 그럼 마음의 연장선은 또 뭐인가. 그래서 그 친구들을 대표해서 박해일 배우가 질러줬어요. 박해일 그 친구를 보면 실제 그럴 거 같지 않습니까. (웃음) 부드러운 이면에 콱콱 나갈 수 있는 그런 눈빛이 있지 않습니까.

문소리와 한예리 배우는 어떤가요?
문소리는 같이하고 싶었어요. 좋은 연기자고 항상 지켜봐 왔어요. 이전에 <풍경>(2013)이란 영화를 만들고 친하지도 않은 데 같이 관객과의 대화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 친구가 봉사해준 거지. (웃음) <동행>을 위해 한 3일 단편이니까 도와줄 수 없는가 했더니 흔쾌히 응해줬어요.

한예리는 좋은 배우라는 인상이었어요. 한예리는 친분이 없었지만, 그래도 부탁했어요. 함께 하니 좋았어요. 한예리 배우는 묘하게 안성기 배우와 맞는 게 있어요. 다른 영화(<사냥> 현재 제작 중)에서 또 할아버지와 손녀로 출연하고 있어요.

3장 ‘그들’에는 이 배우들이 예전에 나왔던 작품들(<살인의 추억>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귀향>)을 그대로 사용했어요.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박해일과 문소리는 젊어졌을 적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어요. <박하사탕>(1999)은 문소리 데뷔작이죠. <살인의 추억>(2003)은 박해일의 초기작이고요. 봄 소녀, 봄 소년 같잖아요. 안성기 배우는 초기작을 할 수 없잖아요, 아역 출신인데. (웃음) <화려한 휴가>(2007)는 우리 영화와 연계를 했어요. <필름시대사랑>에서 안성기 배우가 칼 한 번 맞지 않습니까. 그래서 칼 대신 총을 맞는 장면을 <화려한 휴가>에서 가져왔어요. <귀향>(2009)도 한예리의 초기 작품이에요. <귀향>에서 한예리가 아기를 낳는 장면은 희망이지 않습니까. <필름시대사랑>의 3장은 무성영화이죠. 근데 마지막에 아기 울음소리는 유성으로 처리해서 한예리 배우의 장면을 희망을 대표하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4장 ‘또, 사랑’은 음향, 그중에서 배우들의 목소리를 특화한 경우입니다.
1장의 이야기에 나왔던 흐름으로 그 공간을 찍는데 조금씩 이야기가 바뀌죠. 현장에 있으면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계속 달라요. 그것 때문이에요. 그때 그 사람들이 없는 지금 이 공간의 소리는 뭔가. 좋게 말하면 영화에 대한 단상, 나쁘게 말하면 망상 (웃음) 실제 정신병원은 고립된 시공간이잖아요. 영화 만드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질병과 예술은 어느 시점에는 겹치는 경우가 있어요. 단언할 수 없지만, 정신병원의 시스템과 영화라는 시스템은 사람들을 아예 못 나가게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상한 영화가 나온 거죠. (웃음)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요. (웃음) 저는 <필름시대사랑>을 보면서 감독님께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어떻게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잡고 있다는 태도를 느꼈어요.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요. 이제 필름 현상을 못 해요. 필름이 지금 이 시스템에서 자본의 힘으로 없어지는 데 과연 없어지는 게 맞는가. 추세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디지털은 더 간편하게 됐고 사람들 누구나 다 찍을 수 있죠. 그런 점에는 찬성합니다. 그게 주류가 될 수밖에 없고. 지금은 디지털이 주류잖아요. 필름은 이제 한국에서는 사라진 건데 디지털이 필름과 같은 질감이면서 더 효율성이 있다고 하면 필름은 없어져도 됩니다. 하지만 필름과 디지털의 질감은 전혀 달라요. 시공간에 따라 맞는 질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이 주류라고 해서 필름이 다 없어진다, 그건 너무하다고 봐요.

필름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까요?
주류가 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자기 역할에 맞게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필름 시대를 건너온 사람뿐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필름의 질감이 어떤 식으로든 좋은 정서를 줄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어떤 방식으로든 돌아온다. 유성시대에서 무성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맞아요. 무성시대에는 기술이 되지 않아서 사운드가 못 들어갔잖아요. 하지만 유성시대가 되고 음향이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감정의 넓이가 더 넓어졌어요. 필름의 질감은 디지털과는 전혀 달라요. 그렇다고 필름이 거저 돌아오는 건 아닐 겁니다. 노력해야 해요. 그 기억을 잡는 것도 그 일환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봐요.

<필름시대사랑>이란 더 정확히는 필름을 ‘향한’ 사랑인 거군요. 하지만 이제는 더는 한국에서 35mm 필름으로 촬영할 수가 없는데 이번 영화는 어떻게 작업하셨어요?
이전까지 35mm밖에 못 해봤죠. 2장 ‘필름’은 16mm로 찍었어요. 그래서 화면비가 4:3인 거예요. 현상은 문 닫은 ‘서울현상소’에 사정을 했습니다. 고맙게도 다시 열어주었어요. 다시 약물을 넣고 ‘필름’을 현상했죠. <필름시대사랑>에는 디지털, 흑백, 무성, 유성, 16mm 등 영화의 촬영 방법이 거의 다 나와요.

1장 ‘사랑’과 다르게 2장부터는 이미지와 사운드에 중점을 두면서 영화가 진행됩니다. 그렇다면 2장부터 시나리오는 어떤 형태로 완성하셨나요?
시나리오는 전혀 없죠. 여기서 찍어라, 저기서 촬영해라 즉흥적으로 한 거죠. 이틀 찍는데 스태프들이 저를 보는 눈길이 점점 이상해지는 거야. (웃음) 다시 배우가 오는가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나를 꼭 정신병자로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영화가 되겠는가 근심들을 많이 했어요. 시나리오가 있었어도 그대로 안 해요. 그전에도 항상 바뀌었어요.

주류 시스템에서라면 전혀 불가능한 영화 만들기이군요.
우리는 뭐든 너무 빨리 사라지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사라진 것들이 진짜 사라졌는가, 정말 사라졌으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어떤 부작용을 주고 있는가, 남았으면 그 남은 거로 어떤 새로운 정서를 만들어 가야 하나. 이번 영화를 작업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감독님의 작품은 늘 공간에 대한 정서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정신병원이죠. 이 공간에 대한 호기심 혹은 궁금증이 평소에 있으셨나요?
중학교 때 제 동창들 부모님 몇 분이 정신병원 의사였어요. 그래서 몇 번 가봤어요. 실제 병원의 사람들을 보면서 정신병원이 궁금했어요. 제가 한국에 와서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한 지 3년 반이 됐습니다. (편집자 주_장률 감독은 재중동포 출신이다. 현재는 한국에 정착하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영상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런 유행가가 있습니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서울에 살다 보니까 다른 연대 관계가 없잖아요. 중국에서는 가족, 친구들의 관계가 태반이었지 영화의 비중은 아주 적었어요. 한국에 있으면서 3년 반 동안 사람 만나면 지겹게 다 영화예요. 눈만 뜨면 영화, 강의해도 영화. 그러다 보니까 내가 영화라는 정신병원에 갇힌 건가, 그래서 정신병원에 대한 그런저런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감독님의 직업적(?) 운명상 영화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벗어나기 어려운 건 알아요. 그래도 노력을 해야 한다. (웃음) 늘 새로운 걸 찾지만, 인생이 어려운 건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 아닌가 해요.

사랑도 그런 것 같습니다. 영원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그 감정이 거짓말처럼 식어 버리죠.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하잖아요.
‘사랑’은 항상 식고 사라지죠. ‘필름’도 그래요. 그래서 필름과 사랑의 질감이 비슷한 게 있어요. 하지만 디지털은 아니에요. 디지털은 늙지 않아요. 사람이 늙지 않는다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공포스러워요. 디지털이라는 환상 속에서  사랑은 영원할 것 같지만, 거짓말이죠. 사라지고 늙는 과정에도 아름다움이 있어요. 디지털 시대에 필름의 잔재는 남아 있죠. 저도 찍지 않았습니까. 반항하는 것 같은데 디지털이라는 ‘시대’에 지금 변주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제목이 ‘필름’ ‘시대’ ‘사랑’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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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한여름의 판타지아> 장건재 감독

janggun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올해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한국영화다. 형식과 내용에 있어 한국영화사(史)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새로움과 신선함으로 가득하다. <회오리바람>(2009) <잠 못 드는 밤>(2012)에 이은 장건재 감독의 세 번째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장편임에도 예사롭지 않게 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첫사랑, 요시코’는 일본 나라 현의 고조 시를 찾은 영화감독 태훈(임형국)이 가이드 미정(김새벽)의 도움을 얻어 고조 시의 여러 곳을 돌며 만난 사람을 토대로 차기작의 아이디어를 얻는 내용을 다룬다. 2장 ‘벚꽃 우물’은 1장의 태훈이 만든 영화로, 고조 시에 놀러 온 혜정(김새벽)이 그곳에서 감을 재배하는 청년 유스케(이와세 료)를 만나 나누는 하루의 로맨스다.

각각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한 작품과 로맨스 영화는 흔하고 흔했지만, 이 둘을 연결해 독특한 미학을 선보인 작품은 없었다. 더 놀라운 건 1장에 대한 설정 정도만 제외하면 아이디어가 없는 상태에서 장건재 감독이 일본으로 건너가 즉흥에서 2장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세계적인 감독 가와세 나오미(<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2014) <너를 보내는 숲>(2007) 등)가 프로듀서로 참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작 전부터 관심을 끈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이성과 상상, 실제와 환상, 현실과 영화, 흑백과 컬러, 한국과 일본 등 여러 요소를 초월해 제목 그대로 영화적 ‘판타지’를 제공한다. 장건재 감독과의 인터뷰는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언론시사회가 있던 다음 날 저녁 약 1시간 동안 이 영화의 배급과 마케팅을 맡은 (주)인디스토리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올해 본 한국영화 중 제일 좋았어요.
제작비가 <잠 못 드는 밤>에 비해 200배나 더 들었어요. 제작 여건과 다르게 물리적으로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어요. 11일 동안 촬영해야 했거든요. 게다가 한일 합작이라 중간에 통역도 있고 해서 이를 돌파하기 위해 열심히 했어요.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에요. 이현정 편집기사와 함께했는데 제게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내 기량으로는 최고의 작업인 것 같다.”

가와세 나오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라 제작 단계에서부터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었죠.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배경이 되는 나라 시에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격년으로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어요. 그중 경쟁부문이 있는데 2012년에 <잠 못 드는 밤>이 초청을 받았어요. 대상을 받으면 부상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해줘요. 나라영화제가 격년으로 운영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영화제가 끝나면 대상을 받은 감독이 1년 동안 영화를 찍고 그 결과물을 그다음 해에 발표하는 거예요. 제가 참석한 해에 원래는 뉴질랜드 감독의 작품이 대상이었어요. 근데 한 달 후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뉴질랜드 감독이 사정이 있어서 못하게 됐다. 고민하다가 수락한 후 제가 물었죠. 왜 나냐? 유력한 대상 후보였대요. (웃음)

립서비스 같은데요. 농담이고요. (웃음) <잠 못 드는 밤>을 좋게 본 거군요.
당시 나라영화제에 참석해서 제가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에 대한 팬심을 숨기지 못하고 ‘덕질’을 했거든요. (웃음) 당신의 영화를 모두 본 팬이다, 당신처럼 나 역시 내 경험과 이야기를 영화에 반영하는 스타일이다, 등등. <잠 못 드는 밤>에 대해서 많은 걸 궁금해하더라고요. 이후 <잠 못 드는 밤>으로 여러 영화제를 돌면서 나라영화제 프로젝트로 영화를 찍는다는 얘기를 했어요. 제가 세 번째로 참여하게 된 건데 그전의 감독들이 가와세 나오미 때문에 너무 힘들어했다, 쉽지 않을 거다, 라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안 그래도 가와세 나오미 감독과 함께한 소감이 궁금했어요. 프로듀서로는 악명이 높군요. (웃음)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지만, 감독으로 제시하는 게 많았어요. 나라는 가와세 나오미의 거의 모든 영화에 배경으로 등장할 만큼 그녀에게는 세트나 다름없는 곳이잖아요. 자신에게 인상적이었던 풍경을 보여주는데 저에게는 마음에 와 닿는 곳이 없었어요. 이후 시간을 두고 둘러보려 했지만, 제작 여건상 그럴 여유가 부족했어요.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은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두 파트 모두를 다큐멘터리로 찍기를 바랐어요. 사실 저는 시나리오가 없어서 말로만 설명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OK를 하지 않았어요.

촬영현장에서는 어땠나요?
워낙 바쁜 분이라 크랭크인 첫날 현장에 올까, 했는데 정말 오셨더라고요. 카페 안의 사람들을 비추는 영화의 첫 장면이 첫 번째 테이크였어요. 저는 항상 매 영화의 첫 번째 신이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려요. 그런데 그런 타이밍이 아닌데 여러분 저는 가와세 나오미이고, 이 분은 한국에서 온 장건재 감독이다, 소개하시더라고요. 도와주시려는 거였는데 제가 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이 현장에서 나가시지 않으면 이 장면 안 찍겠다고 했어요. 그때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이 되게 당황해하셨어요. 제가 작심하고 얘기를 했어요. 현장에서 나가신 후에도 제 주변을 배회하시더라고요. (웃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신인 감독을 데리고 와 자신의 동네에서 영화를 찍는 건데 얼마나 불안하셨겠어요. 이해해요.

저희 너무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 뒷담화만 하는 거 아닌가요? (웃음)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어떤 상황이 와도 쓰러지지 않을 것처럼 강한 사람이에요.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스트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주변 사람과의 친화력이 강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아보려는 노력이 대단해요. 상대방으로부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능력이 탁월해요.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의 조감독을 해서라도 사람을 대하는 시선의 통찰력을 배우고 싶은 심정이에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된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보면서 꽤 정교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구상한 형태가 아니었다고요?
1장은 자료 조사 목적으로 고조를 방문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취재한 글을 시나리오 형태로 옮긴 거예요. 2장은 지금과는 다른 픽션이었어요. 배경도 추운 계절이라 가을이나 겨울에 찍고 싶었지만, 일본 프로덕션에서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문에 안 가게 되면 프로젝트가 엎어지니까 일단 가자. 배우들은 1장만 찍는 줄 알았어요. 1장 찍고 나서 (김)새벽 씨에게 좀 더 남아달라. 1장을 촬영한 후 3일 동안 쉬면서 이와세 료 씨에게는 감 청년을 연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질을 줬어요. 새벽 씨에게는 어떤 역할을 줘야 할까? 새벽 씨 본인을 반영한 여배우로 해서 고조에서 감 청년과 만나 벌어지는 여행지 로드무비로 찍자. 그때까지 2장이 로맨스 형태를 띨지는 몰랐어요. 대신 인물의 감정을 따라 매일 장소를 정하고 배우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대본 없이 한땀 한땀씩 그날의 분량을 찍어나갔어요. 극 중 혜정이 즉흥적인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2장은 어떤 이야기가 될지 전혀 예측을 못 하는 즉흥적인 방식의 영화 만들기였어요.

2장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었음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 김새벽과 이와세 료의 연기가 새삼 다르게 보이는데요.
이와세 료는 2010년부터 알았던 친구예요. 영화제에서 만나서 친해졌고요. <한여름의 판타지아> 1장을 준비하면서 도시에서 시골로 와 시청에 근무하는 청년이라는 캐릭터를 준비했어요. 이와세 료가 했으면 좋겠더라고요. 다행히 일정이 맞아서 같이 하게 됐어요. 새벽 씨는 일본어를 하는 배우를 주변에 부탁해서 알게 됐어요. 양심적 병역거부로 지금은 감옥에 있는 김경묵 감독이 새벽 씨와 <줄탁동시>(2011)에서 함께 작업했었는데 자리를 마련해주셨어요. 임형국 선배는 감독 역할을 찾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서 일본 출국 3일 전에야 캐스팅했어요.

1장의 시청 직원 유스케는 2장에서 감 청년으로 등장해요. 물론 다른 인물이지만, 모두 이와세 료 배우가 연기했죠. 그처럼 1장과 2장의 연관성을 지켜보는 게 흥미로워요.
1장과 2장은 각각 감독이 어떻게 창작의 재료를 찾고 그것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설계도와 완성본의 관계 같아요. 2장의 즉흥적인 연출도 그렇지만, 1장에서의 영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로 그들의 사연을 끄집어내는 작업도 저에게는 처음 하는 시도였어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제가 가진 다른 가능성을 본 거 같아요.

1장은 흑백, 2장은 컬러로 촬영된 방식이 독특했어요. 1장은 극 중 태훈이 백지상태에서 고조의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 2장은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색을 부여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2장에 대해서는 컬러로 찍을 생각은 있었어요. 그 외에는 전혀 계획한 게 없었어요. 1장에서 흑백을 사용한 건 제가 실제로 고조라는 공간을 방문해서 보고 생명력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게다가 다큐멘터리의 과정이 반영되어서 흑백이 어울릴 것 같았어요. 사실 저에게 흑백이란 영화가 필름이던 시절을 생각나게 해요. 촬영감독님께도 고전영화처럼 우아하고 고전적인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대신 2장에서는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느낌으로 컬러를 가져갔어요.

그에 맞춰 카메라의 움직임도 변화합니다. 1장의 카메라는 고정숏이 많고 2장에서는 많이 움직이죠. 특히 1장의 고정숏을 보면서 감독님이 낯선 공간에 왔을 때 취하는 태도 같더라고요.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추고 해당 공간을 알아가기 위해 예의주시하는 느낌이랄까요.
와~ 그럴싸한데요.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작업하면서 제 태도는 딱 하나였어요. 합작은 엎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합작영화를 경험한 적 있는 프로듀서 분들에게 많이 자문을 구했어요. 결론은 ‘영화를 완성하자!’였죠.

낯선 환경에서의 새로운 시도로 완성된 <한 여름의 판타지아>는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트하우스 계열의 영화는 한국에서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은 공공기관의 지원이 없으면 제작비를 구하는 게 어려워요. 그래서 합작을 염두에 두고 이에 대해서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성사가 된 게 <한여름의 판타지아>예요. 다행히 가까운 일본에서 작업을 하게 됐는데 저에게는 좋은 공부였어요. 가와세 나오미라는 강한 프로듀서를 만나 제가 원하는 바에 대해 거절당하기도 하고 크게 충돌하지 않으면서 설득하며 나아가는 과정을 겪다보니 ‘나도 센 놈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필요한 태도를 훈련한 거죠.

기자시사회 이후 <한여름의 판타지아>에 평가가 좋아요. 개봉을 앞둔 지금의 심정은 어떠세요?
흥행으로 직결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저의 이전 작품과 다르게 영화의 존재감이 많이 알려지는 것 같아 감독으로서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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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