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문화게릴라 – 심리학자 장근영



장근영은 교육개발연구원에서 심리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다. 그 전엔 영화광이었다. 그는 늘 스크린 속 세계에 매료돼왔다. 젊은 날엔 신나게 때려 부수는 영화가 좋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변했다. <사이드웨이>나 <어바웃 어 보이> <타인의 삶>처럼 숙성된 와인 같은 영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실생활보다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사람에게 더 친근감이 든다. “웹 중심의 인간관계가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보다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그렇다고 가상세계에만 꽂힌 소통장애 인물이라고 오해는 말자. 한 발짝 떨어져 세상과 소통하고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묘한 화학작용이다. 심리학을 선택한 건, 그래서다.

그가 정의하는 심리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밑 빠진 독처럼 머리 밖으로 빠져 나오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하나라도 더 주워 담기 위해 영화와 심리를 접목한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살인의 추억>을 ‘인터넷 익명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반지의 제왕>의 행간에서 박정희 신화를 읽었다. 그 결실이 40여 편에 달하는 글을 모아 2005년 출간한 책 <팝콘 심리학>이다. 꿈은 더 크다. 시나리오 결함 때문에 망하는 영화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스크립트 닥터’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병든 시나리오를 고쳐주겠다는 것. 복잡 미묘한 인간 심리를 꿰뚫는 혜안으로 좋은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스크린에서 조우할 날을 기대해본다.


지금 날 사로잡은 영화 <300>. 1990년대가 정치적 올바름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취향의 시대다. 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300>은, ‘나 파쇼다’ ‘나 마초다’ 대놓고 외치고 있지만 이미지는 너무 매력적이다. 영화 관련 에피소드 ‘좋은 생각’에 실린 글을 보고 제소자에게서 편지가 왔다. 방황하는 시절에 내 글이 큰 도움이 됐다고. 얼마나 뿌듯하던지. 앞으로의 계획 제목은 아직 미정이지만, 곧 <팝콘 심리학> 두 번째 편이 나올 예정이다. 더불어 전공인 게임 분야에서 <게임 심리학> 책을 출간하는 게 단기 목표.






FILM2.0 333호
(2007. 5. 1)

전방위 문화게릴라 – 시인 강정


강정은 유년기부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엔 음악이 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하는 일은 시를 쓰는 것이다. 가슴은 영화와 음악으로 불타고 있지만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연기(煙氣)는 영화와 음악을 가장한 시다. 계기부터가 그렇다. 중학교 때 ‘도어스‘의 짐 모리슨에 미쳐 짐 모리슨이 좋아하는 시인 랭보를 접한 것이 시와 가까워진 발단이었다. 지금은 폐간된 <현대시 세계>를 보며 등단을 꿈꿨고 ’문학과 지성사‘에서 자신이 쓴 책이 나왔으면 하는 게 꿈이었던 문학소년. 꿈은 기어이 이루어지고 희망은 날카로운 선언이 됐다. 스물두 살에 <현대시 세계>를 통해 등단했고 스물여섯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첫 번째 시집 <처형극장>을 발표하게 된다.

너무 빠른 게 화근이었다. 꿈을 이루자 무얼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 그를 잠식한 것이 영화다.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고민했으나 깜냥이 안 된다고 생각한 시인은 직장인 생활도 해봤으나 정착하지 못했다. 영화를 만드는 것 대신 지금은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끼적이는 전방위 문화게릴라 정도가 됐다. 비평이 아닌 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니 나름 쪽팔리지 않은 글이 됐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한국일보는 한 면 전체를 할애하는 파격 제안을 했고 그는 ‘나쁜 취향’이라는 미명하에 2년간 칼럼을 연재했다. 기타노 다케시의 섹시함을 찬미했고 옛 우상 이소룡에 대한 애정을 바쳤으며 장선우의 영화적 사기꾼 기질을 옹호했다. “짐 자무시나 데이비드 린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처럼 시상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제 초심으로 돌아와 영화와 음악이 혼합된, 제멋대로의 시를 쓰고 싶다고.


지금 날 사로잡은 영화 | 조승희 사건이 터진 이후 보게 된 거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 아무런 의견도 없고 메시지도 없다는 점에서 영화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영화 관련 에피소드 l 내 얘기는 아니지만 영화인들이 소설가나 시인이 영화에 대해서 쓴 악평을 읽고 기분 나빠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문학적으로 접근한 글도 기분이 나쁠 수 있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앞으로의 계획 l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썼지만 문화 칼럼 글들은 되도록 자제하고 싶다. 내 시를 쓰고 싶다.






FILM2.0 333호
(2007. 5. 1)

배우에게 목적지는 없다 – 킬리언 머피


킬리언 머피는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좀비의 공격에 사시나무 떨 듯 두려워하는 연약한 인간에서부터 옆 좌석 승객의 목숨을 우습게 아는 악당까지 변신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플루토에서 아침을>에서는 여장남자로 등장, 전작의 연기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킬리언 머피는 극중 인물에 자신을 철저히 녹이는 배우다. 커피에 녹아든 설탕처럼 어떤 배역을 맡든지 간에 그 속에서 자연인 킬리언 머피의 모습을 끄집어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알 파치노와 브래드 피트가 연기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캐릭터가 대변된다면 킬리언 머피는 천차만별의 배역을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연기한다. 그의 필모그래프는 굴릴 때마다 전혀 다른 번호가 나오는 주사위와 같다. <28일 후>(2002)에서 연기한 짐은 원초적인 공포와 삶에 대한 본능이 충만한 인물이었고 <배트맨 비긴즈>(2005)의 크레인은 사악함을 뽐내는 악역이었으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의 데미안은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특히 <배트맨 비긴즈>가 발표된 2005년에는 성격이 전혀 다른 두 편의 영화 <나이트 플라이트>(2005)와 <플루토에서 아침을>(2005)에 출연,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웨스 크레이븐의 스릴러 영화에서는 테러리스트 잭슨 리프너로 출연, 충혈 된 눈(Red Eye)을 부라렸고 닐 조단 감독의 퀴어 영화에서는 여자를 꿈꾸는 남자 패트릭을 맡아 부드러운 여장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함을 믿을 뿐”이라는 <배트맨 비긴즈>의 크레인의 대사처럼 킬리언 머피는 동일한 얼굴, 같은 육체라 할지라도 출연하는 영화마다 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렇게 킬리언 머피가 보여주고 있는 다채로운 표정은 그만의 기준이 만들어낸 의도적인 결과물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영화에 ‘포인트’가 존재하지 않으면 절대 배역을 맡지 않는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출연한 것도 단순히 켄 로치라는 감독의 명성과 조국 아일랜드의 역사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치적 혼돈 속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인간애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감동을 받았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들어온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평범한 연기자가 펼치는 비범한 연기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출연을 결심했다. <28일 후>에도 그랬고, <플루토에서 아침을>도 그랬다. 사실 그의 얼굴은 꽃미남과 몸짱이 판을 치는 영화계에서 그리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아우라가 존재한다. 영화지 ‘인디펜던트’는 킬리언 머피의 눈을 일컬어, “쉽게 변할 듯 불가사의한 깊고 푸른 눈”이라고 묘사했다. 그의 눈은 평범한 외모에 비범함을 선사하는 킬리언 머피만의 꼬리표다. <배트맨 비긴즈>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경우, 어떻게 하면 안경을 벗기고 그의 눈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킬리언 머피의 눈이 머금고 있는 표정은 과연 몇 가지일까. 그의 연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니 그의 눈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의문과 비밀만이 증폭된다.


소수자의 페르소나


닐 조단 감독의 <플루토에서 아침을>은 아일랜드의 여장남자 이야기다. 킬리언 머피는 이 영화에서 패트릭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태어나자마자 교회 앞에 버려진 패트릭은 한 가정에 입양되고 그때부터 엄마와 누나의 옷을 즐겨 입는 등 여자가 되고 싶은 성적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고아라는 점에서, 남자의 육체를 가졌지만 여자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패트릭은 소수자고 약자다. 독립문제로 영국과 무력 대립이 계속된 아일랜드의 남성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인물들은, <플루토에서 아침을>의 패트릭처럼 소수자거나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8일 후>에서는 전 세계가 분노바이러스에 오염된 가운데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였고 곧 개봉할 대니 보일의 신작 <선샤인>(2007)에서는 꺼져가는 태양을 재 점화할 수 있는 유일한 물리학자로 등장한다.


이에 대해 아일랜드 출신의 킬리언 머피가 할리우드 내에서 갖는 소수자의 위치를 갖다 붙이는 건 너무 뻔할 뿐더러 재미도 없다. ‘엘에이 타임스’의 평론가 케네스 튜란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연기에 대해 광적일 정도로 훌륭했다고 평하며 그 이면에 아일랜드 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덧붙였다. 하지만 킬리언 머피는 자신을 아일랜드 배우로 규정하는 것을 못 마땅해 한다. 자신은 아일랜드 인을 연기하는 배우일 뿐이지 아일랜드 출신 배우로 평가받기는 싫다는 얘기다. 그래서 동향이라는 점을 들어 콜린 패럴과 비교하는 것에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다. 하긴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점을 빼면 이 둘은 전혀 다른 유형의 배우다. 킬리언 머피는 콜린 패럴처럼 외모와 사생활로 어필하는 배우가 아니다. 게다가 콜린 패럴과 달리 영웅을 연기한 경험도 없다. 영웅은 스타의 다른 말로 치환되는 영화계에서 킬리언 머피는 참으로 유별난 배우다.


한 개의 얼굴, 두개의 감정


그래서 그에게는 원형이라고 할 만한 배우를 찾기가 힘들다. 지난 2005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할리우드의 여름 시장을 정리하며 ’2005년 여름을 빛낸 연기자(The Most Valuable Players of Summer 2005)‘로 테렌스 하워드, 맷 딜런에 이어 킬리언 머피를 3위에 올렸다. <사냥꾼의 밤>(1955), <케이프 피어>(1962) 등에서 인상 깊은 악역 연기를 펼친 로버트 미첨과 비교하며 <배트맨 비긴즈>와 <나이트 플라이트>에서의 연기에 높은 점수를 준 것. 악역 연기만 놓고 본다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마초적인 이미지가 강한 로버트 미첨과 달리 그에게는 강한 남성성이 결여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같은 악역이라도 킬리언 머피가 연기하면 악당답지 않은 유약함이 묻어난다. 겉은 사악한 눈과 뾰족한 이빨을 드러낸 야수지만 껍질을 까보면 두려움과 미숙함 등으로 범벅된 연약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배트맨 비긴즈>의 크레인은 라스알굴(와타나베 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하수인에 불과했고 <나이트 플라이트>에서 국토방위부 차관 암살을 노리는 잭슨의 계획을 방해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미모의 호텔리어였다. 이건 평생 백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던 로버트 미첨도 표현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연기다.


다시 말해, 이런 이중성이야말로 연기자 킬리언 머피를 규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다. 그가 맡은 역할의 대부분은 분열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두 개의 성격 혹은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거나 두 갈래 선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루토에서 아침을>은 말할 것도 없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상냥한 의학도지만 전사가 된 데미안을 통해 보여주는 연기는 그 정수다. 처형해야 하는 밀고자가 친구라는 사실 앞에 의무와 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조국을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거겠지?”라는 표적을 상실한 대사를 내뱉으며 근사한 내적 연기를 보여준 것. 킬리언 머피의 이중적인 이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감독은 바로 대니 보일이었다. 대니 보일은 <쉘로우 그레이브>(1994)<트레인스포팅>(1996)<비치>(2001) 등을 통해 환경에 따라 인간이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를 모색하며 파괴돼 가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해온 감독. 그리 길지 않은 필모그래프지만 킬리언 머피가 한 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감독은 대니 보일이 유일하다. <28일 후>에서는 좀비로 변한 아이 하나 죽이지 못하다가 분노의 화신이 되어 인간을 잔인하게 난도질하는 짐을 연기했고 <선샤인>에서는 인류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한 채 선과 악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카파를 연기했다. 킬리언 머피는 인간의 이중성을 파고드는 대니 보일 감독의 페르소나인 셈.


그가 연기에 입문한 계기도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연기한 영화 속 인물들과 닮아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배경인 아일랜드 코크에서 태어난 킬리언 머피는 학창시절을 줄곧 고향에서 보내며 코크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전공은 연기가 아닌 법학. 대신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결성한 ‘Sons of Mr. Greengenes’라는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킬리언 머피는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처럼 낮과 밤을 가르며 법학 공부와 기타 연습에 몰두했다(<플루토에서 아침을>의 사운드트랙에 쓰인 ’Sand’에서 직접 기타를 연주했다). 음악으로 연기 활동의 예열을 마친 후 연극으로 기어를 넣었다. 무정부주의적인 십대로 출연한 <디스코 피그>(1996)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고 이를 각색한 커스틴 셰리던(짐 셰리던의 딸)의 동명 영화로 화려한 연기 생활의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을 희망했으나 거절당하고 이완 맥그리거마저 떠난 <28일 후>의 짐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콜드 마운틴>(2003), 피터 웨버 감독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단역을 거쳐 <배트맨 비긴즈>와 <나이트 플라이트>로 이제는 할리우드가 열렬히 구애하는 배우의 반열에 올라섰다.


국적을 가리지 않는 연기


<플루토에서 아침을>에는 패트릭의 성격을 단 한칼에 규정짓는 인상적인 아역 시절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총싸움을 하자며 장난감 총을 건넨 친구에게 자신이 왜 아일랜드를 위해 죽어야 하냐며 함께 놀기를 마다한 것. 영양가 없는 명분에 개인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과 같다. 킬리언 머피의 연기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배트맨 비긴즈>의 출연을 두고 혹자는 킬리언 머피처럼 재능을 가진 배우가 왜 할리우드 영화의 작은 배역에 등장해 재능을 소진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의 생각은 다르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 하에서도 독립적인 환경과 적은 예산을 가지고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감독과 좋은 작품이라면 할리우드 영화든 아일랜드 영화든 영국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이든 출연을 마다하지 않는다.


<배트맨 비긴즈>의 출연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제안이 있기 전 킬리언 머피가 자발적으로 배트맨 오디션에 참가해 이루어졌다. 배트맨 역은 최종적으로 크리스천 베일에게 돌아갔지만 그를 눈여겨본 감독은 크레인 역할을 제안했고 보잘것없는 역의 비중도 높여줬다. 감독은 영화가 코믹스 원작이지만 최대한 현실적으로 보이길 원했다. 킬리언 머피의 티 없이 맑고 푸른 눈을 보며 포대를 뒤집어써도 전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20분 분량도 되지 않았지만 킬리언 머피의 연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해 벌어진 ‘MTV 무비 어워드’ 최고의 악당 부문에 노미네이트(<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의 헤이든 크리스텐슨 수상)되는 영광을 안았고, <나이트 플라이트>에서의 연기가 시너지를 발휘해 “완벽한 악당”(뉴욕 타임스) “최근 영화 중 가장 우아하고 매혹적인 악당 연기 중 하나”(뉴요커)라는 찬사를 받았다.


주목할 점은, 출연하는 영화마다 ‘갈지자’ 행보의 역할을 보여주는 그의 연기에 대해 누구하나 ‘변신’이라는 잣대를 들어 평가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 워낙에 출연하는 작품마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배우기 때문에 변신을 기본 전제하에 킬리언 머피의 연기를 논한다. 현재 촬영중이거나 촬영을 마친 작품 역시 이전에 출연했던 작품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우선 런던의 웨스트엔드로 잠시 무대를 옮겨, 존 콜벤바흐의 ‘Love Song’이라는 작품에서 뮤지컬을 경험했고 영화계로 돌아와 이번엔 루시 루와 호흡을 맞춰 <탐정을 찾아라(Watching the Detectives)>(2007)라는 작품에서 코믹연기에 도전한다. 이처럼 변신이 실상인 킬리언 머피에게 연기의 최종 목적지는 없어 보인다. 늘 새로운 역을 찾아 길을 헤매고 쉬지 않고 연기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킬리언 머피는 아직 갈 길이 먼 배우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완성되지 않음으로써 완성에 다다르는 흔치 않은 배우다. 그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새로운 경지의 연기를 지금 킬리언 머피는 펼쳐 보이고 있는 중이다.








FILM2.0 328호
(2007. 4. 3)

의외의 반어법을 품고 있는 배우, 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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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경력이 긴 편은 아니지만 수애에게는 끊어지지 않는 실처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다. 소처럼 끔벅거리는 순수한 눈망울과 동글동글해 보이는 얼굴선이 주는 이미지가 착하고 얌전해 보인다는 것. 그녀는 이처럼 미디어와 대중에게 착한여자로 소비되는 자신의 이미지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출연한 조근식 감독의 <그 해 여름>은 1968년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담고 있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수애는 비밀스러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서정인’으로 출연, 시대의 아픔으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를 놓아줄 수밖에 없는 인물을 연기한다. 그녀의 바람과 달리 기존의 그녀가 보여줬던 역할, 특히 전작 <나의 결혼원정기>에서 맡았던 이북출신 우즈베키스탄 통역관 김라라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외의 선택이다. 


하지만 수애의 생각은 다르다. 시대의 아픔으로 인해 헤어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디테일 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서정인이라는 인물은 일상에 가까운 연기를 펼쳐야한다는 점에서 탈북자인 라라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나의 결혼원정기>와는 달리 <그 해 여름>에서는 정신적으로 힘든 점이 많았다. 특히 일상에 가까운 연기를 펼쳐야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디테일한 부분을 더 살려야한다는 점에서 연기가 어려웠다는 그녀다. “내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건가, 화면에 비치는 모습이 수애인가, 서정인인가, 이렇게 연기를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그런 고민을 무척이나 많이 했죠”


상대 배역 석영을 맡은 이병헌과 연출을 맡은 조근식 감독 그리고 스태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인이라는 인물을 온전히 연기할 수 없었을 거라고 수애는 전한다. 영화를 끝내고 울음을 터뜨린 것도 순전히 그녀를 도와준 이들과 헤어진다는 점이 아쉽고 서운해서였다. 하지만 단지 그 때문 만일까. 이번 작품이 세 번째 영화 출연작인 수애는 처음으로 연기를 하면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던 경험 탓에 연기에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 대단한 이념이나 철학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의 촬영 분을 찍으면서 매번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아쉬움을 느낀 것이 전부다. 보는 이에 따라 그것이 무슨 생각이 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 발언의 의미는 그녀에게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연기를 하는 데 있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객관적인 시선에서 자신의 연기를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전작인 <가족>과 <나의 결혼원정기>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가족>은 영화라는 것을, 그리고 연기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임했기 때문이고, <나의 결혼원정기>는 먼 나라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곳에서 체력적으로 힘을 빼가며 정신없이 연기에 임했던 탓이다. 그런 점에서 <그 해 여름>의 서정인은 배우 수애가 한 단계 성장했다는 하나의 증표로써 남다른 배역이었던 셈이다. 


이에 만족할 법도 한데, 그리고 그녀가 지금껏 보여준 이미지로 본다면 이에 안주할 법도 한데 차분하고 나지막한 수애의 목소리는 반어법처럼 새로운 역할에 대한 도전정신을 강하게 드러낸다. “악녀 역할을 정말 해보고 싶어요. 도회적인 역할도 해보고 싶고. 그런데 단순히 외모가 악하고 도회적인 게 아니라 마음 자체가 악하고 도회적인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외모는 상관없어요.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악녀 같고 현대적인 성격의 역할을 하고 싶은 거죠”


그녀에게서 전혀 그런 이미지를 상상해낼 수 없다면 다음의 일화는 악한 수애 혹은 도회적인 수애의 모습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줄지 모른다. 그녀가 착한여자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기 시작한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다. 그게 싫어 어느 날 눈썹을 다 밀어버린 적이 있다. 여자에게 외모는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신분증과도 같은 것. 착한여자의 이미지를 버릴 수 있다면 ‘그까짓 거’ 눈썹정도 밀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겉으로는 순해보여도 속으로는 독한여자. 수애는, 의외의 반어법을 품고 있는 배우다.


(2006. 10. 1. <스크린>)

부드럽게 녹아드는 <무도리>의 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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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유형의 배우가 있다(고 치자). 스크린 속에서 너무도 강렬한 개성을 발휘해 혼자만 빛을 뿜는 배우가 있다면 스크린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크지 않은 배우가 있다. 영화는 수십 명의 혹은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 만든 집단 창작물. 혼자만 잘난 듯 스크린을 독점하는 배우는 좋은 배우가 아니다. 여기 ‘반 스푼의 설탕’이 녹아든 커피처럼 자신을 액화하고 희미해진 맛만으로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가 있다. 바로, 서영희다.


#1. 감춤과 녹아듦의 미덕


“확 변하기보다는 눈에 안 띄게 조금씩 변해가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제 연기가 영화와 함께 흘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 욕심 차리고 싶지는 않고요. 저만 잘한다고 영화가 잘되는 건 아니잖아요“


<무도리>의 포스터에서 서영희는 정면을 차지하고 있다. 공동주연을 맡은 박인환, 최주봉, 서희승과 함께지만, 이제 그녀는 당당한 주인공이다. 물론 포스터에 얼굴을 드러낸 건 처음이 아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부부로 함께 출연한 임창정과 함께 포스터의 왼쪽 하단을 장식했다. 첫 눈에 알아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무도리>의 주연을 맡은 지금도 그때의 감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소박한 그녀다.

<무도리>가 첫 주연인 작품은 아니다. 촬영은 먼저 끝냈지만 개봉을 먼저 한 작품은 <스승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서영희는 <스승의 은혜>에 출연하면서 영화를 보좌하고 받쳐주는 배우가 아니라 영화를 끌고 가는 배우로 성장했다. <질투는 나의 힘>, <클래식>, <라이어>, <마파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연리지>까지. <스승의 은혜> 이전에 그녀는 말 그대로 ‘조연급’이었다. 그런 점에서 <스승의 은혜>는 서영희에게 특별한 영화다. 그 특별함을 만끽할 법도 한데 그녀는 의외로 부담감을 가장 먼저 얘기한다. “개봉을 하고 나서 홍보할 때 부담감이 생기더라고요. 제일 먼저 관객 앞에 나서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다보니까 감당해야할 말들 그런 것들에서 부담감을 강하게 느꼈나봐요”

연기자로써 자의식보다는 영화의 흥행을 걱정해 부담감을 먼저 앞세우는 그녀. 자신보다 영화를 먼저 걱정한다. 드러내지 않음. 서영희를 읽는 첫 번째 키워드다. 사실 주연으로 등장한 <스승의 은혜>에서도 그녀는 또래 주연배우들의 수면 아래 모래알처럼 드러내지 않는 연기를 펼치다 영화 막판 강력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드러내지 않는 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전에도 그랬다. 정신병 내력의 집안에서 태어난 <질투는 나의 힘>에서의 혜옥, <마파도>에서의 복권을 훔치고 달아다는 다방 레지 끝순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아이를 유괴하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의 가정주부 선애 등 강한 역할을 연기했으면서도 튀지 않고 일정 선을 유지하며 자신을 죽이고 배역을 스크린에 녹였다.

그래서일까. 서영희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역할의 성격을 막론하고 부드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공포영화 <스승의 은혜>에 출연해 의외의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던 걸까. “사람이 집에서 하는 행동과 밖에서 하는 행동은 다르잖아요. 그런 느낌인 거 같아요. 영화 속의 착한 모습은 밖에서의 이미지, 악한 모습은 집에서 저 혼자만의 시간이라고 느끼면서 연기를 했어요” 

하지만 부드러움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는 것이 배우에게 독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질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영희는 손사래부터 친다. 한 번에 확 변하는 역할보다는 차츰차츰 조금씩 변해가는 역할을 하고 싶단다. 매번 볼 때마다 비슷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자신의 영화경력에 있어서 첫 번째와 마지막 영화를 놓고 보았을 때 비로소 큰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그런 배우. 서영희는 그런 변화를 좋은 배우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런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의 연기 경력이 굉장히 만족스럽다. 최고의 특권을 쥐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2. 드러내지 않는 워커홀릭


“아~ 죽고 싶다.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정말 스스럼없이 해요. 하지만 정말 죽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살아가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나온 말이거든요. <무도리>는 그런 얘기인 거 같아요”


<무도리>는 사회의 비정함을 이기지 못하고 강원도 산골 마을 무도리에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서영희는 자살을 생각하고 무도리에 들어왔다가 특종에 사로잡혀 삶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는 초보 방송작가 미경으로 출연한다.

<무도리>는 두 번째로 타이틀 롤을 맡은 작품이어서 <스승의 은혜>에 비해 영화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약간’ 덜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생애 첫 번째로 맞이하게 된 코믹 연기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걱정이 앞선다. 자신의 코믹 연기가 관객들에게 잘 받아들여질지 그것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제가 코믹이라는 요소를 잘 몰라요. 자신이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내가 너무 오버해서 연기한 것은 아닐까, 내가 사람들한테 우스워 보이려고 노력한 것처럼 보이면 어떡할까. 원래 노력하는 건 좋지만 노력한 티가 보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출연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시나리오가 재미있어서다. “재미있는 게 좋거든요. 제가 재미있어야 보는 사람도 재미있을 거고. 제가 이해가 가야 그 사람도 이해하듯이요. 딱 봤는데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이 연기할 미경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것 같았다. 극중 미경처럼 실제로 자살을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럴 정도로 힘든 적이 서영희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음, 의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배우는 아니지만 <질투는 나의 힘>으로 데뷔한 뒤 그녀는 별다른 휴식 없이 꾸준하게 영화에 출연해왔다. “사실 3일 이상 저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내가 도태된 것 같아요. 평생 연기라는 것을 해보고 싶은데 이게 평생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도 들고요” 

서영희, 알고 보니 3일 이상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굉장한 일 중독자다. 아마도 그런 일중독 증세가 부침이 심한 영화계에서 <질투는 나의 힘> 이후 4년간 꾸준한 연기생활을 가능케 한 힘일 테다. “이렇게 말하면 우스울지 모르지만 전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좋아요. 제가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건 아니지만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다면 굵고 짧게 끝나는 배우보다 더 좋은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무도리>에 함께 출연하는 박인환, 최주봉 등 ‘어르신’ 배우들은 그녀에게 그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수십 년 간 연기생활을 해온 배우에게나 나올 수 있는 생활적인 대사하며 살아온 모습들이 그대로 얼굴에 새겨져 있는 그들은 서영희에게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연기교본이요 지침서이자 역할 모델이다. 오히려 눈치를 봐야하는 또래 배우들보다도 다가서기 쉬운 나이 든 배우들이 더욱 편하다는 그녀다. 거기다가 굉장히 칭찬을 많이 해주시는 탓에 힘든 역할에도 불구하고 힘도 많이 얻는단다.

그래서 그녀는 <무도리>에 합류한 것이 좋다. 함께 연기하기 좋은 배우들이 있고 자신이 재미있어 좋은 이야기가 있으며 이것들이 합해져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로 탄생한 <무도리>가 좋다. 그런 <무도리>가 개봉한 지금, 한 계단 한 계단 차분히 목표를 향해 올라서고 있는 그리고 언젠가 가장 높은 층에 서있을 그녀의 연기를 보는 것이 좋다.


(2006. 9. 8. <스크린>)

헐리우드가 배출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 어네스트 레먼


<글래디에이터>에게 최우수작품상을, 그리고 감독상에 스티븐 소더버그를 선택하여 이상적인 수상의 묘를 발휘한 73회 아카데미는 올해도 부문별 최고 수상작과 수상자를 가려내 막강한 헐리우드의 위용을 과시하였습니다.

<트래픽>, <와호장룡>, <글래디에이터> 3강이 펼친 격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예측 불가능의 즐거움을 선사하였고, 붉은 카페트를 수놓은(red carpet show) 스타들의 옷차림과 무대세트의 화려함은 여느 블록버스터 못지 않게 대규모였으며 관객동원 능력또한 전 세계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존재하는 법. 영화의 주연과 엑스트라의 대접이 하늘 과 땅 차이듯 아카데미의 주요 5개상 작품, 감독, 남우주연, 여우주연, 각본 부문이 열띤 호응 속에 환대를 받은 것과는 달리 기술상 부문등은 조용히 진행되어 극한 대조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음향상 수상 발표자로 나온 마이크 마이어스는 “온 세계가 주목하는 발표시간이 돌아왔다”며 비관심 부문의 초라함을 역으로 증명 하여 빈축을 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평생 공로상(Honorary Academy Award)의 경우도 그 중요성에 비해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물론 엘리아 카잔의 경우처럼 동료를 공산당원으로 고발했던 전력으로 공로상 수상여부에 관해 시끄러웠던 작년의 사례가 있긴 합니다만 대개 주요 관심사라면, 주연상은 어느 배우며 작품상은 무슨 영화인가에 집중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공로상만큼 중요한 상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헐리우드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올해의 공로상은 영국출신의 촬영감독 잭 카디프(Jack cardiff)와 어네스트 레먼(Ernest Lehman)에게 돌아갔습니다. 특히 ‘영화는 각본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기억해 달라’며 수상소감을 밝힌 어네스트 레먼은 헐리우드가 배출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재미있는 점은(당사자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악몽이겠지만) 미국작가협회(Writers Guild of America)로부터 5번의 최고 각본상과 함께 명예상(Laurel- Award for Achivement)까지 거머쥔 화려한 수상경력의 레먼이지만, 아카데미에서만큼은 철저히 외면 당해온 사실로 유명하다는 것입니다.

1954년 <사브리나>를 필두로, 1959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1961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66년 <Who’s afraid of Virginia Wolf?> 무려 4편을 각본(색)상 후보에 올려놓았으나, 단 한 개의 오스카도 레먼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 하였습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경우는 경악 할 만합니다. 10개 부문이 후보에 올라 무려 9개의 트로피를 수상하였지만 유독 각본만이 누락 되었음은 그와 아카데미의 끈질긴 악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신들은 보수성 짙은 아카데미와 관련한 레먼의 공로상에 대해 무척 뼈 있는 머릿기사로 수상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아카데미, 화해의 오스카 트로피로 46년간 이어온 어네스트 레먼과의 불화에 종지부를 찍다”

<The Inside Story>로 시작된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레먼을 살펴보면 한 장르의 집착 없이 여러 장르를 횡단하며 필력(筆力)을 과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이력 안에는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의 전형이 된 오드리 헵번 주연의 <사브리나>가 있는가 하면 007 시리즈의 모태가 된 첩보 스릴러물인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도 있습니다. 1966년에 만들어진 <Who’s afraid of Virginia Wolf?>는 가학으로 사랑을 느끼는 부부를 통해 당시 가장 불경스러운 영화라는 평과 함께 언론의 비난을 받았지만 평단의 혹평과는 무관하게 흥행에 대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그 해 아카데미 각본은 물론 총 12개 부문이 후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합니다.

또한 공연극의 노래와 춤을 이야기 중심의 영화로 옮긴다는 일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먼은 헐리우드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왕과 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뮤지컬 장르에서 여러 번에 걸쳐 뛰어난 각색의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게다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브로드웨이 흥행실패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영화화되어 천문학적 흥행수입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뮤지컬로 화려한 이력의 정점에 도달한 그였지만 추락을 부른 장르도 뮤지컬이었습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뮤지컬 스타 진 켈리가 감독을 맡고 레먼이 시나리오에 제작까지 참여한 <Hello Dolly!>는 엄청난 물량의 돈과 대규모의 인원이 투입 되었음에도 흥행에 참패하여 장르의 소멸을 부추겼고, 레먼 개인의 이력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은 이 후의 <패밀리 플롯>, <블랙 선데이> 등 일련의 작품 들이 호응을 받아내지 못한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먼은, <프렌지>의 성공 이후 역시 오랫동안 침체되어있던 히치콕과 합심하여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소설 <The Last Days>를 각색한 <The Short Night>에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나리오 초안을 완성한 레먼 자신은 이 작품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설상가상으로 <The Short Night>을 다시 손보던 중 히치콕의 죽음까지 겹쳐 이 60세의 노인은 <블랙 선데이>를 마지막 영화작업으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스크린에 실현하지 못 하였습니다.


(2001. 5. 23. <무비클래식>)

지상 최대의 감독 ‘미이케 다카시’


1.

울 영화계의 엽기 테크니쎤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당근 본 공사가 한 번 맨져준 적이 있는 김기떡 감독 생각하실 꺼라 본다. 그러나 김기떡 감독의 엽기 공력은 미이케 다카시에 비하면 명함 일 장 못 내미는 수준이라고 하면 감들이 잡히시겠능가…

우리는 김기떡 감독의 ‘오이로 똥꼬 굴착하는 비술’, ‘냉동 고등어로 사람 배따지 담그기’에 벌어진 턱주가리를 주체 못 한 적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다카시는 오이는 말랑말랑하다고 쳐다도 안 본다. 배따지 담그는 장면만 보여주면 싱겁다고 입맛을 다신다.

그는 수세미처럼 대구리가 빠득빠득한 마이크를 똥꼬에 쑤셔 쳐 넣는다. 배따지 담그는 장면에 그치지 않고, 그 벌어진 배따지 사이로 방금 먹은 라면 줄거리 등 내용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까정 보여준다. 오이, 오이는 양반이다. 냉동 고등어, 귀엽다.

더 놀라운 건 이 정도는 약과라는 사실.

미이케 다카시가 2001년에 만든 <이치 더 킬러>라는 작품이 있다. 당 작품은 지나친 폭력 땀시 일본에서조차 문제가 됐던 작품인 <코로시야 이치>라는 만화가 원작으로 다카시의 영화 중에서도 사지절단 피퐁당 살점뚝뚝 내장철푸덕 등 고어의 필살기가 한보따리 가득 총망라 되어있다.

당 영화는 사라진 보스를 찾기 위한 조직원 카키하라(아사노 타다노부 분)가 그 보스를 쥑인 이치(오모리 나오 분)를 쫓는 이야기다.

근데 카키하라는 가학과 피학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존나게 잔인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보스를 쥑인 용의자를 고문하는데 있어, 옷을 다 벗기고 수십 개의 갈고리를 맨 살에 걍 낑궈 천장에 대롱 매단다. 글구 대바늘로 목, 볼따구니를 쿠욱 쿠욱 쑤셨다 뺐다 반복하길 수십여 회, 그것도 성에 안 차는지 팔팔 달궈진 튀김기름을 등짝에 퍼붓는 수준이다. 미친너무스키…

이치는 학창시절 반 여자친구가 남자동급생들에게 강간당하는 모습을 꼼짝 못한 채 지켜보다 치욕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인물로, 이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폭력을 휘두른다.

카키하라 못지 않은 엽기 살인 스킬 보유자인 이치의 필살기는 구두 발목에 달린 면도칼. 그가 발을 상하좌우 1회만 왕복운동 해주면 최하 대구리뎅거덩 피폭포콸콸 사지뚝이다.

특히 이치가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 발차기에 사지가 절반이 나는 명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감독 다카시는 마치 수박이 쪼개지듯 쩌억 반으로 찢겨 나가는 사지를 진드가니 보여주고, 그 찢겨진 사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내장에 폭포수처럼 뿜어지는 피분수까정 여과없이 보여준다.

당 영화에는 이 장면뿐 아니라 날라 오는 주먹을 입으로 확 먹어 버려 손꾸락 잘근 씹어 뿐질르기, 도려진 얼굴 껍디 벽 타고 흘러내리기 등 피바다의 보고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주옥같은 고어 명장면이 속출한다.

그리고 당 장면들을 계속 알현하고 있다보면 다카시가 어떻게 하면 더 잔인하게 살인하고 포뜨고 회치는지 이 문제에만 대구리 굴리는 건 아닌지 존나 궁금해진다니까. 글고 이는 당 영화 <이치 더 킬러>뿐 아니라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 대부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면 및 표현일 뿐 아니라 그의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이다.


2.


하지만 다카시가 아무리 엽기 감독이다 하더라도 이런 사지절단 피퐁당 살점뚝뚝 내장철퍼덕 영화만 만든다고 생각하면 그거 니덜 큰 오산이다.

다카시는 영화 찍는 거에 뭔 놈의 한이 맺혔는지 닥치는대로 영화 만들기로 또 유명한데, 1999년에는 5편, 2000년에두 5편, 2001년에는 6편을 찍었단다. 많지?

근데 이건 극장용 장편 영화만을 편수에 넣은 경우고, 그는 시간이란 게 코딱지만큼이라도 생기기만 하면 비디오 영화는 물론(일본에서 이를 V시네마라고 한다) TV 영화도 찍는데, 그래서 그의 1년 실 영화 연출작은 거의 10편에 달한다. 한마디로 미이케 다카시는 1년 365일 먹고 싸는 시간만 빼면 모두 영화 만들기에 매진전념몰두하는 사람이라 보면 된다.

그래서 그의 필모그래프는 며느리도 모르고 감독 본인조차도 알까리한단다. 하긴 1995년에 감독으로 데뷔한 이래 줄곧 이렇게 주구장창 찍어댔는데 아무리 지가 천하의 존 내쉬라고 한들 기억 못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겄냐.

그럼 그가 그렇게 찍구 싶은 영화가 많아서 다작을 하느냐, 그건 아니고. 그는 자기가 찍구 싶은 영화를 연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어느 영화 찌라시와의 이너뷰 기사에서 본 기억이 얼핏 난다. 아님 말구. 우짰든 다카시는 제작사가 제안하는 영화만 찍는 걸루다가도 업계에 평판이 자자하다.

그러니 그의 필모그래프가 다종버라이어티한 건 당근지사. <이치 더 킬러>처럼 막 나가는 고어영화도 있고,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을 리메이크 한 <카타쿠리가의 행복>같은 뮤지컬도 있으며, <중국의 조인>처럼 청렴결백 순수한 동화같은 얘기도 있고, <레이니 독>처럼 느와르에 서부극을 짬뽕한 영화도 있다.

이처럼 자신이 고르고 골라 작업한 영화가 아니라 주는대로 받아먹는 그런 방식이다보니 다카시 영화의 스또오리는 심오찬란하다거나 일관되게 주장하는 철학 그런 나부랭이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엄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존함을 모른 채 영화를 봐도, 몇 분만 지켜보다 보면 이건 딱 다카시 영화구나 하는 삐리리가 온다. 그만의 표현법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 폭력적으로, 더욱 자극적으로.


3.

근데 그의 ‘더욱 폭력적이고, 더욱 자극적인’ 표현에서 보여지는 특징 중의 하나는 앉아쏴덜을 몹시도 수치스럽고 모욕적으로 묘사한다는 사실이다. 워떤 정도냐 하면…

남자 팰 때처럼 패대기로 밀어붙이는 건 기본장착이고 똥꼬에 마이크 굴착(<아지테이터>), 오랄 섹스 후 창피해하는 여자의 얼굴 클로즈 업해 정액 내 뱉는 장면 걍 보여주기(<데드 오어 얼라이브>), 젖꼭지 집게로 잡아당겨 두부 썰 듯 젖통 싹둑 도려내기(<이치 더 킬러>) 등등등.

아마 울 YWCA 아줌마덜이 당 장면들 봤다간 그 자리에서 즉시 개거품 물고 대 국민 도덕성 함양을 위한 저질 영화 추방 백만인 서명운동 들어갈 꺼 안 봐도 눈앞에 선하다.

정녕 다카시가 여자에게 불알을 ‘톡’하고 뽑히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어 복수심에 불타 이리도 심하게 않자쏴를 다루는가 하면 그건 아닐 테고 다만 제작자의 요구(V시네마의 최고 흥행요소인 여자의 몸을 노출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상업적 이익 같은)와 다카시 나름의 표현법(벗기되 자극적으로)이 맞아 떨어져 나온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왜냐, 여자만 존나 깨지는 게 아니거덩.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 중에서 무라카미 류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오디션>을 보면, 영화 역사상 여자한테 가장 무지막지하게 린치당하는 남자 캐릭터가 등장한다.

당 영화는 부인과 사별한 홀애비 아오야마(이시바시 료 분)가 배우 오디션을 빌미로 참신하고 이뿐 24세의 앉아쏴 아사미(시이나 에이 분)를 찜했다 후에 그녀에 의해 절단기로 발목 절단 나뿔고, 대바늘로 눈 굴착 당하며 웬갖 수난을 당하는 남자의 수난기에 대한 이야기다.

그럼 남자는 왜 이렇게 당해야만 하느냐, 여쥔공 야마사키가 남자에 대한 정신적인 외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쥔공 중년 남성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 부당하게 자신을 찜한 것에 가하는 혹독한 벌이다.

결국 남자 역시 다카시의 영화에서는 수치와 모욕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 <오디션>을 제외하고 여자의 수난이 더욱 많고 돋보이는 것은 현실사회에서 여자덜이 당하는 수난이 남자보다 훨 많고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오디션>은 그런 여자덜이 남자덜에게 날리는 살의(殺意)에 찬 필살 똥침 한 방인 셈이며, 다카시의 의식을 보여준 영화인 셈이다.


4.

그럼 이렇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이며 엽기적인 감독에게 ‘가족’을 대입시키면 도대체 워떤 그림이 나오게 될까? 예상 가능하다시피 존나게 골 때리고 젓나 민망하며 조또 자극적인 그림이 나온다.

아들 내미는 오늘도 학교 친구에게 흠씬 얻어 터지구 집으로 돌아온다. 근데 이노무 자식새끼가 엄마를 막 팬다. 화풀이다. 엄마는 그 고통을 이기려 마약을 한다. 그 시간 아빠는 여관방에서 빠굴을 뜨고 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딸내미랑. 그것두 합의 하에. 딸내미는 아빠랑 빠굴 뜬 후에 원조교제에 들어간다.

다카시의 2001년 작 <비지터 Q>이다. 이는 분명 일본사회의 가족붕괴를 은유적으로 상징한 설정임은 분명한 터인데, 세상에나 세상에나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 집안이 엄따. 이런 거 솔직히 포르노 영화 <타부>에서나 본 설정 아닌가. 이게 인간들 가족이냐 개새끼들 가족이지. 다카시의 눈에는 일본 가정들이 이렇게 보이나부다.

이런 설정자체도 받아들이기 존나 힘든 마당에 다카시는 이런 가족들을 어찌어찌해서 결국엔 화해시킨다. 근데 그 화해의 상징적 장면이 역시나 상상초월 엽기다.

엄마가 입고 있던 옷을 벗는다. 그리곤 아빠가 오른쪽 젓을 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딸이 온다. 엄마의 왼쪽 젓을 빤다. 엄마는 이들을 품는다. 다카시스런 가족의 합체이다.

하지만 이렇게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엽기X37912789 + 자극X3871788인 탓에 그 의외의 결말이 주는 교훈 역시 엄청 크게 비춰질 정도다. 저런 꼴 안 당하려면 가족끼리 친하게 잘 살아야 해, 뭐 이런 느낌. 우짰든 가족의 붕괴와 해체, 결합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감독이 세상 천지에 다카시 빼구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아무리 다카시 감독이 엽기 충만한 감독이라고 해도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이 있는 건 당연할 터이고 그의 맘속엔 그리고 그의 영화 속엔 붕괴된 가족에 대한 걱정이 자리잡고 있는 거 또한 사실이다.


5.

이렇게 썰푼 바와 같이 다카시는 엽기로 대표되는 감독이다. 하지만 그가 엽기로써만 설명될 수 없는 감독이란 거 역시 잘들 아셨으리라 본다.

그는 늘 한 곳에 고여있지 않고 다른 곳을 향해 전진해 가는 스따일이다. 한 장르만 집착하지 않고 여러 장르를 두루 섭렵하는 것이 증거다. 마치 엽기로 흥한 자 엽기로 망한다는 사실을 눈치 까기라도 한듯.

하긴 1년에 거의 10편씩 찍는 마당에 엽기 하나만 가지고 지겨워서, 또 할 얘기가 없어서 무슨 수로 그렇게 많은 영화를 연출하겠냐. 존 포드가 서부극의 대부로 알려져 있지만서도 항상 서부극만 찍은 건 아니자너. 코미디도 연출하고 로맨스도 찍구 다큐멘터리도 제작하고.

다른 장르, 다른 소재의 영화도 찍어봐야 창조력에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장르와 소재에 맞는 아이디어를 구해, 좀 더 새로운 표현방식을 찾을 수 있지 않겠냐 이거다. 다카시는 이 점을 잘 아는 감독이다.  


<딴지일보>

주먹이 앞서는 배우, 스티븐 시걸


본 기자 스티븐 시걸 좋아한다. 한마디로 스티븐 시걸 영화팬이다. 그러나 여지껏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입장료 지불해가며 관람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극장에서 스티븐 시걸 보기에는 입장료가 아깝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가 출연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스티븐 시걸의 팬이라고 함부로 떠들 수 있냐고?

물론 의아해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본 기자 스티븐 시걸 팬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가 출시되는 족족 비디오 대여점에서 몽창 다 빌려다 본다. 지금껏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 들어온 스티븐 시걸 영화는 단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봤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시걸의 팬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본 기자의 취향을 국내 스티븐 시걸 영화 수입사 측에서는 어떻게 간파했는지, 전작 <하프 패스트 데드 Half Fast Dead>도 그렇고 최근작 <아웃 포 킬 Out for a Kill>도 극장개봉과 동시에 소리소문없이 비디오 시장으로 보내버렸다.

이처럼 언제부터인가 국내에서 스티븐 시걸의 영화는 개봉과 함께 극장가에서 천대받고 곧바로 비디오 시장으로 좌천되는 불우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개봉관에서 홀대받은 그의 영화가 비디오 대여점주들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수준의 대접을 받는 이상현상을 불러왔으니 이 어찌 해가 동쪽에서 뜨는 일이라 아니 할 수 있으리요!

원래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외면 받은 영화는 비디오 시장에서라고 대접이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스티븐 시걸은 달랐다. 극장에서는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않던 시걸이 비디오 계에서는 송강호나 브래드 피트 못지 않은 높은 인기도를 과시한다. 왜일까?

1.

17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Aikido(우리말로는 합기도)를 배운 뒤 미국으로 건너와 이를 전수하던 스티븐 시걸. 그의 문하생 중에는 파트 타임 잡으로 엑스트라 배우 생활을 하는 이가 있었다. 그의 주선으로 영화 몇 편에서 액션연기에 대해 조언을 하게 된(그 중에는 007영화인 <네버세이 네버 어게인>도 포함되어 있다) 시걸은 후에 그 일이 인연이 되어 1988년 <형사 니코 Above the Law>로 정식 데뷔, 헐리웃의 새로운 액션스타로 각광받게 된다.

특히 <형사 니코>에서 보여준, 상대방의 팔꿈치나 무릎, 대구리를 켄터기 닭뼈 부러뜨리듯 가볍게 ‘톡’하고 꺽어버리는 관절꺽기는 그동안 스피드와 파괴력만이 액션의 전부인 것으로 인식되던 미국 액션영화계에 있어 굉장히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다.

이에 상품가치를 인정받은 스티븐 시걸은 <복수무정 Hard to Kill>을 거쳐 <죽음의 표적 Marked for Death>으로 입지를 굳힌 뒤, 그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언더시즈 Under Siege>로 세계 액션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월드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세계적인 액션 배우로 자리 매김 한 뒤로도 그는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육중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의 그 관절꺽기를 주무기 삼아 선 굵은 액션 연기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난리법석 액션 와중에도 머리카락 한올 흐트러짐 없는 올빽머리와 함께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로 굳어진 무표정은 스티븐 시걸이라는 배우를 거의 컬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는 그 무표정과 함께 차기작에도, 그 다음 차기작에도, 또 그 다음다음 차기작에도 전혀 변하지 않는 스티븐 시걸의 액션 및 외양에 혹자는 ‘머리보다 주먹이 앞서는 배우’라고 폄하하며 내려 깎았으니, 그의 영화가 평론가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을리는 만무하였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시걸은 미국판 ‘토룡영화제’라 할 수 있는 최악영화상 ‘골든래즈베리’ 시상식에 지금껏 8번이나 노미네이트 되는 영광(?)의 소유자로 등극하기도 하였다.

2.

그러나 관객들은 이렇게 외쳤던가, 평론가들이 버린 영화는 우리가 알아본다고…. 스티븐 시걸은 평론가들이 뭐라 떠들어대든, ‘골든래즈베리’ 시상식이 그의 연기를 조롱하든 말든 이러한 악평에도 불구하고 우직한 돌쇠마냥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없이 자신의 액션 아니 관절꺾기를 묵묵히 시행해 보였다.

그러다보니 스티븐 시걸의 영화를 고정적으로 찾는 두껍고 탄탄한 시장층이 형성되었고 시걸은 이를 발판 삼아 오히려 그 이전보다 출연하는 작품수가 늘어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굳이 극장 개봉작이 아니라 비디오로 보급이 되더라도 본전회수…가 다 모야, 극장개봉 효과 못지않은 수익을 올리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스티븐 시걸의 액션영화가 그것만의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을까?

아시다시피 요즘 사람들 스트레스 장난 아니다.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남보다 일찍 일어나야 되고, 남보다 더 일해야 하고, 남보다 더 잔머리 굴려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요즘엔 아침형 인간이다, 몸짱이다 해서 유행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바쁜 시간 쪼개 이에 발맞추어야 하니 스트레스가 갑절로 불어난다. 살 낙(樂)이 없는 거다.

해서 스트레스나 풀 겸 영화 한 편 보려고 하면 아, 글씨! 이번엔 입장료가 7,000원이다. 한 푼 벌기 힘든 이때 7,000원이면 짱깨가 거진 세 그릇이요, 맛난 꿀짱구가 14봉지, 민족의 드링크 박카스가 무려 23병이다. 그래도 간만에 큰맘 먹고 영화를 볼작시면 되려 스트레스를 더 쌓아 가지고 나오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니….

이 상황에서 스티븐 시걸의 영화는 관객들이 보기에 굉장히 만만한 홍어좃이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시걸은 영화에 출연하면 오로지 관절꺾기를 향한 액션에만 전념, 매진 할 뿐이다. 그는 결코 연기력에 한눈파는 일이 없다. 이렇게 뽀개기 액션에만 전념하니 보는 관객의 십 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가듯 후련할 뿐 아니라 쳐지는 연기력을 커버하려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주먹이나 휘두르고 있는 꼴(?)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 만만해 좋다.

물론 시걸이 출연하는 영화는 열이면 열 모두 극중 배역 이름 외울 필요 없어 좋고, 줄거리 꽈배기마냥 배배 꼬여있지 않아 이해하기 단순하니 아무 생각 없이 영화 보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뿐이랴, 또한 그의 영화는 단돈 천원(동네에 따라 오백원 혹은 삼백원)이면 만사 오케이다. 플레이 시켜 놓고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에 아랫목에 응뎅이 지지고 누워 무장해제 한 후 보는 시걸 영화 한 편의 여유는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뛰어넘는 스트레스 때려잡는 명약이요, 지친 이들의 엄마 품인 거다.

다시 말해 스티븐 시걸은 병든 환자 혈맥 짚듯 요즘 관객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바를 요소요소 꿰뚫어 보고 이를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다. 데뷔작인 <형사 니코> 때나 최신작인 <아웃 포 킬>이나 늘어난 머리숱만 예외로 둔다면 변한 것이 대체 뭐가 있던가.

그런 전차로 스티븐 시걸 영화만의 비디오 시장층이 형성되는 건 당연한 거다. 고로 ‘머리보다 주먹이 앞서는 배우’라는 스티븐 시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혹평이라기보다는 장본인에게 있어 최고의 찬사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3.

이렇게 해서 본 기자가 극장에서 스티븐 시걸의 영화를 한 편도 안 본 주제에 그의 팬이 된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스개 소리 비스무리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시걸의 팬 다수 역시 극장에서 그의 영화를 잘 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요즘 극장가에서 시걸의 영화를 틀어줄리 별로 없겠지만 개봉한다고 해도 보러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만만한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것은 거짓말 조금 보태 사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대서사 스펙터클 영화는 극장에서 관람해야 제 맛이듯 스티븐 시걸의 영화는 마룻바닥에 디비져 콧구멍 후벼가며 보아야 제 맛이 아니냔 말이다.

이 말은 스티븐 시걸에 대한 놀림의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 독자들은 잘 알고 계실테다. 스티븐 시걸은 그럼으로써 그의 팬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니, 이는 그에 대한 본 기자의 헌사에 가깝다.

이런 본 기자는 오늘도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린 피로를 덜기 위해 스티븐 시걸의 영화를 빌리러 동네 비디오 대여점으로 향하고 있다. 무릎팍 너덜해진 후줄그레한 츄리닝 차림에 쓰레빠 직직 끌고서….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