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먼츠 맨> 조지 클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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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루니에 대해서 쓴다는 것,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관객과 평단을 고루 만족시키는 배우에, 의식 있는 연출자에, 지상 최고의 신사라는 이미지까지, 어떻게든 약점을 찾아내 트집이라도 잡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나 생겼다.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이하 ‘<모뉴먼츠 맨>’)이 미국 개봉과 함께 혹평 세례에 시달렸다. (만세~) 그런데 이 남자, 그 비난마저도 자신의 매력으로 승화한다. (이런 젠장!)

“고기는 또 잡으면 돼, 이 바다는 우리 것이야” _<퍼펙트 스톰> 중

<모뉴먼츠 맨> 관련 리뷰 중 가장 신랄한 어조의 제목은 ‘버라이어티’로부터 나왔다. ‘조지 클루니의 <모뉴먼츠 맨>이 비평가들과의 전쟁에서 패했다 George Clooney’s ‘Monuments Men’ Losing War With Film Critics’ <모뉴먼츠 맨>은 나치 치하에서 약탈당한 미술품을 찾기 위해 조직된 예술품 전담부대 ‘모뉴먼츠 맨’의 활약상을 담은 작품이다. 조지 클루니는 미술 역사학자 출신의 프랭크 스톡스 중위를 연기했을 뿐 아니라 연출까지 맡았다.

‘감독’ 조지 클루니에게 <모뉴먼츠 맨>은 <컨페션>(2002) <굿나잇 앤 굿럭>(2005) <레더헤즈>(2008) <킹메이커>(2011)에 이은 다섯 번째 연출작이다. 근데 비평가 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조지 클루니가 낙심했냐고? “<배트맨 앤 로빈>(1997)의 개봉 당시 그들이 혹평의 총구를 겨누기 전에 내가 먼저 백기 투항했다. ‘내 연기 경력에서 가장 최악일 만큼 못 만든 영화다.’ 피할 수 없는 위치에서 피하려고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면 된다.”

조지 클루니의 말을 들어보면 혹평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투다. 사실 <모뉴먼츠 맨>은 그의 이름값에 못 미칠 뿐이지 이 사회에서 우리가 갖춰야 할 올바른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의 시선은 여전하다. 안 그래도 조지 클루니는 감독으로 참여한 자신의 영화에서 정치권에 대한 시니컬한 시선을 견지하는 한편 현실정치의 참여를 독려하는 포용의 목소리로 호응을 얻어왔다. 다만 소박한 무대에서 빛을 발한 시니컬한 시선 대신 선택한 모험물에서 그에 걸맞은 스펙터클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혹평의 요지다.

그럴 수밖에. 이름난 명화를 찾아와야 하는 것이 극 중 주인공들의 임무이지만 영화는 걸작 예술품 대신 모뉴먼츠 맨 부대원들의 일상에 주목한다. 담배 한 모금에 만족해하고 타국에 두고 온 가족 걱정에 한숨을 쉬는 등의 일상이야말로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이지 않느냐는 것이 조지 클루니의 입장인 것이다. 이는 영화를 대하는 그의 철학과도 다르지 않다. 그에게 영화는 평가를 받는 대상이 아닌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놀이 같은 거다.

“그런 건 거짓말 한 번 해도 되는데” _<디센던트> 중

<그래비티>에서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매트는 우주미아가 되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에도 유머 감각을 놓는 법이 없다. 무서워하는 스톤(산드라 블록) 박사에게 “왜 여자 이름이 라이언이야?” 허무한 개그를 구사해 마음을 안정시키는가 하면 자신의 줄을 끓어 목숨을 그녀에게 양보(?)하는 순간에는 “멀어지니까 말하는 건데, 솔직히 나한테 끌렸었지?” 괜한 죄책감을 갖지 않게끔 싱겁게 들리지만 배려가 담긴 말 한마디를 잊지 않는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매트 역에 조지 클루니를 최종 낙점한 건 그가 가진 삶에 대한 무한한 낙관성의 이미지 때문이다. 실제로 조지 클루니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능력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코미디언으로 정평이 나있다. <마이클 클레이튼>(2007) 촬영 당시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기업의 이득을 위해 고의로 진실은 은폐하는 변호사의 사연을 다룬 이 영화에서 조지 클루니는 심각한 촬영장 분위기를 ‘업’하기 위해 감독의 ‘컷’ 사인이 내려질 때면 방귀를 뀌어대어 동료들의 웃음을 유도했다.

<마이클 클레이튼>에 함께 출연했던 틸다 스윈튼이 증언하는 조지 클루니의 실체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웃긴 사람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주변을 웃길 줄 안다. 조지가 그렇게 나오는 데 어느 누가 웃지 않고 배기겠나.” 메가폰을 잡고 감독으로 작업할 때도 조지 클루니는 좀처럼 각을 잡는 경우가 없다. “연기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건데 바로 ‘감독 말에 그대로 따르지 않기’라는 기술이다. 나는 내 지시를 전혀 듣지 않는다. (웃음)”

조지 클루니에게는 배역 선택과 관련해서도 원칙 아닌 원칙이 있다. 슈트를 잘 차려 입은 각 잡힌 신사 캐릭터 한편으로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보통 사람의 연기도 병행하며 희비극의 인물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이다. <디센던트>(2011)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거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으로 삶이 엉망진창 된 변호사였다. 조지 클루니가 감독 알렉산더 페인과 꼭 작업하고 싶다며 출연을 자청한 경우다. 인간의 모순적인 면모를 찰지게 구현해낸 조지 클루니는 이듬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내가 너무 잘생긴 건 알지만 뚫어져라 쳐다보진 마” _<그래비티> 중

결국 조지 클루니는 오스카 트로피를 수상, 하지 못했다. 남우주연상의 영예는 <아티스트>(2011)에서 뛰어난 무성연기를 보여준 장 뒤자르댕에게로 돌아갔다. 조지 클루니는 그 즉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방법은? <모뉴먼츠 맨>에 장 뒤자르댕을 캐스팅한 것. “나는 장을 꼭 이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었다. <디센던트>가 나온 해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지 않았나. 그래서 죽이려고. 첫 장면에서 바로 죽이려고 했는데 공동 각본가가 좀 더 기다리라기에 좀 살려뒀다.”

이게 바로 조지 클루니가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혹평에 대처하는 자세도 그렇지만 일종의 경력 상 흠이라고 할 만한 사안에 대해서도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가볍게 넘겨버린다. <마이클 클레이튼>에서 극 중 조지 클루니의 동료 변호사로 출연했던 톰 윌킨슨의 표현이 재밌다. “재능 있어, 잘 생겨, 돈까지 많은 조지는 모든 걸 다 갖춘 남자다. 그런 남자들은 개자식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카데미상을 주최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수장 시드 가니스는 조지 클루니를 일러 ‘마지막 무비 스타 The Last Movie Star’라고 표현했다. “오랫동안 레드 카펫 위에 선 배우를 보아왔지만 조지 클루니는 전혀 유명인사 티를 내지 않는다. 그레고리 펙(<오멘>(1976) <앵무새 죽이기>(1961) 등) 이후 처음이다.” 요컨대, 조지 클루니는 배우로서, 스타로서, 또 인간으로서도 완벽하다는 얘기다. 인정하련다. 그는 정말 세기의 남자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조지 클루니의 약점을 캐는 일을 멈추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4년 3월호

<노예 12년> 스티브 맥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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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지금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영화는 스티브 맥퀸 연출의 <노예 12년>이다.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무려 9개 부문 후보에 올라가 있는 상태인데 그 어떤 작품보다도 주요 부문의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진다. 아카데미 심사위원 들이 전통적으로 실화에 기초한 감동 스토리에 오스카 트로피를 몰아줬던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노예 12년>은 남북전쟁 발발 전 19세기 미국의 노예제를 폭로한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한다. 저자인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이 실제로 당한 일을 영화에 그대로 옮기고 있는데 그 내용이 사뭇 충격적이다. 바이올린 연주가이자 공예가로 자유를 누리고 있던 노섭은 공연을 위해 뉴욕을 벗어났다가 납치를 당한다. 함께 연주하자며 접근한 이들이 노섭을 노예상에게 팔아넘긴 것. 미국 남부의 루이애나주로 팔려간 노섭은 다시 자유를 얻어 뉴욕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 12년 동안 노예 신분으로 인간 이하의 삶을 경험하게 된다.

<헝거>(2008)와 <셰임>(2011), 단 두 편의 연출작으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른 스티브 맥퀸은 2013년 솔로몬 노섭의 노예 해방 160주년을 맞아 그의 이야기를 하루 빨리 영화로 만들어 관객에게 알리고 싶었다. “노섭의 이야기는 내가 최근에 보고 들었던 어떤 것보다 충격적이었다. <안나의 일기>가 유럽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만큼 <노예 12년>도 미국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인간적인 삶에 대한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시기의 미국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많은 부분들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극 중 내용과 별개로 스티브 맥퀸이 <노예 12년>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노예 12년>까지 세 편의 연출작을 통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구속된 자들의 사연을 일관되게 주목해온 그이기 때문이다. 데뷔작 <헝거>는 1981년 벨파스트의 메이즈 교도소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다 66일 만에 사망한 IRA(아일랜드 공화군) 소속 보비 샌즈의 실제 옥중 투쟁을 소재로 한다. 두 번째 연출작 <셰임>은 겉으로는 모든 게 완벽해 보이지만 사적 관계에서는 의미를 찾지 못해 사고파는 섹스에만 집착하는 뉴요커의 초상으로 현대인의 공허함을 묘사했다.

스티브 맥퀸은 다양성의 가치가 급격히 추락한 현대사회에서 다수에 의해 의도적으로 감춰지고 탈골되어 온 소수의 사연, 즉 흑역사를 발굴해 일반에 알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노예 12년>의 원작만 해도 그렇다. 솔로몬 노섭이 1853년 1월 극적으로 구조되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해 그해에 베스트셀러로 올랐다. 하지만 영화화 전까지 스티브 맥퀸을 포함해 이 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출간 당시는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주류의 사연이 아닌 까닭에 금새 잊힌 것이다. “나 또한 그전까지 이 책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대부분의 미국인들도 들어본 적이 없을 거다.”

말하자면, 스티브 맥퀸의 영화들은 극 중 인물들을 대리해 다수라는 이유로 논리를 획득한 비상식적인 세상에 맞선 투쟁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맥퀸이 영화를 통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주제는 ‘생존’이다. 맥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가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다수의 폭력으로부터 박해받는 인물들이지만 이를 감내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꺾는 대신 <헝거>의 보비 샌즈처럼 (아이러니한 방식이지만) 단식을 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노예 12년>의 솔로몬 노섭이 ‘우량한 가축’ 취급을 받으며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지옥을 경험하면서까지 생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건 자유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살아남아야지만 더 좋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것. 이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스티브 맥퀸은 인간의 정신을 말살하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행위이고 무엇보다 그런 폭력에 맞선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설파한다. 그래서 맥퀸의 작품을 본다는 건 유희를 위해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와는 또 다른 자세가 요구된다. 실제로 스티브 맥퀸은 자신의 주인공이 고통 받는 모습을 축소하거나 은유하는 식으로 처리하는 법이 절대 없다. 극 중 인물처럼 관객 또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끔 그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도록 연출을 가져간다.  

예컨대, <헝거>의 보비 샌즈를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는 단식 후 삐쩍 마른 몸을 구현하기 위해 실제로 20kg 가까이 감량한 일화는 유명하다. <노예 12년>에도 그에 필적할 만한 장면이 있다. 에드윈 앱스(마이클 패스벤더)는 백인 아내를 두고 흑인 여자 노예를 노리개 삼는 악질 농장주다. 그 여자 노예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며 체벌을 줄 때 앱스는 노섭에게 대신 채찍을 들게 한다. 농장주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 노섭은 동료에게 채찍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일련의 과정을 단 한 번의 편집과정 없이 롱테이크로 따라가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노섭의 상황을 그대로 전시하는 것이다.

그 장면이 주는 여운은 충격과 다르지 않아서 관객들은 대개 노섭이 당하는 육체적 고통과 그에 따른 도덕적 고뇌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스티브 매퀸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제기하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만약 당신이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영국 런던에서 흑인으로 태어난 스티브 맥퀸은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줄곧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다만 고민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연출하는 것이었다. <노예 12년>이 특별했던 것은 자유인으로서의 일상적인 행복과 노예로서 갑자기 들이닥친 끔찍함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의 관점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노예 제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근데 그건 그냥 나 혼자 생각했던 영화 소재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고민하다보니 영화를 보는 우리와 같은 자유인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가족이 있는 평범한 사람. 누가 납치되어 노예가 된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그래서 맥퀸의 영화는 이야기가 속 시원히 종결되는 경우가 없다. 대개의 영화 들처럼 선인에게는 그에 합당한 해피엔딩을, 폭력을 휘두른 이에게는 그에 따른 벌을 내리지 않는다.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비상식과 부조리가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 사건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관객들의 각성을 요구한다. 스티브 맥퀸 영화의 진가는 바로 여기에 있다.

BEYOND
(2014년 3월호)

<셜록> 베네딕트 컴버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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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셜록. 1854년에 태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현재 나이로 치면 160세. 그것이 가능하냐고? 나에 대한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내 특기 중 하나가 죽었다 다시 살아 돌아오기라는 것을 말이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죽다 살아난 나의 이력을 잊지는 않았겠지.

중요한 건 나의 불사(不死) 여부가 아니다. 얼마 전 나는 독특한 의뢰 한 건을 받게 됐다. 내게 오는 의뢰란 것이 대개는 범죄와 연관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어떤 인물에 대한 조사였다. 그 인물은 놀랍게도 나의 행세를 하고 돌아다닌다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였다. 문의한 쪽에서는 참고가 될 거라며 DVD 몇 장을 놓고 갔는데 다름 아닌 <셜록>이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간파했다. 문의한 쪽에서 원하는 건 조사가 아니었다. 컴버배치에 대한 나의 인상이었다.

DVD 커버를 보는 순간 놀랐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천하를 품은 것 같은 이마 위를 살포시 가린 헤어스타일, 날카로운 눈매, 굳게 다문 입술을 호리병에 담아 넣은 듯한 인상은 영락없는 나, 바로 셜록이었다! 짙은 눈썹 아래 깊게 패인 눈매는 세상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나타내고 (실제로 그는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티베트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다시 돌아와 연기에 입문했다.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날렵한 코선 옆에 두툼히 자리 잡은 살점들은 묘한 퇴폐미를 자극한다. 그게 바로 나다. 나처럼 살인사건에서 만족을 얻고 고독하게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에게는 아이러니한 매력이 존재한다.

안 그래도 <셜록>의 마크 개티스와 스티븐 모팻 작가가 소녀를 유혹하는 변태 성향의 귀족 청년을 연기한 <어톤먼트>(2007)의 컴버배치를 보고 셜록 역에 낙점했다는 일화를 알게 됐다. 사람들은 나의 매력이 치밀한 추리 능력에 있다고 보는 데 반은 틀린 얘기다. 그 정도로는 2세기 가깝게 팬들의 사랑을 받기는 어렵다. 지성과 퇴폐(?)를 오가는 인간적인 면모 덕에 지금껏 장수하는 캐릭터가 된 사실을 사람들은 간과하고는 한다. (“그놈의 잘난 척은”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존 왓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

그런데 시즌 3의 1부 ‘빈 영구차’는 너무 나와 왓슨의 브로맨스에 초점을 맞춰 시리즈의 본질을 흐린 경향이 강하다.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브로맨스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컴버배치를 좋아하는 여성들은 그런 자신을 일러 ‘컴버비치 Cumberbitches’라고 부른다고? 오~ 세상에!) 탐정으로서의 추리 능력을 희생하면서 셜록과 존의 러브라인을 부각한 건 지나친 처사였다. 사랑은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지만 뭐, 그 심정 모르는 바 아니다. 나의 아버지 코난 도일도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죽은 나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좀 억지스러운 설정을 가져왔으니 그에 비하면 그리 실망스러운 수준은 아닐 수도 있겠다.

오히려 더 멋진 결말을 이끌어낼 거라 본다. ‘빈 영구차’에 대한 팬들의 시들한 반응을 보고 컴버배치가 남긴 말이 있다. “다시 살아온 배경이 흐릿하다고 해서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와 관련해 멋진 에피소드가 기다리고 있다. 나와 (존 왓슨을 연기한) 마틴 프리먼이 어서 빨리 2부와 3부가 공개되길 원하는 이유다.” 그의 말은 내가 보장한다. 컴버배치처럼 소신 있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다. “내 사진을 찍을 시간에 더 중요한 걸 세상에 알리라”며 파파라치에게 일갈한 그가 아닌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 또한 그렇게 했을 거다. 그처럼 나와 컴버배치는 닮은 점이 많다.

난 하루라도 사건이 없으면 입에 가시가, 아니 폐가 독성 강한 니코틴을 부를 만큼 범죄가 고픈 사건중독자다. 컴버배치는 지독한 일중독자다. <셜록> 시즌 1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후 그는 지금까지 쉬어본 적이 없다. <셜록> 이후 <워호스>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대니 보일의 연극 <프랑켄슈타인>에, <셜록> 시즌 2에 이어 TV미니시리즈 <파라다이스 엔드>와 <스타트렉 다크니스>와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 <셜록> 시즌 3를 마치고는 <노예 12년>과 <제5계급>에 연이어 출연해온 그다.

우리 같은 중독자들의 특징은 일만 많이 맡는 게 아니라 모두가 만족하는 인상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데 있다. 나에게 해결 못할 사건이 없는 것처럼 (앗! 또 다시 왓슨의 목소리가…) 컴버배치 역시 맡은 캐릭터에서 모두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보였다. 사람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추리력을 타고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의 능력은 후천적으로 부단히 노력한 결과다. 컴버배치의 ‘셜록의 재림’ 외모야 타고난 것이겠지만 내가 워낙 복잡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라 자세히 연구하지 않으면 연기하기 결코 쉬운 배역이 아니지 않나.

다행히 12살 때 내가 등장하는 소설을 읽고는 홀딱 빠져들었다지. 셜록 배역에 확정된 뒤에도 장편 4편과 단편 56편을 모두 섭렵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눈에 띄게 몸무게를 감량(“수영과 요가로 살을 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했다는 일화는 컴버배치가 소설을 단순히 읽기만 한 게 아니라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했음을 말해준다. 소설 <주홍색 연구>에서 존은 나에 대한 첫 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키가 1미터 80센티미터가 넘었는데 너무나 깡말라서 훨씬 더 커보였다.’ 나 같이 매일 사건을 추리해야 하는 탐정은 직업의 성격상 몸이 둔해서는 곤란하다. 최대한 군살을 없애야 생각을 빨리할 수 있고 사건 현장에 신속하게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육체는 떼어놓고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건 내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다. 연기도 마찬가지일 터. 컴버배치 이런 얘기를 한 사실을 알고 있다. “셜록을 연기하면서 가장 크게 세운 목표는 천재적인 추리 능력에 더불어 그에 걸맞은 신체 조건까지 완벽한 홈즈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컴버배치가 <셜록>에 대해 한 말 중 이게 가장 맘에 든다. 물론 홈즈라고 표현한 부분이 실망스럽기도 하다. 홈즈라는 성(性)이 내 개성을 죽이는 것 같아 이렇게 불리기 싫어한다는 걸 컴버배치가 간과한 것 같아서 말이다.

그 정도만 빼면 난 컴버배치가 연기하는 셜록이 성격 구현부터 외양 재현까지 거의 완벽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컴버배치도 나처럼 불사의 존재로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을 거라고 확신한다. 죽지 않고 산다는 것? 꼭 살아있어야만 사는 건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팬들이 계속해서 나를 소환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미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셜록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신의 대표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 배우가 대표 캐릭터를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오랫동안 기억될 배우인 것은 확실하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4년 2월호

<수상한 그녀> 심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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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은 갓 20대인 여배우치고는 너무나 어른스럽다. 주인공으로 출연한 <수상한 그녀>가 개봉한 지금 각종 인터뷰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우선 그 말투부터가 20대답지 않다. 대개 또래의 여배우라면 “~예요”라고 둥글게 문장을 종결 어미하며 말꼬리를 흐리기 일쑤인데 그녀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입니다” 자기주장 확실한 말투를 구사한다. 여전히 젖살이 가라앉지 않은 앳된 얼굴을 하고 쏟아내는 그녀의 특징적인 말투를 음미하다보면 이율배반적인 매력이 넘쳐난다.

<수상한 그녀>에서 심은경이 연기하는 배역이 일종의 애늙은이다. 70대 할머니가 어느 순간 20대의 몸과 외모를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70대의 오말순(나문희) 할머니에게 유일한 자랑거리는 대학교수인 아들 반현철(성동일)이다. 하지만 말순이 너무 아들만 싸고도니 며느리는 그게 아주 스트레스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병원에 입원까지 할 정도인데 그 때문에 현철은 아들과 딸을 불러 가족회의를 소집한다. 그 결과, 말순을 요양원에 보내자는 의견으로 수렴되니, 우연히 이를 엿들은 말순은 그 충격에 집을 나오고 만다.  

내가 자식새끼를 위해 희생해 온 세월이 얼마인데 이런 대접을 받아. 서러움에 무작정 길을 걷던 중 말순은 청춘사진관을 발견한다. 이참에 영정사진이나 찍어볼 겸 들어간 청춘사진관에서 말순은 사진을 찍던 중 20대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신은 70대인데 몸은 20대로 바뀌어있는 것. 세상에 이런 일이! 당황스러움도 잠시 20대의 육체를 갖게 되고 그동안 앓았던 관절염의 고통도 거짓말처럼 사라지면서 말순은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청춘사진관 입구에 걸려 있는 젊은 시절의 오드리 헵번 사진을 보고 오두리(심은경)로 이름을 바꾼 말순은 남자들의 대시를 받는 등 전에 없던 경험을 하게 된다.

심은경의 지금 위치를 생각하면 <수상한 그녀>의 오말순, 아니 오두리를 선택한 건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 <수상한 그녀>는 처음으로 맡은 성인 역할이다. 심은경이 성인이라고? 그녀의 이름을 대중에게 크게 각인시킨 <써니>(2011)의 여고생 나미,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이하 ‘<광해>’)의 어린 궁녀 사월이를 생각하면 좀 생소한 어감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1994년생인 심은경은 올해 갓 스무 살이 된 성인이다. 말하자면 <수상한 그녀>의 오두리는 그녀에게 성인 신고식인 셈이다.

아역 이미지가 강한 배우들이 성인 연기자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주로 찾는 방법은 ‘파격’이다. 파격이라고 하면 옷을 벗거나 베드신에 도전하는 등의 과감한 연기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수상한 그녀>에서의 심은경의 연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파격에 가깝다. 오두리 캐릭터가 재미있는 건 몸은 파릇파릇하지만 하는 행동은 영 구닥다리(?)라는 점이다. 그 어린 외모에 브로콜리를 연상시키는 아줌마 파마를 하고 연신 사투리를 쏟아내는 그 부조화라니. 행동은 또 어떻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느라 애쓰는 지하철 옆 좌석 엄마를 향해 모유 잘 나오는 방법에 대해 충고하는 오두리를 보고 있으면 황당하면서도 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런 심은경의 연기를 두고 <수상한 그녀>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감정이 풍부한 배우는 많지만 그 어린 나이에 감정을 정확히 조절할 줄 아는 배우는 드물다”고 극찬한다. 하긴 <수상한 그녀>는 심은경의 캐스팅이 없었으면 쉽게 만들어지기도, 또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힘들었을 영화다. 애초 기획 당시에 오두리는 ‘쭉쭉빵빵’의 미녀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할머니라는 일반의 이미지가 통통하고 품이 넓은 걸 감안하면 심은경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이전까지 그녀가 연기했던 캐릭터를 살펴봐도 오두리 역에 제격인 배우는 심은경 밖에는 없다.

예컨대, <광해>의 사월이는 집안 형편이 힘들어 자신의 입을 줄이면 부모님이 생활고를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어린 나이에 궁으로 들어온 속이 깊은 궁녀였다. <광해>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그리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사월이 역에는 심은경 밖에는 없다며 <써니> 이후 연기 생활을 중단하고 미국 유학을 가있던 그녀를 설득해 영화에 참여시켰다. 실제로 심은경은 어린 나이에 유학을 생각했을 정도로 연기자로서 너무 정신없이 활동에 매진해왔다. 열한 살부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해 <단팥빵>(MBC, 2004) <황진이>(KBS2, 2006) <태왕사신기>(MBC, 2007) <헨젤과 그레텔>(2007) <불신지옥>(2009) <퀴즈왕>(2010) 등에 연달아 출연해오며 정중동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써니> 촬영 후 심은경은 미국의 피츠버그에서 3년간의 유학생활을 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수상한 그녀>를 통해 성인 연기자로서 출발점에 섰다. 나이에 비해 속이 깊은 배우이니만큼 목표도 남다르다.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는 연기자보다 오랫동안 기억될 만한 연기파 배우를 꿈꾼단다. 우리가 언제 스무 살 나이의 여배우에게서 이런 당찬 목표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황동혁 감독이 확인시켜준 바, 그녀는 이미 상당 수준의 연기력까지 갖추고 있다. 자, 당신이 <수상한 그녀>의 감독이라면 오두리 역할에 누구를 캐스팅하겠는가. 겉보기에는 어려 보여도 코믹부터 감동까지 무르익은 연기력을 갖춘 심은경 외에 다른 배우를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처럼 심은경은 그 나이대에 이미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 배우 중의 배우다.  

시사저널
NO. 1274

<남자가 사랑할 때>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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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은 ‘순정마초’다. 지금껏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들을 살펴보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너는 내 운명>(이상 2005) <행복>(2007)과 같은 ‘순정’ 멜로와 <사생결단>(2006) <부당거래>(2010) <신세계>(2013) 등의 ‘마초’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범죄영화로 적이 장르가 갈린다. 그래서 멜로물에 등장해서는 한없이 부드럽기보다는 다소 어수룩하거나 거친 면모로 어필했고 범죄영화에서는 법을 어기는 순간에도 관객의 동정심을 자아내는 연기로 관심을 모았다. 만약 이 두개의 캐릭터가 합쳐진다면?

<남자가 사랑할 때>는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못한 거친 남자가 첫 눈에 반한 여자를 사랑하게 될 때 생길법한 사연을 다룬다. 태일(황정민)은 겉으로는 사채회사의 부장이지만 빌려준 돈은 어떻게 해서든 받아내는 일종의 용역깡패다. 호정(한혜진)을 만나게 된 것도 그녀의 아버지가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아서다. 그 돈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아버지 병수발을 들고 있는 그녀를 보고는 첫 눈에 반한 것. 진심으로 여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는 태일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지만 너무 직설적이라 오히려 호정의 반발을 산다. 사채 거래하듯 각서를 내밀며 만나줄 때마다 빚을 제해주겠다고 하니 어떤 여자가 그에 선뜻 응할까.

사실 태일이란 인물에게는 <신세계>에서 (역시!) 황정민이 연기했던 화교 출신의 조직 2인자 정청의 DNA가 고스란히 이식되어 있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기획 자체가 그렇다. 황정민은 <신세계>를 촬영하던 중 제작자와 진심이 가득하고 걸쭉한 멜로 영화를 하기로 의기투합하고 이 영화에 참여했다. 황정민 본인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관객들과 교감할 때 배우로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결국 <남자가 사랑할 때>는 정청이 만약 조직에 들어오기 전 사랑에 빠졌다면 어떤 모습일까, 가 출발점이었다.  

그에 대한 답변의 캐릭터가 바로 태일이다. <신세계>를 본 이들이라면 정청 같은 이에게도 과연 사랑이 어울릴까 싶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정청은 악역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감정이 물씬한 인물이었다. 자신을 반대하는 라이벌 2인자 무리에게는 식칼도 휘두르는 무뢰한이지만 경찰신분을 속이고 조직에 들어온 이자성(이정재)에게는 피를 나눈 형제라며 한없이 관대했던 그였다. 황정민이 연기한 인물들이 대부분 그랬다. 겉으로는 거칠어도 계산 없이 살아가는 탓에 서툰 진심일지언정 결정적인 순간 마음속 순수함이 튀어나와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태일도 마찬가지다. 호정을 만나기 전까지 태일의 정서를 지배하는 건 반드시 돈을 받아내야겠다는 깡패 근성과 여의치 않을 경우 폭력도 불사하는 호전성이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등장하는 태일의 채권 회수 장면을 보자. 형편이 넉넉지 않아 보이는 동네 한약방에 떼인 돈을 받으러 간 태일은 며칠 간 여유를 달라는 사장에게 가져간 석유를 삼키라고 협박한다. 태일 자신이 먼저 석유를 마신 후 라이터를 꺼내들자 두려움을 느낀 사장은 그제야 숨겼던 돈을 꺼내온다. 재밌는 건 그 다음이다. 자식 학원비까지 탈탈 털었다고 하소연하는 사장에게 태일은 자식새끼 공부는 시켜야지 하며 받은 돈 일부를 되돌려주는 것이다.

누가 봐도 인간 실격자에 가까운 태일에게 개선의 여지를 남겨두는 오프닝은 황정민이라는 배우로 진심을 획득한다. 놀란 토끼 같은 눈매와 둥글둥글한 얼굴, 긴 팔을 내려뜨린 채 터벅터벅 걷는 순한 인상의 황정민이 연기하기에 극 중 태일의 행동은 절대적으로 악하거나 폭력적으로 관객을 압도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신경만 써주면 선한 사람으로 거듭날 것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라면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길에서 만나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건달의 서툰 구애에서 진심을 목격하고 끝내 마음을 여는 호정의 심리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남자가 사랑할 때>는 황정민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여성 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 같은 영화다. 다른 이들에게는 주먹을 휘둘러도 나에게 만큼은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처럼 순한 양이 되는 판타지 속의 남성상을 구현해 보이는 것. <남자가 사랑할 때>의 기자시사회 후 열린 공개 인터뷰 자리에서 황정민은 한혜진과의 연기 호흡이 어땠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남자들과 싸우는 연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여배우와 호흡을 맞추려다보니까 눈을 못 마주칠 정도로 쑥스러웠다.” 그러자 객석의 여자들 사이에서 흐뭇한 미소와 함께 ‘오~’하는 탄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화는 태일의 호정을 향한 사랑 고백만큼이나 투박하지만 황정민이 지닌 그 순정만큼은 여전히 치명적이었다.

시사저널
NO. 1273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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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경지에 오른 열연'(엠파이어 매거진) ‘시체도 깨울 만큼 짜릿한 연기'(버라이어티) ‘단 한 순간도 눈을 감아선 안 된다'(뉴욕 옵저버) 모두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에 대한 유수 영미권 언론들의 평가다. 과장된 수식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디카프리오는 이번 영화에서 일생에 남을 연기를 펼쳐 보인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조던 벨포트는 월스트리트에 입성하여 억만장자가 된 후 쾌락을 쫓다가 FBI의 표적이 되는 주식중매인이다. 인생의 최정점에 섰다가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인물형(形)은 디카프리오에게는 꽤나 익숙하다. 이번 영화는 그가 스콜세지 감독과 함께 한 다섯 번째 작품이다. 스콜세지의 작품에서 디카프리오는 대개 겉은 화려하되 속은 완전히 썩어문드러진 아메리칸 드림의 초상을 연기했다.
 
<갱스 오브 뉴욕>(2003)의 발론은 폭력 조직에게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며 스스로 폭력배가 되는 인물이었다. <에비에이터>(2004)의 하워드 휴즈는 할리우드를 쥐락펴락하는 거물 제작자였지만 너무 큰 야망이 독이 되어, <디파티드>(2006)의 빌리는 갱스터 조직을 위해 신분을 숨기고 경찰이 되지만 정체성의 혼란으로 추락을 거듭했다. 또한 <셔터 아일랜드>(2010)의 테디는 연방보안관 행세를 하지만 실은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병자였다.
 
디카프리오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조던 벨포트 역할에 대해 역사상 가장 방탕했던 로마 황제 칼리굴라에 비유하기도 했다. 단 한 통의 전화로 정크본드, 즉 수익률이 높지만 그만큼 위험률도 높은 채권을 고객에게 팔아넘기면서 벌어들이는 돈은 1980년대 당시 FBI의 1년 연봉인 6천만 원을 훌쩍 넘긴다. 쉽게 돈맛을 본 벨포트는 화려한 언변과 수려한 외모를 이용해 급기야 주가 조작까지 손에 대고 월스트리트 최고의 억만장자가 된다.
 
주체할 수 없는 돈이 몇 분 단위로 불어나면서 벨포트의 흥청망청한 생활은 그 끝을 모르는 지경에 이른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파티에, 그의 곁을 떠날 줄 모르는 창녀들, 거기에 코카인과 모르핀 투약까지, 탐욕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벨포트의 일생에 맞춰 디카프리오 역시 전에 없던 추한(?) 연기로 이미지의 추락을 감수하는 열연을 펼친다. F-워드를 입에 달고 살고 자신의 엉덩이에 초를 꼽아가며 창녀와 즐기는 변태적 성행위, 약에 너무 취해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은 물론 침까지 질질 흘리는 꼴이라니. 자신을 희생하며 연인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타이타닉>(1998)에서의 디카프리오는 온데간데없다.  
 
이에 대한 디카프리오의 얘기를 들어보자. “과연 관객들이 극악무도한 짓을 일삼는 캐릭터에 호응을 해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일찍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나에게 “네가 진정으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이를 배반하지 않는다면 관객들은 그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디카프리오는 “관객들에게 조던 벨포트를 일부러 좋아할 수 있게 연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벨포트의 성공과 몰락을 미화하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이번 영화에서 망가짐을 불사한 연기로 승화된 것이다.  
 
망가진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디카프리오는 <로미오와 줄리엣>(1996) <타이타닉>과 같은 대중영화와 멀어지는 대신 좀 더 예술적인 야망을 품은 영화에 도전해왔다. 스콜세지와의 협업은 이미 언급한대로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J. 에드가>(2011),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 샘 멘더스의 <레볼루셔너리 로드>(2009) 등 소위 말하는 거장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경우, 벨포트의 회고록 <캐칭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Catching the Wolf of Wall Street>의 판권을 직접 구입해 스콜세지를 감독으로 고용했을 정도다. 그 배경에는 디카프리오가 거장과의 작업을 통해 과거와는 다르게 새롭게 구축해온 특정 이미지를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가 좀 더 확장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스콜세지는 <디파티드>에서의 그의 연기를 두고 이렇게 평을 한 적이 있다. “이 바닥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죽을 것을 아는 불쌍한 어린 짐승의 흐느낌 같은 연기였다.”
 
확실히 디카프리오는 강렬한 인상 그 이면에 연약한 어린 짐승을 품고 있는 연기로는 세계 최고다. 삶의 정점에 선 인물이 몰락하는 테마로 잡은 영화가 기획될 때면 0순위처럼 디카프리오가 언급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디카프리오는 그처럼 자신의 이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까닭에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영화화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벨포트는 몰락으로 인생의 끝을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캐릭터들과는 좀 달라 보인다.
 
주가조작이 발각되어 FBI에 체포된 후 호송버스로 실려 갈 때 다음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좌절하는 벨포트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그를 잡은 FBI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바라보는 승객들의 모습이다. 죄인으로 잡혀간 벨포트의 모습보다 지하철 안 승객들의 표정이 더욱 좌절에 가까울 만큼 죄인처럼 보인다. 그리고 석방된 조던 벨포트가 자신의 경험을 강연을 통해 들려주며 재기를 모색하는 장면으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끝을 맺는다.
 
죄를 짓더라도 그 죄의 경험이 다시금 부의 밑천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를 맛본 자는 그 부가 끝까지 유지되지만 하층민들은 여전히 최악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조던 벨포트를 일러 ‘월스트리트의 여우’라고 칭했을 터. 이를 간파해 이미지를 확장하고 연기의 폭까지 넓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할리우드의 여우’라고 이름 붙여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시사저널
NO. 1272

<용의자>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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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에 이은 탈북자 삼부작으로 명명된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특성이 탈북자로 집약되면서 새로운 캐릭터로 조망 받게 된 점이 가장 크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관객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인기 많은 배우를 캐스팅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김수현, 최승현(a.k.a. T.O.P), 그리고 공유라는 소위 ‘꽃미남’ 스타가 공통적으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북자 삼부작이라는 표현에는 어느 정도 비아냥거림이 묻어있기도 하다. <용의자> 이전 개봉했던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동창생>의 탈북자라는 ‘팩트’를 김수현, 최승현이라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외모의 소유자가 연기하다보니 이야기가 단순히 ‘판타지’로 흘렀다는 것이다. 그러니 안 봐도 비디오, <용의자>도 그와 같은 황당한 전개를 보여줄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이 탈북자 삼부작의 명명 속에 담겨 있다.

그런데 공유를 김수현, 최승현과 함께 꽃미남 배우 부류로 함께 묶는 건 좀 부당하다. 공유의 잘 생긴 외모에 딴죽을 걸 생각은 아니지만 1979년생인 그를 꽃미남이라고 칭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그와 같은 고민에서 공유는 <용의자> 출연을 결정했다. “시나리오 받았을 때 고민이 있었어요.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있었잖아요. 그렇지만 소재보다 캐릭터를 먼저 봤기 때문에 북한 소재에 대한 큰 고민은 안 했어요.”

공유가 <용의자>에서 맡은 역할은 전직 북한의 최정예 특수요원 지동철이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지배 체제가 바뀌면서 반역자로 몰리고 가족까지 잃으면서 남한으로 망명한다. 남한에서 대리운전으로 연명하는 이유는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인 전 동료를 찾아 복수하기 위해서다. 아무런 소득도 없어 지쳐가던 차, 자신을 돌봐주던 탈북자 출신의 대기업 회장(송재호)이 그에게 전 동료의 행적이 적힌 쪽지를 전달한다. 이를 받고 돌아가던 중 이상한 낌새를 느껴 다시 회장님을 찾아가지만 이미 살해된 상태다. 급기야 지동철은 사건 ‘용의자’로 몰려 도망자 신세가 된다.    

확실히 <용의자>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과는 다른 식의 전개 양상을 보인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이 여성 관객이 가진 모성애를 자극하는 쪽으로 김수현과 최승현의 매력을 극대화한다면 <용의자>는 처음부터 액션으로 몰아붙이며 공유의 남성적인 매력에 카메라를 정조준 한다. 전 동료를 쫓아 가족의 복수를 감행하려는 지동철 본인이 거꾸로 국정원과 기무사에 쫓기는 몸이 된 가운데 영화는 137분의 상영 시간 내내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그 와중에 도심에서의 카체이싱을 비롯하여 격렬한 액션씬이 반복되니, 액션 연기를 펼치는 동안 공유는 손가락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격술을 하다 보니 손으로 겨루는 상황이 많았어요. 시스테마와 절권도가 합쳐진 무술인데 러시아 무술인 시스테마에 더 가까워요. 촬영 들어가기 3개월 전부터 체육관에 가서 훈련을 받았어요. 영화에 액션이 워낙 많고 다양하다 보니까 기초적인 동작부터 하나둘씩 몸에 익힌 다음 쫙 이어서 전부 익히고 반복 연습하는 거죠.” 공유에게는 <용의자>가 특별한 경험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동안 이런 식의 액션 연기를 펼쳐 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를 선택하는 데 있어 선이 굵은 남성적인 영화보다는 <도가니>(2011)처럼 현실이 밑바탕 된 사회비판물이거나 <김종욱 찾기>(2010)처럼 소소한 사랑 이야기를 선호해왔다.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동네 가옥의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도심 도로에서 차들과 부딪혀 가며 레이싱을 펼치는 <용의자>는 공유에게는 처음인 경험, 그의 연기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변신인 셈이다. 그런 노력 덕분에 <용의자>를 보고 있으면 공유가 지동철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스크린 밖으로 그대로 전달된다.

그런데 그것이 언뜻언뜻 진짜처럼 보이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 지동철이라는 캐릭터가 온전히 공유의 것이라는 인상이 들지 않는 것이다. <용의자>가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본 슈프리머시>(2004) <본 얼티메이텀>(2007) 등 <본> 시리즈의 버림받은 전직 비밀 요원이라는 설정과 실제에 가까운 액션 콘셉트를 그대로 따르는 까닭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삼는 건 아니지만 서울 도심의 곳곳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자동차가 거의 박살날 정도의 추격전을 그대로 답습하며 <본> 시리즈 특유의 흔들리는 화면과 갑작스런 카메라 줌 인 같은 촬영 기법을 가져온다.

그러니까, 공유는 <용의자>의 맷 데이먼이다. 다른 게 있다면, 맷 데이먼은 <본> 시리즈의 출연 전 지적인 배우로 이미지를 쌓아왔다. 그리고 이전 액션물들이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워제너거 같은 하드바디를 앞세웠다면 <본> 시리즈는 맷 데이먼을 캐스팅, 자연스레 머리를 쓰는 인간 병기라는 새로운 액션 스타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맷 데이먼에게 변신이라기보다 캐릭터의 확장이었다. 하지만 공유는 <용의자>를 통해 댄디한 이미지에서 상남자로의 360도 변신을 꾀하였다. 기존의 공유를 알고 있던 팬들에게는 갑작스럽고 난데없는 변화다.

그 변화가 썩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늘 새로운 모습을 강요하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변신은 미덕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왕의 변신이었다면 공유가 아니면 안 될 캐릭터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과연 <용의자> 이후 공유의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난 오히려 이 배우의 다음 작품이 더 궁금해진다. 그래야만 공유가 지향하는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 본문 중 인용구는 맥스무비 2013년 12월호 <용의자> 공유 인터뷰에서 가져왔습니다.)

시사저널
NO. 1269

<변호인>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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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변호인>에 출연한 송강호와 관련해 의도가 불분명한 기사, 아니 제목이 떠서 인터넷이 떠들썩하다. ‘송강호 <변호인> 후 작품 섭외 끊겨, 데뷔 후 처음”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요지는 이렇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래 송강호는 줄곧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개봉할 때면 차기작 2~3편 정도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참여하고 있는 작품이 없어 오랜만에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근데 이게 제목만 봐서는 꼭 <변호인>이 원인이 되어 작품이 안 들어오는 것처럼 호도되고 있는 것이다.

<변호인>은 고(故)노무현 전(前)대통령이 돈만 밝히는 변호사에서 인권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변호사로 변해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부림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노무현을 모델로 한 인물, 즉 송우석 변호사를 연기한다. 1980년대 초반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던 송우석은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동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았다. 하지만 부동산 열풍을 타고 부동산 등기와 세금 자문을 전문으로 하면서 돈을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셋방살이에서 아파트 입주자가 되고 취미로 요트를 몰 정도로 생활이 안정된 송우석은 7년 전 밥값 신세를 졌던 국밥집을 찾아가 뒤늦게 사과하고 단골이 된다. 하지만 국밥집 주인아주머니의 아들이 불온서적을 읽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면서 송우석은 자각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이유도 황당하지만 그걸 읽었다고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하는 현실에 개탄, 상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것이다.  

살펴본 일화들은 대개 노무현의 실제 삶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노무현의 잔상을 지우고 <변호인>을 보게 되면 상식을 지키기 위해 힘쓴 소시민의 영웅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이 영화에는 노무현을 직접 연상시키는 외모나 호칭 등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이 때문에 항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것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 정부의 외압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한 <변호인>제작사 측의 답변에 따르면, 영화를 만드는 동안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고 하니 그저 음모론적인 시각일 뿐이다.

다만 그런 추측이 나오는 배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는 있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현 정부와 관련한 이념이나 사안에 대해 반(反)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전반에 깔려 있을 정도로 경직된 상황에 처해있다. <변호인>은 바로 그와 같은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반영하기위해 1980년대의 특정 사건을 끌고 온 것으로 보인다. ‘불온서적’이라고 정부가 임의로 지정한 책을 읽었다고 체제 반역자로 낙인찍고 그런 이들을 변호했다고 빨갱이로 매도되는 극 중 묘사는 한국의 작금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영화는 그와 같은 비극적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요컨대, 행동의 주체는 빽 없고 돈 없고 가방 끈 짧은 보통 사람(들)이 될 때 더 강력한 힘을 갖지 않겠냐는 것이 <변호인>의 입장이다. 그런 맥락에서 송우석 역에 그 어떤 잘나고 인기 많은 배우보다 송강호가 캐스팅된 연유이기도 하다. 이는 송강호가 못 나고 인기가 없다는 의미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송강호는 좌절은 하되 포기하지 않는 소시민의 이미지로 지금껏 롱런해온 배우다. <반칙왕>(2000)의 대호는 회사에서는 무능하고 집에서는 인정 못 받는 자식이지만 그와 같은 스트레스를 레슬링으로 푸는 보통사람이었고 <괴물>(2006)의 강두는 한강에서 어렵게 매점을 운영하는 약자임에도 불구, 괴물에게 납치당한 딸을 구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먼저 행동에 나서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였다. <밀양>(2007)의 종찬은 좋아하는 여자에게 적극적으로 고백할 마음은 없지만 뒤에서 묵묵히 도움을 주는 카센터 직원이었다.      

지금껏 송강호가 맡은 역할은 어떤 이념이나 정파, 집단의 이익에 복무하기보다 그저 삶을 위해 노력하는 보통 사람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래서 출연하는 영화가 SF이든, 판타지이든, 공포이든 그가 가진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이미지가 장르의 허황됨(?)을 넘어서 사실성을 획득했다. 그래서 올해 그가 출연한 세 편의 영화는 각기 다른 시간대, 즉 과거(<관상>), 현재(<변호인>), 미래(<설국열차>)를 넘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관객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런 점에서 <변호인>은 노무현이 아니라 송강호에 대한 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송강호라는 소시민을 전면에 내세운 보통 사람들의 영화니까 말이다. 그러니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변호인> 때문에 섭외가 끊겼다고? 해당 제목을 지은 이도 그 자신이 얼마나 창피했던지 특정 단어를 슬쩍 추가해 얼마 후 제목을 이렇게 바꾸었다. ‘송강호 익살 “<변호인> 후 작품 섭외 끊겨, 데뷔 후 처음”‘ 올해에만 3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쉼 없이 달려온 송강호가 충분한 휴식 후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시사저널
NO. 1268

<창수> 임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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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에게는 특유의 캐릭터가 있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 최근 가수 은퇴를 번복하며 새롭게 발표한 트로트 댄스곡 ‘문을 여시오’의 뮤직비디오다. 여기서 그는 흰 와이셔츠에 검은 추리닝 바지, 그리고 1:9의 가르마 머리를 하고 나와 무표정으로 코믹한 연기를 펼쳐 보인다. 오랜만에 활동인 만큼 변신보다는 기존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친 것. 뮤직비디오 속의 모습처럼 대중들이 임창정에게 기대하는 것은 삼류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이를 일러 속된 말로 ‘싸구려’, 고급하게는 ‘B급’이라 부르는데 발라드 가수로도 정평이 나있는 임창정은 오히려 배우로서 그와 같은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왔다. <비트>(1997)에서 극 중 정우성의 허풍쟁이 친구로 출연해 “내가 17대 1로 싸운 사람이야”와 같은 코믹한 유행어를 남겼고 <색즉시공>(2002)에서는 성(性)에 환장한 변태 대학생으로 등장, 화장실 유머와 같은 다소 지저분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20편이 넘는 영화 출연작 중에서 절반 넘게 채워진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물이지만 <파송송 계란탁>(2005) <청담보살>(2009) <육혈포 강도단>(2010) <불량남녀>(2010) 등의 제목에서 연상되듯 임창정 캐릭터는 코미디 쪽에 방점이 찍힌다. <공모자들>(2012)에서 그간의 코믹한 이미지를 버리고 냉혈한 범죄자를 연기해 연기 변신에 성공했던 그는 <창수>에서 생애 첫 느와르 영화에 도전한다.

임창정이 맡은 역할은 제목 그대로의 창수. 극 중 창수의 직업은 징역살이 대행업자다. 타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형을 살고 나와 돈을 버는 밑바닥 인생인 것이다. 그야 말로 미래가 없는 생활을 하는 창수의 이름을 한자로 풀면, ‘슬픈(愴) 목숨(壽)’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의 운명이 슬프다는 것이지 캐릭터 자체는 그와 상관없이 슬픈 내색이라곤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우연히 마주친 여자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면서 창수 인생에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햇빛이 비추기 시작한다.

임창정은 창수의 연기를 두고 “안 웃기면서도 영화가 재밌을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데 확실히 이전의 코믹한 캐릭터와는 변화한 인상을 준다. 사실 창수가 짝사랑하는 여인은 지역 폭력조직 보스의 여자이면서 2인자의 내연녀로, 그 둘에게서 목하 도망 중인 상태다. 이런 사연을 알 리 없는 창수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니, 비극이 예정된 캐릭터라는 점에서 임창정 연기 인생의 가장 강력한 변신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는 웃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대신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진심이 창수의 캐릭터를 빽빽이 채우고 있다. 임창정은 그 점이 맘에 들었다. “비록 밑바닥 삼류인생을 사는 인물이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순수함을 지녔다. 자기만의 진심을 갖고 사람을 대할 줄 아는 캐릭터다.” 코믹한 캐릭터를 맡을 때면 슬랩스틱에 가까운 발산 연기로 좌중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면 <창수>에서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마음속에 푹 누른 채 관객의 동정을 사는 쪽에 가깝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부모도 모른 채 살아온 창수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돌이킬 수 없어도 좋으니까, 딱 한 번만 내 마음에서 시키는 대로 해보고 싶다”는 대사는 징역살이 대행업자라는 직업만큼이나 창수의 지난했던 삶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그것이 어디 창수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창수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없는 대다수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임창정의 입장에서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 어느 영화보다도 중요했다. “이번 역할은 ‘저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며 여러 사람에게 묻고 연기하며 좀 더 리얼하게 창수를 표현하려 노력했다.” 창수를 사랑과 위험에 동시에 빠뜨리는 여인을 연기한 손은서는 임창정의 연기에 대해 “임창정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그 인물이 된 것 같아서 신기했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극 중 창수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동생 역할을 맡은 정성화는 배운다는 자세로 임창정과 호흡을 맞췄다. “매 신, 매 대사 때의 자연스러움에 있어서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갖췄다.”  
 
접대성 발언이 아닌 것이, <창수>는 과연 임창정이 없었다면 영화적 재미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그리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느와르는 비열한 도시에서 예정된 패배를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 중심에 서지만 그의 발악한 사연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창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실패하고 있지만 임창정의 걸출한 연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관객을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임창정이 연기한 삼류 캐릭터를 일러 싸구려 혹은 B급이라고 평가하지만 그것은 결코 하대의 의미가 아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가깝고 감정이입하기 편하다는 상찬이다. 임창정은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명멸하는 엔터테인먼트의 별 들 사이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갖는 배우인 것이다.

시사저널
NO. 1267

<사이비> 연상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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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편영화 <창>의 개봉을 앞두고 연상호 감독과 인터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창>에 대한 얘기가 끝나갈 때쯤 당시 한창 준비 중이던 차기작 <사이비>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사이비>에 대해 “믿음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묻는 작품”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서 덧붙이길, “한국에서는 사회 현상에 대한, 자기만의 사회 정의에 대한 믿음을 종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믿음을 깰 수 있는 이야기다.”라고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어떤 계기로 그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게 됐는지가 궁금했다. “FTA 촛불집회를 보면서 그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나도 촛불집회를 열심히 나갔던 사람 중에 한 명이다. FTA가 노무현 정권 때 시작됐다. 그런데 대중이 노무현 정권 당시의 FTA를 대하는 방식과 촛불집회가 있었던 이명박 정권 때의 FTA를 대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다. 심하게 달랐다. FTA 초반만 하더라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검증부터 해서 시선이 안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똑같은 사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얘기하고 있는 거다. <사이비>는 거기에서 출발한 얘기다.”  

그의 얘기를 듣고는 <사이비>가 특정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사이비>는 수몰예정지역 주민들의 보상금을 노리고 장로를 사칭한 이와 목사가 교회를 세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정말로 기독교를 사랑하고 하느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사기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연상호 감독은 그런 사기꾼들을 ‘사이비’라고 칭하며 우리 사회의 어떤 병폐에 대해 고발하려 드는 것이다.

물론 극 중 발단은 교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비판이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는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이비>의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 마을 주민들이 거액의 보상금을 받고도 삶이 팍팍한 건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운명 때문이다. 가령, 암에 걸려 오늘 내일 하는 어느 아줌마는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치료가 될 것 같지가 않자 기적을 행한다는 사이비 장로의 말을 듣고는 광적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이성과 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극 중 사이비 장로는 이런 약점을 이용해 동네 사람들의 보상금을 헌금 명목으로 가로채는 것이다.

이걸 눈치 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마을 주민 중 딱 한 명이 있다. 김민철(양익준 목소리 출연)이다. 그런데 그는 한마디로 ‘인간 말종’이다. 딸이 대학에 가겠다고 밤낮으로 공장에서 일하며 모은 등록금을 하루아침에 도박으로 날려버린 것도 모자라 이에 항의하는 가족과 이웃을 폭력으로 제압한다. 그러니 사이비 장로의 정체에 대해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김민철이 이 사실을 폭로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믿어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아버지의 회개를 바라는 딸은 교회를 유일한 구원의 수단으로 삼았다가 맹목적인 믿음에 빠져 사이비 장로의 꾐에 그대로 넘어간다.

이렇듯 <사이비>에는 선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우리 이웃으로 보여도 그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라면 거기에 선악이고 도덕이고 개념 자체가 완전히 증발해버린다. 그 자신의 믿음만이 정당하고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극 중 인물들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괴물들이 따로 없다. <사이비>는 각자의 믿음을 종교화하는 이들이 부딪히는 괴물과 괴물의 싸움을 전시하면서 결국 이것이 계속해서 괴물을 낳는 환경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니 <사이비>가 어찌 기독교를 비판하는 작품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우리의 일그러진 초상이 아닌가 말이다.

<사이비>는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대담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부모와 어린 자식이 사이좋게 손잡고 보는 밝은 영화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부순다. 인물들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그림체는 얇고 날카로워 관객들을 공격하는 인상이며 영화 내내 피와 폭력이 난무한다. 비록 애니메이션의 형태지만 실사처럼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이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 잡겠다며 우리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종교적인 믿음에 있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은 말한다. “당신이 믿는 것은 진짜입니까?”  

단 하나, <사이비>에 대해서만큼은 이 애니메이션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믿어도 괜찮을 것 같다. <사이비>는 이미 개봉 전 해외영화제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는데 그중에는 무려(!)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도 포함되어 있다. 아카데미 영화제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예비 후보 19편 중 한 편으로 선정된 것이다. 이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페이스 북에 이와 같은 멘션을 남겼다. “가면 좋고 아님 말고 ㅎ 가면 인생의 보너스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거침없는 입담을 뽐내던 인터뷰 때도 개인적으로 느낀 바이지만 자신의 영화만큼이나 직설적인 성격의 연상호 감독은 감독으로서나 인간으로서 한마디로 물건이다.

시사저널
NO. 1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