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류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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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우리보다 더 센 놈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한강식(정우성)을 만나 승승장구하는 검사 한태수(조인성)와 중학교 동창이던 최두일(류준열)이 달리는 차에서 외치는 대사다. 목포 들개파 출신의 두일은 태수의 뒤를 봐주면서 자신의 세를 확장한다. 거칠 것이 없어 보이는 두일의 심정은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에서 ‘정환이 신드롬’으로 일약 인기 대열에 오른 배우 류준열이 당시에 느꼈을 기분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류준열이 고개를 절레절레 짓고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 어리둥절했어요”라고 당시의 느낌을 회고한다. <더 킹>에서 두목의 자리를 넘보는 두일의 우쭐한 캐릭터보다는 <응팔>의 정환에 더 가까운 태도다. 한마디로 겸손하다. <응팔> 종영 이후 첫 번째 출연작으로 <더 킹>을 택한 이유도 그런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 “정우성, 조인성, 배성우 선배님과 하는 것만으로 좋았어요. 경험이 부족한데 배우로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기자가 <더 킹>과 관련한 어떤 질문을 던져도 류준열은 선배 배우’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빠뜨리지 않는다. 두일을 연기하면서 몸이 많이 상했던 그다. 촬영 중 장염에 걸려 아픈 몸으로 연기하기도, 추운 겨울에 액션 장면을 찍다가 심각한 손가락 상처를 입기도 했다. 막내 입장에서 마냥 편할 수만은 없는 촬영이었는데 자신을 챙겨주는 선배님들 덕에 무사히 연기를 마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인터뷰 전 사진 촬영을 위해 주연 네 명이 모인 자리에서 류준열은 주로 이야기를 들어가며 보조를 맞추는 등 선배들에게 기대는 모습이 귀여웠다.

극 중 두일도 류준열만큼이나 순수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다. 두일은 태수와 함께하는 앞길에 거치적거리는 이가 있으면 주먹을 앞세우는 ‘쎈’ 캐릭터다. 두일의 거친 면모를 두고 류준열은 “순수하다”고 해석한다. “욕망을 채우기 급급한 인물로 넘쳐나는 영화에서 두일은 양다리 걸치지 않고 태수에 대한 의리를 지켜요.” 어찌 보면 단순한 인물이지만, 류준열은 두일 역할을 위해 뭔가 더 없을까 생각을 거듭했다. “고민의 시간은 짧지만 대신 깊은 인물이에요.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과 태수를 위해 어떤 선택이 최선일까, 꽤 고민했을 것 같아요.”

이는 극 중 두일이 처한 위치 때문이기도 하다. 류준열 왈, “큰 흐름 안에 있는 인물이라기보다 한발 떨어져 영향을 미친다고 할까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이런저런 욕심을 내기보다 선배 배우들과 주거니 받거니 조화를 이뤄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두일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이자 류준열이 대중의 관심이 변덕 같은 연예 산업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 고수해야 할 전략이다.

류준열이 최근에 모 선배님에게 들었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인생에서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양심껏 해야 한다, 고 하시더라고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적당히 하라는 말, 좋아하지 않거든요.” <더 킹> 이후 류준열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송강호와 <택시운전사>, 최민식과 <침묵>, 김태리와 <리틀 포레스트>를 함께한다. 이게 바로 ‘리틀 킹’ 류준열이 들었다는 양심의 정체다. 영화계 ‘더 킹’의 자리에 오를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MAGAZINE M
(2017.1.9)

<럭키> 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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롹유, 프로일꾼, 케미왕, 참바다씨 등등. 어느 배우를 지칭하는 별명이다. 그렇다. 배우 유해진이다. 유해진은 그래서 ‘별명 부자’라고 불린다. 그가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호감을 산다는 의미다.

배우 경력 최초의 원톱

유해진은 신작 <럭키>에서 ‘원톱’이다. 원톱은 홀로 영화의 전면에 나서는 주인공을 의미한다. 정지영 감독의 <블랙잭>(1997)으로 데뷔한 유해진은 올해가 배우 생활 20년째다. 의미 깊은 한 해를 맞아 영화의 원톱으로 출격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가 <럭키>에서 맡은 역할은, 설명이 좀 필요하다. 냉혹한 킬러 형욱에서 무명배우 재성으로 바뀌는 등 1인 2역에 가깝기 때문이다.

의뢰받은 사건 처리 후 목욕탕에 들른 형욱은 떨어진 비누를 밟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그만 기억을 잃는다. 마침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죽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목욕탕을 찾은 무명배우 재성(이준)은 정신을 잃은 형욱의 목욕탕 키를 자신의 것과 바꾸고 형욱 행세를 한다.

난 누군가, 또 여기는 어디인가. 형욱은 물품 보관함의 재성 물건을 보고 자신을 재성이라고 생각한다. 형욱이 목욕탕에 쓰러졌을 때 그를 병원으로 안내했던 구급 대원 리나(조윤희)는 도움을 자청한다. 형욱이 기억을 찾을 때까지 엄마가 운영하는 분식집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봐 주고 배우 매니저 역할까지 해준다.

전직(?)이 킬러인 형욱은 칼솜씨를 살려 예술적인 김밥 자르기로 분식집의 매출을 월등히 올려놓는다. 또한, 촬영장에서는 액션 배우 버금가는 싸움 기술을 인정받아 엑스트라에서 단번에 주연 배우로 발돋움한다. 그러는 동안 기억을 되찾은 형욱은 일을 바로잡기 위해 재성을 찾아 나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가능한가? 상상력이 중요한 매체인 영화라는 것을 고려해도 <럭키>는 황당한 설정을 이야기상으로 설득하지 못한다. 예컨대, 자신을 재성으로 착각한 형욱은 어떻게 목욕탕 물품 보관함의 옷가지만 보고 그가 어디에 사는지를 추리해 집에를 갈 수 있는 걸까? 그러니까, <럭키>는 한마디로 엉망인 영화다. 유일한 미덕을 꼽으라면, 바로 유해진이다.

예전에 <전우치>(2009)에서 둔갑술을 펼치는 개 초랭이 역할로 유해진을 캐스팅했던 최동훈 감독은 이런 인터뷰를 했다. “초랭이 같은 캐릭터도 쓰려면 잘 안 된다. 고민하다가 ‘에이 안 되겠다. 유해진으로 가야겠다.’ (웃음) (유)해진 씨를 상상하면서부터 잘 써지더라. 해진 씨가 웃기려고 노력하는 타입이 아닌데 희한하게 웃긴다.”

최동훈의 말처럼 <럭키>에서 유해진은 별로 웃기려고 하는 것 같지 않은데 빵빵 터트린다. 진지하게 김밥을 써는 단순한 장면인데 유해진이 연기하니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이는 그간 유해진이 영화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쌓아온 친근한 ‘아재’의 이미지 때문이다.

아재 이상의 아재

나이 많은 남자가 말꼬투리를 잡는 개그를 펼치는 것을 두고 아저씨 대신 친근하게 아재라고 부른다면 유해진은 ‘아재 이상의 아재’다. 아재 현상이 발현하게 된 배경에는 속된말로 ‘개저씨’라 비하되는 일부 몰지각한 아저씨들에 대한 반발심이 담겨 있다. 나이가 많다며 고압적으로 윗사람 행세를 하고 코드가 맞지 않는 썰렁한 개그로 분위기를 흐리는 아저씨와 다르게 아재는 경직된 상황을 누그럽게 푸는 화술을 구사하며 아무 데나 나서지 않고 자기 위치를 지킬 줄 아는 행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차줌마’ 차승원과 함께 출연 중인 예능 프로그램 <삼시 세끼>에서 유해진은 ‘바깥사람’ 역할을 맡아 실제 부부(?) 버금가는 호흡을 과시한다. 후배 손호준, 남주혁과 어울리면서도 선배 대접을 받기는커녕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까불거리는 등 편하게 분위기를 이끈다. 이를 통해 유해진이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간 것처럼 <럭키>는 그런 배우의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천부적인 코믹 연기가 각광을 받지만, 유해진 연기의 미덕은 무작정 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개 코믹한 연기로 승부하는 배우들은 ‘씬 스틸러 scene stealer’ 말 그대로, 특정 장면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한 연기를 하는 게 보통이지만, 유해진은 좀처럼 그런 경우가 없다. 그건 주인공으로 나선 <럭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형욱은 자신의 신분을 가져간 재성을 쫓으면서도 한편으로 무명배우로서 겪었을 그의 신세를 이해하며 결국에는 재성을 응원하기에 이른다.

유해진은 작품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재미’다. 상대방과 연기할 때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은 ‘호흡’이다. 그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분량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럭키>의 경우, 40대 중반의 형욱이 재성으로 착각하며 32살 행세를 하는 등 자기 비하하는 유머가 상당수이지만, 유해진은 이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연기력보다 미모가 주인공의 기준이 되어버린 연예 산업 안에서 유해진은 개성 있는 연기와 사람 좋은 마음씨로 관객을 무장해제 시킨다. 또한, 연기는 호흡의 예술인만큼 상대 배우가 편안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도 유해진은 배우로서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제 단순히 재미를 주는 캐릭터를 넘어 누군가를 보좌해줄 수 있는 어른의 지위로 영화 속에서 성장한 배경이다. 아닌 게 아니라, <럭키>의 형욱과 재성의 관계는 좇고 쫓는 관계를 넘어 결국에는 유사 부자(父子) 관계로 최종 안착한다. 애초 직업이 킬러인 것을 떠올리면 예상할 수 없는 결론이지만, ‘반전’을 이야기의 중요한 축으로 삼는 <럭키>의 전략상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는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럭키>를 연출한 이계벽 감독은 유해진을 일러 이렇게 평했다. “<럭키>에 유해진이 캐스팅되지 않았다면 대체할 인물이 누가 있을지 상상이 안 간다. 킬러와 무명 배우를 오가는 유해진에 의해 코미디와 로맨스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순수하게 그려졌다.” 사랑스럽고 순수한 아저씨. 그래서 아재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유해진은 원톱이지만, 주변의 모든 캐릭터를 살릴 줄 알고 중년의 나이이지만, 젊은 배우와 호흡을 맞춰도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유해진이 아재 이상의 아재로 평가받으며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다.

 

시사저널
(2016.108)

<아수라> 정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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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제작발표회 이후 배우 정만식을 두고 화제가 된 ‘말말말’이 있었다. ‘정만식은 개 눈을 갖고 있다.’ 함께 출연한 주지훈이 김성수 감독에게 들은 얘기라며 기자들 앞에서 폭로(?)한 것이다.

제작발표회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지만, 캐스팅 당시 김성수 감독은 꽤 진지했던 모양이다. 정만식과 마주한 자리에서 첫 질문으로 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물어봤다. “감독님께서 <대호> 촬영장을 방문하셨어요. 그때 제 촬영 분량을 보셨나 봐요. 제게 ‘눈이 좋다’며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하셨죠.”

정만식이 <아수라>에서 맡은 역할은 ‘사냥개’ 도창학이다.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를 저지하기는커녕 수하 노릇을 하는 한도경(정우성)을 예의주시하는 검찰 수사관이다. 신분은 그렇지만, 독종 검사 김차인(곽도원) 밑에서 한도경을 잡아다가 협박해 박성배의 범죄 혐의를 캐려고 이용하는 행동대장에 가깝다. 그런 사람의 눈이 선하면 쓰나. 그런 점에서 김성수 감독의 ‘개 눈’ 발언 인정이다.

정만식에게 검찰 수사관 역할은 꽤 익숙하다. 그의 필모그래프를 살펴보면 검찰 수사관처럼 공권력을 행사하는 캐릭터를 매년 찾아볼 수 있다. <내부자들>(2015)의 부장검사, <베테랑>(2014)의 전 소장, <끝까지 간다>(2013)의 최 형사, <간첩>(2012)의 한 팀장, <수상한 고객들>(2011)의 형사 등등.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에서도 검찰 수사관을 연기한 적이 있다. “<부당거래>의 공 수사관은 시간만 때우려는 그냥 공무원이에요. 무능력하게 살아가는 남자인 반면 도창학은 강해요. 한도경을 이용하는 게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만, 정의 구현을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게 도창학이 살아가는 세계의 룰이기 때문이죠.”

특정 영화의 캐릭터를 예로 들어가면서까지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같은 역할이라도 차별화가 되게끔 연기했다는 얘기다. “도창학은 실실 웃으면서 상대방을 압박해 들어가는 유형이죠. 그러다 못 참으면 그때 확 나가요. 제가 덩치가 있는 편이라 기본적으로 액션이 크면 관객들이 싫증을 내요. 웬만하면 행동을 크게 안 했죠. 김성수 감독님도 그걸 원했어요.”

도창학 연기에서 힘을 빼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다섯 명의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니만큼 자신의 연기에만 집착할 경우, 팀워크가 깨질 우려가 있었다. <아수라>는 남성영화로 분류되지만, 선이 굵은 폭력보다는 뼈있는 대화가, 낭자한 선혈보다 진한 눈빛이 더 중요한 작품이었다. 자신을 낮추고 함께 하는 배우들과 합을 맞추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말하자면, 배운다는 자세로 <아수라>에 임했다. “단 한 명도 선생님이 아닌 사람이 없었어요. (정)우성 형은 자기가 맡은 역할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는 능력이 대단했어요. (황)정민 형은 주변을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가졌어요. (곽)도원 형은 집요했어요. 원하는 연기가 나올 때까지 쉬는 법이 없었어요. (주)지훈은 날 것 같은 싱싱한 연기로 자극을 줬어요.”

정만식은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연기에 관한 것들을 다시금 떠올렸다”고 한다. 김성수 감독이 말한 눈의 정체, 정만식은 영화 현장의 모든 것을 집요하게 감시하고 사냥하듯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배우다.

 

magazine M
(2016.9.23)

벤 애플렉, 제2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벤 애플렉

DC 원작 영화 <저스티스 리그>의 총괄 프로듀서로 ‘벤 애플렉’이 발탁되었다. 벤 애플렉은 이미 <배트맨> 솔로 무비의 각본, 감독, 주연으로 참여 중이다.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얘기다. 그가 배우로만 활동하던 10년 전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벤 애플렉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극적인 위상 변화를 겪은 영화인이다. <가라, 아이야, 가라>(2007)로 장편 연출 데뷔를 하기까지, 배우 경력은 끝장날 것처럼 보였다. 절친 맷 데이먼과 함께 각본을 쓰고 출연한 <굿 윌 헌팅>(1997) 당시만 하더라도 촉망받는 배우였다. 하지만 <진주만>(2001) <데어데블>(2003) 등과 같은 멍청한 블록버스터에서 재능을 낭비하며 망신만 당하던 그였다.

맷 데이먼과는 전혀 다른 행보로 대중들이 갖은 비아냥을 퍼붓는 동안 벤 애플렉은 칼을 갈았다. <굿 윌 헌팅>에서 증명된바, 그는 좋은 스토리텔러였다. 연출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 자신이 쓰레기 같은 영화들을 겪으면서 어떻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감을 잡았다. 마침 적당한 프로젝트가 그의 손에 들어왔다.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시리즈로 유명한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가라, 아이야, 가라>이었다.

보스턴을 배경으로 실종된 아이를 찾아 나서는 켄지와 제나로의 활약을 그린 이 작품은 이후 ‘감독’ 벤 애플렉의 스타일을 규정한 원형과 같았다. 범죄가 일상처럼 벌어지는 보스턴은 생기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평생을 지낸 켄지와 제나로는 우울증 환자마냥 웃을 줄을 모른다. 벤 애플렉은 이야기는 빈약하고 이미지는 과시적인 블록버스터와 다르게 기교 없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며 고전적인 연출로 <가라, 아이야, 가라>를 만들었다.

언론은 <가라, 아이야, 가라>에 대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2003)를 보는 것 같다’며 극찬했다. 벤 애플렉의 두 번째 연출작 <타운>(2010)은 <가라, 아이야, 가라>의 성과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수작이었다. 현대의 보스턴을 넘어 1979년의 이란 테헤란으로 스케일을 넓힌 <아르고>(2012)로 아카데미에서 감독상까지 받았다. 벤 애플렉은 제2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이제 밴 애플렉은 <저스티스리그>를 총괄한다. 벤 애플렉의 감독 겸임으로의 전환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그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밀려 체면을 구긴 DC를 수렁에서 건질 구원자로 적역이다. 벤 애플렉은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

 

W
2016년 6월호

<자객 섭은낭> 허우 샤오시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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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시사저널>의 김회권 기자님이 기사로 작성하였습니다.)

그를 소개할 때면 보통 ‘봉준호’라는 이름이 나온다. 젊은 영화 지망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이 사랑하는 영화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흰 운동화에 청바지, 감색 패딩이 잘 어울리는 이 70세의 남성. 대만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명실상부한 현대 영화의 거장이라고 평가받는 허우샤오셴(侯孝賢) 감독이다.

인터뷰를 위해 카페로 막 들어온 허우 감독이 기자 일행을 보자마자 중국어로 이야기를 건넸다. 무슨 이야기일지 궁금해할 찰나, 통역이 웃으며 말한다. “감독님이 자기는 여기가 아니라 건너편의 저 건물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시네요.”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의 현판에는 ‘노인정’이라는 세 글자가 뚜렷이 보였다. 유머러스함을 뽐내는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현역이다. 지난해 <자객 섭은낭>으로 그는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동양적 영화미학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에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단 8쪽의 짧은 무협소설이 영화로 탄생

그는 매번 ‘현실’을 그린다. 영화가 현실과 동떨어진 걸 싫어한다. 그래서 리얼리즘에 충실하다. 1989년 내놓은 <비정성시(悲情城市)>로 그는 한국에서 유명해졌다. 1945년 일왕이 항복을 선언한 후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기까지의 4년간 격동의 대만을 그린 이 작품은, 느리고 무거운 대신 대만의 구석구석을, 그리고 대만인 심연(深淵)의 정서를 리얼하게 그려냈다.

그의 리얼리즘 사랑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에게 칸을 안겨준 <자객 섭은낭>은 허우 감독이 처음으로 만든 무협영화다. 무협이니 화려한 액션 신이 등장할 법도 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 무협의 주인공들은 초인적이니까. 그런데 허우 감독은 그게 싫었다. “처음 무술감독과 만났을 때 무협의 정형화된 형식에 대해 말하더라. 예를 들어 커피 잔을 툭 쳤을 때 밖으로 날아가고 그 커피 잔이 떨어지기 전에 수많은 사람이 쓰러지는, 그런 슬로모션을 통해 강렬하게 보여주는 걸 말해주던데, 난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걸 싫어한다. 제한을 두지 않으면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중구난방 흘러갈지 모르니까.”

정형화된 무협을 좋아하진 않아도 무협 그 자체는 좋아했다. 형의 영향이 컸다. 형이 좋아해 빌려온 무협소설을 옆에서 같이 보면서 자연스레 따라 좋아하게 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만화나 책에 대해 남다른 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절 입구에 만화책을 갖다놓고 돈을 받고 빌려주기도 했다. 학교에 있는 무협소설까지 다 보고 난 후 더 이상 볼 게 없자 <로빈슨 표류기>와 같은 번역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성장하며 읽은 이때의 소설은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책은 그의 영화세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듯했다. “문자와 글로 접하는 독서에 대한 습관이 영화감독이 되면서 전체 세계관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자객 섭은낭>은 그가 8년 만에 들고 영화계로 복귀한 작품이다. 원작 <섭은낭(隱娘)>은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중국은 시대상을 반영한 필기(筆記)소설이라는 장르가 있다. 허우 감독이 대학을 다니던 무렵,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단편이 많이 출판됐고, 그 역시 그때부터 이런 소설을 즐겨 읽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내용이 많았고 영화로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 속에 소설 <섭은낭>이 있었다.

당나라는 중국의 역사 중 가장 번성했던 시기다. 그렇다 보니 이야기 소재가 다른 시대보다 워낙 풍부하고 그 시대 자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허우 감독도 그랬다. “당나라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필기소설도 많이 읽어봤다. 그런데 아무래도 당나라의 이야깃거리가 다른 시대보다 워낙 풍부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섭은낭>에 매력을 느꼈다. 이 소설도 허무맹랑한 구석이 있었다. 원작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먹을 한 번 치면 상대가 저 멀리 날아갔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초인 같은 이야기도 나왔다. 그럼에도 매력을 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특히 시대적 배경을 묘사하는 부분이 워낙 잘돼 있었다. <자객 섭은낭> 영화 속에 담아낸 위박(魏博) 지역이라든지, 절도사(지방의 군정을 총괄하던 지위)라든지, 성(城)의 개념으로 사용된 번진(藩鎭) 내부의 문·무관 시스템 등을 원작은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원작 <섭은낭> 자체가 8쪽에 불과한 짧은 소설이라는 점이다. “아마 한자로는 1000~1500자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내용”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문득 궁금했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영화로 확대될 수 있었는지.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굉장히 많이 봤기 때문에 시대적 배경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사적인 자료가 굉장히 많이 남아 있다. 위박을 배경으로 한 당나라 중기 시대의 역사적 기록을 보면 안녹산과 사사명이 난을 일으킨 안사의 난 등도 기재가 잘돼 있다. 스토리가 짧아도 인물 구조나 배경이 명확해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되었다.”

<자객 섭은낭>의 첫 장면에는 스승이 은낭에게 전계안을 죽이라고 얘기하는 흑백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은낭이 전계안을 만나러 갈 때는 컬러 장면으로 바뀐다.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소설을 보면 프롤로그가 있다. 소설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기 전에 프롤로그에 해당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흑백으로 했다. 반면 중간에 컬러로 바뀌는데 영화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이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은 기술적으로 허우 감독에게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섭은낭> 같은 경우는 필름으로 촬영하고 디지털로 전환한 작품이다. 필름은 색깔을 정해놓고 촬영하게 될 경우 흑백으로 바꾸는 게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편리해졌다. 디지털의 힘이다.

“예전에 보던 무협영화와는 많이 다를 것”

하지만 경력이 오랜 감독일수록 필름에 대한 향수가 강한 법이다. 허우 감독에게도 슬쩍 물어봤다. “필름과 디지털은 차이가 많은 것 같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시대적으로 필연적이다. 일단 이번 작품은 100% 필름으로 촬영했는데 필름이 직감적으로 봤을 때 색감이나 느낌이 좋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다음 영화는 아마 디지털로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객 섭은낭>은 그에게 디지털이라는 도전을 던져준 화두작인 셈이다. 첫 무협영화라는 점에서도 그랬고, 무협영화답지 않게 중력을 거스르지 않는 무협영화라는 점에서도 그랬다. 여러모로 도전을 해야 했던 작품이다.

<자객 섭은낭>에서는 그 흔한 클로즈업도 없다. 피사체를 먼 거리에서 넓게 잡는 롱쇼트 기법이 자주 등장한다. 무협영화지만 정적인 무협영화를 그려낸다. 허우 감독은 클로즈업을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것 역시 그의 리얼리즘 중시와 관련된다. “클로즈업을 하고 극대화시키는 것은 너무 허구적이다. 배우들이 그만큼 설득력 있게 감정을 극대화시켜서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대를 가지고 전체를 보여주며 감정을 투영하는 것이 아시아 스타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섭은낭 역은 서기가, 섭은낭의 타깃이 된 전계안 역은 장첸이 맡았다.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중화권의 대표적 남녀 배우가 이번 작품에 함께했다. 허우 감독은 보통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배우를 염두에 둔다. 이번 역시 그랬다. 이야기의 중심축을 끌고 가는 두 배우를 그는 잘 안다. 이미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

“물론 다른 배우를 쓸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새로운 배우를 알고 판단하는 데 또 그만큼 힘이 필요하다.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캐스팅상의 경제적인 이유까지 고려했을 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서기와 장첸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기도 하고. 하하. 서기 같은 경우 유럽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배우라 투자자들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캐스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배우들과의 작업 과정이 재밌고 그들의 능력이 탁월한 걸 알기 때문에 새로운 배우를 찾기보다는 기존 배우랑 작업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만약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찍게 되면 오히려 새로운 배우들을 찾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배우가 잘한다면 기회를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허우 감독은 이번 작품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보던 무협영화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화면 속 움직임과 고요함을 바라볼 것이고, 누군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그 속에 함께 휩쓸려 갈 것이다. 난 그 두 가지 타입의 관객 모두 존재하길 바란다”고.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천하제일의 무림고수도 없고,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액션이 없는 것만이 그가 추구하는 리얼리즘은 아니다. 관객들의 감정 이입을 위해 고민하는 다른 영화와 달리 허우 감독의 영화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그만의 카메라 기법으로 표출되는 보여주기 방식은 관객들을 관찰자의 시선에 머무르게 한다. 그가 제공하는 ‘관객을 위한 리얼리즘’이다. 거장이 만들어낸 무협영화의 새로운 공식이기도 하다.

 

시사저널
(2016.1.30)

<레버넌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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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상을 받았다. ‘드디어’라는 부사를 뺀 이유가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아니어서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로 골든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05년 <에비에이터>(2004)와 2014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에 이은 세 번째 수상이다.

디카프리오의 이번 골든글로브 수상은 유독 주목받고 있다.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의 연기상 수상은 아카데미의 오스카  트로피로 직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디카프리오가 다가올 아카데미 남우 주연 부문의 수상자로 유력하다는 의미다. 그렇게 된다면, 그에게 아카데미에서의 수상은 생애 최초가 된다.

휴 글래스, 너는 내 운명

<레버넌트>에서 디카프리오가 맡은 역할은 휴 글래스다. 휴 글래스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최고 사냥꾼으로 평가받는 실재 인물이다. 영화는 휴 글래스가 모피 회사를 위해 일하다 회색곰의 습격을 받고 사지를 헤매던 중 벌어지는 사연에 주목한다.

숨만 겨우 붙은 휴 글래스를 돌보기 위해 동료와 아들이 곁에 머문다. 동료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지금의 상황이 불만스럽다. 어서 빨리 모피를 회사에 전달해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휴 글래스 때문에 시간이 마냥 지체되는 데다가 언제 인디언이 닥칠지 알 수 없어 걱정스러운 것이다.

도망갈 기회만 엿보던 존 피츠제럴드는 휴 글래스의 아들을 죽이고 휴 글래스마저 눈보라가 심한 산 중 흙 속에 묻어둔 채 모피와 식량만 가지고 사라진다. 아들을 죽인 존 피츠제럴드를 향한 복수심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휴 글래스의 생존 의지를 불태운다. 휴 글래스는 부상한 몸으로 존 피츠제럴드를 쫓기 시작한다.

<레버넌트>의 연출자는 지난해 <버드맨>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다. <버드맨> 연출 전부터 휴 글래스의 이야기에 눈독을 들였던 이냐리투는 “<레버넌트>는 5년 동안 나의 꿈이었다. 육체적으로 혹독한 시련을 거치면서 정신적인 부분에 의지하게 되는 모피 사냥꾼들의 삶을 파헤치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모피 사냥꾼들의 처절한 생활과 극한에 부딪힌 인간의 욕망을 파헤치고자 했던 이냐리투는 당시 미개척 지역에서 겪었을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고자 했다. 19세기의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혹독한 환경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5년 가까이 캐나다와 아르헨티나의 가장 원시적인 숲을 찾아 헤매 100여 군데의 로케이션을 확보, 극사실적인 세계를 만들었다. 그 말인즉, 출연하는 배우들은 ‘개고생’을 각오해야만 했다.

디카프리오는 <레버넌트>의 캐스팅 제의를 받기 전 대니 보일 연출의 전기영화 <스티브 잡스>의 출연을 고려했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던 디카프리오는 <레버넌트>의 출연이 영화 팬들로 하여금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거라 판단했다. 그 자신의 고생 따위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까이꺼’ 포기하겠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

굳은 결심에도 불구, 촬영 현장의 기후 조건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영하 30도의 혹독한 추위는 카메라가 작동을 멈출 정도였고 한 번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2m가량 쌓여 촬영이 중단되기 일쑤였다. 실제 회색곰이 출몰해 덮치지는 않을까 서슬 퍼런 환경에서 디카프리오는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맨몸으로 눈 위를 기는가 하면 인디언의 공격을 피한다는 설정상 강 속에 뛰어드는 연기도 마다치 않았다.

그 외에도, 타고 가던 말이 추락사하자 배를 갈라 내장을 다 끄집어내 그 속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고 어떻게든 살아서 존 피츠제랄드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물소의 생간을 실제로 뜯어 먹는 등 휴 글래스로 빙의한 디카프리오의 고생담은 이 지면이 부족하다. “평생 가장 힘들었다고 말할 만한 장면을 30~40컷은 꼽을 수 있다. <레버넌트>의 좋은 점은 그 시련이 전부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냐리투 감독은 우리의 고통을 질료 삼아 걸작을 만들었다.”

오스카, 너를 내 손안에

<레버넌트>가 걸작이라면 이 영화에서의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최고일까. 최고라고 꼽을 만한 그의 연기는 이전에도 있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마약 때문에 제 몸을 가누지 못해 침을 질질 흘리는 타락한 주식 중매인 역으로,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의 흑인 노예를 괴롭히는 백인 지주 역할로, <제이. 에드가>(2011)의 악질 정보국장 이미지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마마보이이자 동성애자였던 에드가 후버로 출연, 꽃미남 이미지와는 정반대되는 연기를 펼쳐 찬사를 끌어냈다.

휴 글래스 연기로 앞서 언급한 작품에서의 캐릭터를 뛰어넘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디카프리오를 외면해온 아카데미를 향한 강력한 항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레버넌트>에서의 디카프리오 연기는 ‘이렇게까지 고생했는데 아카데미 너희가 상 안 주면 직무유기지’ 시위하는 것만 같다. <레버넌트>로 비유하자면, 여러 차례 후보로만 지명했던 아카데미를 향해 오랜 시간 무덤에 갇혀 있었던 최고 배우의 자존심을 끄집어내 이번만큼은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겠다는 디카프리오의 의지가 강하게 읽히는 것이다.

일찍이 <디스 보이즈 라이프>(1993)에서 디카프리오(1974년 생)와 함께 연기한 적이 있는 로버트 드 니로는 마틴 스콜세지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이 아이한테는 범상치 않은 뭔가가 있어. 언제 한 번 같이 작업해봐” 드 니로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은 디카프리오가 이듬해 출연한 <길버트 그레이프>(1994)로 증명됐다. 디카프리오는 지적 장애를 가진 극 중 조니 뎁의 남동생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로 올라 아카데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꽤 이른 나이에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골든 글로브와 다르게 디카프리오는 유독 아카데미와는 수상 인연이 없었다. <에비에이터>와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까지, 네 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혹자는 <타이타닉>(1997) <로미오와 줄리엣>(1996)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의 앳되고 뽀얀 외모가 관객에게 워낙 호감을 산 탓에 뛰어난 연기력이 묻혔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맞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레버넌트>는 흐르는 물을 역행해 동물 사냥에 여념이 없는 휴 글래스를 비추며 시작한다. 산속의 동물들을 사냥하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휴 글래스의 비극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그와 상관없이, 디카프리오의 배우 활동에 대입하면 연기 대신 외모로만 평가해온 세간의 편견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미지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복수를 마친 휴 글래스의 시선에 들어온 물의 흐름을 카메라가 그대로 따라가는 장면이다. 인간 본성상 새끼 잃은 아비의 복수는 자연의 이치와 다름 없다는 의미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 수상은?

골든 글로브는 드라마와 코미디 부문을 나눠 수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2010년대 들어 드라마 부문의 남우 주연상 수상자는 2012년을 제외(드라마 부문은 <디센던트>의 조지 클루니, 코미디 부문은 <아티스트>의 장 뒤자르댕)하고는 모두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다. 2015년의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드라마 부문은 <레버넌트>의 디카프리오였다. (코미디 부문은 <마션>의 맷 데이먼이 받았다!) 그러니까, 2016년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드디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받을 차례다. 그게 순리다.

 

시사저널
(2016.1.16)

송강호, 아버지의 이름으로

sado

배우 송강호는 요 몇 년 사이 우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영화에서 이야기다. <사도>는 1,300만 관객을 돌파한 <베테랑>의 후광을 입은 유아인의 사도 연기가 인구에 회자되지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장면은 영조를 연기한 송강호에게서 나왔다.

<사도>에서 영조는 일국의 왕이기 이전 아들에게 매몰찬 아버지였다. 사도가 원한 건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거늘. 영조는 그림 그리기와 활쏘기 같은 잡기(?)에 한눈을 팔며 학문 수행에 정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들을 쥐 잡듯 몰아붙였다.

왕과 세자라는 타이틀만 떼놓고 보면 이들 부자 사이의 갈등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쉬이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다. 영조 왈, “잘하자. 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 그리고 우리네 아버지 왈, “대학에 들어가야 사람대접 받는다” “예술이 밥 먹여 주니? 그 시간에 국·영·수를 한 문제라도 더 풀어라” “입시가 코 앞인데 지금 운동할 시간이 어딨니!”

다시 말해, <사도>의 영조는 우리 시대 아버지상(像)에 가깝다. 송강호는 <괴물>(2006) 때부터 아버지 역할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괴물에게 납치된 중학생 딸을 구하기 위해 한강에 뛰어들었다. <우아한 세계>(2007)의 강인구는 주먹들을 이끄는 조직의 이인자였지만, 소통이 잘 안 되는 딸 앞에서는 전전긍긍했다. 또한, <관상>(2013)의 천재 관상가 내경은 한양 입성을 바라는 아들의 미래가 불행으로 끝날 것을 점지하고 품 안에서 놓지 않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물론 이 외에도 송강호가 아버지로 출연했던 영화는 많았다. 그런데도 <사도>를 필두로 <괴물> <우아한 세계> <관상>을 특별히 언급한 이유는 이들 작품에서 아버지로서 흘리는 눈물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괴물>의 강두는 딸의 영정 앞에서 남은 가족들을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우아한 세계>의 인구는 조기 유학을 떠난 딸이 보내온 영상 편지를 보면서 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관상>의 내경은 역모를 꾀한 수양대군을 막으려다 실패로 끝나자 그 죗값(?)을 자식의 죽음으로 돌려받고는 목메어 울었다.

<사도>의 영조는 왕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이유로 아들 사도에게 등을 돌린 후 뒤주에 가두기까지 피도 눈물도 없는 아버지였다. 아니, 그런 아버지처럼 비췄다. 사도가 뒤주에 갇힌 지 8일째 되던 날 목숨을 잃자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영조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임금이 아니고 네가 임금의 아들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이들 부자의 운명이 최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왕과 세자 관계였기 때문이다. “네가 실수할 때마다 내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너 아니?” 노론과 소론으로 갈렸던 신하들에게 책(責)잡히지 않기 위해 두 패를 고루 다스려야 했던 영조는 대리청정 시 올바른 말(“그대들은 어찌 조선이 사대부의 나라라면서 국방의 의무는 힘없고 굶주린 백성에게만 짐을 지게 하려는가?”)만 쏟아내는 사도로 인해 나라가 위기에 빠질 것을 염려했다. “내가 죽으면 나라가 망하지만, 네가 죽으면 300년 종사는 유지하느니라.”

이 영화에서 논란이 분분했던 장면, 굳이 소지섭이 연기한 정조를 등장시켜 마지막 장면에 할애함으로써 영조와 사도보다 인상을 더욱 강하게 남겼다는 것. 이는 영조와 사도가 주인공인 영화에 대한 올바른 결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도가 뒤주에 갇힌 7일째, 영조는 아비의 마음으로 자식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나는 자식을 죽인 임금으로 기록될 것이다. 너는 임금을 죽이려 한 역적이 아니라, 미쳐서 아비를 죽이려 한 광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야 네 아들이 산다.’

영조가 언급한 ‘네 아들’이란 다름 아닌, 정조. 결국, 사도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그의 아들인 정조를 살린 의미가 있다. 그럼으로써 사도의 마지막 명예를 지켜준 아비 된 자격으로서의 영조의 마음 씀씀이는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후 회한의 시호를 지어주는 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세손의 마음을 생각하고, 신하들의 뜻을 헤아려 세자의 지위를 회복하고, 그 시호를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사도세자라 하라.

그래서 정조가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은 단순히 아버지 사도를 향한 헌사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도를 대신한 정조가 그 자신에게는 할아버지이지만, 사도에게는 아버지인 영조에게 살아생전 드리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라는 의미로 확장하고 싶다. <사도>라는 제목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아들 정조로 끝맺음하는 영화의 태도 (혹은 감독의 입장)은 이 작품이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으로 제작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극 중 영조를 연기한 송강호의 울음이 짠하게 다가온 건, 그래서다.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에게 미안해서 늘 슬퍼하는 마음, 즉 도(悼)를 마음에 품고 있다. 한없이 퍼주어도 더 해주지 못해, 혹은 가진 게 없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처지가 한스러워 자식에게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

우리 아버지들은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 서툴다. 바깥에서 경제활동에만 전념한 결과, 가족 안에서 외톨이로 전락했고 은퇴 후에는 가족과 어울리는 법을 몰라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에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일방통행으로 오해받기 일쑤다. 송강호가 연기한 아버지 캐릭터는 지금 설명한 그대로 한국사회 일반의 아버지상을 반영해 공감을 얻었다.

딸이 좋아하는 고기만두를 사기 위해 분식집에서 30분을 기다리길 마다치 않았던 <우아한 세계>의 인구는 딸의 일기장을 보고는 그만 충격에 휩싸인다. 내가 누구를 위해 조직에 몸담아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여기까지 왔는데 딸의 일기장에는 아빠가 칼에 찔려 죽었으면 좋겠다는 살벌한 문장이 적혀 있다. 술에 취해 고작 딸에게 한다는 소리는 “너 정말로 아빠 죽었으면 좋겠어?”다.

<사도>의 영조도 마찬가지다. “아비가 자식을 위해 책을 만드는데 자네 같으면 잠이 오겠는가.” 밤을 새워가며 책을 집필하는 모습에 신하가 옥체를 보전해야 하지 않느냐며 걱정을 내비치자 영조가 하는 말이다. 총명한 자식을 위한 아비의 사랑이 이렇게 깊거늘 정작 아들 앞에서는 “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는 투로 옥죄고 드니 그의 진심을 사도가 알아줄 턱이 없다.

사실 이들 아버지는 자식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넬 여유가 없다. 배려는 사라지고 경쟁만이 존재하는 이 세상은 타인을 물어뜯지 못해 안달 난 정글이 되었다.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내버린 동안 가족을 지켜야 할 의무는 아버지에로만 전가됐다. 먹고 사는 데 별걱정이 없는 상류층은 그들 각자의 카르텔을 형성해 호의호식하는 동안 이에 속하지 못한 세상의 강두들은 ‘괴물’ 같은 사회 시스템에 인질로 잡힌 아들딸을 구조하기 위해 위험부담을 홀로 감수해야 했다.

한국사회에서의 생존법은 아버지가 되어서야 획득한 것이 아니다. 소시민이었을 적부터 이들은 말단직원 혹은 비정규직으로 회사로부터 부품처럼 이용만 당했고 재난 상태에서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오히려 나라님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 상사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하며 가시밭길 같은 한국사회를 간신히 통과해 아버지의 지위를 획득했다.

송강호는 지금처럼 아버지 캐릭터로 주목받기 전 소시민 역할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대표작을 꼽으라면 단연 <반칙왕>(2000)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어눌하고 소심한 은행원이었다. 지각은 기본이요, 실적은 형편없어 부지점장으로부터 매일 같이 헤드록 괴롭힘을 당했다. 월급쟁이 주제 사표를 낼 수도 없는 노릇. 탈출구는 레슬링이었다. 링에서만큼은 그가 왕이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링 위에서 마음껏 풀며 ‘반칙’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반칙왕>을 통해 충무로의 독보적인 주연 배우로 송강호가 주목받던 2000년대 초반은 불의의 공권력에 맞서 놀이로 저항하는, 지금과 비교하면 꽤 낭만적인 시대였다. 당시 개봉작 중 <효자동 이발사>(2004)가 있었다. 각하의 용안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죽음까지 각오해야 했던 1960~70년대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5.16 군사정변을 묘사한 챕터에서 중고생 삭발령 조치에 주목한다. 정통성 없는 정권에 항의하기 위한 중고생들을 억압하려는 조치였는데 영화는 이를 우회해 이발관이 나날이 번창하는 설정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제작이 불투명했을 영화에 송강호는 문제의 이발소 주인으로 출연하여 특유의 소시민 연기를 선보였다.

송강호는 그와 같은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 캐릭터로 관객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녹록지 않은 시대를 B급 농담과 같은 놀이로, 웃음의 긍정으로 버텼던 송강호의 캐릭터는 이제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가 된 그에게서 웃음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식을 향한 근심과 걱정이 가득 채웠다. 그리고 소시민 시절 겪었던 아픔을 대물림하기 싫은 아버지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이기적인 캐릭터로 거듭났다.

영조가 사도의 죽음을 확인하고 흘리는 눈물이 관객의 마음을 흔든 건 단순히 송강호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시민에서부터 아버지까지, 송강호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당대의 현실과 호흡하며 함께 성장해 온 까닭에 우리가 그동안 겪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송강호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로 스크린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래 <사도>까지 20여 년 동안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사도> 이후 그는 차기작으로 김지운 감독의 <밀정>을 선택했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밀정>은 독립군 의열단과 일본인 밀정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을 다룬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조선인 일본 경부 이정출을 맡았다. 김지운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에서도, 일본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경계인으로 묘사될 예정이라고 한다. 언뜻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서 국가나 이념에 상관없이 지도에 표시된 보물을 좇던 윤태구(송강호)가 연상된다.

하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일 것이다. 그동안 송강호가 연기해 온 캐릭터의 흐름을 복기하면 <밀정>의 이정출은 자식 잃은 아비가 이후 보일 행동 패턴으로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자식을 앗아간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거나 무기력하게 현실을 연명하며 살아가는 것. 이중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건 <변호인>(2013)에서의 송강호 캐릭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변호인>에서 윤택한 삶만이 지상목표였던 송우석은 현실의 불의를 목격하고 이에 맞서는 변호사로 울림을 주었다.

인간은 여러 경험을 통해 삶의 지혜라는 교훈을 얻는다. 그럴 때 진심이 생겨난다. 고난의 소시민 시절을 버틴 송강호의 캐릭터가 자식을 잃었다고 해서 현실에 무릎 꿇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버티고 눈물을 흘리는 대신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잘못을 꾸짖고 바로 잡을 때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성장한 송강호의 캐릭터에 투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진심은 언젠가 통하는 법이다.

 

ARENA HOMME
2015년 11월호

<모스트 바이어런트> J.C. 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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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 챈더는 이제 고작(?) 3편의 영화를 연출한 신인급 감독에 속한다. 다루는 장르나 소재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장편 데뷔작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이하 ‘<마진 콜>’, 2011)은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를 다룬 금융 스릴러다. <올 이즈 로스트>(2013)는 망망대해에서 조난당한 한 남자의 사투를 그린 재난 스릴러다.

그런데도 미국의 많은 영화평론가는 현대 미국 사회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감독으로 단연 J.C. 챈더를 꼽는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철저히 외면했지만, 2014년의 중요한 영화 중 하나이자 J.C. 챈더의 최고 작품으로 평가받는 <모스트 바이어런트>가 그에 대한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현대의 코폴라 혹은 드 팔마

<모스트 바이어런트>도 J.C. 챈더의 앞선 작품들만큼이나 고색창연하다. 부패로 얼룩진 뉴욕에서 범죄 커넥션의 꼭대기를 차지하는 폭력 신화의 이야기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1972)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 부부가 전면에 나서는 설정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1983)를 연상시킨다.

의도적인 연출이었다. J.C. 챈더는 기회가 된다면 고전적인 느낌의 갱스터물을 만들고 싶었다. “<대부>와 <스카페이스>를 좋아하지만, 두 영화가 충분할 만큼의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기대할 법한 요소를 좀 더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모스트 바이어런트>를 만들었다.”

걸작 갱스터물의 유산을 계승하되 J.C. 챈더가 변화를 준 부분은 주인공 아벨 모랄레스(오스카 아이삭)다. 아벨은 <대부>의 돈 콜레오네나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태나처럼 폭력을 신봉하는 불한당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폭력이 자신의 사업을 망칠까 거리를 두는 신사에 가깝다. 하지만 범죄율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81년 뉴욕에서 아벨처럼 합법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사업가는 뜯어먹기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아벨은 앞으로도 오일사업이 유망하리라 판단해 없는 돈을 끌어모아 대형 부지를 사들였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잠시, 잇단 자사 오일 운반 트럭 강도 사건으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를 2년 동안 추적하던 검사가 16개의 범법 행위를 근거로 기소를 결정하면서다. 이로 인해 대출을 약속한 은행이 계약을 파기하고 그 여파로 아벨은 부지 잔금을 치르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아벨의 미래가 산산조각이 날 상황에서 아내이자 마피아의 딸인 안나(제시카 차스테인)가 은밀한 제안을 해온다.

절망의 우물 속으로 한없이 참전하는 아벨에게 안나가 내민 ‘손’의 설정은 J.C. 챈더의 전작 <올 이즈 로스트>의 마지막 장면과 묘하게 겹친다. <올 이즈 로스트>의 남자(로버트 레드포드)는 요트로 인도양을 항해하던 중 선적 컨테이너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한다. 설상가상으로 태풍이 불어닥치면서 남자는 생존 물품만 겨우 챙긴 채 고무보트로 몸을 피신한다. 지나가는 선적에 신호를 보내기 위해 불을 피웠다가 고무보트까지 잃게 된 남자가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극적으로 구조의 손길이 등장한다. 남자는 그 손을 붙잡고 살아날 수 있었을까?

연출작은 몇 편 되지 않지만, J.C. 챈더의 작품을 시간순으로 살펴보면 그동안 미국이 겪은 부침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진 콜>은 금융 위기의 주역들이 어떻게 사태를 최악으로 키워 미국을 위기에 빠뜨렸는지 그 과정을 좇는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잃게 된 미국인들의 처지는 앞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몸을 뉘일 고무보트에 위태롭게 의지하는 상황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올 이즈 로스트>에서 남자의 보트를 망가뜨린 선적은 중국의 것으로 설정됐다. 금융 위기와 더불어 중국의 급부상으로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위협받게 된 미국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잃게 된 형편이 아닌가.

미국을 대표하는 미래의 거장

J.C. 챈더가 <올 이즈 로스트>를 마친 후 <모스트 바이어런트>를 준비하면서 극 중 시간적 배경을 1981년으로 설정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왜 폭력의 유혹에 빠지는지를 분석하려고 했다. 자연스럽게 뉴욕 역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한 해로 기록된 1981년의 범죄 통계에 주목했다. 뉴욕 시민들은 부패하고 거의 파산 직전인 도시에서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120만 건의 범죄가 기록된 가운데 살인 사건이 2천백 건, 강간이 5천5백 건, 그리고 가중 폭행이 무려 6만 건이나 됐다.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제일 나은 방법 중 하나는 범죄와 손을 잡는 것이다. <마진 콜>에서 J.C. 챈더가 주목했던 바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회사의 손해액이 시가총액을 넘어 파산될 위기에 처하자 중역들은 새벽 시간에 긴급 이사회를 소집한다. 곧 휴짓조각이 될 주식을 어떻게든 팔아넘겨 미국 금융시장이 쑥대밭이 되거나 말거나 자신들만 살아남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도덕적 해이는 <모스트 바이어런트>의 배경이 증명하듯 그 이전부터 미국 사회의 전통처럼 존재해 왔다.

물론 미국인들 모두가 처음부터 폭력과 부정을 신봉하지는 않았을 터다. 사회적 조건은 개인의 성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아벨 모랄레스의 이름은 예사롭지가 않다. 창세기에서 아벨은 형 카인에게 살해당했다.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알려진다. 그럼 아벨은 피해자인가? J.C. 챈더는 <모스트 바이어런트>에서 아벨의 성을 모랄레스로 지었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Moral’과 ‘less’를 합쳐 그 또한 이 영화에서는 카인과 다르지 않을 거란 암시를 중의적으로 담았다.  

아내 안나의 도움으로 부지의 잔금을 치르고 오일 사업의 유리한 고지를 점한 아벨 앞에 얼마 전까지 함께 했던 직원이 찾아온다. 아벨이 한때 총애했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지로 몬 직원으로 그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다. 그리고 감행하는 자살. 그의 머리를 관통한 총알은 그대로 석유 탱크로 향하며 피와 오일이 섞이는 의미심장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과연 아벨은 합법적인 방식을 고수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J.C. 챈더는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갱스 오브 뉴욕>(2002)의 마지막 장면처럼 피와 오일이 섞인 이미지 위로 마천루가 즐비한 뉴욕의 전경을 상징적으로 포착한다.

<올 이즈 로스트>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점으로 남자가 탄 구명보트의 바닥을 올려다보는 장면이 있다. 깊은 물 속에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시적인 고요를 자아내는 것도 잠시, 포식자인 상어가 정적을 깨며 섬뜩한 순간을 연출한다. 그 속에 빠지게 된 남자가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검은 손일지라도 붙잡는 것밖에는 없다. 그것이 아벨 모랄레스를 포함해 인간이 가진 본성이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인간의 약한 고리를 공략해 폭력으로 위기를 조장하고 이를 지배 체계로 삼는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가장 폭력적인 한 해 A Most Violent Year’를 경험한다. <모스트 바이어런트>는 1981년 뉴욕의 이야기이고 미국 폭력의 역사이며 서늘한 인간 보고서다. 그리고 J.C. 챈더가 왜 미국을 대표하는 감독인지를 밝히는 걸작이다.  

beyond
2015년 5월호

<스틸 앨리스> 줄리언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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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앨리스>는 리사 제노바가 쓴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를 원작으로 한다. 앨리스(줄리언 무어)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누리는 50세의 여교수다. 남편은 연애 시절처럼 그녀에 대한 애정으로 넘쳐나고 자식 셋은 장성해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앨리스 자신이 콜롬비아의 언어학 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에 몰두하는 생활에 만족하던 터다. 생의 절정에 맞이한 벼락같은 소식. 너무 이른 나이에 찾아온 조발성 치매 앞에서 그녀는 인정하기 싫은 결과를 받아들이지만, 빠르게 무너진다.

잔잔한 수면 위에 불어 닥친 파문의 연기에 대해서라면 줄리언 무어는 스페셜리스트다. <스틸 앨리스> 이전 그녀는 네 차례나 아카데미 연기상 부문 후보에 올라 모두 낙마한 경험이 있다. 남편이 실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목격하고 무너지는 <파 프롬 헤븐>(2003)의 ‘아내’, 단조로운 일상에 염증을 느껴 자살까지 생각하는 <디 아워스>(2003)의 ‘주부’, (두 영화로 각각 주연과 조연 부문 동시 후보에 올랐다!) 고위직 남편을 찾아온 소설가와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애수>(2000)의 ‘부인’ 등 <부기 나이트>(1999)의 포르노 배우를 제외하면 그녀의 역할은 평범함의 정체성을 벗어난 적이 없다.  

보통의 삶에 찾아온 충격적인 변화 앞에서 줄리언 무어의 연기는 선이 굵은 행동보다 미세한 표정의 결에 의존한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에디 레드메인의 경우에서 보듯 아카데미는 전통적으로 기예(?)에 가까운 연기에 높은 점수를 부여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가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고도 걸맞은 성과를 얻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틸 앨리스>가 미세한 연기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결과를 낸 배경에는 온전히 그녀의 캐릭터에 주목한 영화의 내용에 있다.

<스틸 앨리스>는 앨리스의 치매 증세를 노출한 후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과 그에 대응하는 그녀의 반응에 주목한다. 이의 연출 과정에서 감독이 배우에게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치매와 같은 장애 연기는 사랑과 같은 일반적인 연기와 달라서 감독은 배우에게 해당 장면의 동선 설명과 연기를 지켜본 후 호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게 전부다. (이 영화를 연출한 리처드 글랫저 감독은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이다!) 배우가 직접 자료를 조사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줄리언 무어는 치매로 아내를 잃은 지인을 찾아가 사례를 들으면서 앨리스의 연기를 준비했다.

그야말로 외로운 작업이었던 셈. 이는 극 중 앨리스가 처한 상황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병을 걱정하는 자식들이 있지만,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오로지 앨리스의 몫이다. 언어를 전공했으면서 언어를 잃어가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대학교수이자, 아내이자, 엄마로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하지만 치매 사실을 고백하면서 끝까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어쩜 좋아”라며 찰나의 감정을 드러낼 때 앨리스가 겪는 고통은 고스란히 관객의 가슴으로 전이된다.

이런 연기가 바로 줄리언 무어의 전매특허다. “삶이란 게 늘 똑같은 것 같아도 마음을 흔드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포착해 연기로 승화하는 것이 배우의 의무다.” 그녀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고립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치매 환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 배우에게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다.” 앞으로도 줄리언 무어는 그 자신만의 영광이 아닌 모두를 위한 연기를 선보일 것이다.
 

시사저널
(2015.2.28)

<아더 우먼> 닉 카사베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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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카사베츠는 빅 히트작은 없지만 <존 큐>(2002) <노트북>(2004) <마이 시스터즈 키퍼>(2009) 등 제작사에 크게 손해 끼치는 일 없이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중견 감독에 속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는 따로 있다. 다름 아닌, 부모님이다.

아버지 존 카사베츠는 메이저 영화사와 거리를 둔 채 독립적인 영화 만들기로  할리우드 영화사(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감독이자 각본가이자 배우였다. 어머니 지나 롤랜즈는 남편의 즉흥적인 연출에 맞춰 생생한 표정과 감정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부문에 후보로까지 올랐던 위대한 배우였다.

연기를 시작하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인 로열패밀리로 통하는 카사베츠 가문의 2세이었던 닉 카사베츠는 자연스럽게 영화계에 입문했다. 지금은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영화에 발을 디딘 건 연기였다. 1959년생인 닉 카사베츠는 이미 10대 초반에 아버지가 연출한 <남편들>(1970) <영향 아래의 여자>(1974) 등의 영화에 아역배우로 출연했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누리기 힘들었을 행운이었다.

그런 행운이 고등학교 시절의 닉 카사베츠에게는 버겁게만 느껴졌다. 부모님의 이름을 떼어놓고 독립적인 자아로 평가받고 싶었지만 세간의 시선은 존 카사베츠와 지나 롤랜즈의 아들로만 향하였다. 특히 아버지의 명성에 대한 반항심은 닉 카사베츠로 하여금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운동 신경도 꽤 좋았던 그는 농구 실력이 뛰어나 농구 명문 시라큐스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야속한 신은 닉 카사베츠를 농구와 떼어놓고 영화와 맺어지게끔 운명의 항로를 급격히 변경했다. 닉 카사베츠는 농구 시합 중 심각한 부상을 입어 시라큐스 대학으로의 진학은 물론 프로 선수의 꿈도 포기해야만 했다. 부모님의 영향 아래에서 일찍이 연기 생활을 경험한 적 있는 그에게 남은 선택이란 영화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수학한 적 있는 뉴욕의 명문 연기학교인 미국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Dramatic Arts)에서 그는 프로 배우가 갖춰야 할 덕목을 열심히 익혔다.

가문의 명성과 학교의 인맥을 등에 업고 본격적인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닉 카사베츠는 여전히 존 카사베츠와 지나 롤랜즈의 아들이라는 유명세를 넘어서지 못했다. 1970년대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었던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마스크>(1985)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것을 제외하면 당시 그의 경력은 변변치 못했다. 그저 그런 액션물인 <젊은 코만도 대원들 Young Commandos>(1991), 에로틱에 방점이 찍힌 스릴러 <욕망의 죄악 Sins of Desire>(1994) 등 동시상영 용으로 졸속 제작된 B급영화 일색이었다.

사실 아버지의 명성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던 닉 카사베츠는 부러 각본과 연출에 대한 호기심을 자제해왔다. 그렇다고 배우로서 원대한 목표를 세운 것도 아니었지만 잘 나가는 영화인 부모를 둔 그의 정체성을 감안하면 너무나 초라한 경력이었다. 반등할 계기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닉 카사베츠에게는 아직 펼쳐 보이지 않은 재능 한 축이 남아 있었다. 바로 연출과 각본이었다.

감독이 되다

닉 카사베츠가 만든 영화를 보면 아버지 존 카사베츠가 연출한 작품의 영향력이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메이저를 경멸해왔던 아버지와 달리 닉 카사베츠는 할리우드의 중심부에서 지금도 안정적인 감독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존 카사베츠가 배우의 살아있는 감정을 잡아내기 위해 즉흥적인 연출에 공을 들였다면 닉 카사베츠는 완성된 시나리오에 맞춰 배우들이 연기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닉 카사베츠의 영화에 호의적인 평을 내놓지 않지만 그는 늘 아버지 영화의 특징적인 요소를 매 작품마다 은근하게 반영해왔다.

닉 카사베츠의 연출 데뷔는 조금 늦은 나이인 37세에 이뤄졌다. <스타를 벗겨라>(1996)라는 작품이었는데 여기서 닉 카사베츠는 어머니 지나 롤랜즈를 남편 없이 아이를 홀로 키운 60세 과부로 캐스팅하였다. 실제로 지나 롤랜즈는 남편 존 카사베츠가 1989년 간경화증으로 사망한 이후 혼자 지냈다. 남편과의 사별 이후 공허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을 영화 속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지워 자연인과 배우의 정체성을 합일하는 방식은 아버지 존 카사베츠 연출의 전매특허이기도 했다.

닉 카사베츠의 최신작인 <아더 우먼>(2014)도 마찬가지다. 개봉 당시 미국 내에서 한창 승승장구하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를 2위로 끌어내리며 화제를 모았던 <아더 우먼>은 세 명의 여자가 자신들을 속인 남자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칼리(카메론 디아즈)가 사랑하는 남자가 실은 유부남이었고 그의 아내 케이트(레슬리 만)와 공동전선을 구축해 좀 더 사정을 파악하니 엠버(케이트 업튼) 역시 이 사실을 모른 채 사귀고 있었던 것.

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는 평이 주를 이루었지만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아더 우먼>은 닉 카사베츠가 여자들로 변주한 <남편들>이라 할 만하다. 존 카사베츠의 <남편들>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한 세 남자가 노골적으로 슬픔을 드러내기보다 술에 취해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이들은 가장으로서 가정에 얽매인 내면의 짐을 덜어내려 애쓰는데 <아더 우먼>도 결혼과 가정이라는 보수적인 가치 때문에 남자에게 얽매이기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자 하는 세 여성의 욕망이 영화의 전면에 나선다.

어떻게 보면, 닉 카사베츠는 가진 능력에 비해 꽤 저평가된 감독이다. 그의 배경이 가진 중간자적 입장 때문일 터다. 닉 카사베츠는 남자이면서 <아더 우먼> <옐로우>(2012) <마이 시스터즈 키퍼> 등과 같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자주 만들었다. 또한 메이저에 속해 <노트북>과 같은 멜로나 <알파독>(2006)과 같은 범죄물 등의 대중적인 장르에 집중하고 있지만 미국 독립영화의 전설적인 존재였던 아버지의 연출력을 반영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이 또한 그의 운명일 것이다. <아더 우먼>의 경우처럼 닉 카사베츠는 메이저 영화사가 원하는 장르와 이야기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 안에 자신의 연출적 DNA를 심어놓는 법을 익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명성을 이겨내려고 애쓰다가 그들의 영화적 유산을 모두 받아들여 지금은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닉 카사베츠는 주변의 평가에 상관없이 이제는 주어진 환경에 맞춰 자신을 적응시키는 방법을 완전하게 터득한 것이다.

BEYOND
2014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