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derful Spectacle – <타짜>의 위험한 열차



최동훈 감독의 <타짜>는 단순히 현란한 도박의 기술을 나열해 관객의 눈을 현혹하는 그런 종류의 도박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돈 놓고 돈 먹는 도박을 통해 원초적인 인간 욕망의 허망함을 폭로하는 영화 쪽에 더 가깝다. 그 상징적인 장면이 바로, 돈을 손에 넣기 위해 기차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던 고니(조승우)의 눈앞에서 돈 가방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클라이맥스 장면이다.

영화의 주제가 집약된 장면인 만큼 촬영이 쉽지는 않았다. 기차를 빌려야했고, 기차에 고니가 매달려있어야 하는 까닭에 블루 스크린 촬영이 필요했으며, 이 모든 것이 움직이는 기차에서 벌어진다는 설정 탓에 CG가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자칫 촬영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최동훈 감독이하 촬영팀은 서울의 모처에서 먼저 테스트 촬영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촬영 중 발생할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장면의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다.

촬영은 광양의 태금역에서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철도에 기차를 세워두고 고니 역의 조승우를 와이어에 묶어 기차에 매달아 바탕장면을 촬영했다. 두 번째로, 조승우가 그랬던 것처럼 와이어를 이용해 기차에 매달린 돈 가방을 촬영한 후 기차가 달리는 장면을 찍어 앞의 두 장면과 CG로 합성, <타짜>의 명장면은 탄생할 수 있었다.


(2006. 11. 10. <스크린>)

Wonderful Spectacle – <삼거리 극장>의 극장 세트



전계수 감독의 <삼거리 극장>은, 할머니를 찾으러 나갔다가 삼거리 극장에 취직하게 된 소단(김꽃비)이 혼령들과 함께 존폐 위기에 몰린 극장을 구하는 과정을 그린 뮤지컬 영화다. 그래서 무대가 되는 ‘삼거리 극장’은 초반 몇 분을 제외하곤 영화 내내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보는 삼거리 극장의 모습은 두 군데 장소에서 촬영이 된 것이다.

먼저, 극장 외부의 모습은 전라도 곡성에 위치한 쌀집 건물이다. 1930년대 조선영화 부흥기에 세워져 한때를 풍미했으나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 상영 중 일어난 화재로 이제는 잿더미가 된 삼거리 극장이라는 영화 속 설정을 재현하기 위해 촬영진은 곡성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탓에 전계수 감독은 삼거리 극장이 묵시록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비추길 원했다.

이를 위해 좌초한 난파선의 형상을 염두에 두고, 황량한 도시 이미지로 유명한 폴란드의 화가 벡진스키의 그림 구도와 색감 그리고 비전을 컨셉삼아 극장의 외관을 구성하였다. 이에 더해 감독은 영화 속 극장 내부의 계단 장면을 고려해 극장 건물이 4층으로 보이길 원했고 원래 3층 건물인 이곳을 CG를 통해 한 층을 더 올려 마침내 완벽한 삼거리 극장의 외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내부 촬영은 <친구>로 유명한 부산의 삼일극장에서 이루어졌다. 30년대식 대극장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설정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X자형 계단 구조가 전계수 감독의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삼거리 극장의 외부와 달리 내부는 판타스틱한 분위기를 내기를 바랐는데 그 계단의 구조가 기괴한 입체성을 풍기는데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잘 구현된 것이 바로 <에리사, 더 라스트 프린세스>의 뮤지컬 장면. 워낙에 계단의 구조가 뛰어났던 까닭에 키 라이팅 조명만으로도 환상적이고 강렬하며 유쾌한 콘서트의 느낌이 잘 살아나는 장면을 얻을 수 있었다.

전계수 감독이 삼일극장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스크린 시설이 무대 위에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뮤지컬을 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주는 스테이지라는 특성을 버릴 수 없었던 것. 그래서 감독은 소단이 혼령들을 만나 밤의 재판에 회부되는 객석 무대의 법정 세트를 그리스 고전 비극의 느낌이 나도록 구성하였고 이를 위해 대칭적이면서 운명적인 느낌의 구도와 색조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렇게 <삼거리 극장>의 하드웨어이면서 동시에 소프트웨어의 기능까지 수행한 곡성의 극장 건물과 삼일 극장은, 안타깝게도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을 예정이다. 한때 곡성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잘 나가던 쌀집 건물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극장 간판을 내리고 쌀집만이 쓸쓸히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며, 부산의 삼일극장은 도로공사로 인해 조만간 철거될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2006. 11. 10. <스크린>)

영화는 어떻게 만화를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옮길 수 있었을까?




충무로의 새로운 광맥, 만화


최근 한국영화계는 만화의 영화화가 붐이다. 올해를 기점으로 벌써 강풀의 인기만화 <아파트>(06), B급달궁의 <다세포 소녀>(06), 허영만의 <타짜>(06)가 안병기, 이재용, 최동훈 감독에 의해 영화화화 되었다. 이뿐이 아니다. 전윤수 감독의 <식객>, 김용화 감독의 <미녀는 괴로워>, 김정권 감독의 <바보>, 최양일 감독의 <수> 등 현재 충무로를 돌고 있는 수백 개의 프로젝트 중 무작위로 몇 개만 쥐어들면 만화원작의 영화가 손에 잡힐 정도다. 소재의 고갈을 겪고 있는 한국영화계에서 만화는 새로운 광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원작의 인기도와 검증된 이야기 등 우수성을 인정받은 만화를 영화화한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고, 흥행이 보장되는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수의 만화의 영화화가 있어 왔어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흥행에 성공한 사례는 김성수 감독의 <비트>(97), 최동훈 감독의 <타짜>를 제외하면 손에 꼽을 정도다. 왜일까. <올드보이>로 성공적인 만화의 영화화를 이룬 박찬욱 감독의 다음 사례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어줄만하다.


박찬욱 감독은 지인의 소개로 접하게 된 일본 만화 <멋지다 마사루>를 재미있게 보았다. 주변에서 이 얘기를 듣고 영화화하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영화로 만들고 싶긴 한데 원작이 준 재미의 가장 큰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조잡한 그림체를 스크린에 살려낼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화와 만화, 두 매체 간에는 이미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공통분모를 제외하고는 이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 연출시 원작의 설정은 살리되 디테일한 면에 있어서는 영화적 재미를 살리고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드러내는 선에서 많은 각색과 변화를 줬다.


이처럼 만화를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재현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맞는 화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성수 감독과 최동훈 감독 역시 원작만화의 장점을 살리면서 영화 고유의 힘도 잃지 않았던 까닭에 <비트>와 <타짜>라는 훌륭한 만화원작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대체 이들은 어떻게 만화 원작을 영화로 ‘잘’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김성수와 최동훈에게 듣는 만화의 영화화에 관한 두세 가지 것들


최동훈 감독은 <타짜>를 영화화하겠다는 결정은 내린 후 가장 먼저 원작자 허영만을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그는 원작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고 허영만 화백에게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아냈다. 허 화백이 흔쾌히 OK사인을 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미 자신의 작품이 다수 영화화되는 것을 보며 원작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작품은 매력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성수 감독의 <비트>는 그런 허영만의 생각이 잘 드러난 거의 첫 번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 초반부 30분을 제외하면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만화를 읽은 독자들의 기대는 배반하되 이야기의 본질은 놓치지 말자 그런 거였죠. 만화의 그림이 갖는 추상성이 이미 독자의 머릿속에 현실적인 화면으로 재현되었을 텐데 거기에 정면으로 견주면 어떤 영화라도 초라해질 것 같았죠” 김성수 감독의 얘기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담당한 심산 작가는 당시까지 출간된 만화 <비트> 5권까지 대충 읽어본 후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워낙에 방대한 양이었기 때문에 이를 모두 영화로 보여주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김성수 감독은, 방황하는 10대 후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비슷한 내용의 시나리오도 가지고 있었다. 원작에서 그리 큰 비중이 아니었던 태수(유오성)가 영화에서는 핵심인물이 되었고 환규(임창정)의 여자 친구 선아(사현진)라는 인물이 새롭게 탄생했다. 무엇보다 원작에서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구조와 시간을 점프하며 진행되는 서술방식은 고민 끝에 더욱 강조하기로 하였다. 성장 드라마였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신에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뮤직비디오들처럼 강렬한 음악을 배경에 깔고 이질적인 화면들을 억지로 붙이면서 전개했습니다. 주인공들이 갈팡질팡하는 젊은이들이었기에 그런 서술이 오히려 적절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 결과, 허영만 원작의 만화 <비트>와는 다른 김성수 감독의 영화 <비트>가 탄생했다. 평단의 반응도 좋았을 뿐 아니라 1997년 당시 서울 관객 34만 명이라는 높은 흥행성적까지 기록했다. 그런 김성수 감독의 성공적인 만화의 영화화 탓이었을까. 이후 만화를 스크린에 옮긴 많은 작품이 전반부는 원작을 살리면서 후반부는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로 전개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런 흐름에 변화를 가져온 건 <타짜>의 최동훈 감독이다.


“캐릭터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의 기질 같은 게 있다. 기질이란 건 선악의 전형성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캐릭터를 오히려 모호하게 만든 측면도 있다. <타짜>는 결국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중단되더라도 도박판의 이런 캐릭터들에 대한 매혹을 보여주려고 했다”


아시다시피 <타짜>는 9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서술형태가 사건이 발생하는 순서가 아닌 캐릭터가 등장하는 순서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식이다. 최동훈 감독의 얘기처럼 <타짜>는 캐릭터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허영만의 원작은 이와는 다르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대별 에피소드에 따라 막도 나뉘고 등장하는 캐릭터도 변화한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은 이와 같은 형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채택했다. 원작의 묘미를 살리면서 원작과는 또 다른 작품을 내놓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최동훈 감독은 “원작만화는 신문연재 형식이었기 때문에 영화화하기에 스케일이 방대했고 많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틀로 엮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제일 먼저 한 작업이 바로, 길고 많은 에피소드로 구성 되어 있는 원작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었다”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영화 <타짜>는, ‘고니(조승우)가 타짜가 돼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만나는 인간 군상들’이라는 한 편의 운명론적 이야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고니가 겪게 되는 심리적인 변화나 내적 성장은 대부분 정마담(김혜수)의 개입으로 비롯된다. 때문에 감독은 정마담의 역할을 원작에 비해 더욱 키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마담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영화는 캐릭터 드라마로 재탄생하였고 그런 최동훈 감독의 전략은 멋지게 적중, 올 추석시즌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로 등극하였다.


만화는 만화, 영화는 영화


흔히 사람들은 영화를 도둑질의 예술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는 TV, 소설, 미술, 음악, 게임 등 가리지 않는 습성을 과시하며 훔쳐올 수 있는(?) 모든 것을 스크린에 가져왔다. 물론 무작정 훔치고 베낀 것은 아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법을 통해 TV를, 소설을, 미술을, 음악을, 게임을 재구성하였다.


게임과 함께 가장 촉망받는 21세기의 대중예술인 만화도 영화의 레이더망을 피해갈 수는 없다. 단, 만화의 영화화 역시 영화만의 특징을 가지고 스크린에 옮길 필요가 있다. 이는 앞에서 보여준 김성수 감독과 최동훈 감독의 <비트><타짜>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허영만 선생과 박하 선생(스토리 작가)의 만화가 너무 유명하다는 게 마음에 짐이 됐습니다. 그걸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되더군요. 왜냐하면, 너무 재밌거든요. 허영만 만화가! 하지만 만화의 영화화가 오히려 자극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략) 만화의 상상력보다 영화적 상상력이 뒤처질 거라고 겁먹지 말아야겠죠” (김성수 감독)


“영화가 완성된 후 원작만화와의 비교는 피해갈 수 없는 수순이라 생각한다. 원작만화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라면 그 기대감에 대한 부담감은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연출자가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하는 것이며 그것을 인정한 후에는 원작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해나갈 것인가에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동훈 감독)


만화는 만화, 영화는 영화. 만화의 영화화를 이미 경험한 선배 감독들의 조언(?)이자, 이들만의 특급 노하우다.


(2006. 10. 8. <스크린>)

영화는 게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피터 잭슨, 게임을 만나다


지난 7월 11일 AP통신은 영화 <헤일로>와 관련, 흥미 있는 캐스팅 소식을 전했다. <헤일로>는 고대유적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벌어지는 가상 미래의 전쟁을 소재로 한 Xbox의 1인칭 슈팅게임.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헤일로>에 덴젤 워싱턴이 마스터 치프 역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덴젤 워싱턴이 제작을 맡은 피터 잭슨과 뉴질랜드에서 만나 영화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은 사실을 들었다.


<헤일로>와 관련한 추측성 보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헤일로>의 영화제작 발표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최고의 제작진으로 작품을 구성하겠다며 <반지의 제왕>, <킹콩>의 피터 잭슨에게 총 제작을 맡겼다. 곧이어 <비치>의 원작자이자 <28일 후>의 시나리오 작업을 한 알렉스 갈란드가 각색에 참여했고 <블레이드2>, <헬보이>를 연출한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으로 내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헤일로>의 연출에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8월 9일자 Ain’s It Cool News에 따르면 <헤일로>의 연출은 닐 브로캄프(Neill Blomkamp)로 최종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덴젤 워싱턴의 출연 역시 앞으로의 진행상황을 지켜봐야 확실한 결과를 알 수 있을 듯하다. 


<헤일로>의 제작진과 출연진에 대한 추측성 보도가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있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슈퍼마리오>로 게임의 영화화가 본격 시작된 이후로 <헤일로>처럼 화려한 진용을 갖춘 예는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감독은 <던전 드래곤>의 커트니 솔로몬처럼 연출이 처음인 이거나 2류 감독 또는 <툼레이더2>의 얀 드봉처럼 재기를 노리는 한물간 인물이 맡았다. 배우도 마찬가지. 지명도가 떨어지거나 B급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가 타이틀 롤을 맡은 경우가 허다했다. 그도 아니면 밀라 요보비치와 같이 헐리웃 진출을 모색하는 배우 아닌 배우의 등용문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게임은 영화에서 명성에 걸 맞는 대접을 받은 예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편없는 작품성이 필연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헤일로>가 그와 같은 게임영화의 관행을 공격적으로 해체하기 시작했다. 제작자인 피터 잭슨을 필두로, 연출은 기예르모 델 토로와 같은 실력파 감독 중에서 물색한 전력이 있고 주연으로는 덴젤 워싱턴과 같은 A급 배우와 접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헤일로>는 연출도 들어가기 전에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며 흥행성이라는 한 마리 토끼를 잡았다. 하지만 작품성까지 두 마리 토끼를 손에 쥐기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이 존재한다.    



게임, 신천지인가 함정인가


이를 밝히기에 앞서 우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게임과 영화의 관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최근까지도 이 둘은 게임을 원작삼아 영화로 제작하는 ‘게임의 영화화’가 대부분이었다. <슈퍼마리오>, <스트리트 파이터>, <모탈 컴뱃>, <던전 드래곤>, <파이널 판타지>, <툼레이더>, <레지던트 이블> 등은 모두 아이디어 고갈에 빠진 헐리웃의 숨통을 터준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원작의 명성에 기댄 졸속 제작이 늘어나자 새로운 관계가 시도되기 시작하니 바로 ‘영화의 게임화’다. 2003년에 발표된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리로디드>는 영화의 개봉과 함께 동명의 게임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뒤를 이어 <스파이더맨>, <해리포터>가 영화의 게임화에 동참했고 올해만 해도 <다빈치 코드>, <엑스맨-최후의 전쟁>, <슈퍼맨 리턴즈>,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 등이 게임으로 제작되어 화제를 모았다.      


사실 게임과 영화의 첫 만남은 영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이 그 시초다. 컴퓨터 회로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영화사상 최초로 CG를 도입해 그린 디즈니의 1982년 작 <컴퓨터 전사 트론>이 바로 그것. <컴퓨터 전사 트론>의 이야기를 플롯으로 해 게임을 만들어 짭짤한 성공을 거두자 영화를 게임화 하는 추세는 IBM과 애플에 의해 유행처럼 번져갔다. 그 이유는 지금의 영화가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지점과 동일하다. 원작의 인기도와 검증된 이야기. 중요한 것은, 게임이 단순히 영화의 스토리를 차용해 게임화 하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날로 발전해가는 컴퓨터 기술은 영화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그래픽 화면을 창조했다. 영화의 촬영이 공간적인 제약과 기술력의 부족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에 반해 게임은 어느 각도, 어느 장소에서건 무리가 없는 카메라 워크를 실현했다. 영화의 이야기를 능가하는 탄탄한 시나리오로 화룡점정을 한 것은 물론이다. 


소재 고갈과 아이디어 부족에 시달리는 헐리웃에게 게임은 신천지였다. 그러자 영화가 게임에 손을 벌렸다. 결과는 알고 있는 그대로다. 좋지 않았다. 1993년 <슈퍼마리오> 이후 계속되는 실패 속에 2001년이 되어서야 <툼 레이더>, <레지던트 이블>만이 간신히 흥행에 성공하였고, 이마저도 작품성은 떨어지는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영화는 게을렀다. 원작의 명성에 기대어 게임을 모방할 줄만 알았지 그 이상 나아갈 생각은 없었다. 게임 팬의 한숨은 늘어갔고 영화 팬의 냉소는 깊어졌다. 오히려 영화감독들이 게임의 제작에 눈을 돌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헬레이져> 시리즈로 유명한 클라이브 바커 감독은 그런 최근 조류의 원조 격에 해당한다. 그는 2001년 이미 자신의 동명소설을 게임으로 제작한 <클라이브 바커의 언다잉 Clive Barker’s Undying>을 선보였다. 주인공 패트릭 갤러웨이가 죽음의 저택에 얽힌 음모와 비밀을 밝히기 위해 요괴와 싸우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 <언다잉>은 이야기, 그래픽, 액션, 사운드 4박자를 고루 갖춘 걸작으로 2001년 상반기 최고의 액션게임으로 명성을 얻었다.


5년이 흐른 지금, 그 수는 배로 늘었다. 스필버그는 2005년 10월 EA와 손잡고 3개의 오리지널 비디오 게임을 제작하기로 계약을 맺었으며 현재 첫 번째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다. 오우삼 감독은 지난 5월 LA에서 개최된 게임쇼 E3에서 주윤발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액션게임 <스트랭글홀드 Stranglehold>의 시연회를 가졌다. 자신의 홍콩시절 대표작인 <영웅본색>, <첩혈쌍웅>의 상징적인 액션도구들 – 쌍권총, 비둘기, 성냥개비, 성당 등 – 을 배경으로 한 1인칭 액션게임을 만든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조만간 게임 <더티 해리>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게이머가 된 스필버그


이들이 본업을 제쳐두고 게임에 투신(?)하고 있는 건 왜일까? 스필버그는 헐리웃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게임에 참여하게 된 주요한 이유에 대해, “게임이야말로 그 어느 매체보다 강력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며 “그러한 사실 때문에 매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의 기저에는 그동안 영화가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흡수하는데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그만큼 헐리웃이 창조력 고갈에 시달린 건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게임 원작의 영화는 그런 헐리웃의 치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였다.


그중에서도 스토리 허술의 문제는 심각하다. 영화는 게임의 스토리를 스크린에 알맞은 방식으로 이식하는데 실패했다. 일례로, 인기 롤플레잉 게임 <파이널 판타지>는 영화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인간마저 완벽하게 CG로 구현한 환상적인 비주얼로 높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에는 신경을 쏟지 않아 게임 팬의 된서리를 맞았다. 영화는 치밀한 각본 속에 구축된 <파이널 판타지>만의 방대한 판타지적 세계관을 스크린에 압축하는데 실패했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대부분 영화들의 주요 실패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슈퍼마리오>, <스트리트 파이터>처럼 구체적인 스토리가 없는 액션게임은 살을 붙이지 못해,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RPG 게임은 살을 줄이지 못한 것이다.


<헤일로>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할 최선책으로 보인다. 서두에서도 밝혔듯 <헤일로>는 1인칭 슈팅게임이다. <파이널 판타지>처럼 방대한 스토리를 밝히기 위해 게임이 구성된 것이 아닌 게임을 위해 스토리가 배경으로 등장할 뿐이다. 스토리가 게임의 재미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화되는 <헤일로>의 스토리는 작가가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 피터 잭슨은 비록 제작자로 참여하지만 헐리웃에서 가장 높은 창조력의 소유자다(그런 피터 잭슨의 장기를 살리기 위해 닐 브로캄프와 같은 신인감독에게 연출을 맡겼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거기에 1급 작가 알렉스 갈란드가 참여한 시나리오가 더해지면 평균치 이상의 스토리를 가능케 한다.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감독이 만든 이야기를 그저 객석에 앉아 감상하기만 할 뿐 이야기의 진행 상황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매체다. 게임은 그 반대다. 유저가 패드를 가지고 스토리에 적극 개입해 진행상황을 결정하는 쌍방향 매체다. 다시 말해, 게임을 영화화하는데 있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고민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 즉 게임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분을 스크린 속에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안드레이 바르코비악 감독이 연출한 <둠>의 1인칭 시점은 눈여겨봐야 할 실패 사례다. 아무리 영화가 게임의 시점을 그대로 차용한들 실시간에 관객을 영화 속 스토리 작가로 고용할 수는 없다. 게임의 매력이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영화만의 특징을 가지고 게임을 영화화할 필요가 있다. 피터 잭슨과 동반자 관계에 있는 웨타 스튜디오의 존재가 <헤일로>에 기대를 갖게 만드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영화가 게임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분은 큰 스크린과 실사화면이다. 웨타는 이미 <반지의 제왕> 시리즈, <킹콩> 등을 통해 이 두 가지를 십분 활용, 게임 CG와는 차별되는 그것으로 전 세계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헤일로>에서도 웨타의 장기는 빛을 발할 전망이다.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 그런 요소만이 게임을 뛰어 넘어 그동안 게임 영화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요, 최상의 수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게임영화를 원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바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헤일로>의 제작에 피터 잭슨을 끌어들였다. 지금까지는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들의 바람대로 영화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걸작 게임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2006. 8. 10. <스크린>)

<헐크>의 서플먼트는 이렇게


최근 개봉한 이안의 <헐크>, 원작이 만화라는 점과 그리고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국내 제목으로 TV 방영되었다는 점에서 디비디의 발매가, 아니 그 서플먼트가 기다려지는 타이틀 중 하나이다. 그래서 필자 나름대로 <헐크>의 서플먼트를 구성해 보았다.  

일단 여느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이안 감독의 코멘터리가 들어가는 것은 필수라 하겠다. 특히 이안의 <헐크>는 여느 슈퍼 영웅을 다룬 영화와 달리 볼거리보다 인간적인 면모에 중점을 두었고 게다가 만화라는 매체가 갖는 특성을 스크린에 실험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에 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선 감독의 오디오 코멘터리만큼 확실한 건 없다.

물론 <두 얼굴의 사나이> 때와 달리 헐크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관계로 그 제작과정의 전모를 보여주는 것도 빼 놓아선 안되겠다. 또한 원작만화와 TV 시리즈에 등장한 <헐크>를 영화와 비교해 보여주는 것도 비교적 재미있는 시도일 테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제작사 측에서 알아서 삽입할 것이니 일반적인 얘기는 이쯤에서 멈추기로 하고.  

<두 얼굴의 사나이>를 비롯, 영화 <헐크>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 하나. 왜 헐크의 청바지는 반만 찢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검열 때문이다 혹은 바지가 스판이다 라는 다종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의 청바지가 절대 찢어지지 않는 이유’ 라는 제목 하에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다큐멘터리가 첨가된다면 팬들은 물론이요 팬 아닌 이들에게도 참신하고 기발한 기획이 될 것 같다.  

필요하다면 원작자인 스탠 리가 직접 이 물음에 답해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가 스탠 리에게 바라는 건 이보다는 이안의 <헐크>를 본 그의 의견이다. <엑스맨 1.5>와 <스파이더맨>의 서플먼트를 접하면서 정작 원작자인 스탠 리의 목소리가 빠져서 아쉬웠는데 이 기회에 스탠 리가 <헐크>는 물론 <엑스맨>과 <스파이더맨>까지 비교해서 자신의 감상을 말해 준다면 이 보다 더 심도 깊은 인터뷰는 없을 것이요 마케팅면에서도 <헐크> DVD의 판매률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일 것이다.

이안을 <헐크>의 감독으로 영입한 유니버셜 관계자들의 인터뷰 역시 잊어선 안되겠다. 아마도 유니버셜이 이안을 영입한 까닭은 <와호장룡>의 액션씬에 감화된 탓이었을 텐데 그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을 보고 느꼈을 감정이 어땠을까, 하는 의도에서 출발한 인터뷰는 제작자를 꿈꾸는 영화학도들에게 또 다른 교육재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참, <헐크>로 재미있는 이스터 에그를 만들 수도 있다. 만약 필자에게 이 프로젝트가 맡겨진다면 옷이 홀랑 벗겨진 헐크가 자신의 찢어진 청바지를 찾으러 좌충우돌하는 시나리오로 이스터 에그를 구성하겠다. 제일 군침도는 서플먼트가 아닌가(?).

자, 여기까지가 필자가 구성한 <헐크>의 서플먼트다. 어떤가, 이 정도면 감히 지상 최대의 디비디 서플먼트가 될 것 같지 않은가. 이보다 더 훌륭할 순 없다고 본 필자, 과감히 주장할 수 있다. 그러니 <헐크>의 DVD 판권을 구입한 제작사측은 필자의 기사를 주목하도록!  


(2003. 7. 월간 <DVD21>)

고전이란 무엇인가?


지금 갑자기 고전(classic)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에 굉장히 뜬금없어 하시는 독자들이 많을 줄로 안다. 충분히 이해한다. 익숙하지가 않아서다. 필자가 이 기사를 쓰게 된 이유는 바로 익숙하지 않았던 방식에 작은 흠집이라도 내어 고전에 조금이나마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해볼까 해서다.

1895년 12월, 뤼미에르 형제가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기차의 도착>이라는 짧은 릴을 상영한 이후, 영화는 영화사(史)라는 시간의 축적물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100년이 지난 지금 현존하는 최고의 오락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지나간 작품들을 고전이라 칭함으로써 현재의 영화와 구분을 짓는다.

하지만 우리가 고전을 이해하는 방식은 영화를 연예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던 헐리웃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처럼 ‘영화도서관’ 시네마테크 및 DVD와 같은 영화자료의 보고가 정착되지 않았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소수의 평론가와 기자, 매니아에 의해 독점(?) 된 고전이 대중에게 소개되는 방식은 대중성이 아닌 철저히 작품성 위주였던 것이다.

그런 풍토 속에서 영화를 접해 온 우리는 고전영화라고 하면 지레 고리타분한 것 아니면 재미없는 영화 또는 어려운 영화로 단정 지어버린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는 국내의 실정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편견이라는 사실은 금세 드러난다.

작품은 실망스럽지만 팀 버튼의 <혹성탈출>과 같이 고전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에 다수의 관객이 몰려드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서스피션>, 구로자와 아끼라의 <라쇼몽> 등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가 현재 리메이크를 준비 중에 있다는 사실은. 외국의 경우라 와닿지 않는가. 그럼 이는 어떤가.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의 문어체적 말투는 박찬욱 감독이 김기영 감독에게 바치는 오마쥬였다는 사실. 그뿐 아니다. <킬빌>보다 먼저 컴필레이션 영화를 완성했던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리>같은 경우, 6~70년대 한국액션영화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기획자체가 불가능했던 영화였다.

무슨 의미인지 이제 이해가 가시는지, 고전들이 현재의 영화에 계속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위의 사례들은 적어도 이들 고전이 지금의 영화에 버금가는 혹은 뛰어넘는 재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기억’의 범위 즉, 고전은 언제의 영화를 총칭하는 것인가. 미국의 ‘국립 영화 보존 위원회 National Film Preservation Board’는 1989년부터 매년 고전 영화 25편을 선정, 보존 및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선정기준으로 두 가지 조항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 조항이 고전의 범위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될 듯하다.

국립 영화 보존 위원회에 제시한 고전에 대한 두가지 조항 중 하나는, 발표 된지 10년 이상이 지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혹시 < Madman of Mandoras >라는 영화를 보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제목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라 사료가 되는데 < Madman of Mandoras >는 1963년에 발표된 SF영화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자국민 중에서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의 조악한 영화로 IMDB에서는 최악의 영화 100 리스트에 4위를 마크하고 있을 정도다. 여기서 또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 Madman of Mandoras >와 같이 자국에서도 존재가치가 미진할 뿐더러 퀄러티마저 떨어지는 영화를 그저 10년 더 이전의 과거에 만들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전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없다.

결국, 10년 그 이전에 발표된 영화일 경우 고전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한 조항은 필름상태에 따른 편의상 문제이지 정확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러한 모순에 대한 혐의를 잠재우고 고전영화에 대한 더욱 정확한 의미의 유추를 가능케하는 두 번째 조항이 제시된다.

‘문화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또는 예술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

1994년에 발표된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은 이제 10년 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시간의 재배열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으로 그해의 칸느 영화제 금장상을 수상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으며 많은 영화들의 모범사례가 되어 이제껏 인용, 패러디, 변형되고 있는 중이다. 이는 미국의 국립 보존 영화 위원회가 두 번째로 제시한 조항을 100% 만족시키고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반영’이란 측면에서 영화가 후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이는 10년이라는 숙성(?) 시기만 만족하면 고전으로 성립되는 것이다. 자, 이제 고전이라는 개념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와닿는가. 그렇다면 독자 여러분은 고전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셈이다.

그럼 이제 앞에서 잠깐 밝혔던 고전이 현재의 영화에 미치는 기능에 대해 조금만 더 진도를 나가보자.

사람들은 거울을 이용,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봄으로써 그것에 반사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흐트러진 품세를 추스른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현재영화와 고전영화에 대한 관계는 바로 사람과 거울의 관계와 같다.

고전은 거울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아니 역할을 한다. 그래서 현재 영화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단언컨대 현존하는 모든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가 나아갈 방향을 고전영화를 봄으로써 창조한다. 그뿐인가, 자신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의 보완을 위한 최우선 해결책으로 고전영화를 참조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러한 ‘수용’과 ‘반성’의 과정을 거친 최근 영화를 무수히 많이 기억하고 있다.

헐리웃 영화를 예로 들어볼까.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 홍콩의 쇼브라더스 작품들을 위시하여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 이탈리아의 웨스턴 영화 등등 이 영화는 순전히 감독의 취향에 따른 고전의 인용으로만 완성된 영화다. 또 다른 사례 하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대해서 감독 피터 잭슨은 자신의 영화가 1933년에 발표된 <킹콩>과 1963년 작 <제이슨 앤 아거노츠>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게다가 차기작은 <킹콩>의 리메이크라지 않나.

한편 영화의 신(god),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는 고전에 대해 언급하길, ‘과거는 지나간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영화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영화계는 ‘수용’의 측면에서나 ‘반성’적인 축면에서 고전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점유율이 10%를 겨우 넘기는 상황에서 뒤를 돌아볼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영화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 지금은, 그리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나마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 여유가 생긴 후, 고다르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이미 언급한 <올드보이>와 <다찌마와리>는 차치하더라도 춘사 나운규의 1926년 작 <아리랑>이 지난해 이두용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좋은 평가를 받은 경우가 있다. 그리고 충무로의 믿을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제목은 사정상 밝힐 수는 없지만 2~3편의 리메이크가 현재 기획중에 있고 성사여부의 가능성 역시 매우 높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국내영화계의 뜻있는 인사들은 폭발적인 우리 영화의 호응에 힘입어 한국영화의 복원작업에 점차 진행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내실있는 움직임은 이 나라에서 고전영화가 갖는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고전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아직도 고전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시는가. 이제 그런 걱정은 접어두셔도 좋을 듯 하다. 지면관계상 많은 영화를 소개시켜드리지는 못했지만 고전에는 덩치만 큰 요즘의 영화보다 재미있는 작품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들 고전작품을 리메이크하지 못해서 안달이겠는가.

또한 고전영화를 본다는 것은 취향의 고급화를 대변하는 것은 물론이요 광적인 영화팬만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가 절대 아니다. 고전영화를 본다는 것은 우리의 학창시절 혹은 연애시절의 풋풋한 순간을 떠올리듯 기억의 좋았던 한 부분을 현재에 다시 재생함을 의미한다.

자, 이래도 고전을 멀리 할 것인가!


<무비스트>

성룡엉아를 돌려다오!


주말이면 만날 집에서 삐대기 일쑤인 본 우원, 하루는 남아도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조카를 델꼬 동네 멀티플렉스 극장을 놀러갔더랬다.

초등학생 조카 나이 이제 겨우 11살, 같이 볼 영화는 성룡 주연의 <메달리온> 밖에 없더라. 그래도 본 우원, 평소 성룡 엉아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정도.. 까정은 아니지만 극장에서 안 보고 지나가면 괜히 쌀 거 못 싼 거 마냥 찝찝했던 지라 내심 쾌재를 부르며 영화 관람에 임했더랬다.

근데 이 놈의 조카 쉐이 상영내내 “액숀 가면맨이면 저 사람 잽도 안돼’라며 우리의 성룡 엉아를 단순 B급 액숑 배우 나부랭이 정도로 치부하더니만 급기야 영화가 끝나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글쎄.. 저런 거 볼 바엔 차라리 피자헉이나 먹으러 갈 것이지 왜 이런 잼없는 영화로 생고생을 시켰나며 아주 난리부르스다.

성룡 영화를 우리 조카는 씨바, ‘저런 거’란다. 물론 <메달리온>에서 성룡 엉아가 인간로켓티어도 아닌 것이 예전과 달리 씨쥐의 도움을 받아가며 하늘로 슝~하고 치솟는 모습이 서글프긴 했다.

그래도 아무리 그렇지 성룡 엉아가 누군데, 헬리콥터 날개에 화이바 날려먹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스턴트 계의 인간문화재가 아니었단 말인가. 근데… 세월의 힘은 천하의 성룡 엉아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나부다. 하긴 1954년 4월 7일생이니까 벌써 성룡 엉아도 쉰이시다.

본 우원이 이 기사를 쓰게 된 건 순전히 이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노쇠에 따른 급격한 늘어짐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그의 폭주기관차같은 몸동작 하나하나는 홍콩시절 추억 영화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지 않던가.

그러니 과거 성룡 엉아의 기라성과 같은 액숀을 지금에 들춰 과거를 추억 해보고, 덤으로 나이가 얼매나 성룡 엉아의 발목을 잡았는지도 이 기회에 함 알아보자꾸나.


1. 스피드

성룡 영화 액숀의 가장 기본이라 하면 역시 아우토반을 가를 듯한 스피드로 내뿜는 원투스트레이트 연발타가 아닌가. 이름하야 ‘3.78/sec’. 보시라, 초당 3.78발의 주먹차기와 발차기 동시일발을 가능케하는 성룡 엉아 액숀의 최정점 <폴리스 스토리 2,3> 시절의 눈 깜짝할 위용을.



홍콩시절 스피드 감상하기(http://www.ddanzi.com/new_ddanzi/129/129_mov/hk_speed.wmv)


1초에 주먹차기 한발 주워 담기도 급급해하는 굵은 갑빠 스티븐 시발도, 스피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람의 싸나이 화룡반점 짱깨 배달부도 감히 명함 일장 못 내밀 페라리급 스피드여~

게다가 성룡 엉아 특유의 개구리 폴짝 담치기 실력은 또 어떻단 말인가. 특특특, 벽치는 三발마의 구두소리만이 허공을 가르는 옛 홍콩시절의 가공할만한 순간 담치기 실력. 아~ 우리 어찌 잊으랴, 성룡 엉아의 스피드를.

그랬던 성룡 엉안데 지금은… 나이를 먹더니 일케 되부렀다.



현재의 스피드 감상하기
(http://www.ddanzi.com/new_ddanzi/129/129_mov/now_speed.wmv)



그러나 그도 벌써 형님이라고 부르기보단 아저씨라고 대접받아야 더 어울릴 것만 같은 지천명의 나이 쉰. 룡 엉아가 아무리 100m를 10초대에 돌파하는 비공인 번외 백미터 아시아 연예인 신기록 보유자라 한들 어찌 흐르는 세월까정도 돌파할 수 있으리요.  

성룡 엉아도 인간이시다. 고로 어쩔 수 없이 1년마다 나이 한 살씩 꼬박 잡수신다. 해서 한 마리의 날렵한 개구락지 마냥 통통 튀는 짬푸력을 선보였던 홍콩시절의 초특급 담치기와 달리 이제는 세 걸음의 도움닫기가 있어야 가까스로 담을 탈 정도로 현격한 스피드 감소를 보이시지만서두…

성룡 액숀은 죽지 않는다. 다만 스피드가 좀 느려질 뿐. 나이 먹음에 따라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것이기 땜시롱 인간적으로 봐줄 수 있다는 얘기다.

대신 우리가 성룡 엉아께 바라는 건 이것이 아니더냐. 다음을 보라.


2. 액숀

우리가 진정 성룡 엉아께 원하는 것 중 거의 일등 반열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코딱지만큼 좁아터진 공간에서 연출해내는 온갖 다종버라이어티한 생활소품 응용 아크로바틱 원맨 리사이틀 아기자기 액숀이라 하겠다.

기억들 나시는가, 글로리아 입의 결혼식에 참석하려는 우리의 성룡 엉아를 적들이 감금으로 방해하려 할 때 이에 아랑좃하지 않고 평소 하시던대로 주변 집기를 이리 뒤집고 저리 패대기치고 여차저차하시어 난국을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라클>에서의 그 기념비적 액숀을…



홍콩시절 액숀 감상하기
(http://www.ddanzi.com/new_ddanzi/129/129_mov/hk_act.wmv)



캬~ 마치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행위예술가마냥 거창한 재료 한 개 없이 용도 폐기 직전의 가재용품들을 걍 손에 잡히는데로 사용함으로써 숨결을 불어넣는 저 일백푸로 재활용적 액숀의 힘을 보라!

우리가 여지껏 그의 스피드가 거북이의 발치까지 떨어져도 열광적으로 발광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이유는 거의 포스트 모너니즘의 경지에 오른 창조적 액숀이 뒷받침이 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덩가.

근데 미국으로 주 활동무대를 옮기더니만 영 맥아리를 못 추시는 게 바람 빠진 반담 갑빠 마냥 기계적인 액숀을 펼치시덩가 아니면 성룡 특유의 소품 응용 리사이틀을 보여주더라도 할인마트의 시식코너같은 맛배기 수준에서 그치고 마니 이 아니 안타깝다 아니 할쏘오~



현재의 액숀 감상하기
(http://www.ddanzi.com/new_ddanzi/129/129_mov/now_act.wmv)



아무래도 헐리웃 이너마덜이 보기랑 틀리게 예의가 몹시 바른가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성룡 영화를 저렇게 한개두 안 위험천만하게 만들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성룡 엉아는 나이는 좀 먹었을지언정 아직 노인은 아니다. 어이~ 헐리웃, 니덜 노인공경이 너무 과해.  

그러나 역시 썩어도 삼치라고, 그나마 다행인 건 <샹하이 나이츠>처럼 성룡 엉아께서 직접 프로듀서를 병행하고 있는 영화에서는 그 스피드가 눈에 띌 정도로 떨어졌을지언정 오밀조밀한 소품 응용 액숀의 완성도에 있어서 거의 관객 만족지수 백 퍼센트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야, 할렐루야~


3. 스턴트

소품 응용 액숀이 성룡 영화의 좌청룡이라면 성룡 영화의 우백호는 모니모니해도, 목숨 알기를 돌같이 여기는 평소의 신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몸뚱아리를 특수효과의 재료로 쾌히 투척하시어 펼치는 무대역무대뽀적 본인 스턴트라 아닐 할 수 엄따.

바로 이런 거…



홍콩시절 스턴트 감상하기
(http://www.ddanzi.com/new_ddanzi/129/129_mov/hk_stunt.wmv)


과연 성룡 엉아가 아니었거늘 이 세상 그 어느 목숨이 안전장치 하나 없는 헬기 사닥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63빌딩 1.2배 높이의 상공을 누빌 수 있겠으며, 그 어느 맷집이 머리통 빠개져가며 대형 간판에 지 대구리를 쑤욱 들이박을 수 있었겠고, 그 어느 간땡이가 30층 높이의 절벽에서 겁대가리없이 하강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성룡 엉아가 그 귀한 몸뚱아리 다 받쳐 똥꼬탈장 머리쭈빗 등골오싹한 아슬아슬 스펙타클을 한바가지로 선사하다보니 상대역이라고 어디 가만있을 수 있었을쏘냐. 나쁜넘 역으로 출연한 상대배우덜이 성룡 엉아의 회심의 일격에 냅따 팽 당하는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라.



홍콩시절 나쁜넘 스턴트 감상하기
(http://www.ddanzi.com/new_ddanzi/129/129_mov/hk_stanstunt.wmv)



앞에서 끌어주면 뒤에서 밀어주는 상호니아까적 상부상조 정신이 돋보이는 위 클립은 성룡 엉아가 함 온 몸 뽀사질 기세로 자빠져주면 이에 질세라 나쁜넘으로 등장하는 상대 배우덜 역시 물불 가릴 것 없이 처절하게 자빠라져주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통해 성룡 영화가 단지 성룡 한 개인의 자빠라짐이 아니라 상대 배우덜의 헌신적인 자빠라짐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성룡표 영화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간파할 수가 있었다.

그랬던 성룡 엉안데… 근데 씨바, 나이 먹고는 자연산 본인 스턴트가 있어야 할 자리를 씨쥐에게 일임하며 자기 몸 건사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스턴트 감상하기
(http://www.ddanzi.com/new_ddanzi/129/129_mov/now_stunt.wmv)



우리가 언제 성룡 엉아가 딴스로 승부를 거는 날을 상상이라도 했었냐. 모, 꽤 우끼긴 했지만 전공인 쌩노가다 액숀은 접어두고설랑 씨쥐로 범벅된 딴스에 집중하는 그 순간의 서글픔이란.. 정말이지 유횬상의 트롯 전향을 바라보던 국내 메탈팬덜의 턱주가리 빠질듯한 충격을 약 23만 4천5백7십3배는 넘어설 정도로 이루 말할 수가 없음이다.

이 넘의 세월은 성룡 엉아의 스피드만 물고늘어진 게 아니라 성룡 엉아의 전매특허인 무대역무대뽀적 본인 스턴트의 바짓가랑이까지 물고 늘어졌다. 덤으로 상대배우덜의 늘어짐까지…

그래서 이런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하니 아주 미워 죽겠다. 성룡 엉아가? 아니, 성룡 엉아를 나이 먹게한 그 세월이…


4.  나쁜넘

소품 응용 액숀과 무대역무대뽀적 본인 스턴트가 관객에게 선 굵은 재미를 선사한다면 성룡 영화의 쏠쏠한 재미 파트를 책임지는 요소라면 본 우원, 그건 최고 쎈 악당이라고 강력히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최고 쎈 악당이라면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성룡 엉아를 기어가게 함으로써 역대 성룡 영화 최고의 나쁜넘으로 등극한 <취권>에서의 그. 이에 그치지 않고 그 바로 다음 작 <사형도수>에서 또 한번 성룡 엉아를 처절함의 구렁텅이에 쳐박어 욕되게 한 그. 바로 황정리 두둥~



최고의 나쁜넘 황정리 액숀 감상하기
(http://www.ddanzi.com/new_ddanzi/129/129_mov/yeom.wmv)


그 이후로부터 성룡 영화에는 바늘 가면 실 가고, 짜장 가면 닥꽝 가듯 최고 쎈 나쁜넘은 약방의 감초처럼 반드시 따라붙는 성룡 영화의 볼꺼리 중 하나였다. 보라! 이 기라성과 같은 나쁜넘덜의 험악한 인상, 아니 재원을.

           
<폴리스스토리2>
악당 : 홍콩 정부를 상대로  삥 뜯으려는 넘덜.
전투력 : 폭발물 다루기에 능수능란하며 그 중 벙어리는 쌈질 실력도 열라 출중함.
성룡과의 관계 : 성룡의 애인을 인질로 보유하고 있음.

<폴리스스토리 3>
악당 :  마약 밀매조직의 보스와 그 밑에 보스.
전투력 :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
성룡과의 관계 : 이 조직의 첩자로 동생 양자경과 함께 잡입하는 성룡.

<미라클>
악당 : 성룡이 보스가 되는 걸 못 마땅해하는 부하와 상대방 보스.
전투력 : 성룡이 약간 어리 버리한 관계로 악당의 존재자체가 두려움을 줌.
성룡과의 관계 내부의 적.


이너마덜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A계획>에서 성룡 엉아는 평소에 안 하던 생고추를 입안 한까득 베어 물고 피어오르던 분노를 매운내로 승화해서야 비로소 이 나쁜넘덜을 물리칠 수가 있지 않았덩가.

그래서 오히려 우리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는 홍콩시절의 나쁜넘덜. 그런데 성룡 엉아가 미국시절에 물리친 나쁜넘덜 중 과연 우리의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악당덜이 있었단 말인가?


<러시아워>
악당 ; 중국의 유물을 뽀리까려는 집단.
전투력 : 중국 나쁜넘은 인상만 강렬하지 눈에 띄는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거 같지는 않고 나중에 나오는 양넘 보스 역시 별다른 활약상이 엄따.
성룡과의 관계 : 예전에 성룡이 쫓던 넘.

<샹하이 눈>
악당 : 황제의 금화를 노리는 넘.
전투력 : 조개껍질로 모가지를 찌르는 기술이 뛰어남. 후에 성룡을 마구 혼내줌.
성룡과의 관계 : 호위병 시절 보호하던 공주 납치.

<턱시도>
악당 : 세계의 물소유권을 장악하려는 넘덜.
전투력 : 부하가 많다는 거, 이 넘덜이 제조한 물을 마시면 좃뙌다는 거 외에 별다른 특징 없음.
성룡과의 관계 : 우연한 기회에 사건에 휘말리는 성룡.


성룡 엉아가 잠시 늘어지니까 악당들마저 늘어지다니… 이것두 모두 세월 탓이란 말인가…


5. 女배우  

성룡 엉아를 보기 위해 성룡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女배우를 보기 위해 성룡 영화를 찾는다고 할 정도로 그 쭉쭉빵빵함을 만천하에 과시했던 성룡 영화 속 그뇨들… 장만옥, 글로리아 입, 종초홍, 엽청문… 꼴깍

항간에는 성룡 영화에 출연하지 않으면 그 미모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성룡 영화는 그야말로 이쁜 뇨배우덜이 보고였다 하겠다.


<씨티헌터> : 왕조현, 구숙정
<용형호제 2> : 정유령, 이께다 쇼오꼬
<미라클>:  글로리아 입
<용형호제> : 관지림
<폴리스 스토리> : 장만옥
<오복성> : 종초홍


당대 최고의 홍콩 여배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자신에게만 쏠리는 관심을 자연스럽게 분배시켜 남뇨관심의 균형추를 거의 다이다이쌤쌤으로 이뤄내고야 마는 저 남녀호혜평등의 자세. 역시 룡 엉아께서는 팬서비스가 무언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던 사람이었던 거시었던 거시다.

그랬던 여배우덜의 미모가 아쉽게도 지금에는 거의 실종되부렀다.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거니와 등장하더라도 루시 리우처럼 별로 안 생긴 배우를 줄줄이 캐스팅함으로써 예쁜 여배우를 보러 성룡 영화를 찾는 관객덜의 여린 마음에 대못을 박아버리는 사태에 까정 이르고 있는 거시다.


<샹하이 나이츠> : 범문방
<턱시도> : 제니퍼 러브 휴잇
<러시아워2> : 장쯔이
<샹하이 눈> : 루시 리우
<빅타임> : 서기
<러시아워> : 줄리아 후(아역배우)


모, 나름대로 <러시아워2>의 장쯔이라든가 <턱시도>의 제니퍼 러브 휴이트가 장만옥의, 관지림의, 종초홍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형국이지만 2% 부족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6.  엔쥐

엔쥐장면에 이르러야만이 비로소 화룡점정된다는 성룡 영화. 그만큼  성룡 영화에서 엔쥐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엄청나다 하겠다.



홍콩시절 엔쥐 감상하기
(http://www.ddanzi.com/new_ddanzi/129/129_mov/hk_ng.wmv)



특히 성룡 영화 엔쥐의 특징은 여타 엔쥐 장면처럼 연기도중 먹던 밥풀 흘려서 서로 웃는 그런 개념이 아닌 돌땡이에 머리 부딪쳐 대구리에 빵꾸나는 종류의 장면을 공개하여 성룡 엉아 본인이 주축이 된 노가다 액숑의 탄생 비화를 눙치게 알리는 개념이다.

그럼으로써 영화 내내 성룡 엉아를 곡예사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받아들였던 관객은 그런 살 떨리는 엔쥐 장면을 똥꼬에 땀을 쥐어가며 지켜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씨바, 어케 저렇게까정… 저게 사람이라고라… 허걱’이라고 읊조리며 결국 경외감의 감정으로 성룡 엉아를 대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성룡 영화의 엔쥐가 맡은 중차대한 역할이었던 거시다.

허나 지금의 성룡 영화 엔쥐를 보라. 성룡 엉아가 나이 먹고 노쇠화되니 엔쥐장면까정도 노쇠화 됐다.



현재의 엔쥐 감상하기
(http://www.ddanzi.com/new_ddanzi/129/129_mov/now_ng.wmv)


그 화려했던 사건사고류의 엔쥐는 어데로 가고 오로지 서로 안면 꼴아 보며 웃어제끼는데 바쁜 단세포적 실수담에만 연연함으로써 본편 그 이상의 퀄러티를 자랑하던 성룡 영화의 엔쥐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말았다.

흐미~ 성룡 엉아 나이 먹는 거 지켜보는 것도 서글퍼 죽겠는데 엔쥐까지 저러구있으니 그 서글픔은 두 배가 되는 구나. 이 용솟음 치는 눈물은 누가 닦아줄런지…


7. 그리고..

아..

이렇게 성룡 엉아의 과거 작품을 살펴보니 명절만 되면 마포 굴다리 밑의 경보극장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성룡 엉아의 화려한 액숀덜이 미끄럼 돌 듯 머리 속에서 돌아가누나.

특히 성룡 영화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이 단 3분의 런닝 타임에 다이아몬드 결정체처럼 영롱하게 집약되어 있던 <용형호제 2>의 마지막 장면…



<용형호제 2> 마지막 장면 감상하기
(http://www.ddanzi.com/new_ddanzi/129/129_mov/hoje.wmv)


이 장면을 보며 우리는 얼마나 박장대소하고, 룡 엉아의 인간미 넘친 액숀 하나하나에 얼마나 땀을 쥐었던가.  

<용형호제 2>를 보고 있자니 비록 성룡 엉아가 최근 개봉작 <메달리온>에 이르러 간땡이 부은 노가다 액숑을 멀리하고 씨쥐와 동반자적 위치로 자신을 격하시킴으로써 팬덜을 실망시켰지만 이제 곧 과거의 몸동작을 회복하시어 성룡 엉아 팬덜의 가오를 다시금 곧추 세워 줄 것만 같고

헐리웃에 편입되어 안타깝게도 쌈마이적 행보를 보임으로써 본 우원 조카 쉐이처럼 룡 엉아를 단순 B급 액숑 배우로 치부하고 있는 어린 관객에게 참 모습을 선사해 주실 것만 같은 기분이 마구마구 든다.

앞서도 말했듯, 성룡 엉아는 죽지 않는다. 다만 나이를 먹을 뿐이다. 그러니 세월아, 어서 빨리

성룡 엉아를 돌려다오!!


<딴지일보>

고전영화란 무엇인가?


1. 고전이란 무엇인가?

1895년 12월, 뤼미에르 형제가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기차의 도착>이라는 5분짜리 릴을 ‘돈을 받고’ 상영한 이후, 영화는 영화사(史)라는 시간의 축적물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100년이 지난 지금 현존하는 최고의 오락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지나간 작품들을 고전(classic)이라 칭함으로써 현재의 영화와 구분을 짓는다.

그래서 일까, 대다수 사람들은 고전영화라고 하면 지레 고리타분한 것 아니면 재미없는 영화로 단정 지어버린다. 국내의 실정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편견이라는 사실은 금새 밝혀진다.

작품은 실망스럽지만 팀 버튼의 <혹성탈출 1968>과 같이 고전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에 다수의 관객이 몰려드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게다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서스피션 1941>,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 1950>, 조지 팔의 <타임 머신 1960>, 안드레아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 1972>, 리나 베르트뮬러의 <귀부인과 승무원 1975> 등의 영화들이 리메이크를 준비 중에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이들 고전이 지금의 영화를 뛰어넘는 재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시 말해 고전영화를 본다는 것은 우리의 학창시절 혹은 연애시절의 풋풋한 순간을 떠올리듯, 기억의 좋았던 한 부분을 현재에 다시 재생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기억’의 범위 즉, 고전은 언제의 영화를 총칭하는 것인가. 국내 모 영화사이트에 게재되어있는 LA Movie Maker의 ‘클래식 지명하기 How to Nominate a Classic’라는 제하의 번역기사를 보면 미국의 ‘국립 영화 보존 위원회 National Film Preservation Board’는 1989년부터 매년 고전 영화 25편을 선정, 보존 및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것의 선정기준으로 두 가지 조항을 명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선정되는 영화는 발표 된지 10년 이상이 지난 작품이어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한가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혹시 <Madman of Mandoras>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제목이라도 들어본 적은. <Madman of Mandoras>는 1963년에 발표된 SF영화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자국민 중에서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의 조악한 영화로 IMDB 최악의 영화 100 리스트에 4위를 마크하고 있다. 그럼 <Madman of Mandoras>와 같이 자국에서도 존재가치가 미진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영화를 그저 과거에 만들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전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10년 이상 전에 발표된 영화일 경우 고전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한 조항은 필름 상태에 따른 편의상 문제이지 정확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 다음 항은 이러한 모순에 대한 혐의를 잠재우고 고전영화에 대한 더욱 정확한 의미의 유추를 가능케 한다.

“문화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또는 예술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

1994년에 발표된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 1994>은 이제 10년 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간의 재배열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으로 그 해의 칸느 영화제 금장상을 수상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으며, 많은 영화들의 모범사례가 되어 이제껏 복제, 변형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는 “문화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또는 예술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을 100% 만족시키고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반영’이란 측면에서 영화가 후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이는 숙성(?)시기에 상관없이 고전으로 성립되는 것이다.


2. 고전의 기능

사람들은 거울을 이용,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에 반사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흐트러진 품세를 추스른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영화와 고전영화에 대한 관계가 바로 사람과 거울의 관계와 같다.

고전은 거울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아니 역할을 한다. 그래서 현재 영화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단언컨대 현존하는 모든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가 나아갈 방향을 고전영화를 봄으로써 창조한다. 그뿐인가, 자신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의 해결을 위한 제1과정으로 고전영화를 참조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러한 ‘수용’과 ‘반성’의 과정을 거친 최근 영화를 무수히 많이 기억하고 있다.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 2000>에 등장하는 시대와 선과 악의 대립 그리고 로마 콜로세움의 마지막 결투 등 이 모든 영웅탄생을 위한 배경은 40년 전,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 1959>에서 그 탁월함과 감동이 재현된 적이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험 1999>의 포드 레이싱 역시 <벤허>의 전차 경주에서 따 왔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신적 재난에 가까웠던 영화 <진주만 2001>은 <도라! 도라! 도라! 1970>의 무뇌아적 버전이 아니었던가.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 2002>은 또 어떤가, 감독 피터 잭슨은 자신의 영화가 1933년 발표된 <킹콩>과 <제이슨 앤 아거노츠 1963>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한편 장 뤽 고다르는 지난해 칸느를 찾은 자리에서 ‘과거는 지나간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영화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영화계는 위와 같은 ‘수용’의 측면에서나 ‘반성’적인 측면에서 고전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 못 하였다. 점유율이 10%를 겨우 넘기는 상황에서 뒤를 돌아볼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영화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 지금은 그나마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아마도 여유가 생긴 후, 고다르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얼마 전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춘사 나운규의 1926년 작 <아리랑>이 모 기획사에 의해 리메이크 되어 올 7월 즈음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국내영화계의 뜻 있는 인사들은 폭발적인 우리 영화의 호응에 힘입어 한국영화의 복원 및 정리작업에 점차 진행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거기다 아직 관객의 반응은 덜하지만 예전에 어디 시네마테크라는 영화도서관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는가. 이같은 국내영화계의 내실 있는 움직임은 이 나라에서 고전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결코 가볍지않음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3. 중흥기의 한국 고전들

한국영화의 첫 번째 중흥기라 하면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의 흑백무성영화시절을 들 수가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필자의 지식이 너무 짧은 관계로 자세한 내용을 담을 수 없음에 먼저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게다가 이 시대의 자료 역시, 나운규의 <아리랑>과 국내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 1935>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미비해 참고하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는 제2의 중흥기를 맞게 된다. 1959년의 영화 제작 편수가 현재의 2배에 육박하는, 무려 100편을 넘겼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한다. 특히 1960년대 초반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 <마부, 1961>, <오발탄, 1961>, <하녀, 1960>,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등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로, 신상옥, 강대진, 유현목, 김기영, 이만희 등 우리에게 거장으로 잘 알려진 감독들이 활동한 황금기이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건 이 시기에 많은 한국의 걸작 스릴러 영화들이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히치콕’이라는 다소 불경하기까지 한 꼬리표를 달고 있는 김기영 감독을 비롯, 이만희, 이용민 감독 등이 이 계열의 전문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번듯한 공포, 스릴러 국내 소설(문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참 놀라운 성과인데, 사실 알고 보면 공포계열의 스릴러 영화가 국내에서 붐을 일기 시작한 1960년대 초반의 몇몇 영화들이 미국(간혹 프랑스)의 그것에서 모방됐음을 알 수가 있다.

이만희 감독의 <다이알 112를 돌려라, 1962>는 제목에서부터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1954>를 연상시키며, 그의 또 다른 스릴러 작품인 <마의 계단, 1964>은 프랑스의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디아볼릭 1955>과 설정이 유사하다. 또한 이용민 감독의 <흡혈화 악의 꽃, 1961>같은 경우는 드라큐라의 모티브를 국내영화에 최초로 적용한 사례였다.

하지만 이는 열악한 국내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작업으로 이들 감독들은 단순히 외국의 영화를 흉내내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 나름의 철학을 담아 토종화 하는데 성공하여 이후 한국형 스릴러, 공포영화의 전형을 제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그것이 끝내 계보를 이루지 못 해 아쉽지만).

다시 말해 중흥기 한국의 고전들은 바다 건너 외국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오며 이를 자양분 삼아 국내영화계의 내실을 다지는데 상당부분 기여를 했다는 얘기다.


4. 미국영화의 힘

이와 같은 사례는 비단 우리 만의 일이 아니었다. 이미 전 세계의 영화는 미국의 자기권 안에서 심하게 정체성을 앓고 있는 중이였다. 하지만 그 같은 현상이 꼭 문화주권의 박탈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다. 영화의 발명국 프랑스는 일찍이 미국 영화의 우수성을 간파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서슴지 않았으며,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자국영화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1944년 독일에 의해 가해졌던 미국 영화 수입 제한의 문이 빗장을 풀면서, 이를 역수입한 프랑스의 많은 관객들은 미국영화에 열광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필름 느와르에 대한 애정은 놀라울 정도였다. 특히 프랑스 비평가들은 비극적인 범죄의 세계를 어둡게 다룬 일련의 미국 영화들을 주목하고, ‘검은 영화’라는 뜻의 ‘필름 느와르 film noir’라는 용어를 손수 만들어 주기까지 하였다.

후에 누벨바그를 주도한 프랑스의 젊은 감독들은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영화에 미국 필름 느와르에 대한 오마쥬를 바치곤 하였는데, 비평가 시절부터 필름 느와르 영화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프랑소와 트뤼포는 자신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느와르 요소를 가미한 <피아니스트를 쏴라 1960>를 연출하였다. 또한 장 뤽 고다르는 <네 멋대로 해라 1960>의 미셸이란 캐릭터를 미국 필름 느와르의 상징인 험프리 보가트에게서 차용하였다.  

미국영화가 끼친 영향력은 필름 느와르 외에 다른 장르에서도 발견된다. 소유에 대한 열망을 노골적으로 영웅의 모습에 투영하는 서부극을 예로 들어보자. 1950년 이후 앙드레 바쟁에 의해 주도된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의 비평가들은 1920년대에 논쟁을 불러온 ‘작가(auteur)’라는 개념을 다시금 설파하였는데, 미장센과 관련된 이 주장에 의해 자국에서 B급 영화 감독으로 천대 받던 존 포드는 작가로 등극하였다. 이 후 존 포드에게서 영향을 받은 수 많은 서부극들이 난립을 하였고, 미국에서 그 세를 잃은 후에도 이탈리아로 건너가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이름으로 재 탄생하여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한 전력이 있다.

영화자체로만 우수성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또한 미국 영화이다. 많은 이들이 헐리웃 영화를 모방하고 베끼는 것에만 그치고 있을 때, 앙드레 바쟁은 ‘우수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헐리웃의 시스템을 배울 생각은 하지 않고 왜 영화 자체만을 따라 하고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헐리웃은 영화를 하나의 예술형태로 자리잡게 한 시스템으로도 세계 영화 시장을 장악하였으며, 이를 보고 해외의 유수 우수한 영화 인재들이 미국의 헐리웃으로 몰려들었다.

히치콕이 영국에서 유능한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시기, 영국의 영화시장을 주도한 것은 미국의 제작사였다(1915년까지 영국에서 상영된 영화 중 98%가 미국 영화였다). 게다가 히치콕은 영화계에 입문하던 때부터 미국식으로 교육을 받았으며, 철저히 계산된 제작과정과 내용 구상면에서도 앞서있던 헐리웃의 시스템 하에서 일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리고 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39>의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David O. Selznick)과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건너가 그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히치콕만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헐리웃 시스템에서 꽃을 피운 외부 인재들은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 중에서 미국 뉴 시네마 운동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지 라이더 1969>의 촬영감독 라슬로 코박스는 헝가리에서 사선을 건너 헐리웃으로 넘어와 혁신적인 촬영술을 발명하였으며, 폴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 출신인 로만 폴란스키와 밀로스 포먼은 각각 자국에서 이름을 날린 후 헐리웃에 입성하여 <차이나타운 1974>,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975>와 같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만들었다.


5. 기억을 잠식하고 있는 헐리웃의 고전들

그러한 헐리웃의 절대적 배경때문인지, 우리는 고전영화라고 하면 금방 머리 속에 미국영화의 황금기였던 3,4,50년대의 영화를 떠 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한번 그려보아라. 어떤 영화가 당신의 기억을 잠식하는지. 필자 역시 그렇지만 많은 독자들이 스칼렛 오하라와 버틀러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위시하여 <애수 1940>,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닥터 지바고 1965>, <사운드 오브 뮤직 1965>, <러브 스토리 1970> 등을 기억할 것이다. 일례로 1980년대 중반 KBS에서 연말을 결산하는 의미로 ‘다시 보고 싶은 추억의 명화’라는 특집을 마련하였을 때, 시청자들의 투표에 의한 상위 리스트는 위의 영화들과 다를 바 없었다.

굳이 영화가 아니라 그것의 핵심이 되는 스타를 떠 올릴 경우라도 그 배우는, 또한 미국이 만든 모습일 것이다. 단, 세편의 영화로 불사조가 된 제임스 딘, 헐리웃만이 창조해 낼 수 있었던 환상 마릴린 먼로, 특이한 괴조음을 부르짖으며 현란한 몸 동작을 선보여 전 세계를 사로 잡은 이소룡. 이들은 하나 같이 짧은 삶이 만들어낸 극적인 결과물이자 사후(死後)에도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아이콘이지만 과연 미국의 헐리웃이 아니었다면 가능한 일이였을까. 이소룡의 경우 국내의 팬들에게는 홍콩의 배우로 각인되어있지만 다른 나라의 팬들에게 헐리웃의 배우로 인식되고 있는 사실은 이를 잘 증명하는 사례일 것이다.

사실 필자가 고전영화에 대한 기사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처음 고민한 내용은 100년을 넘는 영화의 역사를 단 몇 페이지에 어떻게 종합, 정리하는 가였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위에서도 밝혔듯이 고전에 대한 필자의 지식이 대부분 미국의 그것에 치우쳐져 있다 보니 자칫 문화사대주의로 비추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가급적 헐리웃의 영화사와 우리 영화사 사이의 연관성을 들어 균형을 맞추는데 노력하였고, 고전영화에 대한 국내 팬들의 저변을 생각하여 역사적 사실의 기계적 나열보다는 되도록 대중적인 영화사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데 주력하였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두서가 없어졌고 또한 미국영화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고전 헐리웃 영화 위주로 이야기가 구성되고 말았다. 그래도 독자들이 이 기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고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해의 폭을 한 뼘이라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2. 2. 영화 월간지 <로드쇼>)

스포찌라시 영화기사 작성법


본지 영화부 부설 문화센터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매년… 쩝, 작년에는 사정상 한 번 건너뛰었지만 어쨌든, 영화전문기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가 쉽게 후딱 영화기사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둔 영화기사 작성법 특강시간을 마련하여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래서 올해에도 역시 그런 수강생들의 호응에 보답하고저 다시 한 번 특별강의시간을 마련하였으니, 오늘 이 시간에 배울 강좌는 ‘스포찌라시 영화기사 작성법’ 되겠다.

본 강좌로 말할 것 같으면, 최근 쒯영화들 사이에서 크게 각광받고 있는 기사유형에 대한 강의로써 영화의 내용 및 작품성에 대한 언급보다는 영화배우의 스캔들 및 신변잡기를 중점적으로 보도하여 영화의 흥행에 일조, 영화기획사와의 공생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려는 스포찌라시 영화기사 특유의 작성 요령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다.

그런 관계로 본 강좌의 교재로는 4대 스포찌라시(‘스포츠 좃선’, ‘스포츠 써울’, ‘스포츠 뚜데이’, ‘스포츠 굿떼이’)의 <낭만자객>, <천년호>, <조폭마누라2>, <남남북녀>,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에 대한 보도기사가 채택이 되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 보도록 하겠으니 수강생 여러분들께서는 교재의 1장을 펴주시기 바란다.  


1. 신변잡기 나열型 기사


신변잡기 나열형 기사는 촬영에 들어갔다는 거 빼면 별다른 이슈가 없는 촬영시작을 전후한 시기에 주로 애용되는 유형으로써 말 그대로 배우들의 신변잡기를 나열하는 기사를 말한다. 다시 말해 스포찌라시 기사작성의 제1목적은 배우들의 신변잡기와 같은 기사를 양산,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 영화흥행에 일조하는 것이지 작품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점을 명심했다면 주위를 둘러봐라. 배우들의 신변잡기에 관한 것이라면 널린 것이 소재요, 낚기만 하면 되는 것이 바로 꺼리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사를 작성하는데 있어 별거 아닌 내용을 어떻게 포장하느냐 하는 점이다.  

그럼 교재 1장에 나와 있는 기본예제들을 보도록 하자.  

– 기본예제

[스포츠 좃선]
조인성-김사랑, ‘남남북녀’ 촬영위해 내달 연변으로 출국
(http://www.sportschosun.com/news/news.htm?name=/news/entertainment/200305/20030531/35131002.htm)

[스포츠 굿떼이]
‘인어아가씨’ 김효진, 스킨스쿠버 자격증 획득
(http://news.hot.co.kr/2003/08/17/200308171104432100.shtml)

[스포츠 뚜데이]
정준호 ‘사스 다이어트’ 알아?  
( http://www.stoo.com/html/stooview/2003/0410/091924298712141100.html)


어떤가, 범상한 우리들이 보기엔 저런 것들이 과연 신문의 기사가 될 수 있을까 모래 한줌의 의심이 일지만 범상치 않은 스포찌라시에게는 그 모래 한줌의 의심조차 어떻게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서 1.2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보라~

배우가 촬영을 위해 해외로 출국한다면 이것보다 더 나은 특종기사가 어디 있겠고, 누군가가 촬영장에 먹을 것을 그것도 ‘몰래’ 가져와 선물했다면 이것만큼 화제가 될만한 기사가 어디 있겠으며, 미모의 여배우가 ‘인어아가씨’가 됐다는데 이처럼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기사가 또 어디 있겠느뇨.

따라서 이번 강의시간에 수강생 여러분덜께서 중점적으로 익혀야 할 작성테크닉은 화려한 포장술에 입각한 제목 짓기와 단 한 줄로도 요약 가능한 내용을 최대한 늘어뜨릴 수 있는 고무줄 작성능력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신변잡기 나열형 기사가 단순히 배우덜의 신변잡기를 알리기 위한 기사가 아니라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기사이니 만큼 기사 중간중간 영화제목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독자에게 인지시키는 기술 역시 필수공식처럼 사용해야 된다는 점이다.

이외에 질문 있는 사람? 없으면 10분 휴식 후 2강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2. 동정표 유발型 기사


사고공화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국내 영화촬영장에서는 유달리 사건사고가 잦다. 그렇다. 동정표 유발형은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짜잘한 사건사고類를 기사화하여 독자들의 가슴을 쓸어 내림으로써 해당영화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는데 그 목적을 둔 기사를 말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동정표 유발 기사는 단순히 부상여부를 그대로 보도할 경우 별 관심을 끌지 몬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쪼까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유형의 기사의 경우, 문제의 사고 순간을 얼마만큼 아찔하게 묘사하여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느냐에 성패 여부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은 본 강좌가 강력 추천하는 가장 이상적인 동정표 유발형 기사의 예제이다.

– 기본예제

[스포츠 굿떼이]
차태현, 달리기 촬영 중 미끄러져 ‘천당 문턱까지’
(http://news.hot.co.kr/2003/01/27/200301271148392400.shtml)

[스포츠 좃선]
김민종, ‘낭만자객’ 촬영 중 진재영 옷에 붙은 불꺼
(http://www.sportschosun.com/news/news.htm?name=/news/entertainment/200309/20030902/39b16002.htm)

[스포츠 뚜데이]
‘낭만자객’ 윤제균 감독 급성장염으로 실신
(http://www.stoo.com/html/stooview/2003/1120/091956621012141100.html)

어흑… 정말이지 이 예제들만 보면, 영화를 위해서 초개와 같은 목숨정도는 논바딱에 굴러다니는 헌신짝마냥 여길 줄 아는 영화인들의 희생 스피릿에 천지연 폭포수처럼 콸콸 떨어지는 눈물이 앞을 다 가릴 지경이다.  

바로 이거다. 초딩시절 골목길에서 흔하게 겪고 또 목격하게 되는 무릎 까짐과 팔꿈치 찰과상과 같은 단순부상을 가지고도 노련하게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법. 이번 강의시간에 수강생 여러분들께서 집중적으로 연마해야 할 부분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미한 부상정도를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으로 위장할 수 있도록 ‘천당 문턱까지’, ‘죽을 뻔’, ‘생명을 구했다’, ‘살기 어린 주먹에 맞아’와 같은 자극적인 표현도 서슴치 않는 과감한 단어 사용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들의 사고를 영화를 ‘위해’ 장렬히 전사했다는 필로 미화하여 숭고한 희생정신을 강조할 줄 아는 잔기술 능력까지 함께 겸비해 준다면 동정표 유발形 스포찌라시 기사를 작성하는데 있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다만, 동정표 유발형 기사를 너무 남발하게 되면 <조폭마누라2>에서의 신은경 눈 부상과 같은 대형사고가 실제 발생하여 기사화된다 하더라도 독자들에게 늘 그래왔듯 영화 홍보로 곡해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가급적 사용을 자제하여 이와 같은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는 절제력 또한 수강생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덕목이라 하겠다.


3. 아랫도리 자극型 기사  


아랫도리 자극형 기사는 단 한 줄의 자극적인 멘트와 응응응 장면에 대한 시적화술을 능가하는 묘사로 단기간 내에 독자들의 관심을 최대한도로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강좌의 하이라이트요, 필수강의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수강생 여러분께서 이번 강의를 절대 놓쳐서 안 되는 이유는 스포찌라시 기자라면 누구나가 필수적으로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기사가 바로 이 유형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스포찌라시를 키운 건 8할이 아랫도리 자극형 기사라 하지 않나. 따라서 3강을 마스터한다면 수강생 여러분들은 금일 강좌의 80%를 이수한 것과 진배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다음의 예제를 보며 강의를 이어가도록 하자.

– 기본예제

[스포츠 좃선]
진재영, 영화 ‘낭만자객’ 목욕신 풍만한 가슴
(http://www.sportschosun.com/news/news.htm?name=/news/entertainment/200310/20031010/3aj30201.htm)

[스포츠 굿떼이]
김효진-김혜리, ‘천년호’ 베드신 “연륜은 못 속여”
(http://news.hot.co.kr/2003/04/25/200304251054582400.shtml)

[스포츠 뚜데이]
손예진 “비키니 몸매 보러오세요”
(http://www.stoo.com/html/stooview/2003/0618/091934383212141100.html)


캬~ 제목 한 번 쥑인다. 굳이 자세한 설명을 보충하지 않더라도 벌써 그 제목만으로 아랫도리가 뻑쩍지근, 빠빳딴딴, 직립보행해 오지 않나.

이처럼 아랫도리 자극형 기사는 제목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전차로 마빡문구에서부터 애둘러 둘러치기 할 것 없이 ‘풍만한 가슴’, ‘베드신’과 같이 노골적으로 색스러움을 풍겨 독자들의 시선을 붙들어 맬 줄 아는 공격적인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물론 이에 그치지 않고 기사 작성 완료 후까지 공격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지구력 또한 이번 강의시간에 습득해야할 테크닉이다. 이는 한 줄의 제목에, 기대치가 만땅으로 높아진 독자들의 그것을 저버리지 않기 위함인데 기자라면 끝까지 독자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것이 의무일 터.

이미 그 의도를 제목에 공표한 마당에 기사 본편이라고 표현의 강도에서 뒤쳐질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제목보다 더 노골적인 묘사로 접근해야만 독자의 높아진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아랫도리 자극형 기사가 짊어진 운명인데 특히 위의 스포츠 굿떼이 기사처럼 ‘가슴을 과감히 노출하는 도발적인 모습을 보였다’와 스포츠 좃선의 ‘아찔한 몸매를 고스란히 노출했다’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으로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이는 가장 성공적인 기사 작성이라 할 수 있다.

왜냐, ‘모습을 보였다’, ‘노출했다’와 같은 표현은 독자에게 상상력에서 여백으로 존재하는 실제에 관한 기대감을 증폭시킬 것이고 이는 ‘확인 차’, 곧바로 영화의 관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스포츠 좃선의 진재영, 영화 ‘낭만자객’ 목욕신 풍만한 가슴 기사처럼 때에 따라, 보일 듯 말듯한 살색의 이미지를 잘 활용하는 것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보기엔 우습게 보여도 많은 테크닉이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 아랫도리 자극형 기사인 것이다.


4. 이외에


[스포츠뚜데이] 김석훈-박나림 결별
[스포츠뚜데이] 안시현-정준호 데이트…’천년호’ 시사회서 이상형과 깜짝미팅
[스포츠뚜데이] 이정재, 내한 장쯔이에 지극정성

처럼 영화가 개봉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터지길 지둘렸다는 듯 보도되는 젊은 남뇨스캔들類의 고전적 쏘스로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는 일명 ‘붙여놓면 다 스캔들’ 기사 작성법도 영화흥행의 일조를 위해 스포찌라시들이 잘 이용해 먹는 방법이긴 하지만 흔하디 흔해터진 방법인 관계로 이는 본 강좌에서 생략하기로 하겠으니 수강생 여러분들의 양해를 바라며…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은 3강에 걸친 본 강사의 헌신적인 족집게 명강의에 힘입어 그 어느 문화센터에서도 배우기 힘들었던 스포찌라시 영화기사 작성법 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

허나, 4년 전통의 딴지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했다고 해서 이에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도 가끔 가다 짬나는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발꾸락으로 쓴다는 자세로 스포찌라시 기사 작성법을 연마한다면 채 10분도 되지 않아 현역 스포찌라시 기자 못지 않은 명문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 반드시 명심하기 바란다.  

그럼 여기서 본 강좌를 마치도록 하겠다


<딴지일보>

영화계 초특급 미스터리


이미 영화 알바의 존재는 기정사실화 되어 있습니다. 공론화 되지만 않았을 뿐이죠. 그런데 작년 5월에 유수의 영화사이트 기자님께서 한 통의 제보를 영진공 게시판을 통해 접수하였습니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대한 홍보 알바 게시물에 대해 어떤 유저가 알바 문제와 해당 기획사 홍보실에 항의하는 글을 썼는데 <화성으로 간 사나이> 홍보팀이 그 사이트에 연락해서 화를 내며 문제의 글을 삭제해 달라고 했다는 거죠.

그래서 편짱의 명령을 받고 조사를 해보니 너무 눈에 띄게 알바짓을 했더군요. 영화사이트란 영화사이트에 같은 시간, 같은 아이디, 같은 제목, 같은 내용으로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대한 호평 도배를 해 놓은 겁니다. 영화라도 괜찮았으면 그냥 넘어갔을텐데…

이를 확인한 뒤 바로 해당사이트에 협조요청 메일을 보냈습니다. 문제의 글들의 아이피만 확인시켜 달라고. 10분 뒤 바로 연락이 오더군요. 근데 메일을 보낸 영화사이트가 아니라 <화성으로 간 사나이> 기획사더군요. 대뜸 한다는 소리가 왜 자기네들한테 얘기 안하고 기사를 쓰냐고 합디다. 영화사이트 알기를 자신들의 홍보물따위로 생각하는 마인드를 그대로 드러낸 대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쓰지말라, 쓰겠다 이러면서 대판 싸웠습니다. 나중에 그쪽에서 안되겠는지 왜 자기들한테만 그러냐고 그러네요. 은연중에 알바 푼 사실을 인정한 겁니다.

통화가 끝나고 잠시 진정한 뒤 다시 생각해보니까 또 한번 딥따리 열받더라구요. 왜 자기네 허락을 안 받냐고 하는 부분과 메일을 보냈더니 이를 기획사에 일러바치는 엔모 영화사이트한테 말이죠.

그래도 다행히 실명을 밝히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모 영화사이트의 협조를 받아 해당게시물에 대한 아이피를 획득하게 되었고 기사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가 되는게 그 전화를 받고 좀 쫄아서 <화성으로 간 사나이> 기획사 이름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켜서 기사가 임팩트가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영화홍보알바를 실명으로 공론화 할 수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죠…

지금와서 밝히는 건데 그 기획사는 시네마서비스에서 분화돼 나온 ‘청어람’이었고 그 사건 이후 청어람은 그동안 보내던 영화안내메일을 한동안 보내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다시 제대로 오고 있구요.

그렇다고 ‘청어람’만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사실 다른 유수의 영화사에서도 알바를 풀고 있어요. ‘청어람’은 재수가 없었을 따름이죠.

그래서 전 다른 분야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영화계는 그에 비하면 깨끗한 편이다, 고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글을 볼 때마다 아주 짜증이 납니다. 마치 십분의 일 발언처럼 말이죠…

———–

1.

때는 바야흐로 5월 14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본지 사옥 73층 영진공 사무실에서 평소처럼 막중한 잡담과 과도한 졸음, 쓸따리 없는 망상으로 정말 열심히 업무 외의 일을 수행하고 있던 본 기자에게 열혈팬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찾아왔다.

본 기자를 찾아온 용건은 바로 이 때문이었따.

     열혈팬 : 이 일을 밝혀 줄 사람은 당신밖에 없소. 영화계의 평화가
                달린 일이오.
     본 기자 : 무슨 말씀이세요?
     열혈팬 : 도배꾼을 잡아주시오. 그들이 활개를 치고 있소.
     본 기자 : 도배꾼이라니요? 활개를 치고 있다는 건 또…
     열혈팬 : 다 알믄서… 지금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대한 게시물이
                영화사이트를 점령하고 있소.
     본 기자 : 보지 말라고?
     열혈팬 : 아니오, 영화가 너무 좋다며 찬양일색의 글을 올리고 있소.
                그것도 대표적인 영화사이트에 아이디도 똑같고 그 내용까지
                도 같으며 심지어는 글 올라오는 순서도 같소.
     본 기자 : 헉! 설마 그럴 리가…
     열혈팬 : 어떻게 글 쓴 사람들의 ‘순서’가 똑같고 시간도 비슷할 수가
                있단 말이오? 심지어 저 겹치는 아이디들은 몽땅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대한 좋은 평만을 올리고 있소. 이게 말이 되오?
     본 기자 : 당근 말이 안되죠. 알겠슴돠. 사태의 전모를 까 밝혀 달라
                  는 말씀이시죠. 앗…

자신의 정체를 ‘바른 영화 마케팅 추진본부 우원장’이라고 밝힌 문제의 팬은 본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어디론가 뿅~하고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던 본 기자 정신을 차리고 즉시, 구석에 짱 박혀 ‘원더보이’, ‘마계촌’ 등으로 본지 공용 컴퓨터를 전세 낸 카오루 기자를 몰아내고 사태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10분 후…

“뜨악!! 이, 이럴 수가… 정말이란 말인가…”

‘바른 영화 마케팅 추진본부 우원장’의 말대로 문제의 사이트 내 독자게시판에는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옹호하는 글이 13일과 14일 집중적으로 등록되어 있었고, 이 게시물들은 각 사이트들마다 거의 동일한 시간대에 비슷한 아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내용으로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대해 글을 남긴 사람들이 다른 영화에 대해서도 그처럼 글을 남긴 것도 아니다.

세상에나! 어떻게 같은 사람이 쓴, 같은 내용의 글이, 같은 시간대에 게시물로 등록될 수 있을까? 이게 과연 현실세계에서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흔히 잉간덜은 이런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미스터리.

삼십 평생을 살면서 별 꼬라지를 다 목격해왔던 본 기자 이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황당무계하고 기묘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을 접하니 등골이 오싹해지고 등에 식은땀이 흐르며 머리카락이 쭈빗 서는 게 도저히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마냥 손놓고 만은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복날에 똥개 떨 듯 떨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본 기자는 곧 전용 핫라인을 통해 놀고 있던 편집국 기자를 모두 딴지사옥 지하 293층에 매설되어 있는 고문실로 비밀리에 불러내어 무려 2분 여에 걸쳐 이 사건에 대한 중지를 모았다. 그 결과 직접 이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하고 본 기자를 주축으로 한 특별 조사팀을 구성하였다.

2.

본 조사팀은 일단 문제의 글들이 올라가 있는 사이트에 협조요청을 보냈다.

“지금 니덜 사이트 내 독자 게시판에는 <화성으로 간 사나이>와 관련하여 이러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근데 이렇게 똑같은 글덜이 타 사이트에도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어떻게 된 조화인지 궁금하지 않니? 그래서 본 조사팀은 니덜의 도움을 얻어 무슨 일인지 밝혀보려 한다. 우리의 뜻에 동의한다면 그 게시물덜이 동일인에 의해 작성되었는지 좀 알려주라”

과연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본 기자를 비롯한 조사팀은 실로 귀두가 주목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만약 그 게시물덜이 동일인물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또는 서너 명의 인물이 돌림빵 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이는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관람하게 하려 조직적인 계획 하에 의도적으로 글을 올렸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땜시롱이다.

십분 정도가 흘렀을까, 영화사이트들로부터 차례로 반응이 왔고 본 조사팀은 너의 마음 나의 마음 울렁울렁 두근두근 쿵쿵, 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답변을 열어보았다.



참담했다. 모두 꽝 이었다. 본 조사팀의 순수한 의도에는 동의하지만, 자칫 개인정보 유출 혐의를 받을 수 있고 또한 영화기획사와 공생하고 있는 이 바닥의 생리상 섣불리 협조했다간 조뙤는 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오호, 통재라! 이들의 협조가 무산되자 별다른 방도를 찾을 수가 없었다. ‘화성’자만 낑궈지면 왜 모든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을까, 하는 의문에 부딪친 본 조사팀은 어이없게도 이번 조사를 포기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 때, 본 기자의 귀를 강타하며 날카롭게 들려오는 한 방의 전화소리.

      ‘따르릉’

      본 기자 : 엽떼여~
      의문남 : 난 모든 걸 알고 있다. 내 정체를 캐묻지 않는다면 이번 사
                 건의 전말을 알려 주겠다.
      본 기자 : 누구떼엽?

     ‘뚝’

이런 닝기리… 의문의 남자는 정체를 묻자마자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렇탐 이번 조사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맺음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 의문남은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백운도사의 신통력을 가뿐히 능가한다 세간의 찬사를 받는 본지의 예견력. 본지는 이미 몇 달 전 이번 사태를 예견하고 전화기에 발신자 추적 기능을 달아놓았던 것이다.

       본 기자 : 엽떼여~
       의문남 : 헉!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고?
       본 기자 : 그건 알 필요 엄꼬, 정체는 묻지 않을 테니 <화성으로 간
                   사나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모두 까 밝혀 주기 바람
                   돠.
       의문남 : 난 낮에는 회사원이지만 밤에는 유리구슬을 통해 과거를 보
                   는 마법사다.
       본 기자 : …(밝히지 말라면서, 지가 다 말하네)
       의문남 : 당신덜이 원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를 팩스로 보낼 테
                   니 반드시, 반드시 영화계의 평화를 위해 유용하게 사용해다
                   오. 영화계의 운명이 걸린 일이니 실수 없이 잘 처리하고. 내
                   말 명심하시오.

      ‘뚜 뚜 뚜 뚜’

통화가 끊어지기가 무섭게 본 기자는 즉시 본사 23층에 마련된 팩스실로 뛰어가 송신인 불명으로 된 팩스 한 장을 수신하였다. 받아든 그 문서에는 실로 엄청난 내용이 담겨 있었따.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호평한 특정 한(one) 사이트의 게시물 중 무작위로 32개를 축출하여 누구의 소행인지를 조사한 내용이었는데…

그 문서에 따르면 32개의 게시물은 10개의 IP에 의해 단지 9군데의 장소에서 작성되어 있었다. 한 IP가 적게는 두 건에서 최고 다섯 건까지 게시물을 작성한 것이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건 이들이 게시물을 작성하기 이전 몽땅 회원가입을 했다는 사실이다!

아… 럴수럴수 이럴 수가!

같은 아이디로 된, 같은 내용의 글들이, 같은 시간대에 작성되어 많은 영화팬에게 살 떨리는 충격을 주었떤 이번 사건은 결국 특정인 몇몇이 <화성으로간 사나이>를 의도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철저한 계획 하에 벌인 일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게시물덜이 조작이었다니… 아, 무시라…

3.

그러나 벅차 오르는 감격도 잠시, 우여곡절 끝에 동기는 밝혀내었으나 안타깝게도 이 사건을 막후에서 지시하고 있는 씹숑 아니 배후자는 끝끝내 찾아 낼 수가 없었다.

수신 중 적들의 방해파 공작이 있었는지 아니면 83년에 제작된 고물 팩스 탓인지 결정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기밀문서의 페이지가 심하게 손상된 탓에 이를 전혀 알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 정녕 하늘은 우리를 버리시는 겐가… 이를 밝히려 다시 한 번 그 마법사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통화음만이 울릴 뿐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게시물 조작에 대한 의도를 밝힌 선에서 조사를 마칠 수 밖에 없었던 본 조사팀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 세계의 이상야릇한 일을 관장하고 계신 ‘세계 불가사의 지정 협의회’ 책임자에게 이번 사건을 추천,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지정해 줄 것을 강력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칭찬하는 여러 개의 게시물 중 다수가 소수의 IP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사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삘 꽂힌 한 오타쿠 팬의 편집증적 애착성 도배증후군적 소행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음모가 있는 걸까?

판단은 니덜에게 맡기겠다.


(2003. 5.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