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블록버스터 기대작 7

바야흐로 블록버스터 시즌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블록버스터의 공세는 5월부터 시작한다. 워낙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만들어지다 보니 개봉 시기가 앞당겨진 결과다. 그만큼 블록버스터 영화들끼리의 경쟁이 심하다는 의미다. 그중 놓치면 삼대가 후회할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 팬이라면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기대작 7편을 골랐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 감독 제임스 건 | 출연 크리스 프랫, 조 샐다나 등 | 개봉 5월 3일
로켓과 베이비 그루트가 신경전을 벌이는 내용의 예고편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의 매력에 빠진 팬이 많다. 또다시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 ‘가오갤’ 멤버 중 스타로드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출현에 전편의 최강 빌런 ‘타노스’를 능가하는 더 큰 위험에 봉착한다. 우주 전쟁이 배경이지만, 스타로드의 사랑스러움, 베이비 그루트의 귀여움, 로켓의 ‘츤데레’스러움이 볼거리인 작품이다. 미국에서의 첫 공개 후 1편보다 재미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에이리언: 커버넌트> 감독 리들리 스콧 |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캐서린 워터스턴 등 | 개봉 5월 9일
리들리 스콧은 H.R. 기거와 함께 창조했던 에이리언이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시리즈로 망가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에이리언은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 크리처였다. 그래서 인류의 기원을 찾는 탐사 여행을 다룬 <프로메테우스>에서 짧게나마 에이리언을 호출했고 마침내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발표했다. 미지의 행성으로부터 온 신호를 받고 출항한 ‘커버넌트’ 호가 에이리언을 비롯해 상상 초월의 위협적인 존재와 맞닥뜨리는 내용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감독 요아킴 뢰닝, 에스펜 잔드베르크 | 출연 조니 뎁, 하비에르 바르뎀 등  | 개봉 5월 중
이 시리즈 매력은 잭 스패로우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 5>의 예고편에서 주목한 이는 살라자르다. 그러니까, 이들을 각각 연기한 조니 뎁과 하비에르 바르뎀의 세기의 캐릭터 대결이란 얘기다. 잭 스패로우에 의해 부대가 전멸하고 목숨까지 잃은 살라자르는 복수심에 불타 바다의 학살자로 다시 태어난다. 해양 모험물 <콘-티키>로 능력을 인정받은 노르웨이 출신의 요아킴 뢰닝, 에스펜 잔드베르크가 이 시리즈의 영광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옥자> 감독 봉준호 | 출연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안서현 등 개봉 6월 중
동물? 괴수? ’옥자’의 정체를 두고 별의별 예측이 난무했다. 옥자는 비밀을 간직한 돼지다. 강원도 산골에서 어린 미자의 보호를 받다가 사라진다. 지역색 강한 설정이지만, <옥자>는 <설국열차>에 이은 봉준호의 두 번째 미국 영화다. 옥자가 바다 건너 먼 이국땅으로 건너갔다는 의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바로 거기에 이 영화의 재미가 있다. 넷플릭스로부터 600억원을 투자받고 최종편집권까지 얻었다고 하니 봉준호 영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원더우먼> 감독 패티 젠킨스 | 출연 갤 가돗, 크리스 파인 등 | 개봉 6월 중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망작 직전에서 구한 건 ‘원더우먼’이었다. 남자 슈퍼히어로만 넘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유일하게 믿을 건 이제 원더우먼이다. 아마존 왕국의 공주였던 다이애나는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와 원더우먼이 되었는가. <원더우먼>을 통해 걸크러쉬를 제대로 폭발시킬 패티 젠킨스 감독은 샤를리즈 테론을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으로 캐스팅했던 <몬스터>의 연출자로 유명하다.

<스파이더맨 : 홈커밍> 감독 존 왓츠 | 출연 톰 홀랜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 개봉 7월 5일
부제가 의미심장하다. 한동안 SONY로 가출(?)했던 스파이더맨이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서 마블로의 반가운 귀환을 알린 후 솔로 영화로 완전히 ‘홈커밍’했다. 이전의 <스파이더맨>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처럼 학창 시절에 초점을 맞추지만,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특별하다. 말 많은 토니의 영향을 받아 청소년 특유의 발랄함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이에 맞선 벌쳐 역이 전직 배트맨 마이클 키튼이란 점도 흥미롭다.

<덩케르크>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톰 하디, 킬리언 머피 등 | 개봉 7월 중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크리스토퍼 놀란은 주로 판타지 세계에 기반을 둔 작품을 주로 만들어왔다. <덩케르크>는 놀란 감독의 첫 번째 실화영화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의 항구 도시 덩케르크에서 독일군에 의해 포위됐던 영국, 프랑스, 벨기에의 기적 같은 철수 작전을 다룬다. 워낙 대규모의 작품인 까닭에 오랜 준비가 필요했다는 놀란 감독은 전작의 경험을 살려 이 영화의 전체 필름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다.

 

보그
(2017.4.20)

빠른 개봉을 촉구합니다!

매주 스무 편 가까운 영화가 개봉하지만, 여전히 관객을 찾지 못한 화제의 작품들이 있다. 특히 칸과 베를린과 같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작품 중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이 꽤 된다. 이제나저제나 개봉 소식이 궁금한 7편의 기대작을 소개한다.

<희망의 이면>(The Other Side of Hope) | 개봉 미정
김민희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번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최고의 화제작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희망의 이면>이었다. 감독상에 해당하는 은곰상을 받은 이 작품은 시리아인이 핀란드에 난민 신청을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뤘다. 유럽의 엄혹한 난민 이슈를 차가운 유머로 전달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여전한 작품이다.

<붉은 거북>(The Red Turtle) | 2017년 개봉 예정
<붉은 거북>은 올해 베를린 영화제 마켓에서 한국 바이어들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작품으로 알려진다. 무인도에 난파된 남자가 여자로 변한 붉은 거북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이야기다. 영화를 연출한 마이클 두독 드 비트의 요청으로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처음으로 프랑스, 벨기에와 합작한 작품이다.

<엘르>(Elle) | 개봉 미정 -> 케이블 직행
폴 버호벤(<로보캅><토탈리콜>)은 잊힌 이름이었다. 화려하게 부활한 건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향을 이어받은 ‘엘르’의 삶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거침없는 폭력과 섹스 묘사가 일품인 영화다. 이런 종류의 캐릭터에서 빛을 발하는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더해져 폴 버호벤은 다시금 주목받는 감독이 되었다.

<아메리칸 허니>(American Honey) | 2017년 개봉 예정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은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다. <아메리칸 허니>는 방문 판매업을 하는 소녀의 서툰 사랑이 중심에 선다. 십 대가 주인공인 작품답게 귀를 자극하는 팝이 영화 내내 흐른다. 진창의 삶에서 희망을 이어가는 소녀의 삶이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과는 별도로 감동을 준다. 2016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

<패터슨>(Paterson) | 2017년 개봉 예정
미국 언론들은 이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가 발표되자 <패터슨>이 빠진 것을 두고 아쉬움을 표했다. 201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작이기도 한 <패터슨>은 ‘영상 시인’ 짐 자무시의 작품이다. 그러한 평가에 걸맞게 주인공 또한, 시를 쓰는 버스 운전사다. 이 역할을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했다.

<바칼로레아>(Graduation) | 개봉 미정
크리스티안 문주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조국 루마니아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감독답게 <바칼로레아>는 의사 아버지와 대학입시를 앞둔 딸의 사연을 통해 교육 현실과 부패한 관료 체계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지난 칸영화제에서 <퍼스널 쇼퍼>의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함께 공동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언노운걸>(The Unknown Girl) | 2017년 5월 3일 개봉
다르덴 형제는 믿을만한 감독 브랜드다. 유럽 사회의 소외된 이들의 사연을 다큐멘터리적으로 묘사해 현실 개선을 촉구하는 다르덴 형제의 미학은 <언노운 걸>에서도 변함없다. 자신을 찾아온 환자를 외면했다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혼란을 겪는 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의사의 윤리는 물론 인간의 소중한 생명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보그
(2017.3.16)

[재미] <더 배트맨> 만약 맷 리브스가 하차한다면?

말 많고 탈 많은 ‘배트맨 솔로 무비’ <더 배트맨 The Batman>의 감독이 정해졌다. <클로버필드>(2008), <렛 미 인>(2010),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2014)의 맷 리브스다. 장르영화에 강점을 보이는 감독으로, 탁월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단, 맷 리브스가 끝까지 감독직을 유지해 영화를 완성한다면 말이다.

DC 시네마틱 유니버스(DC Cinematic Universe)를 총괄하고 있는 워너 브러더스는 이 시리즈에서만큼은 간섭이 심하기로 악명 높다. 코믹스의 라이벌인 마블이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거의 독점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덕인지 조바심을 드러내는 결정을 종종 드러내고는 한다. <더 배트맨>의 연출자로 원래 내정되었던 벤 애플렉은 먼저 하차 의사를 밝혔고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충분치 않은 제작 일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런 상황에서 맷 리브스는 <더 배트맨>에 자신의 비전을 고수할 수 있을까. 워너 브러더스와 맷 리브스와의 협상도 이미 한번 결렬된 바 있다. DC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보여준 그 동안의 행보를 보면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만약’ 맷 리브스가 <더 배트맨> 연출직에서 하차한다면 구원투수로 나설 감독으로 누가 좋을까. 혹시 몰라 미리 리스트를 만들어뒀다.

1순위. 데미언 채즐
데미언 채즐은 <라라랜드>(2016)와 <위플래쉬>(2014)로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감독이다. <클로버필드 10번지>(2016)의 각본가 중 한 명으로 참여한 경력도 있다. 슈퍼히어로물과 같은 장르물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얘기다. <위플래쉬>는 음악을 우회해 펼친 스승과 제자의 대결이었다. 싹이 보이는 제자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해 폭군처럼 군림하는 스승과 폭압적인 가르침에 맞서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던 제자의 관계는 슈퍼히어로와 슈퍼 빌런의 싸움을 연상시킨다. 지금 DCCU에 필요한 건 이와 같은 데미언 채즐 감독의 과감함이다. 감독의 견해를 무시하는 DCCU 제작진의 입김이 완성도를 산으로 가게 하는 상황에서 자기 비전을 밀어붙일 줄 아는 감독이 절실하다.

2순위. 제프 니콜스
제프 니콜스는 장르를 취하되 익숙한 장르적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 독특한 연출력의 소유자다. <미드나잇 스페셜>(2016)과 <머그>(2013)와 <테이크 쉘터>(2011)는 각각 재난물과 모험극과 SF의 형태를 취했으면서 볼거리에 치중하는 대신 인물에 내재한 불안감을 따라가는 이야기로 구성했다. DCCU의 슈퍼히어로들, 특히 배트맨은 불안감에서라면 갑 중의 갑인 캐릭터다. 부모 잃은 어린 시절의 고통과 자신의 존재가 악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죄책감 등 배트맨의 검은 심리를 해부하는 데 제프 니콜스만큼 적임자는 없어 보인다.

3순위. 캐슬린 비글로우
남자 슈퍼히어로물은 꼭 남자 감독이 만들라는 법 있나. 캐슬린 비글로우는 <제로 다크 서티>(2013)와 <허트 로커>(2010)에서 남자 못지않은 선 굵은 전쟁 이미지로 여자 감독에 대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그뿐인가, 전쟁터의 앞줄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의 곪아가는 심리를 역으로 파헤친 사연은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이는 전쟁 배경과 같은 볼거리와 계속된 싸움에 지친 슈퍼히어로의 심리를 파헤치는 ‘배트맨 솔로 무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게다가 캐슬린 비글로우는 <허트 로커>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전력까지 갖추고 있다. 작품성까지 갖춘 슈퍼히어로 영화라면 상대 전적에서 절대 열세인 마블과의 대결을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

4순위. 크리스토퍼 놀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구원투수로 나선다고 하면 이것만 한 희소식도 없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의 마지막을 상기해보자. 고담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자폭한 줄만 알았던 배트맨은 살아있었다. 대신 로빈(조셉 고든 레빗)이 고담의 슈퍼히어로로 활약할 것임을 암시했다. 그런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에는 조커에게 로빈이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설정이 등장한다. (조커의 낙서가 적혀 있는 로빈의 슈트!) 이를 근거로 배트맨이 다시 고담에 복귀한다면? 신기하게도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저스티스의 시작>을 연결하니 그럴싸한 ‘배트맨 솔로 무비’의 큰 그림이 그려진다. 그렇게 놀란은 DCCU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 정도면 놀란에게 감독직을 제안해봐도 좋지 않을까. 밑져야 본전 아니겠나.

 

GQ KOREA
(2017.3.30)

<아비정전>(阿飛正傳)

요약
왕가위 감독이 1990년에 연출한 두 번째 장편영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탓에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쓸쓸한 인간관계에 대해 묘사했다. 개봉 당시에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지금은 왕가위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홍콩 최고 권위의 시상식인 홍콩금장상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5개 부문을 수상했다.

시놉시스
아비는 늘 여자를 갈구하지만 깊은 사랑은 경계하는 바람둥이다. 도박장의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에게 먼저 접근해 그녀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해 동거생활에 들어간다. 이도 잠시, 아비는 수리진을 자신의 집에서 쫓아낸 뒤 댄서인 루루를 들여 또 다른 사랑을 나눈다. 루루는 소극적인 수리진과 달라서 아비가 자신에게 싫증을 느꼈다는 걸 눈치채고는 헤어지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럼에도 루루에게 매몰차게 이별 선언을 하는 아비에게는 길게 사랑을 지속하지 못하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어려서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아 지금의 양어머니에게 입양된 것. 게다가 양어머니 역시 여러 남자를 전전하는 까닭에 아비의 분노를 부른다. 루루와 헤어지고 양어머니와도 사이가 극도로 나빠진 아비는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필리핀으로 향한다.

한편 버림받은 수리진은 아비에게서 자신의 짐을 받으러 갔다가 그곳을 지나치던 경관을 만난다. 초췌한 수리진을 위로하던 경관은 그것이 인연이 되어 호감을 갖는 사이로 발전한다. 하지만 이 둘의 만남 역시 짧게 끝나고 만다. 수리진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경관 일을 그만 둔 남자는 선원이 되어 필리핀에 가게 된다.

우연히 길을 가던 중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비를 발견한 남자는 그를 자신의 숙소로 데려간다. 정신을 차린 아비는 남자에게 필리핀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런 뒤 어느 바로 데리고 갔다가 위장 여권을 거래하던 중 상대방을 칼로 찌르면서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작품해설

1. 제작배경
데뷔작 <열혈남아>(1988)가 홍콩에서 흥행과 평단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으면서 왕가위 감독은 제작사 영지걸 제작유한공사로부터 차기작 <아비정전>에 대한 예술적 통제권을 100% 위임받았다. 홍콩 영화계에서 가장 바쁜 장국영, 장만옥, 유가령, 장학우, 유덕화, 양조위 등 6명의 톱스타를 모두 캐스팅할 수 있었고 홍콩과 필리핀을 오가는 로케이션 촬영도 진행할 수 있었다. 심지어 완성된 시나리오 없이 최소한의 설정만 가지고 현장 당일 배우들과 함께 즉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갔을 정도다.

이는 <아비정전>을 애초 2부작으로 기획했던 왕가위의 야심이 반영된 결과였다. 여기에는 제작사와 감독간에 목적하는 바가 달라 생긴 오해의 배경이 자리한다. 제작사가 왕가위에게 영화의 전권을 위임한 건 당시 홍콩영화가 전세계 영화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액션 누아르를 만들어줄 것이란 기대였다. 하지만 왕가위가 기획한 영화의 성격은 제작사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액션이라고 할 만한 것은 영화의 후반부 아비가 여권 암거래를 하던 중 상대방을 칼로 찌른 다음 도망칠 때 짧게 등장하는 것이 전부다. 대신 왕가위는 커플로 맺어지지 않은 채 상대방의 등만을 바라보며 사랑에 아파하고 고통받는 인물들의 감정을 포착하는 데 집중했다.

왕가위를 향한 오해는 비단 제작사뿐만이 아니었다. <열혈남아>에서의 어둡고 폭력이 난무한 액션영화를 기대했던 관객은 <아비정전>을 철저히 외면했다. 이와 관련, 한국 개봉 당일 이 영화를 보던 관객이 액션이 등장하지 않는다며 극장에서 소동을 피운 일화는 유명하다. 제작사는 파산에 이르렀고 <아비정전>의 2부는 무산됐으며 왕가위는 다음 작품 <동사서독>(1994)을 만들 때까지 제작비를 구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2. 시대적 배경
왕가위의 첫 번째 작품은 <열혈남아>이지만 영화적 세계관이 최초로 구축된 건 <아비정전>부터였다. 왕가위 영화를 규정하는 분위기는 떠난 자 혹은 떠난 것에 대한 그리움과 그에 따른 허무함이다. <아비정전>에는 연애하는 이들도 있고 짝사랑하는 이도 등장하지만 온전히 맺어지는 커플은 없다.

아비는 수리진, 루루와 차례로 연애를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일방적으로 이별을 선언한다. 이에 마음고생을 하는 수리진은 그녀를 동정하는 경관을 만나 호감을 표하지만 그 관계도 짧게 끝날 뿐이다.

수리진과 다르게 루루는 떠난 아비를 찾아 나서지만 공교롭게도 아비의 친구(극중 경관과 친구에게는 따로 이름이 부여되지 않았다)가 그녀를 짝사랑하며 뒤를 따른다. 굳이 따지자면 5각 관계의 사연인데 그중 단 한 커플도 맺어지지 않으니 허무한 이야기인 셈이다. 다만 이와 같은 허무함이 그리움의 정서로 치환되는 건 극중 시간적 배경인 1960년대를 회상하듯 사연 당사자들의 내레이션이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설정은 <아비정전>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홍콩이라는 국가의 지정학이 깊이 반영된 결과다. 1997년 영국 반환을 앞둔 홍콩 주민들의 심정이라는 것은 아비처럼 한 여자에게서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는 불안감 또는 수리진처럼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며 갖는 향수어린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왕가위는 발이 없어 지상에 닿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딘가로 날아가야 하는 ‘발 없는 새’의 사연을 극중 아비의 입을 통해 수시로 노출하는 등 당시 홍콩 주민이 처한 상황과 심리를 은유함으로써 주제를 드러냈다.

3. 영화 스타일
왕가위는 <열혈남아>를 통해 주인공이 거의 정지해 있는 가운데 주변 인물들이 빛처럼 빠른 속도로 지나쳐가는 스텝프린팅 기법을 선보이며 스타일리스트로도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아비정전>에는 왕가위의 전매특허라고 할 만한 스텝프린팅을 활용한 장면이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왕가위 감독은 좁은 방과 같은 구도를 통해 고립된 인물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나타나는 데 주력했다. 극중 인물들이 고립된 건 사랑하는 이로부터 버림받아 외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인물의 등을 바라보는 이미지와 방을 들어와 나가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등에 주목한 건 떠나간 사랑을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겨진 자의 심리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들어왔다 나가는 행위의 경우, 어느 한명에 정착하지 못해 계속해서 사람을 바꿔가며 연애를 할 수밖에 없는 아비의 처지를 드러낸다.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없기에 이들에게는 찰나의 순간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아비정전>에는 유독 시계를 비추는 장면이 많은데 짧은 시간을 오랫동안 기억에 담아두고 있어야 하는 극중 인물들의 처지를 반영한 것이다. 결국 이들은 현재의 고통을 순화하기 위해 과거의 특정한 순간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비는 바로 이와 같은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짧은 시간의 연애를 계속해서 가져간다. 결국 죽음만이 시간과 공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데 홍콩의 좁은 방에서 생활하던 아비는 친어머니를 찾겠다며 필리핀에 가서야 울창한 열대 숲과 같은 넓은 공간에서 자유를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아비정전>의 특징적인 기법과 스타일은 미술감독 장숙평의 추천으로 처음 작업하게 된 크리스토퍼 도일(중국명 두가풍)의 공이 컸다. 이후 왕가위와 크리스토퍼 도일의 협업은 <2046>(2004)까지 이뤄졌다.

4. 결말에 대한 논란과 2부
흥행 실패에 따라 <아비정전>은 많은 뒷말을 낳기도 했다. 그중 가장 큰 논란은 결말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그 이전 장면에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양조위가 출연한다. 그리고 영화는 양조위가 외출 준비하는 장면을 약 5분 동안 보여주다가 끝을 맺는다.

당시 관객은 이 뜬금(?)없는 결말에 대해 야유를 퍼부었지만 왕가위 감독이 이런 식의 엔딩을 가져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애초 2부작으로 기획된 만큼 2부에서는 아비에게 버림받은 수리진과 루루, 그리고 양조위가 맡은 역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흥행 실패에 따른 제작사의 파산과 왕가위를 향한 비난으로 2부의 제작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왕가위의 신작이 나올 때면 <아비정전>의 2부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대개가 <아비정전>의 변주인 까닭이다. 예컨대, 수리진이라는 이름은 <화양연화>와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2007)에서, 루루는 <2046>에서 계속해서 등장하고 유덕화가 연기한 경관의 경우, <중경삼림>에서는 양조위가 연기하지만 직업도 성격도 유사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공식적인 <아비정전>  2부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왕가위 감독이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아비정전>  2부는 없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주요 등장인물
아비(장국영) : 짧은 만남을 가진 뒤 여자를 갈아치우는 바람둥이.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기억을 지우지 못해 이성을 사귈 때면 자신이 먼저 떠난다.

수리진(장만옥) : 도박장 매표소에서 일하는 점원. 이성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한번 마음을 주면 오랫동안 간직하는 스타일이다.

루루(유가령) : 사랑에 적극적인 전문 댄서. 아비가 구애하자 이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인다. 이후 아비가 떠나지만 어떻게든 사랑을 되찾기 위해 필리핀으로까지 가게 된다.

경관(유덕화) : 힘든 시간을 보내는 수리진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되어주는 남자.

아비의 친구(장학우) : 아비를 만나러 갔다가 루루를 보고는 첫눈에 반한다. 아비를 찾겠다며 필리핀으로 떠나겠다는 루루를 위해 경비까지 마련해준다.

명장면 명대사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아비)

극중 아비의 독백.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뒤 어딘가에 안주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발 없는 새’에 빗대어 내레이션으로 전한다. 아비를 연기한 장국영은 2003년 4월1일 <아비정전>의 ‘발 없는 새’처럼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털 호텔 24층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음악
<Always in My Heart>(로스 인디오스 타바하라스) : 브라질 2인조 기타 그룹의 연주곡. 필리핀의 시원스런 열대 밀림을 비추는 오프닝에서 사용되었다.

<Maria Elena>(자비에르 쿠얏) : <아비정전>의 아비가 맘보춤을 출 때 흘러나온 음악. 아비정전〉 개봉 뒤 한국에서는 이 음악은 물론 해당 장면을 패러디한 광고가 유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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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오스카, 이변을 부탁해

8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현지 시각 2월 26일 열리는 이번 시상식은 14개 부문에 후보를 올린 <라라랜드>의 독주가 예상되는 가운데 <문라이트>와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대항마로 나선 형국이다. 근데 아카데미가 언제 예측한 대로 흘러갔던 적이 있었던가. 지난해 <스포트라이트>는 12개 부문 후보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제치고 작품상을 받으며 이변을 연출했다. 아카데미는 주요 상 한두 개 부문에서 늘 예상치 못한 수상으로 극적인 순간을 연출했다. 올해 이변이 생긴다면 그 주인공은 누가 될까.

작품상 다크호스로 꼽고 싶은 영화는 <로스트 인 더스트>다. 은행 강도질을 일삼는 형제를 통해 서부 사나이의 몰락을 그린 작품이다. 트럼프 시대를 맞이하여 미국은 그동안 추구했던 자유와 다양성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 지금과 경우는 달라도 9.11 이후 미국은 외부로는 테러 위협으로, 내부로는 금융 위기에 따른 경제 악화로 위기를 겪었다. 이에 미국의 가치에 의문을 표하는 작품들이 독립영화 진영에서 발표됐다. 2008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가져간 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었다. 미국을 긍정하는 영화에 호의적이던 아카데미의 보수성을 깨는 파격의 결과였다. 2017년 미국 안팎으로 감지되는 위기감은 2008년 당시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부를 우회해 미국의 현재를 진단하는 <로스트 인 더스트>는 제2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2013년 이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의 관계를 보면, 2015년 <버드맨>을 제외하고는 한 영화가 모두 가져간 적이 없었다. 작품상으로 <라라랜드> <문라이트>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중 하나가 가져간다면, 감독상으로 추천할 만한 영화는 <컨택트>다. <컨택트>는 언어학자가 지구에 온 외계인의 언어를 알아가는 사연을 다룬다. 이 영화가 원작 삼은 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영화화가 불가능한 작품으로 악명(?)을 떨쳤다. 외계인과 인간의 언어를 비교하며 이야기를 꾸려가는 소설은 영화로 옮기기 난해했던 까닭이다. <컨택트>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은 원작의 주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으로 접근해 전에 본 적 없던 내용의 영화로 완성했다.

남녀주연상으로 유력한 배우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이시 애플렉과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다. 모두 오스카를 처음 손에 쥐는 거라 지금쯤 시상식을 기다리며 밤잠을 설치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김칫국부터 마시지 않기 위해서는 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할 가능성이 높은 선배들을 넘어야 한다. <펜스>의 댄젤 워싱턴과 <플로렌스>의 메릴 스트립이다. 덴젤 워싱턴은 지난 2002년 <트레이닝 데이>로 이 부문 상을 받았다. 1964년 <들백합>의 시드니 포이티어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흑인 배우로는 무려 38년 만의 경사였다. <펜스>로 덴젤 워싱턴이 받게 되면 흑인 배우 최초의 두 번째 수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메릴 스트립의 이번 후보 지명은 무려 20번째로 아카데미의 기록이다. 수상도 이미 세 차례나 있었다. 다시 이름이 호명되면 무려 4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가게 된다. 그 자체로 아카데미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셈이다.

올해 아카데미는 유독 변수가 많다. 지난해 백인 일색의 후보와 수상자 지명으로 곤란을 겪었기 때문에 올해 더욱 유색 인종 배우와 작품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또한, 트럼프의 반이민정책 영향으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선정된 이란 출신의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세일즈맨>)은 시상식 불참으로 항의를 표했다. 안 그래도 메릴 스트립은 지난 8일 열린 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세실 B 데밀 상을 받으며 트럼프를 향한 비판으로 수상 소감을 대신해 눈길을 끌었다. “오늘 시상식장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비난받는 외국인들과 미디어 종사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에 따라 이번 아카데미가 어떤 시상 결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질지 관심이 높다. 그만큼 이변의 가능성이 높은 시상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겨례
(2017.2.13)

[GV] <귀>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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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 내내 부조리한 상황들이 연속으로 펼쳐지며 웃음을 주다가 마지막에는 묵직한 깨달음의 순간을 준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감독과 함께 방금 본 <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영화감독) 일단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돼서 너무 감동스럽다. 나는 한국 영화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한국 영화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내가 얼마나 한국 영화를 좋아하냐 하면, 과거 LA에 있을 때 알지도 못하는 한국어로 된 단편 영화를 만들 정도였다(웃음). 앞으로 미래의 영화들은 한국 영화를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만들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너무 의미가 크다.

허남웅 감독님이 첫 번째 장편을 2010년에 만들었으니 이 작품을 만드는 데 6년이나 걸린 셈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기억해주어서 고맙다. 6년 전에 영화를 만든 뒤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했었다. 하지만 다들 잘 알고 있듯이 영화계에서는 진행 도중 작품이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 중이고, 그 기간 동안 다른 감독의 작품을 위해 시나리오를 쓰는 일을 했었다. 나는 그런 시나리오 작업도 매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일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사람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 역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글을 쓰고, 그 글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영화를 제작하는 건 나에게 바캉스를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귀>의 경우는 희극으로 시작했다. 60-70년대에는 이탈리아에서 코미디 영화가 특히 많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따르면서도 좀 더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어떤 장면은 말이 굉장히 짧고 어떤 장면은 말을 엄청 많이 하면서 부자연스러운 순간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그리고 흑백 영화를 만드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비엔날레컬리지 덕분에 그런 시도를 운좋게 할 수 있었다.

허남웅 이탈리아의 코미디 영화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영화의 첫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코믹하면서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특히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영화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한번은 웃음의 요소가 많은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장례식을 진행하는 목사님이 말을 계속 더듬고 물건을 계속 떨어뜨리며 코미디 영화 같은 순간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그 장례식이 내 어머니의 장례식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장례식의 상황이 너무 웃긴데, 그날은 나에게 가장 슬픈 날이었다. 이런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경우는 코믹하거나, 진지하거나 둘 중 하나지만 삶에는 우리가 보는 영화보다 더 복잡하고 많은 요소가 담겨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허남웅 <귀>는 화면비가 중간에 변하기 때문에 실험적인 느낌을 준다. 화면비에 변화를 준 이유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영화의 화면비를 바꾸는 아이디어는 촬영 감독과의 협의 과정에서 나왔다. 영화 중간에 화면비가 변하는 건 내가 알기로 이탈리아에서 시도된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한 번 시도를 하고 싶었다. 비엔날레컬리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상업적인 요소를 비교적 덜 고려하고 우리가 실험하고 싶은 걸 다 시도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세상에 마음을 닫고 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점차 주인공의 마음이 열린다. 어떤 개인이 아무리 잘났고 똑똑하더라도 그가 속한 세상은 지금 이곳 하나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마음 속에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화면비를 점차 확장시켜 나갔다.

허남웅 이 영화의 흑백 화면은 차갑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귀>는 처음부터 흑백으로 찍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각본을 쓰는 도중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흑백 이미지만 떠올랐다. 가끔 색깔을 넣어서 생각해 보려고 하면 아예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귀>는 처음부터 흑백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내 머릿속에서 태어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사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흑백이라고 생각한다. 흑백으로 세상을 보여주면 관객은 색상에 시선을 뺏기지 않고 배우들의 얼굴, 시선, 말에만 집중한다. 세상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흑백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영화가 비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나는 세상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영화 자체는 비현실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세상의 본질에 가깝게 보여주는 데 가장 적합한 건 흑백 촬영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대해 얘기했는데 혹시 이 이야기가 감독님 본인의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영화가 나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른 길로 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이상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또는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하는지 같은 고민들 말이다. 이런 고민은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허남웅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다음 작품도 혹시 6년 뒤에 나오는 건가(웃음).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그렇다(웃음). 농담이고, 내년에 새로운 작품을 촬영할 예정이다. 6년에 한 번씩 영화를 찍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기는 하다.

정리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 | 사진 최재협 자원활동가

<귀> GV
서울아트시네마
(2016.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