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더 씨>(By the Sea)

bythesea

예전의 안젤리나 졸리가 아니다. 브래드 피트와의 결혼 이후 ‘안젤리나 졸리 피트’로 이름을 바꾸었고 무엇보다 연기와 더불어 연출도 병행하고 있다. <바이 더 씨>는 그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이번에는 남편 브래드 피트가 제작자는 물론 배우로도 참여했다. 극 중 안젤리나 졸리의 남편 역이다. 그러니까, ‘브란젤리나’ 커플은 영화에서도 부부로 출연한다.

이 커플은 금슬도 참 좋지, 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영화에서는 침대만 같이 썼지 내외하는 사이에 가깝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 때처럼 상대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쉬이 뱉은 말 한마디가 바늘이 되어 온 신경을 긁어대고 가벼운 행동 하나가 돌덩어리처럼 심장을 무겁게 짓누른다.

실상과 다르게 겉으로 봐서는 균열 조짐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이들 부부는 조심스럽다. 체면 때문에 그렇다. 남편 롤랜드는 한물간 작가다.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예전의 총기를 잃었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린 탓으로 생각한 롤랜드는 부인 바네사와 함께 낯선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롤랜드는 이참에 신작의 아이디어도 얻을 겸 아침부터 카페를 비롯해 주변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바네사는 웬만해선 호텔 방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무용수 출신인 걸 고려하면 바네사 역시 지금의 부부 생활에 얼마나 진저리를 느끼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4년 차 부부에게 찾아온 절체절명의 위기. 바네사는 외출하는 롤랜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옆방으로 뚫린 ‘구멍’을 발견한다. 바네사가 구멍으로 엿보니 신혼부부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다.

브란젤리나 부부의 실제 이야기인가, 호기심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텐데 부부 생활이란 게 대개 그렇지 않나. (최수종과 하희라 커플은 아니려나, 어쨌든) 어느 시점이 지나면 상대에 대한 애정이 식고 서로 얼굴 대하기를 의무처럼 넘기다가 데면스러운 상태에 놓이는 건 모든 부부가 겪는 통과의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문제의식에서 졸리 피트는 <바이 더 씨>를 구상했다

그렇게 새롭지 않은 것은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넘쳐나는 까닭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1953)을 꼽을 수 있을 텐데 <바이 더 씨>는 이 영화를 참조한 심증이 역력하다. <이탈리아 여행>은 관계가 어긋난 부부가 나폴리를 여행하며 새 출발을 모색하는 이야기로 <바이 더 씨>와 무척이나 닮았다. 왜 아니겠는가,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은 당시 부인이었던 잉그리드 버그먼(맞다, 우리가 아는 바로 그녀다!)과의 부부 관계에서 얻은 의문과 깨달음을 <이탈리아 여행>에 그대로 투영했다.

<바이 더 씨>는 고로 <이탈리아 여행>을 의식한  졸리 피트(와 브래드 피트)의 재해석 버전이라 할 만하다. 그만큼 졸리 피트는 감독을 넘어선 작가로의 야심이 엄청나다. 극 중 배경을 현재 시점이 아닌 1970년대로 잡은 것부터가 그렇다. 세르쥬 갱스부르가 당시 연인이자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제인 버킨에게 선사한 곡으로 유명한 ‘Jane B.’가 테마곡으로 흐르는 가운데 휴양지의 분위기에 걸맞게 한가한듯 고요하게 진행되는 전개는 이탈리아 뉴웨이브 혹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운이 물씬하다.

잘 알려진 영화의 유산을 취해 자신의 개성으로 치환하려는 연출이 폼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나름의 내적 논리를 갖춘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극 중 배경이 1970년대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뜨거웠던 롤랜드와 바네사의 부부 생활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멈춰진 채 지리멸렬해졌다는 의미를 강화한다. 그래서 구멍을 통해 보는 신혼부부의 화끈한 생활은 곧 롤랜드와 바네사 부부가 겪었던, 그리고 다시 한 번 돌아가고픈 호(好)시절이기도 한 셈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 부부가 묵는 호텔 앞으로는 시원스레 바다가 펼쳐 져 있다. 테라스에서 시무룩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바네사는 아침 일찍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시간에 맞춰 돌아오는 어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부의 삶이야말로 위기를 겪는 부부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게 무슨 찢어진 어망으로 물고기 빠져나가는 소리냐고?

어부의 삶이란 게 그렇다. 어선을 띄워 고기를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패턴의 연속이다. 반복적이고 지루하지만, 직업상의 의무라는 점에서 부부 생활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어부가 일상을 꾸려나가기 위해 어부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부부 또한 이를 인정한다면 식어버린 애정을 동지애의 감정으로 받아들여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평생을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바이 더 씨>에서 롤랜드와 바네사로 분한 브란젤리나 커플의 협업을 보고 있으면 진심으로 다가온다.

 

NEXT plus
(2016.4.28)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