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14] <툴루즈의 연쇄살인범>(C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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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신의 에릭 셰리에르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이전 두 편의 범죄소설을 발표한 작가였다. 첫 번째 극영화로 범죄를 소재로 한 <툴루즈의 연쇄살인범>을 택한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범죄물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양상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는 영화라는 점이 흥미롭다.

일반의 범죄물이 악당을 쫓는 경찰이나 형사가 등장해 해피엔딩의 구조를 따르는 것에 반해 <툴루즈의 연쇄살인범>은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악을 처단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악의 기원을 탐구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은 정의를 수호하는 심판자가 아니라 살인을 일삼는 범죄자다.

이름은 피에르. 겉으로는 평범한 이들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잘생긴 편이지만 무뚝뚝한 인상과 적은 말수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게다가 아침이면 작업장으로 출근해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리하고 일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다. 다르다면, 자신이 점찍은 이를 오랫동안 몰래 관찰하다가 납치 후 살해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악은 특별한 형태라기보다 평범함 속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것이다. 피에르가 살인을 일삼게 된 연유에는 자식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은 아버지가 있다. 그게 불만이었던 피에르는 어머니를 첫 번째 살해 대상으로 삼아 아버지가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도록 만들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아버지는 지금 말도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해 지내는 신세다. 피에르는 집에 있을 때면 그런 아버지 곁을 웬만해서는 떠나지 않는데 제삼자가 보기에는 가족이라는 일상적인 풍경일 뿐이다.  

그럴 정도로 현대 사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주변 사람과의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 겉으로는 잔잔한 수면 같은 삶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아래에서는 충분하지 않은 소통과 비정상적인 관계가 만들어내는 어둠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 현대 가족의, 사회의 초상이다.

그에 착안한 감독은 지상과 지하, 낮과 밤 등 명암을 적극 살린 이미지로 일상 속의 범죄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이와 같은 대비가 드러내는 것은 결국에는 인간의 양면성이다. 피에르가 연쇄 살인범이라고는 하지만 악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살인을 제외하면 그가 보여주는 행동이 우리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피에르는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엄마와 함께 보냈던 기억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자주 가는 서점에서 만난 피아니스트와는 사랑에 빠져 진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피에르에 대한 평가가 혼란스러워진다. 그가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피에르가 고민하는 지점도 다르지 않다. 살인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던 피에르는 그녀와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정체성에 대한 혼란도 더해진다. 그것은 사회를 향한 분노로 폭발하게 되는데 <툴루즈의 연쇄살인범>은 피에르 개인의 문제를 넘어 무관심이 넘쳐나는 이 사회를 향한 비판으로까지 문제의식을 확장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주변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부산일보
(201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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