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14] <나는 그가 아니다>(I am not Him)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해 부산영화제는 특별기획 프로그램 중 하나로 ‘터키 특별전’을 준비했다. 부제가 ‘뉴 터키 시네마-21세기의 얼굴들’이다. 타이푼 피르셀리모글루 감독의 <나는 그가 아니다>는 현재 터키 영화의 어떤 경향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니하트는 오십이 훌쩍 넘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살고 있다. 식당에서 주방 보조 업무를 하는 그는 퇴근 후 집에서 식사하고 TV를 보는 게 일상의 전부일 정도로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다. 별 볼 일 없는 니하트에게 직장 동료 아이세는 관심을 보인다. 음식을 대접하겠다며 니하트를 집에 초대하고는 감옥에 간 남편과 너무나 똑같이 생겼다며 애정을 표한다. 둘은 그렇게 친밀한 사이가 되지만 함께 배를 타러 바다로 갔다가 아이세가 숨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후의 과정은 니하트가 숨진 아이세의 남편으로 변장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인데 그 과정은 흡사 맷 데이먼과 주드 로가 출연했던 <리플리>(1999)를 연상시킨다. 그뿐이 아니다. 숨진 아이세와 똑같은 여인을 목격한 니하트는 그녀를 미행하며 과도한 집착을 보이니, 이는 또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을 떠올리게 한다.

의도적인 연출일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 직접 명기하듯, <나는 그가 아니다>는 <리플리>와 <현기증>의 설정을 노골적으로 취하지만, 말하려는 바는 확연히 다르다. 니하트도 마찬가지다. 아이세를 만나기 전 그의 삶은 가치를 논하기 힘들 정도로 단조로웠다. 아이세가 죽은 후 닮았다는 이유만 믿고 그녀의 남편으로 행세하는 것도 초라했던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기 싫어 내린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니하트의 동료들은 변장한 그를 쉽게 알아볼 뿐 아니라 아이세의 남편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아무리 외모가 똑같다 한들 말투와 행동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니하트는 좀 더 나은 삶 혹은 자유를 위해 과거의 삶과 정체성을 포기했지만, 변장으로 새롭게 태어난 또 다른 나는 오히려 니하트를 옥죄는 마음속의 감옥으로 작용한다.

<나는 그가 아니다>의 백미는 그런 니하트의 마음속 감옥을 표현하는 이미지 연출에 있다. 영화는 잠에서 깬 니하트가 거울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니하트는 식사를 준비하러 부엌으로 이동하는데 거울 속의 니하트는 여전히 남아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된다. 이 영화가 인물 뒤의 배경으로 벽에 걸린 액자 그림을 빈번히 노출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 일색인데 액자 속에 갇혀 있다 보니 박제된 것처럼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에 바로 타이푼 피르셀리 모글루 감독의 질문이 숨겨져 있다. 나를 대체할 누군가의 존재가 과연 행복을 담보할까. 그것이 과연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감옥에 간 남편과 닮았다며 니하트에게 대신 애정을 쏟은 아이세의 최후는 이 질문에 대한 감독의 답변은 아닐까. 결국, 나는, 우리는 진짜 나의, 우리의 모습으로 사는 것인가. <나는 그가 아니다>는 21세기의 얼굴들에 대해 질문하는 뉴 터키 시네마의 답변과 같은 작품이다.

부산일보
(2014.10.3)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