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13] <잃어버린 사진> 리티 판 감독

<잃어버린 사진>은 독특한 다큐멘터리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정권 당시 비극적인 역사를 다루지만 그런 객관적인 기록 사이에 끼어드는 건 리티 판 감독 개인의 기억이다. 크메르 정권 당시 어린 나이였던 리티 판 감독은 가족과 함께 수용소에 갇혀 고통과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탈출한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되 찰흙 인형을 통해 재현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만 리티 판 감독에게 찰흙 인형을 만드는 과정은 새로운 영화적 언어이자 미장센이기 이전 크메르 루즈 당시 학살당했던 수백만의 개인들을 살려내는 제의와 다르지 않았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비극을 직접 겪은 기성세대로서 캄보디아의 젊은 세대들에게 역사를 교육하는 방법이라는 언급도 잊지 않았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을 수상했다. 소감이 어떤가?
행복하다.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어 오면서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도 체면이 서는 일이고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나의 작업을 인정받았다는 것이 희망을 준다. 한국 영화계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은 건 자국영화의 다양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몇 년 전 한국에 왔을 때 스크린쿼터를 사수하기 위해 배우들이 삭발하는 모습을 보았다. 외양이 생명인 배우들에게 치명적인 일일 텐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 실로 대단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가 우리의 영화를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다.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 수상은 ‘영화 유산 보존’을 인정받은 결과다. <잃어버린 사진>의 서두에도 크메르 정권 이전에 만들어졌던 영화가 담긴 필름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잃어버린 사진>을 만들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
나는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좀 특별하다. 처음 아이디어를 얻어 착상했던 것과 완성된 영화는 완전히 다르다. <잃어버린 사진>도 처음 시작했던 구상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영화가 되었다. 크메르 루즈에 대한 자료 조사를 시작으로 이 영화의 착상에 들어갔다. 그에 맞춰 촬영을 하다가 1년 6개월이 지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때문에 프로듀서가 굉장히 힘들어했다.

<잃어버린 사진>은 다큐멘터리이지만 기록화면 사이에 찰흙 인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그 때문에 이전의 촬영을 접고 새롭게 작업한 것인가?
촬영을 하던 도중에 찰흙 인형 애니메이터를 만났다. 이 영화는 크메르 루즈 당시의 내가 가졌던 기억을 다루는 작품인데 찰흙 인형을 만들어 기억을 복원한다는 아이디어가 맞아 떨어졌다. 사람은 죽을 때 재가 되서 땅으로 돌아간다. 땅의 흙을 모아 물을 부어 찰흙을 만들고 거기에 햇빛을 쏘아 말린 후 색을 발라 최종적으로 불로 구우는 과정이 마치 다시 생명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찰흙 인형의 아이디어를 차용했고 마침 이 형식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스크립터도 찾게 됐다.

찰흙 인형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정지된 상태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촬영됐다.   
찰흙 인형을 만드는 과정은 조물주가 되어 인간을 창조하는 느낌이었다. 신자들이 부처에 절을 할 때 ‘돌’로 만들어진 형상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들어있다고 믿는 영혼에 기도를 하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애니메이터에게 찰흙 인형을 주문하면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인형들을 가지고 나의 주관적인 기억 하에 어린 시절을 재현한 것인데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착안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는 분명히 차이가 존재한다. 다큐멘터리 또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편집하는 형태가 있고 <잃어버린 사진>처럼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인데 늘 영화 만들기의 최전선에서 다큐멘터리가 갖는 한계를 밀어내고 새로운 언어와 형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한다. 다큐멘터리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촬영을 해 나가는 거다. 극영화는 시나리오를 따라가면 되지만 다큐멘터리는 계속 변동 사항이 생겨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칠 때도 자기가 가진 비전으로 연출도 하고 카메라도 들면서 사운도 입혀보라고 얘기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놓고 편집 때가 되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 너무나 잘 보인다. 그 과정을 겪으면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고 그에 적합한 영화 언어와 형식을 얻을 수 있으며 나중에는 전혀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창조할 수도 있다.  

찰흙 인형 아이디어를 얻은 이후 <잃어버린 사진>의 제작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극 중에 굉장히 많은 찰흙 인형이 등장한다. 이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나? 
8개월 동안 촬영했다. 그 기간은 한편으로 찰흙 인형을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백 개의 찰흙 인형이 필요했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를 많이 고용했다면 제직 기간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딱 한 사람에게만 맡겼다. 내가 이 영화의 비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를 잘 해석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원래부터 시나리오가 없는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고 그러다가 또 다른 아이디어가 생기면 이미 찍었던 시퀀스로 돌아가 다시 구성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생각하는 바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결정된 애니메이터와만 소통하고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잃어버린 사진>에서 기억을 다루지만 내레이션은 다른 이가 맡았다. 
들어서 알겠지만 내 목소리가 썩 매력적이지가 았다. (웃음) 사실 랜달 루는 배우이지만 원래는 수학자이다. 영어로 말하건 중국어로 내레이션을 하건 관객들이 그 내용을 똑같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단순한 목소리를 가진 평범한 사람에게 읽게 하고 싶었다.
 
<잃어버린 사진>도 그렇고 <크메르 루즈 – 피의 기억>(2002) 처럼 크메르 루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직접 그 피해를 입은 당사자로서 굉장히 고통스러운 기억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영화를 통해 크메르 루즈로 촉발된 비극의 기억을 복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 크메르 루즈에 대해 얘기하는 건 의무가 아니라 필요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엄청난 비극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사람들이 비극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그 자신이 똑똑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이 사건이 주는 경험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념 문제로 촉발된 크메르 정권 대학살 당시 지금 부산 인구의 절반정도인 180만 명이 학살당했다. 180명이나 1,800명이 아닌 180만 명 말이다. 한 명 한 명의 사람이 모두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듯이 180만 명이나 되는 개인의 이야기가 죽은 셈이다. 이건 고귀한 생명을 살해한 것을 넘어 역사와 정체성을 소멸한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사진>에서도 묘사가 되지만 감독님에게 당시의 기억이란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드는 어떤 것이다.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종국에는 안고 살아가는지가 인생의 과정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더욱 더 크메르 루즈가 남긴 고통에 대해 영화로써 싸우고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이 악하다는 게 아니라 선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크메르 루즈의 비극을 겪었지만 인간은 선하다고 믿고 있다. 선함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이에 대한 교육이 이뤄질 때에만 습득하고 배울 수 있다. 크메르 정권 하에서 고통을 겪다 탈출하고 나니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생존자로서 새로운 세계를 교육하고 역사에 대해 가르쳐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그런 역사 교육의 방법 중 하나로 영화를 선택한 것인가?
당시의 일을 잊는다는 것은 내게는 불가능하다. 글로 쓰거나 영화로 남기거나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단순히 죽음을 고발하고 알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에 대한 저항과 용기 같은 것이 궁극적으로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현재 캄보디아의 젊은 세대들에게 크메르 루즈의 역사 교육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나? 
나와 다르게 내 세대들은 고통이 너무 크기도 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크메르 루즈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 다행히 요즘 들어 젊은 세대들이 자발적으로 크메르 루즈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10년 전만 해도 젊은 세대들은 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DVD를 구매하거나 아니면 다운로드 등을 통해서 직접 찾아볼 정도다. 그런 것만 봐도 젊은 세대들이 크메르 루즈의 비극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캄보디아의 대학교에는 역사와 관련한 학과가 별로 없다. 취업을 할 수 있거나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데 도움이 되는 학과만 개설하고 있는데 굉장히 잘못된 일이다. 역사를 알아야지만 더 좋은 미래를 가질 수가 있다. 기성세대들이 노력해야만 젊은 세대들이 역사를 똑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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