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13] <심야배송> 이승주 감독

이승주 감독은 참 쑥스러움을 많이 탄다. 인터뷰 기사에 실릴 사진 때문에 포즈를 부탁하니 영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그러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이 사람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야배송>은 베이비 박스 앞에서 아이를 버리러 온 수영과 여고생, 두 미혼모가 우연히 만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그 과정에서 두 여자는 온갖 수모를 겪게 되는데 그럼에도 일말의 따뜻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따뜻하기 때문일 거다.

왜 그렇게 포즈를 못 잡나. 그래서야 어떻게 촬영 현장에서 배우의 연기를 지도하고 조율할 수 있나? (웃음)
연기 지도라고까지 하기는 뭐하고, 배우들에게 부탁을 한다. (웃음) 실제로는 사전에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번 영화에도 먼저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을 얘기한 후에 무드, 표정 이런 식으로 접근해 들어갔다. 그러면 배우들이 이를 받아들인 후에 디테일한 연기에 대해서 물어오는 식이다. 극 중 수영이 여고생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온 후에 라면을 먹는 장면이 있다. 내가 약간 디테일하게 말하는 편인데 이 장면에서 배우에게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으니 입을 조금만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배우들에게 이 영화의 큰 그림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했나?
베이비 박스를 소재로 한 TV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그때 이걸 보면서 나도 베이비 박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면서 생각을 넓혀갔는데 베이비 박스가 있으면 아기를 버린 사람이 있을 테고 하는 식으로 연관된 사람들이 떠오르더라.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리려고 했다. 여고생 미혼모에게는 부모가 있을 거고, 그 여고생에게 아이를 갖게 한 남자 친구에게도 엄마, 아빠가 있을 테고. 그렇게 캐릭터를 하나하나 추가해가다 보니까 연관된 그림이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제목이 <심야배송>이었나?
내가 전에 만들었던 영화를 보면 <야간수업>(2010) <고요한 밤>(2008) 등 제목에 ‘밤’이 들어간다. 이참에 밤 삼부작을 해보자. (웃음) 다만 <심야배송>을 하면서 밤이라는 직접적인 설명보다는 그런 의미를 내포한 다른 단어가 없을까 하다가 ‘심야’가 생각났다. ‘배송’은 택배 회사 용어인데 그걸 밤에 아기 버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떨까, 툭 던져 주는 제목으로 가고 싶어서 최종적으로 <심야배송>으로 짓게 됐다. 좀 웃긴 게 써놓은 다른 시나리오도 있는데 거기에도 의도치 않게 제목에 밤이 들어가 있다. 자꾸 밤이 들어가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웃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관심을 갖다 보니 그렇게 된 건 아닐까?
영화적인 소재를 찾을 때 먼저 와 닿는 게 사회적인 것 같다. 사실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영화는 호러나 Sci-Fi 같은 장르영화다. 하지만 장르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도 결국 그 밑에 깔린 건 드라마다. 나는 아직 영화 연출을 공부하는 입장이다 보니 드라마를 중요시하는 과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게 어느 정도 끝나면 지금까지 해왔던 걸 안정적인 기반으로 해서 드라마도 잘 짜인 장르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우리의 삶속에서 가장 밀접한 소재를 찾다보니 그게 사회적인 거였고 그러다보니까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들이 모두 사회파 영화가 되었다.  

TV 다큐멘터리를 본 후에 떠올렸던 아이디어와 이를 시나리오로 발전시켜나가면서 나온 이야기 사이에 차이는 없었나?
처음 생각할 당시만 해도 여고생 미혼모만 주인공이었다. 실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베이비 박스가 있는 곳에 가면 이를 운영하는 목사님이 계신다. 그 목사님이 베이비 박스에 들어온 애를 돌본다. 그러다가 여고생을 만나는 이야기였다. 초고를 쓰고 나서 보니 이야기나 분위기가 건조했다. 너무 느낌이 없더라. (웃음) 그래서 싹 뒤집었다. 아무래도 여고생 한 명 보다 또 다른 주인공 캐릭터가 나오면 이야기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겠더라. 그래서 여고생과 좀 더 나이든 여자가 애를 버리다가 베이비 박스에서 우연히 만난다, 라는 설정으로 사건을 확장해 이야기를 바꿨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게 됐다.

39분 러닝타임의 영화치고는 캐릭터가 많지만 클로즈업이 많이 활용되다보니 모두에게 시선이 고루 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심야배송>은 캐릭터의 얼굴로만 이뤄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온전히 캐릭터에 집중하기 위해 2.35:1의 화면비도 그렇고, 클로즈업을 선택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인서트 장면이 거의 없다. 영화에는 액션과 리액션이 있다. 사람들 역시 세상과 ‘부딪히'(action)는 과정 속에 그에 대한 ‘반응'(reaction)을 한다. 그처럼 극 중 캐릭터들의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반응하는 미세한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보려고 했다.  

클로즈업과 더불어 인물 간의 관계를 포착하는 카메라의 동선도 눈에 띈다.  
카메라 동선이 많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심야배송>를 포함해 내 영화들은 비교적 느리게 흐른다. 인물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어 카메라를 움직이다보니 러닝타임이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길어진 측면이 있다. 물론 단편이기 때문에 단순히 이미지로만 구성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 자체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사건 속에 몰아넣고 그들을 따라가며 인물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때문에 처음 편집본은 40분이 훌쩍 넘었다. (웃음)  

TV 다큐멘터리가 출발점인 작품이지만 좀 더 생생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위해서는 당사자를 만나고 직접 취재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먼저 베이비 박스가 있는 곳에 갔다. 베이비 박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운영되는지 목사님을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거기에 가면 베이비 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들과 미혼모 분들이 계신다. 사실 나는 그곳에서 어떤 인상을 받은 거지 이분들에게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이분들이 처한 상황 같은 경우는 뉴스를 검색해서 많이 찾아봤다. 어느 여고생이 베이비 박스 근방 모텔에서 애를 낳자마자 버리고 갔다는 기사를 봤다. 목사님에게 들어봤더니 방금 출산하고는 피를 흘리면서 베이비 박스에 애를 놓고 가는 미혼모가 많더라. 그렇게 뉴스와 실제를 확인하는 식으로 시나리오를 써갔다.

시나리오를 썼던 일련의 과정이 곧 우리 사회의 그늘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행위였는데 당연히 고통과 고민이 수반했겠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이와 같은 현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은 있다. 하지만 그게 희망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극 중 수영과 여고생 그들 자신이 이 사회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상황으로 끝을 냈으면 했다. 여고생이 마지막에 수영에게 “우리 잘못한 거 없죠?”라고 질문한다. 그런데 수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보면 수영과 여고생 둘 다 아기를 버렸다. 그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 앞에서는 둘 모두 죄인의 마음이었을 거다. 나는 사실 두 주인공에게 너희들 자신에게 아예 문제가 없는 건 아니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여고생만 해도 어릴 때 철모르고 놀았던 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어버린 거니까. 수영도 여고생의 질문을 통해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거다. 그럼에도 살아야 하니까, 함께 택시를 타고 가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 거다.  
 
이 둘이 택시를 타고 병원을 떠날 때 수영의 핸드폰으로 보험회사에 합격했다는 문자가 온다. 이에 대해 당신은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였다고 답변했지만 이 사회가 이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만 제공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개인적으로는 잔인했다.
나는 영화의 결말이 맺어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매번 열어놓고 끝낸다. 이게 절대로 희망일 수 없는 게 애를 버리고 그렇게 병원에서 난리치고 나왔던 사람들인데 택시를 타고 떠난다고 해서 현실이 나아지는 건 아니잖나. 오히려 앞으로 닥칠 일상들이 있으니 말이다. 수영이 여고생을 데리고 택시를 탔을 때 근무하는 음식점 사장에게 전화가 온다. 근데 수영은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액정화면으로 발신자만 확인한 후 핸드폰을 아예 옆으로 던져버린다. 아주 작은 행동이긴 하지만 그걸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야 하나, 이 여자도 거부할 건 거부한다. 그전까지 수영은 주변 상황에 계속 끌려 다닌다. 착하다고 해야 하나, 수영 자신도 처한 상황이 만만치 않으니까 그와 같은 소동에 휘말리기도, 그 때문에 자기 사연을 드러내야 하는 것도 싫지만 인간적인 정은 있어서 어떻게든 여고생을 도와주려고 한다. 그러다가 한 순간에 폭발하는 것이다. 꾹꾹 눌러 담을 수도 있었는데 수영이라면 한 번 터뜨려야 맞을 것 같았다. 영화적으로도 수영이 모든 걸 참고 끝내면 카타르시스가 없을 것 같았다. 사실 답답한 여자다. 근데 감독 입장에서 그 답답함을 끝내주고 싶었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갖는 애정과 예의가 느껴진다. (웃음)
영화를 만들면서 갖게 된 모토가 있다. ‘인생은 아이러니하고 인간은 어리석다.’ 이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다 보니 결말에는 꼭 주인공들이 자각을 하게 된다. 근데 세상은 바뀌는 게 없다. 그럴 때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전에는 자각만 하면서 끝냈다면 이번 영화에는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게 보이도록 하였다. 주인공들이 좋은 대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수영과 여고생이 택시에 타자 이를 흘끔 본 택시기사가 괜히 라디오를 틀지 않나. 이 둘이 일종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편하게 가라는 의미에서 무리수를 둔 설정이었다. (웃음) 내가 아주 조금이나마 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희망 같은 거였다. 마지막엔 좀 편하게 보내줬으면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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