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 다티>는 제롤 타로그 감독의 ‘카메라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삼부작마다 카메라를 든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인데 이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사나 다티>는 꽤 생각할 지점이 많다. 예컨대, 결혼을 앞둔 두 남녀와 이들의 결혼식을 촬영하는 카메라맨은 모두 신부와 관련된 과거 때문에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다. 영화는 이를 통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하다가 말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왜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 만 서면 부자연스러워지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걸까? 제롤 타로그 감독은 그에 대한 질문뿐만 아니라 나름의 답까지 제시하며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를 파고든다.
카메라 삼부작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진실과 거짓에 대한 탐구를 좀 더 다양한 층위로 가져가고 싶었다. 특히 카메라 삼부작인 이유는 모든 작품에서 카메라를 든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고백 Confession>(2007)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사회 정치적인 테마를 가지고 만들었다. 극 중 다큐멘터리 감독이 부패한 전(前)시장을 찾아간다. 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의 비리를 카메라 앞에서 고백하는 형식으로 영화를 가져갔다.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은 <핏자국 Blood Trai>(2009)이었다. 사진기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여자가 가공의 부족 제사에 참여했다가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고 아빠로부터 학대당한 끔찍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 때문에 고통 받다가 결국에는 아빠를 용서하는 화해의 이야기다.
세 번째 작품인 <사나 다티>는 러브 스토리다.
첫 번째가 정치사회, 두 번째가 다큐멘터리와 같은 리얼한 영상에 초점을 맞췄다면 <사나 다티>에서는 남녀의 사랑을 다룬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웨딩 비디오를 촬영한 적이 있다. 진지한 직업은 아니었다. 당시 할 일이 너무 없어서 결혼식을 촬영한 거다. 그렇게 잘 찍지는 못했다. 하지만 웨딩 비디오를 만들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웨딩 촬영을 하다가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내가 신부에게 패닉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을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걸 카메라에 담으면 흥미롭겠다는 상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웨딩 카메라 감독이 신부의 과거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면 결혼식을 통해 진실과 거짓 탐구의 주제를 가져갈 수 있겠다고 봤다.
삼부작이지만 두 번째 작품인 <핏자국> 이후에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기간에는 <아구산 마쉬의 일기>(2011) <아스왕>(2011)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원래 <사나 다티>에 대해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쓴 것은 7년 전인 2006년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맡아줄 프로듀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사나 다티>가 결혼식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로케이션 장소가 호텔과 해변으로 집중되어 있어 예산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류 상업영화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예산이었지만 <사나 다티>를 뒤로 미루고 스탭 다섯 명과 함께 내가 연출은 물론 직접 출연까지 하면서 <고백>을 먼저 만들게 됐다. 구상은 <사나 다티> <고백> <핏자국> 순이었지만 만든 순서 상 <사나 다티>가 삼부작의 마지막이 되었다.
아무래도 연출은 물론 시나리오, 편집까지 혼자 도맡아 하는 스타일이다보니 영화의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프로듀서를 만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겠다.
2007년부터 연출, 각본, 편집 , 음악 등 혼자서 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지속해왔다. 그게 내게는 더 편하게 다가왔다. 예를 들어, 영화 촬영 후 촬영 된 영상에 사운드를 입하다가 장면이 맘에 안 들면 다시 편집으로 돌아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 탓에 프로듀서가 창조적인 부분에 대해서 관여할 일은 없고 대신 재정과 투자와 관련해서 일을 맡는다.
카메라 삼부작이라고 명명했지만 카메라 외에도 <고백> <핏자국> <사나 다티>는 모두 과거와 연관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기억 삼부작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데?
난 기억 삼부작보다는 카메라 삼부작이 더 나은 것 같다. (웃음) 극 중 인물이 카메라를 쥐고 등장해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의 영화는 <사나 다티>가 마지막이다. 필리핀의 독립영화 감독 중에는 그 자신을 캐릭터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처럼 캐릭터를 통해 진실과 거짓을 탐구하는 주제는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집착하게 된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
카메라 삼부작은 <사나 다티>가 끝이지만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추구해나가야 할 주제다. 동일한 주제로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아직도 진실과 거짓의 문제에 대한 궁금증이 남아있다. 내가 아직도 그 주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그게 바로 진실과 거짓 문제에 꾸준하게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뭐, 답을 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질문을 던질 수만 있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 있다고 본다.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의 경험이 많은 사람도 어려운 문제 아닌가?
영화에서처럼 개인적으로도 집안에 행사가 있는 날이면 가족 전체가 모이고는 했다. 거의 4~50명 가까이 되는 수였는데 집안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시끄러웠다. 외아들로 자란 나는 그런 분위기에 쉽게 적응할 수가 없었다.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을 좋아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그럴 수가 없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내 스스로가 가족 안에서 아웃사이더처럼 굴었다. 그러다보니 관찰자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성장 배경 탓일까,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관찰하고 그 과정을 영화로 남기는 것은 재밌다.
<사나 다티>에 당신의 가족사가 반영되기도 했나?
캐릭터도 그렇고 내 가족사가 반영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부분은 있다. 주로 독립영화를 만들지만 스튜디오에 고용돼서 일을 할 때도 있다. 그때 가명을 쓰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항상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자 <사나 다티>를 만든 거다.
연기도 어떻게 보면 진실과 거짓의 경계 위에 선 영역이 아닌가. 특히 카메라는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착하고 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나 다티>에 출연한 배우들에게는 남다른 영화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특별한 주문을 하지는 않았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 영화의 의도에 대해 설명해줬다. 카메라 앞에서, 그러니까 이 영화를 찍는 카메라 앞의 카메라에서는 거짓을 숨기고 사실인 척 연기해 달라고 주문했고 배우들은 그에 맞춰 연기를 했다.
러브 스토리의 측면에서 보자면 남녀가 하나가 되는 결합이 결혼이라 해도 개인들이 그 안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다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카메라 앞에 선 배우들에게 감독들이 요구하는 바이지 않나?
이 영화의 주제는 더 정확히는 과거로부터의 자유이다. 배우에 대해서 말하자면, 연기 스타일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배우를 일부러 찾아 섭외했다. <사나 다티>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 배우들은 모두 스튜디오 소식이다. 특히 안드리아와 데니스를 연기한 두 배우는 필리핀에서도 굉장히 유명하다. 다만 스튜디오에 속해 연기를 하다 보니 약간 멜로스럽게 정해진 톤이 있다. 그 안에 자신을 가두고 연기를 한 셈인데 그래서 이 배우들이 스튜디오 스케줄이 없을 때면 좀 더 자유로운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독립영화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과거로부터의 자유,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는 과거의 남자를 잊지 못하는 신부 때문에 주변 사람 모두가 겪는다. 그 때문에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데 어떤 기준을 갖고 편집을 했나?
시나리오, 연출, 음악까지 모두 도맡다 보니 영화가 모두 내 머릿속에 들어있어 편집이 어렵지는 않았다. 영화에 종사하기 전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두 매체 모두 내게 다르지 않은 것은 시간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음악도 테마를 가지고 작곡을 하게 되는데 맘에 안 들어 변화를 주고 싶으면 적당한 지점을 찾아 다시 만들면 된다. 이 영화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편집점의 기준도 마찬가지였다. 이쯤에서 과거의 에피소드가 필요하면 현재와 또 다른 현재 그 사이에 과거의 시간을 가져갔다.
그런데 <사나 다티>의 뜻이 뭔가? 영문 제목으로는 ‘If Only’인데 그것의 필리핀어 번역인가?
‘사나 다티’라는 말 자체가 영어로 번역할 수가 없다. 어떻게 영어로 제목을 지을까 하다가 필리핀에서 <사나 다티>를 본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괜찮은 영문 제목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그중 ‘If Only’가 가장 낫다는 의견이 우세해 그대로 따랐다.
앞으로 기획하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
내년 3월에 촬영에 들어가는 역사영화를 프리 프로덕션 하고 있다. 필리핀 혁명 이후 잊힌 안토니아 루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금껏 해온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크지만 역시나 독립영화 제작 방식으로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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