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13] <미스 좀비> 사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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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대게 흉측한 몰골을 갖고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장르의 공식이다. 하지만 사부 감독의 <미스 좀비>는 그런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영화다. 일단 좀비가 ‘사라’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라는 것부터가 새롭게 다가오고 험상궂거나 흉악한 몸짓 대신 동정을 살 만한 표정으로 인간 무리 속에서 숨죽이고 살아간다. 오히려 상처 입은 얼굴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며 인간들에게 공격받기 일쑤고 심지어 남자들의 노리개 감으로 전락한다. 전부터 좀비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사부 감독은 느리게 걷는 좀비의 모습에서 안쓰러움을 느꼈다며 <미스 좀비>에서는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좀비를 인간보다 더 따뜻한 존재로 묘사하는 사부 감독에게 인간에 대한 희망은 없는 걸까? 항상 코믹한 영화로 관객을 웃겼던 사부 감독이 이번에는 좀비처럼 표정을 싹 바꿔 인간 존재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기존에는 코믹한 분위기의 영화를 자주 만들었다. 그런데 <미스 좀비>에는 그런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한 작품인가?
좀비에 대해서 뭔가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좀비가 되었나에 대해서 그려보고 싶었다. 좀비는 움직임이 상당히 독특해서 한편으로는 코믹스럽게 보인다. 질문처럼 평소 해왔던 작품들은 코믹한 요소가 상당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요소를 제외하고 진지하게 만들었다.

코믹한 요소를 배제한 것도 그렇지만 <행복의 종>(2002) 이후 오랜만에 직접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큰 변화가 눈에 띈다. 원작이 있는 시나리오 대신 본인이 구상한 이야기를 가지고 작업한 소감이 어떤가? 
<미스 좀비>가 이번 부산영화제에서도 상영이 되고 있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가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쁘다.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의 규모로 개봉을 했나?
일본에서는 9월 14일에 개봉했다. 일본에서는 <미스 좀비>와 같은 예술적 영화를 상영해주는 공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큰 규모로 배급하지 못했다.

그럼 많은 관객과 만나지 못했을 텐데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 만족할 만한 반응은 얻었나?
다행히 도쿄뿐 아니라 오사카, 나고야에서 상영되는 중이고 관객들의 호평도 받고 있다. 좀비를 좋아하는 분들이 일본에 굉장히 많은 것 같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대작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미스 좀비>의 경우, 나름의 맛을 가지고 단관 혹은 아트영화 계열의 적은 상영관에서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좀비물은 워낙 공식이 뚜렷한 작품이라 차별되는 지점을 만들어내기가 힘들었을 텐데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기본적인 원칙과 상식을 벗어나면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한다. 나는 이야말로 시나리오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매번 생각하게 되는 건데 영화는 이럴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런 선입견을 어떻게 파괴하는지가 중요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파고들면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요즘 젊은 감독들에게는 모든 걸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굳이 필요 없는 부분까지 설명을 하면 영화가 무거워진다. 다소 앞뒤가 맞지 않더라도 재미만 있으면 관객은 따라와 주기 마련이다. 그와 같은 부분을 나타내야 했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건 각본이었다.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다. 좀비물이 일본에서 대중적이지 못한 소재이기 때문에 저예산으로 작업을 한 것인지, 아니면 미학적인 선택이었는지 궁금하다. 
대중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저예산으로 작업한 것은 아니다. 이번 작품은 촬영 기간이 단 5일이었다. 굉장히 짧은 시간에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흥미로운 작품이 탄생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안 그래도 적은 돈을 들이고도 그 이상의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였다. 무엇보다 <미스 좀비>의 주요한 공간으로 등장하는 건물의 구조가 독특하다. 우주선을 연상시키는데 영화를 위해 따로 만든 건물인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이 건물을 발견하게 됐다. 이 건물을 발견했을 당시 건물주가 자신의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었다. 건물의 형태가 워낙 독특한데 다행히 내가 발견하기 전까지 기존 영화의 촬영세트로 활용된 적이 없었다. 나로서는 운이 굉장히 좋았던 경우다.  

흑백과 컬러 화면이 혼용되어 있는 점도 색다른 볼거리로 다가온다. 그렇게 편집을 가져간 이유는 무엇인가?
적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VFX와 같은 시각적 특수 효과를 내고 싶었다. 그래서 흑백 화면에 부분 부분 컬러 화면을 더하면 관객들이 재미있어 하고 놀라워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좀 더 극 중의 디테일한 부분에서 컬러 화면이 의도하는 바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야의 기억이 완전히 돌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시이기도 하다.  

사실 좀비물은 좀비가 갖는 특성이 워낙 상식처럼 굳어있어서 이를 비트는 신선한 아이디어만으로도 많은 예산을 줄일 수 있다. 
좀비라고 했을 때 완성된 형태의 이미지가 있지만 그런 전형을 가지고 오기 보다는 인간 안에 잠들어 있는 좀비적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집단 속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폭주하고 자신과는 다른 타인에 대해서 왕따와 같은 폭력적인 행위를 하는지, 이를 강조하기 위해 역으로 좀비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지는 영화로 꾸미려고 했다.

그와 같은 생각 때문에 좀비를 여성으로 설정한 건 아닌가? 좀비물은 남성적인 느낌이 강할 정도로 폭력적인데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섬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좀비의 생김새도 그렇게 잔인하지 않고 오히려 노예처럼 인간을 섬긴다.
인간은 역경에 부딪히면 공격적이 되거나 아니면 무력해진다. 절망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사라에게서 아주 적은 양의 모성애라도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미스 좀비>의 기본 바탕이었고 그래서 사라가 자신의 운명을 따르지 않고 인간의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사라 역에 일본의 인기 그라비아 아이돌인 코마츠 아야카(小松彩夏)를 캐스팅했다. 그녀가 사라 역할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하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라서 캐스팅했다.  

기존 좀비물과는 많은 지점에서 다르지만 한편으로 영상이 흑백이고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까닭에 조지 로메로의 <살아난 시체들의 밤>(1968)이 연상되기도 한다. <미스 좀비>를 작업하면서 참조한 좀비물들이 있나?
영향을 받을까봐 <미스 좀비>를 작업하는 동안에는 그 어떤 좀비물도 참조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 부산영화제에서 <조지 로메로의 새벽의 저주 3D> 제작자 리처드 루빈스타인과 좀비영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마련해줬다. 조지 로메로가 만든 <새벽의 저주>(1978)는 일본에서도 개봉을 했고 TV를 통해서도 많이 방영이 됐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보고 나서는 새삼 깜짝 놀랐다. 좀비물이지만 좀비보다 인간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미스 좀비>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새벽의 저주>에서처럼 내가 좀비의 추격에서 벗어나 백화점 안에 갇히게 되면 어느 매장으로 갈까, 추측하게 만드는 구성이 독특했다. 요즘 영화들과 다르게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게 만들어서 좋았다.

사라는 임신을 하지 않지만 주인집의 아들을 자식처럼 보살피고 결국엔 유사 엄마가 된다. <새벽의 저주>에 등장하는 임신한 여성과도 공유되는 지점이 있다.
<새벽의 저주>는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이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할까. 그와 같은 세계관처럼 넓은 세상에서 좀비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니 절절하고 애절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 임신한 여성이 등장해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스 좀비>와 공통점을 느꼈다.

<미스 좀비>에는 꽃을 심고, 물을 주고, 청소를 하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좀비물이 워낙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하는 장르이니만큼 방사능 오염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현재의 일본이 3.11의 공포를 떨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만약 3.11이 아니었다면 <미스 좀비>는 지금과 다른 형태의 영화가 되었을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좀비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미스 좀비>를 통해 어떻게 하면 좀비에 대한 기존 이미지를 깨뜨리고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을 끌어낼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군중 심리 상태에 빠진 인간들은 좀비와 다를 바가 없다. 반대로 극 중에서 자신의 외로움과 대면하게 된 좀비는 우리 인간들처럼 변한다. 좀비, 가족, 인간들, 차별, 폭력, 사랑 등 이 모든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미스 좀비>로 나오게 된 거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이렇게 묻고 싶다. 결국 파국을 불러오는 건 좀비의 살육이 아니라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다. 인간은 바뀔 수 없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나는 인간은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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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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