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1999, 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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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는 제목이 명기하듯 <건축학개론> <응답하라, 1997>처럼 90년대를 소환하는 영화다. 다만 언급한 두 작품처럼 90년대의 특정한 문화를 부각하기보다는 상징적 의미의 시간적 배경에 가깝다. 1999년이라는 세기말이 주는 혼돈의 느낌처럼 대학 1학년생들이 겪는 좌충우돌의 첫 경험을 통한 성장을 다루고 있는 까닭이다.

겨울방학을 맞은 상욱과 승준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군대에 간 민욱을 만나기 위해 면회 길에 오른다. 민욱과의 오랜만의 재회를 앞두고 상욱과 승준은 설렘이 앞서지만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이 교차한다. 민욱의 여자 친구 에스더가 이별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민욱을 만난 자리에서 선뜻 편지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기만 하다.

<1999, 면회>는 김태곤 감독의 경험담에서 출발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친구 중에 군인이 있고 그를 보기 위해 면회를 갔다 온 느낌이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았다.”고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 즉 성장을 말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개인의 경험이기 이전 보편적인 감성을 전제한다. 물론 남자라면 의례적으로 통과했을 군대가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감독이 주목하는 건 면회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야기되는 익숙한 경험치의 출발에 대한 추억이다.

예컨대, 상준과 승준에게 면회라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듯, 민욱에게는 군대에서 맞게 되는 애인과의 이별이 생전 처음 맛보는 씁쓸한 어떤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욱과 승준은 이별 편지를 전해야 하네, 말아야 하네, 옥신각신 갈등을 겪을 테고, 민욱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애꿎은 동전만 낭비하며 자신을 외면하는 여자 친구에게 연신 공중전화를 걸어댈 테다. 각자에게는 특수한 경험이지만 그것이 모두의 첫 경험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나.

사실 성장한다는 것은 순수를 잃어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 인생을 알아가며 그렇게 성장한다. 그래서일까, <1999, 면회> 속 주인공들은 실수를 연발하고 무엇인가를 곧잘 잃어버린다. 혈기왕성한 시절을 잊지 않겠다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지만 군대 앞 다방에서 밤새 술판을 벌이고 나와 보니 카메라는 온 데 간 데 없다. 잃어버린 기억을 추억한다는 것은 결국 어른으로 자란 어느 시점에서 지나온 성장의 과정을 복기하는 것이 아닐까.

<1999, 면회>는 군대 간 친구를 위로하러 가는 게 출발이지만 결국엔 면회 간 친구들이 위로 받는 사연으로 귀결된다. 지금 한국 대중문화의 끓는점은 다름 아닌 90년대다. 9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이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중추인 30, 40대로 성장했다. 앞만 보며 달려왔더니 어느 샌가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만큼 잃어버린 것이 더욱 절실해진 나이. <1999, 면회>는 지금의 30, 40대에게 20대라는 지나온 시간과의 면회를 통해 위로의 순간을 제공한다.

부산일보                                                                                                                                       (201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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