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가 ‘아르투로 립스테인 특별전’을 마련한 건 존경의 표시이면서 한편으로 중남미 영화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세계영화계가 주목하는 시장은 다름 아닌 ‘중남미’다. 다소 베일에 쌓여있던 중남미의 현실을 폭로할 뿐 아니라 이를 익숙한 방식에 담아 전달한다. 예컨대, 멕시코의 메르세데스 몬카다의 <마법의 언어>(2012)의 경우, 니카라과 혁명을 소재삼아 충실한 자료화면을 통해 다큐멘터리로 보여준다. 특히 니카라과 혁명에 대한 사실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영향이 지금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결산의 형태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처럼 중남미 영화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다루되 공인된 장르로 풀어냄으로써 관객의 용이한 접근성을 보장한다. 디에고 루히에르의 <소금>(2011)은 서부극에 집착하는 어느 스페인 감독의 이야기다. 그가 기르는 고양이 이름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일 정도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은 남미 칠레의 사막, 그것도 소금 빛의 대지다. 남미 특유의 대지에서 펼쳐지는 서부극이 기묘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이 영화의 진가는 더 있다. 영화는 잘 안 만들어지고 사막에서 빠져나갈 방도는 보이지 않고, 이렇게 감독은 자기반영적인 이야기를 통해 남미의 영화 현실을 은근히 비유한다.
<소금>이 장르의 오락적 요소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미셀 프랑코의 <애프터 루시아>(2012)와 하비에르 반 데 쿠테르의 <미아>(2011)는 좀 더 남미사회에 밀착한 사연에 집중한다. <애프터 루시아>가 멕시코 사회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왕따 문제를, <미아>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성소수자의 삶에 주목하는 것. 다만 각각의 영화에서 감독이 보내는 태도의 상반됨, 즉 미셀 프랑코가 비판적인 시선으로, 반 데 쿠테르가 따뜻한 멜로드라마로 주인공을 바라보는 걸 보면 중남미 역시 희망과 절망 그 가운데서 앞길을 모색하느라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후안 안드레스 아람고는 <해변>(2012)을 통해 그럼에도 희망은 십대 청소년에게 있다고 말한다. 인종차별이 심각한 콜롬비아의 보고타가 배경인 영화는 마약에 빠진 동생과 이를 구하려는 형의 우애, 그리고 이들 주변에서 이뤄지는 친구들의 우정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 드리운 한줄기 햇살에 미래를 놓지 않으려 한다. 그에 반해 희망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듯 능청 떠는 영화도 있다. 이혼한 전처와 딸에게로 돌아가려는 남편의 노력을 부조리하게 묘사하는 파블로 스톨의 <3>(2012)은 되려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냐며 따지듯 냉소적인 웃음을 유발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부산영화제가 중남미 영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까닭에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작품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모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영화, 그것도 문제작에 가까운 작품들이 모두 근래 제작된 것을 감안하면 왜 우리가 지금 중남미 영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가 설명된다.
marie claire
부산국제영화제 특별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