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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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는 2012년 1월 8일부터 일본의 케이블방송 WOWOW를 통해 방영된 5부작 드라마다. <고백>으로 유명한 미나토 카나에의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일본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구로사와 기요시가 <도쿄 소나타>(2008) 이후 4년 만에 연출을 맡았다. 하여 <속죄>는 드라마이지만 영화적인 느낌이 물씬하다. 60분 분량의 각 에피소드가 독립된 형태를 띠며 (아오이 유우, 카세 료, 이케와키 치즈루, 가가와 데루유키 등 일본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각 에피소드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종국엔 하나로 모아지는 것이다.   

이야기는 15년 전 어느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도시에서 전학 온 에미리와 동네 토박이 사에, 마키, 아키코, 유카는 절친한 사이다.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던 중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에미리가 끌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에와 마키, 아키코와 유카는 사건의 목격자이지만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에 에미리의 엄마 아사코는 아이들에게 책임을 전가, 평생을 속죄하며 지내라고 증오를 퍼붓는다. 15년 후, 공소시효 마감을 앞두고 아사코는 이들을 차례차례 찾아간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소통부재가 낳은 일본 사회의 비극을 공포물로 묘사해온 감독이다. <큐어>(1997) <회로>(2001) 등 에서 일본인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공포의 원인을 소통부재에서 찾았다. 전작 <도쿄 소나타>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가부장의 권위를 지키려는 가장의 일방적인 소통이 지금의 비극을 초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속죄>에 이르러서는 기성세대의 원죄가 다음세대로 이어져 더 나은 미래는커녕 이들을 수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개탄한다.

실제로 구로사와 기요시는 “일본의 기성세대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들은 도무지 소통하려 들지 않는다”는 요지의 말로 답답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원작소설에서 아사코는 물론 성장한 네 명의 주인공들이 속죄의 의미를 깨달으며 좀 더 밝은 미래를 담보했다면 드라마는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무능함을 좀 더 부각하는 쪽을 택한다. 아사코가 에피소드의 마지막 편을 장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는 속죄의 의미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리어 죽은 에미리에게 구원을 갈구하며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속죄>는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이지만 결코 우리와 무관한 설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폭행이 자행되고 사후약방문처럼 졸속으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작금의 우리네 현실이 <속죄>와 다르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가한 트라우마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우리는 이에 대한 논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다. 그만큼 <속죄>는 문제작이다.

부산일보                                                                                                                                                   (201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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