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명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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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원 감독은 늦은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가정주부의 가정과 일 사이의 고군분투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레인보우>(2010)를 통해 장편 데뷔했다. <명왕성>은 그의 두 번째 영화다. 제목만 봐서는 <레인보우>의 감성과 연장선상에 있는 듯 하지만 이 영화에는 긍정적인 기운이라고 할 만한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동안 신수원 감독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입시경쟁이 치열한 한 고등학교에서 엘리트 학생으로 촉망받는 유진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공부했던 준이(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극 중 윤정희의 손자 로 출연했던 이다윗이 연기했다.)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준이는 자신을 용의자로 몬 아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전교에서 상위 1%에 해당하는 우등생들이다. 성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마다않는 이들이 유진과 준이는 물론 그들 자신마저 파멸로 이끈 것이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모는 한국의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의 제목이 왜 <명왕성>이냐고?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된 이유는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멀고 행성이라고 하기에 너무 작은 크기 때문이란다. 그에 착안, 성적 우수생이 아니면 재능 여부에 상관없이 낙오시키는 우리네 교육 현실을 명왕성의 퇴출 배경에 빗대 비판하는 것이다. 사실 신수원 감독은 이 영화를 구상하면서 밝은 분위기의 코미디를 염두에 뒀다. 하지만 아이들이 토끼사냥처럼 입시에 희생당하는 뉴스를 접하면서 비극의 형태로 바꿨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그 자신이 교사 출신으로 교육의 일선에 있었던 신수원 감독은 다만 이 영화가 계몽적이거나 비판조로 비추는 걸 원치 않았다. 유진의 사망을 초반에 배치한 뒤 준이의 시선에 따라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미스터리 구조를 취하는 건 영화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꽃중년’으로 각광받는 배우 조성하를 형사 반장 역에 캐스팅한 것도 바로 이 때문. 그런데 <화차>에서 전직 형사 출신으로 조카의 실종된 신부를 찾는데 적극적이었던 조성하는 <명왕성>에서 아이들의 폭주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반장을 연기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극 중 해당 학교의 교장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외부로 새나가지 않는 것에 골몰할 뿐 아이들의 고민에 귀 기울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결국 영화는 이들 캐릭터를 통해 지금의 입시경쟁과 같은 문제는 어른들의 무관심과 무능함에서 비롯됐다는 걸 꼬집는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아이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고, 이를 해결해야 할 어른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회에 과연 희망이 존재할까? 지금 한창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명왕성의 지위복권을 위한 규명운동이 한창이다. <명왕성> 또한 아이들을 입시괴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교육 정상화가 이뤄져야한다고 촉구한다.

부산일보                                                                                                                                       (201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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