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영화의 위대한 거장 3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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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영화는 1930~40년대 당시 관객 감소를 우려한 미국의 스튜디오들이 한 번에 두 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동시상영을 기획하면서 나온 용어입니다. 메이저에서 잘 나가는 감독과 배우를 고용해 만든 A영화와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고 한물간 스타나 신인배우를 기용해 만든 마이너한 영화를 하나로 묶으면서 B영화는 졸속 제작한 작품이라는 인식을 관객들에게 심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한 독점금지법과 컬러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선호로 인해 전통적인 개념의 B영화는 오래지 않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로저 코먼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B영화라고 소개하는 매스컴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리처드 플레이셔와 로저 코먼, 테렌스 피셔는 B영화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아버지가 애니메이터였던 리처드 플레이셔는 어려서부터 영화와 가까운 삶을 보냈습니다. 경력 역시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시작했는데 실사영화 데뷔는 1942년 RKO스튜디오에서 이뤄졌습니다. 단편과 다큐멘터리 위주로 작업하던 플레이셔는 1946년 필름느와르 <보디가드>로 첫 번째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습니다. 1954년 디즈니에서 <해저 2만리>를 연출하며 대작영화에 능한 감독으로 알려졌고 <바디 캡슐>(1966) <코난2-디스트로이어>(1984)처럼 특수효과가 필요한 영화에서 장기를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의 진면목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은 <강박충동>(1959) <보스턴 교살자>(1968) 등과 같은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다큐멘터리 경력을 살린 연출은 서구 사회의 도덕적 불안과 공포의 그늘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입니다.

20세기 폭스사의 문서배달사원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로저 코먼은 스토리 분석가를 거쳐 직접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상의 마지막 여인>(1960) <흡혈식물대소동>(1960) <X-레이맨>(1963) 등 당시 싸구려 취급을 받던 SF나 공포물을 만들면서 ‘B영화의 제왕’이라는 호칭을 얻었습니다. 극도의 저예산과 1~2주에 불과한 제작기간의 한계를 즉흥의 아이디어로 극복한 것이 특징. 이는 마틴 스콜세지, 피터 보그다노비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몬티 헬먼 등의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50편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고 250편에 가까운 영화를 제작했으며 그중 280편 넘게 수익을 남겼습니다. 조너선 드미는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위대한 독립제작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평가했고 그의 말처럼 로저 코먼은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15살부터 선원생활을 시작한 테렌스 피셔는 바다에 인생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그동안 영화에 재미를 느낀 그는 스물여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셰퍼드스튜디오의 편집조수로 취직, 20년 가까이 편집기사로 근무했습니다. 연출 데뷔는 1947년, 마흔 셋의 나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코미디물이었던 <보기 대령>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고 이후 다양한 B급영화를 만들다 해머필름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저주>(1957)를 발표하며 비로소 재능을 꽃피웠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웠던 폭력 묘사, 특히 원색이 강조된 세트의 강렬함이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해머의 대표감독, 아니 공포물의 거장으로 떠올랐습니다.

리처드 플레이셔와 로저 코먼과 테렌스 피셔는 영화 역사상 가장 오락적이면서 가장 막나가는 영화를 만든 감독들로 유명합니다. 저예산 졸속의 B급이 아닌 메이저에서 허용하지 않는 지구상에 단 하나뿐인 상상력과 자유로운 제작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영화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영화팬들의 열띤 환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각자의 개성도 뚜렷합니다. B영화라는 범주로 공통점을 가질 뿐 작품의 성격은 전혀 다른 지점을 향하는 것입니다. 리처드 플레이셔는 특수효과가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다 뒤로 갈수록 서구사회의 이면을 건드린 테마로 주목받았다면 로저 코먼은 메이저에서 독립한 영화가 가져야 할 창조적인 연출과 흥행에서 손해 보지 않는 제작방식을 확립했습니다. 또한 테렌스 피셔는 익숙한 괴수물을 가져와 자극적인 소재와 충격적인 연출을 가해 독특한 영화적 기운을 창조하며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후대에 미친 영향도 막대해서 <닥터 두리틀>(1967) <레드 소냐>(1985) 등 리처드 플레이셔의 많은 작품이 현대에 리메이크되어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로저 코먼의 경우, 그를 통해 영화를 배웠던 마틴 스콜세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잭 니콜슨 등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미술과 세트가 돋보이는 테렌스 피셔 영화의 특징은 현대 공포물에서 공통적으로 두드러진 요소이기도 합니다.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4월 프로그램으로 ‘B영화의 위대한 거장 3인전: 리처드 플레이셔, 로저 코먼, 테렌스 피셔’를 상영합니다. 4월 9일부터 5월 8일까지 한 달간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주류 할리우드와는 다른 불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소위 B영화의 진가를 확인할 좋은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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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영화의 위대한 거장 3인전
(2011.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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