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맨>(An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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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맨>은 마블 ‘영화사’가 제작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2기의 마지막 작품이다. (3기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로 포문을 열 예정이다) 또한, 마블 코믹스가 원작인 영화에서 첫선을 보이는 슈퍼히어로다. 그래서 재밌느냐고?

비슷한 시기에 (마블 영화사가 아닌) 20세기 폭스사가 또 하나의 마블 코믹스를 영화화한 <판타스틱 4>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재밌다. 캐릭터는 다르지만, 똑같이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면서도 <앤트맨>과 <판타스틱 4>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낸 이유는 무엇일까?

우주에 이어 마이크로 세계까지

스콧 랭(폴 러드)은 전직 해커다. 악덕 기업의 정보를 해킹해 골탕을 먹였다가 감옥에 다녀왔다. 무직 신세가 된 그는 친구들의 꾐에 빠져 부호의 금고를 털 모의를 한다. 철재 금고문을 따는 데 성공, 문을 열자 그곳에는 짜잔! 거액 대신 딸랑 슈트와 헬멧만이 놓여 있다. 이것이라도 챙기자며 몸에 착용한 순간, 스콧은 개미(Ant) 크기로 줄어든다. 때마침 헬멧으로 들려오는 의문의 목소리. “자네 ‘앤트맨’이 될 생각 없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행크 핌(마이클 더글라스). 몸을 자유자재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핌 입자를 개발한 과학자다. 그는 오랫동안 핌 입자의 성공 여부를 비밀에 부쳐왔다. 악용될 경우, 세계평화가 손상될 소지가 다분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가 키웠던 제자가 이 사실을 눈치채면서 또 다른 핌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핌은 이를 막기 위해 스콧에 주목하고 스콧은 핌의 제안을 받아들여 앤트맨이 되기로 결심한다.

<앤트맨>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뉴페이스’이면서 새로운 세계로의 확장이다. <어벤져스>의 히어로들이 지구를 수호하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무법자들이 우주를 누볐다면 <앤트맨>의 스콧은 마이크로 세계를 점령한다. 앤트맨 슈트를 입은 스콧이 하늘을 나는 개미를 비행기로 불개미들을 공병대로 삼아 열쇠 구멍을 넘나들고 좁은 하수관을 돌격하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애들이 줄었어요>(1989)가 떠오른다. <앤트맨>의 부제를 붙이자면, ‘슈퍼히어로가 줄었어요.’

실제로 <앤트맨>은 가족 코미디를 지향하는 <애들이 줄었어요>를 슈퍼 히어로 버전으로 바꾼 듯하다. 앤트맨이 개미 크기로 줄었을 때 그의 눈에 비친 장난감 열차는 고질라만큼이나 거대하고 위협적이다. 그런 상황에서 <앤트맨>의 카메라는 중간중간 실제 세상의 크기로 이를 비춘다. 갑작스러운 시선의 변화에 따른 그 우스꽝스러운 광경이란,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수준이다.

볼거리가 화려한 <어벤져스> 시리즈와 스케일이 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비해 <앤트맨>은 귀엽고 깜찍하다. <앤트맨>이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지향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무능력하다는 이유로 부인에게 이혼당하고 딸조차 함께 할 수 없는 스콧에게 앤트맨의 활약은 아빠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일종의 생계형에 가까운 슈퍼히어로의 사연을 다룬 <앤트맨>은 결국 잃어버린 자신의 자리를 찾는 이야기다.

그것이 어디 피를 나눈 가족에게만 해당할까. 마블 코믹스 원작에서 앤트맨은 어벤져스의 오리지널 멤버였다. 행크 핌 박사는 스콧 랭에 앞서 1대 앤트맨으로 활약하며 헐크, 토르 등과 함께 어벤져스를 결성했다. 그와 다르게 영화는 어벤져스 멤버가 소속된 국제평화유지기구 쉴드와 대립각을 세운 핌의 사연을 강조한다. 대신 2대 앤트맨 스콧이 어벤져스와 힘을 합칠 것이라는 암시를 드러내며 튀는 구석 없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서사로 녹여낸다.

<판타스틱 4>에는 없고 <앤트맨>에는 있는

원래 <앤트맨>의 연출을 맡았던 이는 <뜨거운 녀석들>(2007)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의 에드가 라이트였다. 원작의 열렬한 팬이었던 에드가 라이트는 마블 영화사에 먼저 이 작품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치며 시나리오 작업은 물론 캐스팅까지 진행했다. 그는 스콧의 사연에 집중한 지금의 <앤트맨>과 다르게 핌에 초점을 맞춰 각색 작업에 들어갔다. ‘<앤트맨> 비긴즈’를 구성한 셈인데 이는 마블 영화사가 원한 그림이 아니었다.

아니나 달라, 에드가 라이트는 촬영을 앞두고 ‘창작의 견해 차이’를 이유로 <앤트맨>에서 하차했다. (에드가 라이트는 프로듀서와 시나리오 작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이 프로젝트에 무려 5년의 세월을 바친 에드가 라이트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마블 영화사가 감독의 개인적인 감정을 고려할 만큼 너그러운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마블 영화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인크레더블 헐크>(2008)에서 배너 박사를 연기한 에드워드 노튼과 <아이언맨> 1편과 2편의 존 파브로 감독이 창작권을 주장하다가 하차 된 일화는 유명하다.

마블 영화사의 야망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수천 개가 넘는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절대 끝이 나지 않을 시리즈를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모을 계획이다. 그런데 감독이 원하는 아이디어를 받아준다? 그랬다가는 방대한 마블의 세계관을 통제하기가 힘들어진다. 핌 박사와 같은 ‘늙다리’를 전면에 내세웠다가는 젊은 슈퍼히어로들이 주축이 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균형이 깨질 것은 자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마블 영화사의 선택은 단호했다. ‘감독이 말 안 들어? 그럼 잘라!’

에드가 라이트에 이어 <앤트맨>의 메가폰을 이어받은 감독은 페이튼 리드다. 이 이름을 듣고 떠오르는 영화가 있나? <예스맨>(2008) 정도가 알려진 축에 속하지만, 짐 캐리가 출연한 작품으로 더 많이 기억된다. 그동안 마블 영화사에서 작품을 만들었던 이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여전히 생소한 이름이 많다. 앨런 테일러가 어떤 영화의 감독인지 아시는 분? 별로 없을 것이다. (정답은 <토르: 다크 월드>(2013)다.) 마블 영화사는 인지도가 높지 않고 제작사의 요구를 잘 받아들일 감독을 선호하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안정되게 이끄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20세기 폭스사는 마블 코믹스가 영화 사업에 뛰어들기 전 <엑스맨>과 함께 <판타스틱 4>의 판권을 사들이면서 슈퍼히어로 영화화 경쟁에 뛰어들었다. <엑스맨> 시리즈는 여전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판타스틱 4>(2005)는 예전에 한 번 심하게 말아먹은 적이 있다.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승승장구를 지켜본 20세기 폭스사는 그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마블 코믹스 최초로 팀 개념을 도입한 <판타스틱 4>의 리부트를 결정했다.

야심 찬 행보에 걸맞게 감독으로 발탁한 이는 <크로니클>(2012)로 실력을 인정받은 조쉬 트랭크. 그는 <크로니클>에서처럼 10대들이 초능력을 갖게 됐을 때 겪는 혼돈을 바탕으로 <판타스틱 4>를 만들겠다며 기세등등했다가 원작 팬의 비난에 직면했다. 가족 드라마의 요소가 큰 원작을 해칠 우려가 있고 백인으로 설정된 휴먼 토치를 영화에서는 흑인으로 변경한 것에도 불만을 드러냈다. 조쉬 트랭크와 영화 팬들의 설전이 이어졌고 그 불똥이 20세기 폭스사와 감독 간의 설전으로 번졌다. 영화는 원작의 정수를 살리지도 못하고 감독의 세계관이 제대로 반영되지도 못한 작품으로 전락했다.

<판타스틱 4>는 제작사가 감독을 적절히 견제하지 못할 때 거대한 프로젝트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그에 반해 <앤트맨>은 기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코믹한 슈퍼히어로, 가족 친화적인 마블 영화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에드가 라이트가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결과적으로 마블 영화사의 판단은 옳았다. <판타스틱 4>도 어서 빨리 마블의 품으로 돌아와 코믹스의 명성에 걸맞은 영화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시사저널
(20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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