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영화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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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time-sleep, 종종 ‘타임 트래블 time travel’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소재의 작품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타임 슬립은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뜻으로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을 일컫는다.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21세기의 서울로 날아온(?) 왕세자 이각(박유천)의 이야기를 다룬 SBS드라마 <옥탑방 왕세자>가 인기를 얻자 방송국들은 너도나도 타입 슬립 열풍에 가세했다.

각광받는 타임 슬립

부적 한 장으로 2012년으로 오게 된 조선시대의 교리 김붕도(지현우)가 우연히 드라마에서 인현왕후 역할을 맡은 희진(유인나)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tvN의 <인현왕후의 남자>가 그 뒤를 이었다. 그러자 MBC는 천재의사로 평가받는 진혁(송승헌)이 1860년대의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닥터 진>으로 맞불(?)을 놓았다. <옥탑방 왕세자>로 재미를 본 SBS는 극 중 시대를 더욱 앞당겨 고려 시대의 무사 최영(이민호)과 현대의 여의사 은수(김희선)가 만나는 <신의>를 8월부터 방영할 예정이다.

드라마와 달리 한국 영화들은 아직 타입 슬립 소재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해외영화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는 형국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맨 인 블랙 3>와 곧 국내 개봉을 앞둔 우디 알렌의 <미드나잇 인 파리>가 그것. <맨 인 블랙 3>는 외계의 침공으로 지구가 위기를 겪자 이를 막아볼 목적으로 제이(윌 스미스)가 1969년으로 돌아가고, <미드나잇 인 파리>의 소설가 길 펜더(오웬 윌슨)는 약혼녀와 파리에 왔다가 매일 밤 12시 그의 앞에 홀연히 나타난 클래식 푸조를 타고 1920년대로 가게 된다.

직접적인 타임 슬립은 아니지만 시대 자체를 주인공처럼 다루며 관객을 향수에 젖게 만드는 영화들도 이 목록에 넣을 만하다. 이미 지난해 강형철 감독의 <써니>는 중년의 여고 동창들이 1980년대의 학창시절을 회상한다는 내용으로 8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 문화계 전반에 복고 열풍을 불러온 적이 있다. 올 상반기에 히트한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의 경우, 30대 중반의 남녀 주인공이 대학 새내기 시절의 사랑을 추억하며 한국 대중문화가 크게 관심 갖지 않던 1990년대를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타입 슬립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는 경우는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최근 시간 여행을 다룬 한 편의 영화가 큰 인기를 모았더랬다. 고대 로마의 목욕탕 설계사가 욕조의 수수께끼 구멍을 통해 현대 일본을 오가는 설정의 <테르마이 로마이>(야마자키 마리의 원작만화는 국내에도 출간되어 있다!)가 50억 엔 이상의 흥행 수입을 올린 것. 즉, 국가를 막론하고 큰 관심을 모으는 타입 슬립은 누구나가 좋아할 만한 소재다. 같은 이유로 이미 오래 전, 그러니까 1895년 영국의 소설가 H. G. 웰스가 <타임머신>으로 시간 여행이란 소재를 처음으로 대중화한 이래 타임 슬립은 시대에 상관없이 언제나 사랑받는 장르였다. 

타입 슬립의 재미

타입 슬립 소재가 보는 이들의 재미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유는 시간의 분열이 일으키는 당연한 개념에 대한 ‘비틀림’이 내러티브의 기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은 “시간의 연속성은 컨트롤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 불가능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상상력이다. 절대적인 상황에서의 분열, 다시 말해 시간의 연속성에 오류가 발생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흥미를 끈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야기의 원천이었다.”며 시간 여행 이야기가 매혹적일 수밖에 이유를 설명한다.

실제로 타임 슬립 장르물들은 하나같이 시간 여행을 통한 ‘문명의 충돌’ 에피소드를 극 전면에 배치, 보는 이로 하여금 극의 몰입을 손쉽게 유도한다. 예컨대, <옥탑방 왕세자>의 이각이 현대의 서울로 넘어와 과거에 그 자신이 기거하던 창덕궁 대문 앞에서 “이리 오너라, 걔 누구 없느냐?”며 호통 치는 장면, 또한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흑인’ 스타 윌 스미스가 분한 <맨 인 블랙 3>의 제이가 1969년 7월 15일로 돌아가 자가용을 몬다는 이유로 흑인 비하를 당하는 장면 등은 극 중 인물들이 겪는 절심함과는 달리 시간대의 모순이 주는 설정으로 웃음을 참기 힘든 것이다.

문명의 충돌에서 재미를 느끼는 시청자 혹은 관객들의 무의식에는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한 극 중 인물들의 의외의 반응에서 깨닫게 되는 각성 같은 것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장근영은 ‘사고 실험’이라는 표현을 쓴다. “시간대를 바꿈으로써 현재를 재발견하고, 일상을 재조명할 수 있다. 가령, 지금의 우리에게 평범한 행동이나 물건들이 과거의 시간대로 옮겨가면 그 시대에는 기적과 같이 엄청난 것일 수 있다.” <닥터 진>이 다루는 내용이 바로 이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12회가 진행된 현재, <닥터 진>의 진혁은 페니실린 부작용에 대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난처한 처지에 몰린다. 하지만 그의 의술은 이미 가망성 없는 환자들을 차례로 살려내 명성을 얻은 뒤다. 지금이야 항생제가 보편화된 시대지만 진혁이 떨어진 1860년대의 조선에는 염증을 치료하는 페니실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50년이 더 지난 이후인 1910년대에야 개발되는 페니실린을 가지고 진혁은 종양 제거 수술로 염증에 걸린 조씨 부인(장영남), 화상을 입은 영래(박민영)를 치료하며 기염을 토하는 것이다. 다만 진혁은 시대를 앞서간 의술을 행한 까닭에 뒤바뀌게 될 역사가 두렵기만 하다. 우리는 때로 과거의 원인에 간섭을 가해 현실의 결과를 바꾸고 싶다는 욕구를 갖곤 한다. 하지만 대개는 역사라는 만고불변의 개념 앞에서 기원(起原)에 다가가고 싶다는 욕망을 더 크게 느끼는 법이다.   

기원을 찾아서

사실 <닥터 진>은 무라카미 모토카의 만화가 원작이다. 2009년 일본 TBS에서 동명의 제목으로 시즌1이, 2011년 시즌2가 방영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현대에 살던 의사 미나카타 진(오오사와 타카오)이 우연한 계기로 메이지 유신을 막 앞둔 막부시대의 말기에 떨어져 좌충우돌한다는 설정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두 드라마가 갖는 변화의 지점은 역사를 다루는 태도에 있다. 한국의 <닥터 진>은 페니실린의 발견에 따른 역사적 사실을 변용해 극적인 드라마를 이루는 반면 일본은 고증에 충실하며 정확한 역사 재현에 더 공을 들인다.

일본의 <닥터 진>을 두고 심리학자 장근영은 “새로운 방식의 역사 교육”이라고 말한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타입 슬립이라는 좀 더 유연하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역사 교육 차원에서 가르친다는 것이다. (❶ 참조) 한국의 진혁이 현대에서나 과거에서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일본의 미나카타 진은 그저 열심히 일하는 의사로 설정된 것도 그런 의도의 차이를 반영한다. 하여 과거로 미끄러지는 타입 슬립 소재의 작품들이 선호하는 시간대는 대개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로 설정된다. 

역사적 사실이 배경으로 설정되면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야기 만들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자료 수집은 물론 이야기를 구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해진다는 기능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드라마 제작 환경이 열악한 한국에서 사극이 선호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역사를 향해 간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기원과 맞닥뜨리는 간접체험과 다르지 않다. 일본의 <닥터 진>처럼 일본의 발전적 지금을 가능케 한 메이지 유신을 재조명하기도 하고 <맨 인 블랙 3>처럼 유일한 달세계로의 여행이었던 1969년 7월 15일로 돌아가 우주 강국의 위용도 뽐내고 ‘황금시대’로 명명되는 미국문화의 호시절을 추억하기도 한다. 

좀 다른 사례지만, 리들리 스콧이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에이리언>(1979) 그 이전으로 돌아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리들리 스콧 그 자신은 두 작품이 별개라고 말했지만 (‘에이리언’ 시리즈의 타입 슬립이라 할 만한) <프로메테우스>가 공개된 지금 <에이리언>의 프리퀄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SF크리처물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3편의 속편을 거치고 <에이리언vs프레데터>와 같은 멍청한 스핀 오프로 몰락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리들리 스콧의 심정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시리즈의 창조자로서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프로메테우스>라는 기원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인류 기원의 충격적 비밀이 밝혀진다’는 포스터의 태그가 의미심장하다.)

타입 슬립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

타입 슬립의 유행은 역으로 현실의 ‘어떤 것’의 부재를 반영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임 슬립이 시간의 분열을 전제하는 것처럼 시간 여행물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세대 간의 분열(?)이 자리 잡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닥터 진>이 역사에 도통 관심을 갖지 않는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기성세대의 방편인 것처럼 지금 한국에도 서로 융화하지 못하는 세대 간의 골이 무척이나 깊은 편이다. 문화 쪽으로 한정해 보자면 지금 한국은 격변기에 놓여있다.

일단 199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 보자. 가요계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혜성처럼 나타나면서 비주얼이 동반된 댄스뮤직 일색으로 재편됐고, 영화계는 기획영화의 등장과 대기업 자본의 유입으로 능력 있는 신인감독, 신인프로듀서들이 대거 발굴됐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X세대라는 신인류였다. 지금의 상황이 그때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이돌이 점령한 K팝 신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사로잡았고, 작가영화를 통해 세계적으로 발돋움한 충무로는 지금 산업논리에 입각한 맞춤형 영화들로 압도적인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❷ 참조)

한마디로 문화적 ‘포텐’이 대폭발을 이뤘지만 워낙 젊은 세대 위주로 소비가 이뤄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에서 소외되고 도태되는 세대가 등장했다. 영화감독 이해영은 이런 관점에서 <건축학개론>의 흥행을 흥미롭게 분석한다. “새로운 아이템이 쏟아지고 있지만 특정 세대에게만 소구되는 까닭에 어느 세대에게는 공란처럼 남겨진 지점이 생겼다. 바로 그 지점에서 <건축학개론>이 CD, 무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으로 대변되는 1990년대 문화를 끌어들여 3040세대의 소외된 감성을 직접적으로 건드렸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건축학개론>의 흥행 배경에는 현대의 첨단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를 ‘황금기’로 기억하는 기성세대의 노스탤지어가 밑바닥에 흐른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에 대한 굉장히 사려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프랑스로 여행 온 소설가 길은 파리의 낭만을 음미하려는 자신과 달리 화려함만 즐기려는 약혼녀가 못마땅하다. 그러던 차 밤 12시면 나타나는 클래식 푸조를 타고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피카소와 같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란!

그렇게 우연히 피카소의 애인인 아드리아나(마리옹 꼬티아르)와 사귀게 되지만 그녀는 길과 달리 1890년대를 동경한다. 이에 1920년대야말로 황금시대라며 열변을 토하는 길에게 아드리아나는 이렇게 얘기한다. “당신이 여기 살면 여기가 현실이에요. 그럼 당신은 또 다른 세계를 동경하게 되겠죠.” 이처럼 타임 슬립은 사람들에게 현실 도피의 쾌감을 제공하지만 그 쾌감의 끝에서 깨닫게 되는 감정은 결국 현실에 대한 인정이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종국엔 현실을 살아갈 힘을 충전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장르는 존재의의를 갖는다. (<건축학개론>의 30대의 승민은 성숙하지 못했던 과거 첫사랑의 기억을 정면에서 응시한 후에야 성장을 이룬다.) 타입 슬립 소재의 작품들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사랑받는 이유다.  

❶ 타임 슬립과 페이스북의 타임 라인의 관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우리가 비디오를 쉽게 사용하게 되면서 시간에 대한 조망이 바뀌었다’는 요지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비디오(지금은 DVD)의 뒤로 감기, 빨리 감기를 통해 시간을 유연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또한 게임이 활성화된 지금, 게이머들은 같은 사건을 수백 번 반복하는 것에 익숙하다. 페이스북은 또 어떤가. ‘타임라인’이라는 형태로 개인의 역사를 쌓아가는 구조다. 그럼으로써 과거에 자신이 무엇을 했고 어디에 있었고 누군가와 함께 있었는지 등등을 마우스로 바를 끌어내리기만 하면 쉽게 찾아보고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쓴 게시물은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반영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시간의 가변성에 대해 직접 체험하고 그럼으로써 공감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닥터 진>처럼 타입 슬립 소재의 작품이 역사 교육 차원에서 기능할 수 있는 것도 시간을 뒤집어보고 꺾어보는 것에 익숙한 지금 젊은 세대들의 성향을 충분히 고려한 인식 기반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❷ 빅뱅, 또 하나의 신인류?

이해영 감독은 빅뱅을 일러 “전혀 새로운 인종”이라고 표현한다. X세대와는 또 다른 신인류가 출연했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 세대의 문화 아이콘이었던 H.O.T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가 지나간 그 자리에서 기획되고 소비된 느낌인 것에 반해 빅뱅은 전혀 다른 베이스를 갖고 있다. 피나는 양성을 받기는 했지만 그들은 기획된 아이돌이라는 느낌 대신 창의력과 자유로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고(思考)를 맘껏 과시한다는 것이다. 이해영 감독은 그와 같은 맥락에서 <써니>의 특정장면이 관객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써니>가 7~8년 전에 만들어졌다면 굉장히 논쟁적이었을 거다. 특히 거리 시위 장면 같은 경우, 운동권 세대에 대한 모욕이라고 여겨졌을 거다. 그것이 최근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불경해 보이지 않고 재미로 소비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빅뱅과 같은 신인류가 이끄는 첨단의 문화 앞에서 운동권 문화마저도 추억할 수 있는 작금의 분위기는 우리 사회가 문화에 있어서만큼은 유연성을 갖게 되었다는 중요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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