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로 돌아선 뤽 베송의 요즘 행보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서브웨이> <레옹> 등으로 독특한 프랑스만의 상업영화를 만들었던 그가 이제는 태생만 프랑스일 뿐 할리우드 영화로 보아도 무방한 범작들을 대거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13구역>도 그렇기 한데, 다행히 이전의 ‘뤽 베송 제작’의 실망스런 영화들에 비해 재미를 느낄 만한 구석이 있다.
파리의 13구역. 이곳은 정부도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부패로 얼룩진 도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마약으로 악의 세력을 늘려가는 독재자 타하(비비 나세리)에 맞서 우리의 주인공 레이토(데이비드 벨)는 강력한 액션을 앞세워 이 도시를 구하려 한다. 그러나 음모에 빠진 레이토는 다미엔(시릴 라파엘리)과 짝을 이뤄 도시 수호에 나선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국내에는 ‘야마카시’로 잘못 알려진 ‘파쿠르’가 보여주는 몸을 사리지 않는 생짜 액션의 쾌감이다. 익스트림 스포츠의 일종인 파쿠르는 주변의 지형을 이용한 액션이 그 특징이다. 맨몸으로 지붕을 뛰어다니고, 높은 점프력을 이용해 방해물을 넘으며, 벽을 발판삼아 가볍게 담을 넘는 파쿠르의 리얼 액션은 <옹박>을 연상시킨다.
그렇다. <13구역>의 액션은 <옹박>의 토니 쟈가 보여준 무에타이와 겹친다. 분명 무에타이와 파쿠르는 동양무술과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차이가 있지만, <13구역>의 데이비드 벨이 보여주는 무릎치기는 <옹박>을 참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파쿠르가 무기로서 기능이 없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무에타이와 같은 동양무술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해는 마시길! 파쿠르가 무에타이의 하위 장르에 속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파쿠르를 이용한 <13구역>은 영화의 성격에서부터 액션의 합을 가르는 설정과 이를 보여주는 구도까지 많은 부분을 <옹박>에서 빌려와, 자기 것인 양 행동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장르를 빌려와 참조만 한 듯 태도를 취하면서 실은 그 장르의 속성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 <제5원소>에서 시작해 <밴디다스>까지 이어지며 증명된 뤽 베송의 전략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보다 남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살을 붙이는 뤽 베송. ‘제작자 뤽 베송’의 영화가 조금씩 재미없어지고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06. 8. 16. <스크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