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Between Love And Hate)


<파이란>에서 증명되었듯 김해곤의 시나리오는 그 대상이 낮은 데로 임할수록, 그 상황이 막장으로 몰릴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그가 이번에 감독까지 맡아 보여주는 이야기는 철없는 남자와 파란만장한 룸살롱 아가씨, 그리고 이들 간에 벌어지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혹은 ‘사랑, 그 끊을 수 없는 무거움’이다.

어머니의 식당 일을 도와주고 있는 영운(김승우)에게 어느 날 연아(장진영)가 찾아온다. 평소 그를 점찍어 두고 있던 연아가 돌진하고 첫 만남부터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4년 후. 여전히 가벼운 연애를 즐기던 이들에게 위기가 닥쳐오니, 연아가 못마땅한 어머니(선우용녀)의 성화에 못 이겨 영운이 또 다른 애인 수경(최보은)과 결혼하는 것이다.

사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하 연애참)의 설정은 남녀의 삼각관계를 즐겨 사용하는 TV드라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그럴싸한 직업을 가지고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커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주변에서 쉬이 만날 수 있는 우리 이웃들에게 맞춰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연애참>의 배경이 되는 곳은 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멀찍이 보이는, 골목길 풍경이 어울리는 허름한 동네다. 그런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랑이라면 뭔가 정이 가는 구석이 있다. 전자계산기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는 사랑이 아닌 주판알처럼 실수가 용납되는, 미련하지만 인간적인 사랑. 감독이 영운과 연아의 사연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런 아날로그 사랑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사랑은 별 다섯 개의 호텔보다 반지하 월세방이, 달콤한 밀어보다 걸쭉한 욕 한마디가, 쿨한 이별사보다 머리채 잡고 늘어지는 막싸움이, 원 나잇 스탠드보다 몰래 숨어서 하는 불륜이 어울린다.

우리네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 <연애참>은 이를 보여주기 위해 관계보다는 그 정서를 만드는 데 더욱 치중한다. 그래서 영운과 연아의 사랑을 다루면서도 그에 못지않은 비중으로 주변 인물들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주인공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삶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한 까닭이다. <연애참> 속 인물들이 아무리 치졸하고 비겁한 짓을 하여도 악인으로 보이지 않는 건, 그들도 우리처럼 결점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인생이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보여도 이를 통해 느껴지는 정서와 감동만큼은 묵직하다.

이런 사람 냄새 묻어나는 이야기가 처음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을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이자 진짜배기 사랑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김해곤 감독은 데뷔작 <연애참>으로 2006년의 <우묵배미의 사랑>을 완성한 셈이다.


(2006. 8. 17.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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