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게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피터 잭슨, 게임을 만나다


지난 7월 11일 AP통신은 영화 <헤일로>와 관련, 흥미 있는 캐스팅 소식을 전했다. <헤일로>는 고대유적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벌어지는 가상 미래의 전쟁을 소재로 한 Xbox의 1인칭 슈팅게임.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헤일로>에 덴젤 워싱턴이 마스터 치프 역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덴젤 워싱턴이 제작을 맡은 피터 잭슨과 뉴질랜드에서 만나 영화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은 사실을 들었다.


<헤일로>와 관련한 추측성 보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헤일로>의 영화제작 발표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최고의 제작진으로 작품을 구성하겠다며 <반지의 제왕>, <킹콩>의 피터 잭슨에게 총 제작을 맡겼다. 곧이어 <비치>의 원작자이자 <28일 후>의 시나리오 작업을 한 알렉스 갈란드가 각색에 참여했고 <블레이드2>, <헬보이>를 연출한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으로 내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헤일로>의 연출에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8월 9일자 Ain’s It Cool News에 따르면 <헤일로>의 연출은 닐 브로캄프(Neill Blomkamp)로 최종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덴젤 워싱턴의 출연 역시 앞으로의 진행상황을 지켜봐야 확실한 결과를 알 수 있을 듯하다. 


<헤일로>의 제작진과 출연진에 대한 추측성 보도가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있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슈퍼마리오>로 게임의 영화화가 본격 시작된 이후로 <헤일로>처럼 화려한 진용을 갖춘 예는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감독은 <던전 드래곤>의 커트니 솔로몬처럼 연출이 처음인 이거나 2류 감독 또는 <툼레이더2>의 얀 드봉처럼 재기를 노리는 한물간 인물이 맡았다. 배우도 마찬가지. 지명도가 떨어지거나 B급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가 타이틀 롤을 맡은 경우가 허다했다. 그도 아니면 밀라 요보비치와 같이 헐리웃 진출을 모색하는 배우 아닌 배우의 등용문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게임은 영화에서 명성에 걸 맞는 대접을 받은 예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편없는 작품성이 필연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헤일로>가 그와 같은 게임영화의 관행을 공격적으로 해체하기 시작했다. 제작자인 피터 잭슨을 필두로, 연출은 기예르모 델 토로와 같은 실력파 감독 중에서 물색한 전력이 있고 주연으로는 덴젤 워싱턴과 같은 A급 배우와 접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헤일로>는 연출도 들어가기 전에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며 흥행성이라는 한 마리 토끼를 잡았다. 하지만 작품성까지 두 마리 토끼를 손에 쥐기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이 존재한다.    



게임, 신천지인가 함정인가


이를 밝히기에 앞서 우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게임과 영화의 관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최근까지도 이 둘은 게임을 원작삼아 영화로 제작하는 ‘게임의 영화화’가 대부분이었다. <슈퍼마리오>, <스트리트 파이터>, <모탈 컴뱃>, <던전 드래곤>, <파이널 판타지>, <툼레이더>, <레지던트 이블> 등은 모두 아이디어 고갈에 빠진 헐리웃의 숨통을 터준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원작의 명성에 기댄 졸속 제작이 늘어나자 새로운 관계가 시도되기 시작하니 바로 ‘영화의 게임화’다. 2003년에 발표된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리로디드>는 영화의 개봉과 함께 동명의 게임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뒤를 이어 <스파이더맨>, <해리포터>가 영화의 게임화에 동참했고 올해만 해도 <다빈치 코드>, <엑스맨-최후의 전쟁>, <슈퍼맨 리턴즈>,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 등이 게임으로 제작되어 화제를 모았다.      


사실 게임과 영화의 첫 만남은 영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이 그 시초다. 컴퓨터 회로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영화사상 최초로 CG를 도입해 그린 디즈니의 1982년 작 <컴퓨터 전사 트론>이 바로 그것. <컴퓨터 전사 트론>의 이야기를 플롯으로 해 게임을 만들어 짭짤한 성공을 거두자 영화를 게임화 하는 추세는 IBM과 애플에 의해 유행처럼 번져갔다. 그 이유는 지금의 영화가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지점과 동일하다. 원작의 인기도와 검증된 이야기. 중요한 것은, 게임이 단순히 영화의 스토리를 차용해 게임화 하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날로 발전해가는 컴퓨터 기술은 영화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그래픽 화면을 창조했다. 영화의 촬영이 공간적인 제약과 기술력의 부족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에 반해 게임은 어느 각도, 어느 장소에서건 무리가 없는 카메라 워크를 실현했다. 영화의 이야기를 능가하는 탄탄한 시나리오로 화룡점정을 한 것은 물론이다. 


소재 고갈과 아이디어 부족에 시달리는 헐리웃에게 게임은 신천지였다. 그러자 영화가 게임에 손을 벌렸다. 결과는 알고 있는 그대로다. 좋지 않았다. 1993년 <슈퍼마리오> 이후 계속되는 실패 속에 2001년이 되어서야 <툼 레이더>, <레지던트 이블>만이 간신히 흥행에 성공하였고, 이마저도 작품성은 떨어지는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영화는 게을렀다. 원작의 명성에 기대어 게임을 모방할 줄만 알았지 그 이상 나아갈 생각은 없었다. 게임 팬의 한숨은 늘어갔고 영화 팬의 냉소는 깊어졌다. 오히려 영화감독들이 게임의 제작에 눈을 돌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헬레이져> 시리즈로 유명한 클라이브 바커 감독은 그런 최근 조류의 원조 격에 해당한다. 그는 2001년 이미 자신의 동명소설을 게임으로 제작한 <클라이브 바커의 언다잉 Clive Barker’s Undying>을 선보였다. 주인공 패트릭 갤러웨이가 죽음의 저택에 얽힌 음모와 비밀을 밝히기 위해 요괴와 싸우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 <언다잉>은 이야기, 그래픽, 액션, 사운드 4박자를 고루 갖춘 걸작으로 2001년 상반기 최고의 액션게임으로 명성을 얻었다.


5년이 흐른 지금, 그 수는 배로 늘었다. 스필버그는 2005년 10월 EA와 손잡고 3개의 오리지널 비디오 게임을 제작하기로 계약을 맺었으며 현재 첫 번째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다. 오우삼 감독은 지난 5월 LA에서 개최된 게임쇼 E3에서 주윤발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액션게임 <스트랭글홀드 Stranglehold>의 시연회를 가졌다. 자신의 홍콩시절 대표작인 <영웅본색>, <첩혈쌍웅>의 상징적인 액션도구들 – 쌍권총, 비둘기, 성냥개비, 성당 등 – 을 배경으로 한 1인칭 액션게임을 만든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조만간 게임 <더티 해리>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게이머가 된 스필버그


이들이 본업을 제쳐두고 게임에 투신(?)하고 있는 건 왜일까? 스필버그는 헐리웃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게임에 참여하게 된 주요한 이유에 대해, “게임이야말로 그 어느 매체보다 강력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며 “그러한 사실 때문에 매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의 기저에는 그동안 영화가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흡수하는데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그만큼 헐리웃이 창조력 고갈에 시달린 건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게임 원작의 영화는 그런 헐리웃의 치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였다.


그중에서도 스토리 허술의 문제는 심각하다. 영화는 게임의 스토리를 스크린에 알맞은 방식으로 이식하는데 실패했다. 일례로, 인기 롤플레잉 게임 <파이널 판타지>는 영화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인간마저 완벽하게 CG로 구현한 환상적인 비주얼로 높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에는 신경을 쏟지 않아 게임 팬의 된서리를 맞았다. 영화는 치밀한 각본 속에 구축된 <파이널 판타지>만의 방대한 판타지적 세계관을 스크린에 압축하는데 실패했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대부분 영화들의 주요 실패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슈퍼마리오>, <스트리트 파이터>처럼 구체적인 스토리가 없는 액션게임은 살을 붙이지 못해,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RPG 게임은 살을 줄이지 못한 것이다.


<헤일로>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할 최선책으로 보인다. 서두에서도 밝혔듯 <헤일로>는 1인칭 슈팅게임이다. <파이널 판타지>처럼 방대한 스토리를 밝히기 위해 게임이 구성된 것이 아닌 게임을 위해 스토리가 배경으로 등장할 뿐이다. 스토리가 게임의 재미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화되는 <헤일로>의 스토리는 작가가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 피터 잭슨은 비록 제작자로 참여하지만 헐리웃에서 가장 높은 창조력의 소유자다(그런 피터 잭슨의 장기를 살리기 위해 닐 브로캄프와 같은 신인감독에게 연출을 맡겼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거기에 1급 작가 알렉스 갈란드가 참여한 시나리오가 더해지면 평균치 이상의 스토리를 가능케 한다.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감독이 만든 이야기를 그저 객석에 앉아 감상하기만 할 뿐 이야기의 진행 상황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매체다. 게임은 그 반대다. 유저가 패드를 가지고 스토리에 적극 개입해 진행상황을 결정하는 쌍방향 매체다. 다시 말해, 게임을 영화화하는데 있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고민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 즉 게임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분을 스크린 속에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안드레이 바르코비악 감독이 연출한 <둠>의 1인칭 시점은 눈여겨봐야 할 실패 사례다. 아무리 영화가 게임의 시점을 그대로 차용한들 실시간에 관객을 영화 속 스토리 작가로 고용할 수는 없다. 게임의 매력이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영화만의 특징을 가지고 게임을 영화화할 필요가 있다. 피터 잭슨과 동반자 관계에 있는 웨타 스튜디오의 존재가 <헤일로>에 기대를 갖게 만드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영화가 게임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분은 큰 스크린과 실사화면이다. 웨타는 이미 <반지의 제왕> 시리즈, <킹콩> 등을 통해 이 두 가지를 십분 활용, 게임 CG와는 차별되는 그것으로 전 세계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헤일로>에서도 웨타의 장기는 빛을 발할 전망이다.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 그런 요소만이 게임을 뛰어 넘어 그동안 게임 영화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요, 최상의 수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게임영화를 원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바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헤일로>의 제작에 피터 잭슨을 끌어들였다. 지금까지는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들의 바람대로 영화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걸작 게임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2006. 8. 10. <스크린>)

2 thoughts on “영화는 게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 부디[둠]처럼 되버리지 않길…;; [블레이드2]를 보고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팬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헬보이]보고 마음을 돌렸어요. 이번엔 잭슨 엉아가 뒤를 봐 줄테니,뭔가 다르겠죵?

  2. 감독은 닐 브로캄프라는 초짜 신인이 맡기로 했데요. 아무래도 피터 잭슨이 자기 입김 넓힐려고 그런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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