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여인>(Woman On The Beach)


홍상수가 이번엔 ‘해변의 여인’을 맞이했다. 물론 그의 영화가 제목의 청량한 느낌처럼 낭만적일 리가 없다.


중래(김승우)는 후배 창욱(김태우)을 꼬드겨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중래의 목적은 후배의 애인 문숙(고현정). 눈이 맞은 중래와 문숙은 창욱의 눈을 피해 하룻밤 잠자리를 갖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중래의 마음이 하룻밤 새 바뀐다. 새 목표는 선희(송선미). 중래는 또 다른 해변의 여인과의 잠자리에 성공한다. 이를 안 문숙이 중래를 사이에 두고 선희와 신경전을 벌인다.


<해변의 여인>은 <생활의 발견> 이후 오랜만에 홍상수 영화 특유의 구조가 등장한다. 바로 상황별로 막을 나누는 것이다. 그 구조로 인해 관객은 동일한 인물이나 사건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뚜렷하게 볼 수 있는데, 이번엔 중래와 문숙이 시험대에 오른다. 남녀(혹은 여남) 2:1 구도에서 한 번은 선택하는 입장에 놓였다가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선택당하는 입장에 놓이는 것이 <해변의 여인>의 구조.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번의 잠자리를 위해 상황에 따라 달리 행동하는 이들의 치졸하고 위선적인 광경을 볼 수 있다. 여기에 홍상수 감독은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는 개를 등장시켜, 너희들의 사랑이 버려진 개를 거둬 키우다 싫증나면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냉소한다. 역시 홍상수! 이런 구조를 통해 남녀의 사랑을 비웃는 홍상수의 방식은 <생활의 발견> 이전의 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홍상수는 <해변의 여인>을 통해 다시금 동어반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개인의 성격만을 들여다보던 홍상수의 영화가 그 범위를 넓혀 남녀 집단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숙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던 중래와 창욱은 이후 다시 만나지 않는데, 이것은 창욱이 그의 패배(?)를 인정했거나 둘 사이가 멀어졌음을 암시한다. 그에 반해 중래 때문에 대립했던 문숙과 선희는 영화 막판에 이르면 관계를 회복하는 사이로 등장한다. 남성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여성들. 그저 잠자리 상대이거나 선택당하는 입장에 놓였던 여성 캐릭터가 <해변의 여인>에서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서 영화는 중래를 중심에 놓고 흐르다가 중반이 지나면 문숙을 주인공에 놓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동안 여성을 희생해가며 수컷들의 찌질한 모습에 집착하던 홍상수가 이번엔 암컷의 찌질한 모습에도 관심을 보인다. 중래를 차지하기 위해 난리를 피우며 온갖 못 볼꼴을 보이다가도 결국 그를 놓아주는 문숙의 행동에서 홍상수의 변화를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 변화가 나쁘지 않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에서 새로운 시도를 모색했던 홍상수 감독은 <해변의 여인>에 이르러 개인에서 집단으로, 무엇보다 남성에서 여성 캐릭터로 나아감으로써 긍정적인 변화를 이룬 셈.

여자는 홍상수 영화의 미래다!


(2006. 8. 16.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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