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Christmas in 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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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1998)가 재개봉한다. 요 근래 불어 닥친 추억의 영화 재개봉 열풍을 타고, 볼만한 로맨스 영화가 없는 가을 극장가의 틈새를 비집고 15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아온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모 극장 홈페이지에서 진행한 ‘다시 보고 싶은 명작’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한국 멜로영화사(史)에 있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영화다.

정원(한석규)은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노총각이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여자를 만날 생각을 하지 않는데 그것은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는 까닭이다. 그의 삶에 어느 날 스무 살의 주차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이 들어온다. 종종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러 오던 다림은 웃는 얼굴이 인상적인 정원에 남다른 감정을 품는다. 이에 세상과의 이별을 차분히 준비하던 정원은 마음속에서 커다란 동요가 일어난다.

사랑, 그 보편적인 감정을 다룬다고 해서 멜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보편적이기 때문에 특별한 멜로를 만든다는 건 그만큼 힘들다. 고작 좀 별난 커플이 등장한다든가 놀랄만한 우연이 만들어낸 사건이 이야기 자체를 특별하게 만들 뿐이다. 그에 반해 <8월의 크리스마스>는 정원이 아버지에게 비디오(이 영화의 개봉 시기가 1998년임을 잊지 말라!) 플레이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에피소드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특별한 멜로인 이유는 마치 사진을 찍듯 일상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예사롭지 않은 연출에 있다. 사실 일상은 지나가면 없어지는 것이지만, 바꿔 말해, 정원이 이 세상을 떠나도 일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되지만 정원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와 함께한 어떤 일상은 기억에서 잊지 못하는 추억이 된다. 그래서 그 어떤 일상을 포착하는 사진은 특별한 것이 되고 사진 속 일상은 그럼으로써 반영구적인 생명력을 얻는다.

정원의 극 중 직업은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과 인물을 사진으로 찍어 특별함을 부여하는 사진사다. 이를 영화의 바깥에서 지긋이 바라보는 이들은 허진호 감독과 (1998년 1월 16일 이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뇌출혈로 사망한) 고(故)유영길 촬영감독이다. 대개의 영화들은 극 중 인물이나 사건에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는 렌즈 안에 들어왔다 나가는 인물들을 그저 방관하듯 지켜보는 인상을 준다. 흘러가는 일상이 렌즈에 들어오는 순간 특별해지는 영화 속 사진의 의미가 고스란히 이 영화의 촬영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8월’과 ‘크리스마스’를 엮어 역설을 의도한 제목처럼 영화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기저에 죽음을 깔고 결국 죽음으로써 사랑을 찬양하는 아이러니로 멜로 영화의 관습에 충격을 가한다. 그런 맥락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의 캐스팅 역시 이런 역설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사실 멜로 영화는 관객들이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스타 배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장르다. 한석규와 심은하는 당대에 가장 잘 나가는 스타이자 배우였다. 어떻게 보면 일상이 중요한 이 영화와는 가장 거리가 먼 배우였던 셈인데 이들 각자에게 대표작이 되었을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보인 것이다.

이처럼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일상에서 특별함을 길어낸 허진호의 연출, 그에 부합하는 유영길의 촬영과 한석규, 심은하의 어깨에 힘을 뺀 연기, 그 삼박자가 빚어낸 멜로 영화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뭐, 이들 뿐일까.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박흥식 감독은 이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1) <인어공주>(2004) 등과 같은 수준급의 멜로 영화를 발표했다. 또한 <8월의 크리스마스>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던 작가 중 한 명이 거친 남자의 세계를 다룬 <킬리만자로>(2000)의 오승욱 감독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그런 점에서 새삼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개봉 15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맥스무비
(2013.11.5)

5 thoughts on “<8월의 크리스마스>(Christmas in August)”

  1. 제가 정말 조아하는 영화용허 감독님의 영환 그 후로도 빼먹지 않고 보려하는데 요고만큼 조은건 없더라구용 대학신입생때 봐서 그런가?? ㅎㅎ이 영화만큼은 대학신입생 때건 지금이건 느낌이 크게 다를것 같진 않지만~~ 😀

    1. 대학 새내기 때 보셨어요? 전 대학 졸업한 그 해에 봤어요 ㅋㅋ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네요 ^^; 허진호 감독님은 데뷔작에 너무 좋은 영화를 만들어서 그 후에는 오히려 그렇게 빛이 안 나는 것 같아요 ^^;

  2. 시간이 정말 빠른 듯..
    대학 새내기 때부터 지금까지가 정말 금방 지나간 것 같은데, 그 만큼을 한번 더 지나면 제가 50이 되어 있다는 사실. ㅎㅎ
    그때가 되면 50 또한 별거 아니겠지만 ㅎㅎㅎ

    근데 왜 미술관옆동물원은 재개봉을 안한 건가용? 것도 새내기 때 봤던 엄청 좋았던 영환데…

    1. 저도 서른 다섯 살 때 15년 전에는 스무살, 15년 뒤에는 쉰 살이라서 막 신기해 하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그나저나 심은하는 굉장히 짧은 영화 경력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나 < 미술관 옆 동물원> 같은 인상적인 작품을 꽤 남겼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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