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의 역사>(A History of the Breast)


영화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흥행성이라고 한다면. 잘 생긴 외모에 쫙 빠진 몸매를 갖춘 젊은 배우와 10년 묵은 체증을 한 번에 날려버릴 만큼 화려한 볼거리 이렇게 두 요소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럼 이것은 어떨까. 국내 최고 인기 여배우 고소영과 전지현이 한 영화에 동시에 출연하여 벗은 몸을 공개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는 개봉과 함께 ‘대박’이라는 돈다발은 물론이고 온 나라가 두 여배우의 육체로 인해 몇 달간은 시끌벅적 할 것이다.


너무 과장된 표현이 아니냐고? 실제로 헐리웃은 한창 잘 나가는 여배우 할리 베리(Halle Berry)의 젖가슴을 영화 <스워드 피쉬 Swordfish>에 노출하는 조건으로 한쪽 가슴 당 25만 달러씩 우리 돈으로 약 6억원의 가욋돈을 지불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A급 여배우의 특정신체부분 노출이 영화의 흥행에 미치는 영향력을 노골적으로 이용한 것.  

비단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헐리웃은 영화사 초기부터 여배우들의 봉곳 솟은 가슴의 일부분을 화면에 노출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50년대의 영화 캐스팅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여배우는 오로지 가슴이 큰 여성이었다. 남성의 성(性) 본능을 자극하여 돈푼 좀 건져 보겠다는 스튜디오의 알량한 전략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여성관객에게 미친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남성들이 여성의 육체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만큼 여성도 자신이외의 여성의 몸에 큰 관심을 가졌던 까닭이다.

「코스모폴리탄」지의 편집자였던 헬런 걸리 브라운(Helen Gurley Brown)은 이러한 당시의 경향에 대해 ‘여성들은 그들이 보고 싶은 만큼 벌거벗은 여성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라고 지적한다. 여성들도 영화를 통해 타 여성의 육체를 보며 자신의 몸과 비교한 것이다. 이는 여성의 육체가, 특히 유방이 생명의 원천으로 신성시된 측면과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에로틱한 면에 집중된 까닭에 감추어지고 은폐된 역사를 보냈기 때문이다.


잠깐! 위의 글이 필자의 날카로운 분석이라고 오해 마시길. 스탠포드 대학 ‘여성과 성별 연구소’의 원로학자인 매릴린 옐롬(Marilyn Yalom)의 저서 「유방의 역사 A History of the Breast」에 나오는 일부 내용을 약간의 기사 첨부와 함께 재구성해 본 것이다.

지금 소개할 「유방의 역사」는 독자에게 자칫 튀는 제목이 주는 선정성으로 인해 말초적인 읽을 거리로 오해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450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이 책의 두께를 감지하는 순간부터 남성의 손에 놀아났던(?) 유방의 갖가지 기구한 사연들이 결코 ‘재미’를 담보로 한 가벼운 목적의 글이 아님을 목격할 수 있다.

저자는 우선 여성의 가슴이 남성의 성적인 장식품이 된 배경에 대해, “대부분 그것을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감추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여성의 유방이 과연 누구의 소유물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하고 이를 9개의 시대별 담론에 담아 고찰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남성과 제도가 전 역사를 통하여 여성의 유방을 제멋대로 전유(專有)하기 위해 기울였던 다양한 노력의 면면들”을 신성한 유방, 에로틱한 유방, 가정적인 유방, 정치적인 유방, 심리학에서 본 유방, 상업화 된 유방, 의학에서 본 유방에 담아 고발한다. 이는 모두 남성소유의 가슴을 원 소유주에게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해방된 유방을 향한 전초이며 새롭게 시작되는 유방의 역사를 통해 주인 된 권리를 주장하는 역설적인 항변이다.

혹 이 서평을 읽는 독자 중에서, 모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신체 기관 중의 하나인 가슴을 두고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줄 안다. 그렇다면 이는 십중팔구 남성 독자들의 목소리일터. 그만큼 여성의 가슴은 어머니의 의무를 강조한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도덕의 가치에 떠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이는 ‘남근사상’의 힘없는 노예가 되어 수난과 수치의 역사를 보냈음을 의미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남성들의 경직된 사상을 겨냥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방의 역사」가 오로지 남성의 계몽만을 목적으로 저술되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미용을 위한 유방의 성형”에만 신경 쓰는 지금의 여성들에게도 “삶과 죽음의 문제인 수유와 질병(특히 유방암)”에 신경 써야 할 것임을 이 책은 강조하며 마무리 짓는다.


이처럼「유방의 역사」가 남성과 여성 두 마리의 토끼를 겨냥하여 만든 것처럼 저자인 매릴린 옐롬은 유방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여러 차원에서 요모조모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재미’만으로 이 책에 접근하는 이들의 가벼움을 경계하고 있으며 풍부한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자칫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갈 수 있는 독자의 관심을 자연스레 본론으로 끌어들인다. 무엇보다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과 힘이 넘치는 필치는 이 책의 가치가 녹록치 않음을 과시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2001. 11. 22. <무비클래식>)

“<유방의 역사>(A History of the Breast)”에 대한 3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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