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2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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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프로젝트다. 애초 이해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류승범, 김아중 등이 캐스팅되며 <29년>이라는 제목으로 닻을 올렸지만 불명확한 이유로 제작이 무산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그로부터 3년 후, <후궁: 제왕의 첩>(2012) <고고70>(2008) <음란서생>(2006) 등 미술감독 출신의 조근현 감독 연출에, 진구, 한혜진, 임슬옹, 배수빈 등의 출연, 그리고 소셜 펀딩 방식으로 제작비를 조달하면서 원 제목인 <26년>으로 극적인 개봉에 이르게 됐다.

강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26년>은 1980년 5월 광주의 학살 주범자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모인 이들의 복수극이다. 조직폭력배 진배, 국가대표 사격 선수 미진, 현직 경찰 정혁은 겉만 봐서는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지만 5월 광주에서 가족을 잃은 희생양들이다. 이들 앞에 그 사람의 죄를 묻고 사과를 받아내자며 대기업총수 김갑세와 사설 경호업체 실장 주안이 나타난다. 법으로도 합당한 처벌을 가하지 못한 살아있는 권력을 끌어내려 역사의 과오를 청산하기 위해 이들은 의기투합한다.

제목이 의미하는 ’26년’은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었던 1980년 이후 극 중 주인공들이 그 사람을 처단하겠다며 나서는 2006년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이는 강풀의 원작이 발표됐던 시기와 관련이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우리 현대사의 역사 탕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이자 뼈아픈 질책의 의미가 상징적으로 덮여있다. 안 그래도 그 기간은 희생자들의 아들, 딸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5.18 광주 비극은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을 제외하면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역사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에 대한 경종처럼 등장했다는 점에서 <26년>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마침 대선을 앞두고 역사 청산이 당락을 가를 주요한 프레임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26년>에 대한 영화 팬들의 기대치는 그에 맞춰 오르고 있는 듯 보인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영화는 시작과 함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당시 광주의 비극적인 현장을 소환한다. 이 부분만큼은 애니메이션(<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돌또기가 참여했다.)으로 이뤄져 있어 상대적으로 사실감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단란한 가정에 날아든 총알이 가정주부의 머리를 관통한다든지, 얼굴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시체 더미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방식은 그 사람을 향한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26년>은 그와 같은 분노를 추진력 삼아 이야기에 탄력을 부여하려 한다. 절대 악으로 군림하는 그 사람에 대한 묘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인공들 역시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분노하거나 아니면 체념하는 식의 둘 중 하나다. 물론 그 사람의 극 중 성격이나 행동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반응은 천차만별일 터인데 영화가 이야기나 감정의 폭을 너무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과연 <26년>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가장 적합한 연출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극 중 인물들이 주어진 기능에 맞춰 기계적으로 움직인다는 인상은 차치하더라도 극단적인 감정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이 영화가 노리는 효과가 무엇인지 그 진심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movieweek
NO.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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