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친구들] <플란다스의 개>(Barking Dogs Never B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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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플란다스의 개>(2000)를 본 관객은 5만 명 정도였다. 봉준호 감독이 지금 누리는 명성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영화가 재미없어서? 작품성이 떨어져서? 봉준호 본인은 우스개처럼 ‘짜쳤다’는 평가를 하지만, 이 데뷔작이 맘에 들었던 이들도 꽤 된다. 그중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괴물> 제작자)는 흥행 성적과 상관없이 <살인의 추억>(2003)을 준비 중인 봉준호에게 세 번째 작품 계약을 미리 제안했을 정도였다.

제목과 다르게 이 영화는 ‘플란다스의 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대신 납치 당하는 개들이 등장한다. 납치범은 교수 임용에 목매는 윤주(이성재)다. 경쟁자보다 스펙도 딸리고 그렇다고 교수에게 줄 뇌물을 마련할 길도 없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윤주는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개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에 문제의 개를 납치해 옥상에서 추락사시키려던 윤주는 현남(배두나)에게 이 광경을 들킨 후 쫓기는 신세가 된다.

엉뚱한 이야기와 다르게 <플란다스의 개>를 지배하는 정서는 무력감이다. 그 무력감의 원인은 정도를 걸어서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다. 윤주는 그에 대한 피로감을 ‘개를 훔쳐 살해하는 완벽한 방법’으로 해소하려 한다. 반면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경리로 근무하는 현남은 밝은 미래 따위 안중에도 없는 무기력한 일상의 탈출로 현실의 도둑을 제압하는 ‘용감한 시민’을 꿈꾼다.  

이의 배경이 되는 곳은 ‘아파트’다. 아파트는 층수와 평수라는 수치에 따라 철저히 구획화된 공간이다. 겉에서 볼 때는 무미건조 그 자체이지만, 그 안의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으로 끓어올라 있는 상태다. 더 정확히는 외부로 발산하지 못한 욕망의 억제로 뒤틀린 감정들이 폭발 일보 직전에 있다. 영화의 카메라는 내부를 비출 때 방문이나 가구 등으로 구획해 답답함을 강조한다면 현관문을 빠져나온 후에야 비로소 주변 전경을 잡으며 후련함을 쏟아낸다.

윤주의 경우처럼 억눌린 감정의 일시적인 해소의 대상이 ‘개’라는 점이 코믹하게 다가오지만, 봉준호의 영화를 꾸준히 보아온 이들에게는 익숙한 설정이다. 다만 여느 영화의 코믹한 설정과는 다르게 엇박자의 느낌이 강한 게 특징이다. 예컨대, 윤주가 납치한 개를 옥상에서 떨어뜨리려 할 때 그 뒤에서 할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를 말리려 돗자리를 까는 장면 같은 경우가 그렇다.

코미디가 납치와 살인의 테마와 결합하는 게 봉준호 영화의 특징이다. 이는 감독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 대한 시각을 여실히 드러낸다. 아파트를 비롯해 지하철, 파티션으로 각자의 자리가 구획된 윤주 아내의 사무실 등 경계가 확연히 갈린 공간을 자주 노출하는 건 한국사회의 계급도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에 가깝다. 이들 경계는 워낙 견고해 윤주와 같은 일반인이 넘기는 쉽지 않은데 결국에는 우스꽝스러운 불법과 편법이 동원되는 이유다.

윤주의 교수직을 향한 욕망은 결국 아내의 퇴직금으로 마련한 1천5백만 원의 뇌물과 이를 건네주며 교수에게 받는 룸살롱에서의 폭탄주로 비로소 완성된다. 드디어 해방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윤주의 얼굴에는 오히려 낭패감이 선명하다. 죽어라 올바른 길을 걸어도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일 것이다. 생사를 쥔 교수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 윤주는 구걸하는 이에게 숨겨둔 1천5백 장의 만원 지폐 중 한 장을 건넨다.

그런다고 죄책감이 사라질까? 물론 아닐 것이다. 다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미친 세상을 버틸 재간이 없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경쟁 사회에는 관심이 없는지 친구와 함께 숲 속을 거닐던 현남은 갑자기 스크린 쪽으로 몸을 돌려 거울을 비춘다. 거기에는 적자생존의 시대를 버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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