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친구들] <분노의 저격자>(Blood Si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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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언 형제는 장르를 가지고 노는 영화의 ‘꾼’들이다. 그와 같은 재능은 이미 데뷔작 <분노의 저격자>(1984)에서부터 저력을 드러냈다. <분노의 저격자>에서 형제가 ‘가지고 노는’ 장르는 범죄물, 그중에서도 하드보일드다. 국내에서는 ‘분노의 저격자’로 유통이 됐지만, 원제는 ‘블러드 심플 Blood Simple’로, 하드보일드의 창시자 대실 해밋이 쓴 <붉은 수확>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고 나면 그의 머리는 물렁해진다. 블러드 심플’  살인이 그 주변 사람에게 불러올 예측불허의 파장을 의미하는 걸 테다.

<분노의 저격자>는 바로 그런 이야기다. 바텐더 레이(존 게츠)는 클럽 주인 마티(댄 헤다야)의 아내 애비(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정을 통한 사이다. 마티 몰래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실은 사립탐정 비써(에밋 월시)가 뒤를 캐던 중이다. 비서를 통해 레이와 아내의 관계를 확인한 마티는 아예 청부살인까지 의뢰한다. 제안을 받아들인 비써는 레이와 애비를 살해하는 대신 마티를 제거하고는 돈만 챙긴다. 이를 모르는 레이는 마티의 사무실에 왔다가 시체를 발견하고는 순간적으로 애비를 의심한다.

서로를 의심해 모순에 빠뜨리고 사태를 악화일로로 이끄는 것, 특히 남편과 아내 사이에 끼어든 연인으로 인해 관계가 파국으로 전개되는 양상은 하드보일드 중에서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제임스 M. 케인 소설을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분노의 저격자>는 하드보일드 대표작의 주요 설정을 가져와 솜씨 좋게 혼합한 결과물일까. 그런 평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코언 형제의 인터뷰집 <코언 형제 부조화와 난센스>를 보면 일부 평론가가 이 영화의 설정을 두고 ‘약삭빠른 책략으로 간주’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안톤 쉬거에게 총 맞을 처사다. ‘장르 genre’에는 어느 정도 정해진 규칙 같은 게 있어 설정상 비슷해 보이는 건 자연스럽다. 코언 형제는 하드보일드 세계를 형성하는 이야기와 분위기의 큰 줄기는 따른 채 소위 ‘비틀기’를 통해 세세한 부분에서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는다. 일례로, 하드보일드에는 비열한 도시의 느낌이 필수적으로 담겨 있다. <분노의 저격자>의 주요 공간은 다름 아닌 텍사스다. 남성성이 강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하드보일드에 적합하지만, 코언 형제는 오히려 도시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게끔 공간 연출을 가져간다.

레이는 행여 자신이 마티의 살해범으로 오인당할까 시체를 유기하기에 이른다. 이때 장소는 빌딩 숲 속 후미진 뒷골목이 아니라 타이어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찍히는 황무지다. 아무리 어둠이 장막 역할을 해도 한 줄기 빛만 비춰도 모든 게 들통 나는 상황에서 이를 가지고 긴장감을 유도하는 코언 형제의 연출력은 가히 천의무봉에 가깝다. 하드보일드에서 언제나 남자를 유혹한 뒤 위기에 빠뜨려 단죄의 대상이 되었던 여성 캐릭터가 피해자이자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도 코언 형제의 지향점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빛과 어둠이 사선을 그리듯 하드보일드의 기존 룰과 코언 형제의 재기 넘치는 비틀기가 교차하는 <분노의 저격자>는 관객이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할 만큼 그물코 사이의 연출 밀도가 굉장히 높다. 오히려 그와 같은 빈틈없음 때문에 영화가 답답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지금의 코언 형제가 <분노의 저격자>를 만든다면 안톤 쉬거 헤어스타일과 같은 냉소적인 유머로 관객들에게 숨 쉴 틈을 제공했을 것 같다. 요는, ‘역설’이 코언 형제의 영화 세계를 함축한 단어라고 할 때 지나치게 통제되어 있어 흠이 되는 <분노의 저격자>야말로 이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데뷔작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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