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하면 박수 소리로 이뤄진 ‘Jakarta Monorail 103 with clapping sound’ 배경음악에 맞춰 103개의 콘크리트 기둥 네거티브 사진이 4분 52초의 상영시간 동안 빠른 편집으로 지나간다. 이 정체불명의 콘크리트 기둥은 무엇일까.
자카르타의 교통난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노레일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IMF와 건설사의 무리한 투자가 겹치면서 이 프로젝트는 지난 10년 동안 중단되었다. 그래서 자카르타의 3km에 이르는 대로에는 철골 뼈대만 남은 콘크리트 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살아있는 식물들 대신 자리를 차지한 콘크리트 기둥은 도시계발의 빗나간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식물들: 자카르타 모노레일 103>은 이 죽어 있는 도시의 풍경을 재료 삼아 영상 실험 작가 박용석의 이미지와 현대음악 작곡가 한은미의 사운드로 리듬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조화로 생겨난 리듬은 흡사 모노레일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그러니까, 박용석과 한은미의 작업은 이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식물들을 통해 단순히 자본주의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완공되지 않은 채 거대한 공백으로 남은 이 거리를 복원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자본이 황폐화한 거리에 <식물들: 자카르타 모노레일 103>은 영상과 음악을 뿌려 새로운 ‘식물들’이 자랄 토양을 실험적으로 다진다.
41회 서울독립영화제
(2015.11.26~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