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는 무시무시한 두 개의 트렁크가 등장한다. 하나는 자동차 트렁크요, 또 하나는 여행 가방이다. 이 트렁크들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다시 만들기(?)도 한다. 일종의 마법 트렁크인 셈. 경민은 회사 윗사람으로부터 쌍욕을 들어가며 급하게 사무실로 막 나가려던 참이다. 한시가 급한데 오지랖 넓은 성격 때문인지 트렁크가 열린 차를 보고는 가던 길을 돌아와 주인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으스스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답변은 “트렁크에 뭐가 있는지 살펴봤어?”이다. 뚱딴지같은 소리를 듣고 짜증이 난 경민은 관심을 끄려다가 문제의 트렁크에 시선을 던진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 두려움을 자아내는 텅 빈 지하 주차장, 출구로 빠져나가기가 요원한 고립된 상황, 정체불명의 검은 자동차와 공포감을 유발하는 시동 소리 등 <트렁크>는 공포영화의 문법을 고스란히 따른다. 사실 그 공포에는 정체가 있다. 현대인의 대다수는 누군가의 부하 직원으로 존재하며 고개 숙여 지낼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한편으로 불합리한 현실을 속 시원하게 뒤엎고 싶은 욕망을 품기 마련이다. 그래서 <트렁크>는 여행 가방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욕망의 자아로 삼고, 이를 자동차 트렁크로 실현해줘 기괴한 공포로 승화한다. 트렁크 버전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고나 할까.
14회 전주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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