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다. 그렇다고 반드시 사실만 기록하는 것도 아니며 개인만 보라는 법도 없다. 때로는 거짓을 서술할 때도 있고, 누군가가 봐주기를 기대하며 눈에 잘 띄는 곳이 일기장을 놓아두기도 한다. 오에 타카마사 감독의 <안녕 유지>는 일기가 단순히 개인에만 한정되는 매체가 아님을 보여준다.
대학생 유지는 새해 첫날 의문의 엽서를 발견한다. 거기에는 ‘유지, 아직도 일기를 쓰고 있어?’라고 적혀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유지가 10년 후의 자신에게 보낸 엽서였던 것. 이를 보고 유지는 과거에 썼던 일기장을 찾다 보이지 않자 그 사실을 일기에 적는다. 그 뒤 엄마는 아들 유지의 일기를 몰래 본 후 자신도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10년 전 일기를 찾는다는 것은 곧 과거를 뒤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유지와 그의 엄마에게는 그처럼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 둘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지와 엄마는 서로 말조차 섞지 않을 만큼 사이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유지는 부모의 이혼 책임이 엄마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말 한마디 건네려 하지 않는다.
엄마가 유지의 일기를 훔쳐본 사실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지만 역설적으로 회복의 계기를 마련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에 타카마사 감독은 일기가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을 탐구한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유지를 연기학과 학생으로, 유지의 엄마 직업을 간호사로 설정했을 테다.
숫기가 없는 유지는 교수로부터 감정을 좀 더 과장하라는 충고를 듣는다. 과장된 연기가 영 부담스럽지만 대신 유지는 일기를 거짓에 가깝게 ‘과장’하기 시작한다. 몰래 자신의 일기를 훔쳐보는 엄마를 자극하기 위해서다. 반면 엄마는 유지의 일기를 본 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들 상을 일기장에 적어나가며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간다.
유지와 그의 엄마는 일기로 그렇게 서로간의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을 무례하게 침범하지만 그것은 곧 이들의 관계가 조금씩 섞여 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엄마도 그렇지만 유지 역시 엄마의 일기를 몰래 훑어보며 점차 그녀의 아픔과 진심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안녕 유지>는 그들의 서서한 관계 회복에 맞춰 흥미로운 형식 변주를 꾀한다. 평행선을 긋듯 서로의 길만 걸어가는 유지와 엄마처럼 영화는 이들 각자의 일기를 병렬의 방식으로 배치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구분을 두지 않고 유지가 쓰는 일기와 엄마가 작성한 일기의 상황이 끝내는 합쳐지는 결말로 이들의 화해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막 잠을 깬 유지에게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이에 유지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일기를 통해 화해의 계기를 마련한 유지는 오프닝에서와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리자 이번에는 휴대폰에 관심을 보인다. 바로 엄마의 안부 전화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간단해 보이는 인사로부터 시작한다. 이 영화의 제목인 <안녕 유지>는 그와 같은 관계를 열망한다.
14회 전주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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