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맸다가는 도둑으로 몰릴 수 있다? <그레코로만>은 오해를 의심하고, 의심을 오해하는 이가 나중에야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이야기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남완은 어딘가 풀이 죽어 있다. 그럴 만도 하다. 간질 때문에 쓰러진 아이의 사정을 살피다 주변 사람들에게 변태라고 오인 받았으니 그 속이 편할 리 없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그런 종류의 오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운명이 자신에게만 너무 가혹하다고 의심하며 한 평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왜 제목이 ‘그레코로만’이냐고? 레슬링에서 상반신만을 사용하는 종목을 그레코로만이라고 부른다. 이 종목에는 ‘빠떼루’, 그러니까 파테르라는 벌칙이 있는데 묘한 동작 때문에 종종 성적이라는 오해를 받고는 한다. 신현탁 감독은 이에서 착안, 고등학교 시절 촉망받는 레슬링 선수였던 남완이 불의의 사고로 선수 생활을 접으면서 자신의 불행한 인생을 의심토록 설정한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남완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동안에 본의 아니게 괴물이 된 기사의 동화 이야기를 오버 랩 시키면서 오해와 의심의 결이 얼마나 오랫동안 축적되었는지를 반영한다. 하지만 동화는 늘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남완도 마찬가지다. 불행했던 그의 인생도 결국에는 한줄기 서광이 비친다. 운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개척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는 강조한다.
14회 전주영화제
공식 카탈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