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친구들] <세일러복과 기관총>(セーラー服と機関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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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복과 기관총>(1981)은 1980년대 일본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끈 일군의 작품 들 중에서도 가장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다. 아카가와 지로가 1978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소마이 신지가 영화로 만들었는데 세일러복을 입은 여고생이 기관총을 들게 된다는 파격적인 설정이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소마이 신지의 영화 이후 1982년, 그리고 2006년에 TV드라마로 두 차례나 만들어졌을 정도니 그 인기는 꽤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평범한 여고생 이즈미(아쿠시마루 히로코)에게 야쿠자 조직원들이 찾아온다. 조직의 보스가 되어 달라는 거다. 직계 가족이 없는 보스가 죽으면서 자신의 핏줄을 찾아 차기 보스로 삼으라는 명령을 내렸단다. 수소문을 해본 결과, 이즈미가 먼 친척뻘이라는 것. 이즈미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단칼에 거절하지만 그렇다면 조직원들이 장렬히 전사하겠다고 하자 어린 마음에 그 청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조직원 중 한 명이 라이벌 야쿠자로부터 기관총 세례를 받아 죽는 일이 발생하고 그것이 이즈미 집에 숨겨진 헤로인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좀 황당한 이야기다. 예컨대, 이즈미를 찾아온 조직원들은 유서 깊은 야쿠자 소속이라고 강조해 소개한다. 그러면서 중학생에게 보스를 맡긴다? 개가 웃을 일이다. <세일러복과 기관총>을 비롯해 모리타 요시미츠의 <가족게임>(1983), 이시이 소고의 <역분사 가족>(1984) 등 일본 뉴웨이브의 영화를 바라보는 당시의 첫인상이 이와 같았을 터다. 터무니없는 설정은 기본에, 전개하는 연출 또한 1960~1970년대 일본의 누벨바그 스타일을 따르기보다 독자적인 스타일을 꿈꾸는 감독의 ‘치기’로 점철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비티>(2013)의 세련되고 기술적인 롱테이크가 주목받는 요즘이라지만 <세일러복과 기관총>에서 소마이 신지가 구사하는 롱테이크는 사춘기 소녀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덕스러움이 지배하는 양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즈미가 뜻밖의 상황과 생소한 세계를 접하며 느끼는 예민한 감정을 섬세하게 잡아내기 위한 촬영법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든 것은 이 영화의 롱테이크가 맥락이 없는 장면에서도 무분별(?)하게 활용되는 까닭이다. 조금 과장하면, <세일러복과 기관총>의 모든 시퀀스가 롱테이크로 구성되어 있을 정도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된 치기다. 극 중 이즈미와 같은 자식 세대가 아버지 세대를 죽이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듯 소마이 신지는 1970년대 말부터 이어진 일본영화계의 침체 속에서 새로운 경향을 도모했다. <세일러복과 기관총>에서 두드러진 롱테이크는 전통적인 영화의 문법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소마이 신지의 치기가 만들어낸 산물인 것이다. 그런 배경 탓에 이 영화에는 스튜디오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전례 없던 미국영화를 생산했던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기운이 다분하다.

이즈미가 극 중에서 심심찮게 <엑소시스트>(1973)의 소녀처럼 스파이더 워크로 움직이고 <이지라이더>(1969)의 히피들처럼 오토바이족 무리에 섞여 들어가는 광경은 <세일러복과 기관총>이 지향하는 세계관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것은 기존 일본영화에 대한 일종의 선언 이다. 이즈미를 보좌하는 2인자 조직원은 기존 야쿠자의 보스들에 대해 “저렇게 잘난 척을 해도 속은 썩을 대로 썩어있다”는 식의 평가를 한다. 소마이 신지가 이 영화를 통해 발산하는 치기를 감안하면 단순히 영화 속에서만 유효한 대사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세일러복과 기관총>에는 관련해 꽤 의도적인 설정이 등장한다.  

영화의 결말부, 이즈미는 흑백영화가 영사되는 라이벌 조직 사무실 벽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 광경은 흡사 스크린을 찢고 나오는 듯한 기세로 등등한데 그 앞에는 ‘겉은 멀쩡해도 속은 썩어 있는’ 아버지뻘의 보스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는 이즈미. 기존영화를 도발하며 등장한 <세일러복과 기관총>에 당시 일본 관객들은 그해 전체 흥행 1위라는 격한(?) 반응으로 화답하며 새로운 영화를 반겼다. 일본영화의 1980년대를 장식했던 뉴웨이브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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