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는 여중생 이름이다. 그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게 있다. 같은 반 친구 민지처럼 되는 거다. 재개발 지역에서 병든 할아버지, 어린 동생과 힘겹게 살아가는 주희에게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그럴싸한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민지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다. 급기야 ‘무엇이든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는 주희는 친구들과 함께 일본 TV프로그램에 나오는 주술적 의식을 따라 하기에 이른다.
허정 감독은 여중생들 사이에서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선망과 질투의 양가적 감정을 ‘분신사바’ 유의 주술적 유행과 연결해 이야기를 꾸몄다. 그래서 <주희>는 여중생 영화로 보이지만 극 중 주희가 품은 욕망이 한국 사회 전체의 욕망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만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덤벼들 때 생기는 부작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포물의 형태를 띄는 것이다.
실제로 주희의 욕망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민지를 선망함과 동시에 공격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갖지 못한다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박탈감으로 변질되었는데 그런 죄의식이 가진 자들에 대한 복수의 형태로 드러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런 일그러진 감정이 기성세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폭넓게 퍼져있다는 것. 이 영화는 여중생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주희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이제 갓 초등생으로 보이는 동생에게까지 주술적 의식에 참여시키기를 꺼리지 않는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까지 오게 된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희>가 주목하는 배경은 멀쩡한 곳도 허물어 그 위에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는 한국 특유의 재개발 마인드다. 허정 감독은 영화의 말미에 주희가 살던 폐허를 비춘 후 곧 이은 장면에서 초고층빌딩이 즐비한 첨단 지구를 인서트한다. 그리고 그 위로 흐르는 주희의 내레이션. “변할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한국 곳곳을 집어삼킨 재개발 광풍은 주희 같은 여중생마저도 욕망의 노예로 몰락시켰다.
12회 미쟝센단편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