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MSFF] <앱사피엔스>(App-Sapi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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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스마트폰, SNS, 앱과 같은 기계가 사람간의 관계와 믿음을 대신하는 작금은 그야말로 공포의 시대라 할 만하다. 그래서 고현창 감독은 지금의 인류를 두고 <앱사피엔스 App-Sapiens>라고 칭한 것일 테다.

IT전문가인 주인공은 통신두절 지역에서 송신되는 정체불명의 신호를 따라 나서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물어보는 대신 차안에 설치된 이모션 어플리케이션을 작동시킨다. 어플리케이션 속 목소리가 지시하는 대로 길을 따라나서지만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주인공은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판단에 의지하기보다 기계에만 의존하다보니 생긴 결과다.

영화가 시작되면 차창 밖으로 크리스마스의 배경이 펼쳐지면서 성경의 한 구절이 들려온다. ‘인간의 길은 짐승의 그것과 다르니 성자는 길에서 길을 묻지 않고…….’ <앱사피엔스>에서 중요하게 등장하고 언급되는 ‘목적지’는 단순히 사전적인 의미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인간의 길 혹은 인생이란 주관적인 판단과 자유의지에 의해 개척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문제의식이란 인간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기계들에 의해 도리어 지배받는 아이러니, 즉 실종된 인간의 가치다.

이와 관련한 꽤 의미심장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극 중 주인공은 페이스북 친구만 3,000명에 달하는데 정작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부인과는 사이가 좋지 못해 떨어져 지내는 상태고 아들의 생일인데도 직접 만나 축하를 건네기는커녕 스마트폰을 통해 아이가 좋아할 만한 앱을 선물할 지경이다. 오히려 그런 인간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건 이모션 어플리케이션이다. 어플리케이션의 목소리에서 ‘친구’, ‘행복’과 같은 단어가 쏟아져 나오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그 가치를 잃어버린 지 오래인 것이다.

이게 꼭 영화 속 에피소드이거나 먼 미래의 상황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건 <앱사피엔스>의 배경이 일상적이라는 데 있다. 주인공이 작은 창을 통해 기계와 대화하는 것이 스토리의 전부지만 여기에는 앱사피엔스로서의 현대인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설정은 이미 우리의 현실에 익숙하게 퍼져있다. <앱 사피엔스>는 SF영화에서나 볼법한 묵시록적인 비전을 일상에서 목격하는 가운데 인간적인 교류와 감정이 휘발된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    

12회 미쟝센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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