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MSFF] <달이 기울면>(When the Moon is on the W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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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 감독의 <달이 기울면>은 전통적인 내러티브 구조에 포섭되지 않는 서술 방식이 매력적인 영화다. 눈에 띄는 사건이 등장하기보다 극 중 인물의 추상적인 형태의 마음 속 풍경을 끄집어내어 배경으로 구체화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제아(올해 칸영화제 단편 경쟁부문 황금종려상 수상작 <세이프>에 출연했던 이민지가 맡았다.)는 유령 같은 동네에 홀로 남아 오빠를 기다리며 부모님의 제사를 준비 중에 있다. 마음이 심란하던 차인데 지반침하가 심하다보니 집안까지 기울어져 분위기가 영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라디오에서는 방사능 비 예보에, 혼자 사는 여대생의 성폭행 사건까지 들려오니 제아의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그때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창밖에서 서성인다.

제아를 괴롭히는 건 사실 외부환경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하는 그녀의 감정에 따라 외부환경도 이에 영향을 받는 쪽이다. 집이 기울었다는 설정이 바로 이를 반영하는데 지금 제아의 마음은 한 곳으로 치우쳐져 있다. 자신을 홀로 두고 집밖을 나도는 오빠에 대한 불만으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곳으로 기운다는 것은 또 다른 한 쪽이 존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는 제아가 품고 있는 불만과 다르게 그녀가 오빠에 대해 잊은 죄책감을 상기시키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중심을 잡으려고 한다.

<달이 기울면>처럼 의식을 내러티브의 재료 삼은 영화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장르화해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장르는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제아의 불안한 심리를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공포로 분류되지만 특정장르로만 기울지 않는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SF적인 분위기를 내기도, 미스터리한 이야기 방식을 취하기도, 현실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는 등 방사형으로 장르를 뻗어가며 다양한 면모로 무장한다.

사람의 심리란 게 그렇다. 마음을 다잡지 못하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감정은 천변만화하는 법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힘을 발휘하는 지점은 제아의 감정에 따른 장르의 변화와 이를 집이라는 미장센으로 옮겨놓는 연출에 있다. 독창적인 화용론으로 무장한 <달이 기울면>은 주류영화에서는 좀 체 목격할 수 없는 새로운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12회 미쟝센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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