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국 대중영화의 새로운 신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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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시장의 한국영화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블록버스터 시즌의 절대 강자 할리우드마저 한국 영화 앞에서는 명함 일장 못 내리는 수준으로 체면을 구겼다. 특히 올 여름 시장은 4편의 한국영화, <감시자들>(사진)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숨바꼭질>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중 <설국열차>를 제외한 작품들이 블록버스터의 규모에 못 미치는 제작비와 생소한 감독의 이름값으로 이와 같은 성과를 올렸다는 사실이 특기할 만하다.

대신 이들 세 영화는 좀 더 도전적이고 참신한 방식으로 그들이 갖지 못한 한계를 보기 좋게 극복했다. 다시 말해, 2013년 여름 시장의 한국영화는 기록적인 흥행 수치도 물론이지만 새로운 얼굴의 감독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세대교체의 조짐을 보였다.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앞으로의 10년를 이끌 얼굴들인 것이다.

영화광 세대에서 영상 세대로

언급하길, 생소한 이름값이라고 했지만 <감시자들>의 조의석(김병서와 공동연출),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숨바꼭질>의 허정은 이미 충무로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감독들이었다. 조의석 감독은 크게 주목을 못 받아서였지 2편(<일단 뛰어>(2002) <조용한 세상>(2006))의 작품을 연출한 중고 신인(?)이고 김병우 감독 역시 <리튼>(2007)이라는 독립영화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와 다르게 허정 감독만이 순수한 신인이지만 <주희>(2012) <저주의 기간>(2010) 등과 같은 작품으로 단편영화 쪽에서는 실력자로 인정받은 터였다.

이들 감독들은 공통적으로 장르물을 통해 영화의 정체성을 쌓아왔다. 조의석과 김병우 감독은 미스터리 스릴러 계열의 이야기에 액션을 가미한 영화 만들기에 주력했고 허정 감독은 우리 사회 구성원이 품은 집단 심리를 외면으로 드러내는 공포물에 재능을 보여 왔다. 미스터리와 스릴러와 공포와 같은 장르물은 영화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대로 가장 대중 친화적인 쪽에 속한다. 그만큼 당대 대중이 원하는 바를 가장 잘 짚어내야 하는데 그만큼 만들기 힘든 것이 바로 장르영화다. 조의석 감독의 경우만 하더라도 <감시자들>로 540만 관객을 모았지만 <일단 뛰어>와 <조용한 세상>이라는 실패의 경험치가 있었다.

그럼 이들이 각자의 영화에서 획득한 대중성은 무엇일까. 이들 영화들은 보는 순간 어딘가 모르게 꽤 익숙하다는 인상을 준다. <감시자들>은 <본 슈프리머시>(2004)와 <본 얼티메이텀>(2007)의 감시의 액션을 한국의 정서와 지형에 맞게 개비한 듯한 모양새고 <더 테러 라이브>의 실시간 뉴스 중계와 이에 따른 화면의 질감은 재난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클로버필드>(2008)를 연상시킨다. <숨바꼭질>은 두 영화처럼 할리우드의 작품과 직계를 이루지는 않지만 젊은 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괴담을 차용함으로써 대중에 좀 더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영상 세대’다. 공교롭게도 딱 10년 전인 2003년 한국 영화계는 기념비적인 한 해를 보냈다.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올드보이>와 같은 작품들이 같은 해에 등장하며 흥행을 이끈 것은 물론 이를 감독한 봉준호, 김지운, 박찬욱은 한국영화의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소위 ‘영화광 세대’로 불리는데 그러다보니 예술적 인장이 강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이 지난 2013년 <감시자들> <더 테러 라이브> <숨바꼭질>이 찾아왔다. 이들 영화에 예술성이 두드러진다는 표현을 쓰기는 망설여진다. 다만 영상 세대의 영화는 영화광 세대의 그것보다 대중성이 더 확실해졌다.

10년이면 영화도 변한다
 
물론 그런 이유를 들어 영상 세대의 영화와 감독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지금 말하는 대중성은 실은 꽤 추상적이다. 아니 복합적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겠다. 감독의 개성을 죽이는 대신 흥행에 성공한 영화의 특정 요소를 반복하는 것이 지금 한국영화계를 장악하고 있는 대중성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감독들이 선택할 수 있는 패는 많지 않다. 스튜디오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거나 스튜디오의 눈 밖에 나지 않는 ‘대중성’의 선에서 자신의 개성을 어떻게든 녹이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조의석, 김병우, 허정 감독은 후자를 택함으로써 눈에 띄는 성과를 이뤘다.

이들 영화는 익숙한 장르와 이야기 가운데 여타의 한국영화에서 좀체 경험하지 못했던 정서를 가지고 극을 이끈다. 이를 전복 혹은 저항 같은 불온한(?) 단어로 수식해도 좋을까. 예컨대, <더 테러 라이브>를 보고 가장 놀랐던 건 마포대교 테러도, 생방송 중 벌어지는 총격 살인도 아닌 결말이었다. 방송국 빌딩이 동강 나 최종적으로 떨어지는 지점이 국회라는 사실은 솔직히 통쾌할 정도였다. <더 테러 라이브>는 마포대교 보수 도중 추락사한 일용 노동자의 동료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다 여의치 않자 테러를 감행하는 이야기다. 그런 맥락에서 기득권층을 향한 사회적 약자의 억눌린 분노의 정서가 결말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더 테러 라이브>처럼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감시자들> <숨바꼭질>에도 그런 저항의 기운이 영화 곳곳에 퍼져있다. <감시자들>은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의 활약상을 그리지만 주목받은 인물은 악역 제임스였다. 그가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건 저축은행, 증권거래소와 같은 최근 들어 기득권의 배를 불리며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한 금융권이다. 정우성을 제임스에 캐스팅한 건 관객들로 하여금 그런 악(?)에 감정을 이입하게 만듦으로써 선악의 경계가 희미해진 세태를 반영한 것일 테다. <숨바꼭질>의 경우, 더 좋은 집을 향한 집착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의 기이한 욕망을 공포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귀신 놀이에만 안주하던 영화들과는 선을 긋겠다는 감독의 단호함이 묻어났다.

조의석, 김병우, 허정 감독의 전력과 영화를 살펴본 바, 이번 흥행이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차곡차곡 장르에 대한 기술과 대중영화에 대한 감을 익혀가면서 지금에 도달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그러니까 2023년에는 이들의 뒤를 잇는 또 다른 세대가 등장해 한국영화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13년 지금 한국영화도 그 변화의 물결이 도도하다.  

맥스무비 매거진
창간준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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