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친구들] <호수의 이방인> 크리스토퍼 파오우



알랭 기로디 감독의 영화라면 예상할 수 있듯 <호수의 이방인>에도 동성애가 전면에 나선다. 근데 이번에는 수위가 세다. 섹스 장면에서 사정하는 순간이 그대로 노출될 정도이고 배우들은 상영 시간 내내 전라로 등장할 만큼 과감한 연기를 펼친다. 크리스토퍼 파오우는 <호수의 이방인>에서 사랑에 적극적이지만 또한 사랑을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순간의 욕망에 충실한 미셸 역할을 맡았다. 분명 쉽지 않아 보이는 연기지만 크리스토퍼 파오우는 (살인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이 나누는 사랑과 별 반 다르지 않다며 그렇기에 좀 더 현실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지 않나?
그렇다, 프랭크를 찾으러 왔다. (기자 주_ 미셸이 도망간 프랭크를 쫓으며 열린 결말로 영화가 끝난 것을 빗대어 던진 농담) 그런데 아직 못 찾았다. (웃음)

개인적으로 <호수의 이방인>을 팜므 파탈이 옴므 파탈로, 어두운 술집의 뒷골목이 대낮의 호수로 바뀐 필름 느와르의 변주로 봤다. 필름 느와르는 결국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래서 영화는 보여주지는 않지만 미셸과 프랭크 중 한 명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 쪽이다. 극 중 프랭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순간 프랭크가 미셸을 부를 때 그 장면에서 나는 사랑이 느껴졌다. 오히려 프랭크가 이전보다 더 귀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서로 사랑해 결혼해서 2년 뒤라면 그때는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미셸은 뛰어난 외모를 가졌지만 살인도 저지르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다. 배우로서 욕심이 나는 배역이지만 적나라한 섹스 장면 때문에 출연이 망설여지지는 않아나?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는 욕망, 즉 사랑이나 섹스나 외로움이나 죽음을 일본의 ‘하이쿠’처럼 시적으로 표현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물론 시나리오 상에 묘사된 섹스 장면의 수위가 굉장히 높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알랭 기로디 감독의 전작을 보면서 출연을 결심했다.

알랭 기로디 감독과는 처음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어떤 경험이었나?
그와의 작업은 배우인 내게 큰 재산이 되었다. 알랭 기로디 감독은 진심으로 배우를 대할 정도로 인간적인 사람이다. 감독과 배우로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캐릭터에 대해 연구하고 영화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니 미셸을 더 잘 연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알랭 기로디 감독은 열정을 크게 과시하는 대신 디테일하고 세심하게 자신의 비전을 드러내는 편이다. 오히려 그런 성격이 내게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그것이 있는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알랭 기로디 감독의 고유한 연출 스타일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렇게 감독의 비전을 공유하게 되니 미셸이라는 캐릭터에 접근하는 것이 더 수월해지더라.

미셸과 같은 캐릭터는 감독이 요구하거나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그대로 연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과의 대화가 중요했을 텐데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일단 알랭 기로디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기 전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다. (웃음) 그 과정에서 미셸에게 반영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연기를 하면서도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을 때가 있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사실 알랭 기로디 감독은 미셸을 비롯해 극 중 인물들의 연기에 대해 무엇을 원하는지가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바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배우와 함께 연구를 해나가는 방식으로 캐릭터와 연기를 조율했다.

미셸과 프랭크의 섹스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하니 만큼 다른 장면보다 대화가 더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섹스 장면에 대해서 알랭 기로디 감독은 우리들에게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이 장면이 주는 투명함과 신비로움이 관객에게 전달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는데 이를 연기가 아닌 대화를 통해 너무 많이 알게 되면 연기하는데 방해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알랭 기로디 감독은 내게 미셸에 대한 확고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답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방식으로 연기가 이뤄졌다.

감독이 원한 바대로의 섹스 장면이라면 오히려 프랭크 역의 피에르 데 라돈샴과는 사전에 준비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현장에서 사실감을 살리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촬영에 들어가기 딱 일주일 동안만 리허설을 했다. 섹스 장면에 대해서도 연습을 했지만 이 순간에 손이 어디로 간다, 하는 식의 구체적인 접근은 피했다. 대신 느낌만 습득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 장면을 준비했다. 피에르 데 라돈샴과는 처음부터 교감이 잘 맞는 편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만나자마자 서로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피에르와 내가 그랬다.

알랭 기로디 감독의 <도주왕>을 보면 <호수의 이방인>에서처럼 남자들이 성행위를 하는 장소로 풀숲이 등장한다. 그래서 알랭 기로디의 영화는 일관성이 느껴지는데 이는 한편으로 동성애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보통의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섹스를 묘사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그럴 정도로 특별해진 묘사이지만 실은 굉장히 현실적인 모습이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또 그러면서 섹스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더욱 <호수의 이방인>에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동성애가 마이너리티인 까닭에 이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미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미장센 중 하나가 하얀 운동화다. 극 중반, 호수에서 누군가가 살인을 저지르는데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운동화를 신는 걸 보면 누구나 미셸이라고 인지한다.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가져온 장치라기보다는 어쩌다보니 나오게 된 우연한 미장센이다. (웃음) 처음 촬영할 때는 신발이 없었다. 근데 신발 없이 돌이 많은 호수 주변을 걷다보니 걸음걸이가 이상하더라. 너무 우스꽝스럽게 비치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발이 아팠다. (다른 배우들의 경우, 맨발로 등장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누워있거나 서 있어도 별로 움직임이 없는 경우라서 나와 다르게 굳이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됐다.

돌이 많아 걷기 불편했을지 모르겠지만 관객 입장에서 영화로 보는 극 중 호수는 정말 절경이더라.
니스 근처에 있는 호수였는데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확실히 지문 속 장소가 실제로 와 닿으면서 캐릭터가 내게로 들어왔다. 첫 촬영이 수영을 하는 장면이었다. 더 추워지기 전인 10월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섹스 장면처럼 감정이 중요한 영화는 시나리오의 신 별로 촬영하면 좋지만 비용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10월 한 달 동안 촬영했는데 낮 장면의 경우, 조명을 따로 쓰지 않고 해가 떠 있는 시간에만 촬영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도 가을이라 그런지 호수와 주변 숲이 선사하는 풍광이 정말 굉장했다. 이는 연기를 하는 나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촬영장이 자연친화적인 곳에서는 생각을 정리하기 좋다. 매일 같이 호수 주변을 산책하며 미셸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미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렵거나 고민되는 부분은 없었나?
미셸 역할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알랭 기로디 감독이나 나는 이 영화의 결말 때문에 고민을 했다. 처음에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열린 결말이야 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두 가지 버전의 결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첫 번째 버전의 결말은 프랭크가 미셸을 부르면서 끝을 맺는다. 하지만 두 번째 버전은 프랭크가 미셸을 부르면 숲속의 나무 뒤에 숨었다가 서로가 다시 만나 예쁘게 키스를 하고 끝을 맺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버전으로 지금의 결말을 취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열린 결말로 끝낸 지금의 버전이 보다 위협적인 느낌을 제공하기 때문에 영화를 더 살리는 것 같았다. 물론 결정하기 어려웠다. 두 번째 버전의 결말에서 미셸과 프랭크가 다시 만나지만 키스를 하다가도 미셸이 돌변해 프랭크를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랭크가 미셸을 불러도 돌아오지 않게 되면 관객은 이들이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있지 않나. 두 번째 버전은 결말은 형태가 명확해 관객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 최종적으로 지금의 버전을 선택했다.

열린 결말은 해석의 여지가 넓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배우에게도 연기할 수 있는 가능성의 폭을 넓혀주기도 하나?
대개 배우들은 해당 장면의 목적을 알고 연기를 한다. 내 입장에서는 지금의 결말처럼 모르고 연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았다. 물론 열린 결말이라고 해서 특별히 연기의 자유가 더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추격전은 현기증이 날 수밖에 없는데 미셸이 프랭크를 쫓는 장면에서는 현실적인 느낌이 나도록 연기했다. 열린 결말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상상할 수 있어서 현기증이 나는 그 느낌을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배우로서 내가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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