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꼽자면 단연 ‘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이다. 흥행과 같은 박스오피스 수치를 좌지우지한 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써니> <최종병기 활> <완득이> 등 주류 영화지만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작은 영화의 성과는 그야말로 눈부시다.
주류 시스템과는 거리를 둔 채 독립적으로 만든 작품을 충무로에서는 흔히들 작은 영화라고 부른다. 작은 영화의 강점은 아무래도 저예산이다 보니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아이디어로 돌파해야 하는 까닭에 새로운 시도들이 많다는 점이다. 상반기만 하더라도 <파수꾼> <짐승의 끝> <무산일기> <혜화, 동>과 같은 작품들이 과감한 소재 선택과 독창적인 화용론을 통해 주류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했더랬다.
고무적인 사실은 이런 작은 영화들의 조용한 반란이 특정 시기에만 발하지 않고 꾸준히 성과를 이어왔다는 것. 하반기 작은 영화의 면모를 살펴보면 상반기와는 또 다르게 다종한 장르에서 다양한 실험이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다큐멘터리의 급부상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안 그래도 현장보건 관리를 기록한 이강현의 <보라>(11/24)와 영리화가 극심해진 의료계의 현실을 다루는 송윤희의 <하얀 정글>(12/1)이 개봉을 확정한 상태다. 이들 작품은 주류 언론에서 방기하고 있는 일상의 이면을 과감히 소재로 채택, 진실의 정치학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검은 실상을 폭로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형식적 실험과 재미 추구를 통해 우선적으로 관객을 만족시키겠다는 창작자의 정체성은 변화한 세대의 욕구를 감지케 한다. 남다정의 <플레이>가 대표적이다. 3인조 인디밴드 ‘메이트’의 결성 과정을 다루는 이 영화는 실제 멤버가 그 자신을 연기하며 자전적인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는 다큐멘터리적인 이야기에 극영화의 화법을 도입한 사례인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굳이 구분 짓지 않은 연출은 ‘리얼’이 대세인 작금의 예술적 풍조에 적극 동참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주류에서는 민감하다는 이유로 저어하는 첨예한 소재를 끌어들여 오락화 하는 연출 또한 이런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예컨대, 전재홍의 <풍산개>는 감시를 피해 남북을 오가는 청년을 다룬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다분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맥락을 거세한 채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는 철저히 판타지로 기능하며 소재의 폭을 넓히는데 한몫했다. <풍산개>와 달리 연상호의 <돼지의 왕>은 계급 피라미드 하부에 위치한 이들의 삶이 전면에 나선 까닭에 현실 비판의 기치를 드높인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드물었던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에 더욱 무게 중심이 쏠리는 것이다.
사실 한국의 주류 영화가 전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는 표현과 소재에 금기를 두지 않는 도전 정신에 있었다. 이것이 세계의 유수 영화제에서 얻었던 성과의 절대 요소인데 현재는 작은 영화의 전유물로 완전히 이동한 상태다. 하여 최근의 세계영화제에서의 성과는 작은 영화 일색이다. 무려 14개의 해외영화제 트로피를 수상한 <무산일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하반기에는 소위 ‘타운 삼부작’으로 불리는 전규환의 <댄스 타운> <애니멀 타운> <모차르트 타운>의 성과가 놀랍다. “삼부작 모두 깊은 통찰력을 지닌 빼어난 수작”(덴버국제영화제)이라는 극찬 속에 댈러스아시안영화제, 그라나다영화제, 브줄영화제 대상을 비롯하여 뉴욕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MoMA에서 특별전을 갖기도 했다.
실제로 타운 삼부작은 각 편마다 파격적인 사랑을 중심에 놓되 회색빛 도시의 속성과 겹쳐놓는 방식으로 현대인의 고독을 드러내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한다. 또한 박찬욱의 동생으로 유명한 박찬경의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의 경우, 비록 해외영화제의 수상 경력은 없지만 도시를 캐릭터로 삼는 연출력은 주류 영화에서는 목격할 수 없는 남다른 재능에 속한다. 근대와 현대의 성격이 혼재하는 경기도 안양을 배경으로 (직접 캐스팅한) 안양 시민들의 발자취를 따라 급속도로 산업화된 한국 도시의 속성을 조명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상영 기회를 가졌지만 본 사람들은 실상 그렇게 많지 않다. 작품성과는 별개로 충분한 상영일정을 보장받지 못한 까닭이다. 거창하게 ‘코리안 뉴 웨이브 Korean New Wave’라고 명명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영화계의 기저에서 활발히 모색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보기의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다. ‘조용한 반란’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데 주류 영화의 획일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움직임은 그래서 소중할 수밖에 없다. 주류 영화가 잊은 ‘어떤’ 본질을 깨우치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