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국 ‘명품’ 감독들의 신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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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영화계는 그야말로 ‘명품’ 감독들의 격전지다.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봉준호 등 한국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들의 기대작 소식이 한꺼번에 들려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올드보이> 등 한국영화사(史)에 길이 남을 작품이 대거 쏟아졌던 2003년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라는 조심스런 평가까지 나올 정도.  

그중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봉준호 감독의 <마더>다. 각각 4월, 5월 개봉예정인 두 영화는 칸영화제로부터도 열렬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박쥐>는 잘 알려진 대로 ‘뱀파이어’ 영화다. 만인의 존경을 받는 신부가 백신 개발 실험에 자원했다가 수혈을 잘못 받아 뱀파이어가 된다는 이야기. 기존 뱀파이어 영화와 달리 액션보다 사랑에 방점을 찍었다는 박찬욱 감독의 전언이 이채롭다. 안 그래도 <박쥐>는 제작단계부터 높은 수위의 베드신으로 여배우 캐스팅에 난항을 겪기도 했는데 부부로 출연하는 송강호와 김옥빈 조합이 만들어낼 ‘러브스토리’는 <색, 계>의 그것을 넘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런 점에서 <박쥐>는 송강호가 연기하는 첫 번째 사랑 영화이기도 한 셈이다. 때문에 그가 연기하는 신부가 과도하게 흡혈귀로 변하거나 뱀파이어 액션을 선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찬욱 감독이 전작을 통해 늘 제기해왔던 ‘도덕적 딜레마’, 즉 <박쥐>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흡혈귀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니, 기존 뱀파이어 영화의 장르적 규칙을 위반하면서 슬며시 한발을 걸치고 있는 모양새가 더욱 독특한 작품을 기대케 한다.

반면 봉준호 감독이 <마더>에서 다루는 사랑은 모성애다. 단,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모성애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마더>는 살인사건에 휘말린 아들의 누명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사실 이 영화에서 대해서는 간략한 줄거리와 김혜자와 원빈이 모자(母子)로 출연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다. 그중 <마더>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볼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의식적으로라도 전작들과는 좀 다르게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마더>는 기존에 봉준호 감독이 보여줬던 작품들처럼 평범한 주인공을 앞세워 장르의 전형성을 파괴하는 주특기는 그대로 가져간다. 하지만 아버지가 없다. (봉준호 감독의 모든 영화에 출연했던 변희봉이 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부성(父性)이 중요한 기능을 작용했던 <괴물>과 달리 <마더>는 엄마와 아들간의 관계에만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전작과는 많은 지점에서 달라졌다. <마더>에서 보게 될 생소한 요소는 그로 인해 생긴 결과다.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가족의 이야기로 축소됐고 ‘화성’(<살인의 추억>), ‘한강’(<괴물>)과 같은 공간의 구체성이 사라졌으며 그 결과, 감정이 사건을 압도하는 영화가 됐다. 그래서 규모는 작아졌지만 봉준호 감독은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지금껏 만든 영화중에 가장 셀 것 같다”고 표현한다. 

‘센 이야기’라면 이창동 감독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에서 ‘불편한 진실’을 대놓고 이야기하며 모든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의 신작은 <시>다. 그런데 의외로 사건이 아닌 일상을 다룬다. 그것도 60대 중반의 여성이 등장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시>는 60대 중반의 여성이 시를 쓴다는 이야기다. 파출부 생활을 하면서 외손녀와 단 둘이 살고 있고 딸은 이혼을 한 후 함께 지내지 않은지 오래다. 이렇게 무료한 생활을 영위하던 중 무료 문학 강좌를 듣게 되는데 시를 한 편 써야 하는 과제를 받게 된다. 이처럼 표면상 드러난 이야기만 가지고는 이창동 감독 특유의 고통스런 묘사를 예상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시를 영화로 바꿔보는 가정은 어떨까. <시>의 주인공 여성이 평생 관심을 두지 않던 시를 써야 되는 상황은 흔히 창작의 고통에 비견될 만하다. 영화 역시 그렇다. <시>는 이창동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연출작이지만 그에게 영화를 만든다는 건 여전히 고통을 수반한다. 다시 말해, <시>는 영화의 본질에 대해 묻는 질문 같은 작품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은 없지만 <시> 자체가 하나의 고통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이창동표’ 영화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생활의 발견>을 연상케 한다. 주인공 영화감독이 제천과 제주도 두 번의 여행을 통해 이상한 사건을 겪는다는 얘기다. <생활의 발견>과 결정적으로 다르다면 사랑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 그리고 홍상수 영화를 통틀어 가장 웃긴 작품이라는 점이다. 하긴 사랑을 빙자한 수컷의 찌질함을 방관자의 시점에서 묘사한 그의 영화가 언제 안 웃긴 적이 있었냐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그 단계를 뛰어넘는다. 물론 큰 이야기 틀을 정해놓고 현장에서 즉석으로 디테일한 에피소드를 만드는 그의 방식을 감안하건데 정확한 이야기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두 번의 여행길에서 모두 부부를 만난다는 점에 비춰 부부 사이에 존재하는 ‘가식’의 정체를 발가벗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사실을 감안한다면 제목이 주는 뉘앙스가 절묘하다. (싱글로 설정될 가능성이 높은) 주인공은 부부의 사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부부 또한 각자의 진실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벌이는 속고 속이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웃음을 줄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덧붙여,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홍상수 지금 언급한 감독들이 2009년 한국영화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섭섭해 할 이름이 꽤 많다.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 박진표 감독의 <내사랑 내곁에>,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합니다>,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까지. 2009년 한국영화는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대거 출현으로 또 한 번의 전성기를 구가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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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200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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