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시간>(127 H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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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영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동생은 그림과 음악을 이용해 마음을 표현합니다.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허남웅 대중문화평론가와 허남준 화가는 친형제입니다. 피를 나눈 사이뿐 아니라, 인생의 선후배로서, 예술적 동지로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엔 온기가 가득합니다. 그런 두 사람과 <127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대니 보일표, 역발상 영화

127시간 동안 조난됐다가 살아 돌아온 아론 랠스톤의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좁은 공간과 한정된 인물이라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기이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낸 연출력이 놀라웠어요. 두 분은 어떠셨나요? 
허남웅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하고 다큐멘터리적인 이야기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MTV 스타일로 과감하게 그린 게 흥미로웠어요. 비판은 있을 수 있겠죠. ‘숭고한 이야기를 너무 가볍게, 감각적으로 다룬 게 아니냐’는 식의 비판이요. 그런데 죽음의 위기를 맞으면, 사람의 감각이라는 게 엄청나게 열리잖아요. 살고 싶은 열망이 더 강해지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상황을 감각적으로 그린 게, 적절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MTV 적으로 그린 것을 두고 사람들은 역발상이라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게 더 맞는 방법이었다고 보는 거죠. 실화를 더욱 적확하게 느끼도록 하는 연출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허남준  MTV적이 요소와 영화적인 요소 중간 지점에 위치하려고 많이 노력한 작품 같아요. 저는 처음 딱 봤을 때, ‘한 인간의 반성문’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의 후회와 깨달음들을 젊은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현한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트렌디해 보이는 표면과 달리, 안에서 말하는 건 다소 원론적이지 않았나 싶어요.

아론 랠스톤의 생존 실화는 미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예요. 그래서 대니 보일이 그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 했다고 해요. ‘비주얼 스타일리스트 대니 보일이 휴머니즘 영화를?’ 이란 반응을 보이면서요.
허남웅  제 생각은 달라요. 저는 대니 보일이 항상 휴먼드라마를 찍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약에 찌든 청춘의 이야기를 그렸던 <트레인스포팅>(1996)을 보면, 주인공이 결국엔 마약을 끊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요. <슬럼독 밀리어네어>(2009)도 출연진 전원이 함께 춤추는 화합의 장면으로 끝을 맺고요. <127시간>도 마찬가지예요. 개인주의적이고 자신만만했던 주인공이 위기의 127시간을 겪으면서, 평소 소홀했던 가족과 주변 친구들을 뒤돌아 봐요. 이를 통해 영화는 결국 사회라는 건,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죠. 스필버그 식으로 말하면 가족주의인 셈인데, 대니 보일이 감각적인 영상을 잘 만들어서 첨단이라는 평가를 받는 거지, 이야기적으로는 보수주의자에 가까워요.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그가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였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보수주의라고 하니까 굉장히 부정적으로 들릴 것 같은데, 제가 여기에서 말하는 보수는 좋은 의미에서의 보수예요.(웃음)


살아서 돌아오는 것만이 정답일까.

개인적으로 눈길이 갔던 건, 영화가 극한의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고통을 대하는 방식이었어요. 영화는 이 운수 없는 남자를 동정하거나, 영웅처럼 찬미하지 않아요. 그런 것들이 기존 영화들과 달랐던 것 같아요.
허남준 그건 저도 공감해요. 다만 전체적으로 ‘너무 안전하게 간 게 아닌가’란 아쉬움은 있어요. 이를 테면, 주인공이 캠코더를 보며 자위를 시도하려다가, ‘내가 지금 이러면 안 되지’하면서 딱 멈추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 게 너무 ‘쿨’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휴머니티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도덕관들이 너무 탄탄하게 바로 튀어나오는 느낌이랄까. 거기에서 한 지점만 더 거칠게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그랬으면 그 반대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시작도 하기 전에 딱 멈춰버리니까, 오히려 삐딱한 시선을 갖게 되더라고요.

대니 보일은 이 영화를 ‘삶에 대한 찬가’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아까 이 영화가 ‘한 남자의 반성문’ 같다고 하셨는데, 대니 보일의 그런 생각에는 동의하시나요? 
허남준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는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아요.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하잖아요. 가족에게 소홀했던 것에 대해, 친구나 애인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말이에요. 대니 보일 입장에서는 그걸 ‘삶에 대한 찬가’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허남웅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겪지 않은 상황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가능 한가?’ 하는. 아론은 팔을 자르고 나온 후, 결과적으로 많은 걸 얻었어요. 영웅도 되고, 부도 얻고, 결혼도 하고. 그런데 아론과 같은 삶과 팔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저는 그냥 온전한 팔을 선택할 거예요. ‘삶에 대한 찬가’라……. 말은 좋죠. 그런데 그건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하는 말일 수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사려 깊지 못한 얘기 일 수 있다는 거죠.    
허남준 조금 위험한 발언일 수 있는데, 극 중 주인공은 끝까지 위트를 잃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그냥 장렬하게 죽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얘기냐면, ‘왜 우리는 살아서 돌아오는 것만이, 그리고 자기 팔을 끊고 나와서 사회로 다시 환윈 되는 과정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할까’란 의문이 든 거죠. 한번쯤은 거꾸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부정에서 출발하는 긍정도 있다.

그건, 주인공이 낙천적인 성격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싶어요. 조난 사고의 사례를 분석한 조사에 의하면, 희생자와 생존자에겐 차이가 있대요. 희생자의 경우 그런 상황에 처하면,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우울과 짜증, 분노를 느끼다가 결국 무기력을 거쳐 최후를 맞는대요. 반면 생존자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과거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하더라고요.
허남준 그것도 아주 단순하게 볼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팔을 끊고 나온 걸 가지고, 그 사람이 삶에 강한 긍정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부정적이어도 팔을 자르고 나올 수 있는 거잖아요? 부정에서 출발하는 긍정도 분명히 있는데, 왜 부정에 대해서는 고려가 없었을까, 아쉬웠어요. 대중영화라서 그랬을까요? 이 영화에는 그것조차 ‘투덜’거리지 못하게 하는 장치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대중영화가 ‘건드리는 지점’이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는 인상은 받았어요. 이제는 영화가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어 올리는 경지에 도달했구나’ 싶더라고요.
허남웅 그건 할리우드가 지닌 힘일 거예요. 예전에 히어로 영화 하면 단순한 오락 영화였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인디에 있던 샘 레이미(<스파이더 맨> 감독)나 크리스토퍼 놀런(<다크 나이트> 감독) 같은 유능한 감독들이 오면서 히어로 영화도 진화했어요. 할리우드가 무서운 게, 그네들은 가리지 않아요. 유능하다 싶으면, 데리고 와서 장르를 진화시키죠. 만약 <127시간> 같은 시나리오가 한국에 있었다면 영화로 만들어지기 힘들었을 거예요. ‘뭐야? 갇혀 있다가 나오는 게 다잖아?’ 하며 돌아보지도 않았겠죠. 그런데 할리우드는 여러 가지 화법과 영화적인 장치를 보완해서 결국 만들어 냈잖아요. 그것도 아주 흥미롭게요. 그리고 <127시간>을 우리는 주류영화라고 하지만, 사실 ‘워너브라더스’ 밑에 있는 독립영화 라인에서 만들어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인디나 독립영화를 받쳐주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구축 돼 있으니까, <127시간> 같은 영화도 나오는 거죠.

아론을 연기한 제임스 프랑코의 연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연극으로 치면 모노드라마라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들어갔을 텐데, 소화를 잘 한 것 같아요. 국내에는 <스파이더 맨>의 주인공 친구로 기억하는 팬들이 많을 텐데, 두 분은 어떠셨어요?
허남준 배우 연기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시던데, 저는 그냥 그렇게 봤어요. 제임스 프랑코의 연기가 나빴다는 게 아니라, 영화 자체가 배우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포맷이 아니었나 싶어요. 
허남웅 저는 제임스 프랑코의 연기를 흥미롭게 봤어요. 잘했다고 봐요. 그런데 남준이 말에도 일부분 동의를 하는 게, 유능한 감독의 경우 배우의 약점을 잘 가려주잖아요? 대니 보일은 또,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데리고 영화를 만들기보다, 편집을 잘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이고요. <127시간>도 배우의 연기보다, 편집이 더 주효했던 영화예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제임스 프랑코가 지닌 인지도가 그렇게 큰 것 같지 않더라고요. <스파이더 맨>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이후 찍은 영화들이 거의 다 실패해서 국내에선 인기를 이어가지 못했어요.
 
영화에서 아론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하루에 딱 몇 십분 동안만 가능한 일광욕을 만끽할 때, 그의 오감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말 그대로 소소한 행복의 중요성을 깨닫는 장면인데, 두 분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의외의 행복을 느낄 때가 있죠? 
허남웅 쇼파에 푹 파묻혀서 TV 볼 때, 그런 걸 느껴요.(웃음)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자주 그랬거든요. 원고 하나 쓰고, 누워서 TV 보고.(웃음) 요샌 회사니 뭐니 할 일들이 많아서 그럴 시간이 별로 없는데, 그러다 보니 그때의 행복을 새삼 더 느끼게 돼요.  
허남준 저는 계속 안 좋은 쪽으로 얘기하는 것 같은데, 이번에도 반대로 얘기 할게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기타를 연주했는데, 기타 실력이 꾸준히 늘다가 어느 순간 정체되더라고요. 당시엔 그게 굉장히 답답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다보니, 안됐던 플레이들이 기가 막히게 잘되는 순간들이 오지 뭐예요. 남들은 그걸 ‘멋지다’고 하는데, 저는 ‘얼마나 할 일이 없어서 기타만 쳤으면 늘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냥 기쁘지가 않더라고요(웃음). 그런 식으로, 어떤 지점을 넘어가면 모든 긍정이 순식간에 전복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그게 아주 소소한 것에서 발견되는데, 한 지점만 더 들어가 보면 ‘내가 알고 있던 게, 착각일 수 있구나’를 느끼게 되는 거죠. <127시간>은 그런 일련의 과정을 보여 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어요.

사람들이 <127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허남준 이 영화가 말하는 핵심적인 담론이 배제된 상황에서 보면 오히려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가볍게요. 왜냐하면, 죽음에 직면하는 상황은 다수가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함부로 상상하거나, 단호하게 확신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즐겼으면 좋겠어요.  
허남웅 이런 건 싫어요. “내가 삶을 포기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희망을 얻었어요” 하는 거 말이에요.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다보면, 그런 식의 말을 하는 감독과 배우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건 조금 낯 뜨겁더라고요. 영화를 통해 좋은 감흥을 받는 건 좋지만, 너무 맹신하는 건 위험해요. 대신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감각적으로 찍었다’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왜 감각적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하면서 보면 좋을 것 같네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조난 당시 아론에겐 시계와 고글, CD플레이어, 약간의 물, 산악용 로프, 등산용 칼,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뿐이었어요. 만약 두 분이라면 그 상황에서 뭐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으세요? 전화 같은 직접적인 탈출 도구는 빼고요.(웃음)
허남웅
심심하지 않게 해 줄 ‘라디오’, 탈출을 시도하게 해 줄 ‘긴 밧줄’, 그리고 생명에 꼭 필요한 ‘물’이요.
허남준 저는 영화 보면서, 주인공의 반바지가 너무 추워보였어요.(웃음) 그래서 ‘긴 바지’가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고요. 그러고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해 줄 ‘장난감’. 마지막으로 벽에 낙서할 수 있는 ‘펜’ 그 세 가지가 있으면 좋겠어요. 

글 정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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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2Day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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