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영화, 어느새 진화하다 – 2006년, 세 편의 조폭영화




<조폭 마누라>는 충무로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조폭 마누라>(01)의 대박 이후 충무로는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를 우후죽순처럼 양산했다. 흥행에도 성공적이어서 <조폭 마누라>를 필두로, <가문의 부활> <두사부일체> 등은 시리즈화 되어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허나 이들 시리즈에 향하는 시선이 그리 고운 것만은 아니다. 조폭을 미화하는 설정에, 말장난과 성희롱으로 일관하는 유머, 무엇보다 관객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영화적 고민 없이 싸구려 통조림처럼 가볍게 기획, 제작하는 방식은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우리가 흔히 조폭영화라고 지칭하는 것은, 다양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속칭 ‘저질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로만 비하돼온 것이 사실. 더군다나 매년 십여 편이 넘는 조폭 소재 영화가 제작될 정도로 특수한 그룹을 형성했으면서도 그런 가벼움 탓에 하나의 장르로서 대접을 받지 못한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조폭 마누라>가 조폭을 소재로 한 첫 번째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동안 뜸했었던 것뿐이지 <조폭 마누라> 이전에도 조폭은 충무로가 심심치 않게 이용해 온 소재였다.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94),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97), 송능한 감독의 <넘버3>(97)는 이 분야의 고전으로 통한다. 물론 조폭이라는 소재가 폭넓게 소비되도록 불을 지핀 것 역시 <조폭 마누라>다. 특히 ‘여자’ 보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한국영화사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여자 캐릭터의 출현을 통해 조폭영화도 충분히 변형과 변주, 무엇보다 진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 2006년, 오랫동안 코미디 장르에서만 제자리 걸음을 하던 조폭영화가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6월에 개봉한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다.  



2006년, 세 편의 조폭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


<말죽거리 잔혹사>(04)에 이은 ‘폭력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비열한 거리>는 조폭이 현실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어떤 방식에 따라 기능하는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미화와 유머의 대상에서만 머물던 조폭을 현실로 끌어내려 진지한 관찰의 대상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조폭 영화에서 그 의미가 철저히 무시되어온 가족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큰 의미를 갖는다. 병두(조인성)가 그토록 조직 보스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오로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탓. 하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보스를 배신해야 하고, 이는 자신 또한 부하에게 배신 당할 수 있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이처럼 음모와 배신의 메커니즘을 통해 유하 감독은 조폭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비열한 거리>는 세부 묘사에 있어서도 궤를 달리한다. 조폭 영화의 상징적 이미지랄 수 있는 액션에 있어서, 화려하고 합이 잘 짜인 영웅적인 액션을 거부한다. 대신 먹고살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고 칼을 쓸 수밖에 없는 절실하고 비루한 막싸움이 스크린에 배치된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는 관객의 감정을 유머와 신파조로 쥐락펴락 조절하지 않는다. 병두의 친구로 영화감독 민호(남궁민)를 등장시킨 건 이 때문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관찰자의 시점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하여, 감정이 개입할 수 없게끔 조치를 취한 셈이다.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가 조폭 신화를 철저히 해체하고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장진 감독의 <거룩한 계보>는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기존 조폭 코미디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남자의 우정을 전면에 배치하고 이를 유머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다. 그런 점에서 <거룩한 계보>는 ‘조폭 코미디’ 그룹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폭영화 특유의 감성은 살리되 이것을 흔히 우리가 ‘장진식 유머’로 편의상 표현하는 코드로 재해석해 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진감독은 조폭영화의 전유물인 비장미를 코미디의 소재로 최대한 놀려 먹는다. 이는 확실히 말장난 수준에 그쳤던 이전의 조폭 코미디 영화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와 더불어, 치성(정재영)과 순탄(류승용)과 주중(정재영) 간의 우정을 멜로적 감성에서 접근한 시각도 짚어볼만하다. 물론 그런 의도가 비장미를 유발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지만, 장르의 규칙 안에서 이를 의도적으로 배반하고 그러면서 장르의 범위를 넓혀가는 장진 감독의 작업은 장르 영화가 발전하는 과정에서의 독특한 시도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정범 감독의 <열혈남아>는 또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를 제시하는 방법이 조금은 낯선데, 감독은 조폭 세계에 모성애를 슬쩍 끼워넣는다. 그래서 <열혈남아>는 조폭도 사람이라는 전제하에서 출발한다. 유독 ‘사람’을 강조하는 상황과 대사가 많이 등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부당한 이유로 재문(설경구)에게 얻어맞은 치국(조한선)이 대뜸 “형님도 건달이기 이전에 사람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상황은 이 영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대사 중 하나다. 이들도 사람이기에 감정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을 텐데 그 존재가 바로 어머니다.

이를 반영하듯, <열혈남아>는 조폭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칼 들고 피 튀기며 싸우는 장면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치하는 상황은 이뤄지지만, 눈앞에 표적을 두고도 재문은 어머니 때문에 심정적으로 흔들린다. 그런 탓에 <열혈남아>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일차원적으로 똑 떨어지게 설명할 수 없다. 재문만 하더라도, 살인에 목매다는 정신이상자로 보이다가 어느 순간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보이고, 패륜아처럼 행동하다가도 효심이 깊은 아들처럼 행동한다. 바로 그런 다중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 인물에 입체성을 부여한다. <열혈남아>의 가장 큰 성과는, 조폭영화 사상 유례없는 다차원적인 인물을 창조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제 조폭영화의 진화는 어디로 갈 것인가

영화의 역사는 곧 장르 발전의 역사다. 특히 범죄영화는 영화사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온 장르이며,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시대에 맞춰 변화해왔고 또 지역과 나라에 따라 변형된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같은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더라도 미국에서는 갱스터와 사립탐정이 등장하는 필름 느와르가, 프랑스는 개인주의가 극에 달한 멜랑콜리한 프렌치 느와르가, 홍콩에서는 남자의 우정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한 홍콩 느와르가 그 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며 나름대로의 장르로 토착화되었다.

한국의 느와르, 즉 한국 범죄영화의 고유한 장르라고 한다면, 단연 조폭영화라고 할 수 있다. <비열한 거리>에서 잘 묘사되었듯 조폭은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하나의 유용한 거울이다. 그 장르엔 한국인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고, 한국 사회의 속성이 숨겨져 있으며, 또한 이것들이 기능하는 메커니즘이 반영되어 있다.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등장했던 것은, 단순히 흥행적 의도 말고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테다.

하지만 충무로는 조폭을 희화화하고 미화하는 데만 주력했다. 물론 그런 시도는 조폭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경직성이 많이 순화되었음을 의미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학자들에겐 흥미 있는 연구 대상이겠지만 영화 팬들에겐 안타깝게도 장르의 발전을 가로막는 저해요소였다.

장르의 발전은 장르의 규칙을 위반하면서, 혹은 다른 장르와 결합하면서,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한국 조폭 영화의 2006년은 남다른 한 해로 기억될 듯싶다. 코미디에 안주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조폭의 본질이 무엇인지 관찰한 작품이 등장했고(비열한 거리), 색깔 있는 조폭 영화가 모습을 드러냈으며(거룩한 계보),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열혈남아)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현재, 한국의 조폭영화는 진화하고 있다.


(2006. 11. 8.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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