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반어법을 품고 있는 배우, 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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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경력이 긴 편은 아니지만 수애에게는 끊어지지 않는 실처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다. 소처럼 끔벅거리는 순수한 눈망울과 동글동글해 보이는 얼굴선이 주는 이미지가 착하고 얌전해 보인다는 것. 그녀는 이처럼 미디어와 대중에게 착한여자로 소비되는 자신의 이미지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출연한 조근식 감독의 <그 해 여름>은 1968년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담고 있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수애는 비밀스러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서정인’으로 출연, 시대의 아픔으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를 놓아줄 수밖에 없는 인물을 연기한다. 그녀의 바람과 달리 기존의 그녀가 보여줬던 역할, 특히 전작 <나의 결혼원정기>에서 맡았던 이북출신 우즈베키스탄 통역관 김라라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외의 선택이다. 


하지만 수애의 생각은 다르다. 시대의 아픔으로 인해 헤어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디테일 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서정인이라는 인물은 일상에 가까운 연기를 펼쳐야한다는 점에서 탈북자인 라라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나의 결혼원정기>와는 달리 <그 해 여름>에서는 정신적으로 힘든 점이 많았다. 특히 일상에 가까운 연기를 펼쳐야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디테일한 부분을 더 살려야한다는 점에서 연기가 어려웠다는 그녀다. “내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건가, 화면에 비치는 모습이 수애인가, 서정인인가, 이렇게 연기를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그런 고민을 무척이나 많이 했죠”


상대 배역 석영을 맡은 이병헌과 연출을 맡은 조근식 감독 그리고 스태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인이라는 인물을 온전히 연기할 수 없었을 거라고 수애는 전한다. 영화를 끝내고 울음을 터뜨린 것도 순전히 그녀를 도와준 이들과 헤어진다는 점이 아쉽고 서운해서였다. 하지만 단지 그 때문 만일까. 이번 작품이 세 번째 영화 출연작인 수애는 처음으로 연기를 하면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던 경험 탓에 연기에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 대단한 이념이나 철학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의 촬영 분을 찍으면서 매번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아쉬움을 느낀 것이 전부다. 보는 이에 따라 그것이 무슨 생각이 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 발언의 의미는 그녀에게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연기를 하는 데 있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객관적인 시선에서 자신의 연기를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전작인 <가족>과 <나의 결혼원정기>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가족>은 영화라는 것을, 그리고 연기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임했기 때문이고, <나의 결혼원정기>는 먼 나라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곳에서 체력적으로 힘을 빼가며 정신없이 연기에 임했던 탓이다. 그런 점에서 <그 해 여름>의 서정인은 배우 수애가 한 단계 성장했다는 하나의 증표로써 남다른 배역이었던 셈이다. 


이에 만족할 법도 한데, 그리고 그녀가 지금껏 보여준 이미지로 본다면 이에 안주할 법도 한데 차분하고 나지막한 수애의 목소리는 반어법처럼 새로운 역할에 대한 도전정신을 강하게 드러낸다. “악녀 역할을 정말 해보고 싶어요. 도회적인 역할도 해보고 싶고. 그런데 단순히 외모가 악하고 도회적인 게 아니라 마음 자체가 악하고 도회적인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외모는 상관없어요.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악녀 같고 현대적인 성격의 역할을 하고 싶은 거죠”


그녀에게서 전혀 그런 이미지를 상상해낼 수 없다면 다음의 일화는 악한 수애 혹은 도회적인 수애의 모습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줄지 모른다. 그녀가 착한여자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기 시작한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다. 그게 싫어 어느 날 눈썹을 다 밀어버린 적이 있다. 여자에게 외모는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신분증과도 같은 것. 착한여자의 이미지를 버릴 수 있다면 ‘그까짓 거’ 눈썹정도 밀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겉으로는 순해보여도 속으로는 독한여자. 수애는, 의외의 반어법을 품고 있는 배우다.


(2006. 10. 1.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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