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어떻게 만화를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옮길 수 있었을까?




충무로의 새로운 광맥, 만화


최근 한국영화계는 만화의 영화화가 붐이다. 올해를 기점으로 벌써 강풀의 인기만화 <아파트>(06), B급달궁의 <다세포 소녀>(06), 허영만의 <타짜>(06)가 안병기, 이재용, 최동훈 감독에 의해 영화화화 되었다. 이뿐이 아니다. 전윤수 감독의 <식객>, 김용화 감독의 <미녀는 괴로워>, 김정권 감독의 <바보>, 최양일 감독의 <수> 등 현재 충무로를 돌고 있는 수백 개의 프로젝트 중 무작위로 몇 개만 쥐어들면 만화원작의 영화가 손에 잡힐 정도다. 소재의 고갈을 겪고 있는 한국영화계에서 만화는 새로운 광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원작의 인기도와 검증된 이야기 등 우수성을 인정받은 만화를 영화화한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고, 흥행이 보장되는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수의 만화의 영화화가 있어 왔어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흥행에 성공한 사례는 김성수 감독의 <비트>(97), 최동훈 감독의 <타짜>를 제외하면 손에 꼽을 정도다. 왜일까. <올드보이>로 성공적인 만화의 영화화를 이룬 박찬욱 감독의 다음 사례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어줄만하다.


박찬욱 감독은 지인의 소개로 접하게 된 일본 만화 <멋지다 마사루>를 재미있게 보았다. 주변에서 이 얘기를 듣고 영화화하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영화로 만들고 싶긴 한데 원작이 준 재미의 가장 큰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조잡한 그림체를 스크린에 살려낼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화와 만화, 두 매체 간에는 이미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공통분모를 제외하고는 이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 연출시 원작의 설정은 살리되 디테일한 면에 있어서는 영화적 재미를 살리고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드러내는 선에서 많은 각색과 변화를 줬다.


이처럼 만화를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재현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맞는 화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성수 감독과 최동훈 감독 역시 원작만화의 장점을 살리면서 영화 고유의 힘도 잃지 않았던 까닭에 <비트>와 <타짜>라는 훌륭한 만화원작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대체 이들은 어떻게 만화 원작을 영화로 ‘잘’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김성수와 최동훈에게 듣는 만화의 영화화에 관한 두세 가지 것들


최동훈 감독은 <타짜>를 영화화하겠다는 결정은 내린 후 가장 먼저 원작자 허영만을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그는 원작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고 허영만 화백에게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아냈다. 허 화백이 흔쾌히 OK사인을 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미 자신의 작품이 다수 영화화되는 것을 보며 원작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작품은 매력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성수 감독의 <비트>는 그런 허영만의 생각이 잘 드러난 거의 첫 번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 초반부 30분을 제외하면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만화를 읽은 독자들의 기대는 배반하되 이야기의 본질은 놓치지 말자 그런 거였죠. 만화의 그림이 갖는 추상성이 이미 독자의 머릿속에 현실적인 화면으로 재현되었을 텐데 거기에 정면으로 견주면 어떤 영화라도 초라해질 것 같았죠” 김성수 감독의 얘기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담당한 심산 작가는 당시까지 출간된 만화 <비트> 5권까지 대충 읽어본 후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워낙에 방대한 양이었기 때문에 이를 모두 영화로 보여주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김성수 감독은, 방황하는 10대 후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비슷한 내용의 시나리오도 가지고 있었다. 원작에서 그리 큰 비중이 아니었던 태수(유오성)가 영화에서는 핵심인물이 되었고 환규(임창정)의 여자 친구 선아(사현진)라는 인물이 새롭게 탄생했다. 무엇보다 원작에서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구조와 시간을 점프하며 진행되는 서술방식은 고민 끝에 더욱 강조하기로 하였다. 성장 드라마였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신에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뮤직비디오들처럼 강렬한 음악을 배경에 깔고 이질적인 화면들을 억지로 붙이면서 전개했습니다. 주인공들이 갈팡질팡하는 젊은이들이었기에 그런 서술이 오히려 적절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 결과, 허영만 원작의 만화 <비트>와는 다른 김성수 감독의 영화 <비트>가 탄생했다. 평단의 반응도 좋았을 뿐 아니라 1997년 당시 서울 관객 34만 명이라는 높은 흥행성적까지 기록했다. 그런 김성수 감독의 성공적인 만화의 영화화 탓이었을까. 이후 만화를 스크린에 옮긴 많은 작품이 전반부는 원작을 살리면서 후반부는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로 전개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런 흐름에 변화를 가져온 건 <타짜>의 최동훈 감독이다.


“캐릭터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의 기질 같은 게 있다. 기질이란 건 선악의 전형성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캐릭터를 오히려 모호하게 만든 측면도 있다. <타짜>는 결국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중단되더라도 도박판의 이런 캐릭터들에 대한 매혹을 보여주려고 했다”


아시다시피 <타짜>는 9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서술형태가 사건이 발생하는 순서가 아닌 캐릭터가 등장하는 순서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식이다. 최동훈 감독의 얘기처럼 <타짜>는 캐릭터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허영만의 원작은 이와는 다르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대별 에피소드에 따라 막도 나뉘고 등장하는 캐릭터도 변화한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은 이와 같은 형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채택했다. 원작의 묘미를 살리면서 원작과는 또 다른 작품을 내놓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최동훈 감독은 “원작만화는 신문연재 형식이었기 때문에 영화화하기에 스케일이 방대했고 많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틀로 엮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제일 먼저 한 작업이 바로, 길고 많은 에피소드로 구성 되어 있는 원작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었다”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영화 <타짜>는, ‘고니(조승우)가 타짜가 돼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만나는 인간 군상들’이라는 한 편의 운명론적 이야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고니가 겪게 되는 심리적인 변화나 내적 성장은 대부분 정마담(김혜수)의 개입으로 비롯된다. 때문에 감독은 정마담의 역할을 원작에 비해 더욱 키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마담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영화는 캐릭터 드라마로 재탄생하였고 그런 최동훈 감독의 전략은 멋지게 적중, 올 추석시즌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로 등극하였다.


만화는 만화, 영화는 영화


흔히 사람들은 영화를 도둑질의 예술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는 TV, 소설, 미술, 음악, 게임 등 가리지 않는 습성을 과시하며 훔쳐올 수 있는(?) 모든 것을 스크린에 가져왔다. 물론 무작정 훔치고 베낀 것은 아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법을 통해 TV를, 소설을, 미술을, 음악을, 게임을 재구성하였다.


게임과 함께 가장 촉망받는 21세기의 대중예술인 만화도 영화의 레이더망을 피해갈 수는 없다. 단, 만화의 영화화 역시 영화만의 특징을 가지고 스크린에 옮길 필요가 있다. 이는 앞에서 보여준 김성수 감독과 최동훈 감독의 <비트><타짜>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허영만 선생과 박하 선생(스토리 작가)의 만화가 너무 유명하다는 게 마음에 짐이 됐습니다. 그걸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되더군요. 왜냐하면, 너무 재밌거든요. 허영만 만화가! 하지만 만화의 영화화가 오히려 자극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략) 만화의 상상력보다 영화적 상상력이 뒤처질 거라고 겁먹지 말아야겠죠” (김성수 감독)


“영화가 완성된 후 원작만화와의 비교는 피해갈 수 없는 수순이라 생각한다. 원작만화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라면 그 기대감에 대한 부담감은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연출자가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하는 것이며 그것을 인정한 후에는 원작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해나갈 것인가에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동훈 감독)


만화는 만화, 영화는 영화. 만화의 영화화를 이미 경험한 선배 감독들의 조언(?)이자, 이들만의 특급 노하우다.


(2006. 10. 8.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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